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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거짓말쟁이의 참회: Chapter 81 - Chapter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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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화

저녁 8시.장미가 가득한 송씨 가문의 뒤뜰은 활기로 가득했다.파티가 정식으로 시작되기 전,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화제의 중심은 당연히 오늘의 두 주인공, 송여준과 유하늘이었다.“송 대표님과 사모님은 결혼 7년 차인데도 여전히 사이가 좋으시네요. 이렇게 성대하게 기념일을 준비하시다니 정말 부러워요.”“그러게요. 우리 남편은 기념일 같은 건 챙기지도 않아요. 선물 하나 대충 사주는 정도죠. 송 대표님은 잘생긴 데다가 돈도 많고 아내도 아낄 줄 아시네요.”“저는 하늘 씨가 가장 부러워요. 처음부터 송 대표님을 쫓아다니며 결국 사랑을 얻어냈잖아요. 지금도 행복하게 사니 정말 대단해요.”그들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이미 유하늘의 차가 담벼락 바깥에 멈춰 서 있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유하늘은 선명한 붉은 롱드레스를 입고 차에서 내렸다. 귓가에 맴도는 칭찬 섞인 말들을 들으며 그녀는 자조적으로 입꼬리를 올렸다.‘내가 부럽다고?’‘죽음을 앞둔 이 시점에 남편과의 결혼이 가짜 결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모자라 마음속 사랑하는 여자와는 이미 혼인신고까지 마쳤다는 걸 알게 된 내가 부러운 걸까?’‘아니면 친아들마저 나를 싫어하고 꿈속에서조차 다른 여자가 어머니이길 바라는 걸 부러워하는 걸까?’“사모님, 들어가셔야 합니다.”운전기사의 목소리에 유하늘은 정신을 다잡았다.붉은 입술을 살짝 깨물고 몸을 돌려 문 안으로 들어섰다.오늘 그녀는 일부러 화려한 화장을 하고 붉은 드레스를 입었으며 머리를 허리까지 늘어뜨렸다.마치 포스터 속 여배우처럼 눈부시게 아름다웠고 병약한 기색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사람들은 유하늘이 들어서는 순간 탄성을 터뜨렸다.앞다투어 다가와 인사를 건네며 감탄을 감추지 못했다.거실 안.송여준은 송우주와 함께 친척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자꾸만 시계를 향했고 얼굴에는 초조와 걱정이 엿보였다.유하늘이 제시간에 나타날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최근 며칠 동안 그는 아무 일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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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화

그가 두루마리를 들고나왔을 때, 권아람이 함께 나오지 않자 유하늘은 더욱 알 수 없었다.그녀가 예상했던 장면은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송여준은 두루마리를 들고 한 걸음, 한 걸음 그녀에게 다가와 3미터쯤 떨어진 자리에서 멈춰 섰다.그리고 천천히 두루마리를 펼쳤다.눈부시게 아름다운 별빛 다이아몬드 술 장식이 달린 웨딩드레스 도안이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순간, 모든 사람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유하늘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디자인 도안을 바라보다가 문득 예전에 자신이 송여준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급하게 결혼식을 치르느라 웨딩드레스를 입지 못한 것이 늘 아쉽다며 자신만의 웨딩드레스를 갖고 싶다고 했었다.술 장식이 달린 동양적인 웨딩드레스에 별빛처럼 반짝이며 스커트 자락에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으면 좋겠다고도 했다.그때는 그저 가볍게 툭 던진 말이었다.정말로 좋아한다 해도 몇 마디 정도로만 언급했을 뿐이었다.그러나 지금 송여준이 들고 있는 웨딩드레스 도안은 그녀가 묘사했던 그대로였다.송여준은 도안을 펼친 채 유하늘에게로 걸어왔다.마치 세상에 두 사람만 남은 것처럼 주변이 조용해졌다.“우리 결혼식에서 웨딩드레스를 입지 못했던 게 아쉽다고 했던 네 말, 기억하고 있었어. 