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us les chapitres de : Chapitre 21 - Chapitre 30

30

제21화

유소린이 의아한 듯 물었다.“일?”“응. 갑자기 여유가 생기니 적응이 안 되네.”하지율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일 좀 찾아서 하려고. 물론 돈도 필요하긴 해.”그리고 멈칫하다가 말을 이어갔다.“고지후가 카드를 정지했거든. 예금은 좀 있지만 선배가 스튜디오를 차리고 싶어 해서 돈 들어갈 일이 꽤 많아.”“개자식! 카드마저 정지시켰어?”유소린이 노발대발했다.“네가 그 집안을 위해 얼마나 많은 걸 해줬는데 꽃 한 송이 받아본 적이 없잖아. 임채아를 위해 폭죽을 터뜨린 비용에 비하면 그동안 너한테 쓴 돈은 새 발의 피지.”하지율이 탄식했다.“남의 집 자식을 돌보면 월급이라도 받지, 일가족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더니 돌아온 건 카드 정지야.”유소린은 미혼인데도 하지율의 처지를 보고 결혼이 꺼려지기 시작했다.심지어 호의호식하는 재벌 집에 시집을 가지 않았는가?만약 평범한 집안의 남자를 만나게 되면 돈도 벌고, 집안일도 하고, 아이까지 돌봐야 할지도 모른다.더욱이 남편과 자식의 원망까지 감수해야 한다는 사실이 끔찍했다.넋을 잃은 와중에 하지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여자가 진짜 당당하고 자신감을 가지려면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해. 아니면 자기 아들한테조차 무시당할 수 있어.”맞는 말이다.유소린은 고개를 끄덕였다.“요즘 나도 집에서 쉬면서 일자리 알아보고 있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해.”“고마워.”유소린은 손을 휘휘 저으며 무심하게 말했다.“우리 사이에 무슨.”그녀와 헤어지고 나서 하지율은 정시온을 안고 집으로 갔다....다음 날 아침, 정시온과 등원하려고 밖으로 나오자 검은색 고급 승용차 한 대가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이 구경하며 수군거렸다.그들을 발견한 기사가 성큼성큼 다가와 정중하게 자기소개를 했다.“지율 씨, 안녕하세요. 저는 시온 도련님의 운전기사 서영길입니다. 도련님의 등하교를 전담하고 있죠.”갑자기 나타난 운전기사를 보고도 하지율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이내 미소를 살짝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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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하지율의 가슴은 마치 큰 돌덩이에 짓눌린 듯 숨이 막혔다.결혼하고 나서 5년 동안 고지후는 단 한 번도 그녀와 함께 고윤택을 유치원에 보낸 적이 없었다.물론 같이 가자고 해봤지만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거절당했다.알고 보니 바쁜 게 아니라 단지 동행하는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이었다.고윤택은 졸린 눈으로 하품을 했다. 어젯밤에도 밤을 새워서 잠을 설친 게 분명했다.하지만 임채아의 말을 듣는 순간 눈을 번쩍 떴고, 앞에 서 있는 하지율을 발견했다.임채아는 고개를 숙여 고윤택을 내려다보았다.“내 말 맞지? 지율 씨가 어떻게 너한테 화를 낼 수 있겠어? 아침 일찍 널 보러 왔잖아.”고윤택의 얼굴에 의기양양한 기색이 역력했다.이내 하지율을 바라보며 도도하게 말했다.“고작 그런 얕은수에 넘어갈 거로 착각하지 마요. 채아 이모한테 사과하기 전까지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임채아는 고지후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지후야, 윤택의 제안이 그래도 좀 효과가 있었나 봐.”고지후는 무심하게 대답하더니 하지율을 향해 말했다.“채아가 요즘 식욕이 별로 없으니까 보양식 만들어줘.”하지율이 기가 찬다는 듯 노려보며 새빨간 입술을 달싹거렸다.“미친.”임채아가 잽싸게 끼어들어 상황을 수습했다.“지율 씨, 그만 화 풀어요. 불만이 있으면 말로 하면 되잖아요. 그동안 일도 안 하고 수입도 없었을 텐데, 호의호식한 생활만 하다가 집을 떠나고 나서 고생 많이 했죠?”