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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11화

황축복이 휴대폰을 집어 들고 화면이 정면을 향하도록 똑바로 세웠다.화면이 잠시 흔들리며 흐릿해졌다가 이내 황태민의 얼굴이 선명하게 나타났다.아이가 익숙한 얼굴을 멍하니 바라봤다.고작 하루 보지 못했을 뿐인데 황태민이 몹시 피곤해 보였다. 오랫동안 잠을 설친 것처럼 눈 밑에 짙은 다크서클이 내려앉아 있었다.황태민의 목소리가 휴대폰에서 흘러나왔다.“축복이 아빠 보고 싶었어?”황축복이 눈시울이 붉어진 채 휴대폰을 꼭 쥐었다.“아빠, 많이 힘들어요?”그가 고개를 저었다.“안 힘들어. 걱정하지 마.”화면 속의 얼굴을 응시하던 황축복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 입술을 깨물었다.“일이 많이 바빠요?”황태민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응, 좀 바빠. 그래서 전화를 자주 못 할 수도 있어. 알겠지?”아이가 잠시 망설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문득 연채린이 했던 말이 떠올라 막 입을 열려던 찰나 황태민이 먼저 물었다.“우리 축복이 요즘 잠은 잘 자니?”아빠의 질문에 답하는 게 먼저라 생각한 황축복은 하려던 질문을 일단 접어뒀다.“네. 채린 이모랑 같이 자요. 방도 아주 따뜻하고요.”“다행이구나. 밥은 잘 챙겨 먹고? 반찬 투정 안 하고 배불리 먹었어? 아침은?”황축복이 고분고분 대답했다.“잘 먹고 있어요. 밥도 맛있고 반찬 투정도 안 해요. 그리고 아침도 방금 배불리 먹었어요.”황태민이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채린 이모한테 들었어. 어제 백령사에 갔다며? 가서 뭘 했는지 아빠한테 말해줄 수 있어?”“네.”아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들렀던 전각들을 하나하나 짚어보았다. 그러다 갑자기 미간을 찌푸렸다.“이것밖에 생각이 안 나요. 다른 건 잘 기억이 안 나서요.”“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거기서 절밥도 먹었는데 언니가 데려가 줬어요...”황축복이 갑자기 하던 말을 멈추자 황태민이 아무것도 모르는 척 물었다.“그래? 어떤 언니가 데려가 줬는데? 채린 언니? 이젠 언니라고 부르기로 한 거야?”아이가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절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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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12화

황태민이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카메라 밖에 있는 누군가를 의식하는 듯했다.카메라 뒤편에 연채린이 서서 황태민을 쳐다보고 있었다. 황축복이 꺼낸 얘기는 이미 전화를 걸기 전 연채린에게서 전해 들었다.화면 속에서 황축복이 집요할 정도로 진지한 눈빛으로 황태민을 쳐다봤다.황태민은 아이의 마음속에서 서현주가 이토록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만약 연채린이 말해주지 않았다면 영영 모를 뻔했다.그는 그와 유이영의 딸 황축복이 서현주와 가까이 지내는 걸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다른 누구라도 상관없었다. 심지어 연지훈도 괜찮았다. 하지만 서현주만은 절대 안 되었다.황축복의 눈동자에 아빠가 부정해주길 바라는 작은 희망과 기대가 서려 있었다. 그런데 황태민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맞아. 아빠가 하는 일에 그 사람이 사사건건 훼방을 놓고 있어.”그가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늘어놓았다.서현주 때문에 일이 꼬인 것은 사실이었으나 근본적인 원인은 서현주가 아니라 황태민 본인이 저지른 행보에 있었다.게다가 단순히 업무상의 문제가 아니라 형법에 저촉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딸 앞에서 자신의 추악한 실체를 드러낼 수 없었던 황태민은 업무라는 핑계를 방패 삼아 서현주를 가해자로 둔갑시켰다.