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이한은 학교 문 앞의 코너 구석진 곳에 있었다. 그래서 강이한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며칠간 강이한은 매일 이곳으로 와서 아이가 등교하고 하교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다가가지는 않고 그저 이곳에서 지켜볼 뿐이었다.하지만 오늘은 달랐다.평소에는 엔데스 신우나 이유영이 직접 데려다주었는데 오늘은 운전기사와 가정부가 왔다.이유영은 뭘 하고 있는 걸까?엔데스 신우는?여태까지 해온 것들이 모두 연기였던 걸까? 이제는 아이를 버리려는 걸까?아이가 이유영 곁에서 고통받을 모습을 떠올린 강이한은 속이 뒤집어졌다....이유영과 엔데스 신우는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그대로 멈춰버렸다. 문밖에서 종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도련님.”“무슨 일이죠?”엔데스 신우는 방해받았다는 생각에 표정이 확 어두워졌다. 그 목소리를 들은 종수는 엔데스 신우의 기분이 좋지 못하다는 걸 알아차리고 겁을 먹은 채 얘기했다.“강이한 씨가 찾아오셨습니다.”“...”“...”강이한이라...언제쯤이면 끝을 볼 수 있을까.강이한이 왔다는 것을 들은 이유영의 표정이 확 굳어버렸다. 이유영이 가장 꼴 보기 싫어하는 사람이 바로 강이한이니까 말이다.하지만 강이한은 죽지 않고 돌아와서 이유영의 세계에 먹칠을 하고 다녔다.아무리 생각해도 단역시를 떠나야 할 것 같다. 어차피 소월이가 아직 학교에 다니는 것도 아니니까 크게 영향은 없을 것이다.엔데스 신우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유영은 일단 그렇게 생각했다. 이유영에게 있어서 강이한은 전염병 같은 것이니까 말이다.“내가 가서 볼게.”결국 엔데스 신우는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강이한이 어떤 사람인지 알기 때문이었다. 오늘 만나주지 않는다면 강이한은 자리를 뜨지 않을 것이다.이유영의 표정은 아주 어두웠다.그런 이유영을 보면서 엔데스 신우가 가볍게 이유영의 이마에 키스했다.“저녁에 계속하자.”속이 복잡했던 이유영은 엔데스 신우의 말을 듣고 얼굴이 금세 붉어졌다.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을 지경이
머릿속으로는 도망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그리고 엔데스 신우도 그런 이유영의 이상함을 눈치챘다.허리에 두었던 손을 머리에 가져가며 엔데스 신우가 얘기했다.“나랑 같이 자자.”“...”이유영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엔데스 신우가 위험 가득한 목소리로 얘기했다.“내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어.”인내심?엔데스 신우는 박연준과 강이한이 이유영의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잘 안다. 그래서 이유영에게 그들을 잊을 시간을 충분히 주고 있었다.강이한이 단역시로 옮겨 온 다음, 이유영이 그런 강이한을 어떻게 대했는지 똑똑히 봐왔기에 그쪽은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았다.하지만 박연준은...“유영아.”“네?”“박연준한테... 진심이었어?”피곤에 찌든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밤새 업무를 처리하고 나니 피곤이 몰려온 것이다.박연준이라. 이유영의 세계에서 한동안 잊고 살던 이름이었다.박연준이 서주로 돌아간 이후, 파리에서 강이한이나 박연준이 나타나도 아무도 이유영과 엔데스 신우의 결혼을 막을 수 없었다.하지만 엔데스 신우가 갑자기 박연준에 대해 물으니 이유영은 속이 복잡해졌다.“새벽의 빛. 그런 느낌 알아요?”한 사람이 가장 어둡고 아무 희망도 품지 못하고 있을 때, 박연준은 그런 이유영에게 다가와 빛이 되어주었다.마치 신처럼 이유영의 세상에 등장해 모든 재난을 다 없애주었다.그 순간 이유영은 박연준이 자기를 위해 황산을 맞던 것이 떠올랐다. 아직도 박연준의 등에는 흉터가 남아있을 것이다.엔데스 신우는 이유영의 말을 듣고 대충 어떤 상황인지 이해했다.그리고 그 상황에서 강이한은 한지음을 위해 이유영을 다시 감옥에 처넣으려고 했으니...이유영은 박연준에게 마음이 흔들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결국은 끝나버렸다. “모든 걸 안 네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결국 남자는 한숨을 푹 내쉬며 이유영을 꼭 그러안았다.이유영은 아까까지만 해도 도망가고 싶었지만 지금은 편하게 엔데스 신우의 품에 안겼다. 그리고 더 깊은 곳으로 파고들면서 얘
