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Chapter 1021 - Chapter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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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1화

황제가 눈을 떴을 때 그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상상조차 어려웠다.소우연의 머릿속은 수없이 얽힌 실타래처럼 복잡하고 어지러웠다.그녀는 애써 몸을 일으키는 이육진을 부축하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폐하, 오라버니께는… 제가 직접 말씀드리겠습니다. 경문이는 죄가 없어요.”“그 아이는 목숨을 걸고 폐하를 구하였고, 마땅히 할 일을 다했습니다.”“그러니 제발 그 아이가 스스로 자책하지 않게 도와주세요. 지금 오라버니 곁에 가장 가까운 사람은 그 아이뿐입니다.”정중은 세상을 떴고, 정 태부는 장공 스님과 함께 이천을 데리고 먼 길을 떠났다.그리고 그녀 자신은 너무나도 많은 화를 그에게 끌어안게 했다.그 무게는 지금도 그녀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다.경문의 입술이 떨렸다.“황후 마마 부디 허락하여 주세요. 어르신께서 눈을 뜨실 때까지… 이 자리를 떠나지 않고 무릎 꿇고 기다리겠습니다. 혹시라도 어르신께서 저를 용서해 주신다면… 다시는, 절대로 그분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소우연은 조용히 그의 손을 놓았다.그 순간 수많은 장면들이 그녀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그중엔 흠천감에서 꾸었던 그날의 꿈도 있었다.생각해보면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용강한이라는 사람은 세속과 어울리지 않는, 바람처럼 맑고 고고한 사람이었다.그런 그가 자신에게 기회를 주었고, 그녀가 다시 태어난 후엔 온 힘을 다해 살아남게 해주었다.그녀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 사랑하는 이를 지킬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용강한 덕이었다.그의 마음은 언제나 변함이 없었고, 두 생을 걸쳐 지켜낸 그 일편단심은 말로 다 형용할 수 없을 정도였다.그런 그가 경문에게 분명 경고를 남겼다.하지만 정말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이 아이를 용서할 수 있을까?그것만은… 소우연도 알 수 없었다.깊은 밤.궁 밖에서 함향과 간석의 환희 어린 외침이 들려왔다.“마마! 마마! 폐하께서… 폐하께서 눈을 뜨셨습니다!”함향이 숨이 턱에 찰 정도로 가쁘게 급히 달려왔다.“폐하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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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2화

창백한 얼굴, 눈처럼 희어진 머리카락.본래는 선혈처럼 붉던 입술마저 빛을 잃어 하얗게 바래 있었다.온몸에서 생기가 빠져나간 듯한 그의 모습은,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을 옥죄어왔다.이육진은 속으로 간절히 빌었다.‘용강한... 부디, 무사해야 한다.’“부군, 괜찮으십니까?”소우연은 이육진의 점점 깊어지는 미간을 바라보며,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그들이 용강한에게 진 빚은 너무도 컸다.“괜찮다.”그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고, 끝자락엔 울컥한 감정이 실려 있었다.이번에 그는 정말이지 자신이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그래서 용강한에게 나라와 소우연, 그리고 그의 아이까지도 맡기려 했었다.그가 조금이라도 욕심을 부렸더라면, 어쩌면 미래는 달라졌을 수도 있다.여기까지 생각하자 그는 더는 생각을 잇지 못했다.만에 하나라도 그가 욕심을 냈다면, 이 모든 것은 그의 손에 들어갔을 것이다.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오히려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을 살렸다.