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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별이 되어 빛나리: Chapter 381 - Chapter 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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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1화

송하나는 이 식당 가격이 만만치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이 정도 식사라면 최소 칠팔십만 원은 족히 깨질 터였다.임효민의 집안 사정은 넉넉지 않았다.어머니와 함께 회사 근처의 작고 허름한 빌라에 세 들어 살았고, 어머니는 몸이 편찮으셔서 매달 약값까지 나가니 살림이 빠듯할 수밖에 없었다.송하나는 그녀가 이 식사 때문에 큰 부담을 느끼는 건 원치 않았고, 그녀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하여 자신이 대부분 비용을 계산해 버리고 나머지 금액은 점원에게 부탁해 ‘식당 이벤트’라는 핑계를 대서 임효민에게 꽤 후한 할인을 적용해 주라고 귀띔해 주었다.깔끔하게 뒤처리를 마친 송하나는 그제야 안심하고 화장실로 향했다.내내 그녀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던 차정원은 그녀가 자리를 비우자 자연스럽게 몸을 일으키며 핑계를 대고 잠시 자리를 떴다.송하나가 화장실에서 막 나오려는데 복도 끝에 낯익은 실루엣이 보였다.차정원은 한 손으로 벽을 짚은 채 서 있었다. 평소 꼿꼿하던 자세와 달리 지금은 조금 느슨해져 있었고 넥타이도 살짝 비뚤어진 상태였다.은은한 노란 조명이 그의 뚜렷한 옆모습에 드리우자 왠지 모를 나른함과 취기가 엿보였다.“차 변호사님?”송하나는 의외라는 듯 서둘러 그에게 다가갔다.“여기서 뭐 하세요?”그 소리에 차정원이 천천히 고개를 들고 송하나에게 시선이 꽂혔다.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머금고는 술기운이 섞여 평소보다 한층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팀원들하고 저녁 먹고 나와서 바람도 쐴 겸... 술 좀 깨려고.”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발을 헛디뎠는지 몸이 살짝 기울었다.송하나가 무의식중에 그의 팔을 붙잡았다.“변호사님, 괜찮으세요?”“응, 괜찮아.”차정원은 그녀의 팔을 짚고 몸을 가누며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목소리에는 왠지 모를 피로감이 묻어났다.“아까 마신 술들이 좀 독했던 모양이야.”“변호사님 동료들 어느 방에 있어요? 제가 부축해 드릴게요.”차정원이 씩 웃으며 장난기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봤다.“날 부축해서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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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2화

송하나는 서서히 차에 시동을 걸었다.고요한 차 안, 창밖으로 흐릿하게 스쳐 가는 도시의 불빛만이 유일한 소음이었다.차정원은 조수석에 몸을 기댄 채 눈을 지그시 감았다. 겉으로는 쉬는 듯 보였지만 운전석의 그녀를 자꾸 곁눈질하고 있었다.사뭇 진지한 모습으로 운전하는 그녀는 가로등 불빛이 교차하는 찰나의 순간마다 옆모습이 유난히 부드러워 보였다.두 눈을 깜빡이면 얇고 긴 속눈썹이 가늘게 떨리는데 마치 잠시 꽃잎에 머무르는 나비의 날개 같았다.그녀는 참으로 아름다웠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미모를 지녔지만, 그 아름다움에는 전혀 날카로운 구석이 없었다.저도 모르게 가까이 다가가고 싶게 만드는, 조용하고 은근하게 스며들다가 점점 더 깊게 빠져버리는 아름다움이었다.차정원은 그녀의 얼굴을 찬찬히 훑다가 가슴 한구석이 몽글몽글해지는 기분이 들었다.차가 마침내 고급 주택가 안으로 들어섰다.시동을 끈 후, 송하나는 나직하게 속삭였다.“다 왔어요, 변호사님.”차정원이 낮게 대답하며 안전벨트를 풀려 손을 뻗었지만, 동작이 영 굼떴다.몇 번이나 버클을 눌러댔는데도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제가 해드릴게요.”송하나는 그 모습을 보더니 본능적으로 몸을 기울여 그를 도우려 했다.순간, 둘 사이의 거리가 바짝 가까워졌다.그녀의 정수리 머리카락이 남자의 턱을 스칠 것만 같았다.여자의 몸에서 은은한 향기가 났고 남자는 옅은 술 냄새와 본래 체취인 묵직한 우디 향이 뒤섞였다. 차 안의 비좁은 공간에서 둘의 향이 서로 어우러지니 말로 이루 표현할 수 없는 애틋한 기류가 감돌았다.차정원은 순간 숨 쉬는 것조차 조심스러워졌다.시선을 떨어트리자 그녀의 긴 속눈썹이 코앞에 머물렀다.살짝 떨리는 그 곡선은 마치 브러쉬처럼 그의 심장을 살랑살랑 간지럽혔다.찰칵 소리와 함께 안전벨트가 풀리고 송하나는 황급히 운전석으로 물러났다.“됐어요.”차정원은 눈가에 남아있던 아련함을 거두어들이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고마워.”그는 차 문을 열고 내렸지만 바로 떠나지 않았다.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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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3화

