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 중요한 건 이 단어만으로 이 사람을 묘사하기엔 어림도 없었다.정말 사람을 쇼킹하게 만드는 말이었다. 이유영은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당신 참 염치도 없어!”이유영은 또박또박 이를 악물며 한 글자 한 글자 내뱉었다.특히 엔데스 명우가 이런 장난스러우면서도 진지한 말투로 말투를 말하는 것을 보자, 이유영도 그가 장난을 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이 사람... 정말 진심이네.’이때 이유영은 갑자기 무언가가 떠올랐다. 예전에 엔데스 가문의 다섯째 도련님이 정국진에게 정유라와의 혼인을 제안한 적이 있었다.그 당시에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외삼촌은 대답하지 않았다.사실 엔데스 가문의 매 사람은 다 자기의 영역에서 아주 훌륭했다.이런 훌륭함에는 또 잠재적인 것들이 따라있었다. 어떤 건... 차마 견딜 수 없는 그런 것들이었다.정유라는 외삼촌의 하나뿐인 자식이었다. 그래서 외삼촌은 정유라 일생일대의 혼사 결정에 있어서는 가문의 이익은 둘째 치고 그녀의 행복을 무엇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사실 로열 글로벌이 파리에서 그런 위치에 있는 이상, 강대한 집안과 혼인을 맺는 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하지만 엔데스 가문의 이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엔데스 가문이 비록 강성하긴 하지만 이런 강성한 귀족 가문을 결국 누가 상속하게 될 것인가? 그렇게 되면 상속자는 당연히 제일 우수한 자격들을 구비해야 했다.어느 방면이든 제일 좋아야 했다.정씨 가문, 풍산 그룹, 엔데스 가문 이 3대 세력 중에서 혼인을 맺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니 이 엔데스 명우가 감히 조건을 제기한다고 하는 것이었다.이 엔데스 가문의 뒤에는 아직 유능한 사람이 많았다!“왜요? 싫어요?”“당신은 나를 투쟁의 마당에 밀어 넣으려는 건가요?”이유영은 아니꼽게 엔데스 명우를 바라보았다.지금 이유영이 정말로 엔데스 명우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그녀는 평생 파리에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 그건... 불가능했다.아니면 일단 파리에 돌아간다고 해도 과연 엔
이유영도 자기 키가 자신의 치명적인 단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키 문제 때문에 그녀는 예전에 많은 직장 기회를 잃었었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타인이 자신의 키를 공격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었다.이유영은 아주 매섭게 엔데스 명우를 올려다보며 말했다.“그래서 당신은 우리가 같이 서 있는 게 어울린다고 생각해요?”어울리는가?엔데스 명우는 눈앞의 키가 지극히 작고 아담한 여인을 보면서 그녀에게서는 왕비의 위풍을 전혀 보아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자기처럼 이렇게 키가 크고 웅장한 남자 옆에 이렇게 아담한 여자 서 있는 건 너무 심각한 대비가 되었다.하지만 그녀는...“당신이 정씨 가문 사람이니 어쩔 수 없어요. 외적으로 어울리지 않아도 괜찮아요. 신분만 어울리면 되죠!”짝!바로 다음 순간, 참다못해 도무지 참을 수 없는 이유영은 자기를 짓누르고 있는 남자의 손을 내리쳤다. 엔데스 명우가 그녀를 풀어주자, 다시 자유를 획득한 그녀는 얼른 그의 품에서 3미터 떨어진 곳으로 도망쳤다.“내 생각이 맞는다면 외삼촌은 당신의 모든 조건을 다 들어줬을 거예요. 하지만, 이 조건만 빼고, 내 말이 맞죠?”엔데스 명우는 말문이 막혔다.“...”이 말을 들은 엔데스 명우는 순식간에 눈빛의 장난기를 거두었다.그것을 대신한 건 한없는 차가움이었다.“고추도 매운 고추가 맵다는 말이 일리가 있네.”이유영은 아주 총명했다.그러니 이 2년 동안 로열 글로벌을 그렇게 잘 관리하면서 정국진이 다른 작업을 할 수 있게 했던 것이었다.보기엔 무해한 아담한 여인이 바로 정국진의 제일 큰 조력자였다.이유영은 지금 엔데스 명우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다 자기를 공격하는 것처럼 느껴졌다.그는 이유영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계속해서 물었다.“그럼, 당신 본인의 답안은 뭔데요?”이유영의 답안?외삼촌이 생각할 수 있는 건 이유영 쪽에서도 당연히 생각할 수 있었다.아무리 여기에 있는 보름 동안, 엔데스 명우가 모든 외부 소식을 다 차단해서 이유영이
