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Chapter 721 - Chapter 730

732 Chapters

제721화

다시 눈을 떴을 때, 은범의 시선이 시연에게 고정됐다.시연이 아직 그 자리에 있었다.‘꿈이 아니었어?’시연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왜 그렇게 빤히 봐? 싫어?”“아, 아냐... 그런 거 아니야.”은범은 당황한 듯 고개를 급히 저었다.“쳇.”시연은 코웃음을 쳤다.“너, 아무리 아픈 사람이라고 해도, 내가 볼 땐 이제 멀쩡해. 나도 지금 배가 이만한데, 얼른 움직여.” “아, 어...”은범은 이제야 정신이 든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꽃병을 들고 욕실로 향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은범이 돌아왔다.그리고 물을 가득 채운 꽃병을 시연에게 내밀었다.“시연아, 여기.”“고마워.”그런데도 은범은 멍한 표정을 풀지 못했다.시연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내가 와서 신기해? 분명히 말했잖아, 다시 온다고.”“응...”은범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슴 한쪽이 조금은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이상하다... 왜 이렇게 심장이 반응하지...’무뎌졌던 감각이, 서서히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면회를 마친 시연은 돌아갈 준비를 했다.그리고 차를 기다리는 동안, 우연히 다시 장미리를 보게 됐다.장미리는 다른 쪽 출입문에서 급히 나오는 중이었고, 표정은 잔뜩 구겨져 있었다.멀지 않은 곳에, 전에 두 번 본 적 있는 중년 남자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그 남자는 장미리를 보자마자 그녀의 어깨를 끌어안았다.한쪽은 화가 났고, 다른 한쪽은 달래는 중이었다.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결과적으로는 성공한 듯 보였다.장미리는 처음보다는 덜 화난 얼굴로 남자의 가슴을 툭 치고, 고개를 끄덕였다.‘장 여사... 또 저 남자랑?’시연은 눈이 커졌다.‘또 마주쳤네...이게 도대체 몇 번째야? 이 정도면 눈 감아주는 것도 피곤하다.’솔직히, 이런 장면은 보기만 해도 눈에 병이 날 것 같았다.시연은 고개를 돌렸다.하지만 하필이면, 그 순간 장미리가 이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시연이 고개를 돌리는 바로 그 찰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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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2화

‘우리 아버지 저렇게 분노하는 걸 보니...’‘설마, 여기 온 이유가 오직 본인이 만든 결과가 아닌 건가?’“장미리! 장미리!!”지동성의 목소리가 복도 가득 울렸다.“뭐야, 뭔데 그렇게 소리 지르고 난리야?”드디어, 누군가 대답했다.한 중년 남자였다.그 남자는 장미리를 부축한 채, 한 검사실에서 나오는 중이었다. “장미리!!”그 광경을 본 순간, 지동성의 눈이 뒤집혔다.“여... 여보?”장미리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렸고, 중년 남자가 아니었으면 그대로 쓰러질 뻔했다.심지어 얼굴도 하얗게 질려 있었다.떨리는 손으로 지동성에게 다가가며 말했다.“그게... 그게 아니에요. 오해하지 마요. 내가... 다 설명할게요...”“설명?”지동성은 이를 악물며 외쳤다.“도대체 뭘 설명하겠다는 거야? 대체 여긴 왜 온 건데? 대체 무슨 병이길래, 그렇게 숨기려고 하는 거야?” 지동성의 시선이 장미리의 손에 들린 서류로 향했다.한순간, 그는 그것을 낚아채듯 빼앗았다.“여보!”장미리가 황급히 손을 뻗었지만 이미 늦었다.지동성의 시선이 진단서를 훑었고, 그곳엔 또렷하게 ‘임신 초기’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하...”지동성은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이게 뭐야... 이게 지금... 현실이야?’장미리는 눈을 질끈 감았다.‘차라리... 지금 죽어버리고 싶어...’뱃속의 그 아이는, 물론 지동성의 아이가 아니었다.남편은 병상에 누워 있었고, 부부는 이미 오래전부터 따로 잠을 자고 있었다.“어머, 이거... 불륜 현장이네?”“아니, 저 여자... 저 나이에 애를 가졌다고? 와, 대박...”“늙은 조개가 진주를 낳았네, 캬하하...”“여자는 나이 들수록 세지고, 남자는 그 반대라더니!”“...”사람들의 수군거림은 갈수록 적나라해졌고, 시선은 장미리와 지동성을 향해 꽂혔다.지동성의 안색은 점점 더 창백해졌고, 그 시선은 장미리 옆에 선 그 남자에게 향했다.‘이 새끼가... 이 인간이 내 인생을 조롱거리로 만들었어...’분노가 온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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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3화

