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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4화

Author: 정대천
윤서원은 신수빈이 윤 가의 정실부인 신분을 이고 적장자를 낳겠다고 하는 것에 분을 삼키지 못했다. 그는 뒤어금니를 꽉 물고 소매를 휘날리며 떠났다.

돌아가는 길에도 윤서원은 곰곰이 생각했다. 그녀와 뱃속의 그 잡종을 건드릴 수 없다면 이도현과 따로 조건을 논할 수밖에.

그의 아이를 키워준다면 그 역시 무엇인가 대가를 치러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저녁 식사 후, 금자가 부엌에서 달인 약을 가져왔다.

이것은 신 가의 큰 오라버니가 의원을 불러 지은 처방으로 전조 궁중에 사는 어의가 만든 것이었다. 그는 여인의 출산에 도움 되는 약을 만드는 것에 도가 튼 사람이었다.

달마다 이 약을 두 번 먹으면 태아가 반 달 정도 늦게 태어날 수 있는데 아이의 건강에는 아무런 해가 없다고 한다.

신수빈은 막 약을 마시려다 약 냄새가 예전과 조금 다르다는 걸 느끼고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금자야, 약을 달일 때 혹시 자리를 비웠느냐?”

금자가 곰곰이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뒷간에 한 번 다녀왔사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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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535화

    불사 문제는 조만간 처리해야 할 일이긴 했지만, 이도현은 굳이 그녀에게까지 자세히 말하지 않기로 했다.“네 오라버니와 형수는 화해한 것이냐?”방금 전 두 사람이 함께 들어오고 함께 나가는 모습을 보니, 더는 서로 토라져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다.“네. 두 사람 다 왕야께 감사 인사를 전해 달라더군요. 왕야께서 몸까지 던져 도와주시지 않았으면, 오라버니는 아직도 봉소야한테 시달리고 있었을 거라고요.”신수빈의 눈빛엔 장난기 어린 웃음이 어려 있었다.이도현은 그녀를 바라보다가 손을 들어 그녀의 엉덩이를 가볍게 한 대 쳤다.“본왕은 전부 네 체면을 봐서 나선 건데, 너는 그런 눈으로 날 놀리는 것이냐?”신수빈은 순간 멍해졌다.한 번도 자신을 이렇게 대한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곧이어 새하얀 뺨이 붉게 달아올랐다.“왕야, 정말...”속으로는 ‘능글맞다’고 말하려 했지만, 막상 생각해 보니 그보다 더 뻔뻔한 짓들도 이미 얼마든지 하지 않았던가.더구나 이제는 몇 번이나 몸을 섞은 사이였다.부부 사이란 원래 이런 것이기도 했다.그렇게 생각하니 차마 입 밖으로 나무랄 수도 없었다.신수빈은 몸을 일으켜 그의 팔을 밀어냈다.“변태...”그녀는 작게 투덜거렸다.마침 그때 시녀들이 음식을 들고 안으로 들어왔고, 신수빈은 재빨리 몸을 일으켜 섰다.이도현은 방금 전 그녀가 얼굴 붉히던 모습을 떠올리며 시선을 슬쩍 아래로 내렸다.얇은 봄옷 아래로 드러나는 가느다란 허리선과 그 아래 둥글게 이어지는 곡선.지금까지는 정작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 있어 미처 몰랐는데, 막상 손에 닿아 보니 감촉이 꽤 좋았다.오늘 밤엔 제대로 괴롭혀 봐야겠다고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저녁상이 차려진 뒤, 신수빈은 그의 손을 끌어 함께 손을 씻게 한 후 마주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이도현은 그녀에게 굳이 채식을 고집하지 말라 일러 두었지만, 몸보신용 약선 요리를 제외하면 신수빈은 여전히 절의 규율을 따르고 있었다.원래도 저녁을 많이 먹지 않는 그녀였기에, 이도현은 그녀가 몇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534화

