LOGIN서하의 말이 떨어진 뒤에도, 건우는 한동안 아무 반응을 하지 못했다.
그녀를 보고 있었고, 분명히 같은 자리에 서 있었는데,
그 말 한 문장이 그 사이의 거리를 이상하게 뒤틀어 놓았다.
조금 전까지는 의심과 확신 사이에서 버티고 있었다면,
지금은 그 두 개가 동시에 밀려들어오면서 기준 자체가 흐려지고 있었다.
서하의 말이 떨어진 뒤에도, 건우는 한동안 아무 반응을 하지 못했다.그녀를 보고 있었고, 분명히 같은 자리에 서 있었는데,그 말 한 문장이 그 사이의 거리를 이상하게 뒤틀어 놓았다.조금 전까지는 의심과 확신 사이에서 버티고 있었다면,지금은 그 두 개가 동시에 밀려들어오면서 기준 자체가 흐려지고 있었다.“그게 무슨 뜻이야.”건우가 겨우 입을 열었다.짧게 끊지 않고, 숨을 한 번 더 이어 붙이며 물었다.“혼자가 아니었다는 얘기야, 아니면…내가 생각하는 그 상황이 아니라는 얘기야.”서하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대신 건우를 보는 눈이 조금
“같이.”그 한 단어가 방 안에 남아 있을 때, 공기는 잠깐 고요해진 것처럼 보였다. 말이 더 필요 없을 만큼 정리가 끝난 상태였고, 그 정리 위에 서 있는 두 사람의 시선도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선택이 끝난 뒤에도, 몸이 그 선택을 그대로 받아들이는지는 전혀 다른 문제였고, 그 차이가 드러나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처음 변한 건 호흡이었다.서하가 숨을 들이쉬는 타이밍이 미묘하게 틀어졌다. 아까까지는 의식적으로라도 리듬을 붙잡고 있었는데,이번에는 그 리듬 자체가 따라오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들이쉬는 숨이 짧아졌다가, 내쉬는 숨이 길어졌다가, 그 사이에 아주 작은 끊김이 계속 끼어들었다. 건우는 그걸 보면서도 바로 말을 꺼내지 않았다. 방금까지의 흐름이 아직 남아 있는 상태에서, 성급하게 개입하면 오히려 더 빨리 무너질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그걸 그대로 두기에는 변화가 너무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서하의 시선이 한 번 더 어긋났다.건우를 보고 있었는데, 초점이 정확히 맞지 않았다. 아주 짧은 순간, 다른 쪽을 같이 보고 있는 것처럼 겹쳤다가 다시 돌아왔다. 그 반복이 두 번, 세 번 이어지면서, 단순한 피로나 긴장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상태로 넘어가기 시작했다.“서하야.”건우가 낮게 불렀다.서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입을 열었다가,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그 대신 숨이 먼저 끊겼다.그녀의 어깨가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건우는 한 걸음 더 다가갔다.이번에는 멈추지 않았다.“지금 어디까지야.”그가 물었다.문장을 짧게 자르지 않고, 그대로 이어 붙였다.“겹치는 건지, 넘어가는 건지, 아니면 이미”말을 끝까지 잇기 전에, 서하가 먼저 고개를 들었다.“나 아닌 쪽이…”그녀의 목소리가 낮게 흘러나왔다.건우의 눈이 멈췄다.“…더 빨라.”그 문장은 설명이 아니었다.상태 그 자체였다.건우는 그걸 이해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지금까지는 같이
“누구 생각이야.”그가 물었다.문장을 자르지 않고, 그대로 밀어 넣었다.서하는 잠깐 눈을 감았다가 떴다.숨이 한 번 끊겼다가 이어졌다.“…둘 다.”그 답은 회피가 아니었다.정확했다.같은 몸 안에서,같은 순간에,다른 결론이 동시에 올라오고 있었다.건우는 한 걸음 더 다가갔다.이번에는 멈추지 않았다.“그럼 나눠서 말해.”그가 낮게 말했다.“지금처럼 섞지 말고.”서하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그 말은 단순한 요구가 아니었다.같은 몸 안에서 의도적으로 분리해서 말하라는 요청이었다.잠깐의 정적. 그리고, 서하의 입이 다시 열렸다.“…하나는,”그녀가 천천히 말했다.“버티기 힘들어.”이번에는 확실했다.톤이 달랐다.건우는 그걸 그대로 들었다. 끊지 않았다.“그래서”말이 이어졌다.