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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거슬러 のすべてのチャプター: チャプター 601 - チャプター 610

722 チャプター

제601화

서인경은 그 말을 듣자마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그게 무슨 뜻인가?”맹은영은 오는 길에 맹경운이 해준 말을 하나도 빠짐없이 조목조목 얘기해 주었다.“단 가에는 자식이 셋 있습니다. 단여월은 대황자의 측비로 들어갔는데 다른 측비와는 늘 원수처럼 싸워댔지요. 한데 이상하게도 매번 밀리기만 하고 이기질 못했습니다. 그럼 단평안은요? 좋아하지도 않는 여인과 억지로 혼인한 것도 모자라 다리까지 다쳐 평생 일어설 수 없게 되었어요. 그래서 단효산은 단평안에게 더는 기대하지 않고 이제 막 태어난 둘째 아들에게 모든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결국 자식 셋 가운데 그나마 쓸모 있는 건 단은설 하나뿐이라는 겁니다. 단은설이 귀비로 책봉되기만 한다면 후궁에서 막강한 권력을 쥘 수 있을 테지요. 그리고 단 가는 또 황후와 인척 관계라 당연히 대황자를 도와 황위를 노릴 겁니다. 그렇게 된다면 단여월 또한 덩달아 덕을 보게 될 터. 단 가의 두 딸은 다 앞길이 창창하고 막내아들은 집안의 희망이라 여겨지고 있으니 이 속에서 제일 마음이 편치 않은 게 누구겠습니까?”서인경은 잠시 생각하다가 문득 누군가를 떠올렸다.“단평안은 순한 사람이 아니네!”맹은영은 그 말을 듣자 흥분해서 마치 동지를 찾은 듯 두 손을 딱 마주쳤다.“그렇지요! 그리고 그 진보이 말입니다. 잘나가던 대황자비 자리에서 쫓겨나더니 결국은 불구 된 남편의 똥오줌이나 닦아주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런 여자가, 서녀 따위가 자기 머리 위로 올라앉는 걸 참을 수 있겠습니까?”서인경은 턱을 괴고 곰곰이 생각했다.“그대의 셋째 오라버니께서는 무엇을 알아낸 겐가?”맹은영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씩 웃었다.“상왕께서 북쪽으로 가시기 전에 저희 셋째 오라버니에게 단 가를 잘 지켜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다 이상한 낌새가 잡힌 것이지요. 단평안과 진보이는 겉으론 아무 욕심 없는 척, 세속에 물든 척, 술 마시러 다니며 의욕을 잃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한데 사실은 계속해서 경성의 권세 있는 대신가 부인들과 교류하고 있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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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2화

서인경과 맹은영은 한참 동안 여자들만의 속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꼬막이는 이미 곤히 잠들어 있었다.이때, 봉한설은 유독 자신의 평이 언니가 그리워졌다. 며칠 전, 평이는 고향에 계신 부모님이 병이 나 부득이하게 친정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원래는 일정도 잘 맞춰 놓았기에 서인경이 경성으로 돌아오기 전에 왕부로 복귀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예상보다 서인경 일행이 며칠이나 일찍 돌아오는 바람에 계획이 어긋나버린 것이다.봉한설은 맛이 없는 꽃과자를 한입 베어 물었다. 이럴 때일수록 평이의 손맛이 더 간절하게 생각났다.부엌의 유모도 그걸 알고 있었다. 평이의 솜씨를 얼추 흉내 내긴 했지만 고작 일곱 할 정도밖에 배우지 못했다는 것을. 유모는 미안한 표정으로 봉한설을 바라보며 말했다.“한설 아가씨, 송구합니다. 조금만 더 참아주십시오. 평이가 곧 돌아올 겁니다.”그 말을 들은 봉한설은 도리어 미안해져 금세 시무룩한 얼굴을 거두고 황급히 웃으며 말했다.“유모, 걱정이 너무 지나치십니다. 이 꽃과자도 아주 맛있습니다. 전 마음에 들어요.”그렇게 말하며 한입 더 베어 물었지만 봉한설은 삼키기도 전에 벌떡 일어나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녀는 나오자마자 얼굴을 찡그렸다. 평이의 손맛과는 아예 비교도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방금 유모에게 했던 말은 그녀의 입에서 스스로 튀어나온 것이었다. 그녀는 문득 깨달았다. 왕부에 살다 보니 자기도 변했다는 것을. 그녀는 이제 거짓말도 제법 잘하게 된 것이다. 어쩌면 유모들이 자신에게 너무 잘 대해주었기에 그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던 건지도 모른다.봉한설은 길을 걸으며 투덜댔다. 그러던 어느 순간, 눈앞이 환해지더니 익숙한 한 사람의 모습이 불쑥 나타났다.경성의 정세 이야기를 마친 맹은영은 또다시 서인경에게 매달려 북쪽 전쟁터의 온갖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졸라댔다. 서인경은 일불락 설산에서 있었던 일만은 쏙 빼놓고 나머지는 전부 이야기해 주었다. 맹은영은 들으면 들을수록 더 들뜬 표정을 짓고 있었다.연기준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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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3화