    두 사람은 그날 정자에서 화해한 이후로 며칠동안 마주치지 않았다.신병문과 정 씨, 그리고 시녀들까지 모두 물러나자, 방 안에는 어느새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그러자 신수빈은 이유 모를 긴장감에 괜히 가슴이 조여 오는 것을 느꼈다.“왕야께서 오늘은 어쩐 일로 시간까지 내신 겁니까?”“춘시와 봄 농사 일은 어느 정도 끝났다. 급하지 않은 정무는 내각에서 처리하고 있고.”이도현은 창가 아래 미인탑에 기대앉은 채 느긋하게 말을 이었다.“천하 일이란 게 원래 끝도 없이 자잘하고 번거로운 법이지. 본왕이 그걸 하나하나 다 직접 처리하다간 과로사라도 하겠다.”신수빈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그리고 미인탑 옆 낮은 의자에 앉아 조용히 손을 들어 그의 미간을 눌러 주기 시작했다.“이 시간에 오신 걸 보면... 오늘은 여기서 주무시려는 건가요?”“그래.”신수빈은 창 너머로 시녀들에게 저녁상을 준비하라 일러 둔 뒤, 다시 그의 머리를 천천히 마사지해 주었다.그녀는 그의 관을 벗겨 내려놓고, 흐트러진 머리카락 사이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그러고는 부드러운 손끝으로 두피를 천천히 문질렀다.긴장이 풀리도록 살살 눌러 주는 손길에 이도현은 온몸이 나른하게 풀어지는 기분이었다.문득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영웅의 무덤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을 이제야 알 것 같다고.“왕야,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으세요?”“아니.”이도현은 느릿하게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왜 그렇게 묻는 것이냐?”“왕야께서 계속 미간을 펴지 않으셔서요. 무슨 근심이라도 있으신 줄 알았어요.”이도현은 그녀를 한 번 바라봤다.윤서원 이야기를 꺼내면 분명 그녀 마음만 더 복잡해질 터였다.그래서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별일 아니다. 조정의 고집불통 늙은이들 때문에 좀 성가실 뿐이다.”신수빈의 손길은 그의 어깨와 목덜미로 내려갔다.하지만 단단하게 다져진 근육 탓에 아무리 힘을 줘도 제대로 풀리지 않았다.오히려 그녀 손끝만 시큰해질 정도였다.이도현은 그녀의 손목을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533화

    “형수님은 감히 오라버니를 무릎 꿇게 하신 겁니까? 도대체 얼마나 혼내신 건가요?”신병문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고, 정 씨는 다가와 신수빈을 때리는 시늉을 했다.“얘는, 또 장난치고 있네.”신수빈은 웃으며 정 씨의 팔을 끌어안고 제 곁에 앉혔다.“오라버니랑 형수님이 다시 좋아지셨다면, 제가 무릎 꿇는다고 해도 괜찮아요.”정 씨는 그녀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콕 찌르며 웃었다.“네 오라버니만 잘못한 게 아니다. 나도 화가 난다고 설명도 제대로 듣지 않고 뛰쳐나왔으니... 우리 둘 다 잘못한 거지. 이제는 다 풀렸으니, 네가 걱정할까 봐 일부러 와서 말해 주는 것이다.”정 씨는 말을 하다 말고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빈아, 전에 내가 네게 했던 말, 잘 생각해 봤느냐?”신수빈은 시선을 내렸다.그녀가 말하는 것이 자신과 이도현의 일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나도 네 오라버니와 같은 생각이다. 네가 앞으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 섭정왕은 좋은 사람이다.”신수빈은 고개를 들었다.오라버니와 정 씨의 눈빛에는 진심 어린 기대가 담겨 있었다.그녀는 한숨을 내쉰 뒤 조용히 말했다.“저도 노력해 보려고요. 그분과 제대로 된 부부로 살아가 보려고 합니다. 사실 이준우 일도 며칠 전에 말하려고 했어요. 헌데 그때 막 크게 다툰 직후였고... 제가 그 사람을 속이기도 했잖아요.”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그분은 더 이상 따지지 않으셨지만... 제가 또 거짓말한다고 생각하실까 봐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어요. 다음에 만나게 되면... 그땐 다 말씀드릴 생각입니다.”신수빈은 목 끝까지 차오른 말을 끝내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정 씨와 신병문은 그녀가 노력해 보겠다고 말하는 순간 동시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신수빈은 워낙 영민한 사람이었다.한번 마음을 정하기만 하면, 분명 스스로 삶을 잘 꾸려 나갈 수 있을 터였다.그 뒤로는 집안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누었고, 신병문은 최근 상단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하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532화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이도현의 목소리는 서늘할 만큼 날카로웠다.“신은 신 씨와 화이할 수 있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다만 왕야께서 신의 아들을 돌려보내 주신다면, 오늘 당장이라도 방처서(放妻書: 남편이 아내와의 혼인을 정식으로 끝낼 때 주는 이혼 문서)를 써 드리겠습니다.”탁자 위에 올려져 있던 이도현의 손이 천천히 주먹으로 말려 들어갔다.“윤서원, 지금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것이냐. 네게 아들이 어디 있다는 것이냐?”윤서원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그리고 사람을 짓누르는 듯한 이도현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아냈다.“왕야께선 신이 무슨 뜻으로 드리는 말씀인지 이미 알고 계실 줄 알았습니다. 신의 부인을 원하신다면 얼마든지 데려가십시오. 헌데 신의 아들은 왕야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아이입니다. 왕야께서 날마다 그 아이를 보고 계시면, 자연히 신이 떠오르실 테고... 그렇다면 왕야께서도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지 않으시겠습니까.”윤서원은 이도현의 턱선이 굳어지는 것을 보며, 그가 지금 간신히 분노를 억누르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그는 일부러 놀란 척 눈썹을 치켜올렸다.“설마 신 씨가 왕야를 속인 겁니까? 그 아이가 왕야의 핏줄이라고 말이라도 했습니까?”윤서원은 비웃듯 말을 이었다.“왕야께서도 아시다시피, 신은 애초에 신 씨와 화이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내의 아이를 갖게 둘 이유도 없었지요. 그날 그녀가 돌아온 뒤 바로 피임약을 먹었고, 이후 월사까지 치렀습니다. 월사가 끝난 뒤 저희는 동침했고, 그 후에야 신은 재해 구휼을 위해 떠났습니다.”윤서원의 입가가 천천히 비틀렸다.“그 아이는 조산아입니다. 날짜를 아무리 따져 봐도... 왕야의 아이일 수는 없지요.”이도현이 끝내 말이 없자, 윤서원은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아, 그러고 보니 예전에 아버지께 들은 적이 있습니다. 우리 집안 남자들은 엉덩이에 호랑이 머리 모양의 푸른 태기가 있다고요. 공교롭게도 저도 태어날 때 그걸 물려받았습니다. 만약 제 아들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531화

