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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가면을 쓴 남편: Chapter 11 - Chapter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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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송남지는 마치 집안의 골칫덩어리처럼 끌려 나와 윤씨 저택을 떠났다.차가 대문을 벗어나자 송남지는 무심히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불과 3년 전, 윤씨 가문도 저렇게 화려한 등불을 밝히고 송남지를 며느리로 맞아들였는데 지금은 이렇게 쓸쓸히 내쫓기듯 떠나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차가 막 저택을 벗어나려는 순간, 길목을 가로막는 한 사람이 있었다.윤해진이었다.그의 얼굴에는 순간적인 죄책감이 스친 듯했다.차가 멈추자 윤해진이 다가와 창문을 두드렸고 잠시 망설이던 그는 조심스레 물었다.“팔은 괜찮아? 혹시 치료부터 해야 하는 거 아니야?”송남지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곧장 앞만 바라봤다.“아주버님과는 상관없는 일이에요.”윤해진은 깊은숨을 내쉬며 애써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치료해 줄게.”윤해진은 곧장 뒷좌석으로 올라와 준비해 둔 밴드를 꺼내더니 아직 피가 맺힌 송남지의 팔에 붙여주었다.“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상미를 밀 수가 있어.”윤해진은 아까 송남지에게 소리친 일을 후회하는 듯했지만 그 마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오히려 그녀의 잘못을 탓하며 마음을 붙잡으려는 듯 보였다.송남지는 윤해진을 곁눈질로 흘겨보고는 더는 대꾸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미 차는 저택을 떠났고 오늘 이별이 곧 영영 돌아오지 못할 길이 될 거라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다.송남지가 침묵을 지키자 윤해진은 다시 입을 열었다.“같이 가줄게. 그래야 장인... 아니, 사돈 댁들께서 윤씨 가문이 무정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거야.”송남지의 가슴 속에 쓴웃음이 번졌다.‘무정하다니. 진정 무정한 사람은 윤씨 가문은 사람들뿐이야.’운전기사가 다시 출발하려던 찰나 송남지가 윤해진을 막았다.“윤 대표님, 더 이상 따라오지 마세요. 형님은 지금 몸도 불안정한데 아주버님은 형님 곁을 지키는 게 맞아요.”괜히 허상미가 또 발작을 일으키지 않도록 말이다.윤해진의 눈길에는 미련이 가득했다. 요즘 윤해진은 밤마다 허상미 곁에 누워 있어도 머릿속에 맴도는 건 송남지뿐이었다.“의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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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송남지가 막 친정에 도착했을 무렵, 허상미가 보낸 사진 한 장이 휴대폰에 도착했다. 화면 속에는 두 사람의 친밀한 모습이 담겨 있었다.송남지는 표정을 굳힌 채 캐리어를 받아드는 최미경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남지야, 무슨 일이니? 아직도 해진이를 못 놓았구나? 하씨 가문에서 서두르긴 하지만 엄마는 강요하지 않을 거야. 네가 마음을 다 추스르고 나면 그때 가서 하정훈 씨의 일을 이야기하자.”송남지는 휴대폰을 힐끗 보더니 아무렇지 않은 듯 대화창을 삭제했다. 그리고 억지로라도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엄마, 전 이미 다 정리했어요. 죽은 사람은 죽은 거고 살아 있는 사람이 중요하잖아요. 정훈 씨 일은 최대한 빨리 진행하세요.”