평이는 꼬막이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그게 바로 작은 세자를 가리킨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녀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보자기 속에서 책 한 권을 꺼냈다.“이건 저희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을 아버지께서 받아 적으신 책이옵니다. 아이를 키울 때 필요한 것들이 적혀있지요. 왕비 마마께서 세자를 낳으셨다는 소식을 듣고 꼭 전해드리라고 하셨사옵니다.”서인경은 반듯한 글씨로 적힌 그 책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꼬막이를 걱정해 준다는 사실에 마음 한편에서는 부담감이 밀려왔다. 이 정도로 외부의 지원이 두터운데 아이를 잘 키우지 못한다면 그건 전적으로 자신의 잘못이 될 테니까.여자들이 모이면 이야기가 끝도 없이 이어진다더니...육아 지식에 관한 주제로 그들은 계단에 나란히 앉아 떠들어대기 시작하더니 점점 그 열기를 더해갔다. 모두 아이를 직접 길러본 경험이 없는 여자들이었지만 이론만큼은 그럴듯하게 늘어놓았다. 마치 일곱, 여덟 명쯤은 키워본 사람들처럼 자신만만했다.한편 연기준 쪽에서는 이미 차를 세 주전자나 비우고 장기 두 판을 마쳤다. 그런데도 맹은영이 아직 왕부에 남아있다는 말을 듣고 그의 인내심은 이제 바닥이 난 듯 맹경운을 향해 눈을 흘겼다. 그는 웃음을 터뜨리며 장기알을 던졌다.“알겠습니다. 제가 당장 그 아이를 끌고 나가겠습니다. 왕야께서 가족들과 달콤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드리지요.”맹은영이 자신의 오라버니에게 끌려가고 나서야 서인경의 뜰 안은 고요를 되찾을 수 있었다. 연기준이 들어서자 평이는 곧바로 쫄보 모드로 돌아가 조용히 문 밖에 서서 대기하고 있었다. 봉한설은 문가에 앉아 갓 구운 꽃과자를 우적우적 씹고 있었다.뒤에서는 글씨가 빽빽하게 적힌 종이를 들고 있는 부관이 연기준을 따라 들어왔다.“왕비 마마, 이것은 저와 장군부의 부관이 함께 준비한 노장군의 장례식 목록이옵니다. 한 번 살펴보시고 빠진 게 있는지 확인해 주시옵소서.”서인경은 그것을 받아 들어 훑어보고는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수고했다. 장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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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4화

