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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비틀린 소유욕(1)

Author: 유리구슬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7-21 08:00:28

먼지가 풀풀 날리는 공사장 한구석.

지안은 제 몸집만 한 시멘트 포대를 짊어지고 비틀거렸다.

땀으로 범벅이 된 머리카락이 눈을 찔렀지만, 목장갑을 낀 손은 쉼 없이 움직였다.

낡은 작업복 위로 허연 시멘트 가루가 엉겨 붙어 엉망이었다.

현장소장의 고함이 날아들었다.

"어이, 새댁! 똑바로 안 날라? 그렇게 빌빌거릴 거면 당장 꺼져!"

"죄송합니다. 금방 옮기겠습니다."

지안은 갈라진 목소리로 대답하며 이를 악물었다.

사채업자에게 쫓겨 당장 방을 비워줘야 할 처지였다.

식당 일도, 편의점 아르바이트도 모두 이틀을 넘기지 못하고 쫓겨났다.

마치 누군가 자신의 뒤를 밟으며 밥줄을 끊어놓는 것 같았다.

그래서 찾은 곳이 신분 확인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일용직 공사판이었다.

그때, 거친 엔진음을 내며 새카만 최고급 세단 한 대가 공사장 입구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흙먼지가 날리는 공사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광경에 인부들의 시선이 쏠렸다.

운전석에서 내린 비서가 뒷좌석의 문을 열었다.

차 안에서 내린 남자는 완벽하게 재단된 슈트 차림의 태경이었다.

태경의 시선은 곧바로 흙바닥에 주저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는 지안에게 꽂혔다.

지안은 숨을 헐떡이며 고개를 들었다.

역광을 받으며 서 있는 태경의 서늘한 얼굴을 마주한 순간, 지안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시멘트 포대를 쥔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당신이 여긴 어떻게."

지안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태경은 구두 끝에 묻는 흙먼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지안의 앞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그의 짙은 시선이 지안의 흙투성이 얼굴과 낡은 작업복을 차갑게 훑어 내렸다.

"꼴이 볼만하군. 여기서 며칠이나 버틸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당장 내 눈앞에서 꺼져."

지안이 이를 악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태경은 지안의 서늘한 적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송지안 씨. 당신 앞으로 남은 사채 빚이 원금만 5억입니다. 이런 막노동으로 평생을 굴러도 이자조차 못 갚습니다."

"그래서? 네놈이 짠 판에서 내가 죽어 나가길 바라는 거라면 헛꿈 꾸지 마. 난 안 죽어."

"아니. 난 당신이 살길 원합니다."

태경의 목소리가 한층 낮아졌다.

그는 품에서 서류 봉투 하나를 꺼내 지안의 발밑에 던졌다.

봉투 안에서 흘러나온 것은 지안의 채무 인수 계약서였다.

"당신의 모든 빚, 내가 탕감해주겠습니다. 아버지가 남긴 병원비 체납액도 모두 내가 처리하지요."

"……뭘 원하는데."

"내 곁에 두려 합니다."

태경의 눈동자가 지안을 옭아매듯 집요하게 얽혀 들었다.

"내 정부(情婦)가 되십시오. 그럼 이 지옥에서 건져주겠습니다."

정부.

그 모욕적인 단어가 허공에 떨어지는 순간, 지안의 숨이 멎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분노로 붉게 타올랐다.

태경은 지안이 결국 현실에 굴복하고 제 손을 잡을 것이라 확신했다.

자신이 그녀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었으니, 동아줄을 내리는 것 또한 자신이어야 했다.

그녀가 자신의 통제 아래서만 숨 쉬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그가 원하는 완벽한 정복이었다.

하지만 지안의 입술에서 새어 나온 것은 처절한 비웃음이었다.

"하, 하하……."

지안은 바지 주머니를 뒤져 구겨진 지폐 몇 장을 꺼냈다.

오늘 새벽부터 뼈 빠지게 일하고 가불받은 피 같은 돈이었다.

