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구까지 갔을 때 강이한은 발걸음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내가 돌아오지 않았다면 당신은 그 애를 보육원에 있게 놔뒀을 거야. 맞지?”‘맞냐고?’보육원에 보내겠다고 결정을 내린 이상, 이유영은 평생 다시 그 아이를 볼 생각이 없었던 것이 분명했다.하지만 지금 강이한이 이렇게 물으니...이유영이 답을 하기도 전에 강이한은 입을 열고 계속 말했다.“유영아, 너도 어릴 때 외롭게 혼자 컸잖아. 그런 네가... 몰랐어.”여기까지 말한 후, 강이한은 잠시 멈칫하더니 고개를 돌려 이유영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말할 수 없이 복잡했다.결국 그는 말을 잇지 않고 물을 박차고 나갔다!하지만 이유영은 자기 자리에 앉아서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뭘 몰랐다는 거지? 내가 아이를 그렇게 대할 줄 몰랐다는 건가?’그랬다. 솔직히 이유영도 생각지 못했다!이유영이 얼마나 아이를 좋아하는지 그건 이유영만 알고 있다. 하지만... 이유영은 자기가 한 아이를 그렇게 대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대표님, 괜찮으십니까?”사무실로 들어온 이유영은 안색이 안 좋은 이유영을 보고 물었다.“괜찮아요!”비록 괜찮다고 얘기했지만, 사실 이유영의 속은 답답하기 그지없었다.비록 회사에서 다들 감히 무슨 비난을 할 수 없었지만, 이유영은 사람들이 다 그녀보고 아이한테 너무한다고, 사람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이온유의 일에 있어서, 마치 오직 외삼촌만 그녀를 쭉 지지하고 있는 듯했다...외숙모가 이온유에 대한 안 건, 강이한이 아이에 대한 입양 수속을 다 마친 뒤였다. 임소미는 바로 전화에서 십 분 동안 강이한에 대한 욕설을 퍼부었다!“한지음의 아이인 걸 알면서 그놈은 네가 너무한다고 하는 거야? 그놈 정말 어디 모자란 거 아냐?”임소미는 욕설을 퍼붓고도 마음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분명한 건 강이한의 마음속 생각은 임소미의 인식을 초월하였다.심지어 임소미는... 그런 생각까지 했다!‘강이한은 도대체 어떻게 된 게 한지음의 아이 일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끝내 퇴근 시간까지 버텨낸 이유영은 지하 주차장에 들어섰을 때, 정중하게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이시욱과 그의 뒤에 있는 강이한의 롤스로이스 차를 보았다.이시욱은 이유영을 보자마자 바로 공손하게 그녀의 앞으로 다가왔다.“사모님, 도련님께서 만나 뵙고 싶어 하십니다!”‘사모님?’그랬다. 서주의 사모님을 말하는 것이었다.이 신분은 시시각각 이유영에게 예전에 강이한의 곁에 있었던 자신이 얼마나 멍청했는지를 일깨워주고 있었다.“싫어요!”이유영은 답했다.그들의 사이가 끝난 지 언제인데 이 남자는 아직도 이유영에게 집착하고 있었다.‘참으로 개같은 자식이네! 아니, 걔는 개보다 더 못하지. 개는 최소한 잃어버린 주인을 걱정할 줄도 알고 주인한테 잘 보이기라도 하잖아! 강이한은 뭔데? 버려놓고 왜 다시 와서 집착하는 거야? 누구나 다 그를 기다려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하지만 지금 이유영은 강이한이 이시욱더러 주차장에서 자기를 기다리라고 한 건, 아마도 이온유 그 아이 때문에 자기랑 싸우려고 그런 것으로 생각했다.하지만 이유영은 그럴 정도로 한가하지 않았다.“사모님, 소은지 아가씨...”“이시욱, 그 사람한테 전해주세요. 남자라면 적어도 다시는 소은지를 갖고 절 협박하지 말아 달라고!”이유영은 완전히 격노하였다.‘강이한 지금 이게 뭐 하자는 거지? 왜 번마다 이렇게 협박하는 거지?’이유영은 그런 느낌이 정말 죽을 정도로 싫었다!“그 대신 내가 전기봉 씨를 찾는 걸 도와준다고 하세요.”이유영은 깊게 숨을 한 모금 들이마시고는 말했다.이건 이유영에게 있어서 엄청나게 큰 양보였다.전기봉, 엔데스 명우도 이유영에게서 이 사람의 소식을 전해 듣고는 결혼을 핍박하는 것도 미뤄두었다. 그러니 이 사람이 엔데스 명우랑 강이한에게 무조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설명했다.이 말을 들은 이시욱은 잠시 멈칫했다.그러고는 입을 열고 말했다.“전 그저 소은지 아가씨의 소식을 알려드리려는 것뿐입니다. 사실 소은지 아가씨는 이미 엔데스 여섯째 도련님 신변의
