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회장님, 어떤 맛을 원하세요?
회장님, 어떤 맛을 원하세요?
Author: 데이지

1. 미친놈인가?

Author: 데이지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6-11 12:19:47

S그룹 본사 최상층 회장실, 

그 문 앞 복도에는 이름만 들어도 유명한 셰프들이 나란히 서 있었다.

흰 셰프복에 단정한 모자, 은빛이 번쩍이는 조리도구,

완벽히 플레이팅된 요리가 놓인 쟁반을 양손으로 받쳐 든 모습은 그 자체로 일종의 퍼레이드 같았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긴장과 초조함이 엉켜 있었고, 뺨에는 굳은 미소가 어색하게 걸려 있었다.

복도를 채운 공기는 마치 숨조차 삼키기 두려운 듯 묵직했고, 

안쪽에서 새어나오는 소리,

포크와 나이프가 접시 위를 긁는 미묘한 소리와 낮고 단호한 남자의 목소리는 그 공기를 더욱 팽팽하게 조였다.

“이것도 아니야.”

이현의 목소리는 낮고 차가웠으며, 무언가를 집어삼킨 듯 건조하고 예민했다.

그의 눈썹은 점점 더 좁아졌고, 얇게 다문 입술 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한 접시가 탁자에서 밀려나며 자리 잡은 그 긴장의 끝에서, 

이현은 또 다른 한 접시에 나이프를 툭 던지며 푸념처럼, 

그러나 명확한 실망의 감정을 담아 중얼거렸다.

“이것도 아니라고!!”

평소라면 그조차 쉽사리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남자였지만, 

오늘따라 그의 참을성은 바닥까지 내려앉아 있었다.

“이게 정말 국내 최고의 요리사 음식이 맞습니까?”

회장실 안은 그의 목소리에 따라 잔잔했던 물결이 깨지듯 미묘한 떨림이 일었다.

복도에 서 있던 셰프들은 저마다 고개를 숙이며, 누군가는 등을 굽히고, 

누군가는 뒷덜미를 습관처럼 주무르며 한껏 초조해했다.

이현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고, 

의자 다리가 대리석 바닥을 긁는 소리가 짧고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그는 손등으로 이마를 천천히 쓸어내리며 짧은 숨을 토해냈고, 

이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회장실 문을 거칠게 열었다.

쿵, 요란한 소리에 복도 끝까지 울림이 번졌다.

그는 한순간 복도 끝까지 침묵을 가져왔고, 

아무도 그에게 말을 건네지 못한 채 고개를 숙이거나 눈치를 살피며 그가 지나가는 길을 조용히 비켜주었다.

그렇게 회장실을 벗어나 비상계단을 내려가며, 이현은 눈꺼풀 너머로 묘한 공허감을 느꼈다.

수십 명의 셰프가 정성스레 준비한 음식을 맛보았지만, 그 무엇도 그의 마음속 공허를 메우지 못했고, 

혀끝에는 잠깐의 감각만 남았을 뿐 가슴 한복판까지 내려가는 따뜻함은 하나도 느낄 수 없었다.

그는 S그룹 본관 뒤편 골목길로 무작정 발걸음을 옮겼다.

저녁 공기가 뺨을 스치며 내려앉을 때, 

어디선가 퍼져오는 고소하면서도 따뜻한 냄새가 그의 걸음을 잠시 멈춰 세웠다.

그 냄새는 상류사회의 고급스러운 향과는 달랐고, 

억지로 연출된 파인다이닝의 복잡한 향도 아니었으며, 

왠지 모르게 오래전 기억의 문을 두드리는 소박하고 포근한 냄새였다.

골목 끝, 가로등 불빛이 번지는 곳에서 작은 식당 하나가 보였다.

‘마싯집’이라고 손글씨로 적힌 허름한 간판, 

그리고 그 아래 줄지어 선 사람들.

