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나를 버릴 때, 나는 세상을 가졌다의 모든 챕터: 챕터 611 - 챕터 620

665 챕터

제611화

유하는 설아의 행동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절대로 용서할 수도 없었다.그 말을 들은 설아는 뜻밖에도 오래도록 고요했다. 그녀는 철제 담배 케이스를 열어 담배 한 개비를 털어내더니, 불도 붙이지 않은 채 코끝에 가져가 가볍게 향을 맡았다.표정에는 아무런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 모습에 저도 모르게 유하의 미간이 찌푸려졌다.유하가 입을 열려는 순간, 설아가 먼저 낮게 웃으며 말했다.“하, 꽤 그럴듯하게 꾸며냈네. 근데 증거는 있고? 뭘 근거로, 무슨 기준으로 네가 그 애 말이 진실이라고 확신하는데? 너... 이건 모를 수도 있겠다.”설아는 담배를 입술에 문 채 씹듯이 물었다. 병상에 기대어 앉아 있으면서도 유하를 내려다보는 시선은 묘하게 위압적이었다. 그 눈빛에 노골적인 조소가 섞여 있었다.“네 아이 말이야. 거짓말, 진짜 잘해.”‘거짓말이 습관인 아이가 하는 말에, 진실이 얼마나 들었겠어?’유하의 얼굴에 분노가 스쳤다. 그러나 그것은 찰나였고, 곧 다시 냉정함이 돌아왔다.‘화내서 뭐해. 이런 말들을 믿지 않을 거라는 건 처음부터 예상했어. ‘하지만 배설아는 지금 본질을 피하고 있어. 핵심은 이게 아니야.’유하는 고개를 들어 설아를 똑바로 바라봤다. 한 글자 한 글자, 문제의 핵심을 찔러 더 이상 도망칠 수 없게 만들었다.“이런 일이 벌어진 건 당신과 오승현 때문입니다. 전부 어른들이 선택한 결과예요.”“어른이라면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당당하게 인정하고 책임지셔야죠. 왜 모든 책임을 아이에게 떠넘깁니까? 최소한의 책임감도 없이, 부끄럽지도 않아요?”유하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말을 이었다.“어른이면 어른답게 행동하세요. 비겁하게 도망치지 말고.”병실 안이 숨 막히도록 고요해졌다.다음 순간, 누군가 유하의 옷깃을 거칠게 잡아당겼다. 몸이 제어되지 않은 채 앞으로 끌려가며 두 사람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내가 비겁하다고?”설아의 눈에 날 선 광기가 스쳤다. 입에 문 담배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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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2화

순백의 병실 안.창문은 반쯤 열려 있었고, 봄과 여름의 경계에 접어든 계절 탓에 기온은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 약간의 열기를 머금은 바람이 끊임없이 안으로 밀려들어 와 커튼을 세차게 흔들었고, 천이 벽과 부딪히며 거칠게 파르르 울렸다.몸부림과 욕설은 점점 잦아들었고, 이내 병실에는 바람 소리만 남았다.한참이 지나서야, 설아의 쉰 목소리가 갑자기 낮게 터져 나왔다. 이를 악문 기색이 역력한 음성이었다.“내 인생이 너랑 무슨 상관인데, 네가 대체 뭐라고 내 인생에 대해 이래라저래라야!”‘어디까지 감히...’“배설아 씨 인생이 저와 상관없는 건 맞습니다.”유하는 깊게 숨을 내쉬고 이어 말했다.“하지만 재윤이는 저와 상관이 있습니다. 제가 한동안 키웠고, 재윤이는 저를 엄마라고 불렀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이 재윤이에게 가한 상처 주는 행동을, 저는 모른 척할 수 없습니다.”“이 인간이... 아직도 그 얘길 꺼내?”설아는 즉각 다시 폭발했다. 몸을 비틀며 일어나려 했지만, 발과 목에 남은 상처 탓에 조금만 움직여도 통증이 밀려왔고, 결국 유하의 체중에 눌린 채 등 위로 제압당해 벗어나지 못했다.빠져나올 수 없다는 자각이 오히려 분노를 더 부채질했다.설아가 금방이라도 이성을 잃을 듯한 기세인 것을 보며, 유하 역시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러나 유하의 목적은 설아를 자극하는 데 있지 않았다. 유하는 재윤이 잘 살기를 바랐고, 설아는 그 아이의 생모이자 유일한 직계 혈족이었다. 어떤 방식으로든, 결코 피해 갈 수 없는 존재였다.‘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면, 지금은 이 사람을 진정시켜야 해.’‘그렇지 않으면 이런 일은 또 반복될 거야.’재윤은 아직 너무 어렸다. 외삼촌 배남진은 설아의 압박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기대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게다가 나중에 재윤이가 진실을 알게 되면 어떡하지?’‘아버지는 쓰레기였고, 어머니도 쓰레기고...’‘거기에 다른 사람과 손잡고 자기 인생을 저울질했다는 걸 알게 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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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3화