“이렇게 늦은 시간에 혼자 택시 타는 건 위험해. 아니면...”그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눈썹을 살짝 치켜세웠다.“오늘 밤에 우리 집 객실에서 자고 가는 건 어때?”송하나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어졌다.“그럴 수는 없죠.”외딴 남녀가 한집에 묵는다는 건 도저히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차정원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지자 송하나는 그제야 이 남자가 농담을 건네는 것임을 깨닫고 그를 힐긋 노려봤다.“내 차 몰고 가든지 그냥 여기서 자든지 알아서 선택해.”그의 목소리는 낮고 온화했다.송하나는 남자의 고집을 꺾을 수 없어 마지못해 차 키를 받아들었다.“그럼... 변호사님도 푹 쉬세요.”“응.”차정원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운전 조심하고 내일 아침에 차 가지러 갈게.”그녀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종적을 감추자 차정원의 눈가에 어린 취기도 순식간에 가셨다.그는 휴대폰을 꺼내 차량 위치 추적 화면을 띄웠다.지도 위에서 차량을 나타내는 작은 점이 안정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유심히 지켜보았고, 그녀가 무사히 집에 도착한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안심했다.그때 마침 휴대폰 화면이 다시 밝아지고 송하나의 메시지가 한 통 떴다.[차 변호사님, 저 집에 도착했어요.]제때 도착한 문자를 보며 차정원은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가볍게 화면을 두드리면서 곧장 그녀에게 답장했다.[우리 하나 착하네. 얼른 자.]‘응? 뭐지 이 다정한 말투는?’송하나는 그의 문자를 받고 가슴이 움찔거리며 왠지 모를 이상한 설렘을 느꼈다.현재 둘의 관계로는 엄연히 선을 넘는 말투였다.하지만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차설아와 동갑인 데다 절친한 사이니 차정원도 그저 동생처럼 대하는 거겠지.그제야 송하나는 마음속의 낯선 감정을 말끔히 지워냈다.다음 날, 햇살이 눈 부신 아침에 이제 막 외출했더니 차정원이 늠름한 자세로 집 앞에 서 있었다.“변호사님, 좋은 아침이에요.”송하나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그래, 좋은 아침.”차정원이 몸을 돌리고 적당히 미안함과 고마움이 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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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4화

송태리는 퇴원 후, 넋이 나간 사람처럼 종일 집안에 웅크리고 앉아 눈물로 얼굴을 적셨다.보신탕을 들고 들어온 김지영은 딸의 그런 모습을 보자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았다.그녀는 그릇을 침대 머리맡에 내려놓으며 딸아이를 위로했다.“태리야, 아이는 없으면 없는 거지 무엇보다 네 몸 추스르는 게 가장 중요해. 네가 지금 이 지경인데 우리가 어떻게 송하나랑 맞서 싸우겠니?”“김지영! 당장 내려와.”별안간 거실에서 송종현의 고함이 터져 나왔다.“아빠 부르신다.”김지영은 안색이 굳어지며 서둘러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술 냄새로 가득 찬 거실, 송종현은 잔뜩 취한 채 소파에 주저앉아 있었고 셔츠 깃에는 얼룩이 묻은 상태였다.“술 어디 있어? 당장 술 가져와.”회사가 부도난 이후로 그는 거의 술에 절어서 헤어나오지 못했다.조금이라도 거슬리는 일이 있으면 김지영에게 욕설을 퍼붓기 일쑤였다.사업 실패와 순탄치 못한 집안일까지 모든 죄를 그녀에게 돌렸다.김지영은 자신이 잘못한 부분이 있음을 알기에 감히 반박하지 못하고 그저 고개 숙여 순종할 뿐이었다.그때 문득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김지영이 문을 열자 이강우가 그들을 위해 고용한 변호사가 서 있었다. 이를 본 그녀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변호사는 곧바로 본론에 들어갔다.“송종현 씨, 김지영 씨, 지금 상황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상대 변호사 측에서 새로운 증거를 제출했고, 검찰이 기존 죄명으로 두 분께 공소를 제기했어요. 마음의 준비를 해두셔야 할 것 같습니다.”“뭐라고요?”김지영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분명 다 해결됐다고 했잖아요! 어떻게 이래...”술에 취해 있던 송종현마저 약간 정신이 들었다.그는 비틀거리며 앞으로 나서서 변호사의 팔을 붙잡았다.“강우가 그렇게 많은 인맥을 동원해서 해결한 일인데 혹시 무슨 착오가 있는 거 아닐까요?”변호사는 속절없이 한숨을 내쉬었다.“상대 변호사가 끈질기게 밀어붙여서 동물병원 관계자들이 끝내 이전 진술을 뒤집었습니다. 지금 상황은 매우 불리합니다.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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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5화