이튿날 아침, 연기준은 일찍이 조복을 차려입고 조정에 갈 준비를 했다. 허리띠를 매만진 그는 서인경의 침상으로 와 아직 잠이 덜 깬 채 억지로 눈을 뜨려는 그녀를 바라보았다.“아직 이르다. 조금 더 자도 된다. 오늘 장군부에 갈 때는 한설과 평이 외에 유모 둘을 더 데리고 가거라.”서인경은 몸을 느긋이 엎드린 채 나른한 목소리로 대꾸했다.“그렇게 많은 인원은 필요 없습니다.”서인경은 연기준이 너무 호들갑 떤다고 생각했고 연기준은 서인경이 세상의 험함을 모른다고 여겼다.“데리고 가거라. 대비해서 나쁠 것 없다.”서인경은 눈을 가늘게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 어서 가보십시오. 그리고 사람을 보내어 무성을 궁에서 데리고 오는 거 잊지 마세요. 아, 그리고 꼬막이를 제 곁으로 데려다주세요.”연기준은 고개를 끄덕이고 곤히 자고 있는 아이를 침상에서 들어 올려 그녀 곁으로 옮겨 주고는 자리를 떠났다. 밖은 아직 동이 트지 않았지만 연풍은 이미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연기준이 나오는 것을 보자 그는 다가와 보고했다.“왕야, 열셋 째 황자께서 어제 황릉(皇陵:황제의 무덤)에서 돌아오셨사옵니다. 노장군께서 열셋 째 황자의 스승이셨기에 오늘 황명으로 장군부에 조문하러 오실 예정이라 하옵니다.”열셋 째 황자, 연기훈.그의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난 우빈이었다.그녀의 죽음은 의문투성이였고 그 화살은 곧장 황후를 가리켰다. 당시 황제는 황후의 외가인 하 씨 세력을 두려워해 사건을 깊이 캐지 않았다.그리고 열셋 째 황자는 어머니를 지키려다 황제의 뜻을 거스르는 바람에 서인(庶人:아무 벼슬이나 신분적 특권을 갖지 못한 일반 사람)으로 강등되었고 황릉으로 보내져 태후의 상을 모시게 되었다.그로부터 어느덧 삼 년이 흘러 연기훈은 올해로 십팔 세가 되었다.연풍이 말하기 전까지 연기준은 그 황자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그도 어릴 적부터 문무를 겸비한 인물로 황자들 중에서도 가장 빼어났던 인물이었다.한때 궁중에서는 황후가 대황자의 자리를 위협당할까 두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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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5화

평이도 분이 치밀었지만 꼬막이를 달래느라 소매를 걷을 수도 없었고 또 아이가 놀랄까 봐 큰소리로 말하지도 못했다.“왕비 마마, 장군부의 진택지보란 게 무엇이옵니까? 단 가는 왜 그걸 꼭 가져가려 하는 것이옵니까?”서인경은 오래전부터 서회윤의 서재 안에 천년 현빙보검(玄冰宝剑)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것은 그가 젊은 시절, 외지로 떠돌던 중 얻은 보물이었고 몇 번이고 전장에서 그의 목숨을 지켜준 검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중에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검이 부러졌고 서회윤은 그것을 서재에 모셔두었다.그는 늘 이렇게 말하곤 했었다. 이 검은 남북의 전장을 함께 누빈 자신의 벗이자 전우였다고, 이제는 전장에 함께 설 수 없지만 그 검을 보면 함께 싸웠던 전우들과 젊은 시절의 기억이 되살아난다고 말이다.그에게는 세상 어떤 것보다 뜻깊은 물건이었지만 다른 사람 눈에는 그저 부러진 고철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서풍교가 그것을 탐낸다는 건 불순치 않은 의도가 있다는 게 분명했다.서인경은 현빙보검의 사연을 두 사람에게 들려주었다.“잠시 후에 너희는 꼬막이를 지키는 데 집중하거라. 단 가 쪽은 내가 맡을 것이다. 원래는 그렇게 빨리 문제 삼을 생각 없었는데 스스로 찾아온 이상 절대 봐주지 않을 것이다.”서인경은 단 가의 뒤를 캐내야 했다. 그녀는 잊지 않고 있었다. 진국의 단 가와 야랑국 황후의 친정인 단 가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연이 있을지도 모른다는걸.만약 그 단 가가 전생에서 서 가를 모함한 장본인이라면 그 뒤에는 틀림없이 야랑국의 손이 뻗어 있을 터였다. 그렇게 된다면 야랑국 황후의 친아들인 예정임 역시 이 일에 연루되어 있을 것이다.마차가 장군부 대문 근처에 다다르자 밖에서는 이미 요란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나도 서 씨다! 노장군의 친조카란 말이다! 그리고 내 딸 중 한 명은 대황자의 측비이고 또 다른 한 명은 곧 황귀비로 책봉될 사람이다! 그런데도 감히 너희들이 나를 막는다면 모조리 목을 쳐버릴 테다!”서인경은 발을 젖히고 천천히 마차에서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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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6화