황축복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지자 황태민이 안타깝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사실 이 일을 너한테 말하고 싶지 않았어. 아직 어린아이라 어른들 사이의 원한까지 감당할 필요가 없으니까. 그런데 네가 그 여자랑 이렇게까지 가까워졌을 줄은 몰랐어...”황축복이 멍한 얼굴로 아빠를 쳐다보던 그때 황태민이 갑자기 말머리를 돌렸다.“하지만 이건 아빠랑 그 여자 사이의 일이지, 어린 너랑은 상관이 없어. 그러니까 이것 때문에 너 자신을 괴롭히지 마. 계속 그 언니랑 잘 지내고 싶다면 그렇게 해. 아빠는 정말 괜찮아.”이건 배려가 아니라 상대의 죄책감을 자극해 스스로 물러나게 만드는 치밀한 방법이었다.누구보다 철이 들고 아빠를 존경해왔던 황축복이 아빠를 괴롭히는 사람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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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13화

황태민이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우리 축복이는 어쩜 이렇게 속이 깊을까?”황축복이 말했다.“아빠, 나 때문에 화난 거 아니죠?”“화라니. 아빠가 어떻게 우리 딸한테 화를 내겠어?”아이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떨구었다.“아빠, 이런 일은 나한테 바로 말했어야죠. 말하면 나 다 알아들어요.”목적을 달성한 황태민은 서현주의 얘기를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아 화제를 돌렸다.“알았어. 역시 우리 딸이 세상에서 제일 속이 깊다니까? 요즘 어디 놀러 가고 싶은 데 없어?”황축복이 눈가를 닦으며 답했다.“있어요...”황태민의 목소리가 한층 부드러워졌다.“어디 가고 싶은데?”아이가 잠시 고민하다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놀이공원이요.”어린아이라 집중력이 쉽게 분산됐다. 조금 전까지 서현주 때문에 머리를 앓던 황축복이 이젠 황태민이 이끄는 대로 다른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황태민이 몇몇 장소를 제안하자 황축복이 이렇게 말했다.“난 아빠가 돌아오면 아빠랑 같이 가고 싶어요.”그가 나지막하게 말했다.“아빠가 요즘 통 시간이 없어서 말이야. 아빠가 돌아갈 때쯤이면 놀이공원이 문 닫을지도 몰라. 채린 이모랑 승재 삼촌이랑 먼저 다녀오면 안 될까? 나중에 아빠가 돌아가서도 그대로 있다면 그때 아빠랑 다시 한번 가자. 어때?”황축복이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 그럼 아빠를 기다리고 있을게요.”통화 시간이 다 되어가자 황태민이 아쉬워하며 황축복의 얼굴을 쳐다봤다.“축복이 요즘 즐겁게 지내고 있어?”황축복의 눈동자가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화면 속 황태민을 바라보던 아이가 천천히 고개를 떨구었다.‘하나도 즐겁지 않아.’남의 집에 얹혀사는 처지라 즐거울 리가 없었다. 사실 황태민에게 즐겁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다.이곳에 연유준이 있었고 연승재와 연채린은 노골적으로 연유준을 편애했다. 연유준이 그들의 조카라 편애하는 게 당연하다는 것쯤은 이해했다. 하지만 연유준이 황축복에게 드러내는 악의만큼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연유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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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14화