    “좀 더 크면 이런 내실 여인들이랑 지내게 둘 수 없겠군. 안 그래도 멍청한데, 저 사람들 손에 길러져 더 멍청해지면 어쩌려고.”꼬마는 이제야 그를 본 탓에 기분이 한껏 좋아져 있었다.이도현의 목을 끌어안고 그의 얼굴에 뺨을 부비며 연신 까르르 웃었다.이제 아이는 막 백일을 넘긴 참이었다.관가든 평민 집안이든, 적자든 서자든 백일잔치는 크고 작게 몇 상쯤 차려 축하하는 법이었다.목욕 의식이나 만월연 같은 잔치도 빠지지 않았다.이도현은 아이를 바라봤다.신수빈과 꼭 한 틀에서 찍어 낸 듯 닮아 있었다.지금 이 모습 그대로 사람들 앞에 드러난다면, 분명 온갖 말들이 끊이지 않을 터였다.그러니 조금 더 자라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사내아이란 자라면서 이목구비가 점점 단단해지고, 여자아이 같은 부드러운 느낌도 차츰 옅어질 테니까.그때쯤이면 더는 누가 뭐라 하지 못할 것이다.꼬마는 아직 앵무새 놀이가 덜 끝난 모양이었다.앵무새를 방 안으로 들여오자, 이도현은 책상 곁에 앉아 책을 읽으며 아이를 반쯤 품에 안았다.아이는 가끔씩 앵무새를 향해 옹알거리듯 말을 걸었다.“바보 꼬맹이.”갑자기 앵무새가 한마디를 내뱉었다.이도현이 내려다보니 품 안의 꼬마는 신이 나서 까르르 웃고 있었다.그는 결국 웃음을 참지 못했다.“앵무새도 네가 바보인 줄 아는데, 혼자 좋다고 웃고 있네.”“바보 꼬맹이.”앵무새는 계속 같은 말을 반복했다.이도현은 웃으며 아이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속으로는 이제 더는 ‘바보 꼬맹이’라고 부르게 두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좀 더 크면 진짜 자기 이름이 바보 꼬맹이인 줄 알 테니까.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앵무새가 또다시 떠들기 시작했다.“바보 꼬맹이, 왕야 바보...”“왕야 바보...”발가락으로 생각해도 누가 가르쳤는지 뻔했다.시녀들에게 백 개의 간을 줘도 감히 저런 말을 가르칠 리가 없었다.이도현은 그 순간 열이 치밀어 올랐다.그러나 곧 신수빈이 앵무새를 가르치며 눈이 휘어지게 웃고 있었을 모습을 떠올리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530화

