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Chapter 181 - Chapter 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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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1화

소예지의 얼굴은 순간 하얗게 질렸다. 놀란 숨을 연달아 내쉰 그녀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전 괜찮아요...”“미안해요. 제가 잠깐 운전에 집중을 못 했어요.”윤하준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사과했다. 소예지는 그 역시 무언가에 마음이 쏠려 있었음을 알고 있었기에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하준 씨만 탓할 일은 아니에요. 그래도 운전할 땐 아무리 바빠도 정신을 딴 데 두면 안 돼요.”윤하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다시 시동을 켜고 조심스레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주었다.집 앞에 도착하자, 소예지는 조용히 문을 열고 내리며 마지막으로 그를 바라봤다.“운전 조심하세요.”차창을 내린 윤하준은 그녀가 현관을 향해 걸어가는 뒷모습을 오래도록 지켜보았다. 그 눈빛 속엔 결심에 가까운 감정이 번지고 있었다.“소예지 씨...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에요.”아침 햇살이 그녀의 어깨 위로 포근히 내려앉았다.마치 새벽녘 피어난 장미처럼, 맑고 투명한 그녀의 얼굴엔 은은한 광채가 감돌았고 보는 이의 숨을 멎게 할 만큼 아름다웠다.정작 그녀 자신만 모르고 있을 뿐, 이미 그녀의 존재는 누군가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 있었다.시간을 확인한 소예지는 재빨리 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MD의 주요 회의가 있는 날이었고 그녀는 어떤 일이 있어도 지각할 수 없었다.회의실 입구에 도착한 순간, 누군가와 마주 부딪히며 그녀의 몸이 그대로 상대의 품에 안기고 말았다.허리를 단단히 감싼 팔의 감촉에 놀라 고개를 들자,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왜 이렇게 급해?”낮게 웃으며 묻는 남자는 다름 아닌 고이한이었다.소예지는 당황한 듯 그를 밀어내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본능적으로 얼굴을 찌푸린 그녀의 반응에 고이한의 표정이 잠시 굳어졌지만 이내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들어가지.”그 역시 회의에 참석하는 듯했다.회의실 안으로 들어서자 익숙한 얼굴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강준석, 안채린, 이서연, 그리고 아침에 마주쳤던 윤하준과 그의 팀도 보였다.윤하준은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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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2화

윤하준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다. 그 짧은 틈을 타 고이한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수병을 집어 들었고 조심스럽게 뚜껑을 열었다가 다시 살짝 닫아 제자리에 놓았다.소예지의 시선이 무심히 그 물병을 스쳐 지나갔지만 그녀의 표정에는 아무런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다.끝내 그녀는 그 물을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무대 위에 선 주현우는 열정적인 연설을 마무리하며 감회에 젖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이 자리에 서게 된 건 정말 기적 같은 일입니다. 꼭 감사드리고 싶은 분이 있습니다. 