그리고 언젠가 이런 술 장식이 달린 웨딩드레스를 입고 나와 함께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싶다고 했잖아. 집에 결혼식장을 지을 수는 없고 드레스도 아직 완성되지 않았으니 디자인이라도 가져와 먼저 보여주고 싶었어.”그는 유하늘을 똑바로 바라보며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네게 말하고 싶었어. 유하늘, 나는 널 이 세상 단 하나뿐인 반려자로 생각하고 있어. 너와 함께 남은 인생을 살고 싶고 앞으로도 영원히 함께할 거야.”마지막 말을 할 때, 송여준의 눈에는 녹아내릴 듯한 애정이 담겨 있었다.유하늘은 완전히 넋을 잃고 말았다.예상했던 일들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고 그녀는 그 굳건하고 진실한 눈빛에 순간 멍해졌다.‘왜 이런 기념일을 준비한 걸까? 왜 권아람이 돌아왔는데도 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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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화

권아람은 송우주를 껴안고 웃으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그래, 엄마 왔어.”사람들은 놀란 눈빛으로 그녀와 유하늘을 번갈아 바라보았다.비슷한 옷을 입은 두 여자가 나란히 송여준의 양옆에 서자 누가 진짜 송씨 가문의 안주인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순간 공기는 묘하게 얼어붙었고 누구도 섣불리 입을 떼지 못했다.유하늘은 늘어뜨린 두 손을 천천히 움켜쥐었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디자인 도안을 자세히 보고 싶었던 마음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오늘은 그저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송여준과 송우주가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역시 사람의 마음을 너무 쉽게 믿은 게 잘못이었다.디자인 도안도 기념일도 모두 허상에 불과했다.송우주의 모습은 더욱 그녀를 역겨움으로 몰아넣었다.유하늘은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눈빛은 차갑게 얼어붙었고 증오가 서려 있었다.“아람아, 여긴 어떻게 온 거야? 오지 말라고 했잖아.”송여준은 즉시 송우주를 끌어안고 고개를 돌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유하늘을 바라봤다.그는 낮은 목소리로 변명하듯 말했다.“아람이가 너와 같은 옷을 입고 올 줄은 몰랐어...”하지만 말을 끝내기도 전에 유하늘이 차갑게 그의 말을 끊어 버렸다.“권아람 씨, 언제부터 송우주의 엄마가 된 건가요?”“그런 거 아니에요, 저는 그저 우주의 양어머니예요.”권아람은 쑥스러운 듯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우주가 저를 양어머니로 받아줬어요. 아직 모르셨겠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요. 오늘은 하늘 씨가 주인공이잖아요. 전 두 분을 축하해주러 온 거예요.”그녀는 붉은 드레스를 살짝 여미며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태도는 안주인답게 당당했다.“이렇게 옷이 똑같을 줄이야. 역시 둘 다 우주의 엄마라 그런가 봐요.”권아람은 윙크하며 눈부신 미소를 지었다. 겉으로는 자리를 빼앗을 뜻이 없어 보였지만 유하늘은 그녀의 눈빛 속에서 뚜렷한 도발을 읽었다.송우주가 다른 여자를 양어머니라 받아들였는데 자신은 전혀 알지 못했고 송여준조차 말해주지 않았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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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화