서풍교는 서인경의 직설에 얼굴이 굳어버렸다.자신이 서 가에게 해준 것을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생각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방금 서풍교가 벌인 소동으로 장군부 대문 앞에는 금세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조정의 관리 중 조문하러 온 이들도 있었고 길을 지나던 백성들도 있었다.예전엔 모두가 두 집안이 같은 뿌리의 친척이라 여겼다. 서 가와 상왕부는 단 가의 장사를 위해 여러모로 도움을 주었고 많은 이들이 장군부나 상왕부에 빌붙기 위해 단 가에게도 편의를 제공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단효산 따위가 어찌 그리 짧은 시간에 경성에서 발을 붙일 수 있었겠는가?이 모든 일은 본래의 서인경이 너무나 어리석었던 탓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녀가 서풍교을 공개적으로 꾸짖자 사람들은 하나같이 놀란 눈치였다.“장군부는 단 씨 부인의 친정 아니었나? 보아하니 사이가 영 좋지 않은 모양인데?”“글쎄... 상왕께서 단 가에 주던 특혜를 거뒀다는 말은 나도 들은 적이 있네. 예전엔 동쪽 부두에서 단 가의 화물은 항상 제일 먼저 통과했는데 요즘은 줄 서서 기다린다고 하더군. 그땐 왜 그런가 싶었는데 오늘 보니 단 가가 꽤 큰 인물을 건드린 모양이야. 이제 상왕부도 단 가를 지켜주지 못하겠지.”봉한설은 그런 속삭임을 듣고는 입을 삐죽 내밀며 중얼거렸다.“그야 당연히 큰 인물이지. 세자의 어머니인데.”백성들의 웅성거림과 추측은 서인경의 귀에도 들어왔다. 예전엔 단 가를 향한 서 가의 도움과 후원이 너무도 노골적이었고 그것은 사람들 눈에 분명히 새겨졌기에 아직까지도 많은 이들이 단 가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하지만 이제 서인경은 그 두려움을 걷어낼 참이었다. 단 가가 더는 장군부나 상왕부의 이름을 팔아 특혜를 얻지 못하도록 말이다.그녀의 시선이 대중들에게로 향하며 그들을 차례로 훑었다.“오늘은 나의 할아버지이자 진국의 노장군인 서회윤 장군의 장례일이다. 할아버지께서는 평생 전장을 누비며 서 가의 충렬한 후손들을 길러내셨지. 그대들이 장군님을 배웅하러 온 거라면 언제든 들어와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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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7화