한때, 지동성은 부명주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다.‘결국 나도... 똑같이 배신당하는 꼴이구나.’지동성은 말없이 몸을 돌려, 병원 출입구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여보, 어디 가요?”장미리는 다급히 뒤쫓아가 지동성의 소매를 붙잡았다.“가지 마요! 나, 나 정말 잘못했어요... 제발, 제발... 으흑...”“놔.”지동성은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이젠 쳐다보는 것조차 역겨워.’“안 돼요... 안 돼요...”장미리는 눈물과 콧물로 얼굴이 범벅된 채 매달렸다.그러다 갑자기, 그녀의 시선이 시연을 향했다.분노로 가득 찬 눈빛이었다.“너지?! 너 맞지?!”“뭐라고요?”시연은 어이없어 고개를 갸웃했다.“흥.”장미리는 비웃듯 코웃음을 쳤다.“그래, 너야. 오늘 병원에서... 날 봤잖아.”‘강울대병원... 그때 날 본 게, 시연이었어?’이제야 모든 게 확실해졌다는 듯, 장미리는 이를 악물었다.시연은 피하지 않고 담담히 말했다.“맞아요. 오늘도 봤고, 그전에도 두 번이나 더 봤어요.”장미리의 얼굴이 순식간에 질렸다가 붉어졌다.그 눈엔 분노와 공포가 뒤섞여 있었다.“그래서 너야?! 네가 다 불었지?! 날 죽이려고 작정한 거야?!”‘무슨 안 되는 논리야...’시연은 어이가 없어 말을 잃었다.“시연아.”지동성이 딸을 바라봤다.“너, 알고 있었구나.”“네...”시연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하... 하하.”지동성은 어깨를 떨어뜨린 채, 깊은 허탈 속에서 비웃듯 웃었다.그리고 갑자기 힘껏 팔을 뻗어, 장미리를 밀쳤다.“꺄악!”장미리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넘어진 채 배를 감싸 안았다.‘뭐야... 왜 이렇게 아파...?’순간, 장미리의 시야가 흐려졌다.“아파... 배가... 으윽...”신음을 흘리며 바닥에 몸을 웅크렸다.그녀의 하체 아래로, 선홍빛 피가 스멀스멀 번지기 시작했다.“뭐, 뭐야... 피잖아?! 야! 의사! 간호사!!”중년 남자가 다급히 장미리를 부축하며 고함쳤다.“사람 살려요!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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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4화