그리고 간절한 목소리로 설득했다.“지후한테 얼른 사과해요. 아직 어린 윤택을 생각해서라도 어른들의 일에 휘말리게 하면 안 되잖아요.”뜻인즉슨 하지율이 남편의 관심을 끌기 위해 자식을 이용했다는 것이었다.고지후는 싸늘한 시선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당장 채아한테 사과해. 그러면 모두 없었던 일로 할 테니까.”고윤택도 눈살을 찌푸린 채 불만을 드러냈다.“저는 누군가의 환심을 사려는 도구가 아니에요.”하지율은 증오심으로 똘똘 뭉친 세 사람을 보자 어이가 없었다.왠지 오붓한 가정을 파탄 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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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고 훌쩍이며 우는 모습은 안쓰럽기 그지없었다.고지후의 안색이 싸늘해지더니 칼날처럼 날카로운 눈빛으로 하지율을 쏘아보았다.임채아는 고지후의 팔을 덥석 붙잡았다.“지후야, 지율 씨 잘못 아니니까 진정해. 내가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넘어진 거야.”고윤택이 초조한 얼굴로 뛰어갔다.“이모, 괜찮아요?”임채아는 미소를 쥐어짜 냈다.“응.”말이 끝나기 무섭게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고지후는 하지율이 안중에도 없은 채 임채아를 번쩍 안아 들더니 차로 성큼성큼 걸어갔다.고윤택도 뒤를 따랐고, 부자는 하지율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멀어져가는 고지후와 고윤택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하지율의 마음은 차가운 물 속에 가라앉은 듯 서서히 식어갔다.이내 눈을 감고 숨을 고르고 나서야 떨리는 다리를 움직여 자리를 떠났다....정기석이 돈을 워낙 많이 줘서 정시온이 돌보기 까다로운 아이인 줄 알았다.하지만 온종일 함께 지내다 보니 의외로 엄청 순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편식도 없어서 차려주는 대로 족족 먹었다.순하고 말도 잘 듣고 떼를 쓰는 것도 아니라 그야말로 아기천사였다.저녁, 정시온을 재우자마자 휴대폰이 문득 울렸다.통화 버튼을 누르는 순간 유소린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지율아, 지금 뭐 해? 뉴스 봤어?”하지율은 정시온의 방문을 닫고 목소리를 낮추었다.“방금 시온이 재웠어. 왜?”“너 기사 났어.”“응?”그녀는 어리둥절했다.“무슨 기사?”“누군가 네 신분을 밝혔는데, 하여튼 한두 마디로 설명이 불가능하니까 직접 확인해보면 알게 될 거야.”전화를 끊고 반신반의하며 사이트에 접속했다.평소에 주목받는 걸 워낙 싫어하는 성격이라 고지후와 결혼한 이후에도 공개 석상에 함께 모습을 드러낸 적이 드물었다.고지후의 친구를 제외하고 주변에서 그녀를 거의 몰랐다.그런데 어떻게 기사가 났단 말이지?하지율은 의혹이 가득한 얼굴로 휴대폰을 켰다.그녀의 이름이 검색어 1위를 떡하니 차지했다.제목을 누르자마자 대문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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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화

곧이어 애처로운 표정으로 말을 잇는 임채아가 화면에 나타났다.“지율 씨가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알아요. 나한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걸.”“맞아요. 지후는 진심이 아니었죠. 미안해요...”그리고 화면이 전환되며 그녀에게 밀려 물에 빠진 장면과 초라한 몰골로 사과하는 임채아의 모습이 보였다.마무리는 오늘 아침 중심을 잃은 임채아가 바닥에 넘어져 자칫 차에 치일 뻔한 영상이었다.기사는 금세 댓글로 도배되었다.[고작 6개월밖에 안 남은 사람한테 죽으라고 저주하는 게 말이 돼?][결국 몸 팔아서 사모님 자리를 얻은 거야? 진짜 징그럽다. 이렇게 악랄한 여자가 아내라니, 임채아가 병에 걸린 게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겠네.][비운의 연인을 억지로 갈라놓은 게 지금의 와이프였어? 정말 뻔뻔스럽네. 