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왕비, 천재로 재탄생의 모든 챕터: 챕터 821 - 챕터 830

978 챕터

제821화

고지행이 다급히 말했다.“외조부님, 앉아서 말씀하시지요.”곡주는 자리에 앉아 백진아를 바라봤다.“네 몸 상태를 한 번 진맥해 보마.”‘이 사람도 의원이었구나.’그 말에 백진아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한쪽에 앉아 손목을 내밀었다.곡주는 오른손을 짚고, 이어 왼손까지 자세하게 살피며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몸에 큰 이상은 없다. 다만 내상이 아직 남아 있으니, 2년 정도는 잘 요양해야 한다. 기억 쪽은… 최근에 뭐 떠오른 게 있느냐?”“외조부님!”고지행이 불안한 듯 더 묻지 말라는 눈빛을 보냈지만, 곡주는 옅게 웃으며 계속 백진아를 바라봤다.백진아는 이 사람에게 타고난 위압감이 있다는 걸 느끼고, 얌전히 대답했다.“의술이나 약초에 관한 지식이 많이 떠올랐습니다. 지행이 보여준 의서도 익숙하고, 오히려 제가 설명해 줄 수도 있습니다.”곡주는 안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실망한 듯, 엄숙한 얼굴로 물었다.“정말 기억이 완전히 돌아오기 전에, 지행과 혼인할 생각이냐?”고지행이 다급하게 말했다.“외조부님! 이미 저희 혼인을 허락하셨잖아요!”곡주는 그를 한 번 노려본 뒤, 다시 백진아를 바라보며 답을 기다렸다.백진아는 조금 불안해져 무의식적으로 고지행을 바라봤다.그는 초조하고 간절한 눈빛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너도 나와 약속하지 않았느냐?”백진아는 눈을 떴을 때 처음 본 사람이 고지행이었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그를 온전히 믿고 의지하게 되었다.많은 동물이 처음 본 존재를 어미로 여기는 것처럼.이렇게 함께 지내온 시간 동안, 그의 세심한 보살핌과 존중, 배려 덕분에 그녀 역시 평생을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그를 떠나면 자신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그가 다른 여자와 혼인한다고 해도, 그 역시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았다.그래서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지행과 혼인하겠습니다.”고지행은 순간 긴장이 풀린 듯 기뻐하며,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그의 눈에는 깊고 변치 않는 애정이 담겨 있었다.곡주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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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2화

백진아는 그동안 고지행과 곡주, 단 두 사람만 봐왔던 터라, 이 붉은 옷의 여인은 그녀가 세 번째로 만나는 사람이었다.그래서인지 자연스레 호기심이 일었다.여자가 입은 붉은 옷감은 고지행이 평소 즐겨 입던 붉은 옷과 똑같았다.아마 고지행과 꽤 가까운 사이일 것 같았다.여동생일까? 사촌일까? 아니면… 연인?그 여자는 백진아를 보자마자 벌겋게 달아오른 눈으로 손가락을 뻗었다. 그리고 그녀를 가리키며 욕을 퍼부었다.“이 요물 같은 년, 역시 여기 숨어 있었네!”백진아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요물이라니?그건 보통 남의 사이에 끼어든 여자를 욕할 때 쓰는 말 아닌가?그녀는 냉정하게 말했다.“나는 고지행의 약혼자다. 넌 누구지?”그러자 여자는 엄청난 우스갯소리라도 들은 듯 비웃음을 터뜨렸다.“그의 약혼자라고요? 하하! 정말 당신에게 그 자리가 어울린다고 생각합니까?”그녀는 제 코를 가리키며 말했다.“똑똑히 보세요. 저야말로 그의 약혼자인 능란입니다. 당신은 그저 밖에서 주워 온 떠돌이 여자일 뿐이고요!”백진아는 눈을 가늘게 떴다.“그가 나를 약혼자라고 했으니, 내가 약혼자인 거야. 게다가 외조부님도 내 신분을 인정하셨어.”“외조부? 하하!”능란은 화가 치밀어 올라 제자리에서 몇 바퀴나 빙빙 돌았다.“그럼 지행 오라버니께서 당신을 이 골짜기의 다른 장로나 문인에게 소개한 적 있습니까? 없지요? 당신은 드러낼 수 없는 존재니까요! 곡주와 그의 대화를 엿듣고 그를 따라 여기까지 오지 않았다면, 저도 당신이 이 금지 구역에 숨겨져 있는 줄 몰랐을 겁니다!”백진아의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 말이… 어쩐지 일리가 있는 것 같았다.능란은 턱을 치켜들고 말을 이었다.“기억을 잃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두 남자를 거쳐 갔고, 그중 한 남자의 아이까지 가졌던 것도 기억 못 하겠지요? 중상을 입은 상황에서 자궁을 억지로 갈라, 다시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 된 것도 모르고 있겠고요.”백진아는 마치 벼락을 맞은 듯 휘청이며 문틀을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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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3화