하지만 이유영은 엔데스 명우가 자기를 이곳에 데려온 후 족히 보름 동안이나 만나주지 않은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래서 이유영이 생각해 두었던 모든 협상은 다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되었다.지금에 와서 보면 이유영의 그 협상 조건들은 엔데스 명우에게 있어서... 완전 보잘것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이유영을 만나주지조차 않았다.그러나 그가 진정으로 필요한 건 어쩌면... 처음부터 이유영의 뒷배경인 정씨 가문이었을지도 모른다.한참이 지나, 두 사람의 대치 상황에 현장은 바늘이 떨어지는 소리라도 들릴 만큼 조용했다.갑자기, 엔데스 명우는 이유영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 순간... 이유영은 무의식적으로 피했지만, 엔데스 명우는 세게 그녀의 뒤통수를 잡았다.그러고는 아주 압박으로 그녀를 가까이 끌어당겼다...따뜻한 숨결, 차가운 기운이 이유영의 얼굴에 쏟아져 내렸다. 원래 날카롭던 엔데스 명우의 눈빛은 다시 변환되었다.부드러우면서도 다가가기 위험하게 느껴졌다.그러더니 엔데스 명우가 입을 열었다.“이 대표, 혹시 당신보고 길들이기 어려운 여우라고 한 사람이 있었나요?”‘여우?’이건 이유영을 여우처럼 교활하다고 하는 것이었다!이유영은 세게 엔데스 명우를 밀쳐내려 했지만, 그는 전혀 꼼짝하지 않았다.다음 순간, 엔데스 명우는 이유영의 귀에 대고 이를 갈며 말했다.“당신의 조건, 들어 줄게요!”말을 마치고는 바로 이유영을 냅다 밀쳐냈다.이유영은 너무 갑작스럽게 밀쳐진 것에 속으로는 엔데스 명우를 미친놈이라고 욕했다.‘하늘은 참 괜히 이 사람에게 이렇게 완벽한 얼굴을 줬어. 성격은 왜 이렇게까지 악랄한지.’엔데스 명우의 말에 반박하지 않고 지금 눈 밑에서 먼저 소은지를 이 사람의 마수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했다.엔데스 명우의 날카로운 눈은 마치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는 것만 같았다.엔데스 명우가 입을 열었다.“이유영, 나한테 괜한 수작 부릴 생각은 하지 말아요? 응?”수작!이 단어는 그토록 위험했다.사실 말하지 않아도 이유영
사인을 마친 이유영은 서류를 들어 엔데스 명우의 얼굴에다 세게 던졌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 모두 일제히 숨을 한번 들이쉬었다.그들은 키가 이렇게 작고 아담한 여자가 성질이 이렇게나 큰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엔데스 명우는 줄곧 여자들이 우러러보는 남자였다.근데 갑자기 이유영에게 이런 대우를 받으니, 그의 얼굴은 순식간에 확 파래졌다,이유영은 전혀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지금이면 은지를 만날 수 있게 할 수 있어요?”“내일, 사람을 보내서 당신이랑 그 여자를 만나게 할게요.”말을 마친 엔데스 명우는 일어서며 결혼 협의서를 거두었다.그러고는 서류를 같이 온 변호사에게 넘겨주었다.변호사는 아주 공경하게 서류를 받아서 잘 챙겼다.엔데스 명우는 다시 한번 젠틀맨처럼 매너 있게 이유영에게 손을 내밀었다.“가시죠. 나의 왕비 전하!?”왕비?그제야 이유영은 엔데스 가문이 파리에서 역사가 유구한 왕족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만약 엔데스 명우가 정말 엔데스 가문을 상속한다면 그의 아내인 사람은 자연스럽게 사람들에게 왕비라는 존칭을 들을 게 뻔했다.세월이 이렇게나 많이 흘렀는데 파리에 아직도 왕족이 남아있는 것을 봐서라도 엔데스 가문의 실력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그런 게 아니면 이렇게 긴 역사 동안 여전히 왕족의 자리를 차지하긴 쉽지 않았을 것이었다.“정씨 가문과 혼인을 맺으면 당신이 꼭 엔데스 가문을 물려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자신이 있어요?”“이미 적은 노력으로 조금 성과를 이뤘으니, 당연히 내 손바닥 안이죠. 어때요? 나의 왕비 전하?”왕비 전하라는 호칭에 대해 이유영은 두피까지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왜요? 여기가 마음에 들어서 떠나기 싫어요?”이유영은 이를 악물며 자신의 작은 손을 그의 따뜻한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온몸의 기운은 마치 엔데스 명우를 먹어 치울 것만 같았다....비행기 안에서, 엔데스 명우는 손에 든 와인잔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그는...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이유영은 고개를 돌려 창밖
“걔는 우리 엔데스 가문의 일곱째에요.”“...”“나랑 이복동생이에요.”‘이복동생.’‘동생? 전설로만 듣던... 그 엔데스 가문에서 제일 신비로운 일곱째 도련님? 단 한 번도 공식적인 자리에 나타난 적이 없다는 그 일곱째 도련님?’이유영의 머릿속에는 마치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것처럼 좀처럼 반응할 수 없었다.그리고 이유영은 당연히 자기의 주변에 이렇게 뛰어난 능력자들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지현우는 능력이 뛰어났다. 무슨 일이든 그에게 맡기기만 하면 다 일사불란하게 정리해 내서 결과를 제출해 내는 그런 사람이었다.‘근데 그런 지현우가 소문으로만 듣던 전설의 일곱째 도련님이라니?’‘그럼, 지현우가 갑자기 내 곁을 떠난 건 엔데스 가문이 지금 상속자를 두고 제일 긴장한 시기에 도달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닌가?’이유영은 조금 숨이 막혔다.