처음부터 진심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그래서 설아는 유하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유하가 해온 모든 행동은 설아를 혼란스럽게 만들 뿐이었다.“넌 대체 뭘 위해서 이러는 거야?”한참이 지나서야, 설아가 담담하리만치 직설적으로 의문을 던졌다.“너는 뭘 원해?”설아의 등에 눌려 있던 유하의 머리가 미세하게 움직였다. 설아는 자신의 위에 있는 유하가 아주 낮고, 조금 쉰 듯한 목소리로 거의 속삭이듯 말하는 것을 들었다.“저는 재윤이가 잘 되길 바라요. 재윤이가 더 나은 인생과 미래를 살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하, 역시나.’설아는 속으로 비웃듯 생각했다.‘나는 소유하 같은 부류의 인간을 이해할 수가 없어.’웃음이 나올 법도 했지만, 이상하게도 웃어지지 않았다.그때, 설아의 등에 다시 한번 미세한 진동이 전해졌고, 곧 유하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이번에는 설명하기 힘든 평온함과 부드러움이 담겨 있었지만, 동시에 쉽게 흔들리지 않을 단단한 힘이 느껴졌다.“재윤이는 저를 엄마라고 부릅니다.”설아는 멍하니 굳어버렸다.이번에는 이상하리만치 화가 나지 않았다....사실 유하의 생각은 단순했다.과거에 준서가 유하를 거부하고 싫어하며 다른 사람이 자기 엄마가 되길 바랐을 때, 유하는 겉으로는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무너지지 않았다고, 상처받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그건 거짓이었다. 그때의 유하는 분명히 아팠고, 무엇보다도 많이 신경 쓰고 있었다.유하는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아주 대단하지 않아도 좋으니, 최소한 낙제점은 면하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자기 아들이 좋은 어린 시절을 보내길 바랐고, 그래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한 실패였다.그 시절 유하의 인생은 완전히 통제 불능 상태였다. 결혼이라는 시작점부터 잘못된 선택이 반복되었고, 끝내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버렸다. 스스로를 패배자라고 느낀 시간도 있었다.그런 시기가 지나 얼마 되지 않아, 재윤이가 나타났다. 처음부터 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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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4화