이유영은 매섭게 이시욱을 째려다 보고는 결국 그의 손을 잡았다.이렇게 어두운 공간 속에서 낯선 환경은 확실히 그녀에게 있어서 적응하기 어려웠다.이시욱은 조심스럽게 이유영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으며 이유영에게 적절한 불빛이 나타난 후에야 그녀의 손을 놓아주었다.집사님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사모님.”“...”이유영의 안색은 다시 차갑게 변했다.이유영이 이 호칭을 얼마나 꺼리는지 아무도 몰랐다. 사모님이라는 호칭은 박연준 곁의 사람이 그녀를 형수님이라고 부르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집사님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갈 때, 입구에서부터 안에서 전해오는 웃음소리를 들었다.“아빠, 이거 정말 맛있네요. 저 예전에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어요.”“많이 먹어.”“...”이렇게 두 사람의 화목한 장면을 보고 들었을 때, 이유영은 정말 확 몸을 돌려 당장 돌아가고 싶었다.하지만 결국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안에 있던 도우미들은 안색이 별로 안 좋은 이유영을 보며 저도 모르게 온몸을 떨면서 전전긍긍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0으로 낮추고 싶어 했다.강이한과 이온유는 이유영이 들어오는 것을 보더니, 순간 자리에 굳어졌다.한순간이었으며 그 후 이온유는 바로 의자에서 미끄러져 내려와 이유영의 품속으로 달려들었다.“엄마.”이유영의 곁에 오자마자 아이는 바로 그녀의 품속으로 덤벼들었다.“...”이 순간, 아이의 가느다란 팔은 이유영의 얇은 허리를 감쌌다. 고개를 숙여 아이의 조심스럽게 비위를 맞추는 듯한 눈빛과 마주쳤을 때, 온몸에서 싸늘한 기운을 내뿜던 이유영은 순간 분노가 치밀어올랐다.“이거 놔.”이 두 단어의 말투는 애써 침착했다.아마도 이 아이가 한지음의 딸이라는 것을 알아서 그런지, 아이를 보고 있는 지금 이유영은 볼수록 아이가 한지음의 축소판처럼 느껴졌다.주방의 분위기는 삽시에 차가워졌다.강이한의 안색도 이에 조금 어둡게 변했다.이유영은 될수록 평온하게 말했지만, 아이에게 있어서 그 말은 모종의 강렬함이 담겨있었다.이유영을 만나서
주방에서, 이유영과 강이한 두 사람만 남았을 때, 이유영은 한순간도 빠짐없이 눈앞에 있는 남자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그녀는 강이한의 표정을 읽어내고 싶었다. 하지만 이때 그녀는 아무것도 읽어낼 수 없었다.유독 강이한에게서 냉랭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는 것만 느낄 수 있었다.탁탁! 라이터를 켜는 소리가 들리더니 뒤이어서 짙은 가솔린 냄새가 뿜어져 나와 이유영은 눈을 꾹 감았다.그리고 한순간 그녀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하얘졌다.이유영은 강이한이 줄곧 이런 라이터를 쓰기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괴이한 고요함 속에서 이유영은 전생의 가솔린 냄새가 떠올랐다... 그건 그녀가 이 남자에 대한 마지막 기억이었다.강이한은 세게 담배 연기를 두 모금 들이켜더니 입을 열었다.“그 애는 아무것도 몰라.”그 애는 이온유를 말하는 것이었다.“뭘 모른다고?”“기억이 있고부터 한지음은 단 한 번도 아이를 만나준 적이 없었어. 애는 줄곧 박연준의 손에 공제 당하고 있었어.”“...”‘박연준!?’강이한은 마치 고의로 이 이름을 이유영에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강이한의 뜻대로 이유영은 그 이름을 듣자마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그 순간, 이유영은 박연준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마치 자신의 멍청했던 과거를 일깨워주는 것만 같이 느껴졌다.“당신 지금 나한테 우쭐대는 거야?”이유영은 콧방귀를 뀌었다.박연준이 도대체 왜 이유영의 세상에 나타나게 되었는지 따지고 보면 다 눈앞의 이 남자 때문이었다.강이한의 눈빛은 더욱 차가워졌다.“이유영.”“당신도 그 사람처럼 좋은 놈이 아니잖아. 모든 책임을 다 그 사람한테 떠넘길 필요는 없어...”“너...”강이한은 입가까지 나온 말을 도로 삼켰다.이유영의 눈빛을 보며 원래 싸늘했던 그의 태도는 후에 몇 푼 사그라들었다.그는 입가에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당신 말이 맞아. 나도 그 사람과 마찬가지로 좋은 놈은 아니야!!”만약 진짜 상처를 준 정도만 따지고 보면 강이한이 이유
