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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작가: 진헤이
얇은 A4용지가 피부를 긁고 빨간 상처를 냈다.

유영은 절망한 표정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그 모습을 본 강이한은 흠칫하며 그녀에게 한발 다가섰다.

하지만 다시 정신을 차린 그는 표정을 바꾸고 실망감 가득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에게 정말 실망했어.”

유영은 다시 눈을 뜨고 남자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바깥에 내리는 비를 닮은, 그의 실망보다 더 깊은 절망이 느껴지는 미소였다. 강이한은 갑자기 가슴이 쓰렸다.

“왜 그랬어?”

그가 물었다.

그가 이 질문을 내뱉는 순간 이유영도 자신에게 실망했다는 것을 그는 절대 모를 것이다.

유영은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비가 유리창을 때리는 소리가 처량하게 들려왔다. 졸졸 흐르는 시냇물과 정성 들여 가꾼 정원도 시야에 들어왔다. 이곳에 모든 것은 그녀의 손길이 가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녀는 줄곧 이곳을 자신의 마지막 거처로 생각하고 아꼈다.

이제야 그 생각이 큰 착각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불과 한 시간 전까지 그녀를 믿는다고 했던 남자가 말도 안 되는 정황 증거를 들이밀며 그녀를 추궁하고 있었다.

“뭘 말하는 거야?”

“이유영!”

남자의 말투에서 짜증이 묻어났다.

예전과 같이 작고 가녀린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다가가서 안아주고 싶은 충동도 일었다.

그럴수록 그는 혼란스럽고 절망에 빠졌다.

“왜 이렇게 변했니? 당신 이런 사람 아니었잖아? 당신의 그 복수심 때문에 한 여자가 인생을 망쳤어. 한지음이 그렇게 미웠어?”

세강의 직원과 협력사 직원들, 세강을 아는 모든 사람들이 강이한을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수식어에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은 이유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런 표현들보다 그녀는 더욱 잔인하고 냉혹했다.

강이한의 실망은 깊어져만 갔다.

그가 아는 이유영은 어디로 간 걸까?

이렇게 예쁜 얼굴로 어떻게 그런 잔인한 짓을 저지른 거지?

유영은 긴 한숨을 쉬며 그에게 물었다.

“나라고 확신하나 봐?”

“더 할 말 있어?”

적어도 강이한은 이 증거들이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아직도 발뺌하려는 걸까?

이런 증거들이 줄줄이 있는데 어찌 믿어야 할까?

“난 할 말 없어. 경찰에 신고해.”

강이한의 눈빛이 서늘하게 빛났다.

“그래, 알았어.”

남자는 이 말을 남긴 뒤, 밖으로 나갔다.

유영은 조용히 창밖에 내리는 비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외투도 챙기지 않고 차를 끌고 사라졌다. 남자의 차가 완전히 사라지자 유영의 눈빛에 그나마 남았던 온기마저 사라져 버렸다.

강이한은 사라졌고 집안은 엉망이 되었다.

유영은 천천히 허리를 숙이고 서류들을 한장 한장 주웠다.

거기에는 그가 그녀에게 줬던 카드 이체 이력들이 있었다. 그녀가 그의 카드로 현금을 자신의 카드에 입금한 기록들이었다. 그리고 입금을 받은 그 카드는 언젠가 그녀가 잃어버린 카드였다.

한 번에 거금이 오간 것이 아닌 수십 번에 나눠서 적은 액수로 입금되었다.

자세히 조사하지 않으면 전혀 눈치채지 못할 액수들이었다.

유영도 쇼핑을 한번 나가면 몇백만 원 정도는 어렵지 않게 소비하기에 더 눈에 띄지 않았다.

상대는 모든 경우의 수를 염두에 두고 치밀하게 작업을 진행했다.

유영은 너무 황당해서 웃음이 나왔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어서도 강이한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마 며칠 동안은 집에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집사가 물었다.

“사모님, 택배가 계속 오고 있는데 이대로 계속 쌓아만 두실 겁니까?”

“처리하세요.”

유영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그런 건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어차피 강이한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는 걸 알리려고 남긴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한지음이 시력을 잃은 것에 비하면 악질 네티즌들의 협박이나 마녀사냥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마 지금쯤 그 일을 까맣게 잊었을지도 모른다.