“이 상태 오래 못 가.”건우는 눈을 떼지 않았다.“서하는?”그가 바로 물었다.서하는 숨을 한 번 들이쉬었다.이번에는 조금 더 빠르게 나왔다.“난 간다.”그 두 단어는 짧았지만, 이번에는 확실히 서하의 결이었다.“끝까지.”건우는 그 말을 듣고, 잠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같은 몸 안에서 서로 다른 방향이 동시에 올라오는 상태.이건 더 이상 단순한 겹침이 아니었다.충돌이었다.여자는 그 장면을 조용히 보고 있었다.말하지 않았다.하지만, 이번에는 시선이 아주 미세하게 내려갔다.이 상태가 어디까지 가는지,이미 알고 있는 사람의 반응이었다.건우는 다시 입을 열었다.“둘 다 들었다.”그는 말을 끊지 않고 이어갔다.“그럼 이제 정해야지.”서하의 시선이 다시 올라왔다.“누구 말로 갈 건지.”방 안 공기가 다시 바뀌었다.이번에는 유지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로 넘어가고 있었다.말이 떨어진 뒤, 방 안은 잠깐 비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실제로는 아무것도 비어 있지 않았는데, 서로가 들은 문장을 각자 안쪽으로 끌고 들어가면서, 그 사이에 놓여 있던 공기가 한 번 접히는 느낌이었다. 건우는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방금 스
서하가 한 발짝 물러난 자리에서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을 때,방 안의 공기는 다시 얇게 갈라져 있었다.완전히 정리된 것도, 그렇다고 다시 한 덩어리로 붙은 것도 아닌 상태에서,서로 다른 리듬이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있었다.건우는 그 미묘한 어긋남을 그대로 보고 있었다.아까까지는 감정이 겹쳐 올라오면서 반응이 무너지는 쪽에 가까웠다면,지금은 그 반응 자체가 한 번 더 나뉘는 느낌이 분명하게 섞여 있었다.“지금… 멈출 거야?”서하가 물었다.문장 자체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지만, 끝을 맺는 방식이 미묘하게 달랐다. 말이 떨어지는 타이밍이 반 박자 늦었고,그 사이에 짧은 공백이 끼어 있었다.
두 번째로 흐름을 끊어낸 뒤에도 완전히 정리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겉으로 보기에 둘 사이 거리는 다시 확보된 것처럼 보였고,호흡도 어느 정도 제자리로 돌아온 것 같았지만,그건 단지 한 번 넘쳤던 물을 겨우 닦아낸 상태에 가까웠다.바닥은 말라가고 있었지만, 안쪽에서 다시 밀려올 준비를 하고 있는 압력까지 사라진 건 아니었다.건우는 그걸 느끼고 있었다.조금 전보다 분명히 더 길게 버텼는데도, 몸 안쪽에서 올라오는 감각은 더 선명해져 있었다.단순히 반복되는 게 아니라, 같은 구간을 다시 지나가면서더 정확하게 인식되는 상태였다. 어디서 호흡이 틀어지고,어느 순간에 반응이 앞서 나가며,
손이 떨어진 뒤에도, 접촉의 감각은 바로 사라지지 않았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는데도, 그 짧음이 오히려 더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건우는 한 발 물러난 자리에서 숨을 고르려 했지만, 호흡이 쉽게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았다. 들이쉬는 타이밍이 어긋나 있었고, 내쉬는 숨이 평소보다 길게 늘어졌다. 몸이 먼저 반응해버린 뒤라서, 머리로 정리하는 속도가 그 뒤를 따라오지 못하고 있었다.서하도 비슷한 상태였다. 눈을 크게 뜬 채 잠깐 멈춰 서 있다가, 아주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시선은 여전히 건우를 향해 있었지만, 아까처럼 곧게 고정되어 있지는 않았다. 방금 전까지는 서로를 붙잡고 있던 긴장이 한 번에 풀린 게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한 상태였다. 완전히 무너졌다고 말하기에는 어딘가가 남아 있었고, 그렇다고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고 보기도 어려운, 애매하지만 분명한 변화였다.