능란은 요즘 고지행이 기쁘게 혼례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칼에 베이는 듯 아팠다.신의곡 전체가 등불을 달고 화려하게 혼례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정작 신부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사랑해 온 지행 오라버니가 다른 여자와 혼인하려 하는데, 그녀가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적어도 자신이 어떤 여자에게 졌는지는 알아야 억울함이 풀릴 것 같았다.그리고 그녀는 그 여자가 백진아라고 직감했다!하지만 아무리 캐묻고 울며 소란을 피워도, 곡주와 고지행은 끝내 신부가 누구인지 말해주지 않았는데, 마침내 기회를 잡았다. 곡주의 서재 장롱 안에 숨어, 숨결을 감추는 귀식단까지 먹은 뒤,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고 진상을 알게된 것이었다.백진아가 아이를 낳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녀는 한발 물러나, 평처라도 되겠다고 했다.하지만 고지행은 거절했다.그녀는 다시 한발 물러나, 첩이 되겠다고 했다. 그저 지행 오라버니의 아이를 남겨주고 싶다며 말이다. 하지만 고지행은 여전히 거절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는 평생 백진아만 사랑하겠다고, 백진아 한 사람만 원한다고, 그녀에게 조금의 속상함도 주지 않겠다고 했다.도대체 왜?‘왜 어려서부터 오라버니와 함께 자라며 깨끗하고 순결을 지켜온 내가... 한 번 시집갔고, 다른 남자와 혼약도 했고, 아이까지 가졌고, 심지어는 이제 아이를 낳을 수조차 없는 백진아에게 밀리는 거지?’그녀의 가슴은 칼로 도려내는 듯 아파왔다. 힘없이 문턱에 주저앉아 문틀에 머리를 기댄 채, 빛과 그림자가 뒤섞인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눈 앞이 점점 흐릿해지며,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한 사람은 하늘을 보며 멍하니 있고, 한 사람은 머리를 감싸 쥔 채 울었다.잠시 후, 한참을 울고 난 능란이 눈물을 닦고 일어나며 말했다.“예전의 당신은 지행 오라버니를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기껏해야 친구였던 사이에, 지금 그와 혼인하는 건 그에게 불공평한 일입니다! 나중에 기억이 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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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4화