그리고 지금, 피 한 방울 돌지 않는 얼굴로 마치 송장처럼 침상에 누워 있었다.“태의원에서 진찰은 받았느냐.”이육진이 물었다.소우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다녀갔습니다. 그리고 저도… 직접 살펴보았습니다.”“언제쯤 깨어날 수 있느냐.”“아직 확답하긴 어렵습니다. 오늘일 수도, 내일일 수도, 아니면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습니다.”그리고 어쩌면 그는 영영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었다.이육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직이 말했다. “그래…”소우연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지금은 상태가 안정되었지만, 아직 위험한 고비를 넘긴 것은 아닙니다. 며칠 더 지켜보아야 할 듯합니다. 부군께서는… 먼저 궁으로 돌아가시겠습니까?”그는 고개를 저었다.“내 몸은 별문제 없다. 나도 너와 함께 용강한을 돌보도록 하마.”“저와 함께 오라버니의 곁을 지키시겠단 말씀이세요?”“그래. 용강한은 목숨도 아끼지 않는 사내였다. 하지만 나는 한때 저 자를 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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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3화

그를 영원히 깨어나지 못하게 둘 수는 없었다. 절대, 그래서는 안 된다!“무슨 수를 써서라도, 용 대인을 꼭 구해내야 한다!”이육진은 죽을 쑤어 먹으면서도 분을 참지 못하고 이 원사에게 화를 터뜨렸다.이 원사는 억울할 수밖에 없었다. 황후의 뛰어난 의술로도 손쓸 수 없는 상황인데, 자신들에게서 과연 무슨 해답이 있으랴. 정말로,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건 아닐까. 그리 생각하였다.이 원사가 물러난 뒤, 소우연은 조용히 수저를 내려놓고 말없이 자리를 나섰다. 그리고는 곧 장우주가 이 원사를 다시 불러들였다.밖은 바람이 차고 거세게 불었다. 옷깃 사이로 스며든 냉기가 뼛속을 파고들 정도였다.“아까 용 대인이 일부러 깨어나려 하지 않는 듯하다고 했느냐?”소우연이 물었다.이 원사는 고개를 끄덕였다.“사실 나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스스로 깨어나고 싶지 않으신 건 아닐까...”이 원사는 두 손을 모아 경의를 표했다. “소신 또한 같은 생각입니다. 게다가 용 대인의 얼굴엔 옅은 미소가 늘 떠 있었습니다. 아마 꿈속에서 즐겁고 평온하셨던 듯합니다.”꿈속에서 즐겁고 평온했다니.그녀는 이미 몇 번이나 용강한이 잠결에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이육진도 두 번이나 들었다고 하지 않았던가.“처방전은 가져왔느냐?”소우연이 물었다.이 원사는 소매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어 올렸다. “황후 마마, 여기 있습니다.”소우연은 처방을 슬쩍 훑어보았다. 자신이 생각했던 약 처방과 다르지 않았다.혹시나 마음이 앞서 그릇된 선택을 할까 싶어, 일부러 이육진의 눈앞에서 이 원사들과 함께 진찰을 맡긴 것이었다.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그럼, 이 약대로 달이도록 하여라.”“예.”이 원사는 나가기 전, 그 약처방전을 경문에게 전달하고 갔다. 경문은 약을 달이러 가거나 탕약을 들고 가는 일에 매여 있었고, 그 외의 시간은 죄인처럼 용강한 앞에 꿇어앉아 참회하고 있었다.“황후 마마.”경문이 야채죽이 담긴 쟁반을 들고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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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4화

