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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무너지는 틈

Author: 데이지
last update Petsa ng paglalathala: 2026-06-17 17:32:25

이현은 문 안으로 들어서며 느긋하게 웃었다.

유리는 순간 칼을 내려놓고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쥘 뻔했다.

“진상님… 진짜 왜 이렇게 매일 와요. 그만 좀 와요.”

“싫은데요?”

이현은 짧게 웃으며 턱을 살짝 들어 올렸다.

“보고 싶어서 왔는데요.”

조유리는 입술을 꾹 깨물고, 뒤돌아서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거울에 비친 자신의 뺨이 빨갛게 달아오른 걸 보고 두 손으로 얼굴을 꾹 눌렀다.

‘조유리, 이러지 마… 진짜, 정신 차려…’

그날 저녁, 은별은 가게 문턱을 조용히 넘었다.

“회장님, 식사 시간이 이렇게 중요하셨나요?”

은별은 천천히 걸어와 조유리에게 눈길을 줬다.

“사장님, 참 매력 있으시네요. 회장님을 이렇게까지 만들다니.”

유리는 움찔했다.

“저, 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손님이 좀…”

은별은 작게 웃었다.

“그래요? 그럼… 앞으로도 그렇게만 남으시길 바랄게요.”

짧게 내뱉은 말은 칼끝처럼 매서웠다.

문 닫을 시간이 되고, 유리는 가게 문을 잠그려다 골목 끝에 서 있는 이현을 발견했다.

“아직도 안 가셨어요?”

그녀는 팔짱을 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현은 두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느릿하게 걸어와 말했다.

“조유리 씨, 왜 모른 척하세요.”

“…뭘요.”

“내가 요즘 왜 여기 오는지, 진짜 몰라요?”

조유리는 한참 말을 잇지 못하다 고개를 돌렸다.

“…진상님, 그냥 가세요.”

“싫은데요.”

이현은 낮게 웃으며 말했다.

“이제 슬슬 인정하셔야죠.”

조유리는 문을 닫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진짜 미치겠네, 이 사람…”

그 뺨에 번진 붉은 기운은, 그녀가 아무리 애써도  감출 수 없는 고백 같았다.

저녁 공기가 스며드는 골목은 낮과는 또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유리는 식당 문을 닫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였던 손끝은 이제야 미약한 떨림을 드러내고 있었고,

그 떨림은 그녀의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낯설고도 익숙한 감각을 배반하지 못한 채, 살며시 표면으로 번져나왔다.

주방 불을 끄고 돌아서려던 순간, 유리는 문틈으로 스며드는 인기척에 자신도 모르게 멈춰섰다.

살며시 고개를 돌리자, 어둠에 녹아들 듯 골목 끝에서 천천히 걸어오는 이현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걸음은 언제나처럼 느긋했지만, 어딘가 서투른 긴장감이 실려 있었고,

유리는 그 낯선 기류를 온몸으로 느끼며 심장이 저절로 덜컥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오늘은 좀 늦으셨네요.”

유리는 최대한 가벼운 목소리를 내려고 애썼지만,

그 안에는 낮게 떨리는 숨결이 섞여 있었고,

이현은 그 떨림을 단번에 알아챈 듯 짧게 웃으며 고개를 기울였다.

“일이 좀 길어졌거든요. 근데, 조유리 씨 얼굴은 보고 가야겠다 싶어서.”

그 짧은 말은 바람에 섞여 귓가를 간질였고, 

유리는 순간적으로 고개를 돌리며 손에 쥔 열쇠를 불필요할 만큼 꽉 쥐었다.

“진상님, 저… 내일도 여기 있으니까 오늘은 그만 가세요. 괜히 매일 이러시면, 저… 곤란하잖아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경계와 동시에 어딘가 무너지는 작은 틈이 서려 있었고,

이현은 그 틈을 알아채자마자, 조금씩 더 다가와 서서히 거리를 좁혀왔다.

“곤란하면, 내일은 쉬세요.”

이현의 목소리는 장난스럽게 들렸지만, 그 눈빛만큼은 놀랄 만큼 솔직했고,

유리는 그 눈빛에 사로잡혀 말문이 막혀버렸다.

순간, 식당 간판 불빛이 두 사람의 사이를 부드럽게 비추며

조용한 긴장감을 더했고, 유리는 안간힘을 다해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웃음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진상님, 이러다 진짜 저 장사 못 해요.”

하지만 그 말에 이현은 피식 웃으며 한쪽 눈썹을 살짝 올렸다.

“장사 못 하면, 제가 책임질까요?”

그 한마디에 유리는 눈이 커졌다가, 곧 얼굴 전체가 화끈 달아오르는 걸 느끼며 양손을 허리에 얹고 고개를 저었다.

“진짜… 못 말려요.”

잠시 침묵이 흐르고, 이현은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어 코트 자락을 고쳐 잡았다.

“조유리 씨.”

그가 처음으로 조용히, 천천히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

그 이름은 마치 바람에 얹혀온 듯 낮고 은근히 울려 퍼졌고,

유리는 말없이 눈을 감았다 뜨며 마음속에 퍼져가는 울렁임을 어떻게든 감추려 애썼다.

“내일 봐요.”

짧지만 유난히 깊게 박히는 그 인사와 함께 이현은 등을 돌려 골목을 걸어갔고,

유리는 한참 동안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 손끝에 남은 열기를 조용히 가슴께로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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