“...”“내가 그 애의 마음속에서 어머니 같은 존재라고? 왜 어머니 같은 존재인데!?”‘왜? 그게 진짜 아이의 마음속 생각일까?’“유영아, 아직 아이잖아. 우리가 지금 얘기하는 건...”“당신 지금 얘기를 하는 거 맞아? 지금 날 비난하는 거잖아!”강이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유영은 바로 그의 말을 끊어먹었다.그랬다. 이건 얘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인 비난이었다.이곳에 들어오고부터, 강이한은 먼저 이유영이 그 애의 마음속에서 어떤 존재인지, 그다음은 보육원 얘기였다.‘이것들이 다 비난이 아니고 뭐야?’“당신은 무슨 자격으로 날 비난해?”이유영은 자리에서 슉 일어나 바로 몸을 돌려 나갔다.강이한은 제자리에 앉은 채 온몸은 얼음처럼 굳어버렸다!그랬다. 이유영의 말이 맞았다....!강이한은... 그녀를 비난할 자격이 없었다.문 앞까지 걸어간 이유영은 발걸음을 세우더니 고개를 돌려 말했다.“강이한, 다시 한번 경고하는데 우리 이혼했어!”“...”“그래서 내 인생에서 내가 뭘 하든 무슨 잘못된 선택을 하든, 그건 다 내 일이야. 당신이랑 상관이 없어!”예를 들어 아이의 일에서도 그렇다.‘내가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내 행동이 한 아이에게 너무나도 잔혹하다고? 강이한... 당신이 그렇게 말할 자격이나 돼? 고작 당신과 한지음의 관계 때문에?’이유영이 다시 발걸음을 떼서 나간 지 두 발짝 안 되었을 때, 뒤에서 강이한의 인내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한지음이 당신을 위해 어떤 일을 했는지 알기나 해?”“...”‘한지음이 날 위해서?’ 이유영이 아니꼬운 말을 꺼내기도 전에 강이한은 계속 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한지음이 죽었잖아. 당신은 그렇게 걔 아이를 대해서는 안 돼.”강이한의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이유영이 반응을 하기도 전에, 그녀는 강이한의 품에 들어갔다. 강이한은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이유영의 눈가를 살랑살랑 어루만졌다.아주 부드러우면서 가슴을 아프게 하는 그런 세기였다.전생에 이유영은
이유영은 자기가 어떻게 도원산에서 빠져나왔는지도 몰랐다. 이시욱이 차를 몰고 그녀를 바래다주었다.차 안에서 이유영은 강제적으로 이온유가 자기를 안고 있던 장면을 머릿속에서 떨쳐내고는 루이스와 소은지에게 연락을 시도하였다.하지만 전화는 끝내 통하지 않았다.결국 이유영은 전화를 엔데스 명우에게 걸었다. 생각 밖에도 엔데스 명우는 순조롭게 연락이 닿았다...현재 두 사람 모두 파리에 있다.전에 그렇게 골치 아픈 매달림은 결국 이유영의 한 수에 물리쳐졌다. 그 후로 두 사람이 연락 안 한 지 거의 3, 4개월이 되었다.하지만 다시 연락하는 건 결국 여전히 소은지 때문이었다.“여보세요.”“저예요.”“오호?”전화 반대편에서는 그윽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이유영이 자기를 연락할 거라는 것을 미리 짐작한 것이 분명했다!“당신이 은지를 찾아냈어요?”“나랑 당신의 약속은 단지 우리 둘 사이에 결혼이 정해졌을 때잖아요. 지금은 결혼도 취소되었으니 나도 당연히 그 약속을 지킬 필요가 없잖아요.”무슨 약속? 그건 이유영이 엔데스 명우와 결혼을 해주면 그는 자기 주변의 모든 여자를 다 풀어주겠다고 한 약속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소은지도 포함되어 있었다.이유영은 이런 방법으로 소은지를 구해냈던 것이었다.“만나서 얘기하죠!”전화로는 도저히 제대로 얘기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하지만 전화 반대편에서는 엔데스 명우의 경쾌한 웃음소리가 들렸다.“이렇게 늦은 밤에 남자를 만나러 나오는 것에 강 도련님이 동의해요?”‘강 도련님?’강이한 얘기를 안 하면 모를까, 이 남자 얘기가 나오자마자 이유영은 어디서부터 화를 내야 할지 몰랐다.이혼을 한 후로, 두 사람은 원래 두 개의 평행 직선처럼 서로 아무런 접점이 없어야 했다.하지만 강이한 이 남자, 전에는 한지음 때문에 이유영을 놔두지 않았고 지금은 또 한지음의 딸 때문에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아무리 성질이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이 정도로 당하면 짜증을 내는 것도 정상이었다.이유영은 이 일에 있어서
