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그리고 이수연 역시 그가 해친 건 아니었다.강혁이 말했다.“하지만 그 재판이 길어지면서 결국 이런 결말이 나온 거죠.”그러나 재판이 길어진 이유가 결국 그의 개입 때문이었다.엔데스 명우는 눈을 감았고 그도 분명 예상치 못했다.이수연이 그렇게 연약할 줄 몰랐고 재판이 길어지면서 그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그들은 성장 과정에서 아마 이수연보다 훨씬 더 억압된 환경에서 살아왔지만 모두 살아남았다.그런데 왜 이수연만 그러는지 이해가 안 되었고 더 중요한 건 지금 소은지가 이수연의 죽음을 전부 그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그러니까 지금 소은지는 절대 나를 용서하지 않을 거라는 말이지?”오랜 침묵 끝에 엔데스 명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그의 어조에는 위태로운 기운이 감돌았고 강혁은 잠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확실히 소은지 성격상 용서할 리가 없다.다른 여성이었다면 엔데스 명우가 조금만 고개를 숙였더라도 일이 끝났을지 모른다.하지만 상대는 소은지다.수년간 그에게 굴복한 적 없는 여자가 단 몇 마디로 돌아올 리 없다.“잘 아시는군요.”강혁은 뒤의 말을 더 이상 잇지 못했다.엔데스 명우는 이미 그녀를 위해 파리 쪽 모든 것을 포기했는데도 소은지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다.정말 마음을 졸이게 하는 일이었다.말을 마치고 남자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한층 무겁게 느껴졌다.매서운 독수리 같은 눈동자가 빛났다.엔데스 명우가 냉소했다.“흥!”그렇다면 그녀의 세상 속에서 내가 존재하는 것이 이제는 중요하지 않은 거다.그 냉소를 들은 강혁은 더 숨을 죽였다.“조금 더 인내하세요. 어쨌든 일이 벌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시간을 좀 더 주세요.”인내심을 가지고 달래서 돌아오게 하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하지만 이전처럼 강제로 하려고 하면 소은지의 꼬인 성격상 절대 돌아오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이수연의 남편을 구속시키려는 거야?”그 순간 남자의 어조가 위험하게 변했다.강혁은 잠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엔데스 명우는 그렇게 냉담한 표정을 짓는 소은지를 바라보며 가슴이 꽉 막히고 숨이 막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분노가 그의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바로 다음 순간 소은지가 차갑게 말했다.“나랑 너 사이엔 평화 같은 건 없어. 그만 포기해.”평화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그들의 시작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었고 그런 방식으로 시작했으니 그 뒤에 따라온 모든 반작용과 고통은 그가 자초한 것이었다.“소은지!”남자의 어조가 한층 무거워졌다.그러자 소은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손에 들고 있던 냄비를 그대로 엔데스 명우 쪽으로 내던졌다.그가 재빨리 피하지 않았더라면 오늘 또 병원 신세를 졌을지도 모른다.하지만 재빨리 피했지만 끓는 국물이 일부 튀어 얼굴에 닿았고 그 뜨거운 감각에 얼굴빛이 잔뜩 어두워졌다.“너 나 죽이려고 작정했어?”남자가 음침한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봤다.소은지의 목소리가 차갑게 울렸다.“가능하다면 정말 내가 직접 널 끝내 버리고 싶어.”한 마디 한 마디 독기와 결의가 가득했고 그녀 특유의 오만함과 냉기가 그 속에 섞여 있었다.이런 소은지를 바라보며 엔데스 명우는 그제야 희망이 없다는 것이 어떤 건지 깨달았다.그는 한때 엔데스 가문에서 무엇이든 원하면 쉽게 얻을 수 있었다.어쩌면 쉽게 얻지 못하더라도 결국엔 반드시 손에 넣을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 소은지의 자존심 강한 성격이 그에게 절망이란 단어의 의미를 다시 가르쳐주고 있었다.“소은지!”그 세 글자는 거의 이를 악물고 내뱉은 것이었다.그는 이렇게까지 체면을 버리고 여자를 붙잡은 적이 없었다.그런데 소은지는 그 마음을 조금도 몰라주었고 오히려 독하게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꺼져.”뱉은 단 한 마디는 얼음처럼 차갑고 온기라곤 전혀 없었다.그녀의 그런 모습을 본 엔데스 명우는 당장이라도 그녀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을 만큼 분노했다.결국 분을 삭이지 못한 채 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다.그는 옆집으로 돌아갔다.강혁은 온몸이 엉망이 된 엔데스 명우를 보자 깜짝 놀
