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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ผู้เขียน: 최은솔
문안을 마친 뒤 나정은 서정원에 남아 조모 곁에서 잠두를 골랐고 그녀는 나정에게 이른 아침 벌어진 일을 다시금 들려달라 하였다. 그녀는 직접 나정의 입으로 듣고 싶어 물어본 것이었고 나정은 꾸밈없이 사실대로 말했다. 조모는 말없이 나정의 말에 귀를 기울이다 반쯤 눈을 내리감은 채 말씀하셨다.

“굳이 그 아이와 맞서 다툴 필요는 없다. 나신은 언젠가 가문을 이어 작위를 받게 될 것이고 너는 결국 시집가게 될 몸이지 않느냐? 딸자식은 친정이 든든해야 의지할 곳이 있는 법이란다.”

그 말은 나름의 애정이 담긴 충고였지만 나정의 마음 어딘가를 서늘하게 만들었다. 나가가 그녀에게 줄 수 있는 선의란 늘 이처럼 얇고 희미했다. 그럼에도 나정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차라리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할머니 말씀 새겨들을게요. 감사합니다.”

조모는 더 이상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이튿날, 나신이 병을 앓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찬바람에 몸을 식혔던 터라 몸살에 고열까지 났다고 했다. 하지만 이십 대의 건장한 남성이었던 터라 하룻밤 열을 앓고 나니 곧 회복되었다. 하지만 나정은 그렇지 않았다. 몸이 약한 그녀는 고열로 인해 죽을 고비까지 넘겼다.

문기당 사람들은 며칠 동안 불안에 떨어야 했다. 나신이 다시 회복한 지금, 혹여 나정에게 복수라도 하지 않을까 싶어 모두가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납월 이십일. 예상보다 이른 시일에 돌궐 사신이 입조하였다. 전하는 융복전에서 성대한 연회를 베풀고 음악과 춤을 준비하게 하였다. 그보다 앞서, 대비는 전하의 침전으로 찾아가 조용히 몇 마디 말을 전했다.

“이번 사절 접견 말이다. 신중히 대비해야 한다. 융복전은 불기운이 도는 곳이니 물과 모래를 안쪽에 비치하도록 하거라. 바로 불을 끌 수 있게 말이다.”

대비의 목소리는 무겁게 내려앉았으나 전하는 그저 웃음을 지어 보였다.

“걱정이 지나치십니다. 돌궐은 일곱 째 아우가 쳐들어간 이후 제대로 된 전력이 없습니다. 그리고 감히 자객을 보내올 수도 없을거고요.”

대비는 아무 대답 없이 그저 어렴풋한 기억 하나를 떠올렸다. 며칠 전 나정이 조심스레 전했던 말이었다.

“납월 이십일, 융복전에 화재가 날 수 있습니다. 혹 맞아떨어진다면 부디 그 공을 기억해 주십시오.”

융복전은 특별한 날에만 쓰는 연회전이었다. 정월, 동지, 사신 입조와 같은 중요한 날에만 불을 밝히는 곳이기도 하다. 처음에 대비도 그녀의 말에 긴가민가 했었다. 최근에 그 전각을 사용할 일은 없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며칠도 지나지 않아 돌궐 사신이 들어온다는 전갈이 떨어졌고 갑작스럽게 융복전에 불을 밝혀야 할 날이 다가오자 대비는 속으로 반신반의했다.

“정말 정이의 말이 맞는 것일까?”

대비가 곁에 있던 위 내관에게 묻자 그는 조용히 대답했다.

“융복전에 불이 나면 전하께서 위험해 지십니다. 그러니 믿는 게 옳지요.”

결국 대비는 물러서지 않았다. 나정은 결코 허투루 입을 놀리는 아이가 아니었다. 그녀는 즉시 명을 내려 융복전에 물을 담은 두레박과 모래를 구비하게 했다. 그리고 전하에게 신신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는 귀찮은 기색을 보였지만 어머니의 말이라 대놓고 무시하지 않았다.