달걀노른자처럼 둥근 석양이 산마루에 비스듬히 걸려, 하늘과 숲을 은은한 금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그리고 그 숲길 사이로, 불꽃처럼 붉은 그림자 하나가 길게 모습을 드러냈다.고지행은 상자 하나를 들고 보따리를 등에 멘 채 바쁜 걸음으로 오고 있었다. 중성적인 아름다운 얼굴에는 행복에 겨운 웃음이 번져 있었다.나무들 사이로 오두막이 보이자, 그의 미소는 더욱 깊어졌고 보조개도 짙어졌다. 자연스레 걸음도 빨라졌다.“희야! 희야! 내가 왔어!”그러나 곧 그는 멈칫하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백진아는 오감이 예민했다. 특히 청력이 뛰어나 평소라면 그의 발소리만 듣고도 달려 나와 문 앞에서 환하게 웃으며 맞이해 주었을 텐데, 오늘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자는 건가?’고지행은 발소리를 죽인 채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 그는 살금살금 안으로 들어갔다.하지만 침상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고지행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희야, 희야, 내가 왔어! 우리 혼례복도 다 고쳤고, 네가 좋아하는 생선과 연근도 가져왔다!”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창문 틈으로 스며든 바람만이 얇은 가림막을 높이 들어 올렸다가, 이내 힘없이 흩뜨릴 뿐이었다.“희야!”그가 다시 한번 부른 순간, 불길한 예감이 가슴을 짓눌렀다. 굳어진 얼굴로 욕실과 다실을 차례로 확인했지만, 어디에도 그녀의 모습은 없었다.마지막으로 서재 문을 열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방 안에는 바람에 책상 위 종이들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만이 맴돌고 있었다. 그리고 하트 모양의 자갈 아래, 편지 한 통이 눌려 있었다.그것은 두 사람이 시냇가에서 작은 새우를 잡다가 함께 발견했던 돌이었다.고지행은 문 앞에 선 채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붉어진 눈가, 크게 뜬 눈동자, 누군가 심장을 움켜쥔 듯한 답답함이 그를 짓눌렀다.그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한 걸음, 또 한 걸음.다리는 납덩이처럼 무거웠고, 책상 앞까지 가는 짧은 거리마저 한없이 멀게 느껴졌다.겨우 책상 앞에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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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5화

그녀가 그렇게 편지를 쓴 건, 달리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수많은 말이 목에 걸려 있었지만, 기억을 되찾았다는 말만이 떠나기에 가장 그럴듯한 핑계가 되어주었다.고지행이 저렇게 애타게 외치는 걸 보니, 두 사람은 정말 사제 관계였던 모양이다.그녀는 코끝을 훌쩍이며 흐느꼈다.“지행아… 고마워… 미안해. 기억을 되찾은 뒤에도… 여전히 너와 혼인하고 싶고, 네가 그때도 나를 원한다면… 그때 다시 혼인하자.”그녀는 마음을 다잡고 몸을 돌려 앞으로 걸어갔다.그때 발밑에서 ‘딱’ 하는 소리가 났다. 무언가를 밟은 듯한 느낌이었다.곧이어 사부작사부작 소리와 함께, 사방에서 수많은 대나무 화살이 그녀를 향해 날아들었다.백진아는 깜짝 놀랐다. 고지행이 이곳은 금지 구역이라 주변에 수많은 기관과 함정이 있으니, 그의 안내 없이는 함부로 돌아다니지 말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설마… 기관을 건드린 건가?’하늘을 뒤덮듯 쏟아지는 대나무 화살을 보며, 그녀는 반사적으로 몸을 낮춰 바닥을 몇 바퀴 굴렀다.등 뒤로 화살들이 아찔하게 바닥에 박혔다. 그러나 고개를 들자마자, 더 촘촘한 화살들이 다시 쏟아져 내려왔다.더는 피할 곳이 없었다. 백진아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번에도 온몸이 화살에 꿰여 고슴도치 꼴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예상했던 고통은 찾아오지 않았다.그녀는 긴장한 채 살짝 눈을 떴다가, 곧 깜짝 놀라고 말았다.눈앞의 풍경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곳은 무척 익숙했다.그녀는 푸른 풀밭 위에 엎드려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윤기 나고 살이 오른 말 두 마리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앞쪽에는 맑고 투명한 영천수가 흐르고 있었고, 작은 온천 같은 웅덩이도 있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그것이 목욕이나 수련에 쓰이는 곳임을 알 수 있었다.그 너머에는 넓은 연못이 펼쳐져 있었다. 연잎이 가득 떠 있고, 그 사이로 다양한 연꽃이 피어 있었으며, 물속에는 물고기들이 빽빽하게 헤엄치고 있었다.더 멀리에는 끝없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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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6화

