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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ผู้เขียน: 최은솔
융복전에서 벌어진 일은 이내 조정 안팎으로 퍼져나갔다. 진남군 관저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대비와 전하는 나정이 예언했다는 사실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그런 특수한 능력은 곧 이상한 소문을 만들어내기 십상이다. 예언이라는 것은 공이 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원한의 불씨가 될 수도 있었다.

대비는 조용히 나정을 궁궐로 불렀다. 백씨 마님은 그녀를 따라 궁궐에 들어가고 싶어 했으나 단장을 마치고 문기당에 도착했을 때 나정은 이미 말을 타고 길을 나선 뒤였다. 그 사실을 알고 난 백씨 마님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한참 동안 침묵하던 그녀는 곁에 서 있던 공 아주머니를 향해 쓴웃음을 짓더니 고개를 살짝 저으며 돌아섰다. 그녀의 눈빛에는 더 말할 것도 없다는 듯한 실망이 서려 있었다. 궁궐에 도착한 나정에게 대비는 붉은 칠을 입힌 궤짝을 가리켰다.

“이건 전하께서 너에게 내리신 상이다. 금엽 백 냥이 들어있어.”

나정은 정중히 절을 올리며 감사 인사를 올렸다.

“대비마마와 주상전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대비는 그녀를 일으키며 말을 건넸다.

“이번에 네가 예측한 일이 딱 맞더구나. 그 덕에 큰 화를 면했다.”

나정은 대비의 칭찬에 조심스레 고개를 숙였다.

“제 능력은 대단한 게 아닙니다. 그리고 저 같은 사람이 하늘의 기운을 함부로 엿보아서는 안 되지요. 앞으로 다시는 경솔히 입을 열지 않겠습니다.”

대비는 그 말에 흐뭇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스스로를 낮추고 말을 삼갈 줄 아는 아이였다. 세간에는 경국지색이라 칭하는 이가 넘쳐났으나 진짜 미인은 화장으로 치장된 것이 아니라 기품에 있었다. 소박한 옷차림에 살며시 웃는 얼굴만으로도 사람을 끌어당기는 그런 자태 말이다. 나정은 그 정도로 곱고 단정한 여인이었으며 옹성대군과 짝이 되어도 모자람이 없는 사람이었다. 대비는 이내 모두를 물리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정아,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나정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잠시 정적이 흐른 뒤 대비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전하에게 부탁해 너를 옹성대군과 혼례를 치르게 할 생각이다.”

말을 잇던 대비는 잠깐 망설였다. 옹성대군을 칭찬하려 했지만 그에게 덧붙일 말은 너무도 많았고 어떤 언어로도 설명이 부족했다. 나정은 그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무릎을 꿇었다.

“대비마마…”

대비는 손수 그녀를 일으켰다.

“절은 사양하마. 마음속에 거슬리는 게 있다면 솔직히 말해도 좋다.”

나정은 눈가가 붉어졌다.

“소인이 이런 인연을 만날 기회가 생긴 것은 하늘의 은혜이고 대비마마의 극진한 총애입니다. 어찌 감히 사양하겠습니까?”

그녀는 눈물을 삼키지 못하고 살며시 고개를 숙였다.

“이제야 저도 편히 잠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비는 그 말에 마음이 조금 뭉클해졌다.

“진남군 댁에서 너를 가혹하게 대했느냐?”

“아니옵니다, 마마. 다만 제가 남쪽에서 휴양을 하는 동안 그 누구도 저를 찾아와 준 적이 없었습니다. 저택으로 돌아오니 하인들조차 저를 무시하더군요. 늘 마음을 조이며 불안한 밤을 버텨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마마께서 계시니 더 이상 두려운 것이 없습니다.”

나정의 말은 과장되지 않았고 애절했으며 무엇보다 솔직했다. 대비는 그녀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잠시 침묵하던 나정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마마, 그런데 옹성대군께서 이 혼사를 받아들이실까요?”

대비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감히 어명을 거역하진 못할 것이다.”

그러자 나정은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대군자가를 한번 뵐 수 있을까요? 혹 말로서 설득할 수 있을지 몰라 여쭙습니다.”

대비는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설득까지야 할 것 없지 않느냐? 아직 거절하겠다는 말도 한 적이 없다.”

