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그녀는 궐 밖의 세상을 동경하며 명나라의 이국적인 풍물지와 야사를 밤새워 읽곤 했었다.
그 소박하고도 찬란했던 취향을, 이헌은 어떻게 알아냈는지 완벽하게 복원하여 그녀의 발밑에 바친 것이다.그것은 평범한 구애가 아니었다.
금서를 들여오기 위해 밀수 조직을 움직이고, 그 범죄를 덮기 위해 국가의 장부까지 조작하는 또 다른 형태의 미친 법리적 기행이었다.그녀가 읽고 싶어 하는 책 한 권을 쥐여주기 위해, 이헌은 기꺼이 조선의 율법을 기만하고 스스로 범죄자가 되었다.“부디…… 한 번만 펼쳐보시옵소서.”
이헌의 애타는 헐떡임이 가림막을 넘어왔다.
하지만.
서연의 시선은 궤짝 안의 서책들에 잠시 머물렀다가, 이내 서늘하고도 차갑게 식어버렸다.읽고 싶었다. 활자를 눈에 담고 싶었다.
그러나 이 책을 펼치는“전하! 통촉하시옵소서!”편전의 대리석 바닥이 대신들의 이마 찧는 소리로 요란하게 울렸다.사헌부 대사헌이 피대가 선 목을 빼고 절규했다.“진안대군이 제 사가의 담장을 도성의 성곽만큼 높이고, 무뢰배와 용병들을 수백 명이나 사들여 흑위대라는 사병을 조직하였사옵니다! 이는 명백히 훗날 반정(反正)을 도모하려는 역모의 불씨가 아니옵니까!”“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일개 왕실 종친이 국왕의 정규군인 금군에 필적하는 무력을 독점하는 것은, 조선의 근간을 뒤흔드는 반역이옵니다! 당장 대군의 사병을 혁파하고 죄를 물으시옵소서!”대신들의 탄핵 상소가 눈보라처럼 쏟아졌다.얼마 전 금군을 보냈다가 이헌의 적법 절차 논리에 막혀 체면을 구겼던 이도 역시, 이번에는 묵과할 수 없다는 듯 서늘한 눈으로 이헌을 내려다보았다.“진안. 대신들의 탄핵을 들었느냐.”이도의 목소리에 서릿발이 맺혔다.“네놈이 도대체 무슨 꿍꿍이로 그토록 거대한 사병을 양성하는지, 내 납득할 만한 변명을 듣지 못한다면 오늘 네놈의 목을 치고 대군저를 불태워버릴 것이다.”모든 시선이 편전 한가운데 서 있는 이헌에게 쏠렸다.그러나 이헌의 표정은 한가로운 정원이라도 거니는 사람처럼 평온하기 짝이 없었다.그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말려 올라갔다.“전하. 소신이 사병을 늘린 것이 어찌 반역이란 말씀이옵니까. 이는 오로지 조선의 안위와 전하를 향한 불타는 애국심에서 비롯된 충정(忠情)이옵니다.”그 뻔뻔하고 작위적인 대답에 대사헌이 기가 차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대군! 어디서 그런 요망한 혀를 놀리시오! 제 사가에 틀어박혀 무뢰배들을 긁어모은 것이 어찌 애국심이란
그녀는 궐 밖의 세상을 동경하며 명나라의 이국적인 풍물지와 야사를 밤새워 읽곤 했었다.그 소박하고도 찬란했던 취향을, 이헌은 어떻게 알아냈는지 완벽하게 복원하여 그녀의 발밑에 바친 것이다.그것은 평범한 구애가 아니었다.금서를 들여오기 위해 밀수 조직을 움직이고, 그 범죄를 덮기 위해 국가의 장부까지 조작하는 또 다른 형태의 미친 법리적 기행이었다.그녀가 읽고 싶어 하는 책 한 권을 쥐여주기 위해, 이헌은 기꺼이 조선의 율법을 기만하고 스스로 범죄자가 되었다.“부디…… 한 번만 펼쳐보시옵소서.”이헌의 애타는 헐떡임이 가림막을 넘어왔다.하지만.서연의 시선은 궤짝 안의 서책들에 잠시 머물렀다가, 이내 서늘하고도 차갑게 식어버렸다.읽고 싶었다. 활자를 눈에 담고 싶었다.그러나 이 책을 펼치는 순간, 그녀는 이헌이 쳐놓은 그 지독한 맹종의 감옥 안에서 안락함을 누리는 인형이 되고 마는 것이다.나를 짓밟고 가둬둔 포식자가 주는 먹이를 받아먹으며, 그가 제공하는 완벽한 세상에 길들어가는 비참한 애완조(愛玩鳥).서연은 덜덜 떨리는 주먹을 꽉 쥐었다.그녀는 궤짝을 향해 단 한 발자국도 다가가지 않은 채, 다시 고개를 돌려 벽을 향해 웅크렸다.싸늘한 침묵. 완벽한 무시였다.“……아가씨?”가림막 너머의 이헌이 당황한 듯 몸을 움찔거렸다.“마음에 들지 않으시옵니까. 책의 종류가 잘못되었습니까. 아니면, 화구가 부족합니까. 말씀만 하시면 제가 명나라에 직접 사람을 보내서라도……!”“…….”서연은 두 귀를 틀어막고 눈을 질끈 감았다.
