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새벽 공기를 뚫고 부엌 창문 틈으로 겨우 스며드는 첫 햇살에,
유리는 눈을 찡그리며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렸다.
손끝에 아직 따뜻함이 채 가시지 않은 빗자루의 감촉이 남아 있었고,
어젯밤 그 황당한 남자의 얼굴이 자꾸 머릿속을 떠올랐다.
‘미친놈인가…’
스스로 중얼거리고, 또 중얼거렸지만, 그때 느꼈던 묘한 울렁임은 부정할 수 없었다.
단순히 분노에서였을까? 아니면, 낯선 사람의 강렬한 눈빛이,
생각보다 오래 가슴 한가운데 남아 있었던 걸까.
유리는 스스로를 향해 얼굴을 찌푸리며 부엌으로 향했다.
익숙한 동작으로 칼을 쥐고, 야채를 다듬으며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하지만 문득, 어젯밤 골목에서 들었던 그의 목소리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오늘 매상 전부, 내가 계산하겠소.’
단단한 눈빛, 비웃음기 어린 미소,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
이상하게도 그 모든 것이 불쾌함과 동시에, 설명할 수 없는 미묘한 떨림을 남겼다.
점심 무렵, 유리는 주방 창가에서 식당 밖을 힐끔힐끔 훔쳐보고 있었다.
“아, 아니지… 내가 왜 자꾸 보지…”
혼잣말을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순간, 골목 저편에서 검은색 실루엣 하나가 나타났다.
심장이 순간 멎는 듯 덜컥 내려앉았다.
서이현. 그는 어제와 다를 것 없는 날렵한 슈트 차림으로,
여전히 망설임 하나 없는 발걸음으로 줄 맨 앞으로 걸어왔다.
“저 사람, 어제 그 블랙카드 새치기 아저씨 아냐?”
“헐, 또 왔어?”
단골손님들 사이에서 수군거림이 퍼졌다.
유리는 숨을 들이마신 채 고개를 재빨리 돌렸다.
‘아, 제발… 진짜 미친 건가.’
잠시 후, 문이 열리고 이현이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여기, 오늘도 제일 맛있는 걸로 부탁합니다.”
그 짧은 한마디에, 유리는 눈썹이 살짝 떨렸다.
그는 주문조차 ‘평범함’을 몰랐고, 사람을 긴장하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유리는 주방 안에서 나직이 중얼거리며 자신을 다잡았다.
“하… 그냥 손님일 뿐이야. 진상 손님. 아주 돈 많은, 진상 손님.”
칼끝은 여전히 빠르게 재료를 다듬었지만,
손끝으로 전해지는 미묘한 떨림을 그녀 자신은 부정할 수 없었다.
식사가 끝난 뒤, 이현은 여전히 테이블에 앉아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길은 골목 너머로 멀리 이어졌지만, 그 속에는 과거의 기억이 맴돌고 있었다.
어릴 적, 어머니는 그에게 매일같이 저녁 식사를 차려주었다.
수저를 쥔 작은 손, 따뜻한 국물의 향,
밥 위에 사르르 녹아내리던 계란찜의 부드러움. 어머니는 언제나 웃으며 말했다.
“이현아, 네가 맛있게 먹어주는 게 엄마에겐 제일 큰 기쁨이란다.”
그 모든 건 너무 일찍 사라졌다.
어머니가 떠난 뒤, 새어머니가 그의 식탁을 채웠지만, 그 속에는 마음을 채우는 맛이 없었다.
그날 이후, 그는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찾아왔다.
그리고 어제 밤, 낯선 골목길에서 맡았던 냄새,
그것이 그에게 오래전 어머니의 손맛을 떠올리게 했음을 그는 비로소 깨달았다.
유리는 주방 한켠에서 식당 안을 힐끔히 바라보다 그의 눈길과 마주쳤고, 재빨리 시선을 돌렸다.
심장이 이상하게 두근거렸다.
왜일까. 왜, 저 남자의 눈빛은 사람을 그렇게 혼란스럽게 만드는 걸까.
그녀는 심호흡을 하며 음식을 준비했다.
그러나 문득 깨달았다.
이 남자, 오늘만이 아닐 것 같았다.
내일도, 그다음 날도,
또 와서 자신의 마음을 흔들어 놓을 것 같은 왠지 모를 예감이 들었다.