서풍교는 자신이 방금 실언했다는 걸 깨닫고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당황한 그녀는 손을 허둥지둥 움직이며 말을 더듬거렸다.“아, 아니... 그게 그런 뜻은 아니고...”서인경은 냉정하게 말을 받았다.“방금 하신 말씀, 모두가 들었습니다. 단 씨 부인께서는 그 말을 폐하께 직접 가서 해명하시지요.”“듣거라. 오늘 이 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한데 단 가 사람만은 예외이다. 그들 중 단 한 사람이라도 안으로 들어간다면 가차 없이 죽이거라.”“예!”연풍이 명을 받들자 곧이어 검은 옷의 암위들이 일렬로 서서 장군부의 대문 앞을 가득 메웠다. 그 위압적인 기세에 서풍교는 앞으로 나설 엄두를 내지 못했다.서인경에게야 성격으로 밀어붙일 수 있었지만 연기준은 감히 그녀가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예전부터 살아 있는 염라대왕이라 불리던 인물이었으니까.그때, 인파 속에서 검은 망토를 두른 한 인물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서인경을 바라보았다. 잠시 시선을 그녀에게 고정한 뒤 이내 조용히 사람들 틈을 빠져나갔다.서풍교의 문제를 정리한 서인경은 몸을 돌려 장군부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마당 안은 온통 상복의 흰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집 안 식구들 모두가 상복을 입고 있었고 그들의 얼굴에는 깊은 비통함과 근엄한 침묵이 감돌았다.서인경은 먼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자신과 꼬막이의 옷을 흰 상복으로 갈아입었다.그때 평이가 급히 들어오며 아뢰었다.“왕비 마마, 열다섯 째 황자께서 열셋 째 황자를 모시고 함께 오셨사옵니다.”서인경은 꼬막이의 옷의 마지막 단추를 채우며 말했다.“들여보내거라.”평이가 나가고 잠시 뒤, 흰 상복 차림의 두 소년이 그녀 뒤를 따라 들어왔다. 이것은 서인경이 이 세상으로 넘어온 뒤 처음으로 보는 열셋 째 황자의 모습이었다.그는 눈썹과 이목구비가 단정하고 곱상한 청년이었으나 황릉에서의 고된 세월 때문인지 몸이 지나치게 여위어 있었다. 피부 아래로 쇄골이 뚜렷하게 드러나 뼈마디가 선명히 보일 정도였으니 말이다.서인경은 원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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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8화

열다섯 째 황자의 시선이 앞에 있는 어린아이에게로 향했다.참으로 작았다. 얼굴은 동글동글했고 살짝 부은 듯한 볼이 귀여움을 더해주었다.이 아이는 그의 어린 조카이자 서인경을 제외한, 세상에서 자신이 진심으로 대할 수 있는 유일한 혈육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평생토록 지켜주어야 할 존재이기도 했다.열다섯 째 황자는 조심스레 손을 내밀어 꼬막이의 작은 손가락을 살짝 건드렸다. 그의 표정에는 다정함과 진지함이 함께 서려 있었다.“유청아, 나는 네 작은 외삼촌, 연무성이다.”한편, 경성의 어느 객점.서풍교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날아온 손바닥이 곧바로 얼굴을 후려쳤다. 그녀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고 얼얼한 통증에 한참 동안 일어나지 못했다.“쓸모없는 것!”검은 망토를 두른 사내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채, 음울하고도 분노에 찬 목소리로 내뱉었다.그 옆에 서 있던 단효산은 서풍교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그저 공손히 검은 옷의 사내 뒤에 서 있었다.“주인님, 노여움을 거두십시오! 제 부인이 일을 그르친 건 잘못이오나 부디 단 가에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시옵소서. 반드시 주인님께서 원하시는 물건을 가져오겠습니다.”검은 옷의 사내는 주먹을 꽉 쥐었다.“지금 이 꼴로 일을 망쳐놓고 두 번째 기회가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 너희는 연기준과 서인경이 너희처럼 멍청하다고 믿는 모양이지?”연달은 모욕에 서풍교는 그저 바닥에 주저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뺨 자국이 선명하게 남은 그녀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졌다.“오늘 장군부에는 사람도 많고 눈도 많았습니다. 당시 저는 이미 물건을 손에 넣었고 저를 발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요. 그저 대문만 나가면 됐는데 그 망할 부관 녀석이 갑자기 나서서 상왕비가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일이 틀어진 겁니다. 그게 어찌 제 탓이란 말입니까!”검은 옷의 사내가 다시 분노를 터뜨리기도 전에 단효산이 먼저 앞으로 나와 서풍교의 얼굴을 또 한 번 후려쳤다.“닥치거라! 일을 망친 건 네 탓이지 누구 탓이란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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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9화