긴 기다림에도 불평 대신 웃음과 수다가 오가는 풍경은, 

그에게 놀라움과 약간의 호기심을 안겨주었다.

이현은 그 줄 끝을 따라 잠시 시선을 내리깔았다가, 

망설임도 없이 곧장 줄 맨 앞으로 걸어 나갔다.

날렵한 걸음, 단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눈빛, 

사람들의 시선을 한껏 끌어당기는 강렬한 존재감.

“저, 저기요!”

“아저씨, 줄 서야죠!”

뒤에서 불만 섞인 목소리가 쏟아졌지만, 

이현은 가만히 주머니에서 검은색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 카드는 어둠 속에서도 번쩍이며 강력한 존재감을 내뿜었고, 

알아보는 이들의 표정은 잠시 경악으로 얼어붙었다.

“오늘 매상 전부, 내가 계산하겠소.”

낮고 확신에 찬 목소리는 골목을 관통했고, 

“뒤로 물러들 나시오” 라는 마지막 한마디는 더할 나위 없는 힘으로 사람들을 잠시 멈춰 세웠다.

그리고 그때, 식당 안에서 누군가 달려나왔다.

앞치마를 질끈 묶은 젊은 여자, 붉게 달아오른 뺨,

긴 머리를 대충 하나로 묶은 채, 왼손에는 검은 고무장갑을 낀 채로 오른손에 빗자루를 꽉 쥐고 있었다.

“아저씨!”

그녀의 목소리는 놀랍도록 단단했고, 순간 이현의 눈길이 그녀의 얼굴로 향했다.

활처럼 단호하게 그어진 눈썹, 화장기 거의 없는 얼굴,

그리고 불꽃처럼 살아 있는 눈동자.

“여긴 웨이팅 순서 지켜야 하는 집이에요. 돈 있다고 다 되는 거 아니거든요?”

이현은 처음으로 조금 웃을 듯 말 듯한 입꼬리를 살짝 움직였다.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흥미가 솟구치는 느낌이었다.

“내가 오늘 매상 다 줄 텐데도?”

순간, 그녀의 얼굴에 짧은 놀라움이 스쳤다가, 곧 매서운 기운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세상에서 가장 단호하고 짧은 대답.

“…미친놈인가.”

짧은 한마디. 그 한마디는 이현이 평생 들어본 어떤 비평보다도 강렬했다.

유리는 빗자루를 번쩍 들어 올렸고, 이현은 피식 웃으며 뒤로 물러섰다.

그 짧은 장면은 골목 끝까지 파도처럼 번졌고,

사람들은 숨죽인 웃음을 터뜨리며 조용히 핸드폰을 꺼내는 이도 있었다.

그날 밤, 이현은 오랜만에 걸음이 가벼워졌다.

그리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잊고 지냈던 무언가가 살짝 건드려졌다.

‘재밌네.’

그건 아주 오래전,

어머니의 손맛을 그리워하던 소년의 마음이 어렴풋이 되살아나는 순간이었다.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atest chapter

  • 회장님, 어떤 맛을 원하세요?   214. 닿지 못한 마음의 온도

    이른 아침, 파리의 공기는 유난히 차가웠다.밤새 내린 가느다란 빗방울이 보도블럭 위에 말간 반사를 남긴 채 스며 있었고,그 위를 유리는 천천히 걷고 있었다.그녀의 손엔 작은 봉투가 들려 있었다.어제 하지 못한 말, 어젯밤 씻기지 않던 감정,그리고 더는 늦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그 모든 것을 그녀는 조용히 두 손으로 꼭 쥐고 있었다.민우의 숙소 앞에 도착했을 때, 유리는 한참을 망설였다.누르기만 하면 되는 벨 하나 앞에서 그녀는 몇 번이나 손끝을 들어 올렸다가 조심스레 내려놓았다.마음이란 참 이상했다. 진심이 깊을수록 그 표현은 더 늦어지고, 사과가 간절할수록 입술은 더 조용해졌다.