얼굴값 못하는군.][흥, 그리 예쁜 것도 아니네, 뭐. 성형외과 다니는 친구 말로는 100% 손을 댔다더라.][임채아 너무 불쌍해. 저런 여우 같은 년에 발등을 찍힌 것도 모자라 하마터면 목숨까지 잃을 뻔했잖아.][이건 살인미수 아니야? 얼른 경찰에 신고해서 살인범을 체포해야 해.][미인박명이라더니, 이렇게 예쁘고 재능 있는 사람이 왜 불치병에 걸려야 하지? 임채아가 얼마나 대단한 바이올리니스트인지 알아?][아내는 결혼 후에 일도 관두고 집에만 있었다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가정주부는 임채아와 비교 자체가 안 되지.]기사가 터지자마자 댓글에 하지율을 향한 비난이 압도적으로 많았다.예전에 뉴스에 나온 ‘완벽한 피해자’와 ‘피해자 유죄론’까지 공감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하지율에 관한 기사는 만장일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그녀는 어느새 모두가 규탄하는 존재가 되었다.하지율은 무표정한 얼굴로 기사에 달린 댓글을 끝까지 훑어보았다.그리고 사이트를 끄고 심호흡하며 대응책을 고민했다.이때, 휴대폰이 다시금 울렸다.발신인을 확인하고 한참 후에 통화 버튼을 눌렀다.휴대폰 너머로 장하준의 거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채아가 깨어났대. 지후가 당장 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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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화

“살인범은 사형 선고 받아야 해.”다들 한껏 격앙된 모습으로 두 눈을 부라리며 험상궂은 표정을 지었고, 당장이라도 하지율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기세였다.부모를 죽인 원수도 이보다 더 하진 않을 것이다.여자들의 태도만 봐도 임채아의 팬이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인터넷을 자주 하는 편이 아니라 그녀에게 열성팬이 있으리라 꿈에도 몰랐다.어제 알아보니 무려 천만이 넘는 팬을 보유하고 있지 않겠는가?여리여리하고 아름다운 외모와 바이올리니스트라는 직업, 게다가 불치병에 걸린 와중에도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은 많은 사람의 호감을 샀다.불과 6개월 만에 임채아의 인지도는 연예계 B급 스타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았다.한낱 일반인이 이 정도 유명세를 얻게 된 이유는 배후에 누군가 있었기 때문이다.그는 다름 아닌 고지후였다.임채아는 고성 그룹 산하의 엔터테인먼트 회사와 계약했다.고지후는 두 사람의 열애설에 대해 해명하지 않았고, 단지 화제성을 이용해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죽기 전 그녀의 마지막 소원이 스타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하지만 남은 시간이 별로 없어서 인지도를 쌓고 팬을 모으기에는 너무 더뎠다.대중에게 가장 빨리 알려지는 수단 중 하나는 바로 스캔들이다.하지율은 설명을 듣고 나서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현실을 받아들였다.그동안 인터넷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전혀 몰랐고, 고작 몇 달 만에 이렇게 많은 팬이 생길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다.이내 즉시 결단을 내려 정시온을 옆에 서 있는 서영길에게 맡겼다.“기사님, 일단 시온이랑 먼저 출발하세요.”서영길은 여자들의 타깃이 하지율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괜히 미적거렸다가 도련님마저 위험에 처할까 봐 두려웠다.그는 잽싸게 고개를 끄덕이며 정시온을 안아 올렸다.“도련님, 먼저 갑시다.”정시온은 떠나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다.“안 돼요. 지율 이모가 위험한데 혼자 두고 갈 수는 없어요.”하지율의 눈시울이 붉어졌다.정작 남편과 아들은 그녀를 원수처럼 대하는데 만난 지 이틀밖에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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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화

