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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선 긋는 건 너였는데

Author: 데이지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6-17 17:23:46

아침 공기가 아직 서늘한데도 유리의 이마엔 땀방울이 맺혔다.

주방에서 채소 써는 소리가 경쾌하게 퍼져나가지만, 

그녀의 마음은 어쩐지 분주하고 어지러웠다.

칼끝으로 리듬을 타는 손놀림은 점점 빨라졌고, 

심장이 그것보다 먼저 뛰고 있다는 걸 그녀는 누구보다 잘 느끼고 있었다.

‘설마 오늘은 안 오겠지. 아니, 저 진상님도 적당히 해야지… 설마 또?’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을 때, 골목 바깥에서 웅성거림이 몰려들었다.

평소보다 훨씬 큰 소음에 유리는 머리를 홱 돌려 주방 창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 순간,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손에 쥔 수저를 떨어뜨릴 뻔했다.

검은 슈트, 완벽히 정돈된 줄, 비서, 경호원, 운전기사들까지 줄줄이 늘어선 그 끝에서,

이현은 팔짱을 낀 채 여유롭게 웃고 있었다.

그 눈빛은 마치 ‘이 정도는 해줘야 내 스타일 아니겠어?’라고 말하는 듯했고,

그 표정 하나로 골목은 난리가 났다.

“아이고야, 유리야! 저거 네가 데려온 거냐?!”

마춘배 아저씨가 허겁지겁 주방으로 뛰어들어왔다.

유리는 눈가가 떨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 미쳤나봐, 진짜. 저 인간 뭐야…”

잠시 뒤, 식당 문이 열리고 이현이 들어섰다.

그의 등장만으로 골목은 다시 웅성거림으로 가득 찼고,

단골손님들의 수군거림이 작은 폭죽처럼 터졌다.

유리는 손을 허리에 얹고, 마치 투사가 전장에 나서듯 그를 노려봤다.

“진상님, 진짜 이게 뭐하는 짓이에요?”

이현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지극히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줄 서라며. 그래서 줄 섰는데, 뭐.”

짧고 건조한 한마디, 그러나 그 안엔 장난기와 도발이 한껏 섞여 있었다.

“진짜 사람 많이 불렀네? 비서에, 경호원에, 기사까지…  이건 무슨, 동네 습격이세요?”

유리의 한숨 섞인 말에, 이현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눈웃음을 지었다.

“맛있는 밥 한번 먹으려면 이 정도는 해야지. 안 그래?”

그 순간 유리는 얼굴이 붉어지는 걸 느끼며 화를 꾹꾹 눌렀다.

“진짜… 또라이야, 이 사람…”

음식이 완성되어 테이블로 내갈 때쯤,

이현은 짧게, 그러나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이름 뭐야.”

유리는 순간 움찔했다.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자,

그의 눈빛에는 놀라움도, 사과도, 멋쩍음도 없었다.

오직 솔직한 호기심, 그리고 은근히 마음을 찌르는 듯한 뻔뻔함이 가득했다.

“내 이름은 알아서 뭐하게요. 유리예요.  조유리…”

이현은 잠시 입꼬리를 올렸다.

“유리.”

이름을 한번 툭, 던지듯 불러보더니 그냥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유리는 얼굴이 붉어지며 고개를 홱 돌렸다.

“진상님, 이름 알았으면 이제 그만 좀 와요. 진짜요.”

그러나 이현은 팔걸이에 팔꿈치를 기대며 느긋한 미소를 흘렸다.

“이제 이름 알았는데 왜 그만 와. 재밌는데.”

유리는 테이블 위 물수건을 툭 내려놓으며 씩 말했다.

“이런 인간 처음 봤네, 진짜…”

이현은 웃음기가 서린 눈으로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다 짧게 중얼거렸다.

“그래, 너도 처음이야.”

식당 문 너머,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보는 여자가 있었다.

조은별, 이현의 비서. 완벽한 정장을 입고, 

날렵한 턱선을 드러낸 얼굴에는 평소처럼 차가운 미소가 번졌다.

“조유리…웃기네, 정말.”

은별의 눈빛이 서서히 날카로워졌다.

질투라는 이름의 작은 불씨가  그녀의 마음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진상님, 오늘은 또 뭐 먹고 싶으세요?”

유리는 앞치마를 고쳐 묶으며 최대한 무심한 척 물었지만, 

그 말끝엔 살짝 씩 웃음이 배어 있었다.

이현은 테이블에 팔꿈치를 올리고 턱을 괴며 그녀를 빤히 바라보더니,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 오늘 나 보고 웃었지.”

유리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진상님 진짜 사람 말 못 알아들어요?  웃긴 게 아니라 황당해서 그랬거든요?”

하고는 휙 돌아서 주방으로 걸어갔다.

그 발걸음이 조금 더 빠르고,  귀 끝이 붉어졌다는 건 그녀 자신만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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