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Chapter 411 - Chapter 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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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1화

소예지의 손끝이 휴대폰 화면 위에 머물렀다.하지만 메시지를 보내지 못한 채, 그대로 멈춰 있었고 한참을 고민하던 끝에, 그녀는 천천히 휴대폰을 침대 옆 협탁 위에 내려놓았다.방금 전까지만 해도 피곤함에 눈이 감길 듯했던 머릿속은 이상하리만치 또렷해지고 있었다.문득 떠오른 얼굴들이 있었다.시장 부부, 할머니, 그리고 국방부 장관, 모두가 임현욱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이들이었고 동시에 그의 미래를 누구보다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들이었다.그들은 늘 소예지에게 따뜻했고 언제나 친절했다.바로 그렇기에 소예지는 더욱 냉정하고 단호해져야만 했다.그녀는 이미 오래전에 다시는 결혼하지 않겠노라 마음먹은 사람이었고 그런 자신의 감정이 임현욱에게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그에게 사랑이라는 이름의 착각도 기대도 남기고 싶지 않았다.연락을 끊고 마주치지 않도록 거리두기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될 테고 각자의 삶으로 조용히 돌아가게 될 것이다.소예지는 돌아누워 딸의 작고 부드러운 몸을 꼭 안았다.아이의 따스한 체온과 향긋한 냄새가 그녀의 가슴을 천천히 채워나갔고 그렇게 소예지는 조용히 잠에 들었다.다음 날 아침.연휴를 마친 소예지와 박시온은 시내로 돌아가기 위해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박시온이 운전하는 차가 소예지의 집 앞에 도착했을 무렵, 그녀가 갑작스레 말을 뱉었다.“어머, 나 지금 잘못 본 거 아니지? 저 사람... 임 대위 아냐?”소예지의 집 앞엔 검은색 레인지로버가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고 그 옆에 임현욱이 조용히 기대 서 있었다.가슴이 꾹 막히는 느낌에 소예지의 숨이 잠시 멎었다.그가 여길, 직접 찾아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그 순간이었다.맞은편 골목에서 검은색 마이바흐가 조용히 방향을 틀어 다가왔고 그 강렬한 존재감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박시온이 차량 번호판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돌려 소예지를 바라봤다.“너네 전남편도 왔네.”마이바흐는 레인지로버 앞에서 몇 미터 떨어진 곳에 멈춰 섰고 두 대의 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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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2화

“그럼 이따가 다시 와. 마침 면회 시간이랑 횟수를 정하려던 참이었거든.”그 말에 고이한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그럴 필요까지 있어?”“당연히 있지.”소예지의 대답은 단호했고 눈빛에는 흔들림이 없었다.그때, 양희순이 문을 열고 들어왔고 그 뒤를 따라 젤리가 꼬리를 살랑이며 튀어나왔다.녀석은 소예지와 고이한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반가움을 표현했다.“이모님, 이 분 안으로 모시고 차 한 잔 드리세요.”임현욱의 눈가엔 희미한 미소가 스쳤다.“좋아요. 그럼 안에서 기다릴게요.”그가 부드럽게 말하며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양희순은 잠시 고이한을 힐끗 바라본 뒤 임현욱에게 차를 내주러 갔다.고이한의 얼굴이 점점 제 색을 잃어갔다. 그는 임현욱의 뒷모습을 가만히 응시하다가 다시 소예지를 향해 눈길을 옮겼다.“새 삶을... 꽤 잘 살고 있는 것 같네.”“왜? 난 이혼했어도 잘 살면 안 되는 거야?”소예지가 씁쓸하게 웃으며 되물었고 고이한의 표정은 단단히 굳어졌다. 그는 그녀의 고집스럽게 굳은 눈매를 바라보다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그런 뜻이 아닌 거 알잖아.”