그녀는 그 지폐들을 태경의 얼굴을 향해 사정없이 집어 던졌다.

"이거나 먹고 꺼져. 네놈의 그 더러운 돈 따위, 내 몸을 팔아서라도 안 받아."

꼬깃꼬깃한 지폐들이 태경의 슈트 위로 흩어지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태경의 턱관절이 굳어졌다.

지안의 서늘하고도 꼿꼿한 눈빛이 똑바로 그를 찔렀다.

"네가 내 모든 걸 뺏어갔어도, 내 마지막 자존심까지 살 수는 없어. 차태경, 넌 그냥 내 인생을 망친 더러운 사기꾼일 뿐이야."

"……."

"두 번 다시 내 눈앞에 띄지 마. 구역질 나니까."

지안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흙먼지 날리는 공사장 안으로 사라졌다.

태경은 바닥에 떨어진 꼬깃꼬깃한 지폐를 내려다보았다.

심장 한가운데가 날카로운 유리에 긁힌 것처럼 날 선 통증이 일었다.

이 불쾌하고 낯선 감각.

그는 구두 굽으로 지폐를 짓밟으며 애써 분노로 그 통증을 덮어버렸다.

'자존심? 그래, 그 자존심이 언제까지 버텨주는지 보지.'

태경의 두 눈이 서늘한 살기로 번뜩였다.

그녀가 완전히 부서져 제 발밑에 무릎 꿇고 살려달라 빌 때까지, 그녀를 둘러싼 모든 숨통을 끊어버리겠다.

태경은 차가운 결의를 다지며 세단으로 돌아섰다.

---

그날 오후부터 태경의 압박은 더욱 교묘하고 노골적으로 변했다.

공사장 소장에게는 즉각적인 인력 감축 압박이 들어갔고, 지안은 그날 오후로 일자리를 잃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고시원 주인이 찾아와 당장 방을 비우라고 통보했다.

건물이 경매에 넘어갔고, 새로운 주인이 세입자들을 모두 쫓아낸다는 명분이었다.

며칠 뒤, 늦은 밤.

갈 곳을 잃은 지안은 낡은 캐리어 하나만 끌고 한강 둔치에 앉아 있었다.

찬 바람이 옷깃을 파고들었지만, 그녀는 추위조차 느끼지 못했다.

끝없는 절망.

어디를 가도 차태경의 그림자가 목을 조르고 있었다.

새로운 일자리를 구해도 이틀을 넘기지 못했고, 잠잘 곳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지안은 멍하니 검은 강물을 응시했다.

빛을 잃은 눈동자는 점차 삶에 대한 의지를 놓아가고 있었다.

수면 위로 아른거리는 불빛들이 마치 자신을 심연으로 부르는 것 같았다.

극심한 불면증과 우울증이 그녀의 이성을 갉아먹고 있었다.

이대로 강물에 뛰어들면, 이 모든 지옥이 끝날 것만 같았다.

같은 시각.

펜트하우스의 커다란 모니터 앞.

태경은 한강 둔치에 홀로 앉아 있는 지안의 모습을 CCTV 화면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자신이 파놓은 완벽한 덫에 갇혀 완전히 고립된 사냥감.

그는 승리감을 만끽하려 했지만, 화면 속 지안의 텅 빈 눈동자를 마주하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저 여자는 지금 살기 위해 버티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그녀의 눈빛에는 분노도, 원망도, 생존에 대한 의지도 남아있지 않았다.

'설마.'

태경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자신이 원한 것은 그녀가 자신에게 굴복하여 매달리는 것이었지, 죽어버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저 강물 속으로 사라진다면, 자신의 완벽한 통제도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

불안감이 미친 듯이 태경의 이성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책상을 내리치며 화면을 향해 중얼거렸다.

"송지안, 넌 내 허락 없이는 죽지도 못해."

태경은 곧바로 재킷을 챙겨 들고 펜트하우스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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