그분 덕분에 영감이 떠오르고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으며 결국 지금의 돌파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그의 시선이 객석을 가로질러 소예지를 향했고 손짓으로 그녀를 가리켰다.“제가 감사드릴 분은 바로 소예지 선생님입니다. 지난번 그분과의 짧은 대화가 제 사고를 완전히 전환시켰고 생각의 문이 활짝 열리게 되었죠. 진심으로 감사합니다.”소예지는 잔잔한 미소를 띠며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이내 회의장 안에는 따뜻한 박수갈채가 울려 퍼졌고 그 박수가 서서히 잦아들자 주현우는 고개를 숙이며 덧붙였다.“이제 고 대표님의 말씀을 청해보겠습니다.”고이한이 무대 위로 걸어 올라가는 순간, 소예지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화장실 안엔 이미 고수경이 거울 앞에서 화장을 고치고 있었다. 그녀는 거울 너머로 소예지를 바라보며 비꼬듯 말했다.“오늘 꽤 주목 좀 받던데요?”소예지는 담담히 대답했다.“일일이 의미 둘 일은 아니에요.”그녀가 무심하게 대꾸하자 고수경은 거울을 통해 그녀를 노려보듯 바라보다가, 말투를 낮췄다.“그래도 충고 하나 할게요. 하준 오빠 넘보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소예지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 침묵을 찔린 양으로 받아들인 고수경은 입꼬리를 올리며 비아냥거렸다.“아무리 여자가 없어도 누가 이혼한 여자를 좋아하겠어요?”소예지는 말없이 손을 씻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이혼한 여자가 고수경 씨 눈엔 그렇게 하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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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3화

다음 날 아침.소예지는 딸을 학교에 데려다주기 위해 평소처럼 집을 나섰다. 하지만 그녀가 모르는 사이, 검은색 SUV 한 대가 조용히 그녀의 뒤를 쫓고 있었다. 차 안에는 누군가가 그녀를 몰래 촬영하고 있었고, 그 사진은 실시간으로 안채린에게 전달되었다.화면을 확인한 안채린은 코웃음을 치며 비웃듯 혼잣말을 중얼거렸다.‘역시. 아침부터 애를 혼자 데려다주는 걸 보니 남편이랑 사이 안 좋은 건 확실하네.’그녀는 차가운 눈빛으로 단호히 지시했다.“계속 따라. 이번엔 반드시 그 남편 얼굴까지 찍어 와.”오후 세 시 무렵, 소예지는 양희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다섯 시까지 회의가 있어서 딸을 대신 데리러 가달라는 부탁이었다. 양희순이 막 외출 준비를 하려던 찰나, 뜻밖에도 고이한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사모님께서 회의 중이라 다섯 시쯤 귀가하신다고 들었습니다.”“그럼, 제가 하슬이 데리러 가겠습니다.”“네, 알겠습니다, 대표님.”양희순은 순간 입에 익은 말투를 바꾸지 못하고 여전히 그를 집안의 가장처럼 대했다. 그 시각, 유치원 앞에서는 따라붙던 사설탐정이 계속 매복 중이었다. 그는 이미 소예지의 딸 얼굴을 수차례 익혔고 하원 시간만을 노려 눈을 부릅뜨고 교문을 바라보았다.그리고 마침내 깡충깡충 뛰며 나오는 그 아이를 발견하자, 그는 서둘러 핸드폰을 들어 동영상을 촬영하기 시작했다.끝까지 촬영을 마친 그는 혼잣말을 내뱉었다.“와, 진짜 부자네. 롤스로이스라니...”그는 감탄을 내뱉으며 영상을 마무리한 뒤, 방금 찍은 사진을 곧장 안채린에게 전송했다.「사람 잡았습니다. 잔금 정산 부탁드립니다.」사진을 확인한 안채린은 조급한 마음으로 남자의 얼굴을 확인하려 했지만 사진 속 인물은 옆모습뿐이었다.얼굴 전체가 나오지 않은 것이 아쉬웠지만 그녀는 주저하지 않고 잔금을 이체했다. 몇 분 뒤, 영상 하나가 도착했다.그녀는 숨을 죽이고 곧장 재생 버튼을 눌렀다.그리고 화면 속 남자를 보는 순간,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이게 말이 돼? 저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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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4화