“그럼, 호위 병력을 두 배로 늘이겠습니다.”

그날 밤, 융복전은 성대하게 불을 밝혔다. 궁중악이 울려 퍼지고 무희들의 춤사위가 이어졌다. 그러나 그 틈을 노리고 무희 중 하나가 은밀히 칼을 꺼내 돌궐 이황자를 찌르려 했다. 그녀의 목표는 전하가 아니라 돌궐의 사신이었다. 다행히 사전에 배치된 병사들이 움직였고 자객은 곧바로 활에 맞아 쓰러졌다. 그러나 혼란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주무희가 돌연 불을 질렀고 횃불을 술상과 가구에 내던졌다. 불길이 번지려는 찰나, 안쪽에 준비된 물통과 소방용 장비들이 즉시 동원되었다. 덕분에 대형 화재로 번지는 참사는 면할 수 있었다. 그날 밤, 전하는 대비의 장수궁으로 찾아와 고개를 숙였다.

“이 무희들은 귀비가 오래 정성 들여 훈련시킨 자들이었습니다. 짐은 귀비를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었는데 말이죠. 만약 오늘 이황자가 죽었다면 돌궐과의 화의는 파기되고 국경은 다시 전쟁의 불씨가 되었겠지요.”

전쟁을 원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옹성대군 소하겸은 열세 살에 변방에 나가 일곱 해 만에 돌궐을 서쪽 산맥으로 밀어냈다. 그로 인해 돌궐은 패배를 인정하고 조공과 연간 세폐를 약속했으며 이황자는 그 가운데서도 가장 강력한 평화주의자였다. 그런 그가 죽음을 맞이했다면 돌궐은 가만있지 않았을 것이다. 조선과의 신의는 깨졌을 테고 몇 년 안에 국경은 또다시 전쟁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대비는 조용히 떨리는 손을 움켜쥐었다.

“팽 씨... 끝내 그 야심을 거두지 못했구나.”

귀비 팽 씨는 전조와 얽혀 있었다. 대비는 오래도록 그녀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지만 전하가 특별히 아끼고 총애해 왔기에 말릴 수도 없었다. 자식을 이길 부모가 어디 있으랴. 어머니가 반대할수록 아들은 더욱 그 여인에게 매달렸고 대비는 더는 간섭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팽 씨는 결국 제 손으로 자기 무덤을 판 셈이었다. 전하는 자신을 배신한 그 여인에게 이미 독주를 내렸다.

“어머니, 이번에는 정말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전하는 일어나 대비에게 정중히 절을 올렸다.

“그 은공, 자식 된 도리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대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앉히고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이번 공은 어미의 것이 아니다. 정이의 것이지.”

“정이라면...?”

“삼 년 전, 이 어미 대신 칼을 막아준 아이 말이다. 나 장군의 따님, 그러니까 지금은 진남군의 아가씨겠지.”

전하는 머릿속에서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즉위 후 다섯 해 동안 그는 단 세 명에게만 작위를 내린 바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진남군이었다. 하지만 진남군은 입지도 좁고 무공도 미미했기에 조정에서 그다지 존재감이 있는 집안은 아니었다.

“그 아이가 예지를 가졌단 말입니까?”

전하가 의아한 듯 물었다.

“정이는 약간의 술법을 익혔을 뿐이다. 행동도 매우 조심스럽고 말도 함부로 내뱉지 않는 아이지.”

“짐이 그 낭자에게 상을 주어야겠습니다.”

대비는 잠시 생각하더니 조용히 제안했다.

“혼처를 정해주는 건 어떠느냐?”

전하는 다급히 고개를 들었다.

“혹 생각해 놓은 사람이 있으십니까?”

“일곱 째 왕자 말이다.”

그 순간, 전하의 눈빛이 약간 흔들렸다. 일곱 째 왕자라면 바로 소하겸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는 문무에 뛰어나 예전부터 상왕이 애지중지하던 형제였다. 어릴 적부터 공부도 무술도 그보다 한 수 위였던 이복동생의 이름이 거론되자 그의 마음속에도 복잡한 감정이 솟구쳐 올랐다.