엔데스 명우가 그녀에게 가져다준 이 소식은 그녀를 깜짝 놀라게 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녀의 세상을 혼란스럽게 만든 것이 분명했다.“일곱째 도련님이라고요?”“그래요.”“...”‘일곱째 도련님, 지현우... 걔가 일곱째 도련님이라니.’하지만 엔데스 명우의 소문과는 달리, 일곱째 도련님의 실제 이름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아주 신비스럽고 정해진 것이 없었다.소문에는 좋은 것도 있었고 나쁜 것도 있었지만, 여섯째 도련님처럼 극단적인 소문들은 없었다.이렇게 신비스러운 남자가 이유영의 곁에서 그렇게나 오랫동안 비서로 있었다니!?이 점만 해도 이유영은 충분히 충격적이었고 믿어지지 않았다.지금 이유영의 마음속 기분이 어떤지, 도대체 어느 정도로 충격적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어쨌든 너무나도 말이 안 되었다......파리 공항으로 돌아오자, 루이스와 최익준 모두 있었다. 최익준... 줄곧 외삼촌의 곁을 지키는 사람이었다.엔데스 명우는 내내 이유영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들의 등장은 엔데스 명우의 완벽한 비주얼 때문에 적지 않은 이목을 끌었다.많은 사람들은 핸드폰을 꺼내 들어 촬영
돌아서서 점점 멀어져 가는 이유영의 강인한 뒷모습을 보면서, 그 거리감은 마치 평생의 미움을 갖고 있는 것만 같았다.아무리 수천 가지 방법을 생각한다고 해도 반드시 멀어질 것 같은 거리감이었다.이렇게 생을 건너서까지 가져다주는 미움 때문에 강이한은 온몸이 굳은 채, 제자리에 서 있으며 그의 눈 밑에는 속상함이 스쳐 지나갔다.그의 유영, 정말로 그와 같이... 전생에서 넘어온 걸까?그런 거라면 강이한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그녀의 몸에 흐르는 피에 담긴 고통을 지울 수 있을까?이시욱은 어두운 안색으로 이유영이 떠나는 방향을 보고는 강이한에게 다가가서 엄숙한 말투로 말했다.“도련님, 그분께서 이미 직접 3번이나 전화를 해왔습니다. 도련님더러 얼른 서주 쪽으로 오시라고 하십니다!”그분...!서주라는 곳은 강이한의 세상에서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부분이다. 이유영이 모를 뿐만 아니라 그의 어머니인 진영숙도 모르는 곳이었다.서주, 강이한의 배후에서 제일 강대하고 깊숙한 존재인 곳이었다.그의... 아버지!강씨 가문 사람들 전부 다 죽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사실은 계속 제일 어두운 곳에서 살아있을 줄은 아무도 몰랐다...하지만 강씨 가문은 대대로 한 사람이 그 중대한 임무를 짊어져야 했다. 그리고 이 일맥의 남자 후손은 강이한 뿐이었다.이번에 그쪽에서 이미 3번이나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 그러니 강이한이 서주로 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그런데 이 보름 동안, 줄곧 이유영의 소식이 없어서 강이한도 떠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지금 이유영이 돌아왔으니, 앞으로 파리에는 더 큰 문제들만 일어날 게 분명했다.강이한은... 이유영이 걱정되었다.“그분의 기분을 상하게 하시면 사모님은 더욱 많은 번거로움에 빠질 겁니다.”이시욱은 심각한 말투로 강이한을 일깨웠다.그리고 이 일깨움 덕분에 강이한은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그렇지. 그분이라면...! 다른 사람에게 화풀이하고도 남지.’‘만약 그분이 내가 이유영 때문에 발목이 잡혀 계속 파리에 있는 것을 안
“아니긴 뭐가 아니야?”이유영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정국진은 아주 엄숙하게 그녀의 말을 끊어버렸다.이유영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보름 전 통화 할 때부터 이유영은 외삼촌이 화가 단단히 났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이 보름 동안 엔데스 명우는 그녀의 핸드폰을 몰수해 갔다.비록 보름 동안 이유영은 아주 편안하게 지냈지만, 시간은 결국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 받아야 할 벌은 결국 여전히 받게 되어 있었다!보름 동안이나 화가 풀리지 않은 것을 봐서라도 외삼촌이 정말 화가 많이 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말해봐. 너 그놈의 어떤 요구를 들어줬어?”정국진은 퉁명스럽게 물었다.사실 정국진도 마음속으로 대충 이유영이 엔데스 명우의 어떤 조건을 들어줘서 그녀를 파리로 돌려보냈는지 짐작이 갔다.하지만 가장으로서 외삼촌은 그래도 이유영이 조금 더 총명하게 더 나은 방법을 생각해 내기를 바랐다. 비록 정국진은... 자기 자신도 좋은 방법을 생각해 내지 못했지만, 엔데스 가문과 엮이는 것에 비하면 다른 건 뭐든 다 좋다고 생각했다.이유영이 입을 열고 물었다.“외삼촌은 이미 다 알고 있잖아요?”“이유영!”이유영의 말이 끝나자 정국진은 화가 잔뜩 났다.그 순간 정국진이 아직 정정해서 그렇지 만약 진짜 육칠십 살 되는 늙은이였다면 아마 화가 나서 혈압이 쭉 올랐을 것이다.나이가 어린 덕에 정국진은 그나마 그런 비극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정국진은 자기 가슴이 끊임없이 두근대고 심장이 터질 것만 같이 느껴졌다.“외삼촌 화내지 말아요. 네? 이번 일은 나도 방법이 없었어요.”“방법이 없다고 해도 그렇지. 너 엔데스 여섯째 도련님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 몰라? 그 사람을 감히 건드리다 못해 엮이기까지 하냐!”“...”이유영도 이번 일의 심각성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이유영도 정말 달리 방법이 없었다.아무것도 부족한 게 없는 사람인 데다가 그의 유일한 약점은 죽은 사람이었다. 이유영은 그런 사람과 맞바꿀 수 있는 것이 전혀 없었다.