전화로 이미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지만 직접 귀로 듣게 되자 최미경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딸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은 어머니였다. 괜히 허세를 부리는 성격이 아니기에 안심이 되었다.“그래. 우리 딸 말이 맞아. 떠난 사람은 이미 떠난 거고 살아 있는 우리가 제일 중요하지. 네 아버지 일만 정리되면 곧 하정훈 씨와도 자리를 마련하마.”송남지는 그제야 어깨의 힘을 풀었고 친정에 돌아오니 비로소 숨통이 트였다. 그동안 밤마다 뒤척이며 잠들지 못했던 피로가 몰려왔다. 이제는 편히 잠을 보충해야 했다.다음 날 아침, 막 잠에서 깬 송남지는 좋은 소식을 들었다.방 문을 두드리며 최미경이 들뜬 목소리로 외쳤다.“남지야, 네 아버지 재판을 곽 변호사님이 맡아 주신다네. 이제는 거의 확실해졌어!”잠결 같던 송남지는 순간 꿈인 줄 알았다. 그러나 방 안으로 들어온 어머니가 팔을 흔들며 다시 말하자 현실임을 깨달았다.“곽 변호사님이요? 서경시에서 그렇게 유명하다는 그분 맞아요?”아버지가 의료 비리에 휘말린 뒤로 송남지는 관련 소식들을 꾸준히 살펴왔기에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곽지민 변호사님이라면 돈만 있다고 쉽게 모실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인맥과 신뢰가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일이었다.송남지는 반쯤 잠이 깬 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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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송남지가 다가서자 말하던 여자의 눈빛이 조금 차갑게 식었다. 그녀는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오늘 여기에는 종업원도 없는데... 어떻게 들어온 거죠? 누구 찾으세요?”송남지는 선물을 들고 잠시 난처한 듯 서 있었다.“하정훈 씨를 찾으러 왔습니다.”“하정훈 씨를요?”여자의 목소리가 한순간 높아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흘겨보던 눈길이 위아래로 그녀를 훑었다.분명 단정하고 눈매도 고운 여인이긴 했지만 첫눈에 주는 느낌은 별로 격이 높아 보이지는 않았다. 하정훈이 관심을 둘 만한 여자처럼 보이지 않았다.여자는 입꼬리를 비웃듯 올리며 말했다.“대체 어디서 하정훈 씨 집 주소를 알아낸 거예요? 이런 짓은 경찰 불러도 되는 거 아시죠...”끝까지 말하지도 못했고 송남지는 손등에 닿는 뜨거운 감각을 느꼈다.올려다보니 단정하게 떨어진 미간과 날렵한 콧날이 어우러진 얼굴선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날카롭게 그어진 턱선, 드러난 목젖, 묘하게 숨 막히는 기운이 온몸을 휘감았다.고개를 숙이자 한 남자의 셔츠 소매 틈에서 드러난 손목 뼈마디와 선명한 핏줄이 보였다. 그 손이 지금 그녀의 손을 굳게 붙잡고 있었다.“경찰을 부른다고?”하정훈은 눈을 가늘게 뜨며 여자를 바라봤다.“유리야,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구나.”하늘하늘한 드레스를 입은 채유리는 처음에는 두 사람이 손을 잡은 걸 보지 못하고 하정훈이 바쁜 와중에도 자신을 챙겨주려 나타난 줄로만 알고 기뻐했다.채유리는 일부러 하정훈의 팔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정훈 오빠, 이런 데까지 오실 시간이 있으셨어요? 어른들 접대는 다 끝내셨어요? 설마 제가 혼자 심심할까 봐 오신 거예요? 사실 저는 괜찮은데...”그러다 문득, 하정훈이 다른 손으로 송남지와 나란히 손을 맞잡고 있는 걸 보았다.채유리의 옆에 있던 친구 역시 그 장면을 보고 눈빛이 굳었다.송남지는 자신을 붙든 손을 바라보며 이 남자가 바로 하정훈임을 깨달았다.어릴 적 두 집안이 함께 있었을 때 잠시 스친 기억 속의 소년은 검은 뿔테 안경을 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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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채유리는 마치 친구를 위해 나서는 듯 말했지만 사실은 하정훈의 화가 자신에게 번질까 두려워 서둘러 조선아와 함께 물러났다.