다만 비서는 공적인 태도로 그들에게 건의했다.“이 대표님도 이제 어쩔 수 없다고 하셨어요. 지금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건 변호사와 충분히 소통해서 최선의 결과를 끌어내는 것뿐입니다.”송씨 일가는 어쩔 수 없이 다시 변호사를 찾아가 대책을 논의했다.변호사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난처한 어조로 말했다.“상대측이 제출한 증거가 너무 확실해서 무죄를 받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현재로서는 방법이 하나뿐이에요. 둘 중 한 분이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는 겁니다. 그래야 나머지 한 분이라도 감형을 받거나 더 나아가 무사히 빠져나올 수가 있어요.”변호사의 말이 끝나자 거실에는 짙은 정적이 흘렀다.잠시 후, 김지영이 두 눈을 번쩍이며 송종현을 쳐다봤다.“여보, 태리는 지금 내 손길이 필요해요. 애가 이 지경이니 나 없으면 안 돼요. 그러니까... 당신이 모든 걸 덮어쓰는 게 어때요? 이 집안의 가장으로서 책임을 짊어지고 우리 모녀도 그동안 밖에서 인맥을 좀 동원해 볼게요...”“닥쳐, 젠장!”송종현은 속에 쌓였던 분노가 마침내 폭발했다.술병을 바닥에 세게 내던지자 유리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지금 나보고 너 대신 감옥 가라는 거야? 그럼 넌 밖에서 새파랗게 젊은 새끼랑 더 놀아나겠네? 꿈 깨 이년아! 우리 집안이 여기까지 온 건 다 너 때문이야. 이 재수 없는 년아. 감방에 가도 네가 가. 그 안에서 콩밥 먹으면서 깊이 반성하란 말이야.”송태리는 흉악한 몰골로 싸우는 부모님을 바라보며 절망감에 잠겼다.둘 중 누구도 감옥에 보내기 싫지만, 그녀는 더 이상 기댈 곳 하나 없었다.이강우는 마음을 굳게 닫고 그녀를 피했고 심지어 비서조차 건성으로 대할 뿐이었다.궁지에 몰린 송태리는 마지못해 홍경자를 찾아갔다.이씨 가문 본가.불당 안에는 향냄새가 은은하게 피어올랐다.홍경자가 불상 앞에 향을 세 개 꽂고 있을 때, 가정부가 소리 없이 다가와 나지막이 보고했다.“어르신, 송태리 씨가... 또 오셨습니다.”“뭐? 송태리가?”홍경자는 염주를 만지던 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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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6화