“흥, 아무리 ‘재벌가의 사모님’이란 타이틀이 붙었다 해도 이혼당한 여자라는 사실만은 변함이 없지!”얼마 지나지 않아 연구소 회의가 열렸고 새 연구실로의 이전은 보류되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장비 업체 쪽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다만 그 장비 회사가 바로 안채린 아버지가 운영하는 업체라는 사실을 양정화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소예지가 문제를 제때 발견해 줘서 정말 다행이야. 지금 장비 회사에서 새 장비를 다시 구매하고 있다고 하니 조금만 더 기다리자고.”회의 중, 양정화는 직접 소예지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 인사를 전했고 안채린의 시선도 순간 소예지를 스치듯 머물렀다.조금 전, 그녀는 어머니로부터 전화를 받았었다. 아버지는 이 문제로 벌써 이틀째 집에 들어오지 않고 있다고 했다.하지만 이 상황에서 안채린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괜히 나섰다가는 자칫 일이 더 커지고, 그 불똥은 고스란히 자신에게 튈 테니까.회의가 끝나고 소예지가 짐을 정리하려는 그때, 소예지가 자료 뭉치를 안고 그녀 앞으로 다가왔다..“너 진짜 대단하네. ‘사모님’ 타이틀 그렇게 숨기고 다니더니... 언니 말로는 지금 이혼 진행 중이라던데?”그녀의 의도를 읽은 소예지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응, 맞아.”“후훗,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강 선배한테 들이대려는 거네?”콧방귀 섞인 말투에 소예지는 조용히 일어서며 단호하게 말했다.“강 선배는 내 동료이자 친구야.”“누굴 속이려고 그래?”안채린은 여전히 비웃는 표정이었지만 속으로는 은근한 만족감이 번지고 있었다.‘조만간 고 대표가 언니 남편이 되면 난 자연스럽게 처제가 되는 거고... 그 덕 좀 보겠지.’그때, 소예지의 휴대폰이 울렸다.[할머니 퇴원하셨어. 오늘은 하솔이 데리고 본가에서 저녁 먹으려고 하는데, 괜찮지?]당연히 안 괜찮았다. 하지만 최현숙까지 끌어들인 상황에서 소예지는 더는 거절할 수 없었다.「10시 전엔 꼭 데려다줘.」「알겠어.」짧은 문자를 주고받은 뒤, 소예지가 가방을 들고 나서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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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5화

“그럼 빨리 가봐.”고이한은 짧은 눈빛을 남긴 채 다시 심유빈 곁으로 돌아갔다. 두 사람은 나란히 3열 좌석으로 걸어갔고 그와 동시에 공연장의 조명이 어둑하게 내려앉으며 오페라가 시작되었다.무대 위 공연은 압도적이었다.양정화는 눈을 반짝이며 극에 빠져들었지만 소예지의 마음은 공연 내내 무대가 아닌 다른 곳에 있었다.그녀의 머릿속에 온통 딸을 데리러 갈 생각뿐이었다.공연이 끝나자 소예지는 서둘러 양정화를 집에 바래다주고 곧장 고씨 가문의 본가로 향했다.그녀가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고이한도 뒤따라 들어왔다.“엄마, 아빠! 같이 왔어요?”부모가 함께 돌아온 모습이 너무 오랜만이라 고하슬은 반가운 목소리로 두 사람을 반겼다.소예지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하슬아, 이제 엄마랑 집에 가야지.”그러자 아이는 눈망울을 반짝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엄마, 오늘 밤엔 왕할머니랑 자면 안 돼요? 진짜 오랜만에 와할머니랑 같이 자고 싶어요.”소예지는 누구보다 냉정하고 단호한 사람이었지만, 딸 앞에서는 결코 그렇지 못했다.무엇보다 겨우 되찾은 아이의 마음이 다시 멀어질까 봐 두려웠다.“엄마, 제발요...”고하슬이 간절히 조르자, 소예지는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오늘은 할머니랑 자도 돼. 대신 내일 오후엔 엄마가 데리러 올게. 시온 이모 집에 놀러 가자, 알았지?”“네! 좋아요!”소예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최현숙을 뵈러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가방 속에 넣어두었던 그 카드를 꺼내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최현숙은 많이 회복된 모습이었고 소예지가 카드를 꺼내자, 놀란 얼굴로 말했다.“이건 내가 너 쓰라고 준 거잖니. 왜 돌려줘?”