  • 회장님, 어떤 맛을 원하세요?   213. 닿지 못한 마음의 온도

    파리의 밤은 유난히 조용했다.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비가 내려 골목의 돌바닥엔 물기가 남았고,가로등 불빛은 그 물 위에 반쯤 잠긴 채 흔들리고 있었다.유리는 창가에 앉아 손에 쥔 휴대폰을 바라보고 있었다.화면에는 민우의 이름 옆에 ‘부재중 3’이라는 작고 선명한 숫자가 떠 있었다.그녀는 입술을 꼭 다문 채 숫자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끝내 다시 화면을 꺼버렸다.그날은 민우와 저녁을 함께하기로 한 날이었다.민우가 준비하겠다고 말했고, 유리는 오후쯤 가볍게 한 잔의 커피를 마신 뒤 그를 만나러 갈 준비를 하려 했다.하지만 그 하루는 생각보다 더 무겁고 복잡하게 흘러갔다.

  • 회장님, 어떤 맛을 원하세요?   212. 나를 먼저 앉히는 식탁의 무게

    “이번엔 유리 씨가 먹고 싶은 걸로 요리해줘요.”민우의 말은 그날 저녁,파리의 골목을 함께 걷다 멈춘 순간에 조용히 그녀의 어깨에 내려앉았다.유리는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그 말은 요청이라기보다, 작은 권유처럼 들렸다.민우는 이어 말했다.“늘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가끔은 그 반대가 되어도 좋지 않을까요?자신이 좋아하는 맛,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맛을 누군가와 나누는 일. 그건… 가장 솔직한 식사일지도 몰라요.”그 말에 유리는 처음엔 대답하지 못했다.하지만 마음 어딘가가 아주 작게,하지만 또렷하게 울리고 있다

  • 회장님, 어떤 맛을 원하세요?   211. 108화. 함께 걷는 속도

    파리의 오후, 햇살은 강하지 않았지만 따뜻하게 가슴을 데워주는 빛이었다.잔잔한 구름이 하늘을 부드럽게 가리고 있었고,길 위로는 바람이 아닌 ‘공기’ 그 자체가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그날, 유리는 민우와 함께 센 강변을 따라 산책을 하기로 했다.이유는 없었다. 식사 약속도 아니었고, 누군가 먼저 제안한 것도 아니었다.그저 오늘은 같은 방향으로 같은 속도로 조용히 걸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두 사람 사이에 동시에 닿은 듯했다.만남은 여느 때처럼 담백했다.유리는 베이지색 코트를 걸쳤고, 민우는 짙은 그레이의 머플러를 느슨하게 감고 있었다.둘 사이엔 유난스러운 인사가 없었지만,

  • 회장님, 어떤 맛을 원하세요?   210. 내가 끝낼 수 있었다는 선언

    파리의 골목은 언제나 예기치 못한 감정을 마주하게 만든다.그날도 유리는 그저 평범한 산책을 하고 있었을 뿐이었다.익숙한 풍경과 익숙하지 않은 냄새가 조용히 섞여 있는 좁은 골목.그 길 끝에서 오래전 잊었다고 믿었던 한 간판이 불쑥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Café Orée』너와 나의 경계, 그 안에서 잠시 쉬어가는 곳.카페의 이름은 변하지 않았고, 작은 테이블들과 옛 간판,창가에 놓인 자그마한 화분들마저 기억 속 그대로였다.유리는 아무 말 없이 천천히 걸음을 멈추었다.그곳은 예전에 이현과 자주 오던 카페였다.시끄럽지도 조용하지