홍경자는 그녀를 잠시 쳐다보다가 입가에 싸늘한 냉소가 어렸다.“제법 효심은 있네?”돌연 고개를 홱 돌리고 가정부에게 나직이 명령했다.“당장 가서 강우 불러와.”송태리는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그날, 병원에서 불쾌하게 헤어진 이후로 그녀는 더 이상 이강우를 만나지 못했다.이 남자가 돌아오기만 한다면 어쩌면 마음이 약해져 상황이 반전될 여지가 생길지도 모른다.30분 후, 이씨 가문 본가의 대문이 열렸다.몸에 꼭 맞는 짙은 색 정장을 입고 들어선 이강우는 회사에서 급히 돌아온 모양이었다.“할머니, 무슨 일로 이렇게 급하게 부르셨어요?”무릎을 꿇고 있는 송태리를 본 순간, 그는 미간을 확 구겼다.“넌 또 왜 여기 있어?”“강우 씨!”송태리는 마치 구명줄이라도 잡은 듯 즉시 몸을 일으켜 그의 팔을 붙잡고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매달렸다.“제발 부탁드려요. 우리 엄마, 아빠 한 번만 구해주세요. 그분들 이렇게 감옥 가면 안 된단 말이에요.”이강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팔을 빼내고 차분하게 말했다.“일이 이렇게 된 이상 나도 어쩔 수 없어. 애초에 떠날 기회를 줬을 때 떠났어야지!”그의 싸늘한 눈빛에 송태리는 마음이 움찔거렸지만, 끝까지 포기할 수 없었다.“강우 씨, 이미 하늘나라로 간 우리 아기를 봐서라도 나 한 번만 도와줘요.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에요!”“아직도 감히 아기 얘기를 꺼내는 거냐?”별안간 홍경자가 쾅 소리를 내며 탁자를 내리쳤다.“네 배 속에 있던 아이가 정말 우리 가문의 씨가 맞는지는 스스로 잘 알 텐데?”송태리는 화들짝 놀랐지만 애써 침착한 척했다.“할머니!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세요. 당연히 강우 씨 아이죠. 지금 제가 유산했다고 함부로 몰아가시는 건가요?”“이년 끝까지 잡아떼는 것 좀 봐!”홍경자가 냉소를 터뜨리며 옆에 있던 가정부에게 말했다.“정인아, 그거 태리한테 보여줘.”이에 안정인이 친자 확인 보고서를 송태리 앞에 쾅 내던졌다.“똑똑히 보세요, 송태리 씨! 이건 어르신께서 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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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7화

안정인이 잠시 말을 멈추고 일부러 목소리에 힘을 주어 덧붙였다.“어르신께서 이럴 줄 알고 태리 씨가 유산했을 때 그 ‘더러운’ 태아를 보관해두셨습니다. 한 번 더 검사해서 결과를 보여드리죠! 더는 발뺌하지 못하게.”빼박 증거 앞에서 송태리는 깊은 절망에 빠져버렸다.마지막 한 줄기 기대와 환상마저 산산조각이 났다.그녀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마치 무덤에서 기어 나온 사람처럼 얼굴이 창백한 채 몸을 벌벌 떨었다.이 광경을 지켜본 이강우는 마침내 진실을 깨달았다.그녀가 그동안 아이를 이용해 자신을 협박했던 모든 순간들이 뇌리를 스쳤고 바보처럼 놀아났다는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남자의 안색이 소름 끼칠 정도로 짙어지고 숨 막힐 듯한 싸늘한 기운을 내뿜었다. 이강우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녀를 꿰뚫어 보듯이 빤히 쳐다봤다.“나랑 피 한 방울 안 섞인 잡종을 내 아이라 속이고 감히 협박을 해? 태리야, 넌 대체 뭐가 진짜야?”“강우 씨, 잘못했어요...”송태리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비참하게 기어가서 그의 바짓가랑이를 잡으려 했다.“강우 씨를 너무 사랑해서, 영영 강우 씨를 잃을까 봐 그런 거예요. 한 번만 용서해줘요, 네?”“뭐? 사랑?”이강우는 마치 더러운 것을 피하듯 벌컥 뒷걸음질 쳤다. 그러고는 싸늘한 야유가 섞인 말투로 그녀에게 쏘아붙였다.“네가 사랑한 건 이씨 가문 며느리라는 명분과 이 집안의 권력, 재부를 누리는 거겠지!”송씨 일가가 그 아이를 빌미로 결혼을 강요하고 명분을 따지려 했던 지난날들이 떠오르자 이강우는 속이 다 울렁거렸다.“아니에요, 강우 씨! 제발 내 말 좀 들어봐요...”“그만!”문득 홍경자가 울부짖는 그녀에게 날카롭게 외치고 양쪽에 선 가정부들에게 시선을 던졌다.“당장 이 계집애 끌어내! 오늘부로 우리 집 근처에는 얼씬도 못 하게 해!”가정부 두 명이 즉시 앞으로 나서 송태리의 팔을 붙잡고 가차 없이 밖으로 끌어냈다.송태리는 미친 듯이 몸부림치며 목이 터지라 외쳐댔다.“강우 씨 나한테 이러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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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8화