“할머니, 마음만 받을게요. 지금은 돈이 부족하지 않아서요.”소예지는 조용히 대답하고는 카드를 테이블 위에 올려둔 채 자리를 뜨려 했다.“얘야, 잠깐만...”노인이 손을 뻗었지만 몸이 불편해 일어설 수 없었고 그저 그녀의 뒷모습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소예지가 아래층으로 내려오자 진가영이 다가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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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6화

“저 차, 혹시 고 대표 차 아니야?”박시온이 소예지의 팔을 끌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소예지는 뒤따라오는 검은 차량을 힐끗 바라보고는 무심하게 대답했다.“신경 쓰지 마.”몇 걸음 더 걷던 박시온은 다시 뒤를 돌아보고는 피식 웃었다.“야, 저 사람 지금 경호원 역할이라도 하는 거 아냐? 근데... 너희 이혼은 어디까지 진행된 거야?”최근 몇 건의 사건 때문에 정신없이 바빴던 박시온은 이제야 소예지의 사정을 제대로 들을 수 있었다.소예지는 짧은 한숨과 함께 말을 꺼냈다.“너희 선배 말로는... 세무 쪽이랑 조율 중이래. 감정평가사랑 회계사도 붙였고 절차가 꽤 복잡하대.”박시온은 그녀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그럼 고 대표가 이번엔 진짜 재산 절반 넘길 생각이 있는 거네. 꽤 통 크잖아?”“글쎄, 내 생각엔 그냥 이혼 질질 끌려는 수작 같아.”소예지의 눈빛에 냉소가 서렸고 박시온은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뭐, 어차피 급할 것도 없잖아. 이미 별거 중이고 우리 선배가 최대한 너한테 유리하게 진행해 줄 거니까.”그리고는 눈을 번뜩이며 말을 이었다.“근데 그 심유빈, 걔 임신했으면 고씨 집안에서도 얼른 들이려고 난리일 텐데?”“응, 아마 지금 엄청 급할걸.”소예지는 담담하게 대답했다.“그럼 고 대표도 재산 정리 빨리 끝내야겠네. 안 그러면 심유빈 배 더 불러올 텐데.”박시온은 장난스레 킥킥 웃었다.다음 날 아침.소예지와 박시온은 근처 백화점으로 쇼핑을 나갔다.명품 매장에 들어서자 박시온의 눈이 반짝였다.“드디어 이 가방 들어왔네!”그건 박시온이 반년 넘게 눈독을 들이던 가방이었다. 하지만 다가온 점원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죄송합니다. 이 제품은 이미 예약되어 있습니다.”“뭐라고요? 예약이요?”박시온은 실망한 얼굴로 물었다.“설마 또 끼워팔기 하려는 건가요?”점원은 다소 오만한 태도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저희 매장 규정상, 구매 조건이 따로 있습니다.”소예지는 박시온이 이 가방을 얼마나 갖고 싶어 했는지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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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7화

소예지는 박시온과 함께 근처 카페에 앉아 여유롭게 차를 마시고 있었다. 따스한 햇살이 유리창 너머로 비치고 있었고 두 사람 사이엔 오랜만에 느끼는 평온한 기운이 감돌았다.그때, 소예지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그녀는 화면을 힐끗 들여다보더니 박시온을 향해 조심스럽게 말했다.“네 선배야...”“얼른 받아봐! 혹시 이혼 소식일지도 모르잖아.”박시온이 눈을 반짝이며 다급하게 재촉하자, 소예지는 망설임 없이 통화를 연결했다.“여보세요, 변호사님.”[소예지 씨, 시간 좀 괜찮으세요? 직접 뵙고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요.]“네, 혹시 이혼 진행에 진전이 있는 건가요?”소예지의 목소리에 조심스러운 떨림이 실렸다.[맞습니다. 가능하시면 지금 제 사무실로 와주시겠어요?]“좋아요. 지금 시온이랑 같이 있어요. 곧 갈게요.”둘은 서둘러 주차장으로 향했고 박시온이 운전대를 잡아 로펌으로 향했다.사무실에 도착한 두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서자 심주원은 곧장 박시온을 향해 말했다.“넌 잠깐 바깥에서 기다려줄래?”박시온은 알겠다는 듯 OK 사인을 보내고는 옆쪽 다과실로 들어갔다.