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흑색 철릭은 날카로운 나뭇가지와 바위에 긁혀 너덜너덜하게 찢어져 있었고, 온몸은 흙탕물과 빗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이마에서는 베인 상처에서 흘러나온 붉은 피가 빗물과 섞여 뚝뚝 떨어져 내렸고, 붕대 감긴 손은 흙구덩이를 맨손으로 파헤친 듯 엉망진창이었다.산에서 구르기라도 한 듯 짐승 같은 꼴을 한 그는, 가파른 숨을 몰아쉬며 툇마루의 문지방 위로 무언가를 아주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그것은.
그의 품속 가장 깊은 곳, 비바람을 피해 소중하게 숨겨져 있던 아주 여리고 푸른 들꽃 한 송이였다.“……아가씨.”
이헌이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덜덜 떨리는 입술을 열었다.
“꽃을…… 가져왔습니다.”
그의 쉰 목소리가 빗소리를 뚫고 서연의 고막에 날아와 박혔다.
이헌은 그 담요를 양손으로 꽉 움켜쥐었다.그의 창백한 얼굴이 담요 속으로 깊게 파묻혔다.“흐으…… 끄윽…….”처절하게 억눌린 짐승의 오열이 툇마루 바닥을 적셨다.어깨가 사시나무처럼 잘게 경련했고, 핏물과 눈물이 엉겨 붙어 담요를 축축하게 적셔 들어갔다.자신은 현생에서 서연을 통제와 공포의 지옥에 가두었던 가해자였다.그녀가 당장 칼을 들고 자신의 숨통을 찔러도 할 말이 없는 끔찍한 죄인이었다.하지만 그녀는 어의를 불러 자신의 열병을 살려준 것도 모자라, 어젯밤 피를 흘리며 기절한 자신을 차갑게 내버려 두지 않고 기어이 이 따뜻한 온기마저 내어주었다.이것은 기적이었다.그가 백 번을 죽어 지옥 불에 떨어져도 결코 받을 자격이 없는, 눈이 멀 듯이 거룩하고 눈부신 구원이었다.“아가씨…….”이헌은 담요에 얼굴을 묻은 채, 소리 없이 눈물을 쏟아냈다.그녀의 이 작은 온기가 얼마나 소중하고 두려운 것인지.자신이 감히 이 온기를 탐내어 조금이라도 선을 넘는다면, 그녀가 다시 이 담요를 거두어들일지도 모른다는 극도의 공포가 그의 숨통을 옥죄었다.이헌은 다급하게 흐르는 눈물을 벅벅 닦아냈다.그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담요를 들어 올렸다.그리고는 자신이 묻혀놓은 핏자국과 진흙을 손끝으로 털어내며, 담요를 아주 반듯하고 정갈하게 개어놓기 시작했다.그녀가 깨어났을 때, 자신이 이 담요를 뒤집어쓰고 주제넘게 마루에 늘어져 있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녀의 심기를 어지럽힐 것이 분명했다.이헌은 깔끔하게 개어진 담요를 문지방 한쪽 구석에 조심스럽게 놓아두었다.그리고 자신은 평소처럼, 문지방에서 정확히 세 걸음 떨어
그녀는 조심스럽게 수건의 깨끗한 면을 돌려, 그의 뺨에 묻은 진흙을 살살 닦아내었다.그의 얼굴을 매만지는 서연의 손길에는, 그녀 자신조차 인지하지 못한 짙은 연민과 옥죄는 듯한 죄책감이 묻어나고 있었다.그때였다.“……아.”기절하여 숨만 헐떡이던 이헌의 굳은 미간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그는 여전히 눈을 뜨지 못한 상태였으나, 몽롱한 의식 속에서도 자신의 얼굴에 닿은 그 차갑고도 부드러운 온기를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듯했다.스르륵.마루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이헌의 커다란 손이, 아주 느리게 움직이기 시작했다.그리고는 자신을 닦아주던 서연의 하얀 소맷자락을, 마치 길 잃은 어린아이가 어미의 옷자락을 붙잡듯 꽉, 움켜쥐었다.“……!”서연의 어깨가 흠칫 튀어 올랐다.그녀는 황급히 손을 빼내려 했으나, 이헌의 악력은 기절한 와중에도 소름 끼칠 정도로 단단하게 그녀의 소매를 옭아매고 있었다.“……아가씨.”이헌의 갈라진 입술 사이로, 피 섞인 잠꼬대가 처절하게 새어 나왔다.그는 서연의 소맷자락을 꽉 쥔 채, 자신의 뺨을 그 하얀 옷감 위로 부비며 짐승처럼 흐느끼기 시작했다.“제발…….”서연은 숨을 멈춘 채, 그의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자신을 살려낸 뒤에도 법과 권력으로 숨통을 조여오던 이헌. 그 두렵고 집요한 사내의 목소리.그가 무의식 속에서 토해내는 말이, 과거 자신을 향한 조롱이나 후회일 것이라 지레짐작했다.하지만.“살아만…… 주십시오.”