곧바로 드레스를 보내달라고 전화했던 가게에 송정희도 자주 드나들었다는 기억이 떠올랐다.어쩐지 권아람이 자신과 거의 흡사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이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그녀를 함정에 빠뜨려 곤란하게 하고 밖에서는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게 하려는 계략이 분명했다.그렇다면 송여준은 이 판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일까?“너, 너 왜 그렇게 쳐다보는 거야? 묻는 말에 대답해! 파티가 끝난 건 아니지?”송정희는 외투를 움켜쥐며 벌떡 일어나 짜증을 쏟아냈다.유하늘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끝나지 않았어요. 송 여사님이 그렇게 바라던 조카며느리가 지금 아래층에서 손님들을 맞고 있으니까요. 오늘부터 권아람 씨는 송우주의 엄마이자 송씨 가문의 안주인, 그리고 송여준의 아내가 될 거예요. 그거면 만족하시겠어요?”“너...”송정희는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한 채 그녀 뒤편에 서 있는 남자를 바라봤다.송여준이 방문 앞에 서서 어두운 표정으로 주먹을 움켜쥔 채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유하늘은 그를 힐끗 보더니 곧 시선을 거두며 담담히 말했다.“나가세요.”송정희는 눈빛을 번뜩이며 고개를 숙여 빠르게 지나갔다. 그녀는 송여준의 옆을 스칠 때 일부러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비아냥거렸다.“네가 얼마나 엉망인 여자를 데려왔는지 알겠지? 어른도 공경할 줄 모르고 품행도 방정맞고.”콧방귀를 뀌며 비아냥을 남기고 떠나갔다.문이 닫히자 방 안은 고요해졌다. 유하늘은 송여준에게 등을 돌린 채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이게 여준 씨가 준비한 깜짝선물이야?”송여준은 급히 부인했다.“아니야. 아람이가 올 줄은 전혀 몰랐어. 오지 말라고 분명히 말했는데... 아람이가 우주와 가깝게 지내는 모습을 보고 혹시라도 네가 상처받을까 봐 걱정했어.”“하지만 결국 왔잖아.”유하늘은 담담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그는 당황한 채로 변명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그녀는 그가 건넸던 웨딩드레스 도안을 떠올리며 잠시 그의 진심을 믿고 싶었지만 그것 역시 착각이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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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화

“하늘아, 왜 그래? 화 안 난 거 맞지?”송여준은 유하늘의 얼굴에서 어떤 표정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뚫어지게 바라봤다.그는 유하늘이 크게 화를 내거나 슬퍼하며 눈물을 보일 거라 생각했다.하지만 그녀는 아무런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마치 화도 내지 못하는 꼭두각시 인형처럼 웃고 있었고 그 웃음은 결코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었다.유하늘은 송여준을 밀어내며 나직이 말했다.“당연히 화 안 났지. 됐으니까 빨리 내려가서 손님들을 돌봐. 나는 좀 피곤해서 잠시 자고 싶어.”“하지만...”송여준은 다시 해명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판단했다.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러면 기다려줘. 파티가 끝나면 위층으로 올라와서 제대로 설명할게. 오늘 밤 너에게 할 말이 많으니까 꼭 기다려야 해.”유하늘은 웃었다.역시 송여준은 오늘 밤 모든 것을 털어놓을 생각이었다.그녀는 송여준이 나가는 모습을 지켜봤다.문이 닫히자, 유하늘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그녀는 화려한 드레스를 벗고 가장 눈에 띄지 않는 검은색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삽을 들고 조용히 아래층으로 내려갔다.홀에는 손님들이 모여 있었고 그 작은 그림자가 사라졌다는 것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유하늘은 뒤뜰로 나가 사방에 널린 장미꽃을 발로 차며 은행나무 아래로 향했다. 그녀는 삽으로 땅을 파기 시작했고 곧 타임캡슐이 드러났다.유하늘은 그것을 꺼내 힘껏 돌려 열었다. 그 안에는 며칠 전 넣어둔 친권 포기서가 들어 있었다.그녀는 서류를 꺼내 이별 편지와 함께 위층으로 올라가 송여준의 서재로 들어갔다. 그리고 서랍 속에 그것을 넣어두었다.모든 절차를 마친 유하늘은 조용히 몸을 돌려 떠났다.홀은 여전히 떠들썩했다.사람들은 쟁반에 담긴 음식을 먹으며 웃고 있었고 아는 이와 마주칠 때마다 환담을 나누었다.송여준은 멍한 얼굴로 잔을 부딪치고 있었고 권아람은 송우주를 데리고 송정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집 안은 불빛으로 환히 밝혀져 있었고 사람들은 여전히 그녀와 송여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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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화