피를 흘리는 그녀를 보고도 첫마디는 걱정이 아니라 잘못을 따지는 것이었다.지나가던 낯선 이도 다친 사람을 보면 괜찮냐고 물을 텐데 아내가 잘못을 인정하기만을 기다리는 남편이라니.하지율은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고지후가 눈살을 찌푸렸다.“왜 웃어?”이마의 피, 몸에 붙은 썩은 채소 그리고 끈적한 날달걀을 닦아냈더니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그동안 시간 낭비만 한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해서 웃었어.”하지율은 툭툭 털고 차 안의 고지후를 무덤덤하게 바라보았다.“날 후회하게 만들겠다는 말이 이런 뜻이었어? 단지 첫사랑의 복수를 위해 사이버 폭력에 사람까지 직접 보낸 거야?”고지후는 침묵을 지켰다.“내가 꾸민 짓이라고 생각해?”“그럼 아니야?”하지율이 피식 웃었다.“새집으로 막 이사했는데 설령 포렌식 수사를 한다고 해도 이렇게 빨리 알아낼 리가 없지. 짧은 시간 안에 내 거처를 정확히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이 당신 말고 또 누가 가능하겠어? 장하준한테 날 후회하게 만들겠다고 대신 전해주라고 하지 않았어?”이내 고지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임채아가 마음에 걸리면 이참에 그냥 이혼하지? 그래야 둘도 떳떳하고 명분도 생길 텐데.”고지후의 얼굴에 분노가 차올랐다.“내가 누누이 얘기했지만 우리는 그런 사이 아니야. 이제 그만 생트집 잡아.”하지율이 냉소를 지었다.“이혼하지 않는 이상 억지는 계속될 거야.”고지후는 눈빛이 싸늘하게 식어갔다.“끝까지 고집부리겠다는 거네?”하지율이 대답했다.“응.”고지후가 어이없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그래? 나중에 제발 용서해달라고 빌지나 마.”말을 마치고 나서 시동을 걸고 유유히 떠나갔다....또 하루가 지났고 기사의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고지후는 하지율 대신 해명하지도, 논란을 잠재우려 하지도 않았다. 마치 사실이라고 묵인하는 태도에 사람들의 맹비난은 쌓여만 갔다.잠잠한 그와 달리 임태아가 느닷없이 게시물을 올렸다.[제가 입원한 건 지율 씨와 전혀 관련이 없어요.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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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화

젊은 경찰이 고개를 끄덕였다.심문 담당자가 하지율을 바라보며 말했다.“새로운 목격자가 나타나 사건을 더 조사해야 할 것 같아요. 죄송하지만 아직 돌아가실 수 없습니다.”목격자라니?만약 사실이라면 지금 이 지경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그것도 정확한 타이밍에 느닷없는 증인이라...하지율이 온몸으로 싸늘한 기운을 내뿜었다.상대방은 그녀의 처지를 알고 일부러 이 타이밍에서 그녀를 증인을 내세워 사지로 몰아넣으려는 것이 분명했다.어찌나 악의적이고 치밀한지 등골이 오싹할 지경이었다.심문 담당자는 시종일관 예의를 갖췄고, 단호한 목소리에 위엄이 서려 있었다.“조사에 협조 바랍니다.”하지율은 금세 침착함을 되찾았다.“증인이 누구인지 여쭤봐도 될까요?”경찰이 고개를 저었다.“증인의 신변 보호를 위해 개인 정보를 공개할 수 없습니다. 이의를 제기하고 싶으면 변호사를 선임하거나 지인한테 연락해 보석을 신청하세요.”워낙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변호사를 알아볼 시간도 없었다.강병주는 현재 여론의 중심에 있기에 도움을 청하기에 부적합했다.유소린은 너무 순진해서 고지후를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만약 말실수해서 구실이라도 만들면 본인마저 연루될 것이다.고지후는 그녀가 잘못을 인정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계속 용의자로 의심받게 해서 경찰서에 가둬두려는 속셈일 지도 모른다.하지율의 표정에 비아냥거림이 묻어났다.