정국진은 차갑게 이유영을 힐끔 보고는 물었다.“너 그게 무슨 뜻이야?”“외삼촌이 저랑 연을 끊고 제가 로열 글로벌에서 나가기만 하면 그 사람도 자동으로 자와의 혼인을 취소할 거예요.”그랬다. 사인을 하는 순간의 이유영은 마치 핍박을 당한 것처럼 허둥대 보였지만 사실 그녀는 마음속으로 이미 수천만 가지 궁리했으며 심지어 이미 퇴로까지 생각해 두었다.엔데스 명우는 그저 정씨 가문이라는 강대한 뒷받침이 필요했다.그건 엔데스의 여섯째 도련님뿐만이 아니라 다섯째 도련님, 넷째 도련님들도 다 원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정국진이 화가 난 원인이었다.왜냐하면 그들이 원하는 건 오직 정씨 가문이었다.이유영이라는 여자가 아니라...정국진은 감정이 없는 정약 혼인을 하도 많이 보았다. 비록 강이한과 이유영은 서로 사랑해서 함께 하게 되었지만, 그들의 혼인도 역시 그토록 힘들었다.그런 것을 뻔히 알고 있는 정국진은 도무지 이유영이 이익을 위해 두 번째 결혼하게 허락할 수 없었다.이것이 바로 아무리 이유영이 엔데스 명우의 손에 있다고 해도 정국진이 오랫동안 엔데스 명우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은 이유였다.“너 이 바보야.”“전 그저 외삼촌의 조카이지 딸아 아니잖아요. 제가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죠. 안 그래요!?”정국진은 이유영의 말을 듣고 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찌푸렸다.그는 그윽한 눈빛으로 이유영을 한 눈 보고는 고개를 끄덕이었다.“그래. 네 말도 일리가 있어.”“제가 내일 은지랑 만나고 은지를 파리에서 내보낸 후에 외삼촌이 발표하시죠?”‘유영이를 정씨 가문에서 내쫓는다고 발표하라고?’‘유영이더러 로열 글로벌에서 나가라고 하라고?’정말이지 사람은... 높은 자리에 있으면 있을수록 귀찮은 일이 많았다. 지금 정국진은 이유영을 그 자리에 앉힌 걸 조금 후회하고 있었다.전에는 박연준, 지금은... 엔데스 가문....한편, 같은 시각의 다른 섬 위의 별장에서, 소은지는 어둠 속에서 손에 든 서류를 보면서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했다.엔데스
공기가 얼어붙었다.“쾅!”잠시 후, 전화기 너머로 박연준이 탁자를 세게 내려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어서 박연준의 억눌린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가서 유영이를 백산 별장으로 데려가.”이유영은 미친 게 분명했다.‘감히 엔데스 셋째 도련님 같은 인물과 술집에 가?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모르는 건가?’정국진이라면 이유영이 엔데스 신우와 가까워지는 걸 절대 용납하지 않았을 것이다.특히 지금처럼 민감한 시기엔 더욱 반대가 심할 것이다. 박연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회의실을 나섰고 남은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 얼굴만 바라보았다.문기원이 급히 박연준을 따라나섰다.“네!”위험한 박연준의 모습에 용준은 식은땀을 흘리며 급히 대답했다.강이한이 각막을 이유영에게 이식해 주려고 할 때 왜 박연준이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되는 듯했다.지금 이유영 곁에 있는 사람들은 절대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었기에 그녀에게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과거의 그녀는 마치 강이한의 손바닥 위에서 반짝이는 천사 같았다. 하지만 혼란을 겪은 이후 그녀는 변했다.거만하고 방탕하게 아무하고도 거리낌 없이 어울렸다.지금 박연준이 생각했을 때, 이유영은 더 이상 고상하고 단정한 명문가의 며느리가 아니라 그저 자유롭게 떠도는 바람 같은 여자였다.최근 그녀는 서재욱과 엔데스 신우와 모호하기 짝이 없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서주에서.박연준이 차에 타기 전, 문기원이 그를 붙들었다.“선생님, 선생님!”“비켜.”“오늘 정말 중요한 회의입니다.”문기원은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지금은 서주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시기였기에 이유영을 생각하면 문기원은 머리가 지끈거렸다.정말 만만치 않은 여자였다.박연준 곁에 있는 문기원조차 그녀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박연준이 돌아서기를 기다렸다.박연준의 눈빛은 점점 어두워졌다.눈을 감은 순간, 그의 눈빛 속 날카로움은 잠시 가려졌지만 몸 전체에서 풍겨 나