‘사람 목숨...?’시연은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소미의 말을 정정했다.“네 어머니, 임신 주수가 너무 짧았어. 그건 아직 ‘사람’이라고 부르기엔 너무도 미완성인 세포 덩어리일 뿐이야.”“지시연... 너... 정말, 너무 잔인해...!”‘잔인?’시연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웃었다.“그렇게 흥분하는 거 보니까... 혹시, 동질감이라도 느끼는 거야?”“그럴 수도 있겠다. 너도 네 엄마가 바람나서 생긴 아이잖아. 그러니, 똑같이 바람나서 생긴 동생에게 애착이 생기는 것도... 이해해.”말투는 평온했지만, 시연의 말 하나하나는 소미의 급소를 찌르듯 날카로웠다.‘상처? 그건 네 사정이고, 난 그냥 사실을 말했을 뿐이야.’“너, 너...!”소미는 말문이 막혀 더 이상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그때, 유건이 전화를 마치고 돌아왔다.“여보.”소미를 보곤 약간 놀란 듯했지만, 그 이상의 반응을 보이지 않고 시연 옆으로 자연스럽게 다가갔다.“소미 씨.”“유건 씨?”소미는 유건을 한 번, 시연을 또 한 번 번갈아 쳐다봤다.‘뭔가... 이상해.’‘고유건이 여기에 온 건 분명 나 때문일 텐데.’그런데 왜... 첫마디가 ‘지시연’이고, 그것도 ‘여보’라고 부르지?“지시연! 두... 두 사람 이혼한 거 아니었어?”‘또 그 말이야.’시연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진짜 엄마와 딸이라는 게 딱 느껴지네. 말하는 것도 똑같아.’“아니야.”이번엔 유건이 입을 열었다.차분하지만 단단한 목소리였다.“우린... 이혼하지 않았어.”“이혼 안 했다고요?”소미는 충격받은 얼굴로 멍하니 두 사람을 바라봤다.“왜... 왜 그런 거예요...?”유건은 시연을 슬쩍 바라봤지만, 시연은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네가 판단해.’그런 눈빛이었다.유건은 잠시 망설였지만, 피할 생각은 없었다.‘다친 사람 마음을 신경 쓰기엔, 우리도 너무 멀리 와버렸어.’ 딸깍-입을 열려던 순간, 병실 문이 열리고 오성수 변호사가 모습을 드러냈다.“변호사님!”소미는 서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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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5화

한때, 부명주가 살아 있었고, 장미리는 그저 지동성의 애인이었던 시절.장미리와 장소미, 그 모녀는 어디서든 당당하게 얼굴을 들 수 없었다.소미는 그때를 떠올릴 때마다 아직도 몸서리쳐졌다. 매일 불안에 떨며 숨어 지냈고, 누구에게도 정체가 들켜선 안 됐으니까.“다 네 엄마 때문이야!”소미는 울먹이며 시연을 향해 외쳤다.“네 엄마는 아빠를 향한 마음도 없었으면서, 끝까지 지씨 집안 안주인 자리를 놓지 않았어! 그래서 우리 엄마가 얼마나 참았는데... 그래서 결국 내가 사생아가 된 거라고!” ‘진심이야? 그게 진짜 네 진심이라고?’ 시연은 눈이 동그래졌다.“장소미, 넌 지금 네가 피해자라고 믿는 거야?”“이제 기분 좋지?”소미는 이를 악물고 시연을 노려봤다.“네가 밀고해서 우리 엄마는 유산 한 푼 못 받게 됐어. 그래, 이제 남은 건 전부 네 몫이 되겠지! 이제 만족스러워?”“뭐라고?”시연은 말문이 막혔다.‘정말 대단하다, 이 모녀. 내가 밀고 안 했다고 몇 번을 말해도 안 들어...’‘그리고 설령 내가 밀고했다고 해도, 잘못은 너희가 한 거잖아? 그런데 왜 나한테 화를 내?’ “분명히 말했잖아, 그런 적 없다고. 근데 설령 내가 일렀다고 해도, 잘못한 사람이 먼저 반성해야 하는 거 아닌가?” “드디어 인정하네! 결국 네가 한 거잖아!”소미가 소리쳤다.“지시연, 넌 진짜 우리 엄마가 죽어야 속이 풀리겠어?”‘내가 방금 그렇게 말했나? 대화가 안 돼. 완전히 논리가 무너졌어.’“그렇게 좋아하지 마.”소미는 붉어진 눈으로 이를 갈며 말했다.“우리 아빠랑 엄마는 수십 년을 함께한 사이야. 그 사이가, 잠깐 화났다고 해서 끝날 수 있다고 생각해? 지금은 그냥 아빠가 많이 화난 것뿐이라고!” 시연은 피식 웃었다.‘그럼 우리 엄마랑 아버지는? 그 오랜 세월의 정도 결국 그렇게 끝이 났잖아.’ ‘세상에서 제일 믿을 수 없는 게 사람 마음이야. 사람 마음은... 누구도 예측 못 해.’소미는 홱 돌아서려다, 시선을 유건에게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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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6화