이내 눈을 살짝 내리깔고 무심하게 대답했다.“알겠습니다.”경찰이 그녀를 유치장에 데려가려는 순간 첼로처럼 묵직하고 매력적인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지율 씨.”하지율이 고개를 들었다.흰색 셔츠를 입은 젊은 남자가 멀리서 유유자적 걸어왔다.잘생긴 얼굴과 느긋한 표정, 살짝 풀어헤친 옷깃은 자유로운 분위기를 풍겼다.입가에는 미소를 살짝 머금었고, 그윽한 눈동자는 깊은 심연처럼 신비롭고 매혹적이었다.“기석 씨?”하지율이 깜짝 놀랐다.“여긴 어쩐 일로?”분명 주말에 돌아온다고 하지 않았나?정기석이 희미하게 웃었다.“시온한테서 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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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화

경찰서를 나섰을 때 날은 이미 저물었다.하지율은 정기석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기석 씨, 고마워요.”“시온이가 지율 씨를 워낙 좋아해서 직원 복지라고 생각해요.”그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인터넷에 떠도는 루머를 제가 대신 처리해줄까요?”하지율의 눈이 반짝거렸다.“그게 가능해요?”정기석이 눈썹을 치켜올렸다.“왜요? 못 믿겠어요?”“제가 누군지 이미 알아냈을 것 같은데.”하지율이 말을 이어갔다.“전 고지후의 와이프에요. 고씨 가문의 영향력은 S시에서 워낙 막강해서 그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아무도 막지 못할 거예요.”정기석은 의외라는 듯 물었다.“남편이 꾸민 일 같아요?”하지율이 피식 웃었다.“고지후 빼고 또 누가 있겠어요?”정기석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부부 사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안 좋은 듯싶었다.아직 손을 쓰기도 전에 벌써 사이가 틀어진 건가?이내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가능하니까 물어본 거겠죠? 다른 건 신경 쓰지 말고 필요한지만 알려줘요.”하지율이 대답했다.“그럼 기사 말고 다른 일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정기석이 흥미진진한 표정을 지었다.“얘기해보세요.”하지율은 목소리를 낮추고 정기석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정기석이 나지막이 웃었다.“신통한데요? 기사를 삭제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네요. 꼭 도와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요.”하지율이 진심 어린 말투로 말했다.“오늘 정말 고마웠어요.”“고마운 마음을 담아 시온에게 더 잘해줘요.”하지율이 고개를 끄덕였다.“물론이죠.”설령 도움을 받은 적이 없더라도 일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정시온을 잘 보살필 생각이었다.정기석이 시간을 확인했다.“비행기에서 내린 지 얼마 안 되어 아직 밥을 못 먹었는데 선약이 없으면 같이 식사하실래요?”이렇게 큰 신세를 졌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좋아요. 제가 살게요.”정기석이 미소를 지었다.“그래요.”...밥을 먹고 나니 밖은 완전히 깜깜해졌다.하지율은 화장실에 간다는 핑계로 먼저 계산했다.그리고 집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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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화