옛날부터 많은 사람들은 고민에 휩싸일 때마다 이런 방식을 택했다.하지만 결국 이런 방식은 오히려 고민에 잠긴 마음을 더욱 괴롭힐 뿐이었다.한번 마음에 깊이 새겨진 근심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법이었다.“죄송합니다만 저는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그녀의 몸은 항상 술을 마시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예전에 건강이 좋지 않기도 했고 어렵게 다시 찾은 시력인 만큼 그녀는 술과 더욱 멀리하게 되었다.하지만 오늘 진영숙이 백산 별장에서 벌인 일을 생각하니 이유영의 마음속에서는 무언가가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하지만 결국 그녀는 그 감정을 억눌렀다. 그녀는 그 감정이 무엇인지 알고 싶지 않았다.회피하는 것인지 아니면 받아들인 건지 알 수 없었다.남자는 그 말을 놀란 표정으로 멍하니 있었다.“죄송해요. 제가 깜빡했네요.”남자의 목소리는 유난히 부드러웠다.“괜찮아요.”“...”“이제 가도 될까요?”“술을 마시지 않아도 즐길 수 있잖아요.”“...”하지만 이유영은 이런 곳을 좋아하지 않았다.특히 많이 노출된 옷을 입은 여자들을 보면 마음이 불편했다.하지만 남자는 그녀에게 반항할 기회를 주지 않았고 그녀를 향락의 세계로 이끌었다....한편 박연준은 서주에서 중요한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용준의 전화를 받은 그의 가슴이 쿵쾅거렸다.“그쪽은 괜찮아?”진영숙에 관해 묻는 것이었다.이유영이 인정사정없을 거라는 걸 박연준도 알고 있었다.과거 강이한 곁에 있을 때의 이유영을 떠올렸다. 그때의 그녀는 적어도 강이한에게 만큼은 너무 몰아붙이지 않았었다.그래서 진영숙이 아무리 이유영을 괴롭혀도 그녀는 어떻게든 참고 견뎠다.지금은 성격이 점점 더 나빠졌다고 해야 할까? 아예 참는 것을 포기한 것 같았다.용준은 진영숙의 현재 상황을 박연준에게 설명했고 이미 좋지 않았던 박연준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회의 끝나고 바로 갈게. 일단 진정시켜.”박연준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그런 일이 있었는데 과연 내가 진정시킬 수 있을까?’“네!”“유영이는
“박연준, 네가 강이한과 이렇게 가까운 사이였고 또 이제는 강이한 어머니까지 지키려 한다는 사실을 난 여태 몰랐네.”그 말은 날 선 조롱처럼 들렸다.동시에, 과거 강이한과 박연준의 사이가 이유영의 눈에 어떻게 비쳤는지 되새기게 했다.그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이유영의 냉정한 말에 박연준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어떤 말도 꺼내지 못했다.“다른 일 있어서 먼저 끊을게.”이유여은 박연준의 대답을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망설임 없이 전화를 끊어 버렸다.사랑이란 그저 우스운 감정에 불과했다.차는 천천히 백산 별장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지혁 씨.”“네.”“지혁 씨는 사랑해 본 적 있어요?”이유영은 지혁을 향해 불쑥 물었다.예전의 이유영은 사랑이란 존재를 믿어 왔지만 지금은 아니다. 누군가를 아무 이유도 없이 사랑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그토록 반짝이던 사랑이란 단어 뒤편에 어떤 진실이 숨어 있었는지 이젠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이유영의 말을 들은 지혁은 묵묵히 앞을 응시하며 손에 힘을 주었다. 핸들을 쥔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였다.이유영은 굳이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쾅!”그 순간, 갑작스러운 충격음과 함께 추돌 사고가 발생했다.이유영은 아픈 이마를 짚고 있었고 지혁은 차에서 내려 사고 처리를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차 문이 열렸다.“아가씨.”지혁이 이유영 앞에 공손하게 나타났다.“무슨 일이에요?”“셋째 도련님 차입니다.”“...”그 말을 듣고 그녀의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자꾸 나타나는 셋째 도련님의 존재에 우연한 사고인지 아니면 이미 계획된 일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이유영은 미간을 짚으며 말했다.“어떻게 된 거예요?”“셋째 도련님께서 아가씨를 만나고 싶다고 하십니다.”이유영은 이 전설 속의 셋째 도련님을 굳이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를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거렸다.