달빛조차 먹구름에 가려진 칠흑 같은 한밤중.서연의 굳게 닫힌 방문 밖으로, 둔탁하고 무거운 발소리가 아주 느리게 다가오고 있었다.“…….”서연은 어둠 속에서 숨을 죽인 채 문밖의 기척에 귀를 기울였다.‘저잣거리의 제일가는 당과(糖菓)가 먹고 싶다.’그녀가 던진 또 다른 억지스러운 심부름이었다.통행금지가 엄격하게 시행되는 이 심야의 도성 한복판에서, 문을 닫은 상단과 객주를 뒤져 당과를 찾아오라는 악의적인 명령.하지만 이헌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 명령을 완수하고 돌아온 모양이었다.저벅, 비틀. 쿵.문지방 밖에서 무언가 무거운 것이 마룻바닥으로 처박히는 소리가 났다.서연의 속눈썹이 미세하게 파르르 떨렸다.평소 같았다면 바닥에 물건을 내려놓는 소리와 함께, "대령하였습니다"라는 그의 갈라진 목소리가 들려와야 했다.하지만 오늘 밤은 달랐다.무언가 바닥에 쓰러진 듯한 둔탁한 소리 이후, 문밖에서는 기분 나쁠 정도로 서늘한 적막만이 감돌고 있었다.“…….”서연은 무릎을 감싸고 있던 팔을 천천히 풀었다.그녀의 시선이 창호지 문을 향했다. 문풍지 너머로 희미하게 비치는 그림자가, 평소처럼 무릎을 꿇고 있는 형태가 아니라 바닥에 완전히 허물어져 있었다.‘설마…….’그리고, 적막을 찢고 들려오는 기괴한 소리.“하아…… 커윽…….”짐승의 숨통이 끊어지기 직전 토해내는 듯한, 끔찍하게 갈라지고 거친 숨소리였다.서연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끼며 자리에
활활 타오르던 비단과 보석들이 남긴 매캐한 재가 대군저 마당에 차갑게 가라앉았다.“…….”서연은 방 안에서 창호지 문에 비친 이헌의 그림자를 응시했다.자신이 던진 날 선 옥비녀를 맨손으로 쓸어 담고, 수십만 냥의 재물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린 사내.그는 여전히 처소 문지방 밖에서, 죄인처럼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있었다.그 맹목적인 순종은 서연의 내면에 짙은 패배감과 동요를 불러일으켰지만, 그녀의 이성은 아직 그 기괴한 헌신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있었다.‘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겠다.’서연의 눈동자에 독한 오기가 서렸다.‘네놈이 뒤집어쓴 그 맹목적인 순종의 가면이…… 언제, 어디서 한계를 맞이하고 찢겨나갈지.’그날 밤부터.서연의 악의적인 괴롭힘과 시험이 시작되었다.자정이 훌쩍 넘은 시각.“……목이 마르다.”굳게 닫힌 문틈 사이로, 서연의 서늘한 하명이 떨어졌다.“도성 밖, 삼각산 중턱에 있는 맑은 암반수를 마시고 싶구나. 다른 물은 입에 대지 않을 것이다.”왕실의 우물물도 아니고, 이 칠흑 같은 밤중에 호랑이가 출몰하는 삼각산 중턱의 암반수를 길어오라니.그것은 누가 들어도 억지에 불과한, 철저히 상대를 괴롭히기 위한 명령이었다.마당을 지키던 가솔들이 사색이 되어 입을 열려던 찰나였다.“기다리십시오, 아가씨.”문밖에서 들려온 이헌의 목소리에는, 단 한 치의 망설임도, 피곤한 기색도 없었다.“금방 대령하겠습니다.”그는 그 즉시 말에 올라타, 횃불