그녀는 이 끔찍한 배신을 홀로 감당한 지 너무 오래되었고 오빠의 목소리만 들어도 무의식적으로 의지하고 싶어져 나약한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하늘아, 울어? 거기서 억울한 일이라도 당한 거야?”유시훈의 진지하고 안타까운 목소리가 이어졌다.“지금 당장 지성이한테 표 예매하라고 해야겠다. 내가 직접 데리러 갈게.”“괜찮아, 오빠. 그냥 너무 보고 싶어서 그런 거야.”유하늘은 눈물을 닦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속마음을 토해냈다.“오빠, 이제 이 세상에서 내가 의지할 사람은 오빠밖에 없으니까 몸조심해야 해. 곧 만나.”더 이상 말을 이어갔다가는 완전히 무너질 것 같아 그녀는 곧바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송여준의 전화번호를 차단했다....같은 시각, 송씨 가문.파티가 끝나기 전에 송여준은 은근히 손님들을 하나둘 배웅하기 시작했다.사람들이 모두 떠나자 텅 빈 별장에는 차가운 기운만이 맴돌았다.송우주는 입을 삐죽 내밀며 아버지를 뒤따랐다.“아빠, 왜 이렇게 빨리 사람들을 보냈어? 정우 형이랑 실컷 놀지도 못했는데.”송여준은 천천히 몸을 돌리며 차가운 눈빛으로 아들을 바라봤다. 그 눈빛은 예전과 달랐다.멀리서 권아람과 송정희 서로 눈을 마주치며 신호를 주고받았다.“여준 씨...”“짝!”송정희 먼저 기침을 하며 입을 열려는 순간, 송여준의 손바닥이 송우주의 뺨을 때렸다.힘을 조금 빼고 내리쳤지만 어린 송우주는 버티지 못하고 비틀거리다 바닥에 주저앉았다.금세 붉게 부어오른 뺨을 감싼 채 멍하니 앉아 울음조차 터뜨리지 못했다.권아람은 굳은 얼굴로 재빨리 달려가 아이를 끌어안았다.“여준 씨, 지금 뭐 하는 거야? 어떻게 이렇게 심하게 손을 댈 수가 있어? 아직 어린아이잖아!”“어린아이라고?”송여준은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차갑게 노려봤다.“어린아이라고 잘못을 저질러도 혼나면 안 돼? 어른 허락도 없이 다른 사람을 양어머니로 받아들여도 괜찮은 거야?”‘다른 사람’이라는 말에 권아람의 눈시울이 붉어졌다.그녀는 쓴웃음을 지으며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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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화

송여준은 굳은 얼굴로 위층으로 올라갔다.아래층에서 송정희는 입을 삐죽 내밀며 무심하게 말했다.“유하늘은 원래 진짜 송씨 가문의 안주인도 아니잖아. 따지고 보면 너랑 송우주가 같은 가족인데, 송우주가 유하늘 허락 없이 너를 엄마라고 부르는 게 뭐가 어때서?”권아람은 득의양양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일부러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휴, 어쩔 수 없죠. 우주는 유하늘 씨가 열 달 동안 품고 낳은 아이니까 화내고 속상해하는 것도 당연하죠.”송정희는 언성을 높였다.“유하늘은 무슨 자격으로 화를 내는 거야? 아이 낳은 게 다야? 아이가 누구를 뭐라고 부르든 그건 아이의 자유라고. 친엄마라고 해도 간섭할 수는 없지.”그 순간, 송여준이 굳은 얼굴로 방에서 나왔다. 그의 눈에는 이전과는 다른 당황스러운 기색이 가득했다.“없어.”“뭐라고?”송정희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되물었다.송여준은 주먹을 꽉 쥔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하늘이가 방에 없어. 언제 떠났는지도 모르겠어.”엄청난 공포감이 몰려왔다.그는 즉시 화장실, 뒤뜰, 집 안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졌지만 유하늘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그러던 중, 뒤뜰 은행나무 아래가 파헤쳐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송여준은 다가가 흙더미를 살펴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우주야, 여기가 네가 엄마랑 타임캡슐 묻었던 곳 맞지?”송우주는 다가와 확인하더니 얼굴이 순간 굳었다.“타임캡슐이 없어졌어요. 엄마가 왜 가져가신 거지?”