소파에 마주 앉은 심주원이 조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소예지 씨, 고 대표 측에서 정식 협의이혼 절차를 원하고 있어요. 소송은 피하고 싶어 하시고요.”그 말을 들은 순간, 소예지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그 남자가 그렇게 쉽게 물러설 사람이었나?’막연한 불안이 다시금 피어오르려던 찰나, 심주원이 책상 서랍에서 두툼한 문서철 하나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렸다.“이건 고 대표가 새로 작성한 이혼 계약서입니다. 제가 이미 검토를 마쳤고 특별한 법적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소예지는 조심스럽게 문서를 펼쳤다. 심주원이 설명을 이어 나갔다.“따님의 양육권은 소예지 씨에게 귀속됩니다. 그리고 고 대표 명의의 투자회사 여덟 곳이 공동 재산으로 간주되어 소예지 씨에게 이전되며 현재 시장 평가로는 약 16조 원 규모로 추산됩니다. 이혼 후엔, 양육권과 함께 이들 회사 지분 역시 소예지 씨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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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8화

“이게 과연 합리적인 요구인가요?”“소예지 씨가 받아들인다면 합리적인 요구지요. 물론 거절하셔도 됩니다.”심주원은 변함없는 태도로 조용히 답했다.소예지는 고개를 갸웃했다.고이한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황당한 조건을 내걸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그 사람은 어떤 심리로 이런 걸 요구하는 거죠?”혹시라도 이유를 들을 수 있을까 싶어, 소예지는 조심스레 물으며 심주원의 얼굴을 살폈다.그는 잠시 미소를 지으며 안경을 밀어 올렸다.“듣고 싶으시다면, 고 대표의 속마음을 분석해 드릴 수 있습니다.”소예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고 대표는요, 아마도 스스로에게 재결합의 가능성을 남겨두고 싶은 걸 겁니다.”“재결합이요?”소예지는 코웃음을 치며 속으로 비웃었다. 그건 이생에서는 절대 없을 일이었다.심주원은 조용히 서류를 펼쳐 그녀 앞으로 밀어놓고, 펜을 건넸다.“소예지 씨 쪽에서 더 이상 이견이 없다면 여기에 서명해 주세요. 그러면 곧 고 대표 측 변호사와 연락해 이혼 일정을 확정하겠습니다.”소예지는 망설 임없이 사인했다.“수고 많으셨어요.”그날 저녁, 박시온은 ‘이혼 기념’ 파티를 열었고 두 사람은 맛있는 요리와 진한 와인을 곁들여 실컷 웃고 떠들었다.오랜만에 마음 편한 밤이었다.다음 날 아침.MD 측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오늘 오후, 참석해야 할 중요한 회의가 있다는 내용이었다.그리고 회의 장소는 다름 아닌 고이한이 이끄는 고신 그룹 본사였다.오후 2시.소예지는 강준석, MD 일행과 함께 고신 그룹의 고층 로비에 들어섰다.수많은 정장 차림의 남성들 사이, 소예지는 은은한 빛의 흰 셔츠에 고급스러운 슬랙스를 매치한 채 등장했다. 166cm의 늘씬한 키에 완벽에 가까운 이목구비, 정갈하게 묶어 올린 머리까지, 그녀의 걸음마다 내면에서 우러나온 지적인 우아함과 자신감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MD 부대표 주현우가 고개를 숙여 소예지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그녀가 가진 학문적 내공과 전문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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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9화