“네가 지금 여기 서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해.”설아는 미소 지었다.유하는 침묵했다. 이를 악문 채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결국 다시 입을 열었다.“그 사람이 배설아 씨에게 무엇을 약속했습니까.”‘설마 전에 말했던 그 계획인가?’‘아이를 이용하고 조종해서 완성하겠다는 그 터무니없는 계획 말인가?’만약 그것뿐이라면, 훨씬 온건한 방법이 있었을 터였다.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나올 이유는 없었다.설아는 유하의 생각을 단번에 알아차린 듯했고, 그 모습이 재미있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이봐, 소유하. 만약 그 정도뿐이었으면 나 혼자서도 충분히 처리했겠지, 내가 왜 굳이 오승현 그 인간이랑 손을 잡았겠어? 너도 알잖아, 오승현은 꽤 쪼잔하고 귀찮은 인간이라는 거.”유하의 가슴속에서 불안이 점점 커져갔다. 유하는 다시 물었다.“그 사람이 무엇을 약속했는지 말씀해 주세요, 제가 대신...”“안 돼.”설아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내가 원하는 건 오씨 가문만이, 그리고 오승현만이 줄 수 있는 거야... 아, 맞다, 네가 아직도 자신을 오씨 가문의 며느리라고 생각한다면, 어쩌면 네가 줄 수도 있겠네.”“그러면 나도 승현이 버리고 너랑 협력하는 걸 진지하게 고민해 보지, 재윤이는 내 아이니까, 나도 굳이 재윤이를 이렇게까지 고생시키고 싶진 않거든... 하지만 아쉽네.”유하의 얼굴이 굳어졌다.“당신이 원하는 게... 대체 무엇입니까?”‘오씨 가문에만 있는 것이라면? 권력인가, 이익인가, 아니면 돈인가?’“오승현이 네 앞에 나타나면 직접 물어봐.”“저를 찾아온다고요?”“그래.”설아는 유하를 바라보며, 웃는 듯 아닌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요즘 너 너무 나대고 있다는 생각 안 들어? 아니면 오승현이 너를 얼마나 더 참아줄 거라고 믿는 거야?”유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오승현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과거에 가졌던 존재에 대한 소유욕 하나만으로 사람이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걸까.’‘아니면, 내게 아직도 오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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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5화

유하는 설아의 속내를 알 길이 없었다. 설령 알게 된다 해도, 아마 설아를 미쳤다고밖에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같이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인간들, 말 그대로 중증이었다.해가 기울 무렵, 설아의 입에서 나온 이른바 ‘거래’라는 것들의 내용을 듣고 난 뒤, 유하는 몽롱한 상태로 병원을 나섰다. 집으로 돌아와 문을 열자마자, 현관 앞에 쪼그려 앉아 있던 나연이 눈에 들어왔다. 나연의 얼굴에는 피로가 역력했고, 유하를 보자마자 놀란 듯 벌떡 일어나며 감정이 확 치솟은 표정으로 말했다.“대표님... 돌아오셨어요?”“엄마!”곧이어 준서가 그대로 달려들었다.갑작스러운 충격에 몇 걸음 비틀린 뒤에야 유하는 겨우 문틀을 짚고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나연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오늘 하루 준서 봐주느라 고생 많았어, 나연 씨. 저녁 먹고 들어가, 내가 사람 불러서 집까지 데려다줄게.”“아니에요, 아니에요!”나연은 거의 반사적으로 손사래를 쳤다. 보스가 차려주는 밥을 먹을 배짱은 없었다. 거절하고 나서야 말이 너무 딱 잘린 것 같아, 급히 덧붙였다.“대표님, 저 친구랑 저녁 약속이 있어서요. 대표님도 하루 종일 바쁘셨을 텐데 얼른 쉬세요. 오늘은 이만 가볼게요.”말을 마치자마자 나연은 가방을 집어 들고 잽싸게 나갔다. 나가는 뒷모습은 마치 무언가에 쫓기기라도 하는 사람처럼 황급했다.아이의 손을 잡고 거실로 들어와서야 유하는 나연이 왜 그런 반응을 보였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거실 안은 눈으로 보기에도 여러 물건이 자리를 옮겨 놓은 흔적이 역력했고, 소파 위에는 각종 물건이 어질러져 있었다. 말 그대로 난장판이었다.범인은 너무도 분명했다.‘그래서 나연 씨가 그렇게 빨리 나간 거구나.’‘아마 내가 준서 혼내는 장면을 마주칠까 봐 곤란했던 거겠지.’‘저렇게 지쳐 보이던 걸 보면, 하루 종일 정리하느라 고생도 많이 했고 준서한테 시달리기도 했겠지.’유하의 시선이 옆으로 옮겨갔다.준서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한 얼굴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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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6화