송여준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며 걸음을 옮겼다.권아람이 멈칫하며 물었다.“어디 가는 거야?”“하늘이를 찾기 전까지는 누구도 여기서 나갈 수 없어. 두 사람 모두 하늘이에게 사과해야 해.”송여준은 단호하게 말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자리를 떠났다. 그의 뒷모습이 멀어지는 것을 보며 권아람과 송정희는 서로 눈을 마주쳤다.송정희는 불평을 늘어놓았다.“정말 여기서 기다려야 하는 거야? 이렇게 늦은 밤에 찾을 수 있겠어?”“고모할머니, 아람 엄마, 저랑 같이 선물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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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화

임세빈은 잠시 침묵하다 결국 휴대폰을 받아 들었다.“찾을 필요 없어요. 하늘 씨는 다시는 송여준 씨를 만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혹시라도 제가 괴롭힘을 당할까 봐 어디로 가는지도 말하지 않았어요. 아무리 몰아붙여도 전 모릅니다.”그 말에 송여준은 얼굴빛이 굳어지고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왜요? 저를 왜 만나지 않으려는지 이유는 말 안 했습니까?”임세빈은 고개를 들어 조롱 섞인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정말 몰라서 묻는 겁니까,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 겁니까? 송여준 씨는 줄곧 아내를 의심했고 아이가 하늘 씨를 도발하도록 내버려두었죠. 다른 여자와 가까이 지내면서 하늘 씨를 방치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사람이 사라지자 태연하게 이유를 묻는다니, 참 이기적이고 차가운 사람이네요.”송여준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호흡은 점점 힘들어졌다.그의 얼굴에는 무거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평소의 의기양양함은 온데간데없었다.“임세빈 씨 말처럼만 일이 진행된 건 아니에요. 만약 하늘이가 그렇게 생각했다면 그건 오해입니다. 전부 설명할 수 있어요. 적어도 어떻게 해야 연락할 수 있는지만 알려주세요.”병원으로 오는 길 내내 그는 유하늘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예상대로 두 개의 번호 모두 차단되어 있었다.설명하고 싶어도 직접 만나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었다.게다가 유하늘이 홧김에 영영 자신을 상대하지 않으려 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그의 가슴을 짓눌렀다.임세빈은 미간을 짚으며 냉정하게 말했다.“정말 몰라요. 돌아가세요. 제 업무를 방해하시면 경비를 부를 수밖에 없습니다.”그는 몸을 돌려 탁자에 앉아 손에 들었던 자료를 다시 펼쳤다.송여준은 주먹을 꽉 쥔 채 결국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조용한 복도를 걸어 나오면서 그의 눈빛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그동안의 일들이 하나하나 뇌리를 스쳤다.질투심에 유하늘과 임세빈의 관계를 의심했고 아이와 권아람이 가까워지는 것을 강하게 막지도 않았다.하지만 그 정도 일 때문에 유하늘이 완전히 사라지고 자신을 만나지 않으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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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화

[하늘아, 어디 있는 거야? 제발 한 번만 만나 줘.][내가 아이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어. 그동안 네 건강과 감정을 소홀히 한 것도 사실이야. 하지만 나를 믿어줘. 권아람과 우주가 오늘 저녁에 벌인 일은 나는 전혀 알지 못했어.][우리 이야기 좀 하자. 네가 아무리 날 밀어내도 나는 너에게만 달려갈 거야. 사랑해.]송여준이 남긴 메시지를 본 유하늘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작은 파동조차 일지 않았다.그녀가 무너지고 있을 때, 송여준은 권아람과 함께 웃으며 대화를 나눴다.그녀를 지긋지긋하다며 내치더니 이제 와서 몇 마디 중요하지도 않은 말로 감동시켜 불러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유하늘은 코웃음을 치며 메시지를 삭제했다.