“뭐라고요?”소미는 멍하니 굳어버렸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유건은 조용히 말을 이었다.“내가... 시연이를 붙잡았어. 겨우, 겨우 설득해서... 시연이가 한 번만 기회를 주겠다고 한 거야.”“그만해요!! 됐어요!! 그만하라고요!! 듣기 싫으니까!!”소미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말을 끊었다. 눈물이 쉴 새 없이 흐르고 있었다.그러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울부짖듯 외쳤다.“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내가 무슨 생각하는지, 뭘 원하는지... 당신 정말 몰랐어요? 정말 몰랐단 말이에요?”유건은 아무 말 없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 눈빛에는 약간의 흔들림이 있었다.소미는 유건을 올려다보며, 헛웃음을 지었다.“다 알았잖아요... 알면서도, 나한테 그런 말 해요? 진짜... 너무 잔인해요!!”유건은 눈썹을 찌푸렸지만,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지금은 무슨 말을 해도 변명밖에 안 돼.’‘그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못할 거야.’“당신, 뭐라고 말 좀 해봐요.”소미는 눈물을 흘리며 유건을 똑바로 바라봤다.“진짜 나한테... 아무 말도 안 할 거예요?”유건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울대를 움직이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소미는 얼빠진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그게 다야? 미안하단 말 한마디?’‘그게... 당신이 나한테 할 수 있는 전부야?’하지만 유건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이 이상은 말해봤자 의미 없어.’‘아무리 설명해도, 고통은 덜해지지 않으니까.’“소미 씨, 몸 상하면 안 돼. 상처도 아직 아물지 않았잖아.”유건은 조용히 말했다.“간병인 불러줄게. 병실로 돌아가.”유건이 몸을 돌려 걸음을 떼려던 순간, 소미가 다급히 불렀다.“유건 씨!”유건은 멈춰 섰지만, 고개는 돌리지 않았다.“정말, 다 잊은 거예요? 우리 사이에 있었던 일들, 추억들... 그 모든 걸 진짜... 다 잊을 수 있다고요?”찰나의 정적.유건은 그대로 뒤돌아보지 않은 채, 낮게 대답했다.“소미 씨, 지나간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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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7화

오늘, 시연은 주하은과 식사 약속이 있었다.하은은 인턴을 무사히 마치고, 며칠 뒤엔 정식으로 병원에 출근할 예정이었다.며칠째 진아를 못 본 터라, 시연은 자연스럽게 진아도 함께 불렀다.셋이 모이니 오랜만에 웃음이 넘쳤다.여자 셋, 수다와 웃음은 끊이질 않았다.하은은 시연을 힐끔 보며 말했다.“이제 너는 완전... 작은 재벌 아니야? 굳이 일 안 해도 되는 거잖아?”‘뭐... 그렇게 말할 수도 있지.’지동성의 유언장.그 최종 수혜자는 시연이었다.시연은 더 이상 고씨 집안의 사모님이 아니었지만, 일반적인 기준으로는 이미 ‘부자’였다. “하...”하은은 한숨을 쉬며 어깨를 으쓱였다.“나는 아직 앞날이 깜깜한데... 부럽다, 진짜.”하은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화장실 좀 갔다 올 건데, 너희도 갈래?”“아니.”“난 괜찮아.”하은이 자리를 비우자, 진아가 시연의 손을 꼭 잡았다.“하은이 말은 신경 쓰지 마. 작은 재벌이라느니, 일은 안 해도 되겠다느니 하는 그런 말 말이야.” “진짜 친구는 아는 거야. 네가 여기까지 오기까지 뭘 겪었는지. 그 어떤 돈으로도, 네가 겪은 걸 보상할 순 없어.”“알아.”시연은 조용히 웃으며 진아의 손을 가볍게 두드렸다.‘곁에서 묵묵히 있어 주는 이런 친구 하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지.’ 잠시 후 돌아온 하은은 진아의 가방을 슬쩍 보았다.그곳엔 서류봉투가 들어 있었다. “그게 뭐야?”하은이 물었다.“아, 이거?”진아가 봉투를 살짝 들어 보이며 대답했다.“오늘 오후에 은행 들를 일 있어서. 알다시피, 요즘 집이 좀 힘들잖아.”시연은 그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아... 진아가 직접 은행까지 나서야 할 정도면, 생각보다 사정이 더 안 좋은가 봐.’임씨 집안의 사업은 원래 태권이 맡기로 한 것이었다.형제지만, 태권은 경영 전공, 진아는 의학 전공.애초부터 길이 달랐다.‘그런데... 이젠 진아까지 나서야 해?’시연의 시선을 느낀 듯, 진아가 웃으며 말했다.“그냥,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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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8화