고지행은 백진아가 남긴 흔적을 찾지 못하자, 방향을 잃은 사람처럼 산속을 헤매며 뛰고 또 외쳤다. 불꽃처럼 붉은 비단옷은 어느새 나뭇가지에 긁혀 갈기갈기 찢어졌고, 눈처럼 하얀 피부에도 피가 흘렀다.그러다 끝내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고, 땅에 엎드린 채 일어나지 못했다.그 모습을 본 백진아는 견딜 수 없을 만큼 가슴이 아팠다. 그녀도 공간의 풀밭 위에 힘없이 주저앉아 눈물을 쏟아냈다.‘미안해… 미안해…’지금 그녀의 마음속에는 오직 고지행뿐이었다. 그는 그녀에게 부모이자, 오라버니이자, 친구이자, 연인이었다...텅 빈 그녀의 세계에서 유일한 존재이기도 했다.그래서 그를 떠나는 일이… 너무나 아팠다. 가슴이 찢어질 듯했다.하지만 진실을 알게 된 이상, 더는 함께할 수 없었다. 그것은 서로에게 무책임한 일이었으니까.결국 그녀는 아픔을 참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그때 아주 미세한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졌다. 백진아가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자, 어깨까지 내려오는 백발의 곡주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그는 고지행의 슬픔을 방해하지 않고, 멀리서 조용히 바라보기만 했다. 눈빛에는 자애로움과 안타까움, 연민, 그리고 차마 누를 수 없는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고지행의 어깨 떨림이 멈추자, 곡주는 일부러 발소리를 크게 내며 그를 불렀다.“행아, 행아!”고지행은 급히 몸을 일으켜 소매로 얼굴을 훔치고는, 고개를 숙인 채 답했다.“여기 있습니다…”곡주는 다가와 아무 말 없이 그를 꼭 안아주었다.“그만, 돌아가자.”고지행은 점점 어두워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다른 곳에서도 함정이 발동됐을까요? 연약한 여인이 혼자 이 금지 구역을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다칠지도 모르니 꼭 찾아야 합니다. 가진 것도 없는데 어떻게 밥을 먹고, 어디서 묵겠습니까? 나쁜 사람을 만나기라도 하면 어쩌죠? 생각만 해도 위험합니다!”곡주는 조용히 그를 타일렀다.“그 아이는 혼자서 와룡산을 드나들며 구전환혼초와 귀원주까지 얻어온 아이다. 이 금지 구역의 진법이 그 아이를 해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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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7화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약 밭 창고를 둘러보려 했는데, 몸은 어느새 창고 문 앞에 서 있었다.이곳에서는 ‘의념’만으로 모든 것을 조종할 수 있는 듯해 백진아는 내심 기뻤다.창고 안은 매우 넓었고, 곡식과 과일, 채소, 약초, 완성된 약, 금은보화, 벌꿀, 로열젤리까지 온갖 것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그 안에는 그녀가 따로 만들어 둔 작은 침실도 있었다. 이곳에서는 시간이 흐르지 않기에, 그녀에게는 예전부터 이 창고에서 잠을 자며 세포 노화를 늦추는 습관이 생겼다.백진아는 로열젤리를 조금 꺼내 먹었는데, 곧 몸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이어 단약이 담긴 상자를 열어 최상급 보원단과 양영환을 꺼내 먹었다. 모두 내상을 치료하고 외상을 회복시키는 귀한 약이었다.몸이 완전히 회복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침실 서랍을 열어보니 여러 장신구와 잡동사니가 들어 있었고, 백진아는 그중 검은 나무패 하나를 발견했다. 거기에는 람성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또 다른 옥패에는 ‘소요령’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람성?’이상하게도 낯설지 않은 이름이었다. 무의식중에 그곳으로 가야 한다는 느낌마저 들었다.어차피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상태였기에, 그녀는 우선 람성으로 가보기로 했다.백진아는 다시 의료 건물 쪽을 한 바퀴 둘러보았고, 안에 있는 각종 기기를 보자 자연스럽게 사용법이 떠올랐다.이어서 약 밭과 동물 구역도 살폈다. 특히 동물 구역에는 배설물과 쓰레기가 산처럼 쌓여 있었는데, 그녀는 비료로 쓸 수 있는 것은 약 밭으로 보내고, 쓸 수 없는 것은 시스템의 쓰레기 처리 기능에 넘겼다.한창 정리하고 있을 때, 문득 발소리가 들려왔다.고개를 들어보니 두 사람이 횃불을 들고 천천히 걸어오며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백진아는 곡주가 사람들을 보내 산속을 샅샅이 수색하게 했다는 말을 떠올렸다. 아마 신의곡의 순찰 인원일 것이다.그들이 멀어지자, 그녀는 공간을 빠져나와 멀찍이서 뒤를 따랐다.울창한 숲은 오두막 근처의 복숭아 숲과는 전혀 달랐다. 곳곳에 위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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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8화