전에도 엔데스 명우가 소은지를 아주 막 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엔데스 명우가 소은지에게 손을 댈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지금 이게 뭐야?’이 순간 이유영은 도무지 무슨 말로 설명을 해야 할지 전혀 몰랐다.“아니야. 네가 오바하는 거야. 이건 때린 게 아니야!”“그럼 이건...”순간 이유영은 무언가가 떠올랐다.소은지의 눈에 드리운 굳건함과 교만함을 보며, 이 순간 이유영은 정말 무슨 말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아이는?”이유영은 소은지의 평평한 아랫배를 보며 물었다.시간을 계산해 보면 만약 지금 아이를 뱄다면 어느 정도 배가 나와 있어야 했다. 하지만 소은지의 배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이 말에 소은지는 고개를 떨구었다.그녀는 유달리 평온한 말투로, 심지어 아무런 감정도 없이 말을 내뱉었다.“지웠어!”이유영은 침묵했다.이건 이미 예상한 결과였다.이유영은 계속해서 물었다.“그럼, 그 사람 아이를 지운 것 때문에 너한테 무슨 짓을 하진 않았지?”“그놈이 원했던 일이라 걔가 제일 좋아할걸!”이유영은 다시 침묵했다.그리고 그녀는 가슴이 조금 막혔다.소은지는 아주 평온해 보였다. 특히 이유영 앞이라, 이유영은 소은지가 무슨 걱정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은지야, 내가 알아서 안배...”“유영아.”이유영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소은지는 그녀의 말을 끊어버렸다.“...”소은지는 고개를 들어 이유영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앙상한 작은 손으로 살랑살랑 이유영의 정교하게 파마한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의 손은 그토록 차가웠다.소은지는 그저 입을 열고 말했다.“나랑 그 사람 사이의 원한은 내가 잘 정리하지 못하면 평생 나를 따라다니는 그림자가 될 거야. 그 누구도 날 도와줄 수 없어.”이 말에 이유영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그녀는 소은지의 말뜻을 잘 알아들었다.그리고 소은지의 말도 다 사실이었다!전에 이유영이 루이스더러 소은지를 데리고 도망치라고 안배했건만 결국 그들은 이유영이 모르는 사이에 엔데
이유영은 자기가 어떻게 별장에서 걸어 나왔는지도 모른다. 소은지는... 지금 엔데스 명우가 그녀의 인신 자유를 제한하지 않았다고 했다.그저 자기가 나오기 싫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그렇긴 하지. 그 남자 곁에서 그렇게 불명예스러운 명분이 씌워졌는데, 심지어 그토록 도도하고 교만하던 은지가 밖으로 나오긴 싫을 수도 있지.’반산월로 돌아온 이유영은 온밤 제대로 자지 못했다. 아침이 되었을 때, 이유영은 임소미의 전화를 받고 머리가 조금 띵해졌다!전화에서 임소미는 바락바락 화를 내며 말했다.“강이한 어디 정신 나간 거 아냐? 그놈이 무슨 자격이 있다고 널 그렇게 대해?”임소미는 화가 단단히 났다!강이한이 이온유를 입양하고도 이유영에게 집착하고 있다는 것을 안 임소미는 화가나 미칠 것만 같았다.“됐어, 외숙모!”자기를 위해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외숙모의 말소리를 들으며 이유영은 마음속이 따뜻해 나는 것만 같았다.하지만 임소미는 정말 화가 많이 났다.“예전에 그 여자가 살아있을 때도 네 인생을 엉망으로 휘저어놓더니 지금 죽어서는 그 딸이 계속해 나가네!”‘이건 젠장 누가 감당할 수 있나!?’임소미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도대체 강이한은 왜 이렇게까지 이유영에게 집착하는 것인가?’“모든 것은 다 그 사람의 선택이에요!”이유영은 깊게 심호흡을 한번 하고는 전혀 아무렇지 않다는 말투로 말했다.하지만 전화 반대편의 임소미는 이 말을 듣고 갑자기 멈칫했다.그러고는 그저 말했다.“네 말이 맞아. 그건 다 사람의 선택이지!”시작이었던 아니면 지금이었든, 그 사람의 선택은 시종일관 한지음이었다.이유영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자, 임소미는 그제야 조금 마음이 놓였다.어찌 됐든 임소미는 그저 이유영이 무사하게 있으면 되었다!임소미가 전화를 끊고 나서 이유영은 저린 미간을 살짝 주물럭 했다.비록 외숙모 앞에서는 쿨한 척 편하게 얘기했지만 그건 그저 외숙모가 자기를 걱정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사실... 이유영도 마음이 엄청 복잡했다.강이한
“박연준, 네가 강이한과 이렇게 가까운 사이였고 또 이제는 강이한 어머니까지 지키려 한다는 사실을 난 여태 몰랐네.”그 말은 날 선 조롱처럼 들렸다.동시에, 과거 강이한과 박연준의 사이가 이유영의 눈에 어떻게 비쳤는지 되새기게 했다.그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이유영의 냉정한 말에 박연준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어떤 말도 꺼내지 못했다.“다른 일 있어서 먼저 끊을게.”이유여은 박연준의 대답을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망설임 없이 전화를 끊어 버렸다.사랑이란 그저 우스운 감정에 불과했다.차는 천천히 백산 별장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지혁 씨.”