가림막 너머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붕대를 감은 손을 바닥에 숨긴 채, 이헌이 어김없이 무릎을 꿇고 납작 엎드렸다.“바깥이 몹시 소란스러웠지요. 송구하옵니다.”그의 목소리는 한없이 부드럽고 다정했다.그녀를 이 숨 막히는 지옥에 가둬버린 포식자의 것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만큼, 처절하게 칭찬을 구걸하는 짐승의 헐떡임.“이제 끝났사옵니다.”이헌이 엎드린 채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가림막 틈새로 보이는 그의 두 눈동자는 소름 끼치도록 맑고 황홀한 빛을 띠고 있었다.“담장을 사람 키의 두 배로 높이고, 삼백 명의 흑위대를 안채 주변으로 겹겹이 세워두었사옵니다. 개미 한 마리조차 제가 허락하지 않으면 이 툇마루에 접근할 수 없사옵니다.”이헌은 벅차오르는 숨을 삼키며 마루 바닥을 더듬었다.“전하의 군대든, 조정의 간신배들이든, 그 어떤 율법의 칼날이든…… 이제 절대로 아가씨의 고요함을 깨뜨리지 못할 것입니다. 제가 아가씨만의 완벽한 세상을 만들었사옵니다.”완벽한 세상.그 끔찍한 단어에 서연의 텅 빈 눈동자가 천천히 가림막 너머를 향했다.과거의 그녀였다면, 그 숨 막히는 통제에 경악하며 베개를 집어 던지고 악을 썼을 것이다.미쳤다고, 나를 당장 이 감옥에서 내보내 달라고 피눈물을 흘리며 발악했을 것이다.하지만 서연은 움직이지 않았다.그녀는 등 뒤의 차가운 벽에 머리를 기댄 채, 초점 잃은 눈으로 가림막에 비친 이헌의 그림자를 응시했다.“……완벽한.”서연의 창백한 입술 사이로 건조한 바람 같은 속삭임이 샜다.“예. 완벽하옵
금군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다음 날 아침.대군저의 공기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벼리고 벼린 칼날 같은 긴장감으로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성벽을 더 높여라. 기존의 담장 위로 석 자(尺)를 더 쌓아 올려, 밖에서는 안채의 지붕조차 넘겨다볼 수 없게 만들어라.”이헌의 서늘한 하명이 앞마당을 울렸다.수십 명의 석수장이와 인부들이 흙과 돌을 지게에 짊어지고 바삐 움직였다.기존에도 충분히 높았던 대군저의 담장이, 이제는 도성의 성곽을 방불케 할 만큼 기괴하고 거대하게 솟아오르기 시작했다.그 광경을 지켜보던 흑위대장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자가. 어젯밤 금군이 물러가긴 하였사오나, 이토록 노골적으로 담장을 높이고 무장 병력을 늘리신다면 조정에서 가만있지 않을 것이옵니다. 사병 육성은 명백한 역모의 징후로…….”“역모?”이헌이 서늘하게 코웃음을 쳤다.그의 오른손은 어젯밤 금군의 창날을 쥐어터진 상처 위로 하얀 붕대가 두껍게 감겨 있었다.“경국대전 병전(兵典)의 ‘대군저 호위법’ 조항을 읊어보아라. 종친의 사가에 위협이 가해질 시, 그 위협의 규모에 비례하여 호위 병력을 증강할 수 있다는 예외 조항이 명시되어 있지.”“하오나 그것은 도적 떼나 암살자를 막기 위한…….”“어젯밤 내 사가에 들이닥친 것은 국왕의 정규군인 금군 이백 명이었다.”이헌의 짙은 눈동자가 잔혹하게 번뜩였다.“영장 없는 불법 군사 도발을 막아내기 위해, 그에 필적하는 수백 명의 호위 병력을 고용하는 것은 율법이 보장하는 명백한 ‘정당방위(正當防衛)’