신의곡 밖은 산지나 산길이 아니라, 무척 번화한 큰 마을이었다.아마 신의곡에 약재를 사고팔거나 치료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마을이 형성된 듯했다.밤은 이미 깊었지만, 마을 곳곳에는 아직도 등불이 켜져 있었고 떠들썩한 사람들의 목소리도 흘러나왔다. 다만 성문은 이미 닫힌 뒤였다.백진아는 곡주가 마을 안에 사람을 배치해 두었으니, 그녀가 나타나기만 하면 곧바로 알아챌 것이라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래서 우선 공간으로 들어가 날이 밝은 뒤, 변장하고 사람들 틈에 섞여 마을로 들어가기로 했다.어차피 급한 일도 없었다. 지금 그녀는 그저 목적 없이 떠도는 중이었으니까.백진아는 닭 한 마리를 잡고 연못에서 물고기 한 마리를 건져 올려 손질하기 시작했다. 푸짐한 저녁을 준비할 생각이었다.네 마리의 늑대는 어느새 다 자라 성체가 되어 있었고, 키도 그녀의 허리께까지 닿았다. 그래도 여전히 그녀를 주인으로 기억하는 듯 기쁜 기색으로 주변을 맴돌았다.늑대는 원래도 영리한 동물이지만, 이 공간에서 자란 탓인지 지능이 훨씬 높아져 제법 영적인 기운마저 느껴졌다.백진아는 손을 움직이며 말했다.“너희들, 먹을 때 여기저기 피투성이로 만들지 말고 우리 안에서 먹어. 나중에 내가 정리해 줄게.”네 마리 늑대는 알아들었다는 듯 울부짖었다.백진아는 웃으며 덧붙였다.“그리고 매일 연못에서 목욕도 해. 나는 향긋한 아이들이 좋거든.”“아우!”늑대들은 귀엽게 그녀를 바라봤고, 그중 한 마리는 애교를 부리듯 다가와 몸을 비볐다.백진아는 연못 속에서 펄떡이는 물고기들을 바라보았다. 수가 너무 많아, 이제는 거의 재앙 수준이었다.“물고기도 먹어도 되지만, 가시에 찔리지 않게 조심해야 해.”그녀는 물고기를 들어 수술용 칼로 몇 번 만에 가시를 발라낸 뒤, 늑대들에게 보여주며 일부러 입가를 살짝 찔렀다.“찔리면 아프지?”늑대들은 놀라 낑낑거리며 뒤로 물러섰다.“하하…”백진아가 짓궂게 웃자, 장난이라는 걸 알아챈 늑대들이 다시 달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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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9화