그녀는 사람들을 밀어내고 자리를 뜨려고 했지만 기자들은 마치 철옹성처럼 꿈쩍도 안 했다.“지율 씨, 대답 좀 해주세요.”“하지율 씨...”귓가에 재잘거리는 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려왔다.누군가 실수로 밀치는 바람에 하지율은 바닥에 쿵 하고 넘어졌다.이내 일어나려고 발버둥 치는 순간 갑자기 벼락같은 외침이 울려 퍼졌다.“살려주세요! 사모님이란 사람이 폭력을 행사해요!”말이 끝나기 무섭게 모든 플래시가 하지율을 향했고 셔터 소리가 쏟아졌다.귓가에 맴도는 소음과 눈앞의 낯선 얼굴은 마치 가면을 쓴 악마처럼 느껴졌고, 숨 막힐 듯한 공포에 질식할 것 같았다.이때, 단호하면서 싸늘한 목소리가 포위망 밖에서 들려왔다.“다 비켜!”기자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고 등 뒤에 서 있는 훤칠한 몸매의 남자를 발견했다.하지율의 공동이 문득 커졌다.‘정기석?’모두가 넋을 잃은 사이 하지율의 곁으로 다가간 정기석은 발을 다친 그녀를 보자 새까만 눈동자가 서서히 식어갔다.“병원에 갑시다.”말을 마치고 하지율을 일으켜 세웠다.정기석을 발견하는 순간 기자들은 두 눈에 쌍심지를 켜고 우르르 몰려들었다.다만 그가 뿜어내는 무시무시한 기운에 하지율처럼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하지율 씨와 무슨 사이입니까? 현재 여러 남자와 동시에 만나고 있는 건 알고 계십니까?”정기석의 시선이 여기자를 향했고, 그윽한 눈동자에 뼛속까지 시린 냉기가 서려 있었다.“지금 나한테 질문하는 겁니까?”그녀는 방금 하지율에게 인신공격을 퍼부었던 기자였다. 임무를 가지고 찾아온 만큼 듣기 거북한 말만 골라서 했다.여기자는 숨을 죽였고 차마 아무 말도 못 했다.카리스마가 워낙 강해서 시선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멈추는 듯했다.정기석은 고개를 숙여 하지율의 발목을 살폈다.“발을 삐끗한 거 같아요. 일단 병원부터 갑시다.”말을 마치고 그녀가 대답하기도 전에 번쩍 안아 올렸다.이때, 또 다른 싸늘한 목소리가 고요한 밤하늘 아래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꽤 시끌벅적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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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화

기자들이 서로를 바라보더니 동시에 헤실거리며 웃었다.“고지후 씨의 말씀인데 당연히 따라야죠.”이내 재빨리 자리를 피했고 숨어서 몰래 촬영할 엄두조차 못 냈다.고지후는 누기인가?그에게 도전장을 내미는 사람은 이 땅에서 무사히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다.기자들이 떠난 후 공기는 숨 막힐 듯 무거웠다.남자의 품에 안긴 하지율을 보자 고지후의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온몸으로 냉기를 뿜어냈다.그는 싸늘한 목소리로 명령했다.“내려와.”낯선 사람에게 안겨 있는 자체가 어색했는데 루머가 떠도는 상황에서 정기석마저 연루되지 않길 바랐다.결국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내려줘요.”정기석은 고지후의 살벌한 표정이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안 돼요. 발목을 다쳐서 얼른 병원에 가야 해요.”고지후의 시선이 하지율의 얼굴에서 좀처럼 떠나지 않았고, 얼음장처럼 차가운 눈동자는 한기를 내뿜었다.그는 또박또박 말했다.“하지율, 내려오라고 했지?”평소에 표정 변화가 거의 없는 사람이라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드물었다.하지만 음산한 표정으로 싸늘하게 노려보는 모습은 마치 극도로 혐오하는 물건이라도 마주한 듯싶었다.하지율이 꿈쩍도 하지 않자 고지후의 안색이 점점 어두워졌다.이내 다리를 움직여 천천히 다가왔다.고지후는 손을 뻗어 하지율을 끌어내리려고 했다.정기석이 그를 제지하려고 했으나 품에 안긴 하지율 때문에 거동이 불편해서 완전히 막지는 못했다.결국 하지율은 정기석의 품에서 벗어났다.고지후는 그녀의 손목을 붙잡고 거칠게 끌고 갔다.바닥에 발이 닿는 순간 삐끗한 발목에서 찌릿한 통증이 밀려왔다.곧이어 다른 한 손이 누군가에게 붙잡혔다.고지후는 우뚝 멈춰서더니 정기석을 바라보며 음산한 목소리로 경고했다.“놔라.”정기석의 입가에 여유로운 미소가 떠올랐다.“내가 할 소리야.”고지후가 건방진 표정으로 눈썹을 치켜올렸다.“그쪽한테 자격은 있고?”정기석이 피식 웃었다.“당신이 정할 일은 아니지. 중요한 건 우리 하율 씨 마음이야.”이내 시선을 돌려 하지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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