준서는 얼굴을 찌푸린 채 한참을 망설이다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엄마는... 그 청산 아저씨를 아주 좋아해요?”“할 말 있으면 그냥 해도 돼.”유하가 말했다.“저는...”준서는 고개를 숙인 채 손에 쥔 젓가락으로 그릇 안의 닭다리를 가볍게 콕콕 찔렀다. 한참을 그러다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저는 청산 아저씨가 싫어요. 그 아저씨가 싫고요... 새아빠는, 새아빠는 원하지 않아요.”말끝으로 갈수록 준서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새아빠?’유하는 순간 멍해졌다.‘너무 갑작스러운 전개인데.’당황스러움 속에서도, 이게 어쩌면 아이의 마음을 확인해 볼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청산 아저씨가 왜 싫은데?”유하가 물었다.“새아빠요.”준서는 빠르게 대답했다.“...”이게 대답이라고 할 수 있을까?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잠시 망설이던 순간, 아까까지만 해도 비교적 차분하던 준서가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감정이 올라온 듯 말투가 한층 격해졌다.“그래서 엄마는 결국 저를 원하지 않는 거잖아요!”‘무슨 소리야!’유하는 미간을 찌푸렸다.“아니야. 왜 그렇게 생각해?”“그럼 새아빠를 찾지 마요!”준서는 젓가락을 꽉 움켜쥐며 말했다.“저는 새아빠 싫어요. 평생 내 아빠는 한 분뿐이에요!”유하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두 말 사이에 무슨 상관이 있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아, 차분히 설명해 보려 했다.“준서야, 엄마가 앞으로 누구를 만나게 되든, 너는 엄마의 아들이야. 그건 절대 변하지 않아. 다만 엄마도 내...”‘삶이 있잖아.’쿵!마지막 한마디가 입 밖으로 나오기도 전에 갑작스러운 굉음이 말을 끊어버렸다. 준서가 벌떡 일어나며 손에 쥐고 있던 젓가락과 앞에 놓인 그릇을 함께 쳐서 엎었다. 닭다리는 뒤집혀 바닥을 굴러 식탁 아래로 떨어졌다.“싫어요!”준서는 눈을 붉힌 채, 감정이 폭발하듯 소리쳤다.“저는 아빠 한 분만 있으면 돼요! 아빠만 있으면 돼요! 다른 사람은 싫어요! 엄마는 저를 원하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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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7화

유하는 속으로 가볍게 한숨을 내쉰 뒤 입을 열었다. 아주 낮고 조심스러운 목소리였다.“엄마는 너를 버린 적 없어.”잠시 말을 멈췄다가, 유하는 다시 천천히 말을 이었다.“하지만 엄마에게도 엄마의 삶이 있고, 엄마가 원하는 것도 있어. 네가 억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어. 싫으면 아빠라고 부르지 않아도 되고, 뭐라고 부를지는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그러나 유하의 생각은 변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녀는 이미 충분히 생각했다. 엄마도 자신의 인생이 있고, 원하는 삶이 있다는 것을.물론 유하 역시 새로운 동반자를 찾는 데 그다지 적극적인 편은 아닌 데다, 소성란의 성화에 못 이겨 사람들을 만난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가능성 자체를 예전처럼 거부하지는 않았다.결국은 한 걸음씩 가보는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누구를 만나고, 무슨 일이 생길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이 문제에 관해서만큼은 준서를 속이고 싶지도 않았다. 적어도 아이에게 자기 생각을 분명히 전하고 싶었다.유하는 어린 준서 때문에, 이미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기 인생을 선택할 권리’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반대로 준서에게도 같은 기준을 적용하고 싶었다. 다시는 같은 후회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너 지금 엄마 옆에 있잖아.”유하는 이어서 말했다.“우리 집 일인데 다른 사람 말고 엄마한테 조금 더 물어봐 줄 수 없어? 엄마를 조금만 더 믿어주면 안 될까?”달빛이 창을 넘어 방 안으로 스며들었고, 웅크린 이불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방 안은 고요했다.한참이 지나서야 이불 속에서 답답하고 쉰 목소리가 들려왔다. 준서는 이미 한바탕 울고 난 것처럼 들렸다.“제가 싫다고 하면... 엄마는 안 찾으시면 안 돼요?”“안 돼.”아이를 달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자기 인생에 관한 문제만큼은, 유하는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준서는 다시 조용해졌다. 한동안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내 조심스럽게 다시 물었다.“그럼 엄마가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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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8화