태극장과 태극권을 마치고 나니, 밖은 어느새 희미하게 밝아오고 있었다.그때 백진아는 말이 빠르게 달리는 소리를 들었다. 밖을 내다보니, 고지행이 짐을 멘 채 말을 타고 달려오고 있었다. 먼 길을 떠나려는 듯한 모습이었다.성문이 열리자, 그는 가장 먼저 성안으로 들어갔다.백진아의 마음은 복잡하게 흔들렸지만, 애써 시선을 거두고는 아침 준비를 했다.아침을 먹으면서 성문 쪽 상황을 살펴보니, 신의곡으로 향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복장은 제각각이었지만 대체로 상인 차림이 많아, 아마 약재 상인들인 듯했다.백진아는 옷장에서 상인들이 입을 법한 남자용 두루마기를 찾아 입고, 약초를 짓찧어 낸 즙을 얼굴과 손에 발랐다. 눈처럼 하얗던 피부를 누렇게 그을린 색으로 바꾸고는 거기에 점을 찍고 수염을 붙인 뒤 눈썹까지 짙게 그렸다.그렇게 그녀는 알아보기 힘든 콧수염 난 청년이 되었다.오후가 되자 신의곡 방향에서 사람들이 하나둘 돌아오기 시작했고, 그녀도 공간에서 나와 그들을 따라 마을로 들어갔다.마을은 여전히 북적였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오가고 있었고, 날카로운 눈빛을 한 이들이 그 사이를 오가며 사람들을 살피고 있었다.백진아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들이 신의곡 사람들이라는 걸 알아차렸기 때문이다.그때 문득 누군가가 위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티 나지 않게 시선을 올리자, 수척해진 얼굴의 고지행이 초조한 눈빛으로 거리의 사람들을 훑고 있었다.의원은 사람의 골격과 체형에 익숙하기에, 걸음걸이와 몸 선만 봐도 여자인지, 남장한 것인지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떡하지? 들키면 엄청 난처할 텐데…’하지만 더 중요한 건, 들킨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지느냐는 것이었다.고지행과 함께 있으면 그의 마음이나 그녀 역시 편치 않을 것이다.바로 그때 마차 한 대가 지나갔다. 제법 큰 마차였고, 거리에 사람이 많아 말도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그녀는 재빨리 마차 곁으로 다가가 차체에 바짝 붙어 걸으며, 무릎을 살짝 굽혀 몸을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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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0화

백진아는 신분을 증명할 물건이 없어, 국경을 넘는 일이 꽤 번거로울 거라고 생각했다. “다른 길은 없나요?”중년 남자가 말했다.“다른 길이라면 배를 타고 남해를 지나 월국으로 들어간 뒤, 북쪽으로 올라가는 방법이 있지. 아니면 북쪽으로 산을 넘고 고개를 넘어 융적 지역을 통과하는 길도 있는데, 그건 너무 돌아가는 길이네.”백진아는 두 손을 모아 예를 올렸다.“고맙습니다, 형님!”어차피 다른 나라를 거쳐야 한다면, 가장 가까운 길을 택하는 편이 나았다.그녀는 임강성 방향을 물은 뒤, 다시 방향을 돌려 왔던 길을 되짚어 갔다.가는 동안 주변을 구경하며 이 세상을 조금씩 알아갔다. 먹고 자는 일은 모두 공간 안에서 해결할 수 있었기에 돈도 들지 않았고, 굳이 숙소를 잡을 필요도 없었다.길에서 약초나 과일나무, 들꽃을 발견하면 모두 공간으로 들여왔다.고무나무, 바나나 나무, 카카오 나무, 두리안 나무까지 발견한 그녀는 약 밭 일부를 비워 그 나무들을 심었다.새로운 종을 들인 덕분인지 공간은 보상으로 큰 선물을 주었고, 그 안에는 최상급 단약과 귀한 약초 씨앗들이 들어 있었다.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이 세계의 기본적인 규칙을 거의 이해하게 되어, 이곳 사람들과도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었다.매일 공간에서 생활한 덕분에 몸 상태도 훨씬 좋아졌다. 기억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지만, 공간을 다루는 일만큼은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그 무렵, 붉은 옷을 입은 한 사람이 말을 타고 달리고 있었다. 말발굽이 일으킨 먼지가 붉게 흩날렸다.그 준마는 월국 황궁 앞에 이르러서야 갑자기 멈춰 섰다.‘히힝! 히힝!’말이 울부짖으며 앞발을 치켜들었다.“누구냐?”황궁 문 앞의 금위군들이 칼을 뽑아 들더니, 순식간에 고지행을 에워쌌다.고지행은 내력으로 말을 진정시킨 뒤, 그들을 내려다보며 여유롭게 말했다.“가서 전해라. 신의곡 소주가 월국 황제를 알현하러 왔다고.”그는 온몸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고, 잘생긴 얼굴에도 피로가 묻어 있었다. 하지만 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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