그렇게 쓸쓸히 하씨 저택을 빠져나가고 나니 넓은 홀에는 송남지와 하정훈 단둘이 남게 되었다.순간 공기가 묘하게 달라졌다.송남지는 손에 들고 있던 선물을 조금 들어 올리며 먼저 말을 꺼냈다.“하 대표님, 이건 저와 어머니가 준비한 선물이에요. 생일 축하하고 또 저의 아버지를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송남지는 첫 만남이니 예의와 격식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다.하지만 하정훈의 눈에는 송남지의 정중함이 너무 격식적이고 멀게만 느껴졌기에 마음에 들지 않았다.그 미묘한 기색을 느낀 송남지는 곧바로 자신을 돌아봤다.‘혹시 내가 말실수를 한 건 아닌가?’이건 윤씨 가문에서 몸에 밴 습관이었다.손윤영은 젊은 시절에 남편을 잃고 늘 예민했기에 송남지가 무심코 말을 잘못하면 곧바로 차가운 얼굴을 보였다.어떻게든 분위기를 풀어야 할지 망설이던 찰나, 하정훈은 아무렇지 않은 듯 선물을 받아 들더니 송남지의 손을 잡아 안쪽 홀로 이끌었다.“지금은 사람이 많으니 대화하기가 불편해. 잠시 쉴 곳을 찾아줄 테니 따라와.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송남지는 긴장한 채 하씨 가문의 응접실에 앉아 있었다.하정훈과 단둘이라면 괜찮았을지 몰라도 여기는 하정훈의 부모님인 하종현과 오가은이 함께 사는 집이었다. 두 사람의 성격은 도무지 짐작하기 어렵다고 들은 터라 더 긴장되었다.높은 자리에 오래 있다 보면 까다로워지는 건 당연하다고 여겼지만 그걸 알수록 더욱 불안해졌다.혹시 이렇게 갑자기 찾아와 선물을 드린 게 자신이 서둘러 혼인을 서두른다는 뜻으로 비칠까 봐 걱정이 밀려왔다.조금 전 마당에서 들었던 조선아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이혼에다 아이도 못 낳는 여자라고... 오늘 역시 난 괜히 온 걸까... 오히려 양쪽 집안에 부담만 주는 건 아닐까.’선물은 이미 건넸으니 조용히 하씨 가문의 집사를 불러 인사만 하고 떠나는 게 나을 것 같았다.그런데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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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하종현은 난처한 듯 웃으며 말했다.“얘야, 네가 아줌마의 뜻을 잘못 알아들었구나. 네 아줌마가 말한 건, 우리가 널 맞이할 준비를 못 했다는 뜻이지. 정훈이 말로는 네가 마당에서 한참 헤매다 들어왔다던데... 우리가 제대로 챙기지 못한 거니 너그럽게 이해해 주렴.”하정훈은 송남지에게 낮은 목소리로 일러 주었다.“남지야, 긴장 풀어. 여기에는 남이 없어.”오가은도 곧장 거들었다.“손님들은 이미 다 보냈어. 이제 너 하나만 편히 있으면 돼. 저녁 아직 안 먹었지? 뭐가 먹고 싶니? 내가 직접 해 줄게.”하정훈은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숙여 송남지의 귀에 낮게 속삭였다.“남지야, 우리 엄마께서 직접 요리해 주는 건 흔치 않은 일이야.”송남지는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괜찮습니다. 사모님, 저는 오늘 생일 축하하러 온 것뿐이에요. 어머니와 함께 준비한 선물도 전해드렸고요.”그러자 하종현도 오가은을 다독였다.“여보, 너무 서두르지 마. 아직도 모르겠어? 남지는 어릴 적처럼 낯가림이 심하니 몇 번 더 오가면 그때는 자연스럽게 식사 자리도 함께할 수 있을 거야.”그러자 오가은은 더는 권하지 않았다.“좋아요. 남지가 낯을 가린다니 내가 괜히 억지 부르면 안 되죠. 그러면 정훈아, 어서 선물이나 열어 보아라.”송미경이 준비한 것은 옥 액세서리 한 쌍이었다. 비록 최고 등급의 품종은 아니었지만 상당히 귀한 비취였다.하정훈은 장식을 손끝으로 매만지며 웃었다.“아줌마께서 이렇게까지 정성을 쓰시다니요.”이에 비해 송남지가 준비한 선물은 다소 소박해 보였다. 사적인 친구 사이에서나 어울릴 법한 향수였다.송남지는 괜히 마음이 불편해졌다.‘이런 걸 내가 왜 선물로 준비했을까... 너무 가볍게 생각한 건 아닐까.’하지만 의외로 하정훈은 그 향수에 진심 어린 반가움을 보였다.상자를 열자마자 곧장 손목에 뿌린 것이다.하정훈은 손목을 들어 코끝에 가까이 대고 향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러자 이내 미간이 풀리고 부드러운 미소가 번졌다.