“네.”“지혁 씨는 사랑해 본 적 있어요?”이유영은 지혁을 향해 불쑥 물었다.예전의 이유영은 사랑이란 존재를 믿어 왔지만 지금은 아니다. 누군가를 아무 이유도 없이 사랑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그토록 반짝이던 사랑이란 단어 뒤편에 어떤 진실이 숨어 있었는지 이젠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이유영의 말을 들은 지혁은 묵묵히 앞을 응시하며 손에 힘을 주었다. 핸들을 쥔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였다.이유영은 굳이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쾅!”그 순간, 갑작스러운 충격음과 함께 추돌 사고가 발생했다.이유영은 아픈 이마를 짚고 있었고 지혁은 차에서 내려 사고 처리를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차 문이 열렸다.“아가씨.”지혁이 이유영 앞에 공손하게 나타났다.“무슨 일이에요?”“셋째 도련님 차입니다.”“...”그 말을 듣고 그녀의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자꾸 나타나는 셋째 도련님의 존재에 우연한 사고인지 아니면 이미 계획된 일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이유영은 미간을 짚으며 말했다.“어떻게 된 거예요?”“셋째 도련님께서 아가씨를 만나고 싶다고 하십니다.”이유영은 이 전설 속의 셋째 도련님을 굳이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를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거렸다.특히 엔데스 가문과 정씨 가문의 관계를 생각하면 더 엮이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그는 밖에서 이유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이유영은 몰랐다. 그 아이가 결국 진영숙이 데려온 의사로 인해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게 될 줄은.과거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아!”분노가 치밀수록 이유영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고 진영숙은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그녀는 이유영이 이렇게까지 자신을 몰아세울 줄은 꿈에도 몰랐다.“놔, 놔 이 미친년아! 악!”“짝!”이유영의 손바닥이 진영숙의 뺨을 후려쳤고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방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말릴 용기를 잃고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이유영의 눈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에 다시 한번 움찔하고 말았다.이유영의 행동에 소리 내는 사람 하나 없이 모두가 숨을 삼켰다. 진영숙은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결국 이유영은 진영숙을 놓아주며 말했다.“주제 파악하라는 의미에서 그랬어요. 당신은 할머니라는 말을 입에 올릴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에요.”그렇다. 진영숙은 할머니가 될 자격이 없었기에 이유영도 그녀를 아무 감정 없이 내던질 수 있었다.진영숙의 귀에는 윙윙거리는 소리만 맴돌았다. 머릿속이 멍해진 채 한참을 그 자리에 얼어 있었다.그 사이 이유영은 조용히 자리를 떴다.“저년이 감히...”감히 뭐라고?예전엔 강이한 곁에서 순한 토끼처럼 보호받더니 지금은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이유영이 밖으로 나왔을 때, 차가운 밤바람이 그녀를 감쌌다.그 순간, 가슴속의 억눌린 감정이 스르르 풀리는 듯했다.지혁은 이유영이 모습을 드러내자 용준을 밀쳐내고 앞으로 다가왔다.“아가씨.”“가요.”용준은 여전히 당당한 이유영의 모습을 보며 급히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이유영의 휴대폰이 계속 울리기 시작했다.화면에 떠 있는 이름은 박연준이었다.차에 오르자마자 전화를 받은 이유영의 모습은 조금은 가벼워진 듯했다.“여보세요.”“어디야?”“풍산.”“유영아...”전화 너머의 남자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박연준은 지금 이유영이 강씨 집안을 어떤 태도로 맞서고 있을지 잘 알고 있었다.