“이대로 두면 어쩌면 좋으냐.”이육진이 소우연을 바라보며 물었다. 소우연은 고개를 저었다. 사실 그녀도 매우 난감했다. 스스로 깨어나기를 거부하는 자, 심지어 먹을 생각조차 없는 자. 그는 음식을 입에 넣어도 씹지도 않았다. 병이 들지 않아도, 이대로라면 굶어 죽게 될 터였다.생각할수록 마음이 무거웠다.“국물만이라도 먹이는 게 좋겠구나.”이육진이 말했다.소우연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그저 죽처럼 묽은 국물만이라도 따로 떠내어 용강한의 입에 먹여줄 수밖에 없었다.그녀는 그의 입가에 흐른 국물을 조심스레 닦아주었다.그때, 함향이 말했다. “마마, 제가 하겠습니다.”이상한 일이었다.황제는 소우연이 용 대인을 이렇게 돌보는 일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어쩐지 이상했다.소우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그릇을 건넸다.“치우거라.”함향은 공손히 허리 숙여 물러났다.이제 방엔 소우연과 이육진 둘만 남았다.“폐하, 병세가 많이 호전되셨습니다. 이제 조정에도 다시 나가셔야지요.”“알고 있다.”이육진이 대답했다. 그러곤 용강한을 바라보며 물었다. “저 자를 궁 안으로 들이는 건 어떻겠느냐?”“혹시, 흠천감을 말씀하시는 겁니까?”소우연이 물었다.“영화궁 옆의 정곤전에 머물게 하여라.”이육진이 말했다.“부군…”“괜한 생각은 하지 마라. 나는 그저 널 믿을 뿐이다. 너의 마음이 나와 같다는 걸, 그저 용 대인을 걱정하는 마음뿐이라는 걸 말이야.”소우연의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자신과 이육진, 두 사람 모두 용강한을 향한 그 감정이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이상한 감정'으로는 규정지을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이 세상 그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깊고 복잡한 인연이라는 것을 그 두 사람은 그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그리고 사흘 후, 이육진과 소우연은 함께 궁으로 돌아갔고, 용강한 또한 정곤전에 자리를 잡았다.소우연은 틈만 나면 정곤전에 들러 용강한을 살폈고, 이육진 역시 마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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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5화

이육진은 위문현과 위금성 등의 죄목을 2~30 가지나 줄줄이 나열하게 했다. 나중에 이 죄목들을 그대로 죄책문에 새겨 염부 문 앞에 내걸겠다고 했다.“그자들의 동상에 썩은 달걀이나 몇 개 던져지겠구나.”마침내 죄목이 모두 정리되자, 어사대부는 손을 떨며 문서를 올렸다. 이육진은 그 내용을 훑어본 뒤 말했다.“이대로 새겨라. 다만 옆에 한 줄 덧붙여라.”“폐하, 어떤 문구를 추가하시겠습니까?”“그자들을 때리고 욕한 자는 모두 하는 일마다 술술 풀릴것이라고 적거라!”이육진은 꽤나 분노에 차 있었다. 자신도 이 행동이 조금은 유치하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도무지 참을 수 없었다.금성이 아니었더라면, 그 수많은 아이들과 소녀들,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용강한도, 그를 구하려다 지금까지 깨어나지 못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그는 진심으로 원망했다. “용강한이 깨어 있었다면 아마 그자의 혼을 날려버리지 않았겠느냐. 아니, 혼을 날려버리는 것조차 아깝다. 혼백이 매일같이 고통받게 해야 한다!”금융궁.혈충인의 문제가 마무리된 후, 심초운은 다시 심부로 돌아갔다. 그로 인해 이영은 한동안 말수마저 줄어들 정도로 근심에 잠겼다. 다행히도 심초운은 매일같이 궁에 들렀고, 서당에서 그녀와 함께 글공부를 했다.가끔은 금융궁에 머무르기도 했다.그렇게 나날이 흘러갔다.그러던 어느 날, 이영은 용강한이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가 계속 정곤전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영은 다급히 영화궁으로 달려갔다.이때 이육진은 아직 조정에서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다. 이영은 곧장 소우연을 찾아갔다.“어머니, 어머니…!”소우연은 다급한 목소리를 듣고 잠시 멈칫했다가, 창밖의 밝은 하늘을 바라보았다.“이 시간에 서당엔 안 가고 무슨 일이냐?”함향이 말했다. “아마 무슨 급한 사정이 있나 봅니다. 혹시 정태부께서 휴가를 내셨을지도요.”얼마 지나지 않아 이영이 모습을 드러냈다.“어마마마, 외삼촌이 아프시다면서요?”소우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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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6화