“정말 향이 좋구나.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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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송남지는 놀라움과 긴장 속에 얼어붙었고 하정훈이 왜 갑자기 이렇게 된 건지 알 수 없었지만 그의 얼굴은 심각해 보였다.송남지는 서둘러 차 문을 열고 내리며 말했다.“굳이 저를 바래다주지 않아도 돼요. 자신도 돌아갈 수 있으니 하 대표님은 어서 병원에 가세요.”다시 바라본 하정훈의 얼굴은 날카로운 턱선이 이미 부어오른 상태였다.‘도대체 왜 이러는 거지?’송남지의 마음속에서 불안이 고개를 들었다.곧 하씨 가문의 가정부들이 급히 달려와 운전석에서 하정훈을 부축해 내렸다.스쳐 지나가며 느껴지는 하정훈의 호흡은 거칠었고 아예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는 듯했다.송남지는 초조하게 그 뒤를 따르며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확인하려 했다.그러자 하정훈은 숨을 몰아쉬면서도 고개를 돌려 힘겹게 말했다.“남지야, 내가 운전기사를 보내 줄 테니... 너는 먼저 돌아가.”그 말은 더 깊게 물어보지도 말라는 뜻이었기에 송남지는 그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송남지는 굳이 하정훈의 사정을 캐묻지 않고 한발 물러섰다.하씨 저택은 금세 소란스러워졌다.집사와 가정부들이 분주히 뛰어다녔고 여러 명의 의사가 하정훈의 방 앞에 모여들었다.오가은은 근심으로 얼굴이 잔뜩 굳어 있었고 하종현은 노기 어린 눈빛으로 아들을 바라봤다.“정훈아, 너 이게 무슨 짓이냐. 네가 계피에 심한 알레르기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왜 이렇게 경솔한 거야!”오가은은 안쓰러운 눈길을 거두지 못하며 남편을 말렸다.“됐어요. 이렇게 된 마당에 또 원망해서 뭐하게요.”곁에서 지켜보던 오가은은 속으로 혀를 찼다.‘역시 이 사람은 눈치가 없네. 자기 아들이 드물게 마음을 표현하는데 그 뜻도 모르고 꾸짖기만 한다니.’그래도 다행인 건 하정훈이 무뚝뚝한 철벽 남자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얼굴의 붉은 기운이 서서히 가라앉자 하정훈 특유의 고고한 기품이 다시 드러났다.그러나 하종현은 여전히 매서운 눈빛을 거두지 않았다.“의사가 분명히 말했잖아. 계피 성분에 알레르기가 심각하다는데 어떻게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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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장난처럼 던진 한마디였지만 그 말은 오히려 송남지의 가슴 깊은 곳을 건드렸다.윤씨 가문에서 송남지가 원하는 음식을 못 먹게 막은 건 아니었다. 다만 허상미가 자신의 지위를 과시하려고 매번 식탁에 송남지를 앉혔을 뿐이었다.허상미는 일부러 입에 맞지 않는 음식들을 올려놓으며 마치 한 끼 한 끼로 송남지의 마음속에 신분의 차이를 새겨 넣으려는 듯했다.하늘과 땅만큼 다른 위치라는 걸 매번 상기시키듯 말이다.갑자기 말이 끊긴 송남지를 보며 최미경도 농담이 지나쳤음을 눈치채고는 서둘러 딸을 자리에 앉히며 화제를 돌렸다.“남지야, 오늘 하씨 가문에 다녀왔다면서? 하정훈은 봤니?”그건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었다.요즘 하씨 가문은 눈부시게 권력을 넓히고 있었고 하정훈의 생일이라면 모여든 이도 수없이 많았을 터였다.혹시 사람들에 치여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돌아왔을까 싶어 조심스레 물은 것이다.송남지는 젓가락을 들어 먼저 어머니 그릇에 탕수육을 올려주고는 잠시 망설이다 대답했다.“네. 만났어요.”그 말을 듣자 최미경의 얼굴에 안도와 기쁨이 스쳤다. 그 정도면 하씨 가문이 일부러 송남지와 거리를 두지는 않은 셈이었다.“정훈 그 아이... 네 눈에는 어떻더니?”최미경의 물음은 더욱 조심스러웠다.뜻밖의 질문에 송남지는 숨이 막히듯 기침을 터뜨렸고 물을 연거푸 들이켜고서야 겨우 진정됐다.그러고는 오히려 반문했다.“엄마, 그럼 하정훈 씨는... 저를 괜찮게 본 걸까요?”