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의 걱정 어린 얼굴을 바라보며, 이지윤은 조용히 입술을 다물었다.그리고는 아래에 누운 소녀를 찬찬히 내려다보며 말했다.“모란꽃 아래서 죽는 게 정녕 풍류라 하였으니, 그 말이 틀리진 않구나.”그 말처럼 달게 받아들이겠다는 듯 눈빛엔 흔들림이 없었다.처음엔 서로 추위를 피하려고 안겼던 두 사람.하지만 지금은 그녀를 향한 진심과 오래전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는 그녀가 바라는 것을 이뤄주려 했다.그녀가 원한다면 무엇이든, 그는 주저 없이 함께할 작정이었다.한편, 소범준이 눈을 떴을 때 그는 커다란 귀비의자 위에 누워 있었다.방은 제법 넓었지만 사람이 드나든 흔적은 없었고, 공기엔 눅눅하고 텁텁한 곰팡내가 배어 있었다.그는 주위를 둘러봤다.여기가 어디인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검을 뽑으려 팔을 들자, 손발이 축 늘어지고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바로 그때, 한 하인이 들어왔다.그는 공손하게 말했다.“나으리,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곧 아씨께서 오실 겁니다.”‘아씨…?’그제야 소범준은 쓰러지기 직전에 자신의 등 뒤에 있던 이가 아령이었다는 걸 떠올렸다.그녀가 돌아서는 찰나, 손에 들고 있던 미약을 확 뿌렸던 것이다.손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고작 어린 계집아이한테 당하다니…그녀가 뭘 노리는지는 몰라도, 몸에 상처 하나 없는 걸 보니 죽일 생각은 아닌 듯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아령과 이지윤이 함께 방으로 들어섰다.이지윤을 보는 순간, 소범준은 여기가 평춘왕의 본채였다는 사실을 단번에 깨달았다.“나으리.”아령이 다가와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이지윤은 그를 흘긋 보며 말했다.“이 자가 너를 쫓아온 자더냐?”“예, 왕야.”두 사람은 대놓고 다정한 기색을 드러냈다.소범준 앞에서도 아무 거리낌 없는 태도.세자 이민수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던 것이다.이토록 노골적인 걸 보면,자신이 이 사실을 알았다고 해도 두려울 것이 없단 뜻일 터.그렇다면… 자신을 살려둔 이유는?입막음을 할 생각이었다면 이미 죽었을 것이다.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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