전에 봐온 이미지는 틀린 것이었다.아니, 어쩌면 틀렸다고 할 수도 없었다. 엔데스 가문은 항상 바람 잘 날이 없었으니까. 그래서 저마다 사건을 대하는 태도가 달렸다.엔데스 현우의 곁에 있으면서 소은지가 희생될 것은 뻔했다. 그래서 소은지는 엔데스 현우를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엔데스 현우가 직접 나를 파리에 가둔 거야.”이유영이 얘기하기도 전에 소은지가 이어서 얘기했다.“...”틀린 말이 아니었다.엔데스 현우는 소은지의 모든 퇴로를 막아두었다. 그러면서 소은지에게 파리를 떠나라고 하다니.소은지가 파리를 떠나면 어떻게 되는지, 엔데스 현우는 잘 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유영아, 네 오빠를 이 일에 끌어들이지 않을게. 난 그저 보호가 필요해.”이유영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소은지가 이어서 얘기했다.소은지의 말에 이유영의 심장이 약간 아파졌다.소은지가 파리에서 어떤 상황인지 알기에 이유영은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응, 내가 오빠한테 잘 얘기할게.”소은지는 이제 할리 가문과 완전히 척을 지게 되었다.하지만 소은지에게는 아무런 배후도 없었다.이 시점에 아무 보호도 받지 못한다면 소은지에게는 죄다 위험투성이일 것이다.그리고 이유영은 소은지가 그렇게 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그 늪에 같이 빠지지 않으면서 소은지를 보호해 주는 건, 여진우에게 있어서 쉬운 일이다.“고마워, 유영아.”“괜찮아. 난 네가 무사하길 바라...”얼른 그 늪에서 벗어나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피신할 수 있기를.그렇게 남은 생을 편하게 보낼 수 있기를.“내가 그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모든 것이 끝날 거야.”소은지는 여전히 어머니를 만나고 싶었다.“...”끝난다니.그게 그렇게 쉽게 끝날 수 있는 것인가?“그래.”가능성이 높진 않았지만 소은지는 이미 그렇게 결심한 상태였다.이유영은 마음이 놓였다. 적어도 소은지가 이런 상황에서도 이성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본인에게 유리한 것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으니
할리 연은 계속해서 울고 있었다.엔데스 현우는 그런 할리 연의 곁을 저녁 내내 지키고 있었다....엔데스 저택.소은지는 밤새 잠에 들지 못했다. 그리고 그날 밤은 익숙한 엔진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남기가 이미 아침을 준비해 주었다. 1인분만 있는 걸 보아하니 어젯밤 엔데스 현우가 집으로 돌아오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소은지는 약간 이상함을 느꼈다.“어젯밤 안 들어온 거예요?”소은지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테이블에 앉으면서 한 번 더 물을 수밖에 없었다.엄숙한 표정의 남기는 소은지의 질문에 눈빛이 한층 더 날카로워졌다.“네.”그 담담한 대답에 소은지는 손에 쥔 나이프와 포크를 더 세게 꽉 쥐었다.‘어젯밤에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젯밤은 할리 가문에 있었던 걸까? 그 정도로 할리 가문이 필요한 걸까?’하긴 그럴 만도 했다. 그러니 소은지 쪽에서 뭐라도 하지 않으면 곧 죽을 것이다.그리고 소은지는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오전.소은지는 한 가지 사실을 더 알게 되었다. 전에 엔데스 현우가 사라지고 소은지가 엔데스 명우를 막고 있었을 때, 엔데스 현우는 할리 연과 함께 하고 있었다는 것을!“...”그 사실을 알았을 때, 소은지의 심정이 어땠을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그 시기가 소은지에게 어떤 시기인데.모든 사람들이 반산월의 지위에 도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소은지는 조심스레 그것들을 막아내고 있었다.심지어 엔데스 현우가 정말 불의의 사고에 빠졌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지금 돌이켜보면 그냥 웃기기만 했다.“유영아, 네 오빠의 도움이 필요해.”전화가 통한 순간, 소은지가 전화기 너머의 이유영에게 얘기했다.“...”그 말을 들은 이유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은지가 반격을 시작하려는 거야? 아니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을...’소은지의 말투는 이유영을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은지야, 너 괜찮은 거 맞아?”분명 무슨 일이 일어난 것만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소은지가 정