더 이상 그와 감정적으로 얽히고 싶지 않았던 소예지는 차갑게 말을 뗐다.“내일이나 모레쯤 다시 와. 지금은 손님을 대접해야 하니까.”마침 산들바람이 불어와 머리 위 나뭇가지들이 살짝 흔들렸다. 그 틈에서 한 장의 나뭇잎이 소예지의 머리 위로 살포시 내려앉았다.그 모습을 본 고이한은 무심결에 손을 들어 나뭇잎을 떼어주려다 소예지가 경계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자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그는 어색하게 손의 방향을 틀어 자신의 소매를 정리했다.“알겠어. 시간을 잡아서 다시 올게.”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는 쉽게 돌아서지 못했고 잠시 마당을 바라보던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당신이랑 저 사람은...”“그게 당신이랑 무슨 상관인데?”소예지의 말에 고이한의 온몸이 순간 굳어졌다.“그러게.”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곧장 자신의 마이바흐 차량으로 향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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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3화

소예지의 초대가 단지 예의상의 말이라는 걸 임현욱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그런데도 그의 눈빛은 순간 밝게 빛났다.“정말 괜찮을까요?”“괜찮죠. 재료는 이미 다 사뒀어요. 밥 두어 공기 더하는 게 뭐 어렵다고요.”옆에서 듣고 있던 양희순이 웃으며 말을 보탰다.임현욱은 살짝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실례 좀 하겠습니다.”소예지는 곧 양희순을 향해 말했다.“반찬은 좀 넉넉하게 해주세요. 시온이랑 하슬이도 이따 올 거예요.”“알겠습니다!”양희순은 기분 좋게 대답하고 부엌으로 향했다.그 사이 소예지는 휴대폰을 들고 마당으로 나가 박시온에게 전화를 걸었다.딸과 함께 집에 오라는 그녀의 말에 박시온은 웃음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혹시 고이한 얼굴 지금 시퍼레진 거 아냐?”“돌아오면 자세히 얘기해줄게.”소예지는 짧게 웃고는 전화를 끊었다.약 15분쯤 지났을 무렵, 박시온은 고하슬의 손을 꼭 잡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다.집 안에 낯선 남자가 있다는 걸 눈치챈 고하슬은 재빨리 엄마 뒤에 숨은 채 동그란 눈망울을 반짝이며 조심스레 고개를 내밀고 임현욱을 바라보았다.그 순간, 임현욱의 시선도 아이에게 머물렀다.그의 눈엔 소예지의 딸은 정말이지 너무나 사랑스러운 작은 천사였다.소예지는 딸의 등을 살며시 밀어 앞으로 나가게 했다.“하슬아, 이분은 임현욱 아저씨야. 인사드려야지.”“아저씨, 안녕하세요.”고하슬은 동글동글한 턱을 들고 귀엽게 올려다보며 또박또박 인사했다.임현욱은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 눈높이에 맞춰 무릎을 꿇었다.“안녕. 아저씨는 너희 엄마 친구란다.”그 모습을 바라보던 박시온은 소예지를 향해 묘한 눈빛을 보냈다.‘봐봐, 얼마나 다정하고 가족 같은 장면이야.’박시온이 자리에 함께하면서 분위기는 한층 더 밝아졌다.그녀는 임현욱에게 부대 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물으며 대화를 유쾌하게 이끌었다.한참 이야기가 오가던 중, 양희순이 정갈하고 푸짐한 한 상을 차려내왔고 모두가 둘러앉아 따뜻한 식사를 시작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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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4화