여자는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개입하지 않는 태도는 그대로였지만, 시선의 깊이가 달라져 있었다. 처음 이 방으로 들어왔을 때의 관찰과는 달리, 지금은 결과를 본 뒤 다음 선택을 기다리는 눈이었다. 말로 유도하지 않고, 대신 이 공간이 어떤 결정을 끌어내는지 지켜보는 방식.건우는 그 시선을 느끼면서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그는 한 번 더 숨을 고르고, 손을 천천히 내려다봤다. 방금 전까지 닿아 있던 자리가 아직도 미세하게 남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감정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오히려 더 또렷해져 있었다. 다만 그 감정을 어떻게 써야 할지, 그 다음 선택을 어디로 가져가야 할지가 문제였다.“같이 무너졌네.”서하가 먼저 입을 열었다.목소리는 낮았지만, 아까처럼 흔들리지는 않았다. 이미 한 번 겪은 뒤라서, 그 상태를 받아들이는 쪽으로 한 발 이동한 느낌이었다.건우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시선을 들어 서하를 봤다.“무너진 게 아니라.”그는 말을 길게 끊지 않고 이어갔다.“겹친 거지.”서하는 그 말을 듣고 잠깐
회의실 창밖으로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잔잔했지만, 오래 갈 비였다.유림은 앉지 않았다. 테이블 끝에 서서, 파일을 내려다보는 건우를 바라보고 있었다.“대표님이 어제 저녁, 제게 전화를 하셨습니다.”그녀의 말투는 단정했다.감정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건우는 파일을 덮지 않았다.통화 기록의 숫자들이 시야에 남아 있었다.저녁 7시 12분.“오늘로 끝내자고 하셨다고요.”그가 되물었다.“네.”“무엇을.”유림은 잠시 침묵했다.답을 고르는 사람의 침묵이 아니라,상대를 재는 사람의 침묵이었다.“업무 관계를요.”
아침은 비가 그친 뒤에야 찾아왔다.창문을 두드리던 소리가 사라지자,집 안은 이상할 만큼 고요해졌다.어젯밤의 대화가 정말 있었던 일인지,건우는 한동안 확신하지 못했다.부엌에서 물 끓는 소리가 났다.그는 잠시 멈춰 서서 그 소리를 들었다.익숙한 소리였다.누군가 이 집에서 아침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낯설었다.하나는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로 서 있었다.머리는 단정하게 묶여 있었고, 어제 젖었던 코트는 의자에 걸려 있었다.“일어났어?”목소리가 차분했다.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어젯밤의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시신을 실은 차량이 골목을 빠져나갈 때까지,건우는 비를 맞은 채 그대로 서 있었다.경광등 불빛이 젖은 도로 위에 번졌다가 사라졌다.형은 그렇게 떠났다.설명도, 변명도 없이.경찰은 현장을 통제했고, 필요한 절차를 간단히 설명했다.참고인 조사 일정이 잡힐 거라고 했다.말은 또렷했지만, 건우의 귀에는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남은 건 한 문장뿐이었다.저녁 8시 전후.그 시간에 그는 집에 있었다.침대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하나는 경찰의 안내를 받아 현관을 나왔다.비는 여전히 세게 내리고 있었고,그녀의 코
그날, 건우는 침대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아픈 건 아니었다. 몸은 멀쩡했다.다만, 일어나는 순간 모든 게 진짜가 될 것 같아서.부모님이 돌아가셨다.그 문장을 입 밖으로 내는 순간, 정말로 세상이 굳어버릴 것만 같았다.자신은 살아 있고, 더이상 그의 부모는 없다.-그게 말이 되나.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1년.건우는 병실 침대 위에서 1년을 보냈다.눈을 떴을 때는 이미 모든 게 끝나 있었다. 장례도, 화장도.향 냄새를 맡을 겨를도 없었고, 마지막 인사를 할 기회도 없었다. 울지도 못했다.그건 애초에 건우의 몫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