엔데스 현우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할리 연은 엔데스 현우를 보자마자 바로 엔데스 현우의 품에 안기며 얘기했다.“현우 씨, 어머님이...”그렇게 비참하고 무력해 보이는 할리 연의 모습은 처음이었다.할리 가문의 사람 거의 다 이 자리에 와 있었다.그러니 하선희가 할리 가문에서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다 나 때문이에요, 나 때문에...”할리 연이 엔데스 현우 품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얘기했다.엔데스 현우는 미간을 찌푸리고 뒤에 서 있는 남우준에게 얘기했다.“얘기해 놔.”병원 측에 얘기해 놓으라는 뜻이었다.사실 할리 가문에서도 이미 병원 측에 언질을 줘놓았다.남우준은 고개를 끄덕였다.할리 연은 옆에 있는 엔데스 현우가 동아줄처럼 느껴졌다. 할리 연의 아버지는 엔데스 현우를 보고 공손하게 인사를 올렸지만 차가운 기운을 감출 수가 없었다.“어머니는 오늘 그 일 때문에 화가 나서 쓰러진 거예요.”할리 연이 고통스러운 듯 얘기했다.하선희는 원래부터 몸이 좋지 않았다. 그러니 어떻게 그런 고통을 삭일 수 있겠는가.엔데스 현우는 할리 연의 어깨를 도닥여주더니 얘기했다.“걱정하지 마요. 별일 없을 거예요.”엔데스 현우는 위로를 잘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어색한 위로라도 건네야 하는 상황이었다.할리 연은 그 어색한 위로에도 감사함을 느꼈다.“아주머니.”할리 연의 아버지가 불렀다. 그러자 한 중년 여성이 다가왔다.“네.”“아가씨를 모시고 집으로 가세요.”“...”“...”할리 연은 그 말을 듣자마자 눈물을 뚝 그쳤다. 그리고 엔데스 현우의 품에서 고개를 들고 할리 민을 쳐다보았다.“아버지...”할리 연은 엔데스 현우와 더 오래 있고 싶어 했다.하지만 할리 연은 할리 민의 눈빛을 보는 순간 그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할리 가문에서 자라오면서, 할리 연은 한 번도 할리 민의 말을 거절할 수 없었다. 만약 할리 민의 명령을 거부한다면 얼마나 엄중한 일이 일어날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
“나가!”소은지는 반산월에서 했던 것처럼 똑같이 얘기했다. 하지만 주용선은 반산월에서 보여줬던 태도와는 다르게 공경하게 몸을 숙였다. 소은지는 그 모습에 더 진절머리가 나서 당장 주용선을 쫓아냈다.주용선은 고개를 끄덕인 후 밖으로 나갔다. 소은지는 그런 주용선에게 얘기했다.“여기서 버티고 싶으면 조용히 있어.”“사모님,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제 신분을 잘 알고 있답니다.”그 호칭은 소은지의 신분을 일깨워주는 것이기도 했다. 그래서 얼른 일을 다그치라는 뜻이기도 했다.소은지는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얼굴에는 음울한 표정이 드리워졌다....주용선이 내려간 후에야 소은지는 두 주먹을 풀었다. 그 순간 소은지의 눈동자에는 차가운 얼음들이 가득한 것만 같았다.머릿속에는 오늘 밤 달빛산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다른 사람들이 어떤 시선으로 소은지를 쳐다보았을까 생각하면서 말이다.엔데스 명우의 말대로, 소은지와 할리 가문의 전쟁은 오늘부터 시작이다.파리에서 소은지의 세상은 아주 작고 단순했다.하지만 지금은...핸드폰이 울렸다. 전화번호를 확인해 보니 엔데스 명우였다.소은지는 짜증스레 핸드폰을 던져버렸다. 하지만 벨 소리는 끊이질 않았다.결국 소은지가 전화를 받았다. “얘기해.”하루에도 몇 번이나 전화하는 엔데스 명우 때문에 소은지는 인내심이 다 닳았다.“한 달이야.”“뭐가 한 달...”한 달이라니.소은지는 멍해있다가 바로 엔데스 명우의 뜻을 이해했다.굳어버렸던 표정이 엔데스 명우의 말에 차가워졌다.엔데스 명우가 이어서 얘기했다.“마지막 모습이라도 보고 싶다면 한달 안에 그 자리에 오르는 게 좋을 거야.”소은지는 등에 소름이 돋는 것만 같았다.그 여자의 몸 상태가 이렇게 악화되다니?“한 달은 전혀...”“다른 사람이라면 어렵겠지만 너는 쉽게 해낼 거야. 난 널 믿어.”믿는다고 말하는 엔데스 명우의 목소리에는 비웃음이 가득 묻어났다.소은지는 화가 나서 온몸을 덜덜 떨었다.엔데스 명우가 언제 전화를 끊은 것인지는 기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