황축복이 말했다.“저도 알아요.”연승재가 황축복의 옆에 앉아 머리를 쓰다듬었다.“이젠 채린 이모가 한 말을 믿을 수 있겠지? 서현주는 진짜... 좋은 사람이 아니야. 다 너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니까 앞으로는 꼭 그 사람을 멀리해야 해. 가까이 가면 안 돼. 알겠지?”마음이 무거워진 황축복이 고개를 떨구었다.사실 황축복은 서현주를 진심으로 좋아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마음이 갔고 서현주의 다정한 눈빛과 미소가 참 좋았다.어제 서현주가 황축복에게 절밥을 먹이고 심지어 아이가 남긴 밥까지 거리낌 없이 먹던 그 기억들이 아직도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빠와 삼촌, 이모의 입을 통하자 전혀 다른 사람이 돼버렸다. 여전히 서현주가 좋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황태민이 아이에게 거짓말을 할 리가 없었다. 서현주가 황태민을 괴롭힌 게 사실일 것이다.그렇다면 딸인 황축복이 계속 서현주와 가까이 지내는 건 아빠를 배신하는 일이나 마찬가지였다.황축복이 답답한 마음을 억누르며 한숨을 내쉬었다.“삼촌, 저 다 알아요. 앞으론 그 언니를 봐도 피하고 말도 안 섞을게요.”아이의 한숨에 흠칫 놀란 연승재가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황축복이 그저 어린아이에 불과하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직접 아이를 낳아 길러본 적이 없어서인지, 혹은 평소 제멋대로인 연유준만 상대해서인지 연승재는 아이의 세밀한 감정까지 다 헤아리지 못했다.연유준이 부리는 소소한 심술들도 별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큰 상처를 입힌 것도 아니었고 황축복도 속상한 티를 내지 않았으니 말이다.하지만 지금 이 모든 상황이 어린 황축복에게는 감당하기 벅찬 무게라는 걸 문득 깨달았다.연승재가 황축복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물었다.“축복이 아까 어디 가고 싶다고 했지? 삼촌이랑 이모가 시간 내서 너희 데리고 놀러 가줄게. 어때?”황축복이 고개를 들고 조심스럽게 물었다.“정말요?”“당연하지.”“하지만 저 유치원도 가야 하고 공부도 해야 하는데...”“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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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15화

연승재가 말했다.“당연히 되지. 어느 놀이공원 가고 싶어?”황축복이 답했다.“공주님들이 아주 많이 나오는 놀이공원요. 가도 돼요?”연승재의 머릿속에 이름 하나가 떠올랐다.“캐슬 월드 말하는 거야?”황축복이 잠시 생각했지만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아마 그럴 거예요. 한 번도 안 가봤는데 가도 돼요?”“당연하지. 별로 멀지도 않아. 조만간 시간 내서 가보자꾸나.”그때 옆에서 심각하게 고민하던 연유준이 불쑥 끼어들며 큰 소리로 외쳤다.“거긴 안 돼요.”연승재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왜 안 돼?”연유준이 턱을 치켜들었다.“안 된다면 안 되는 거예요. 이미 가봐서 갔던 데 또 가기 싫어요. 한 번도 안 가본 곳에 가고 싶어요.”연승재가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긴 하네.”그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연유준의 편에 섰다. 아직 그곳에 가보지 못한 황축복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가 황축복을 돌아보며 말했다.“축복아, 우리 다른 데를 찾아볼까? 유준이 캐슬 월드에 가봤대. 웬만하면 다른 곳으로 고르는 게 좋겠어.”황축복이 연승재와 기세등등한 연유준을 번갈아 보더니 천천히 시선을 늘어뜨리고 주먹을 꽉 쥐었다. ‘유준이는 가봐도 난 한 번도 못 가봤는데...’속상한 마음이 밀려왔다. 가고 싶다고 고집을 피워볼까도 생각했지만 그래봤자 결과는 뻔했다. 오히려 연유준에게 미움만 더 살 것이다.얼마 지나지 않아 황축복이 고개를 들었다.“그럼 다른 곳으로 가요. 전 어디든 괜찮으니까 유준이더러 고르라고 하세요.”“유준이는 신경 쓸 필요 없어. 축복이가 골라.”하지만 황축복은 알고 있었다. 만약 연유준과 다른 의견을 낸다면 연승재와 연채린이 결국 연유준의 손을 들어줄 것이라는 것을.어차피 거절당할 제안을 하느니 처음부터 연유준에게 결정권을 넘겨주는 편이 나았다.“아니에요. 유준이가 고르게 해주세요.”황축복이 뜻을 굽히지 않자 연승재는 더는 뭐라 하지 않고 연유준더러 고르라고 했다.또다시 ‘승리’를 거머쥔 연유준이 ‘실패’한 황축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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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16화