갑자기, 지하는 와인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그리고 망설임 없이, 건너편 테이블을 향해 걸어갔다.그 순간, 진아도 흠칫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그 반동에 김영철의 잔이 쏟아졌고, 유리컵은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뭐 하는 겁니까, 이게?”김영철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진아야?”태권은 당황해하며 동생을 바라봤다.“오빠...”진아는 눈가에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한 눈물을 가득 머금은 채, 입술을 덜덜 떨고 있었다.‘나... 이런 일 처음이야. 너무 수치스럽고, 무서워서 말이 안 나와...’“이게, 이게...”태권은 더 혼란스러워졌다.“말해봐, 무슨 일이야?”“이 변태 새끼가 네 동생한테 손댔잖아.”낮고 단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바로 지하였다. 지하는 조금 전, 반대편 룸에서 이 모든 장면을 보고 있었다.김영철이 진아의 손등을 슬쩍 잡았고, 진아가 당황해 손을 뺐는데도, 오히려 손길은 다리 위로 내려가고 있었다.‘더러운 놈.’말이 끝나기 무섭게 태권이 충격에 휩싸인 목소리로 말했다. “진짜야? 진아야... 사실이야?”진아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말없이 눈물만 뚝뚝 흘렸다.‘더 말해 뭐해... 이건 명백한 거잖아.’“이 죽일 놈의 새X!”태권은 순간적으로 분노에 휩싸여 김영철을 향해 달려들었다.주먹을 들고 휘두르려는 찰나, 그 손목을 지하가 단단히 붙잡았다.“잠깐.”“뭐야, 왜 막아! 저런 쓰레기를 가만둬야 해?”태권이 분노 섞인 눈으로 지하를 노려봤다.지하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그래, 막아야겠다. 이러다 또 경찰서라도 가고 싶은 거야? 네 동생 눈에서 또 눈물 나게 할 거냐고.” 태권은 순간 얼어붙었다.‘이 사람, 우리 집 사정을 아는 건가?’“너 누구야? 진아 친구야?”그렇게 말하며, 태권은 조심스럽게 진아를 바라봤다.진아 역시 놀란 듯 지하와 태권을 번갈아 보며 눈을 떴다.‘부지하... 왜 여기 있는 거야?’‘그리고... 왜, 나를 이렇게 지켜주는 거지?’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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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9화