특히 엔데스 가문과 정씨 가문의 관계를 생각하면 더 엮이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그는 밖에서 이유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이유영은 몰랐다. 그 아이가 결국 진영숙이 데려온 의사로 인해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게 될 줄은.과거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아!”분노가 치밀수록 이유영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고 진영숙은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그녀는 이유영이 이렇게까지 자신을 몰아세울 줄은 꿈에도 몰랐다.“놔, 놔 이 미친년아! 악!”“짝!”이유영의 손바닥이 진영숙의 뺨을 후려쳤고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방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말릴 용기를 잃고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이유영의 눈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에 다시 한번 움찔하고 말았다.이유영의 행동에 소리 내는 사람 하나 없이 모두가 숨을 삼켰다. 진영숙은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결국 이유영은 진영숙을 놓아주며 말했다.“주제 파악하라는 의미에서 그랬어요. 당신은 할머니라는 말을 입에 올릴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에요.”그렇다. 진영숙은 할머니가 될 자격이 없었기에 이유영도 그녀를 아무 감정 없이 내던질 수 있었다.진영숙의 귀에는 윙윙거리는 소리만 맴돌았다. 머릿속이 멍해진 채 한참을 그 자리에 얼어 있었다.그 사이 이유영은 조용히 자리를 떴다.“저년이 감히...”감히 뭐라고?예전엔 강이한 곁에서 순한 토끼처럼 보호받더니 지금은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이유영이 밖으로 나왔을 때, 차가운 밤바람이 그녀를 감쌌다.그 순간, 가슴속의 억눌린 감정이 스르르 풀리는 듯했다.지혁은 이유영이 모습을 드러내자 용준을 밀쳐내고 앞으로 다가왔다.“아가씨.”“가요.”용준은 여전히 당당한 이유영의 모습을 보며 급히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이유영의 휴대폰이 계속 울리기 시작했다.화면에 떠 있는 이름은 박연준이었다.차에 오르자마자 전화를 받은 이유영의 모습은 조금은 가벼워진 듯했다.“여보세요.”“어디야?”“풍산.”“유영아...”전화 너머의 남자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박연준은 지금 이유영이 강씨 집안을 어떤 태도로 맞서고 있을지 잘 알고 있었다.
과거 강씨 집안에서 강이한이 곁에 없는 동안에는 진영숙의 말에 고스란히 따를 수밖에 없었다.홍문동으로 이사한 이후도 마찬가지였다. 진영숙이 찾아오면 이유영은 그녀의 지시에 고분고분 따랐고 감히 그녀의 말에 거역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하지만 지금은 달랐다.‘도대체 언제부터일까?’아마 강이한과의 이혼을 결심한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그즈음부터 이유영은 진영숙의 말에 더 이상 고분고분 따르지 않았다.그땐 고작 진영숙의 지시를 어기는 정도였지만 지금은 전혀 달랐다.“감히 나한테 손을 대?”한참 뒤에야 겨우 말을 꺼낸 진영숙이 이유영을 노려보았다. 눈빛에는 이빨을 드러낸 짐승 같은 기세가 실려 있었다.이유영은 고작 이런 걸로 화를 내는 진영숙이 가소로웠다.이유영은 아직 다 마시지 않은 따뜻한 물이 담긴 잔을 들고 망설임도 없이 진영숙의 얼굴에 뿌렸다.“앗!”진영숙은 비명을 질렀고 얼굴이 화끈거리며 달아올랐다.“손을 댄다는 건 이런 거예요.”이유영은 바닥에 주저앉은 진영숙을 무표정하게 내려다보았다.“퍽!”손에 들고 있던 잔이 손끝에서 떨어지며 바닥에 산산조각 났다. 그 순간, 방 안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했다.예전의 풍산 사람들이 기억하던 이유영은 언제나 조용하고 온순한 여인이었다. 누가 감히 지금 이유영의 이런 모습을 상상이나 했겠는가?분노로 찬 이유영은 물불 가리지 않는 모습이었다.진영숙 역시 이유영을 증오 가득한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예전에도 이유영에게 자주 화가 났지만 오늘처럼은 아니었다.진영숙은 분노가 목 끝까지 치밀어 올라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이유영은 격하게 숨을 들이마신 진영숙을 향해 차갑게 쏘아붙였다.“다시 백산 별장에 가거나 우리 가족 근처에 얼씬거리면 그땐 당신 진짜 가만 안 둬.”그 마지막 한마디는 징벌처럼 무겁고 섬뜩할 만큼 냉정했다.월이는 이유영의 세상 전부이자 목숨과도 같은 존재였다.힘들게 월이를 낳으면서 강씨 가문은 이 아이와 아무 상관도 없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이제 와서 아