전생에 그녀는 물건들을 보자마자 모두 처리하라고 지시했다.

이번 생에는 모든 증거를 남겼지만 강이한에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은 듯했다.

진영숙과 강서희가 저택을 방문했다.

짝!

진영숙은 유영을 보자마자 다짜고짜 귀뺨부터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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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영숙에 관해서 정국진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가 조금이라도 이성적인 사람이었다면 오늘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굳이 품위를 지켜야 할 이유도 없었다.악인은 악하게 다스려야 했다. 진영숙에게야말로 딱 맞는 말이었다.“그러니까 박연준과 이혼해.”정국진은 이 한마디만을 반복했다.지금 정씨 가문 입장에서 보면 이유영과 박연준의 결혼이 이어지는 것도 나쁘지 않은 그림이었다.하지만 그는 이유영이 두 남자에 관해 이미 증오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강이한이 눈을 잃은 이유를 아무도 선뜻 이유영에게 말하지 않았던 것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이유영은 그 사실을 알고 나서도 그를 용서하지 않을 것임을.설령 강이한이 자신을 위해 그토록 희생했다는 걸 알게 되더라도 그는 그녀의 마음속에서 영원히 용서받지 못할 존재였다.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상황은 더 혼란스러워질 뿐이다.박연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정국진은 아버지로서 이유영이 복수를 위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이유영만이 아니라 정국진조차도 박연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알았어요.”이유영이 고개를 끄덕였다.“가서 쉬어.”“응.”큰 소동이 지나갔으니 이유영은 몸도 마음도 지쳐 있었다.진영숙은 여전히 파리에 있다. 이미 시작된 일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고 그녀가 앞으로 어떤 소란을 일으킬지 아무도 몰랐다.그러니 이유영은 무엇보다 자신을 지켜야 했다.임소미는 이유영이 돌아온 것을 알고 조용히 방에서 나왔다.이유영은 샤워를 마친 뒤, 월이를 품에 안았다.강이한을 빼다 박은 옆모습을 보며 이유영의 가슴에는 잔잔한 아픔이 스며들었다.결국, 그녀는 잘못 생각했다.자기 몸에서 태어났다고 해도 아이가 온전히 자신의 것이라 착각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너무나 복잡하고 얽히고설킨 문제였다.월이를 낳을 때만 해도 그녀는 아이의 삶에 진영숙 같은 인물들이 나타날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다....이유영은 밤새 잠들지 못했

  • 회귀후 전남편과 이혼   제1254화

    특히 과거와 얽힌 일이었기에 누구도 함부로 나서기 어려웠다.“유영아.”“네?”“월이는 여기에서 아무도 데려갈 수 없어.”그 말 한마디에 이유영의 마음속에서 무엇인가가 뜨겁게 끓어올랐다.진영숙 앞에서 아무리 강해 보였던 그녀도 정국진의 이 짧은 한마디에 모든 긴장이 풀려 말없이 그의 품에 안겼다.네.”가족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만약 지금 혼자였다면 진영숙의 횡포를 어떻게 감당했을지 이유영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그랬다면 어땠을까?’그녀는 자신에게 수없이 질문했다.하지만 단 하나 분명한 것은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결심이었다.진영숙이 다시 예전처럼 그녀를 억누르는 일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다른 일은 네 마음대로 처리해. 너무 걱정하지 말고.”이런 것이 바로 가족이었다. 짧은 말 한마디가 이유영에겐 그 어떤 말보다 큰 위로였다.부서지고 흔들리던 세상 속에서 그녀는 드디어 위안과 버팀목을 얻었다.“고마워요, 아빠.”“박연준과는 이혼해.”“...”그 말에 그녀는 순간 숨을 멈췄다.물론 그녀도 박연준과의 이혼을 원했다. 하지만 최근 상황은 너무나 복잡했다.엔데스 가문이 얽혀 있었기에 이유영은 자신의 이혼이 정씨 가문에 피해가 갈까 봐 망설이고 있었던 것이다.정국진은 담담히 말했다.“증오보다 중요한 건, 가족이야.”정국진의 삶을 돌아보면 그는 수많은 사람들의 증오를 받아왔다.그때마다 그에게 복수로 응수했다면 지금의 정씨 가문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임소미가 이렇게 평화로운 삶을 누릴 수도 없었을 것이다.“아버지...”정국진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네가 그 사람을 증오하는 건 알아. 정말로 증오하는 사람이라면 네 마음속에서 이미 중요하지 않은 존재야. 그런데 왜 그런 사람 때문에 아직도 마음 쓰는 거야?”증오하는 사람은 중요하지 않은 존재가 된다. 그런데 그 증오가 마음을 잠식한다면 그건 결국 자신의 자유를 빼앗는 일이었다.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이유영은 강이한과