“그래도 뵙고 싶습니다.”

나정은 다시 한번 정중히 말했다. 대비는 위내관을 불러 나정을 옹성관저로 인도하게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 아이가 뭐라 해도 옹성대군이 곧바로 고개를 끄덕일 인물은 아니니까 말이다. 하지만 나정은 단순히 영특한 아이가 아니었다. 담대하고 예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사람이 중심이 잘 잡혀 있는 것이 중전이 된 정 씨를 떠올리게 할 정도였다.

나정이 옹성관저에 들어설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위 내관 덕분이었다. 그의 동행이 아니었다면 그 거대한 대문 앞에서 발도 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옹성대군은 뒷마당에 있는 연병장에서 무예를 익히는 중이었다. 날은 추웠지만 그는 얇은 옷만 걸친 채 창을 휘두르고 있었다. 긴 창이 허공을 가르며 그리는 궤적은 거침없고 날카로웠으며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절도 있었다.

옆에는 그를 따르는 장수 몇 명이 서 있었고 멀찍이에는 커다란 흑견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었다. 그 개는 나정 일행을 향해 경계심을 보이다가 나정을 발견하고는 귀를 낮추고 꼬리를 흔들며 다가왔다. 그녀는 손을 뻗어 흑견의 아래턱을 쓰다듬고는 머리를 부드럽게 만져주었다. 그 모습을 본 장수들은 모두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대장군이 저렇게 순한 적이 있었나?”

“지난번에는 나를 물더니...”

“그런데 저 사람은 누구지?”

“위 내관이 직접 모시고 온 걸 보면 평범한 사람은 아닐 거야.”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옹성대군 소하겸은 손에 들고 있던 창을 천천히 내렸다.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햇살은 부드러웠고 분홍빛이 감도는 진한 자색 외투를 걸친 나정의 모습은 꽤나 눈에 띄었다. 옷 색은 다소 무겁고 격식에 비해 어울리지 않게 촌스러웠지만 그녀의 얼굴은 그 모든 것을 잊게 해주었다. 희고 고운 피부는 바람에 발그레 물들어 있었고 그녀의 따뜻한 미소는 한 마리 짐승조차 유순하게 만들어 버렸다.

옹성대군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불쾌감이 천천히 마음 안으로 번져갔다. 소하겸은 손가락을 입가에 가져가 짧게 휘파람을 불었다. 그 소리는 가볍지만 명확했고 흑견은 즉시 귀를 쫑긋거리며 반응했다. 그 개가 귀를 눕히고 주인의 곁으로 돌아가 얌전히 고개를 숙이자 소하겸은 그의 머리를 한 번 툭 쳤다.

“누굴 데리고 온 거냐?”

위 내관이 공손히 인사하며 대답했다.

“대군님, 대비마마의 뜻입니다. 나 아가씨께서 대군님께 직접 드릴 말씀이 있다 하여 모셔왔습니다.”

나정은 고개를 숙이며 나직이 말했다.

“소녀, 대군님께 아뢰고 싶은 말이 있어 왔습니다.”

소하겸은 흑견의 순종적인 태도에서부터 그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할 말 있으면 대비마마께 전하거라. 짐은 들을 생각이 없다.”

그러자 나정은 조용히, 그러나 또렷하게 말했다.

“소녀는 이번에도 공을 세웠습니다. 며칠 전 융복전의 일에 대해 미리 예견해 드린 바가 있습니다. 그 은혜로 대비마마께서 하교를 내리셨고 전하께서도 상을 내려주셨습니다.”

소하겸의 시선이 천천히 그녀를 향했다. 짧은 침묵 끝에 그는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차를 올리거라.”

그러고는 위 내관에게 말했다.

“사람을 데려왔으니 이제 돌아가 복명(复命)하거라.”

위 내관은 나정을 흘깃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정중히 말했다.

“위 내관, 먼 걸음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 말에 위 내관은 더는 머뭇거리지 않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옹성대군 앞에서 감히 고개를 들 수 없었기에 그는 조용히 몸을 돌려 발걸음을 옮겼다.