끊임없이 박연준을 나쁜 사람이라고 말하던 강이한의 모습을 이유영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그때 두 사람은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 난 사이였다.늘 서로를 원수처럼 대했고 그 모습을 본 이유영도 두 사람 사이에 과거의 악연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 악연이 한 여자 때문이라는 건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그 여자로 인해 두 사람의 관계가 틀어지기 전까지는 무척 가까운 사이였다는 사실은 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모든 게 이토록 명백했는데도 불구하고 이유영만은 자신에게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알지 못했다.그 7년 동안 강이한은 얼마나 다정했던가?그 친절함 속에 실은 다른 여인을 향한 마음이 숨겨져 있었다는 것을 이유영은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박연준은 강이한의 어머니를 보호하고 있었다.이건 과거의 이유영이라면 상상조차 못 했을 일이었다. 지금 이 모든 상황을 바라보며 자신이 얼마나 우스웠는지 다시 실감하고 있었다.“어쨌든 강이한 씨의 어머니잖아요.”조금 전 용준이 한 말을 들었을 때, 이유영은 마치 우스운 농담을 듣는 듯했다.“형님이 돌아오신 후에 처리하는 게 어떻겠습니까?”용준은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 하지만 그 공손함 속에는 이유영을 절대 안으로 들여보내지 않겠다는 단호함이 있었다.이유영은 이미 화가 머리끝까지 난 상태였다.진영숙이 월이를 데려가려 한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부터 그녀의 분노는 가슴 깊이 타오르고 있었다.“지혁 씨.”그녀는 차가운 목소리로 지혁을 불렀다.지혁은 그녀의 뒤에 있다가 곧장 앞으로 나섰다.“네, 아가씨.”“전 들어가야겠어요.”이유영이 내뱉은 짧은 문장은 얼음처럼 차가웠다.용준은 지금까지 이유영의 이런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을 것이다. 그 냉혹함에 그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다.“네!”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지혁은 곧장 앞으로 다가섰다. 분위기는 마치 폭발할 듯한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이유영은 어지럽게 엉킨 현장을 냉정히 바라보며 우아하게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용준은 지혁을 막으려
이유영이 집으로 돌아온 뒤, 임소미는 사람을 시켜 조사를 시작했고 이유영이 강이한 곁에서 결코 평온한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이내 알게 되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였는지는 알지 못했다.며칠 동안 진영숙의 광기에 가까운 모습을 목격한 뒤에야 그녀는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의 남편이 왜 서주로 떠나서 죽음을 가장했는지를.모두 이 여자 때문이었다. 진영숙이 그토록 괴롭게 만들었던 것이다.남편뿐만 아니라 지금 강이한의 행방조차 그녀는 알지 못했다. 여자로서 그 책임은 결코 작지 않았다.임소미는 감정을 가라앉힌 후에야 이유영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진영숙이 사실은 월이를 데려가려 했다는 것을.“며칠 동안 데려가겠다고 했다고요?”“그래서 내가 화가 났던 거야.”진영숙의 행동을 보면 며칠은 말뿐인 핑계였다.그녀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임소미는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이제 아무것도 없고 오직 손녀만 남았다고? 과연 손녀의 의미를 알고는 있는 사람인가?’이유영은 말없이 얼굴을 굳혔다.진영숙은 아이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집착하고 있었던 것이다.“유영아, 이번 일은 그녀에게 연민을 가질 필요 없어.”임소미의 목소리엔 단단한 결심과 냉기가 섞여 있었다.진영숙은 자신이 모든 걸 잃었기 때문에 아이라도 데려가고 싶다고 했지만 그런 상실에 대해 임소미는 전혀 동정하지 않았다.“알겠어요, 엄마. 제가 처리할게요.”이유영은 어머니를 안심시켰지만 그녀의 목소리 역시 차가웠다.“어떻게 처리할 거니?”‘어떻게 처리할까?’이유영의 눈빛이 점점 깊어졌다.그녀는 당연히 생각한 방법이 있었다.임소미를 진정시킨 뒤, 이유영은 백산 별장을 나섰고 밖에선 지혁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아가씨.”“풍산 그룹으로 가요.”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마음이 무거웠다. 가능하다면 평생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그곳은 과거가 덕지덕지 붙은 장소였고 이유영은 그것들과 멀어지고 싶었다.“윙윙윙.”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발신자는 박연준이었고 이유영은 망설임