  • 회귀후 전남편과 이혼   제1253화

    위험할 거라는 그의 말을 듣고 이유영은 어깨를 으쓱하며 엔데스 신우를 바라보았다.“신우 씨가 정씨 가문을 이용하려고만 하지 않았어도...”이유영의 말끝이 흐려졌다.차는 이미 백산 별장에 도착해 있었고 이유영은 조용히 차 문을 열고 내렸다.하지만 곧장 들어가지 않고 등진 채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그 순간 지우고 싶던 기억들이 밀려왔다.강이한과 함께했던 너무나 찬란하고 아팠던 순간들 말이다.한지음 이후로 그녀가 가장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지워지지 않는 추억들이었다.숨을 크게 들이쉬며 가슴속의 무거움을 억눌렀다. 이 밤하늘 속 별빛조차 오늘은 감당하기 힘들었다.다시 입을 열었을 때, 그녀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워져 있었다.“제가 얼마나 위험한지 이미 알고 있다면 저한테서 멀리 떨어져 계세요.”“...”그는 잠시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무슨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유영은 이미 저 멀리 별장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작은 체구에 하이힐을 신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인형 같았지만 그녀의 등에는 증오가 짙게 내려앉아 있었다.엔데스 신우는 그녀의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다가 이내 눈빛이 변했다.복잡했던 감정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남은 건 날카롭고 위험한 기운이었다.“민성아.”“네, 도련님.”“예전 강씨 집안에 있을 때 교양 있고 품위 있었다는 사실, 확실해?”남자의 목소리는 낮고 묵직했다.지금의 이유영은 '교양'이나 '품위'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자료에는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조사 결과대로라면 그녀의 내면에는 아마 맹수가 숨어 있는 거라고 신우는 생각했다.겉모습은 순진해 보였지만 박연준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조사 결과를 도무지 믿기 어려웠다.“후회돼.”“뭐가요?”운전석의 윤민성이 놀라서 물었다.그가 생각한 셋째 도련님의 사전에는 '후회'라는 단어가 없었다.그렇기에 후회된다는 그의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곧 엔데스 신우는 짧게 덧붙였다.“로한에게 서둘러 진행하라고 해. 난

  • 회귀후 전남편과 이혼   제1252화

    이유영은 무의식적으로 손을 빼내려 했다.“놔줘요.”그러자 엔데스 신우가 조용히 말했다.“늦었어요. 제가 바래다줄게요.”그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오늘 그의 차에 타면 어디로 향하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이유영은 급히 대답했다.“혼자 갈 수 있어요.”예전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그 시절에도 그녀는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지금은 더욱 그럴 필요가 없었다.하지만 남자는 손에 힘을 더 주며 이유영을 자연스럽게 차에 태웠다.“제가 말했잖아요...”“늦었어요. 여자 혼자 집에 가게 하는 건 신사의 예의가 아니죠.”“엔데스 가문에 신사가 있다고 생각하세요?”이유영은 날카롭게 받아쳤다.엔데스 가문에 대한 반감은 소은지 때문이었을 것이다.지금 눈앞의 엔데스 신우까지 더해져 이유영의 마음속 엔데스 가문 남자들은 모두 막무가내로 보였다.특히 그녀가 직접 마주한 적은 없지만 다섯째 도련님이라고 불리는 엔데스 예준의 강렬한 기운은 단번에 각인되었다.“제 차가 싫다면 택시를 불러드릴게요. 그럼 좀 안심이 되겠어요?”남자는 그녀의 마음을 꿰뚫는 듯 말했다.“...”그런 굴욕적인 제안은 생각지도 못했다.“그럴 필요 없어요. 혼자 갈 수 있어요.”시력은 되찾은 그녀는 지금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이 어디든 갈 수 있었다.결국 그녀는 남자의 차에 올랐다.차가 출발하자 남자는 조용히 서류를 꺼내 펼쳤다.좁은 공간에 정적이 흘렀고 백산 별장이 가까워질 즈음, 이유영은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 같았던 엔데스 신우가 옆자리에서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박연준 씨랑 아직 이혼 안 했어요?”“...”엔데스 신우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남자를 바라보았다.“꼭 그 사람과 이혼해야 할까요?”“아직 마음이 있는 모양이네요.”그 말투엔 어딘가 알 수 없는 감정이 스며 있었다.그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알 순 없었지만 아직 마음이 있냐는 그의 말을 들은 이유영은 입꼬리를 올리며 비웃었다.