촬영 현장에 처음 들어섰을 때, 조유리는 머리가 조금 멍해지는 기분이었다.주방 도구가 놓인 테이블, 조명이 켜진 촬영장, 카메라 뒤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스태프들.그 모든 것이 익숙하지 않은 공간이었지만,무대 위에 오르듯 서 있는 도마 앞에 서자 조유리는 다시 숨을 고르게 됐다.그녀는 익숙하게 우엉을 잡고, 칼질을 시작했다.짧은 숨소리. 그리고 규칙적인 칼질의 리듬.그것만으로, 유리는 다시 자신의 자리를 되찾고 있었다.윤재는 모니터 너머로 그녀의 손끝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조명 아래서 반짝이는 칼날보다 그걸 잡은 손가락이 더 인상 깊었다.‘정확하고, 망설이지 않아. 그리고… 따뜻하네.’촬영이 잠시 쉬는 틈. 윤재가 다가왔다.“혹시, 방송 처음이시죠?”“네. 티 많이 나나요?”“전혀요. 오히려… 그 정적인 모습이 너무 강해서 다들 화면 보면서 숨죽이고 있었어요.”유리는 그 말에 어색하게 웃었다.“…제가 화면으로 그렇게 보여요?”“네. 사람이 아니라 음식이 숨 쉬는 것 같았어요.”그 말은 분명 칭찬이었다.그러나 그 시선에는 직업적인 감탄만이 아닌 미묘한 감정이 섞여 있었고, 유리는 순간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그 다정함이 어딘가 낯설고 조심스러웠다.그날 밤, 이현은 집에서 유리의 첫 방송 촬영분 편집본을 보고 있었다.화면 속, 주방에 선 조유리는 평소보다 더 조용했고,더 집중해 있었으며, 어딘가 조금 멀어 보였다.그 옆에 서서 설명을 돕는 오윤재.그의 말투, 눈빛, 그리고 유리를 바라보는 시선.이현은 조용히 리모컨을 내려놓았다.마음이 조용히 일렁이고 있었다.‘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지켜보고 있는 게 나 혼자였다고 생각했는데.’다음 날, 이현은 유리의 가게에 들렀다.“촬영 잘 다녀오셨어요?”그가 물었다.“네. 생각보다… 재미있었어요. 조금 낯설긴 했지만요.”“오윤재 PD는 어땠어요?”유리는 질문의 의도를 읽고 살짝 멈췄다가 대답했다.“일 잘하시더라고요. 저보다 더 제 요리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게 느
유리는 그 순간, 무엇보다 자신이 흔들려선 안 된다는 걸 느꼈다.예의 바른 말투, 격식을 갖춘 제안, 그리고 그 이면에 담긴 ‘이현’이라는 이름.“죄송하지만, 저는 제 공간에서 제가 원하는 방식으로 요리를 하고 싶어요.”유리는 단호하진 않았지만, 확실한 태도로 말했다.채린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그럴 거라고 예상했어요.”그녀의 마지막 미소는 마치 확인하고 싶었던 대답을 들었다는 듯했다.그날 저녁. 이현은 가게에 들렀고, 유리는 그를 맞이하며 특별한 말 없이 물을 내왔다.“오늘… 채린 씨 다녀가셨어요.”이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들었어요. 채린한테 연락 왔더라고요.”“식사 괜찮으셨대요. 요리도… 만족하셨고요.”“그럴 거예요. 유리 씨 요리니까.”잠시 정적이 흐른 뒤, 이현이 조심스럽게 덧붙였다.“혹시… 불편하셨어요?”유리는 조금 망설였지만 곧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불편하진 않았어요. 그냥… 잘 지켜보게 되더라고요. 말투나, 시선이나… 전 그게 익숙한 사람이 아니라서요.”이현은 그 말을 듣고, 입술을 다문 채 조용히 유리를 바라보았다.그리고 조심스럽게 말했다.“그 사람은 내 기억 속 한 시절의 친구일 뿐이에요.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은, 오직 당신입니다.”그 말에 유리는 고개를 숙였다.따뜻했지만, 그보다 더 조심스러운 무게가 실린 말이었다.“혹시 오늘 저녁 시간 괜찮아?”채린은 짧은 메시지 하나를 남겼다.이현은 문자창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딱 한 줄, 답장을 보냈다.‘식사 자리는 불편할 것 같아. 일로만 봤으면 좋겠어.’보내기까지는 짧았지만, 그걸 결정하기까지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그날 오후. 이현은 사무실에서 회의가 끝난 뒤 잠시 머리를 식히려 건물 옥상에 올라섰다.도심 아래는 여전히 분주했고, 찬바람이 코끝을 차갑게 스쳐갔다.생각보다 채린은 여전히 변함없었다.겉으로는 단정하고 이성적이지만, 사람 사이의 거리를 본능적으로 재고,가장 적절한 타이밍에 그 틈으로 파고들 줄 아는 사람