이유영에게는 참으로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그녀는 임소미의 품에 파고들며 가느다란 팔로 어머니의 허리를 꼭 안았다.“엄마, 미안해요. 제가 잘못했어요.”그녀는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었다.오래전 소은지는 이렇게 말했었다. 강이한은 연애 상대론 괜찮지만 결혼은 다르다고.그때 변호사였던 소은지는 경제력이나 사회적 지위가 맞지 않는 결혼이 얼마나 불행한지를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녀가 강이한과 결혼을 결심했을 때, 소은지는 그녀를 말렸었다. 소은지는 그녀의 결혼을 말렸던 유일한 사람이었다.결국 소은지의 말은 모두 옳았음이 증명됐다.끝났다고 믿었던 그 관계는 여전히 그녀의 삶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고 심지어 가족들까지도 그 여파에 시달리고 있었다.그때, 등에 따뜻한 손길이 느껴졌다.“괜찮아. 엄마가 있잖아. 앞으로는 아무도 너를 괴롭히지 못할 거야.”이유영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고 눈물이 눈가에 가득 차올랐다. 참으려 해도 눈물이 뺨을 따라 끝없이 흘러내렸다.예전에도 어머니는 그녀를 이렇게 품어주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그녀의 세계는 완전히 무너져 버렸고 그 이후로 어떤 일이 일어나면 모두 혼자 견뎌야만 했다.임소미가 감싸안아 주자 이유영의 마음은 다시금 따뜻함으로 물들어갔다.그리고 이 감정은 그녀의 마음 깊은 곳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앞으로는 아무도 엄마를 괴롭히지 못하게 할 거예요.”그녀가 말한 '아무도'는 명백히 진영숙을 가리키고 있었다.그렇게 오랫동안 떨어져 지낸 사람에게서 다시 이런 고통이 돌아올 줄은 몰랐다.“엄마가 널 지켜줄게. 꼭 지켜줄게.”임소미는 그 말을 반복하듯 속삭였다.오늘 밤, 임소미의 마음속에 일어난 파장은 누구도 헤아릴 수 없었다.진영숙이 막말을 퍼붓고 손까지 쓰는 모습을 보며 이유영이 강씨 가문에서 겪었을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를 임소미는 문득 깨달았다.사모님의 우아한 모습은 진영숙에게서 찾아보기 힘들었다.불편한 감정이 들 때마다 손부터 나가는 사람이었고 그런 사람과 살아야
이유영이 돌아오고 그녀는 진영숙과 임소미 사이에서 벌어진 격렬한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두 명의 도우미가 진영숙을 붙잡아 끌어내고 있었다.임소미의 얼굴은 창백했고 가슴은 거세게 요동치고 있었다.그녀는 순간적으로 분노가 솟구쳤다.임소미는 이유영을 보자마자 재빨리 붙잡고 말했다.“너 먼저 위로 올라가.”“무슨 일이 있었어?”이유영이 물었다.정씨 가문에 돌아온 지 오래된 만큼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가 어떤 사람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우아하고 온화한 사람인 만큼 지금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임소미가 대답하기도 전에 진영숙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이유영, 넌 누가 너한테 눈을 기증해 줬는지 모르지? 강이한이 네게 빚을 졌다고 하지만 사실은...”“입 다물어!”진영숙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임소미가 단호하게 그녀의 말을 끊었다.이유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조용히 서 있었고 진영숙은 여전히 무언가 더 말하고 싶어 했지만 더는 이어가지 않았다.그녀는 분노로 가득 찬 눈으로 이유영을 노려보았고 그 눈빛엔 전례 없는 증오가 서려 있었다.예전에 강이한과 결혼했을 때도 진영숙은 이유영을 이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한 번도 따뜻한 시선을 준 적이 없었다.그리고 지금, 용성시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그 증오가 더욱 깊어진 듯했다.“유영아, 너 먼저 위로 올라가.”“엄마.”“올라가!”임소미는 이유영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격하게 소리쳤다.임소미가 이런 식으로 이유영에게 말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지금의 상황이 임소미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었는지 그대로 드러났다.이유영은 무언가 더 묻고 싶었지만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에 말문이 막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뒤돌아 안으로 들어갔다.그 순간, 진영숙은 자신을 붙잡고 있던 도우미들의 손을 뿌리치고 이유영의 뒷모습을 향해 소리쳤다.“이유영, 강이한은 너에게 빚진 게 없어. 강이한은 오히려 너 때문에 모든 걸 잃었어. 너야말로 가장 잔인한 사람이야. 네 눈조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