과거 강씨 집안에서 강이한이 곁에 없는 동안에는 진영숙의 말에 고스란히 따를 수밖에 없었다.홍문동으로 이사한 이후도 마찬가지였다. 진영숙이 찾아오면 이유영은 그녀의 지시에 고분고분 따랐고 감히 그녀의 말에 거역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하지만 지금은 달랐다.‘도대체 언제부터일까?’아마 강이한과의 이혼을 결심한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그즈음부터 이유영은 진영숙의 말에 더 이상 고분고분 따르지 않았다.그땐 고작 진영숙의 지시를 어기는 정도였지만 지금은 전혀 달랐다.“감히 나한테 손을 대?”한참 뒤에야 겨우 말을 꺼낸 진영숙이 이유영을 노려보았다. 눈빛에는 이빨을 드러낸 짐승 같은 기세가 실려 있었다.이유영은 고작 이런 걸로 화를 내는 진영숙이 가소로웠다.이유영은 아직 다 마시지 않은 따뜻한 물이 담긴 잔을 들고 망설임도 없이 진영숙의 얼굴에 뿌렸다.“앗!”진영숙은 비명을 질렀고 얼굴이 화끈거리며 달아올랐다.“손을 댄다는 건 이런 거예요.”이유영은 바닥에 주저앉은 진영숙을 무표정하게 내려다보았다.“퍽!”손에 들고 있던 잔이 손끝에서 떨어지며 바닥에 산산조각 났다. 그 순간, 방 안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했다.예전의 풍산 사람들이 기억하던 이유영은 언제나 조용하고 온순한 여인이었다. 누가 감히 지금 이유영의 이런 모습을 상상이나 했겠는가?분노로 찬 이유영은 물불 가리지 않는 모습이었다.진영숙 역시 이유영을 증오 가득한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예전에도 이유영에게 자주 화가 났지만 오늘처럼은 아니었다.진영숙은 분노가 목 끝까지 치밀어 올라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이유영은 격하게 숨을 들이마신 진영숙을 향해 차갑게 쏘아붙였다.“다시 백산 별장에 가거나 우리 가족 근처에 얼씬거리면 그땐 당신 진짜 가만 안 둬.”그 마지막 한마디는 징벌처럼 무겁고 섬뜩할 만큼 냉정했다.월이는 이유영의 세상 전부이자 목숨과도 같은 존재였다.힘들게 월이를 낳으면서 강씨 가문은 이 아이와 아무 상관도 없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이제 와서 아
끊임없이 박연준을 나쁜 사람이라고 말하던 강이한의 모습을 이유영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그때 두 사람은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 난 사이였다.늘 서로를 원수처럼 대했고 그 모습을 본 이유영도 두 사람 사이에 과거의 악연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 악연이 한 여자 때문이라는 건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그 여자로 인해 두 사람의 관계가 틀어지기 전까지는 무척 가까운 사이였다는 사실은 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모든 게 이토록 명백했는데도 불구하고 이유영만은 자신에게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알지 못했다.그 7년 동안 강이한은 얼마나 다정했던가?그 친절함 속에 실은 다른 여인을 향한 마음이 숨겨져 있었다는 것을 이유영은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박연준은 강이한의 어머니를 보호하고 있었다.이건 과거의 이유영이라면 상상조차 못 했을 일이었다. 지금 이 모든 상황을 바라보며 자신이 얼마나 우스웠는지 다시 실감하고 있었다.“어쨌든 강이한 씨의 어머니잖아요.”조금 전 용준이 한 말을 들었을 때, 이유영은 마치 우스운 농담을 듣는 듯했다.“형님이 돌아오신 후에 처리하는 게 어떻겠습니까?”용준은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 하지만 그 공손함 속에는 이유영을 절대 안으로 들여보내지 않겠다는 단호함이 있었다.이유영은 이미 화가 머리끝까지 난 상태였다.진영숙이 월이를 데려가려 한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부터 그녀의 분노는 가슴 깊이 타오르고 있었다.“지혁 씨.”그녀는 차가운 목소리로 지혁을 불렀다.지혁은 그녀의 뒤에 있다가 곧장 앞으로 나섰다.“네, 아가씨.”“전 들어가야겠어요.”이유영이 내뱉은 짧은 문장은 얼음처럼 차가웠다.용준은 지금까지 이유영의 이런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을 것이다. 그 냉혹함에 그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다.“네!”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지혁은 곧장 앞으로 다가섰다. 분위기는 마치 폭발할 듯한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이유영은 어지럽게 엉킨 현장을 냉정히 바라보며 우아하게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용준은 지혁을 막으려
이유영이 집으로 돌아온 뒤, 임소미는 사람을 시켜 조사를 시작했고 이유영이 강이한 곁에서 결코 평온한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이내 알게 되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였는지는 알지 못했다.며칠 동안 진영숙의 광기에 가까운 모습을 목격한 뒤에야 그녀는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의 남편이 왜 서주로 떠나서 죽음을 가장했는지를.모두 이 여자 때문이었다. 진영숙이 그토록 괴롭게 만들었던 것이다.남편뿐만 아니라 지금 강이한의 행방조차 그녀는 알지 못했다. 여자로서 그 책임은 결코 작지 않았다.임소미는 감정을 가라앉힌 후에야 이유영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진영숙이 사실은 월이를 데려가려 했다는 것을.“며칠 동안 데려가겠다고 했다고요?”“그래서 내가 화가 났던 거야.”진영숙의 행동을 보면 며칠은 말뿐인 핑계였다.그녀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임소미는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이제 아무것도 없고 오직 손녀만 남았다고? 과연 손녀의 의미를 알고는 있는 사람인가?’이유영은 말없이 얼굴을 굳혔다.