  • 회장님, 어떤 맛을 원하세요?   209. 이번엔 조금 더 가볍게, 조금 더 나답게

    파리의 저녁은 햇살이 천천히 수그러드는 순간부터 모든 것이 조금씩 느려진다.거리의 그림자들은 길게 늘어나고, 가로등 불빛은 창문을 물들일 듯 부드럽게 번져간다.그 날도 그랬다. 유리는 부엌에 서서 천천히 물을 데우고 있었다.창가에는 지난번 식사 이후 조금 시들어가던 꽃이 아직 그대로였고,테이블 위의 식탁보는 오늘 아침 새로 다려놓은 채 고요하게 펴져 있었다.문득 그녀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이번엔 조금 더 가볍게. 조금 더 나답게.”그리고 그것은 어떤 다짐이라기보다,그녀가 이미 준비되어 있음을

  • 회장님, 어떤 맛을 원하세요?   8. 요동치는 북소리

    밤공기가 차갑게 식어가는데도,유리는 어딘가 온몸이 달아오른 듯 잠시 가게 문 앞에 멈춰 서서바람에 흔들리는 간판 소리를 들으며 혼자 속삭였다.“…나… 이러면 안 되는데.”유리는 오늘따라 평소보다 더 분주히 움직였다.주방 안을 바삐 오가며 냄비 뚜껑을 열어보고, 칼을 쥔 손끝을 재촉했지만,그럴수록 마음 한편은 더 조급하게 요동치는 느낌이었다.주방 창가로 스며드는 한 줄기 햇살에 눈이 시리도록 부딪힐 때마다,그 골목 어귀로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그 사람의 모습이 떠올랐다.‘오늘은 안 올 거야. 그럴 리 없지. 근데,

  • 회장님, 어떤 맛을 원하세요?   7. 무너지는 틈

    이현은 문 안으로 들어서며 느긋하게 웃었다.유리는 순간 칼을 내려놓고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쥘 뻔했다.“진상님… 진짜 왜 이렇게 매일 와요. 그만 좀 와요.”“싫은데요?”이현은 짧게 웃으며 턱을 살짝 들어 올렸다.“보고 싶어서 왔는데요.”조유리는 입술을 꾹 깨물고, 뒤돌아서 주방으로 들어갔다.그런데 거울에 비친 자신의 뺨이 빨갛게 달아오른 걸 보고 두 손으로 얼굴을 꾹 눌렀다.‘조유리, 이러지 마… 진짜, 정신 차려…’그날 저녁, 은별은 가게 문턱을 조용히 넘었다.“회장님, 식사 시간이 이렇게 중요하셨나요?”은별

  • 회장님, 어떤 맛을 원하세요?   6. 귀를 세운 마음

    은별의 미소 속엔 알 수 없는 날카로움이 숨겨져 있었다.“회장님이 뭐가 그리 맛있다고 매일 이곳에 오시는지.”이현은 짧게 한숨을 내쉬며“비서님, 일은 일이고, 제 사생활은 좀 놔두시죠.” 라고 말했다.유리는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그들의 말 속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기류가 한순간 식당 안 공기를 차갑게 만들었다.가게 정리 중, 유리는 문을 닫으려다 또 골목 끝에 서 있는 이현을 발견했다.“진상님, 진짜… 오늘은 왜 안 가세요.”이현은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며 잠시 그녀를 바라봤다.“그냥… 보고 가려고요.”유리는 한숨을

  • 회장님, 어떤 맛을 원하세요?   5. 오해의 미소

    “조유리 씨, 다른 사람한테도 이렇게 신경 많이 쓰세요?”그 말에 유리는 순간 멈칫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휙 돌리며“손님 관리 열심히 하는 게 잘못인가요?” 하고 받아쳤다.이현은 피식 웃었다.“잘못은 아닌데요, 굳이 그렇게 변명하실 필요는 없잖아요.”유리는 국자로 찌개를 휘젓다 턱 끝까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그 와중에도 심장이 자꾸만 빨리 뛰는 게 더 화가 났다.문득 식당 문이 열리고, 또각또각 구두 소리가 울렸다.조은별이었다.완벽한 정장 차림, 미소를 얹은 얼굴,그러나 그 안에서 번뜩이는 눈빛은 누구보다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