생전에 상왕은 소하겸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아꼈고 조정에서도 그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이들이 많았다. 그 불안을 감지한 대비는 상왕과 논의 끝에 하겸을 멀리 변방으로 내보냈다. 그리고 그가 떠다는 마지막 길을 앞두고 그 아이에게 옹성대군이라는 작위를 내렸다.

꼬박 일곱 해나 걸렸다.

그 일곱 해 동안 옹성대군은 단 세 차례만 조정에 복귀하여 직무 보고를 한 뒤 다시 변방으로 돌아갔다. 그가 이끈 전투로 돌궐은 병력과 전세 모두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고 대비는 그제야 조정이 안정되었다 여겨 그를 다시 불러들였다.

하지만 그는 차갑고 말수가 적은 성격이었다. 대비와 전하라 할지라도 그와 깊은 정을 나눈 사이는 아니었다. 전하와는 형제였지만 서로를 조심스레 바라보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지내왔었다.

그의 마음속에 원망이 자라난 것은 아닐까? 누구보다 곱게 자란 왕실의 자식이었는데 전장에서 혹독하게 일곱 해를 버티게 했으니 속으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전하는 그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었고 대비 또한 그러했다. 그래서 전하는 늘 이렇게 생각해왔다. 대비라면 분명 옹성대군을 위해 최고의 배필을 골라줄 거라고 말이다. 가문과 인품, 용모와 교양,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명문가 아가씨들 중에서 말이다. 한양에는 여덟 가문의 문벌 귀족이 있었고 그중 으뜸은 단연 최씨 가문이었다. 그들 가문의 규수만 해도 수십이라 누굴 택하든 손색이 없었다.

“어머니, 나가의 아가씨가 과연 일곱 째 왕자와 인연이 될 수 있을까요?”

전하는 조심스럽게 떠보듯 물었다. 그러자 대비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인품도 단정하고 용모 또한 빼어나다. 다만 가문이 조금 약할 뿐. 허나 지금은 정식으로 진남군 댁의 적출이 되었으니 괜찮을 것이다.”

전하는 그 말을 곱씹어 보더니 천천히 긴장을 풀었다. 대비의 뜻은 분명했다. 일곱 째 왕자에게 너무 강한 가문을 붙여주지 않음으로써 그의 권세에 균형을 두고자 한 것이었다. 형제 사이의 거리감을 조율하면서도 전하에게 안심할 만한 여지를 남기는 것. 그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이었다.

전하는 그 마음을 이해했고 또 받아들였다. 일곱 번째 왕자가 한양으로 돌아온 후 반년 동안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조정의 시선을 끌었다. 언행은 자유로웠고 행동은 단도직입적이었다. 어지간한 관리들은 감히 말도 붙이지 못했고 어사대는 그를 상소하는 일이 끊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전하는 단 한 번도 그를 꾸짖은 적이 없었다. 그럴수록 대비의 마음은 불안하기만 했다. 그러기에 그의 아내가 될 사람만큼은 반드시 신중하게 골라야 했다. 가문은 지나치지 않되 인물은 단정할 것. 나정이 바로 그 조건에 들어맞는 사람이었다.

“왕자에게 의중은 물어보았습니다. 곧 하명하여 혼인을 명할 생각입니다.”

그러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다만, 어머니께서도 먼저 말씀을 나누시지요. 혹 제 명에 불복하는 일이 생기면 저도 난처하니 말입니다.”

그 말에 대비는 잔잔히 웃었다.

옹성대군의 칼은 멀리서 국경을 지켜주었지만 그의 그릇은 궁중 안에서 더 큰 물결을 일으킬 수도 있었다. 그러니 그 물길을 부드럽게 다스릴 방법이 필요했다. 그 시작이 바로 나정과의 인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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