옹성대군은 내실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고 나정은 그 자리에서 고요히 기다렸다. 종소리도 들리지 않는 침묵 속에서 해가 한 뼘 기울 무렵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어깨에서부터 발끝까지 길게 흘러내리는 흑색 풍장을 걸치고 있었다. 천은 두텁고 품이 넉넉했으며 옷자락은 발등까지 드리웠다. 그의 높고 반듯한 키와 강직한 어깨 위에서 옷은 그 어떤 위엄보다 뚜렷하게 빛났다. 그는 조용히 자리에 앉아 나정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검은 눈동자는 고요했으나 마주한 이의 마음속 깊은 곳까지 꿰뚫어 보는 듯했다.

“무슨 일이지?”

그의 말투는 짧고 간결했다. 나정은 고개를 숙이며 차분히 입을 열었다.

“대군자가께 충심을 바치고자 합니다.”

소하겸은 천천히 찻잔을 들어 입을 적셨다. 그러나 나정의 말에 그의 움직임이 아주 짧게 머뭇거렸다. 그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내 앞에서는 돌려 말하지 말거라.”

나정은 곧장 자신의 뜻을 명백하게 밝혔다.

“소녀, 대군자가의 막료(幕僚)가 되고 싶습니다. 대단한 능력은 아니나 약간의 점괘를 읽을 줄 알고 얕은 술수에 능합니다. 대비마마께서는 전하께 청하여 소녀를 대군님의 비로 책봉하고자 하신다 하셨습니다.”

그 말에 소하겸은 잔을 들었다가 멈췄다. 그는 조소 섞인 눈빛으로 나정을 바라보며 물었다.

“너를?”

나정은 숨도 고르지 않고 말을 이었다.

“대군님께 이 혼사를 청합니다. 허나 단지 세 해만 바라겠습니다. 그 시간이 지나면 조용히 떠나겠습니다.”

소하겸의 눈매가 살짝 좁혀졌다. 나정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망설임 없이 말을 이었다.

“소녀가 오늘 아침 길을 나서며 대군님의 점괘를 보았습니다. 대군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짝을 만나시려면 세 해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대군님의 혼사를 두고 온 조정이 시끄럽습니다. 대비마마도, 전하도, 여러 신하들 또한 눈치를 살피며 전하의 뜻을 저울질하고 있습니다. 전하께서도 이제는 그런 말들이 지겨우실 겁니다. 그렇다면 이 혼인은 일시적 방패로 삼으심이 어떻겠습니까?”

그녀의 목소리는 단정하고 조용했다. 말이 길었지만 나직하고 느릿했기에 귀에 거슬리지 않았다.

“소녀는 미천한 집안의 여식이며 대군님 없이는 설 곳도 없습니다. 겉으로 대군자가의 비로 보일지 몰라도 실제로는 대군님의 막중한 짐을 덜어드릴 수 있는 막료로서 머물 것입니다. 세 해 후 대군님께서 진실된 인연을 만나게 된다면 그때 떠나겠습니다. 다만 그때는 제 이름을 버리고 새로운 신분을 내려주세요. 그리고 옹성대군 비의 병사라고 외부에 알리시고 저는 다른 이름으로 살아가겠습니다.”

말을 마친 그녀는 고개를 낮추었다.

“지금의 처지로는 아무것도 지킬 수 없습니다. 그리고 기댈 곳도 없고요. 그래서 강한 이름 아래 잠시 몸을 숨기고 싶습니다. 그러니 부디 거절하지 말아주세요.”