이전에 엔데스 명우가 병원에 갔을 때 소은지가 그렇게 냉담하던 모습을 보고 강혁은 한때 소은지가 무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하지만 이제야 알게 되었다.그녀는 엔데스 명우 한 사람에게만 무정한 것이 아니라 엔데스 가문의 모든 사람에게도 냉정했다.이 모든 건 예전에 파리에서 겪었던 그 모든 일들 때문이었다.그녀의 마음은 한 번도 용서한 적이 없었기에 냉담함도 어쩌면 당연했다.“...”말이 끝나자 엔데스 명우가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그 눈빛은 마치 칼날처럼 그를 꿰뚫을 듯했다.강혁은 말했다.“소은지 씨는 자존심이 아주 강한 여자예요.”파리의 그 여자들과는 정말 완전히 달랐다.강혁의 눈에는 소은지가 자존심 강한 여자일 뿐이었다.엔데스 명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예리한 묘사에 머리가 더 욱신거렸다.그도 소은지가 자존심 강한 여자라는 걸 몰랐던 건 아니다. 예전에 그녀가 곁에 있었을 때 아무리 강압적인 수단을 써도 결코 그녀를 굴복시킬 수 없었다.그녀 눈 속의 그 완강함을 떠올리며 지금은 그 안에 냉담함 말고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는 걸 느꼈다.강혁은 분명히 경고하고 있었다.만약 그가 소은지 옆집으로 이사 간다면 예전 같은 일은 절대 다시는 있어선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전처럼 소란을 피우면 소은지는 더더욱 혐오하고 점점 멀어질 뿐이었다.엔데스 명우는 강혁의 뜻을 알아듣고 손을 내저었다.“가서 준비해.”소은지가 매번 자신을 미치게 만들던 모습이 떠올라 그는 차라리 그녀를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였다.하지만 강혁의 말처럼 소은지의 성격은 너무 강했고 그녀에게 예전처럼 대했다간 더 멀어질 뿐이었다.다음 날 아침 소은지는 오픈형 주방에서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밖에는 또 눈이 내리기 시작했고 그녀는 겨울의 이러한 모습을 싫어했다.눈만 내리면 꼭 샤브샤브가 먹고 싶어졌다.그래서 아침부터 담백한 육수를 끓이고 있었는데 절반쯤 했을 때 문이 벌컥 열렸다.문 앞에 서 있는 남자를 본 순간 그녀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도와
그 순간 엔데스 현우는 소은지가 말한 용서가 어떤 의미인지 깨달았다.그건 진짜 용서가 아니었다.그녀는 그저 멀어지려는 것이고 그와의 관계에서 완전히 벗어나려는 것이다.“그 사람 때문이에요?”엔데스 현우가 갑자기 소은지를 바라보며 물었다.그 사람... 소은지의 모든 것을 무너뜨리고 상처를 입히고 결국 그녀와 자신을 엮이게 만든 바로 엔데스 명우다.소은지는 무표정하게 그를 바라봤다.그저 한 번의 시선만으로도 충분했다.엔데스 현우의 이미 무너진 마음이 그 순간 완전히 텅 비어버렸다.“미안해요.”소은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엔데스 현우는 모든 걸 이해했다.그녀의 거리두기는 누구 때문도 아니었고 오직 자기 자신을 위한 선택이었다.소은지는 고개를 숙이고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소은지 씨.”엔데스 현우가 이름을 부르며 말을 잇고 싶어 했지만 그 순간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소은지는 조용히 디저트를 먹으며 말했다.“맛있네요.”이제 앞으로 그와 함께할 여자는 참 복도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평생 만들어줄게요.”잠시 후, 엔데스 현우가 그렇게 말했다.소은지가 미소를 지었고 그 미소는 고요하면서도 모든 걸 꿰뚫어 보는 듯했다.마치 세상의 이치를 전부 이해한 사람처럼 그녀는 이미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었다.그녀의 침묵은 오히려 더 큰 불안을 불러왔다.“소은지 씨!”엔데스 현우가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그러나 소은지는 즉시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모든 건 시간한테 맡기죠.”엔데스 현우가 상황을 명확히 인지하지 못한다면 이제는 시간에 모든 걸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그녀의 이런 대답은 엔데스 현우가 바라던 대답이 아니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은지는 더 이상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새로운 사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이수연 남편의 사건은 결혼 문제에서 완전히 벗어난 첫 사건이었다.그녀는 이 일을 통해 다시 새로운 시작을 준비했다.한편, 엔데스 명우 쪽에서도 소은지 옆집에 엔데스 현우가 살고 있다는