  • 회귀후 전남편과 이혼   제1251화

    공기가 얼어붙었다.“쾅!”잠시 후, 전화기 너머로 박연준이 탁자를 세게 내려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어서 박연준의 억눌린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가서 유영이를 백산 별장으로 데려가.”이유영은 미친 게 분명했다.‘감히 엔데스 셋째 도련님 같은 인물과 술집에 가?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모르는 건가?’정국진이라면 이유영이 엔데스 신우와 가까워지는 걸 절대 용납하지 않았을 것이다.특히 지금처럼 민감한 시기엔 더욱 반대가 심할 것이다. 박연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회의실을 나섰고 남은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 얼굴만 바라보았다.문기원이 급히 박연준을 따라나섰다.“네!”위험한 박연준의 모습에 용준은 식은땀을 흘리며 급히 대답했다.강이한이 각막을 이유영에게 이식해 주려고 할 때 왜 박연준이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되는 듯했다.지금 이유영 곁에 있는 사람들은 절대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었기에 그녀에게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과거의 그녀는 마치 강이한의 손바닥 위에서 반짝이는 천사 같았다. 하지만 혼란을 겪은 이후 그녀는 변했다.거만하고 방탕하게 아무하고도 거리낌 없이 어울렸다.지금 박연준이 생각했을 때, 이유영은 더 이상 고상하고 단정한 명문가의 며느리가 아니라 그저 자유롭게 떠도는 바람 같은 여자였다.최근 그녀는 서재욱과 엔데스 신우와 모호하기 짝이 없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서주에서.박연준이 차에 타기 전, 문기원이 그를 붙들었다.“선생님, 선생님!”“비켜.”“오늘 정말 중요한 회의입니다.”문기원은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지금은 서주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시기였기에 이유영을 생각하면 문기원은 머리가 지끈거렸다.정말 만만치 않은 여자였다.박연준 곁에 있는 문기원조차 그녀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박연준이 돌아서기를 기다렸다.박연준의 눈빛은 점점 어두워졌다.눈을 감은 순간, 그의 눈빛 속 날카로움은 잠시 가려졌지만 몸 전체에서 풍겨 나