이영은 또르르 눈물을 흘리며 소우연을 올려다보았다.“외삼촌은… 영영 깨어나지 않으시는 거예요?”소우연은 입술을 달싹였다가, 말없이 이영의 눈물을 닦아주었다.“깨어나실 거다. 분명히 깨어나실 것이야.”그녀는 정말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그런데 외삼촌은 자고 계신데, 밥은 어떻게 드셔요? 안 드시면, 배 안 고프셔요?”배가 고프지 않을까? 고프지 않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스스로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었다.요즘엔 매일같이 고깃국이나 쌀죽을 조금씩 넘기는 게 전부였다. 고깃국 속의 다진 고기나 쌀알도 삼키지 못하고, 그저 국물 몇 숟가락만 입에 댈 수 있을 뿐이었다.이렇게 계속되다간, 과연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그녀도 알 수 없었다.“배고프실 거야.”소우연은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다, 다시금 소녀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이번에도 외삼촌은 아바마마를 구하셨단다. 그러니 앞으로 외삼촌께 잘 해드려야 한다, 알겠지?”“그럼요.”이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침상 위에 누운 용강한을 돌아보았다.하얀 얼굴, 머리칼보다도 창백한 피부. 하지만 붉은 입술과 선이 고운 눈썹, 길게 뻗은 속눈썹은… 마치 책 속에서 그려지는 신선 같았다.“근데… 어마마마, 외삼촌한테 더 많이 말 걸어드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 말을 많이 하면… 혹시 듣고 일어나실 수도 있잖아요?”이영이 고개를 갸웃하며 묻자, 소우연의 눈에 번뜩이는 빛이 스쳤다.그렇다. 그녀도 매일같이 병실에 찾아와 말을 걸긴 했지만, 어쩐지 조용히 속삭이듯, 마치 깨울까 조심하는 마음으로 대하곤 했었다.이영은 어머니의 손을 툭툭 치더니, 가볍게 바닥에 내려서더니 이내 침상 가장자리에 몸을 기댔다.“외삼촌, 제가 말하는 게 들리나요?”“외삼촌, 저한테 큰 목마를 만들어주신다 했잖아요. 근데 계속 자고 계시면 어떡해요? 대체 언제 만들어주실 거예요?”“외삼촌, 진짜 제 말이 들리긴 하는 거예요? 엉엉… 흐앙…”말하다 말고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옆에서 지켜보던 함향은 손등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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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7화

물론, 이번 일에서 가장 아찔했던 건 이육진과 용강한이었다. 정태부는 내막을 알지 못했지만, 방금 소우연이 한 말만 들어도 이육진을 구한 사람이 용 강한이라는 건 분명했다. 이건 너무나도 크나큰 은혜였다!“어마마마,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이영은 이제 소우연의 정신 상태가 걱정되기 시작했다.소우연은 말을 이었다. “이 상운국 말이다. 네 외삼촌이 없으면 대체 어찌 되겠느냐?”그녀는 이영을 향해 눈짓을 하며, 일부러 우는 목소리를 냈다.이영은 입술을 꼭 다물었다. 소우연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건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그냥 헛소리를 하는 걸까? 아니면, 외삼촌을 정말 아끼시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자, 어마마마, 이젠 외삼촌을 좀 쉬게 해드려요.”조금 전까지만 해도 울음을 터뜨리던 이영은, 이제 놀고 싶어진 듯한 얼굴이었다.소우연은 말했다. “그래, 먼저 가 있거라. 어미도 곧 따라가마.”이영은 소우연을 한 번 더 바라보다가, 슬픔도 잊은 채 고개를 끄덕이며 나갔다.그녀는 당안과 송이와 함께 처소로 돌아갔다.소우연은 침상 끝자락에 앉았다. 