“쳇.”지하는 살짝 혀를 찼다.‘진짜... 보기 거슬리네.’눈앞에서 다정하게 머리를 쓰다듬는 장면을 보며, 지하는 속이 좀 쓰렸다.‘그래도 다행이네. 친오빠니까.’하지만... 솔직히 말해, 아무리 친오빠라도 거슬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지하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그리고 슬쩍 태권을 향해 말했다. “임 대표님, 아까는 정말 실례가 많았습니다. 반말도 하고...”“저희를 도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태권도 바로 예의를 차리며 감사를 표했다. “혹시 제가 진아 씨랑 단둘이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지하는 이제야 본론에 들어갔다.“그건...”태권은 망설이며 진아를 바라봤다.“오빠, 괜찮아.”진아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태권의 손을 놓았다.“그래, 알겠어.”태권은 잠시 고민했지만, 아까 지하가 보여준 행동을 떠올리며 신뢰를 느꼈다.동생의 끄덕임도 결정적인 것이 되었다. 그는 진아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고 말했다.“오빠는 밖에서 기다릴게.”“응.”태권이 자리를 비우자, 진아는 고개를 들고 지하를 바라봤다.“아까는... 고마웠어요.”“뭘 그 정도로.”지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어 보였다.“근데...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 진아 씨가 굳이 임 대표까지 따라다니면서 술자리에 나와야 해?”지하는 김영철이 어떤 인간인지 잘 알고 있었다.그러니 마음이 더 불편했다.“돈이 필요해?”“네...”진아는 솔직하게 답했다.“여기저기 다 알아봤는데, 김영철 이사님만 얘기를 들어주겠다고 하셨어요. 결과는... 이렇게 되었지만요.” “진짜 안 됐다.”지하는 담배를 깊게 빨아들이고, 길게 연기를 내뿜었다.그리고 입꼬리에 묘한 웃음을 띠며, 시선을 진아에게 고정했다.“그나저나 진아 씨 남자 친구는 뭐 하는 놈이야? 이렇게 집이 힘든데, 손 하나 안 보태?”그 말에 진아는 순간 멈칫했다.‘아...’예전에 괜히 지하 앞에서 거짓말했던 게 떠올랐다. 그땐 그 상황을 모면하려고, 진성빈이 자기 남자 친구라고 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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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0화

지하는 살짝 눈썹을 치켜올렸다.‘참, 어리숙하긴. 이 타이밍에 대출 얘기나 좀 꺼내보지.’‘내가 그렇게까지 말했는데도 못 알아듣나?’하지만 진아는 정말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그저 단 하나의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다.‘빨리, 이 사람한테서 벗어나자.’“그럼, 저... 갈게요.”진아는 조심스럽게 몸을 숙여 소파 위에 놓아둔 가방과 외투를 챙겼다.지하는 아무 말 없이, 그 조심스러운 손짓을 가만히 바라보았다.그때, 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진아가 작게 딸꾹질했다.“에, 엣!”‘울다가 딸꾹질이라니...’얼굴은 금세 새빨개졌고, 진아는 더 민망해진 얼굴로 재빨리 외투를 입고 도망치듯 밖으로 나갔다.“엣! 엣...!”멀어져 가는 복도 끝에서도 그 딸꾹질 소리는 지하의 귀에 또렷이 들렸다.피식-지하는 웃음을 터뜨렸다.“애는 애지. 저렇게 순한 애한테는, 나도 마음 놓고 함부로 못 하겠더라.”지하는 마지막 담배를 꺼내려다 말고,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재명아.”“도련님.”기재명이 조용히 나타났고, 지하는 손가락을 까딱하며 말했다.“일 하나 시킬게.”...밤.유건은 평소보다 조금 일찍 귀가했다.잠시 후 외출 일정이 있었기에, 시연과 먼저 저녁을 먹기로 했다.식탁에 마주 앉은 시연은 왠지 모르게 표정이 밝지 않았다.유건은 반찬을 집어 시연의 그릇에 올려주며 물었다.“왜 그래? 입맛 없어?”“아니요.”시연은 고개를 저으며 조용히 말했다.“오늘 진아를 만났는데... 너무 말랐어요. 예전엔 볼살이 통통했는데, 이제는 턱선이 다 보일 정도예요.”‘그 정도야...?’유건은 잘 떠오르지 않았다.아예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진아의 턱이 원래 어땠는지도 가물가물했다. 유건에게 진아란, 그저 시연의 친구.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알겠어. 임진아가 네 친구인 건 나도 아는데... 모르는 사람이 보면 임진아가 네 딸인 줄 알겠어. 네가 하도 걱정하니까.” “푸흣!”시연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아!!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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