  • 회귀후 전남편과 이혼   제1250화

    옛날부터 많은 사람들은 고민에 휩싸일 때마다 이런 방식을 택했다.하지만 결국 이런 방식은 오히려 고민에 잠긴 마음을 더욱 괴롭힐 뿐이었다.한번 마음에 깊이 새겨진 근심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법이었다.“죄송합니다만 저는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그녀의 몸은 항상 술을 마시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예전에 건강이 좋지 않기도 했고 어렵게 다시 찾은 시력인 만큼 그녀는 술과 더욱 멀리하게 되었다.하지만 오늘 진영숙이 백산 별장에서 벌인 일을 생각하니 이유영의 마음속에서는 무언가가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하지만 결국 그녀는 그 감정을 억눌렀다. 그녀는 그 감정이 무엇인지 알고 싶지 않았다.회피하는 것인지 아니면 받아들인 건지 알 수 없었다.남자는 그 말을 놀란 표정으로 멍하니 있었다.“죄송해요. 제가 깜빡했네요.”남자의 목소리는 유난히 부드러웠다.“괜찮아요.”“...”“이제 가도 될까요?”“술을 마시지 않아도 즐길 수 있잖아요.”“...”하지만 이유영은 이런 곳을 좋아하지 않았다.특히 많이 노출된 옷을 입은 여자들을 보면 마음이 불편했다.하지만 남자는 그녀에게 반항할 기회를 주지 않았고 그녀를 향락의 세계로 이끌었다....한편 박연준은 서주에서 중요한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용준의 전화를 받은 그의 가슴이 쿵쾅거렸다.“그쪽은 괜찮아?”진영숙에 관해 묻는 것이었다.이유영이 인정사정없을 거라는 걸 박연준도 알고 있었다.과거 강이한 곁에 있을 때의 이유영을 떠올렸다. 그때의 그녀는 적어도 강이한에게 만큼은 너무 몰아붙이지 않았었다.그래서 진영숙이 아무리 이유영을 괴롭혀도 그녀는 어떻게든 참고 견뎠다.지금은 성격이 점점 더 나빠졌다고 해야 할까? 아예 참는 것을 포기한 것 같았다.용준은 진영숙의 현재 상황을 박연준에게 설명했고 이미 좋지 않았던 박연준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회의 끝나고 바로 갈게. 일단 진정시켜.”박연준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그런 일이 있었는데 과연 내가 진정시킬 수 있을까?’“네!”“유영이는

  • 회귀후 전남편과 이혼   제1249화

    “박연준, 네가 강이한과 이렇게 가까운 사이였고 또 이제는 강이한 어머니까지 지키려 한다는 사실을 난 여태 몰랐네.”그 말은 날 선 조롱처럼 들렸다.동시에, 과거 강이한과 박연준의 사이가 이유영의 눈에 어떻게 비쳤는지 되새기게 했다.그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이유영의 냉정한 말에 박연준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어떤 말도 꺼내지 못했다.“다른 일 있어서 먼저 끊을게.”이유여은 박연준의 대답을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망설임 없이 전화를 끊어 버렸다.사랑이란 그저 우스운 감정에 불과했다.차는 천천히 백산 별장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지혁 씨.”“네.”“지혁 씨는 사랑해 본 적 있어요?”이유영은 지혁을 향해 불쑥 물었다.예전의 이유영은 사랑이란 존재를 믿어 왔지만 지금은 아니다. 누군가를 아무 이유도 없이 사랑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그토록 반짝이던 사랑이란 단어 뒤편에 어떤 진실이 숨어 있었는지 이젠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이유영의 말을 들은 지혁은 묵묵히 앞을 응시하며 손에 힘을 주었다. 핸들을 쥔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였다.이유영은 굳이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쾅!”그 순간, 갑작스러운 충격음과 함께 추돌 사고가 발생했다.이유영은 아픈 이마를 짚고 있었고 지혁은 차에서 내려 사고 처리를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차 문이 열렸다.“아가씨.”지혁이 이유영 앞에 공손하게 나타났다.“무슨 일이에요?”“셋째 도련님 차입니다.”“...”그 말을 듣고 그녀의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자꾸 나타나는 셋째 도련님의 존재에 우연한 사고인지 아니면 이미 계획된 일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이유영은 미간을 짚으며 말했다.“어떻게 된 거예요?”“셋째 도련님께서 아가씨를 만나고 싶다고 하십니다.”이유영은 이 전설 속의 셋째 도련님을 굳이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를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거렸다.특히 엔데스 가문과 정씨 가문의 관계를 생각하면 더 엮이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그는 밖에서 이유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 회귀후 전남편과 이혼   제1248화