“……서연 아가씨.”목구멍을 긁고 나오는 목소리는 짐승의 헐떡임처럼 다정하고 애달프게 젖어 있었다.“안전하옵니다.”방 안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이헌은 피가 흐르는 오른손을 등 뒤로 황급히 숨기며, 문지방에 이마를 댄 채 다시 한번 처절하게 속삭였다.“군사들은 모두 물러갔사옵니다. 그 누구도 아가씨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하도록, 제가 완벽하게 막아내었사옵니다. 그러니 부디…… 이제 떨지 마시옵소서.”얼마나 지났을까.고요하던 안채의 문이 아주 미세한 소리를 내며 드르륵, 열렸다.문틈 사이로 창백하게 질린 서연의 얼굴이 드러났다.그녀의 텅 빈 눈동자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이헌의 등 뒤로 흘러내려 툇마루를 검붉게 적시고 있는 끔찍한 핏자국이었다.뼈가 드러날 정도로 찢겨나간 손바닥에서 아직도 선혈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하지만 이헌은 고개를 들어 서연을 마주한 순간,세상을 다 가진 듯 황홀하고도 다정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놀라게 해드려…… 송구하옵니다.”자신의 살이 찢어지고 피가 솟구치는데도.그는 오직 서연이 무사하다는 사실 하나에 벅차올라, 고통조차 잊은 채 미친 사람처럼 환하게 웃고 있었다.그 피투성이의 맹목적인 미소를 마주한 순간.서연의 등줄기를 타고, 뼛속까지 얼어붙게 만드는 지독한 소름이 쫙 뻗어 나갔다.‘이 남자는…….’서연의 파르르 떨리는 입술이 꾹 다물렸다.왕의 군대가 들이닥쳤을 때, 그녀는 이헌이 적당히 권력으로 타협하거나 자신을 볼모로 내어
“크윽……!”시퍼런 창날이 이헌의 손바닥을 깊게 베고 지나갔다.붉은 피가 허공으로 튀어 올라 안채의 창호지를 핏빛으로 적셨다.하지만 이헌은 창날을 쥔 손을 절대 놓지 않았다.오히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손으로 창자루를 거칠게 꺾어버리며, 군사들을 마당으로 집어 던졌다.“내가…… 내 숨이 끊어지기 전까지는, 단 한 놈도 이 방에 발을 들이지 못한다.”피투성이가 된 이헌이 짐승처럼 헐떡이며 으르렁거렸다.방 안의 깊숙한 구석.이불을 꽉 쥔 채 그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서연의 눈동자에서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그는 정말로 자신을 지키려 하고 있었다.왕의 군대가 들이닥치고 시퍼런 칼날이 번뜩이는데도, 자신의 맨몸을 찢어가며 문 앞을 가로막고 섰다.그 맹렬한 헌신과 방패막이.보통의 여인이었다면 그 모습에 감동하여 마음을 열고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하지만.‘아아…….’서연은 귀를 틀어막고 소리 없는 절규를 토해냈다.이헌이 손을 다치고 피를 흘릴수록, 그녀의 숨통을 조이는 공포는 더욱 무겁고 끔찍하게 변해갔다.그가 나를 위해 피를 흘리고, 나를 위해 왕과 전쟁을 벌인다.이 말은 곧, 저 남자가 아니면 나는 이 세상에서 단 1초도 살아남을 수 없다는 잔혹한 생존의 증명이기도 했다.저 피비린내 나는 폭군이 내 유일한 방패이자,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절대적인 감옥이 되어버린 것이다.자신은 이제 평생, 저 미치광이가 흘리는 피와 살육의 그늘 아래서 덜덜 떨며 맹종을 받아주어야만 살 수 있는 기형적인 볼모가 되었다.일촉즉발의 대치 상황.피를 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