용강한의 손을 살며시 잡고, 그 손에서 태극구를 조심스레 꺼내 그의 곁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그의 맥을 짚었다.그런데, 정말로… 그의 맥에 희미하게 기운이 돌기 시작한 것이다.소우연은 얼굴에 감출 수 없는 격한 기색이 어렸다.그리고는 용강한에게 이런저런 말을 쏟아냈다. 대부분은 걱정스러운 말뿐이었다. 그가 듣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방금 이영이 난리를 피운 덕에 소우연은 그제야 깨달았다. 그래, 날마다 시도때도 없이 수다를 떨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면 혹시 모른다. 더 빨리 깨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황후마마.”경문이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그의 손엔 약 그릇이 들려 있었다.소우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약을 받아 들었다. 경문은 능숙하게 용강한의 상반신을 받쳐 일으켰다. 둘이서 무척 익숙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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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8화

소우연은 태극구를 말끔히 닦아 이육진의 손바닥에 다시 쥐여주었다. 극한의 한기와 열기로부터라도 그의 몸을 보호해줄 수 있다면, 그걸로도 충분했다. 도술의 영역은 이제 그녀가 감당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그녀는 문득 생각이 났다. 하루가 멀다 하고 정문이 꿇어앉아 기도를 드리고 자책하던 일들을 말이다. 그녀는 입술을 열어 중얼거렸다.“오라버니, 제발 어서 깨어나세요. 깨어나 저를 꾸짖든, 경문을 꾸짖든 해주세요.”그리고 그 고충도 말이다.예전에 용강한이 그랬다. 이 고충은 본인의 피로만 길러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고충이 죽는다고…꼭 그렇게까지 해야 한다면, 왜 자신의 손을 베고, 자신의 피를 먹이면 안 되는 걸까?소우연은 말없이 잠든 용강한을 바라보며 눈물을 떨구었다. 대체 왜, 왜 이렇게도 깨어나 주지 않는 걸까.그녀는 의원으로서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이럴 땐 함께 있었던 일들, 사소한 기억이라도 들려주는 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말이다.그때였다. 이육진이 조정 업무를 마치고 돌아왔다.그가 곧장 향한 곳은 정곤전, 용강한의 침전이었다. 그 안에는 소우연이 침상 곁에 앉아, 다정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이육진의 걸음이 잠시 멈췄다. 가슴 한켠에선 여전히 알 수 없는 질투심이 일렁였지만, 입가엔 옅은 미소가 맺혔다. 그 역시 용강한처럼 의리를 저버리는 사람이 아니었다.심지어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만약 용강한이 눈을 뜬다면, 그와 소우연 사이에 어떤 형제의 정이 있든, 그는 개의치 않을 것이다.그는 소우연을 믿고, 용강한 또한 믿었다.그 순간, 은은하고 맑은 향이 코끝을 스쳤다.소우연이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 이육진이 서 있었다. 아직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였다.소우연은 눈가가 벌겋게 달아오른 채 그를 향해 미소 지었다.이육진은 서둘러 다가와 곁에 의자를 끌어 앉고, 용강한의 손에 쥐어진 태극구를 살며시 감싸쥐었다.“용 대인은 좀 괜찮느냐.”그가 조심스레 물었다.소우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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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9화