단효산은 당당했고 자신의 결정이 조금도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그건 평안의 지금 상태 때문이다. 그 아이는 너의 보살핌이 필요하지. 한데 네가 다른 일에 마음을 쓸 여유가 있겠느냐? 하율이는 마음이 착해서 널 대신해 부담을 덜어주고 있는 것이다. 괜한 시비를 건다면 정실부인 자리도 내려놓고 평안이 곁에서 살게 될 줄 알 거라.”그 말을 남기고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버렸다. 서풍교는 마치 벼락을 맞은 듯,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이 서 가에서 내쳐지고 단 가에 아무 이익도 가져다주지 못하게 된 그날부터 단효산의 태도는 하루가 다르게 식어갔다는 것을.특히 평안이 불구가 된 이후로는 더했다. 단효산은 바깥의 여자를 대놓고 집 안으로 끌어들였고 이제는 그 여자가 당당히 집안의 주인 행세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서풍교가 지금까지 정실부인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던 건 두 딸이 아직 단효산에게 쓸모가 있었기 때문이었다.하지만 단효산이 출세해 더 높은 자리에 오르는 날이 온다면 그땐 두 딸조차 필요 없어질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그는 분명 서풍교를 내치고 그 천한 여자를 새 부인으로 세울 게 분명했다.서풍교의 마음속에 피처럼 진한 원한이 끓어올랐다.절대 단효산과 그 여자를 편히 두지 않으리라.단평안은 늘 사람을 시켜 집안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다. 서풍교가 장군부에서 현빙보검을 가져오지 못한 데다 객점에서 단효산과 정체불명의 인물을 만났다는 사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다툼까지 벌어졌다는 보고가 곧바로 그의 귀에 들어왔다.그는 아무 말 없이 바둑판 위의 돌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그 옆에는 그의 부인 진보이가 있었다. 그녀가 단평안에게 시집온 지도 어느덧 일 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죽겠다고 울부짖으며 거부하던 혼인이었지만 이제는 함께 계략을 짜며 어깨를 나란히 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녀는 불구의 남편을 돌보는 삶에도 조금씩 익숙해졌다.진보이는 그와 함께 지내며 점점 깨달은 게 하나 있었다.단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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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0화

“대낮부터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입니까?”단평안은 낮이든 밤이든 상관없었다.지금의 그는 더 이상 밖의 수많은 미녀들에게 마음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이 여자만은 달랐다. 그녀는 유일하게 믿을 수 있고 지배할 수 있으며 소유할 수 있는 자신의 사람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욕망을 마음껏 쏟아낼 수 있는 존재이기도 했다.그는 그대로 진보이를 끌어올려 부드러운 침상에 내던지고 손을 그녀의 옷 속으로 집어넣었다.“내 아들을 낳아 주거라. 그렇다면 앞으로 나의 모든 것은 다 네 것이 된다.”그러자 진보이가 재빨리 단평안의 손을 붙잡았다.“당신도 당신 아버지처럼 행동할 겁니까? 출세하고 나면 바깥에 여인을 두고 자신의 부인을 천대하듯 말입니다”그러자 단평안의 눈빛이 순간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는 다리를 잃은 이후, 아버지라는 사람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그는 첩 하나를 집안의 주인 자리에 앉혔다. 그녀는 단평안이 매달 받아야 할 용돈을 깎고 또 깎았으며 가끔씩은 먹을 것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그리고 그의 아버지는 이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한 번도 따지지 않았다.명백했다. 그 첩은 자신이 낳은 사생아를 단 가의 유일한 아들로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여인이 많으면 뭐가 좋은가?’그는 속으로 씁쓸히 웃었다.그런 사내는 자기 자식이 어떻게 죽는지도 모를 텐데.단평안은 갑자기 진보이의 옷깃을 거칠게 찢어내며 몸을 숙였다. 그리고 숨을 고르며 단호히 맹세했다.“걱정 말거라. 앞으로 나에겐 너 하나뿐이다. 아이도 오직 너랑만 낳을 거야.”연기준은 조정을 마치자마자 곧장 장군부에 도착했다. 서인경은 영정 앞에 무릎을 꿇고 한 장 한 장 조심스레 지전(종이돈)을 불태우고 있었다.연기준은 도착하자 황제가 내린 서회윤에 대한 책봉 성지를 가져왔고 태감이 성지를 낭독했다.“서회윤 노장군을 충용 호국대장군으로 추봉하며 그 공로를 기려 장군부의 충절을 포상하노라.”서인경은 예를 갖춰 감사 인사를 드리고 연기준과 나란히 섰다.잠시 후 서왕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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