오직 자신이 그녀를 또다시 불쾌하게 만들었다는, 그 절망적인 사실 하나만이 이헌의 이성을 갉아먹고 있었다.“…….”마루 끝에 선 서연의 핏기 없는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그녀는 문틈으로 보았던 그의 맹목적인 노동조차 얄팍한 연기라 단정 짓고, 이 옥비녀를 박살 내며 가장 날 선 시험을 던진 참이었다.권력자는 자신의 부를 부정당할 때 가장 분노하는 법이니까. 그 오만한 가면이 벗겨지고 폭군의 본성이 드러나길 바랐다.하지만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은 그녀의 상식을 또다시 완벽하게 파괴하고 있었다.피를 흘리며 쓰레기를 주워 담는 저 남자의 엎드린 등은, 권력자의 그것이 아니라 신상(神像)을 훼손한 죄인의 처절한 참회와 같았다.“흑위대장.”바닥에 엎드린 이헌이, 피 섞인 목소리로 서늘하게 명을 내렸다.“당장…… 저 수레에 실린 모든 것을 끌어내라.”“자, 자가! 이 귀한 명주와 보석들을 어찌…… 궐의 국고로 다시 환수하시겠사옵니까?”“아니.”이헌이 고개를 들어, 마당을 가득 채운 화려한 수레 열 대를 차갑게 노려보았다.“아가씨께서 불쾌하다 하셨다. 저따위 천박한 것들이 아가씨의 시야에 단 1초라도 더 머무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이헌이 피투성이가 된 손을 들어 허공을 향해 휘저었다.“전부 불태워라.”“……!!”흑위대장의 입이 쩍 벌어졌다.“대, 대감! 불태우라니요! 저것은 수십만 명의 백성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엄청난 재물이옵
이헌은 서연의 싸늘한 기류를 채 눈치채지 못하고, 바보처럼 입꼬리를 끌어 올린 채 상자를 더 높이 치켜들었다.서연은 무표정한 얼굴로 마루 끝으로 걸어 나왔다.그녀의 하얀 손끝이 천천히 허공을 가르며, 이헌이 받쳐 든 자개 상자 안으로 향했다.스윽.서연의 손가락이 그 영롱하고 귀한 옥비녀를 가볍게 집어 들었다.“……아.”이헌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오려던 찰나였다.서연은 옥비녀를 허공으로 높이 치켜들었다.그녀의 서늘한 시선이 이헌의 핏발 선 눈동자를 정확히 꿰뚫었다.그리고는.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 비녀를 마당의 딱딱한 돌바닥을 향해 온 힘을 다해 매정하게 내동댕이쳤다.쨍그라아앙-!!섬뜩한 파열음이 대군저의 안채를 찢을 듯이 울려 퍼졌다.“……!!”이헌의 어깨가 벼락을 맞은 듯 크게 튀어 올랐다.그의 텅 빈 동공이 미친 듯이 수축하며, 바닥으로 추락한 옥비녀를 향했다.조선에 단 하나뿐이라는, 수백 명의 노비를 사고도 남을 그 엄청난 가치의 백옥 비녀는.무참한 파열음과 함께 수십 개의 하얀 조각으로 산산조각이 나, 진흙탕과 섞인 돌바닥 위로 형편없이 흩어져 버렸다.“아, 아가씨……!”마당을 지키던 흑위대장과 가솔들의 입에서 기악에 가까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그들은 섭정이 바친 최고의 선물을 박살 내버린 이 여인의 미친 짓에 사색이 되어, 당장이라도 피바람이 불어닥칠 것을 예감하며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하지만 정작 비녀를 박살 낸 서연은, 미동조차 하지 않고 서늘한 눈으로 이헌을 굽어보고 있었다.&ldqu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