“임 선생님, 여준 씨에게 괴롭힘당하지 않게 조심해 주세요. 그리고 저를 보러 오는 횟수도 줄여 주셨으면 해요.”임세빈의 눈빛은 복잡했다. 그녀가 안쓰러웠지만 동시에 유하늘이 주관이 뚜렷한 사람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그녀는 차라리 병실에서 묵묵히 고통을 견뎌낼지언정 결코 나약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어쩌면 세상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진심으로 아파해줄 사람, 오빠가 곁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임세빈은 잠시 망설이다가 조용히 말했다.“만약 곁에 있어 줄 사람이 필요하다면 제가 언제든 곁에 있어 드릴게요.”유하늘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가 나간 뒤, 그녀는 누워서 TV에서 흘러나오는 드라마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마침 드라마 속에서는 암에 걸린 여자가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하며 울부짖고 있었다.남편과 아이는 통곡하며 무슨 일이 있어도 여자를 떠나지 않겠다며 매달렸다.유하늘은 그 장면을 들으며 마음이 씁쓸해졌다.연출된 부부의 정과 모자간의 정은 그토록 감동적으로 보였고 울음소리마저 진심 같았다.하지만 자신이 불치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송우주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을지도 몰랐다.그녀는 속으로 쓴웃음을 지으며 몸의 불편함에 지쳐 몽롱한 잠에 빠져들었다.고요한 병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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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화

그는 밤늦도록 집에 들어가지 않고 차를 몰며 길거리를 배회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혹시 나를 찾아다니다가 그런 사고를 당한 건 아닐까?’유하늘은 갈등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이성적으로는 송여준이 어떻게 되든 자신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법적인 증서 한 장 없는 사이니 부부라고도 할 수 없다고 스스로에게 되뇌었다.그러나 감정은 끝내 이성을 거부하며 저항했다.송여준이 교통사고를 당한 이유가 자신 때문이라는 생각을 억누를 수 없었고 마음은 점점 흔들렸다.그때 병실 문이 두드려졌다.임세빈이 들어오며 입을 열었다.“송여준 씨가...”그는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병상에 앉아 창백한 얼굴을 한 유하늘을 보고 곧장 물었다.“이미 알고 있었어요?”“알고 있어요.”유하늘은 몸에 걸친 이불을 꽉 움켜쥐며 눈에 당황스러움이 스쳐 갔다.멍하니 임세빈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저... 여준 씨 보러 가야겠어요.”임세빈은 한숨을 내쉬었다.“보도에 따르면 거의 가망이 없다고 해요. 지금 송씨 가문 개인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는데 지금 가지 않으면 마지막 얼굴조차 보지 못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지금 몸으로 가서 버틸 수 있겠어요?”유하늘의 온몸은 이미 떨리고 있었다.그녀는 7년 동안 사랑했던 남자를 마음에서 완전히 몰아내기 위해 온 힘을 다해왔다.그러나 청천벽력 같은 소식은 다시 가슴 깊숙이 균열을 냈다.그를 사랑하든 미워하든 결국 그들 사이에는 아이가 있었다.마지막 순간에 가지 않는다면 평생 후회하게 될 것이다.유하늘은 떨리는 손으로 외투를 움켜쥐고 침대에서 내려와 신발을 신은 뒤 곧장 밖으로 향했다.임세빈은 그녀가 정신을 놓은 듯한 모습에 불안함을 느끼며 서둘러 뒤를 따랐다.두 사람은 함께 병원을 나섰고 임세빈은 차를 몰아 유하늘을 송씨 가문의 개인 병원으로 데려갔다.가는 길 내내 유하늘은 무표정하게 창밖만 바라보았다.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고 임세빈도 그저 곁눈질로 그녀를 살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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