    이도현이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민 씨 뒤에 서 있던 초담은 끝내 고개를 들지 않았다. 섭정왕을 배웅할 때조차 시선은 계속 바닥에 있었다.이도현이 떠나자마자 민 씨는 손에 들고 있던 뜨거운 찻잔을 그대로 집어던졌다.찻잔은 초담의 이마 끝을 스치며 깨졌고, 뜨거운 차가 그녀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초담은 급히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제가 무엇을 잘못해 어머니 심기를 거슬렀는지 모르겠습니다. 부디 노여움을 거두어 주세요.”민 씨는 안쪽 방으로 들어가 부드럽지만 질긴 얇은 대나무 자를 들고 나왔다.그러고는 손을 들어 그대로 초담의 뺨을 후려쳤다.초담은 고통에 짧게 신음했지만, 감히 몸 하나 움직이지 못했다.이런 부드러운 죽척은 가장 아프게 때리면서도 흔적은 남기지 않는 물건이었다.청루에서 기녀들을 길들일 때 흔히 쓰는 도구이기도 했다.“장안으로 오기 전에 내가 뭐라고 했느냐? 섭정왕을 만나면 네가 평소 배운 수법들을 전부 쓰라고 하지 않았더냐. 세상에 천진난만하고 교태 부리는 여자를 싫어하는 사내가 어디 있느냐. 헌데 넌? 내내 고개만 처박고 있었지! 차를 따르라 해도 못 들은 척이나 하고, 그분 눈에 띌까 겁이라도 난 사람처럼 굴더구나. 차라리 벽 틈에 숨어 버리지 그랬느냐?”초담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곧이어 두 번째 죽척이 날아들었다.양쪽 뺨이 화끈거리며 아팠지만, 그녀는 이를 악문 채 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입 다물고 버티겠다는 거냐? 좋아. 네 입이 센지, 내 수단이 센지 한번 보자꾸나!”민 씨의 손이 다시 연달아 내려쳤다.찰싹, 찰싹.결국 초담이 더는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엎드린 채 애원했다.“어머니, 제발 그만하세요. 제가 섭정왕 앞에서 교태를 부리기 싫었던 건... 지금은 예전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어머니와 제가 천한 신세라 스스로를 지킬 수 없었으니, 이 몸 하나로 권세가들 사이를 떠돌 수밖에 없었어요. 헌데 이제는 사촌 오라버니께서 황족이시고, 천하를 거느리는 섭정왕이십니다. 누가 감히 우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18화

    그의 손은 왼손 호구 자리에 희미하게 남은 이자국을 천천히 어루만지고 있었다. 그것은 어젯밤, 신수빈이 자해하지 못하도록 막다가 그녀에게 물린 자국이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니 감히 그와 눈을 마주치는 자는 없었고 모두가 저절로 머리를 떨구었다.이제서야 모두는 깨달았다. 소위 고명대신, 삼족정립의 형세는 모두 허상일 뿐, 실로 생사대권을 손에 쥐고 있는 자는 줄곧 이도현 한 사람뿐이었다.검시관이 계속 시신을 살폈고 조정에는 감히 다시 입을 여는 자가 없었다.동각대학사, 내각차보라 할지라도, 그가 죽이라 하면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120화

    관사 환관은 머리의 땀을 훔치며 말했다.“윤씨 부인은 죽지 않았사옵니다. 물에 들어간 그 시녀가 구해서 지금 춘진각에 있사옵니다.”태후의 손에 들린 옥빗이 무심결에 떨어져 바닥에 부딪히며 두 동강이 났다.“그 시녀가 물에 들어갔을 때, 호수 바닥은 이미 피로 물들어 있었다! 한데 어째서 아직도 죽지 않았다는 것이냐?”“죽은 것은 자객 환관이랍니다. 이미 섭정왕께서 건져 올려 뼛가루까지 흩뿌리셨사옵니다.”태후는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그녀는 호수 바닥에 사람을 더 배치해두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신수빈 같은 연약한 여자가 물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73화

    지난번 책봉을 받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궁에 들어가 감사의 예를 올려야 했다.다음 날 이른 새벽, 궁중에서 이미 전갈이 내려왔다. 신수빈은 서둘러 일어나 청하의 시중을 받아 고명복을 단정히 입고 마차에 올라 궁궐로 향했다. 이번에는 청하를 데리고 가지 않고 은보만 동행시켰다. 궁문 안으로 들어서면서 은보의 침착한 얼굴빛과 신중한 거동을 살펴보던 신수빈은 자신의 추측이 점점 더 확신으로 굳어가는 것을 느꼈다. 궁 안으로 들어가자 작은 가마가 준비되어 있었고 그녀는 그 위에 앉아 느릿느릿 영수궁을 향해 나아갔다.그 시각 바깥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67화

    후부 내의 장부들은 모두 창란원에 모여 있었으나 신수빈은 책을 뒤적이지도 않고 손가락으로 가볍게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저쪽이 바로 분가 이후, 이십 해 가까이 이방과 삼방의 점포와 전답에서 들어온 수지 기장입니다. 옛 평양후께서 세상을 떠난 지도 십 해가 되어가죠. 그 십 해 동안은 조모님 곁을 지키던 배필 관사들이 매달, 매해의 출납을 빠짐없이 적어 두었습니다. 그중 몇몇 의복 가게들은 천하가 평정되면서 남쪽에서 진상된 촉비단과 소주 자수가 경중을 휩쓸자 진부한 양식만 내놓던 가게들은 매해 적자를 면치 못했습니다. 거기에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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