소예지의 손끝이 무의식중에 치맛자락을 꽉 움켜쥐었다. 그 모습을 본 박시온은 그녀가 놀란 걸 직감하고는 재빨리 그녀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안았다.“내가 직업상 예민한 걸지도 모르니 너무 걱정하지 마. 그냥 한 번 짚어본 거야.”시온의 따뜻한 말에 소예지는 마음 깊이 고마움을 느꼈다. 고씨 집안의 위상과 고이한의 능력을 생각하면 그녀로선 경계를 늦출 수 없었다.다만 고이한의 재력을 감안하면 아이가 몇 명이든 갖는 건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다. 심유빈이 아이를 낳을 수 없다면 다른 방법을 찾을 테고 무엇보다 그는 결코 단 한 명의 아이로 만족할 사람이 아니었다.그런 생각이 미치자 소예지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걱정 마. 그 이혼 계약서는 전부 너한테 유리하게 작성됐어. 그 사람이 이의를 제기한다 해도 쉽지 않을 거야. 게다가, 지금 하슬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너잖아.”박시온의 다정한 위로에 소예지는 조용히 웃었다.고이한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떨쳐내듯 그녀는 마음을 다잡았고 딸과 함께 마지막 연휴를 평온하게 보냈다.그리고 황금연휴가 끝나자 소예지는 늘 그렇듯 MD 본사를 향했다.그러나 본사 로비에 들어선 순간, 평소와는 다른 공기가 피부에 먼저 와닿았다.늘 밝게 인사하던 프런트 직원들은 모두 무표정한 얼굴로 조용히 일에만 몰두하고 있었고 로비엔 알 수 없는 긴장감이 짙게 흐르고 있었다.소예지는 뭔가 이상함을 느끼며 바로 자신의 사무실로 향했고 명찰을 목에 거는 순간 임세현이 회의 자료를 품에 안고 바삐 들어왔다.“소 팀장님, 오늘 회의 자료입니다. 한 번 확인해 주세요.”“오늘 회사에 무슨 일 있었어요?”참지 못한 궁금증에 묻자, 임세현은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아직 모르셨어요? 이준혁 씨 팀, 어제 전원 해고됐어요.”소예지의 눈이 크게 떠졌다.“왜요?”“설계안이 고 대표님한테 전부 반려됐대요. 고 대표님이 화가 단단히 나셔서 그 자리에서 아예 팀을 해산시켜 버렸대요. 단 한 명도 안 남기고요.”그 말에 소예지의 미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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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5화

오전 내내 소예지는 구운과 함께 프로젝트 업무를 조율하고 있었다.군부 쪽에서 진행한 실험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성과를 보였고 동물 실험의 성공률은 무려 97%에 육박했다.몇 가지 기술적인 미세 오류가 발견되긴 했지만 그 부분은 MD 팀이 데이터를 정제하고 보정해 가며 차차 해결해나가야 했다.오늘 하루, MD 전체는 숨 막힐 듯한 긴장감으로 감돌았다.고이한의 강압적이고도 실수를 허락하지 않는 스타일은 사람들에게 그의 냉혹함이 어떤 것인지 분명하게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잠시 후, 소예지는 자리를 비우고 화장실로 향했다. 칸막이 안으로 들어가 앉자마자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몇 명의 발소리가 안으로 들어섰다.“오늘 우리 사무실 분위기 완전 살얼음판이야. 고 대표님 눈에라도 띄면 우리 부서 통째로 갈리는 거 아닌가 몰라.”“그게 뭐가 무섭냐? 너희 팀엔 소예지가 있잖아. 고 대표님의 전 부인인데 감히 팀을 갈아엎을 수나 있겠어?”“그러게 말이야. 게다가 애도 있다잖아? 자기 딸 엄마를 잘라도 그건 진짜 너무한 거지.”“근데 진짜, 소예지 그 능력 하나는 인정해야 해. 고 대표도 그거 아까워서 못 건드리는 거야.”“아니 근데 말이지, 혹시 고 대표가 아직도 소예지한테 미련이 있는 거 아냐? 어쨌든 한 침대 썼던 사인데...”“아, 그 생각만 하면 부러워 죽겠어! 고 대표님 진짜 잘생겼잖아. 키에 몸매에 분위기까지 모델 뺨치지 않냐?”그 순간, 갑작스레 물 내리는 소리가 났고 이내 옆 칸에서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나왔다.또각또각 울리는 하이힐 소리와 함께 안채린이 거울 앞 세면대로 다가가 손을 씻으며 차갑게 웃었다.“무슨 말도 안 되는 헛소리들을 그렇게 공공연히 하고 있어?”“그냥 잡담 좀 한 거잖아요. 뭐 어때서요?”안채린은 손을 씻으며 비웃음을 머금었다.“너희들이 뭘 안다고 그래? 고 대표님, 이미 여자친구 있어. 그것도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심유빈이야.”갑작스러운 말에 수군거리던 비서들은 당황한 기색으로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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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6화