겨울 초입의 카페는 바깥보다 훨씬 따뜻했다.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거리에는 아직 노란 잎이 다 지지 않은 채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고,그 안쪽에 이현은 무심히 커피잔을 손에 감싼 채 앉아 있었다.그때, 문이 열리고 그녀가 들어섰다.“야, 서이현.”익숙한 목소리. 이현은 고개를 돌리며 잠시 멍한 얼굴을 했다.“채린…?”“너 진짜 오랜만이다.”윤채린. 대학 시절 같은 조로 몇 번 과제를 같이 했고,시험 기간엔 서로 교재도 공유하던 사이.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지만, 굳이 이름 붙이자면 ‘편한 친구’였다.“야, 나도 깜짝 놀랐다. 설마 진짜 여기서 너랑 마주칠 줄이야.”“너 언제 들어온 거야?”“한 달쯤 됐어. 원래는 유럽에 계속 있을 생각이었는데, 본사에서 아시아 쪽 다시 맡으라 해서.”“아직도 그 외식 브랜드 쪽 일하는구나.”“응. 이번엔 한국에 정식 지사 내는 거라서, 아마 너랑도 회사 일로 마주칠 일 있을걸?”이현은 짧게 웃었다.“진짜 신기하네. 너 이렇게 오래 있다가 다시 보니까.”“그치. 근데 너, 표정 되게 부드러워졌더라?”“그래 보여?”“응. 예전엔, 조금 까칠했잖아.”“지금도 까칠해. 근데 누가 좀 다독여주는 중이라.”그 시각, 유리는 평소처럼 가게 주방에서 손님이 남기고 간 테이블 정리를 마치고 있었다.우연히 SNS 피드를 내리다가 익숙한 이름이 태그된 게시글을 보게 됐다.그 글 아래, 마주 앉은 두 사람의 사진. 웃고 있는 채린, 그 맞은편에 앉은 이현.사진 속 표정은 담백했지만, 유리는 이상하게 그 한 장을 보고 나서 속이 알 수 없이 쓰려왔다.저녁. 이현은 평소처럼 가게에 들렀다.“조금 늦었죠?”그는 겨울 코트를 벗으며 말했다.“괜찮습니다.”유리는 조용히 대답하며 물을 내왔다.“오늘은… 카페 다녀오셨더라고요?”이현은 고개를 들었다.“아, 그거… 채린 만났어요. 진짜 우연히.”“그러셨군요. 오랜만에 만나셨겠네요.”“응. 대학교 이후로 처음 봤어요.”“친하신가 봐요.”“뭐, 편한 친
“회장님, 정말 잘 들으셨죠? 진상 고객 할인은 없어요.”“아쉽네…그럼 그냥 매일 와야겠다.”저녁 시간이 지나 가게 문을 닫고, 둘은 조용히 의자에 앉았다.밖에는 노란 가로등 불빛이 테이블 위로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유리는 컵에 따뜻한 보리차를 따라주며 말했다.“오늘도, 잘 지나갔네요.”이현은 그 말을 조용히 따라하며 대답했다.“그게 기적이더라고요. 아무 일도 없이 하루가 지나가는 거.”“아무 일 없지 않았어요.”유리는 웃었다.“사랑이 있었죠. 그리고 잘 먹은 한 끼도 있었고요.”그 밤. 식당의 불이 꺼지고,가게 입간판이 다시 ‘영업 종료’로 뒤집히는 순간. 작은 가게의 하루는 그렇게 마무리되었지만,그 안에 담긴 온기만은 천천히, 오래도록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그리고 그 온기 속에, 유리와 이현, 두 사람의 삶이 조용히 쌓여가고 있었다.겨울 첫눈이 내린 날. 도시는 느릿했고, 가게 앞 골목도 평소보다 더 조용했다.유리는 창가에 서서 유리문에 닿아 내리는 눈송이를 바라보다 속삭이듯 말했다.“오늘, 첫눈이에요.”이현은 커튼 사이로 고개를 내밀며 웃었다.“알죠. 그래서 오늘, 내가 밥 짓는 날이에요.”주방에서는 이현이 직접 계란을 풀고, 김을 굽고, 밥을 짓고 있었다.재료는 특별하지 않았다.달걀, 참기름, 밥, 그리고 어제 유리가 담가둔 무말랭이 무침.하지만 이현의 얼굴엔 어느 때보다 진지함이 서려 있었다.“음식이라는 게 참 신기해요.”그는 조용히 중얼이며 접시를 테이블에 놓았다.“재료는 똑같은데, 그 사람 손에서 나올 때마다 다른 온도가 느껴지잖아요.”유리는 조용히 테이블 앞에 앉았다.이현이 만든 음식은 소박했지만 단정했다.계란지단이 곱게 얹힌 밥 위에 작게 썬 김가루, 그리고 정갈한 장국 한 그릇.“이게… 오늘의 메뉴예요?”“응. 이름은…”그는 가볍게 숨을 고르며 말했다.“‘같이 먹고 싶은 밥’이에요.”유리는 수저를 들었다. 한 입,두 입.뜨거운 국물이 목을 타고 넘어갈 때, 갑자기 뭔