이런 사람에게는 무시하는 것 외엔 달리 방법이 없는 것 같다.결국 강이한은 떠났다.불쌍하냐고 묻는다면 물론 불쌍하다.하지만 그런 불쌍함은 소은지로 하여금 단 한 톨의 동정심조차 느끼게 하지 못했다.엔데스 현우가 디저트를 들고 왔을 때 소은지는 그를 보며 역시 썩 내켜 하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그는 디저트를 그녀 앞에 내려놓으며 말했다.“이유영 씨한테 전화할 거예요?”분명히 엔데스 현우도 강이한이 온 이유를 알고 있었다.소은지는 눈썹을 살짝 올리며 말했다.“전화는 왜요?”“...”“나한테 몇 번이나 경고했는지 알아요? 강이한 이름 듣기조차 싫다고 말이에요.”소은지가 투덜거리며 말했다.소은지에게조차 그렇게 경고할 정도라면 이유영의 마음속에서 강이한이 얼마나 하찮은 존재가 되었는지 명확했다.하지만 그것도 괜찮았다.소은지는 그렇게 분명하게 선을 긋는 이유영이 좋았다.과거는 과거고 이미 지나간 사람과의 일이라면 그건 철저히 과거로 남아야 한다.절대로 지금의 삶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이제 당신이 너무 냉정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그의 목소리에는 알 수 없는 다정함이 스며 있었다.특히 이수연의 일 이후 이렇게 냉담한 소은지를 보게 될 줄은 엔데스 현우도 몰랐다.그는 소은지가 마음속에서 여러 일들을 이렇게 정확히 구분할 수 있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소은지가 되물었다.“냉정하다고요?”“...”“강이한 말이죠?”“잔인할 땐 얼마나 무서운 줄 알아요? 그때 강이한이 어떤 짓을 했는지 당신은 못 봤잖아요.”강이한이 잔인했을 때 그건 정말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정도였다.그땐 자신이 잔인하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이제 와서 그가 겪는 고통을 왜 누가 동정해 줘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당연히 소은지는 그에게 단 한 방울의 동정도 느끼지 않았다.분명히 말하지만 소은지는 마음이 약한 사람이었다.하지만 그건 맹목적인 착함이 아니었다.그녀는 누가 선대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그리고 어떤 사람은 죽는
혹시 그가 지금까지도 어떤 환상을 품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지난번 그녀가 생각했던 것처럼 강이한은 이때 이유영이 마음이 약해져서 비너스 타운으로 오기를 바라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그러면 엔데스 현우와도 틀어지고 그 틈을 타 둘 사이가 다시 이어져서 은별이와 이온유를 데리고 함께 살아간다는 그런 상상 말이다.“강이한, 이온유가 누군지 알아? 한지음의 딸이야. 알겠어?”그녀는 그들이 도대체 어떤 계산을 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그 계산 속에서는 이온유라는 아이의 마음속에서 이유영이 엄마 같은 존재로 자리 잡았다.하지만 그 아이가 어떤 눈빛으로 이유영을 바라보든 그 마음속에서 이유영이 어떤 어머니로 존재하든 그게 사랑을 갈구하든 미움을 품고 있던 그건 전부 한지음의 잘못이었다.그녀는 모든 걸 계산했지만 단 한 가지 이유영이 어떤 아이에게도 쉽게 마음을 주지 않을 거라는 건 계산하지 못했다.그 아이가 한지음의 아이가 아니었다면 아마 그녀는 조금은 마음이 약해졌을지도 모른다.“네가 정말 이 일로 무슨 속셈을 부리려는 거라면 그만두는 게 좋을 거야.”“...”“이유영은 누구에게나 마음이 약할 수 있어. 하지만 이 아이에게만은 절대 아니야.”소은지는 단호하게 미래를 잘라버렸다.그리고 솔직히 말해 그녀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강이한은 정말 이 순간 이유영이 마음이 약해지기를 바라고 있었다.그가 말한 모든 보장이란 것도 이유영이 이곳에 오기만 하면 곧장 온 파리 전역에 소문이 퍼질 것이다.현 남편이 있는데 전 남편을 만나러 갔다는 것은 다소 충격적인 뉴스였다.이유영은 그렇게 완전히 무너질 것이다.그런데도 그가 그녀와 함께하고 싶다고 한다.“잊지 마. 너희 둘 사이에는 엔데스 현우 씨뿐만 아니라 박연준 씨도 있잖아.”강이한은 말문이 막혔다.박연준이라는 이름을 들은 순간 그의 세계는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머릿속이 쿵쾅 울리고 텅 빈 가슴은 더욱 심하게 아파졌다.박연준은 도대체 이유영의 세계에서 어떤 존재일지 상상이 안 된다.이유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