“나랑 하슬이 사이를 정말 완전히 끊을 생각이야?”고이한의 눈빛엔 억눌린 의문이 번뜩이고 있었다. 단 세 걸음 앞, 소예지를 마주한 그의 시선은 날카롭게 그녀의 중심을 꿰뚫고 있었다.그리고 그 물음은 소예지가 오랜 시간 가슴 깊이 품어온 바람을 정확히 찌르고 있었다.그녀는 언젠가 딸 하슬이가 그에게 기대지 않고 그의 존재 없이도 당당히 설 수 있기를 바랐고 그게 바로 그녀가 목표로 삼은 ‘끝’이었다.고이한은 천천히 창가로 걸어가 한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도시의 불빛을 등지고 낮고 쉰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하슬이가 태어난 날이 아직도 생생해.”그의 눈동자는 어느새 먼 곳을 향하고 있었고 깊은 기억 속으로 가라앉아 있었다.“분홍 담요에 싸여서 손바닥만 한 몸으로 내 품에 안겨 있었지. 막 태어난 새끼 고양이처럼 눈도 제대로 못 뜬 채로.”그는 잠시 말을 멈췄고 그 틈에 소예지의 얼굴이 굳어지는 게 눈에 보였다. 하지만 고이한은 그걸 외면하듯 낮은 목소리로 다시 말을 이었다.“처음 안았을 땐 손이 떨리더라.”소예지의 손끝이 조용히 움츠러들었다. 꽉 쥔 손바닥에 손톱이 파고들 만큼 그녀는 이미 긴장으로 몸을 조이고 있었다.‘이 남자, 지금 이 얘기를 왜 하는 거지?’“그 애가 처음 ‘아빠’라고 부르던 순간부터 결심했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걸 전부 하슬이에게 주겠다고.”고이한은 몸을 돌려 그녀를 마주 보았다.그의 눈동자엔 평소와 같은 오만함도 차가운 통제욕도 없었다. 대신 뭔가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허와 두려움과 살점을 뜯기는 듯한 불안이 어른거렸다.“부탁이야. 내 삶에서 하슬이가 사라지게 하지 마.”그의 목소리는 다시금 평정을 되찾았고 눈빛도 고요히 가라앉았다.“면회 횟수는 그대로 한 달에 여덟 번으로 해. 다만 시간은 상황에 따라 조율하자. 물론, 당신 일정에 맞출게.”소예지의 표정엔 여전히 내키지 않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혼을 위해 이미 많은 걸 양보한 그녀였고 이 면회 조건도 마지못해 수용한 타협 중 하나였다.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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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7화

소예지가 사무실로 돌아오자 구운이 실험 데이터 보고서를 몇 건 보내왔다. 모두 분석이 필요한 자료였고 그녀는 곧바로 일에 몰입했다.복잡한 수치들을 하나씩 검토하던 중, 전화벨이 울렸다.발신자는 임재석이었다.“대표님, 이번 주말 꼭 참석하셔야 할 결혼식이 하나 있습니다.”“누구 결혼식이죠?”“이 회장님 따님이 결혼합니다.”그는 한 박자 쉬며 신중한 어조로 덧붙였다.“대표님, 어떤 일이 있어도 시간을 내셔야 합니다.”소예지는 이 회장이 재계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 인물인지 잘 알고 있었다.그녀는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 참석하죠.”“그럼, 내일 아침 직접 청첩장 전달드리겠습니다.”전화를 끊고 나자, 소예지의 머릿속에 자연스레 고이한의 얼굴이 떠올랐다.그도 분명 그 자리에 나타날 것이다.사회적 위치상 빠질 수 없는 자리일 테고 그녀 역시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행사였다.다음 날 아침, 임재석은 금박이 정교하게 인쇄된 청첩장을 들고 그녀의 사무실을 찾았다.그는 청첩장을 조심스레 내밀며 말했다.“아마 윤 대표님도 참석하실 겁니다.”그 말에 소예지는 얼마 전 가정부에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외국에 나갔다고 했었는데... 벌써 돌아온 건가?’이 회장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도 상류층 인사들이 대거 몰릴 것이 뻔했고 윤하준이 그런 자리를 빠질 리 없었다.점심시간이 가까워질 무렵, 근처에서 고객을 만나던 박시온에게서 연락이 왔다.“나 지금 근처인데 점심 같이 먹자.”