딸의 되묻는 눈빛에 최미경은 한동안 젓가락을 멈춘 채 생각에 잠겼다.“그렇지 않겠니. 이 혼사는 하씨 가문 쪽에서 먼저 얘기 꺼낸 거야. 네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왜 굳이 그렇게까지 서두르겠어.”사실 윤해진의 사고 소식이 전해진 바로 그 주에 하씨 가문은 곧장 혼사를 제안했다.하지만 당시 딸이 윤해진과 함께한 시간을 생각하면 갑자기 다른 인연을 언급하는 건 상처일지 두려워 차마 바로 말할 수가 없었다.송남지는 탕수육을 집어 올렸다가 이내 입맛을 잃은 듯 그릇에 내려놓았다.그녀의 눈빛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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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사실 송남지는 하정훈의 몸에 무슨 문제가 있든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그저 하씨 저택에서 채유리가 자신을 향해 내뱉은 말이 마음에 걸렸을 뿐이었다.‘이혼에다 아이도 못 낳는 여자야.’그 말이 가슴 깊이 박히고 나니 오히려 하정훈에게는 자신보다 더 나은 선택지가 많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송남지는 왜 굳이 자신인지 확실히 알고 싶었다. 이제는 답을 알았고 마음이 무거우면서도 한편으로는 홀가분했다.특히 아버지 문제를 처리하는 데서 보여준 하씨 가문의 신속하고 단호한 태도만으로도 송남지는 하씨 가문이 윤씨 가문보다 훨씬 지위가 높고 실력이 강한 집안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송남지는 최미경의 손을 꼭 잡았다.“엄마, 괜히 걱정하지 마세요. 하 대표님은 아무 문제 없어요. 제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물어본 거예요.”송남지는 마음을 다잡았다. 이 세상은 결국 겉으로 드러난 자취를 보고 판단하는 곳이었다.흔적이 있는 사람은 금세 눈에 띄고 하씨 가문은 바로 그런 집안이었다.허상미 같은 사람과 얽매이는 대신 차라리 자신과 송씨 가문을 함께 품어줄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옳다는 사실도 깨달았다.“엄마, 하씨 가문에서 날짜를 잡았다지요?”실제로 하씨 가문은 벌써 날을 잡아두었지만 최미경은 딸에게 차마 말하지 못하고 있었다.윤해진이 세상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다시 혼사를 서두르는 게 가혹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응. 날짜는 잡혔어. 이번 달 말이라더라. 근데 남지야, 네가 너무 촉박하다고 생각되면 우리가 하씨 가문에 말하자. 아무리 큰 집안이라도 무시하거나 억지로 밀어붙이는 건 좀 아니야.”송남지는 입술에 옅은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저었다.“전혀 안 촉박해요. 오히려 늦은 것 같아요.”그 무렵, 서경시 사교계에서는 하정훈이 이혼했던 여자와 결혼한다는 소문이 떠돌며 화제가 되고 있었다.하지만 하씨 가문은 송남지의 신분을 꼭꼭 숨겼고 세간에는 온갖 추측만 무성할 뿐 정작 그 여자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이 소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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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아이를 가진 뒤로 손윤영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졌다.허상미는 단번에 온 윤씨 가문의 귀여움과 보살핌을 독차지하게 되었다.게다가 위협적이던 송남지마저 내쫓았으니 허상미의 기분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허상미가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보자 윤해진의 마음도 한결 놓였다.이대로라면 몇 달만 더 버티면 모든 것이 끝나고 자신도 완전히 해방될 터였다.하지만 송남지가 윤씨 가문을 떠난 뒤로 이렇게 오래 그녀의 얼굴을 보지 못한 건 처음이었다.