“다녀왔어요.”유리는 조용히 말했다.“가서, 어린 날 나를 조금 안아줬어요.”이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내밀었다.그리고 작은 서류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이건…”“당신 가게. 재건축 승인이 났어요. 위험한 구조 걷어내고 1층은 예전처럼 가게로, 2층은… 우리가 살 집으로.”유리는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우리?”“응. 가게도, 삶도, 식탁도 같이 만들고 싶어요.”그 순간, 세상이 아주 조용해지는 것 같았다.유리는 천천히, 종이에 사인된 자신의 이름을 내려다봤다.그리고, 살짝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고마워요. 그냥… 이렇게까지 나를 함께 데려와 줘서.”반면, 그 시간 은별은 조용히 사무실을 정리하고 있었다.책상 위 사진들, 일지 노트, 서랍 속 유리 조각처럼 흩어진 감정의 잔해들.그녀는 모든 걸 천천히 정리한 뒤, 핸드폰을 꺼내 문자 하나를 남겼다.‘이젠, 보내줄게요.’그 말은 누구에게 보낸 건지조차 명확하지 않았지만,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기를 바라는 은별의 마지막 작별 인사였다.새로 단장된 가게는 아직 익숙하지 않았다.바닥의 나무 결은 더 고요했고, 조명은 조금 더 따뜻했으며,주방 벽 한쪽에는 유리가 고른 작은 액자가 걸려 있었다.‘내일도, 당신 입에 따뜻하게 닿기를.’그 문장을 고르고, 스스로 적어 걸었던 순간,유리는 처음으로 ‘내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실감을 느꼈다.첫날 아침. 유리는 앞치마 끈을 고쳐 매며 천천히 창문을 열었다.따스한 봄바람이 스며들었고, 기분 좋게 간판이 흔들렸다.조유리 식당 그렇게,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간판을 처음으로 아무 두려움 없이 바라봤다.문이 열리고, 첫 손님이 들어섰다.“예약한 사람인데요.” 익숙한 목소리. 낮고, 느긋하고, 조금 장난기 어린. 이현이었다.유리는 고개를 들며 웃었다.“진상 손님, 오늘은 예약도 하셨어요?”“첫날인데, 줄 서는 건 좀 모양 빠지잖아요.”그는 주머니에서 작은 꽃다발 하나를 꺼냈다.장미도, 백합도 아닌 작고 수수한
“정말 나가겠다는 거예요?”비서가 조심스레 물었다.유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단정하게 셔츠 소매를 걷었다.“이제는 내가 직접 말해야 해요. 지켜지기만 하는 사람으로는 이 사람 옆에 서 있을 자격이 없을 것 같아서요.”기자 회견장, S그룹이 마련한 별도 공간.보도자료 배포 없이 준비된 비공식 회견이었지만,이미 사전 정보를 입수한 기자들이 몰려들었다.유리는 단정한 베이지 셔츠에 정갈하게 묶은 머리로 단상 앞에 섰다.카메라 셔터 소리, 속삭이는 목소리, 그리고 시선.그 모두가 똑바로 그녀를 향하고 있었다.“안녕하세요, 조유리입니다.”그녀는 숨을 고르고,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최근 보도된 기사들에 대해 제 입장을 직접 전하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그녀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어느 한 음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저의 어머니는 과거 한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의심을 받았지만 법적 조치 없이 무혐의로 종결되었습니다.저는 그 사건의 피해자였고, 당시 미성년자로서 조사를 받은 적은 없습니다.”그 순간, 기자들의 질문이 터져 나왔다.“S그룹 회장과의 관계가 이 사안을 덮기 위한 수단이라는 의혹도 있습니다.”유리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멈칫했지만, 곧바로 고개를 들고 말했다.“사랑이라는 단어가 누군가에게는 방패가 될 수 있겠지만, 저는 그것을 방패로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그 사람은 제가 가장 힘들었을 때 저를 숨기지 않고 마주봐 준 사람입니다.”“그래서 저도, 이제는 그 사람을 향한 제 감정을 세상 앞에 놓기로 했습니다.”그 말이 끝난 순간, 회견장 뒤편 문이 열리고 이현이 들어섰다.기자들의 시선이 동시에 쏠렸고, 유리는 순간 숨을 멈췄다.이현은 천천히 그녀 옆에 섰다.“이 자리에 함께 서는 건, 그 사람 혼자 두지 않기 위해서입니다.”그는 마이크를 집어 들었다.“그리고 오늘을 기점으로 조은별 비서와의 모든 업무 관계를 종료합니다.앞으로 그 사람 곁에는, 조유리 씨만 있습니다.”이현의 단호한 말은 곧이어 터진 플래시 세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