“창문이 왜 열려 있지?”이른 아침, 방 안에 감도는 서늘한 기운에 유하는 침실 창문이 열려 있는 걸 알아차렸다. 중얼거리듯 말하며 창가로 다가가 창문을 닫으면서 막 잠에서 깬 준서에게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준서야, 어제 나연 누나랑 집에 있으면서 창문 열었어? 환기했으면 다시 닫아야지, 창문 연 채로 밤에 잠들면 감기 걸려.”“아닌데요.”준서는 눈을 비비며, 아직 잠기운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저희는 낮에는 계속 아래에서 놀았어요. 위층에는 안 올라왔어요.”‘아니라고?’유하의 창문을 닫던 손이 그대로 멈췄다.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어제 외출하기 전에 창문은 분명 닫아 두었다. 집에는 다른 사람도 없었다. ‘준서와 나연이가 아니라면... 그럼 누구지?’차가운 공기가 스며드는 것만 같아서 유하는 순간 온몸이 싸늘해졌고 머리털이 쭈뼛 섰다.“준서야, 먼저 혼자 씻고 있어.”창문을 완전히 닫고 그렇게 한마디를 남긴 채, 유하는 급히 서재로 향했다. 소성란의 이 집에는 감시 카메라도 설치돼 있었다. 유하는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모니터를 켜 CCTV 화면을 확인했다.‘이상 없어, 전부 정상인데... 그런데 창문은 뭐지?’‘내 기억력이 하루 전 일도 기억 못 할 정도로 나쁘진 않은데.’‘확실해, 창문은 닫혀 있었어.’미심쩍은 마음에 유하는 하루치 영상을 전부 불러와, 프레임 하나하나를 꼼꼼히 확인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마에 식은땀이 맺히기 시작했다.‘이거... 누군가 CCTV에 손을 댄 흔적이 있어.’‘그 말은, 어제 내가 모르는 사이 누군가 여기에 들어왔다는 거야.’‘아니, 어쩌면 어제만이 아닐지도 몰라. 이번에 우연히 눈에 띈 것뿐일 수도 있어.’‘누구야? 코시오? 아니면 오승현?’‘그게 누구든 간에, 여긴 더 이상 안전하지 않아.’...더 생각할 것도 없이 유하는 집 안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수집실에 보관해 둔 것들까지 전부 꺼내 하나하나 대조하며 확인했지만, 이상하게도 없어진 물건은 없었다.유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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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9화