출장을 가도 늘 전화로 긴 이야기를 나누던 그였기에 오랫동안 송남지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자 그리움은 도무지 억누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7월의 서경시는 장대비가 예고도 없이 쏟아졌다.깊은 밤, 허상미는 윤해진에게 몸을 기대며 달콤하게 속삭였다.“강현 씨, 우리... 너무 오래 참았잖아요.”윤해진은 허상미의 입술을 거칠게 막으며 응답했다.그날 밤, 윤해진은 속에 숨겨둔 욕망을 분출하듯 허상미와 온 힘을 다해 뒤엉켰다.허상미의 잦은 신음과 비명이 윤씨 저택 안에 퍼져나갔다.모든 것이 끝난 뒤, 허상미는 기진맥진해 곧장 잠에 빠져들었다.밤빛 속에서 윤해진은 서둘러 옷을 걸치고 집을 나섰다.송남지에 대한 그리움은 더는 참을 수 없을 만큼 차올라 있었기 때문이다.그는 곧장 차를 몰아 송씨 저택으로 향했다.하지만 윤해진을 맞은 건 송남지의 얼굴이 아니라 굳은 표정의 최미경이었다.천둥소리가 울려 퍼지고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윤해진은 문 앞에 젖은 채 서서 핑계를 댔다.“남지에게 전해줄 게 있어서 왔습니다. 잠깐이라도 만나게 해주세요.”“남지는 이미 잠들었어요. 그리고 무슨 물건이든 아주버님이 직접 줄 일은 없겠지요.”처음에는 의아했지만 곧 마음을 다잡은 최미경은 단호히 선을 그었다.딸이 이미 하씨 가문으로 가기로 한 이상, 윤씨 가문과의 인연은 이제 깨끗이 끊어져야 했다.윤해진은 발만 동동 구르며 일부러 소리를 내어 송남지가 나오길 기대했다.그는 송남지만 알면 반드시 달려 나올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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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최미경이 윤씨 집안 사람들의 억지스러운 태도를 처음 겪는 건 아니었지만 이번만큼은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윤해진은 미친 사람처럼 문 안을 향해 소리쳤다.“남지야! 송남지! 나와, 내가 꼭 할 말이 있어!”그러더니 윤해진은 그대로 집 안으로 들이닥치려 했다.최미경이 온 힘으로 막아섰지만 도무지 버티기 힘들어 그를 따라 들어가며 외쳤다.“윤강현 씨, 계속 이러시면 정말 경찰을 부를 수밖에 없어요. 그땐 저도 두 집안 체면을 더는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윤해진은 너무나 익숙하게 송씨 집 안을 헤집고 다녔다.윤해진이 남지의 방으로 곧장 향하는 모습에 최미경은 순간 혼란스러워졌다.윤해진과 윤강현은 쌍둥이라 얼굴이 너무도 닮았다. 평소 두 사람을 구분하던 건 습관과 행동뿐이었는데 지금처럼 흠뻑 젖어 서둘러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정말로 윤강현인지, 아니면 윤해진이 맞는지 순간 알 수 없었다.송남지는 이미 윤해진의 고함 때문에 잠에서 깼다.급히 옷을 챙겨 입은 뒤, 윤해진이 들이닥치기 전 스스로 방문을 열었다.뒤따라 선 최미경은 난감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지만 송남지는 오히려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엄마, 이제 들어가서 쉬세요. 이렇게 늦은 시간에 아주버님이 온 걸 보면 분명 중요한 말씀이 있어서일 거예요.”윤해진의 옷에서는 빗물이 뚝뚝 흘러내렸다.그가 남지 쪽으로 한 걸음 다가설 때마다 마룻바닥에 젖은 발자국이 길게 이어졌다.최미경이 물러나자 윤해진은 더는 자제하지 못하고 남지의 허리를 덥석 끌어안았다.젖은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숨결이 얼굴을 파고들었다.“남지야, 방금 어머님이 네가 다시 시집간다고 했는데 거짓말이지? 분명 날 속이신 거야! 네가 어떻게 갑자기 다른 사람에게 시집가겠어?”남지는 차갑게 눈썹을 찌푸리며 뒷걸음질 쳤다.“엄마는 거짓말하지 않으셨어요. 저... 이번 달 말에 다시 결혼합니다.”송남지의 눈빛은 한여름 햇살 아래 얼음처럼 차갑고도 단호했다.윤해진의 가슴은 마치 손아귀에 움켜쥐어진 듯 미어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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