서현주가 벌써 30분째 소태현이라는 사람에게 붙잡혀 있었다.분명 공적인 업무를 논의하기 위한 자리인데도 소태현은 정작 본론은 꺼내지 않고 쓸데없는 안부 인사만 늘어놓았다.서현주가 몇 차례 대화의 물꼬를 돌려보려 했으나 그때마다 소태현이 능구렁이처럼 말을 돌리며 본론을 피해 갔다.답답했던 서현주가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더 이상 이곳에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대표님, 오늘 저를 부르신 진짜 이유가 뭡니까?”소태현이 잠시 멈칫하더니 멋쩍게 웃었다. 여전히 본론을 꺼내지 않고 다시 화제를 돌렸다.“서 대표님 얼마 전에 백령사에 다녀오셨다면서요? 어떻던가요? 정말 영험하던가요? 효과가 좋다면 저도 아내와 딸을 데리고 한번 가볼까 해서요.”그녀가 헛웃음을 지었다.“저도 금방 다녀와서 영험한지 어떤지는 아직 잘 모르겠네요.”“그렇군요... 그럼 실례가 안 된다면 백령사에 어떤 신들을 모시고 있는지 좀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궁금하시다면 직접 검색해 보시거나 동영상을 찾아보시는 게 빠를 텐데요.”소태현의 표정이 어색하기 그지없었다.“대표님께서 직접 설명해주시면 안 될까요? 듣고 싶어서요.”서현주의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과거 소태현이 하유 그룹과 협력했던 관계를 생각해서 이 자리에 나왔는데 잡담이나 나누게 될 줄은 생각지 못했다.그녀는 이런 무의미한 곳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대표님, 우리 모두 시간이 귀한 사람들입니다. 정 알고 싶으시다면 비서분을 시켜서 알아보세요. 만약 비서분도 바쁘시다면 나중에 저의 비서더러 일정을 짜서 메일로 보내드리라고 할게요.”서현주가 웃으며 덧붙였다.“이제 그만 본론으로 들어가서 협력 방안에 대해 얘기하시죠?”그녀가 손목시계를 들어 흔들어 보였다.“벌써 30분이나 지났는데 대표님께서는 아직 한마디도 꺼내지 않으셨어요. 오늘 얘기할 준비가 안 되셨다면 다음에 다시 약속을 잡는 게 낫겠네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소태현도 더 이상 억지로 대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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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17화

서현주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날 채비를 했다.“대표님, 오늘은 아무래도 이만해야겠네요. 뒤에 일정이 있어서 먼저 일어나겠습니다.”서현주의 차가운 목소리에 분노가 서려 있었다.사실 소태현도 이해는 되었다. 협력하자면서 불러내 놓고는 30분 내내 알맹이 없는 잡담만 늘어놓으며 시간을 끌었다. 만약 소태현이었더라면 그도 화를 냈을 것이다.서현주의 두 눈에 서린 분노를 마주한 소태현이 속으로 생각했다.‘다시는 남의 부탁 같은 거 들어주나 봐라. 누군가에게 신세 진 걸 갚으려고 무리하게 약속을 잡고 상대의 시간을 뺏는 짓은 다신 안 해.’소태현이 다시 한번 식당 입구를 힐끗거렸다. 기다리던 사람은 여전히 나타나지 않았다.서현주의 차가운 시선 아래 소태현이 땀을 비 오듯 흘리며 말을 더듬었다.“대표님, 그게... 저... 그러니까...”소태현이 이를 꽉 악물었다.‘몰라. 더는 못 버티겠어.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 나타나지 않는 그쪽이 문제지, 내 잘못은 아니라고.’더 이상 서현주를 묶어둘 수 없었던 소태현이 미안해하며 멋쩍게 웃었다.“죄송합니다, 대표님. 이번엔 정말 제가 결례를 범했네요. 그럼 먼저 일어...”그런데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식당 문이 열렸다. 소태현의 고개가 자석에 이끌리듯 그쪽으로 돌아갔다. 마침내 기다리던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소태현은 감격에 겨워 하마터면 눈물까지 흘릴 뻔했다.“대표님, 저기 좀 보세요...”