진영숙은 아이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집착하고 있었던 것이다.“유영아, 이번 일은 그녀에게 연민을 가질 필요 없어.”임소미의 목소리엔 단단한 결심과 냉기가 섞여 있었다.진영숙은 자신이 모든 걸 잃었기 때문에 아이라도 데려가고 싶다고 했지만 그런 상실에 대해 임소미는 전혀 동정하지 않았다.“알겠어요, 엄마. 제가 처리할게요.”이유영은 어머니를 안심시켰지만 그녀의 목소리 역시 차가웠다.“어떻게 처리할 거니?”‘어떻게 처리할까?’이유영의 눈빛이 점점 깊어졌다.그녀는 당연히 생각한 방법이 있었다.임소미를 진정시킨 뒤, 이유영은 백산 별장을 나섰고 밖에선 지혁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아가씨.”“풍산 그룹으로 가요.”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마음이 무거웠다. 가능하다면 평생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그곳은 과거가 덕지덕지 붙은 장소였고 이유영은 그것들과 멀어지고 싶었다.“윙윙윙.”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발신자는 박연준이었고 이유영은 망설임
이유영에게는 참으로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그녀는 임소미의 품에 파고들며 가느다란 팔로 어머니의 허리를 꼭 안았다.“엄마, 미안해요. 제가 잘못했어요.”그녀는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었다.오래전 소은지는 이렇게 말했었다. 강이한은 연애 상대론 괜찮지만 결혼은 다르다고.그때 변호사였던 소은지는 경제력이나 사회적 지위가 맞지 않는 결혼이 얼마나 불행한지를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녀가 강이한과 결혼을 결심했을 때, 소은지는 그녀를 말렸었다. 소은지는 그녀의 결혼을 말렸던 유일한 사람이었다.결국 소은지의 말은 모두 옳았음이 증명됐다.끝났다고 믿었던 그 관계는 여전히 그녀의 삶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고 심지어 가족들까지도 그 여파에 시달리고 있었다.그때, 등에 따뜻한 손길이 느껴졌다.“괜찮아. 엄마가 있잖아. 앞으로는 아무도 너를 괴롭히지 못할 거야.”이유영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고 눈물이 눈가에 가득 차올랐다. 참으려 해도 눈물이 뺨을 따라 끝없이 흘러내렸다.예전에도 어머니는 그녀를 이렇게 품어주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그녀의 세계는 완전히 무너져 버렸고 그 이후로 어떤 일이 일어나면 모두 혼자 견뎌야만 했다.임소미가 감싸안아 주자 이유영의 마음은 다시금 따뜻함으로 물들어갔다.그리고 이 감정은 그녀의 마음 깊은 곳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앞으로는 아무도 엄마를 괴롭히지 못하게 할 거예요.”그녀가 말한 '아무도'는 명백히 진영숙을 가리키고 있었다.그렇게 오랫동안 떨어져 지낸 사람에게서 다시 이런 고통이 돌아올 줄은 몰랐다.“엄마가 널 지켜줄게. 꼭 지켜줄게.”임소미는 그 말을 반복하듯 속삭였다.오늘 밤, 임소미의 마음속에 일어난 파장은 누구도 헤아릴 수 없었다.진영숙이 막말을 퍼붓고 손까지 쓰는 모습을 보며 이유영이 강씨 가문에서 겪었을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를 임소미는 문득 깨달았다.사모님의 우아한 모습은 진영숙에게서 찾아보기 힘들었다.불편한 감정이 들 때마다 손부터 나가는 사람이었고 그런 사람과 살아야
이유영이 돌아오고 그녀는 진영숙과 임소미 사이에서 벌어진 격렬한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두 명의 도우미가 진영숙을 붙잡아 끌어내고 있었다.임소미의 얼굴은 창백했고 가슴은 거세게 요동치고 있었다.그녀는 순간적으로 분노가 솟구쳤다.임소미는 이유영을 보자마자 재빨리 붙잡고 말했다.“너 먼저 위로 올라가.”“무슨 일이 있었어?”이유영이 물었다.정씨 가문에 돌아온 지 오래된 만큼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가 어떤 사람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우아하고 온화한 사람인 만큼 지금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임소미가 대답하기도 전에 진영숙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이유영, 넌 누가 너한테 눈을 기증해 줬는지 모르지? 강이한이 네게 빚을 졌다고 하지만 사실은...”“입 다물어!”진영숙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임소미가 단호하게 그녀의 말을 끊었다.이유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조용히 서 있었고 진영숙은 여전히 무언가 더 말하고 싶어 했지만 더는 이어가지 않았다.그녀는 분노로 가득 찬 눈으로 이유영을 노려보았고 그 눈빛엔 전례 없는 증오가 서려 있었다.예전에 강이한과 결혼했을 때도 진영숙은 이유영을 이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한 번도 따뜻한 시선을 준 적이 없었다.그리고 지금, 용성시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그 증오가 더욱 깊어진 듯했다.“유영아, 너 먼저 위로 올라가.”“엄마.”“올라가!”임소미는 이유영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격하게 소리쳤다.임소미가 이런 식으로 이유영에게 말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지금의 상황이 임소미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었는지 그대로 드러났다.이유영은 무언가 더 묻고 싶었지만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에 말문이 막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뒤돌아 안으로 들어갔다.그 순간, 진영숙은 자신을 붙잡고 있던 도우미들의 손을 뿌리치고 이유영의 뒷모습을 향해 소리쳤다.“이유영, 강이한은 너에게 빚진 게 없어. 강이한은 오히려 너 때문에 모든 걸 잃었어. 너야말로 가장 잔인한 사람이야. 네 눈조차..