두 사람은 조용한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았다.소예지가 결혼식에 참석하게 됐다는 소식을 전하자 박시온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봐라, 너도 이제 완전히 상류 사회 인물 취급받는 거야. 이제 어디를 가든 주목받겠네.”소예지는 여전히 단순하고 조용한 삶을 원했지만 이미 그녀의 이름과 재산은 세상에 알려질 대로 알려진 상태였기에 그 바람은 점점 현실에서 멀어지고 있었다.“그래서 말인데 이번엔 정말 제대로 꾸미고 가야 해.”박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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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8화

소예지는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다정하게 인사를 건넸다.“출장 때문에 해외 나가셨다던데 언제 돌아오셨어요?”그러자 윤하준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내가 해외 간 걸 어떻게 알았어요?”소예지는 입가에 잔잔한 웃음을 띠며 답했다.“지난번 학교에서 윤 대표님 댁 가정부를 우연히 뵀는데 그분이 말씀하시더라고요.”그 순간, 윤하준의 눈동자에 어렴풋한 실망의 기색이 스쳤다.그는 혹시나 그녀가 자신의 소식을 일부러 알아보았을까 기대했지만 결국 우연히 알게 된 것이라는 사실에 마음 한편이 씁쓸하게 식어갔다.“네, 이틀 전에 막 돌아왔어요. 회사 일도 정리할 게 있어서요.”그가 다시 부드럽게 웃으며 덧붙였다.“급한 일은 거의 다 마무리됐어요.”소예지는 한층 여유로워진 윤하준의 분위기 속에서 가문 내 권력 싸움에서 결국 승기를 거머쥔 거란 걸 짐작할 수 있었다.바로 그때, 연회장 입구 쪽에서 작은 웅성임이 일었다.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소예지의 시선 끝에 깔끔하게 재단된 검은 정장을 입은 고이한이 노신사 한 명과 함께 대화를 나누며 입장하는 모습이 들어왔다.하지만 그의 시선이 소예지와 윤하준이 함께 있는 모습을 포착하는 순간, 얼굴에 머금고 있던 미소가 살짝 굳었고 날카롭던 눈빛엔 짙은 어둠이 어른거렸다.그는 노신사와 몇 마디 더 나누더니 곧장 두 사람을 향해 다가왔다.“왔어?”윤하준이 먼저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넸고 고이한은 느긋한 표정으로 되물었다.“집안일은 다 정리된 거야?”“응, 다 처리했어.”윤하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잠시 후, 고이한의 시선이 소예지에게로 옮겨졌다.“오늘 정말 예쁘네.”그 말은 조금 전 윤하준이 했던 말과 정확히 같았지만 같은 말도 고이한이 하자 소예지의 표정은 차갑게 굳어졌고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은 채 시선을 돌렸다.그때, 손님들을 맞이하러 나온 이 회장이 세 사람을 발견하고는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와줘서 고맙네!”그는 반가운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곧 결혼식이 시작될 테니 자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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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9화

소예지는 오늘 신부 들러리 중에 심유빈이 있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그리고 놀랍게 그녀 역시 소예지를 발견한 듯했다.소예지 옆에 앉은 윤하준에게 잠시 시선을 준 심유빈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묘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가 곧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시선을 무대 앞으로 돌리고는 신랑과 신부에게 집중했다.결혼식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사회자의 진행에 따라 신랑과 신부는 서로에게 반지를 끼워주고 진심이 담긴 서약을 나눴다.