식당 문을 등지고 앉아 있던 서현주가 소태현의 이상한 눈빛을 눈치채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서현주가 멈칫했다.식당 안으로 들어오는 이들이 다름 아닌 신가영과 그녀의 부모, 그리고... 안요한이었다.신가영의 부모가 앞에서 걸었고 신가영과 안요한이 그 뒤를 나란히 따랐다.신가영과 그녀의 부모 얼굴에 화사한 미소가 가득했다. 특히 신가영의 표정이 누가 봐도 행복에 젖어 있는 듯했다.반면 옆에 있는 안요한의 표정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고 그저 덤덤했다. 일행이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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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18화

목적이 탄로 나고 배후까지 들통난 이상 소태현에게는 더 이상 서현주를 붙잡아둘 명분이 없었다. 어차피 할 일을 다 마쳤기에 소태현은 식당을 나서는 서현주를 막지 않았다.서현주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진 것을 확인한 후에야 소태현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연지훈에게 전화를 걸었다.신호음이 울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연지훈의 낮게 깔린 목소리가 휴대폰 너머로 들려왔다.“소 대표님.”평소와 다름없는 연지훈의 목소리에 소태현은 마음 같아서는 욕을 하고 싶었지만 억지웃음을 쥐어짰다.“연 대표님, 서 대표님이 방금 보고 가셨어요. 이제 제가 할 일은 더 없죠?”연지훈이 눈썹을 치켜세웠다.“보고 반응이 어떻던가요?”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던 소태현이 서현주의 표정을 자세히 살폈을 리 만무했다.소태현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서현주의 표정을 떠올리려 애를 썼다.“좀 화가 난 것 같던데요?”잠시 침묵이 흐른 뒤 연지훈의 웃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정말이에요?”소태현이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온갖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대체 뭐 하는 인간이야? 난데없이 날 이용해서 서현주한테 그 광경을 보게 하고 서현주가 화난 것 같다니까 기뻐하기까지 하다니. 그렇게 농락을 당했는데 화를 내지 않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니야?’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했지만 연지훈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상냥한 말투를 유지했다.“그럼요. 서 대표님 이미 떠나셨는데 누가 봐도 잔뜩 화가 난 기색이었어요...”휴대폰 너머로 연지훈의 유쾌한 웃음소리가 다시 한번 흘러나왔다.소태현이 무표정한 얼굴로 생각했다.‘연 대표 이 사람 미친 거 아니야? 대체 뭐 하자는 거지?’그가 멈칫했다가 이내 이어 말했다.“그나저나 대표님, 저를 보낸 사람이 연 대표님이라는 걸 서 대표님이 눈치챈 것 같아요. 아무래도 대비를 좀 하셔야 할 것 같은데요?”소태현은 내심 서현주가 연지훈에게 제대로 복수해 주기를 바랐다.연지훈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괜찮아요. 알아채는 편이 더 나아요.”‘역시 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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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19화