임소미는 혈압이 치솟았고 화가 극에 달한 상태였다.“내 말이 틀렸나요?”“틀렸냐고? 제대로 된 일을 한 적은 있고? 당신만 제대로 된 선택을 했더라면 유영이와 강이한이 이렇게까지 망가지진 않았을 거야.”임소미는 참았던 감정을 폭발시키며 격렬히 외쳤다.진영숙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임소미의 말이 맞았다. 진영숙은 두 사람 관계에서 많은 잘못을 했다.하지만 지금은 모든 게 달라졌다.강이한은 사라졌고 강서희도 여전히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남은 건 오직 월이 뿐이었다.오늘 이곳에 와서 월이를 보게 된 순간, 월이를 자신의 곁에 두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강하게 자리 잡았다.“사람 불러!”임소미가 크게 외치자 집사들과 도우미들이 급히 달려왔다.“이 여자를 당장 내쫓아!”“당신이 감히 그럴 수 있을까?”“뭐라고?”임소미는 잠시 귀를 의심했다.‘이 여자는 지금 도대체 뭐 하려는 걸까?’조금 전 아이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을 보며 아이에게 조금의 정이라도 남아 있는 줄 알았다.하지만 모든 것은 착각에 불과했다.결국 그녀는 후회라는 감정을 모르는 인간이었다.진영숙이 오늘 여기 온 것도, 월이에게 다정하게 굴었던 것도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았기 때문에 한 마지막 발악이었다.그녀의 말은 그저 그럴싸한 포장일 뿐 사실은 월이를 자신의 곁으로 끌어들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그리고 뻔뻔하게도 무례하기까지 했다.진영숙은 임소미의 눈을 응시했다. 조금 전까지 남아 있던 따뜻함은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매서운 날카로움뿐이었다.그녀는 침착하게 말했다.“우리 아들이 왜 서주를 떠났는지 내가 정말 모를 거라고 생각했어? 임소미, 당신들은 정말 단 한치의 양심 가책도 못 느꼈어?”왜 강이한이 서주를 떠났는지 시간대와 상황을 조합해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추측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확신을 가졌다.특히 떠나기 전, 시윤이 건넨 말이 결정적이었다. 이유영이 용성시에서 수술을 받았던 그 시기에 강이한은 서주에
강이한은 그렇게 어둠 속에서 절망의 고통을 몸소 겪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괴로워도 수술을 받겠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한때 이유영이 어둠 속에서 얼마나 무섭고 무력했는지를 그는 이제서야 조금씩 체감하고 있었다....파리에서 진영숙은 다시 백산 별장을 찾았다. 여전히 강이한의 소식은 들리지 않았고 시윤은 강이한이 이정과 신시욱을 데리고 떠났다고 말했다.그 두 사람의 능력을 생각하면 강이한이 스스로 나타나지 않는 한 그 누구도 그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진영숙은 어머니로서 절망에 가까운 마음으로 그를 수소문했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그의 행방을 찾을 수 없었다.그리고 알면 알수록 그녀의 마음은 점점 더 불편해졌다.“정말이지, 당신은...”백산 별정까지 찾아온 진영숙의 뻔뻔함에 임소미는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굳은 표정으로 응수했다.진영숙은 한때 유능한 여성이었고 그런 그녀에게 감히 저런 얼굴을 하는 사람은 없었기에 그녀에겐 익숙하지 않은 대우였다.“저는 아무것도 없어요. 저 좀 봐주세요.”그녀의 목소리에는 전에는 없던 고통이 서려 있었다.그렇다. 지금의 진영숙에겐 주변에 기댈 친척도 함께할 가족도 없었다. 그녀의 앞에 있는 건 손녀인 월이 뿐이었다.오늘도 그녀는 월이를 위해 여러 장난감을 준비해 왔지만 임소미는 그 모든 행동이 불쾌하게만 느껴졌다.“당신도 어머니였잖아요. 제 마음이 얼마나 불편한지 알잖아요.”임소미는 차가운 목소리로 잘라 말했다.‘봐준다고? 당신이었으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이유영이 강이한과 결혼했을 때, 진영숙은 그녀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심지어 뱃속의 아이조차 받아들이지 않았었다. 그런 사람이 지금 이토록 헌신적인 할머니 행세를 하니 임소미는 화가 났다.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연극으로밖에 안 보였다.진영숙의 눈엔 고통이 어렸다.“저는 정말 생각하지 못했어요.”임소미의 말에 그녀는 도무지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아무리 자존심 강한 진영숙이라 해도 진실을 알게 된 지금, 과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