“누가 아저씨네 가족이래요?! 저 안 가요!”준서는 소리를 지르며 그대로 유하의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준서야!”아이를 붙잡지 못한 유하는 몸을 돌려 청산을 바라봤다. 표정에는 약간의 난처함이 묻어 있었다.“미안해, 준서가... 이미 조금 알고 있는 것 같아서. 그래서 아직은 좀...”말끝을 흐리며 더는 이어가지 못했다.“괜찮아, 천천히 하나씩 해결하면 되지.”청산은 이미 상황을 이해하고 있다는 듯 개의치 않았다. 그는 유하를 도와 차에 실려 있던 캐리어들을 하나씩 집 안으로 옮겼고, 일을 마친 뒤에야 자연스럽게 물었다.“그런데 왜 이렇게 갑자기 이쪽으로 온 거야?”전화를 받고 유하가 이쪽으로 다시 이사 온다는 걸 알았을 때, 청산은 반가우면서도 꽤 놀랐다. 그때는 유하가 너무 급하게 움직이는 분위기라 자세히 묻지 못했기에, 지금이라도 이유를 제대로 듣고 싶었다.유하는 숨기지 않았다.모든 이야기를 들은 청산은 미간을 살짝 좁혔다가, 먼저 그녀를 안심시켰다.“걱정하지 마. 이 근처는 국정원 쪽에서도 계속 신경 쓰는 지역이야. 내가 미리 이야기해 둘게. 여기 있는 동안에는 그런 일 다시는 없을 거야.”유하는 고개를 끄덕였다.“너는 믿지. 그건 당연해.”집에 누군가 침입했다는 걸 확인한 직후, 유하는 사실 가장 먼저 경호원을 더 붙이는 걸 생각했다. 하지만 곧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혹시라도 코시오나 승현 쪽에서 심어 놓은 사람이 섞여 있으면...’ ‘그건 정말로 문 열어주고 들이는 꼴이잖아.’여러 번 생각한 끝에, 가장 안전한 선택은 청산 쪽이라는 결론을 내렸다.청산의 신분 특성상, 그리고 국정원과의 관계 때문에 주변은 늘 보호받고 있었다. 코시오든, 오씨 가문이든 함부로 손을 뻗기 어려운 영역이었다. 그만큼 안전은 확실히 담보할 수 있었다.그것이 유하가 서둘러 준서와 청산을 익숙하게 만들고 싶어 했던 이유이기도 했다.유하와 소성란 사이에는 이미 약속이 있었다. 귀국 후 일주일 안에 준서와 재윤의 문제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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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0화

청산은 아예 정면으로 아이와 부딪쳐보기로 했다. 준서가 결국은 자기 엄마를 생각해서 한 번쯤은 물러설 거라고, 그 가능성에 배팅하기로 한 것이다.“만지지 마세요!”준서는 청산이 어깨에 얹은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표정에는 노골적인 불쾌감이 서려 있었지만, 그렇다고 더 이상 노골적으로 거절의 말을 내뱉지는 않았다. 대신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듯, 손가락으로 청산을 가리키며 쏘아붙였다.“아저씨가 무슨 생각하는지 다 알아요. 분명히 말해두는데, 제가 있는 한 절대 안 돼요. 저는 아저씨를 절대 인정하지 않을 거예요.”그것만으로도 모자란 듯, 준서는 이를 악물고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더러운 어른이에요.”청산은 그 말이 오히려 웃음이 났다. 아이가 좋아하든 말든 상관없다는 듯, 일부러 준서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으며 능청스럽게 물었다.“청산 아저씨라고 불러주면 좋잖아. 아저씨가 뭐가 그렇게 더러워? 혹시 우리 사이에 오해라도 있는 거 아니냐.”“만지지 말라니까요!”지난번 우연히 보게 된 휴대전화 연락처에 저장된 이름이 떠오르자, 준서의 속은 더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는 머리 위에 얹힌 손을 세게 쳐내버렸다.청산은 연이어 거부당해도 전혀 기분 상한 기색 없이 웃기만 했다. 손목의 시계를 한 번 힐끗 본 뒤, 여전히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그럼 준서, 가고 싶은 데는 있어? 아저씨가 어디든 같이 가줄게.”“없어요!”“그래? 그럼 아저씨랑 같이 일하러 가자.”청산은 마치 이미 정해진 수순이라는 듯, 웃는 얼굴로 그렇게 받아쳤다....병원 근처의 한 레스토랑.화려하게 꾸며진 실내, 창가 쪽 테이블에 유하와 배남진이 마주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고만 있었다.이렇게 마주 앉아 식사하게 된 것도 정말 오랜만이었다. 함께 밥을 먹는 건 더 오랜만이었다. 그래서인지 둘 사이에 어색함이 흘렀다.주문한 음식들이 하나둘 테이블 위에 올라오고 나서야, 유하가 먼저 침묵을 깼다. 말을 고르듯 잠시 머뭇거리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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