서현주가 물었다.“무슨 뜻이죠?”휴대폰 너머로 연지훈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소태현 대표한테 들었는데 기분이 안 좋았다고?”서현주의 목소리가 한없이 덤덤했다.“다 알면서 왜 물어요?”그녀는 연지훈의 이 오만한 방식이 너무 싫었다. 제멋대로 판을 짜고 안요한이 신씨 가문 사람들과 식사하는 장면을 억지로 목격하게 했다.지난번 병원에서 했던 말을 다시 하려는 것일까? 아니면 사람을 잘못 믿었다며 비웃는 것일까?아무튼 이런 상황에서 연지훈의 입에서 고운 말이 나올 리 없었다. 서현주도 그에게서 안요한과의 관계를 품평 당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연지훈이 그녀의 예상과는 조금 다르게 반응했다.그가 돌연 웃음을 터뜨렸다.“정말 기분이 안 좋은가 보네?”그러고는 말머리를 돌리면서 다정한 척했다.“내가 말도 없이 제멋대로 이런 일을 벌여서 그래? 그럼 다음부턴 미리 귀띔이라도 해줄까?”‘미리 말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고.’서현주가 잠시 침묵하다가 아주 정중하면서도 진심 어린 말투로 물었다.“연지훈 씨, 혹시 정신 상태에 문제가 있는 거 아니죠?”연지훈이 그녀의 비아냥거림을 전혀 알아듣지 못한 것처럼 태연하게 대꾸했다.“잊었나 본데 우리 며칠 전에 병원에서 같이 검사받았잖아. 아직은 아무 이상이 없대.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그때 다시 알려줄게.”서현주가 차분하게 말했다.“머리에 문제가 있어 보이는데 시간 날 때 꼭 검사받아 보세요.”전화를 끊으려던 그때 연지훈이 갑자기 말했다.“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대답해줄 수 있어?”무슨 말을 하려나 싶어 서현주가 전화를 끊지 않고 일단 들었다.“이렇게 화가 난 이유가 내가 멋대로 이런 일을 만들어서야? 아니면 안요한이 신가영이랑 같이 있어서야?”서현주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그게 대표님과 무슨 상관이죠?”“상관이 없어?”연지훈이 덤덤하게 되물었다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너도 알 텐데. 너랑 안요한이 헤어지기를 내가 계속 기다리고 있다는 걸. 만약 화가 난 이유가 후자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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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20화

문은성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시선이 통유리창 앞에 서 있는 훤칠하고 준수한 모습의 연지훈에게 향했다.그녀는 그에게 다가가 원목 책상 위에 놓인 와인잔을 힐끗 쳐다보고는 서류를 내려놓았다.“대표님의 결재가 필요한 서류들입니다. 확인 부탁드려요.”연지훈이 고개를 숙여 서류를 봤다가 덤덤하게 물었다.“며칠 더 쉬지 않아도 괜찮겠어?”문은성이 환하게 웃어 보였다.“월급을 받는 사람인데 당연히 일을 해야죠. 대표님이 유급 휴가를 주셨어도 호텔에 있으려니 가만히 있질 못하겠더라고요. 대표님 비서 자리가 워낙 인기가 많아서 제 자리를 지켜야죠.”장난기 섞인 말투였다.연지훈은 문은성을 한 번 쳐다본 뒤 더는 뭐라 하지 않았다. 서류를 훑어보던 그가 곧바로 펜을 들어 사인했다.문은성이 사인한 서류를 챙기면서 연지훈의 얼굴을 살폈다. 아직 다 가시지 않은 얼굴의 멍 자국을 본 그녀가 다정하게 말했다.“대표님, 상처가 아직 다 안 나으셨어요. 의사 선생님도 당분간 술은 멀리하라고 당부하셨어요.”연지훈이 별다른 반응 없이 짧게 답했다.“나가 봐.”문은성이 몸을 돌려 나갔다. 문을 닫으려는 찰나 문틈 사이로 안을 들여다보았다.연지훈이 와인잔을 들어 술을 단숨에 마시자 목울대가 섹시하게 일렁거렸다.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남자 특유의 섹시미가 전해지는 듯했다.그녀가 시선을 늘어뜨리고 천천히 문을 닫았다.전화를 끊은 뒤 서현주는 휴대폰을 옆으로 던져두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창밖의 거리 풍경이 빠르게 뒤로 밀려났다.연지훈이 했던 말 때문에 가슴이 답답해졌고 안요한이 신씨 가문 사람들과 함께 룸으로 들어가던 장면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동시에 집안일을 잘 해결하겠다고 약속하던 안요한의 모습도 눈앞에 선했다.서현주가 고개를 숙여 왼손에 낀 반지를 내려다보았다. 서서히 눈을 감으며 마음속의 짜증을 억눌렀다.띠링.그때 메시지가 도착하여 다시 눈을 뜨고 확인했다. 안요한이 보낸 메시지였다.안요한:[신씨 가문 사람들이랑 식사 중이야. 갑자기 연락받은 거라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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