회의가 시작되자 각 지역의 지사 대표들이 차례로 단상에 올라 성과를 보고했다.그중 가장 중심이 되는 앞줄 한가운데 자리한 고이한은 진지한 표정으로 발표를 경청하고 있었다.이내 주현우의 차례가 되었다.그가 발표한 AI와 의학의 융합 성과는 실로 눈부셨고 참석자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미래 핵심 산업으로서의 가능성이 명확히 드러나는 내용이었다.발표가 끝나자 회의장은 뜨거운 박수로 가득 찼다.자리로 돌아온 주현우는 소예지를 향해 몸을 살짝 숙이며 정중히 말했다.“오늘의 성과는 전적으로 소예지 선생님 덕분입니다.”소예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모두가 함께한 결과예요.”회의 중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던 소예지는 복도에서 고이한과 마주쳤다.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다음 주 월요일 시간 괜찮아?”소예지는 모른 척 지나치려 했지만 그의 다음 말이 그녀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이혼하러 가자.”그 말에 소예지는 무의식적으로 바로 대답했다.“시간 있어.”그의 말에 망설임 없이 반응한 건 처음이었다.혹시나 고이한이 말을 번복할까 봐 재빠르게 대답하고 만 것이다.“몇 시에?”“열 시. 늦지 마.”그는 짧게 말한 뒤 남자 화장실로 들어갔다.그리고 그 장면을 복도 모퉁이에서 심유빈과 고수경이 엿듣고 있었다.“드디어 이혼하나 봐.”“이제 완전히 끝나는 거네.”두 사람은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눈빛을 주고받았다.고수경은 웃으며 농담처럼 말했다.“우리 오빠, 또 늦을까 봐 시간까지 챙겨주네. 무뚝뚝한 거 좀 봐.”심유빈 역시 안도한 듯 가볍게 미소 지었다.이혼이 마무리되면 고이한은 다시 완전한 싱글이 된다.회의가 끝난 뒤,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주현우는 근처 고급 식당을 예약하고 자신의 팀원들과 함께 소예지, 그리고 강준석을 초대했다.식사 도중 소예지는 전화가 걸려 와 잠시 자리를 비웠고 그 순간 그녀의 시선 너머 거대한 통유리창 밖으로 고이한, 고수경, 그리고 심유빈이 함께 점심을 먹고 있는 장면이 눈에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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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0화

회의실 안의 분위기는 묘하게 긴장되어 있었다. 모두가 눈치챌 수 있을 정도로, 안채린은 소예지의 이론에 대해 딴죽을 걸듯 태클을 거는 말투였다.하지만 그 누구도 나서서 반박하지 않았고 양정화조차도 그저 웃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회의가 끝난 뒤, 소예지가 사무실로 돌아오자 이서연이 과일 바구니 하나를 들고 찾아왔다.“예지야, 오늘 아침에 산 건데, 맛 좀 볼래?”소예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포도 한 송이를 집어 들었다.“고마워.”“별말을. 우리 동료 사이잖아.”이서연은 해맑은 웃음을 지었지만 그 속엔 어딘가 미묘한 쓴웃음이 섞여 있었다.처음 소예지를 마주했을 땐, 그녀의 정체도 모르고 무심코 막말을 내뱉었다.이젠 어쩌겠는가. 이미 물은 엎질러졌고 결국 이렇게 얼굴 두껍게 굴며 그녀에게 잘 보이려 애쓰는 수밖에.이제 와서 얼굴 두껍게라도 굴며 환심을 사야 했다.소예지는 재벌 중의 재벌인 남편을 둔 사람이었고 이 실험실의 최대 투자자의 아내였다.그녀가 마음만 먹는다면 실험실 전체의 주도권도 가져갈 수 있는 인물이었고 그런 그녀에게 밉보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이서연에게는 충분한 이유가 됐다.주말 동안, 소예지는 딸과 함께 평화롭고 따스한 시간을 보냈다.그리고 어느덧 월요일 아침이 밝았다.가정법원 대기실.소예지는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이른 9시 30분에 도착해 조용히 번호표를 뽑고 자리에 앉아 있었다.9시 50분, 고이한이 모습을 드러냈다.먼저 와 있는 그녀를 보자 그는 시계를 확인하며 다가왔다.“오래 기다렸어?”그의 물음에 소예지는 담담히 대답했다.“방금 도착했어.”고이한은 옆에 따라 앉았고 시선은 그녀의 얼굴에 머물렀다.“서류는 다 챙겼지?”바로 그때, 번호가 불렸다.소예지는 손에 든 번호표를 확인한 뒤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우리 차례야.”직원은 몇 가지 신원 확인 절차를 마친 후, 곧 이혼 신청 절차를 시작했다.하지만 이혼은 그렇게 단박에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법적으로는 3개월의 ‘숙려 기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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