소하겸은 말없이 찻잔을 들더니 다시 조심스럽게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그의 손가락 끝이 찻잔의 가장자리를 천천히 쓸었다. 부드러운 동작이었지만 매 순간마다 나정의 가슴을 툭툭 건드리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긴장감으로 조용히 숨을 삼켰다. 성패는 오늘 이 자리에 달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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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씨 마님의 마차가 먼저 궁궐을 향해 출발했다. 그녀 곁에는 늘 그렇듯 그녀의 측근인 진 아주머니가 동행했다. 진 아주머니는 일곱 살 때부터 백씨 마님 곁을 지켰고 그녀가 시집올 때는 지참 몸종으로 함께 따라왔으며 이후 하급 사내종과 짝을 이뤄 정식 내실 아주머니로 올라선 인물이었다.그녀는 어린 시절 채찍을 맞으며 컸고 몸이 약해 아이를 가지기 어려웠으며 지아비는 병으로 쓰러져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그녀에게 남겨진 건 오직 백씨 마님뿐이었기에 그녀의 왼팔이 되어 모든 일을 톡톡히 해냈고 필요할 때는 칼도 들이밀었다. 그녀는 세상의 누구보다 백씨 마님의 속내를 잘 아는 사람이었으며 그녀의 비밀을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보경, 내가 정이를 너무 가혹하게 대한 건 아니겠지?”백씨 마님은 속으로 파문이 일 듯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무리 미워도 그 아이는 자신의 딸인데 얼굴만 봐도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답답함이 치밀어 오르고 손길 닿는 것조차 불편했다. 그래도 약을 탄 죽을 그녀에게 주는 것은 너무했다는 생각에 내심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저 하루쯤 살갗이 부풀고 가렵게 하는 정도였지만 그 한 사발에도 양심이 흔들렸다. 그러자 진 아주머니는 그녀의 손을 잡으며 조용히 말했다.“마님, 다 정이 아가씨를 위해서가 아닙니까? 현이 아가씨에게도 길을 열어주시려는 깊은 뜻도 있으시잖아요.”그녀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그릇에 담긴 물도 너무 가득하면 넘치는 법입니다. 가진 게 많은 자는 덜어낼 줄도 알아야 덕이 쌓이는 것이지요. 마님의 결정은 두 아이 모두를 위한 길입니다.”백씨 마님은 천천히 숨을 토했다.“그래, 네 말이 맞아.”그러다 뭔가 허전했던지 말을 덧붙였다.“반대로 만약 현이가 저리 빛이 났다면 내가 적당히 눌러주고 정이에게 기회를 주었을 거야.”진 아주머니는 잔잔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현이 아가씨는 언제나 정이 아가씨의 그림자 뒤에 있었습니다. 그토록 총명하고 착하고 효심 깊은 아이인데 마님께서 조금 더 아껴주셔도

  • 화종왕 그늘 아래 자비는 없다   제25화

    백씨 마님의 심장은 마치 천 갈래로 찢긴 듯 저며왔다. 백지현이 무언가를 부러워하는 그 표정을 그녀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그녀를 만족게 하고 싶었다. 백지현이 가지지 못한 것을 나정이 가지게 되는 일만큼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다. 그 생각에 이르자 백씨 마님은 주저 없이 장롱을 열어 작은 옥병을 꺼내 들었다. 예전부터 감춰두었던 비밀스러운 약제가 하나 눈에 띄었다. 향조차 미미하여 일반인은 구분하기도 어려운 약제였다.“아침에 끓인 연와죽 한 그릇 준비해 오너라.”백씨 마님은 몸종에게 조용히 일렀다. 그녀가 사라지자 백씨 마님은 병 속의 가루를 아주 소량 덜어내 죽에 섞었다. 죽은 다시 찬합에 담겨 몸종 손에 들려졌고 백씨 마님은 천천히 문기당으로 향했다.“어서 죽을 마시거라. 대비마마의 전갈이 도착했다. 너를 데리고 함께 궁궐로 들어오라는 명이었어. 길이 막히기 전에 서둘러야 한다.”백씨 마님은 부드럽게 웃으며 죽 그릇을 나정에게 내밀었다. 나정은 조용히 그것을 바라보았다. 아주 옅은 향기. 그러나 그녀는 분명 기억하고 있었다. 전생에 이 죽을 마신 날 온몸에는 붉은 반점이 돋아났고 얼굴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부어 이틀을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그다음에도 또 한 번 이런 상황이 왔는데 그녀는 경계하면서도 설마 어머니가 자신에게 그러실까 하는 마지막 믿음으로 마셨지만 결과는 똑같았다.죽은 뒤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약은 백씨 마님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에게만 사용하는 독이었다. 쌍둥이 첩 중 하나에게는 진한 농도로 사용한 바람에 피부가 갈라지고 피를 흘리다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정에게 이 약을 쓴 것은 단지 그녀의 기회를 빼앗기 위한 용도였다. 그 사실을 떠올리자 나정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죽 그릇을 들어 올렸다.“어머니, 먼저 한 모금 드세요. 궁에서는 식사도 늦게 나오지 않습니까? 공복에 견디시기 어려우실 겁니다.”백씨 마님은 순간 움찔하며 고개를 홱 돌렸다. 그러다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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