    하지만 그때의 이유영은 몰랐다. 그 아이가 결국 진영숙이 데려온 의사로 인해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게 될 줄은.과거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아!”분노가 치밀수록 이유영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고 진영숙은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그녀는 이유영이 이렇게까지 자신을 몰아세울 줄은 꿈에도 몰랐다.“놔, 놔 이 미친년아! 악!”“짝!”이유영의 손바닥이 진영숙의 뺨을 후려쳤고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방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말릴 용기를 잃고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이유영의 눈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에 다시 한번 움찔하고 말았다.이유영의 행동에 소리 내는 사람 하나 없이 모두가 숨을 삼켰다. 진영숙은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결국 이유영은 진영숙을 놓아주며 말했다.“주제 파악하라는 의미에서 그랬어요. 당신은 할머니라는 말을 입에 올릴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에요.”그렇다. 진영숙은 할머니가 될 자격이 없었기에 이유영도 그녀를 아무 감정 없이 내던질 수 있었다.진영숙의 귀에는 윙윙거리는 소리만 맴돌았다. 머릿속이 멍해진 채 한참을 그 자리에 얼어 있었다.그 사이 이유영은 조용히 자리를 떴다.“저년이 감히...”감히 뭐라고?예전엔 강이한 곁에서 순한 토끼처럼 보호받더니 지금은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이유영이 밖으로 나왔을 때, 차가운 밤바람이 그녀를 감쌌다.그 순간, 가슴속의 억눌린 감정이 스르르 풀리는 듯했다.지혁은 이유영이 모습을 드러내자 용준을 밀쳐내고 앞으로 다가왔다.“아가씨.”“가요.”용준은 여전히 당당한 이유영의 모습을 보며 급히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이유영의 휴대폰이 계속 울리기 시작했다.화면에 떠 있는 이름은 박연준이었다.차에 오르자마자 전화를 받은 이유영의 모습은 조금은 가벼워진 듯했다.“여보세요.”“어디야?”“풍산.”“유영아...”전화 너머의 남자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박연준은 지금 이유영이 강씨 집안을 어떤 태도로 맞서고 있을지 잘 알고 있었다.

  • 회귀후 전남편과 이혼   제1247화

    과거 강씨 집안에서 강이한이 곁에 없는 동안에는 진영숙의 말에 고스란히 따를 수밖에 없었다.홍문동으로 이사한 이후도 마찬가지였다. 진영숙이 찾아오면 이유영은 그녀의 지시에 고분고분 따랐고 감히 그녀의 말에 거역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하지만 지금은 달랐다.‘도대체 언제부터일까?’아마 강이한과의 이혼을 결심한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그즈음부터 이유영은 진영숙의 말에 더 이상 고분고분 따르지 않았다.그땐 고작 진영숙의 지시를 어기는 정도였지만 지금은 전혀 달랐다.“감히 나한테 손을 대?”한참 뒤에야 겨우 말을 꺼낸 진영숙이 이유영을 노려보았다. 눈빛에는 이빨을 드러낸 짐승 같은 기세가 실려 있었다.이유영은 고작 이런 걸로 화를 내는 진영숙이 가소로웠다.이유영은 아직 다 마시지 않은 따뜻한 물이 담긴 잔을 들고 망설임도 없이 진영숙의 얼굴에 뿌렸다.“앗!”진영숙은 비명을 질렀고 얼굴이 화끈거리며 달아올랐다.“손을 댄다는 건 이런 거예요.”이유영은 바닥에 주저앉은 진영숙을 무표정하게 내려다보았다.“퍽!”손에 들고 있던 잔이 손끝에서 떨어지며 바닥에 산산조각 났다. 그 순간, 방 안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했다.예전의 풍산 사람들이 기억하던 이유영은 언제나 조용하고 온순한 여인이었다. 누가 감히 지금 이유영의 이런 모습을 상상이나 했겠는가?분노로 찬 이유영은 물불 가리지 않는 모습이었다.진영숙 역시 이유영을 증오 가득한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예전에도 이유영에게 자주 화가 났지만 오늘처럼은 아니었다.진영숙은 분노가 목 끝까지 치밀어 올라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이유영은 격하게 숨을 들이마신 진영숙을 향해 차갑게 쏘아붙였다.“다시 백산 별장에 가거나 우리 가족 근처에 얼씬거리면 그땐 당신 진짜 가만 안 둬.”그 마지막 한마디는 징벌처럼 무겁고 섬뜩할 만큼 냉정했다.월이는 이유영의 세상 전부이자 목숨과도 같은 존재였다.힘들게 월이를 낳으면서 강씨 가문은 이 아이와 아무 상관도 없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이제 와서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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