“오라버니, 들리시죠? 제발 깨어나서 저희한테 뭐라도 말 좀 해주세요.”소우연과 이육진이 번갈아가며 용강한에게 한마디씩 건넸다.방 안은 차분한 듯하면서도 소란스러웠다.그렇게 반 시진이 흘러간 뒤에야 두 사람은 자리를 떴다.곧이어 경문이 방에 들어왔다.움직임 없는 용강한을 말없이 바라보던 그는, 조용히 다가가 몸과 다리를 조심스럽게 주물렀다.이 모든 수기법은 황후 소우연의 구체적인 지시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었으나, 경문은 마음속으로 믿고 있었다.분명 이 손길이 주인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그래서 하루도 빠짐없이, 게으름이라곤 털끝만큼도 없이 손을 놀렸다.그렇게 하루하루가 쌓여, 어느덧 보름이 넘게 흘렀다.황후가 용강한에게 이렇다 저렇다 말을 건네는 날이면, 이영도 빠짐없이 찾아와 한바탕 울음을 터뜨리곤 했다.그러던 어느 날.소우연은 이영의 손을 잡고 정곤전에서 나서며 나지막이 말했다.“얌전히 외삼촌께 인사드릴 순 없느냐? 어찌 맨날 울기만 하느냐.”이영은 고개를 들어 황후를 바라보며 말끝을 올렸다.“조용히 하면 외삼촌이 못 들으실까 봐요.”소우연은 할 말을 잃고 눈만 깜빡였다.이영은 시큰둥하게 어깨를 으쓱였다.사실 그 말은 아버지인 황제께서 하신 말이었다.울고 떼쓰고, 심지어 말도 안 되는 억지까지 부려야 그 자가 귀찮아서라도 눈을 뜨지 않겠느냐고.조금 엉뚱한 말 같기도 했지만, 이영은 진심으로 외삼촌이 깨어나길 바랐기에 그날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같은 행동을 반복해왔다.이젠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울음이란 감정도 무뎌진 지 오래였다.“어마마마, 전 이제 초운이를 찾으러 갈게요.”정곤전을 나서자마자 이영이 말했다.“오늘은 금융궁에 있다 하더냐?”“네. 앞으로는 한 달에 나흘이나 닷새, 많아야 일주일만 집에 가고 나머지는 궁에서 저랑 학문 공부를 같이 하겠다고 했어요.”“그래, 참 고마운 일이구나.”이영이 떠난 뒤, 소우연은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다시 정곤전으로 향하려던 참이었다.그때 저 멀리서 사람 그림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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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0화

소우연이 나직이 웃었다.“공주가 초운이를 안 괴롭힌다니, 나도 그건 좀 뜻밖이구나.”처음부터 걱정이 컸다.궁 안에서 제멋대로 자란 아이가 무슨 일 저지를지 몰라, 차라리 본인이 악역이 되겠다 각오까지 했건만. 정작 그럴 필요가 없었다.우옥명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초운이 주변 사촌 형들은 다 나이가 많고, 막내 동생은 또 어려서… 공주마마처럼 또래 아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더 즐거워하는 것 같습니다.”“초운이가 그러더군요. 이 넓은 궁 안에 자기 또래는 공주마마 하나뿐이라 참 외로웠다고요.”우옥명은 소우연에게 하사받은 궁패 덕분에 언제든 궁에 드나들 수 있었고, 그런 자신이 아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었다.소우연이 부드럽게 말했다.“그래도 자네도 참 수고가 많았다.”“아닙니다, 마마. 전혀 힘들지 않습니다. 궁을 드나들 수 있는 걸 부러워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그때 정연이 미소를 띠며 말을 보탰다.“공주마마와 도련님이 서로 친구가 되어주는 게 참 보기 좋습니다.”그 말에 소우연은 자연스레 정연의 배로 시선을 돌렸다.“정연아, 요즘 넌 좀 괜찮느냐. 어디 불편한 곳은 없고?”정연이 고개를 끄덕였다.“큰 탈은 없지만… 고기 냄새만 맡아도 속이 뒤집힙니다.”소우연이 잔잔히 웃었다.“이제 석 달 가까이 되지 않았느냐. 삼 개월만 넘기면 한결 수월해질 게다.”정연이 손가락을 하나하나 꼽으며 말했다.“날짜로 따지면 이번 주 중이면 딱 삼 개월이 됩니다.”“그런데도 아직은…”“몸이 여전히 힘든 것이냐?”“그래도 처음보다는 훨씬 나아졌습니다. 이게 다 마마께서 살펴주신 덕분입니다.”우옥명이 웃으며 말했다.“이제 곧 입맛이 돌아오실 거예요. 밤이면 배고파서 뭐라도 찾게 되실 테니, 그때도 너무 급하게 드시진 마시고, 천천히, 적당히 드세요.”“산책도 자주 하시고요. 그래야 순산하시죠.”정연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전… 마마께서 출산하셨던 그날이 자꾸 떠오릅니다.”“그날 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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