그 순간, 연회장 가득 박수가 터졌고 소예지도 자연스럽게 손뼉을 쳤다.그 옆에서 함께 박수를 치던 윤하준은 슬며시 시선을 돌려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이런 축복의 자리가 혹시 그녀에게 과거의 기억을 불러오진 않을까 문득 걱정이 밀려왔던 것이다.그날의 기억은 그에게도 생생했다.햇살이 따사롭게 내리쬐던 예식장에서 소예지는 환한 미소를 머금고 고이한의 팔짱을 끼고 입장했었다.윤하준은 그때 누구보다 진심으로 가장 친한 친구의 행복을 축복했다.하지만 그 이후, 그는 고이한의 곁에서 더 이상 소예지의 모습을 볼 수 없었고 소문으로는 결혼 후 전업주부로 살며 내조에만 힘쓴다고 했다.그러던 그녀를 몇 년 뒤 외국의 어느 연주회 무대에서 다시 마주쳤을 때, 그녀는 단단한 눈빛으로 피아노 앞에 앉아 있었다.당당하고도 아름다운 그 모습 하나로 그녀는 단숨에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그리고 강가에서 그녀가 물에 빠졌을 때 모두가 심유빈을 구하려 뛰어들던 그 상황에서 그는 단 한 순간도 망설이지 않고 소예지를 향해 뛰어들었다.며칠 뒤, 귀국 전날 밤.가로등 불빛 아래, 얇은 외투 하나를 입고 떨고 있던 그녀와 다시 마주쳤을 때, 그 모습은 그의 마음 깊은 곳에 파문을 남겼다.그건 동정이 아니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지켜주고 싶다는 강렬한 감정의 물결이었다.물론, 절친한 친구의 아내를 마음에 둬선 안 된다는 사실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그러나 인생이란 언제나 이성적으로만 흘러가지 않는 법이었고 그는 그때까지도 소예지와 고이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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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0화

그 순간, 소예지의 시선은 다시금 고이한에게 닿았다. 그는 여전히 등을 돌린 채 앉아 있어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지금 그 얼굴 위엔 어딘가를 향한 다정한 웃음과 한없이 너그러운 시선이 어른거리고 있으리라는 걸.그때, 윤하준이 몸을 약간 기울이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예식 끝나면 먼저 나갈까요?”소예지는 고개를 천천히 저으며 조용히 대답했다.“아니요. 식 끝나고 식사까지 하고 가죠.”게다가 이 자리에서 고이한과 심유빈이 아무리 다정한 ‘연기’를 펼친다 한들, 이제 그런 것에 휘둘릴 만큼 자신이 약하지 않다는 걸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좋아요.”윤하준은 잔잔히 웃었고 그 미소 속엔 그녀와 더 오래 함께 있고 싶다는 은근한 바람이 스며 있었다.잠시 후, 신랑 신부가 각 테이블을 돌며 건배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주빈석 옆의 테이블에도 하객들이 하나둘 자리를 채웠고 들러리들도 착석했다.이윽고 이 회장이 딸 부부를 데리고 소예지의 테이블로 다가왔다. 하객들이 일제히 잔을 들었고 소예지 쪽에 이르자 그는 유독 따뜻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딸에게 소개했다.“나경아, 이분이 바로 소예지 씨야. 젊은 과학자들 사이에선 아주 유명한 인재지. 인사드려.”“제가 한 잔 올릴게요.”이나경은 정중히 잔을 들어 건넸고 소예지는 미소를 머금은 채 잔을 받았다.“결혼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두 분 늘 행복하시길 바랍니다.”연회장에는 고급 요리들이 연이어 올라왔고 소예지의 테이블엔 몇몇 부유한 집안의 부인들도 함께 앉아 있었다.그중 한 여인이 흥미롭게 두 사람을 살펴보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혹시 두 분, 부부세요?”뜻밖의 질문에 소예지는 잠시 멈칫했지만 윤하준이 먼저 부드럽게 웃으며 답했다.“부부는 아니고요. 친한 친구예요.”“어머, 두 분이 너무 잘 어울려서 부부인 줄 알았네요!”그녀는 웃으며 덧붙였다.“좋은 친구도 연인이 될 수 있어요. 꼭 힘내보세요.”그 말에 윤하준은 어딘가 수줍은 듯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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