다음 날, 이원 그룹 대표이사실.비서가 가볍게 문을 두드린 후, 서류 봉투를 들고 들어왔다.“대표님, 저희가 대표님이 청림시에서 술에 취하셨던 그 날 밤의 CCTV 기록을 확보했는데 한 가지 의심스러운 점을 발견했습니다.”서류를 검토 중이던 이강우는 고개를 들고 눈빛이 한없이 날카로워졌다.“계속해.”“대표님께서 호텔에 묵으신 다음 날 새벽 5시 7분에 송태리 씨가 배달 앱으로 주문한 내역이 있습니다.”비서는 선명하게 인쇄된 주문 상세 내역을 책상 위에 조용히 내려놓았다.“배달 물품 품목에... 소용량의 의료용 혈액이 적혀 있었어요.”“혈액?”별안간 이강우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날 아침, 침대 시트 위에 선명하게 남아있던 붉은 자국이 머릿속에서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그때 송태리는 몹시 수줍어하면서 허둥지둥 이불로 그곳을 가렸고 이강우는 그녀의 첫 경험이라 생각하며 묘한 감정까지 느꼈었다.철저히 속은 이강우는 분노가 순식간에 치솟아 손끝이 차갑게 식었다.처음부터 치밀하게 계획된 속임수였다니!그는 비서가 건넨 USB를 받아 컴퓨터에 꽂았다.고화질 CCTV 화면이 소리 없이 재생되는 가운데 송태리가 문을 열고 배달을 받는 모습이 선명하게 포착되었다.그녀는 잠옷 차림에 제스처가 너무 자연스러웠다.가장 결정적인 것은 목이나 팔 등 노출된 부위에 어떠한 야릇한 흔적도 없다는 것이었다.적나라한 진실이 마침내 이강우의 눈앞에 펼쳐졌다.그날 밤, 그는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어서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침대 시트의 붉은 흔적이며 그녀 몸에 남아있던 야릇한 자국들까지 전부 이 여자의 자작극이었던 것이다.저렴한 의료용 혈액 한 병과 완벽한 연기로 이강우를 몇 달간의 황당한 쇼에 끌어들였다.이 사실이 머릿속에 명확히 각인되는 순간, 이강우의 가슴 속에는 거대한 분노가 끓어올랐지만, 그와 동시에 큰 짐을 내려놓은 듯한 안도감도 함께 밀려왔다.송태리와 관계를 가졌다는 사실은 꼭 마치 곰팡이 핀 케이크를 한입 베어 물고 삼키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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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9화

그의 담담한 어투에는 일말의 감정도 실려 있지 않았다.“알겠습니다.”비서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고 소리 없이 사무실을 빠져나갔다.현진 바이오테크.퇴근 후, 송하나가 막 회사 건물을 나섰는데 고개를 드는 순간, 익숙한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길가에 조용히 서 있었다.차 옆에 기대 선 차정원은 단정한 흰 셔츠와 정장 바지로 훤칠한 몸매를 한껏 돋보였고 저녁노을 속에서 유난히 눈에 띄었다.“차 변호사님?”송하나는 걸음을 멈추고 의아한 표정으로 그에게 다가갔다.“여긴 어떻게 오셨어요?”“가던 길에 들렀어.”차정원은 태연한 표정으로 조수석 문을 열어주었다.“사건에 진전이 있어. 가면서 얘기해.”송하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차에 몸을 실었다.안전벨트를 채우자마자 그녀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무슨 진전이 있는데요?”그녀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불안감이 남아있었다.이강우가 송씨 일가를 보호하기 위해 또다시 수단을 써서 사건에 개입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차정원은 능숙하게 핸들을 조작하며 전방을 주시했다.“법원의 공판 일정이 잡혔어. 이번 주 금요일 오전 9시에 정식으로 개정할 거야.”드디어 재판이 시작된다.송하나는 순간 가슴이 움찔거렸다.그녀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물었다.“이강우 쪽에서... 혹시 또 손을 써서 압력을 가하지는 않을까요?”그녀는 이강우의 수법을 잘 알고 있었다.지난번 결정적인 순간에 사건이 뒤집혔던 악몽이 아직도 그녀를 짓누르고 있으니.“걱정 마.”차정원은 빨간불에 부드럽게 차를 멈춘 후에야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안경 너머로 남자의 눈빛은 차분하면서도 단호했다.“사건이 이 단계까지 온 이상 증거 라인은 완벽하고 확고하게 구축되었으니 상대방은 더 이상 뒤집지 못할 거야.”그는 잠시 뜸을 들인 후, 담담하면서도 무게감 있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이번엔 반드시 내 손으로 그 사람들을 감옥에 보낼 거야.”이토록 단호하고 결연한 남자의 눈빛을 바라보자 송하나의 불안했던 마음도 비로소 기댈 곳을 찾은 듯 서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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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0화

마트, 신선식품 코너.송하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앞장서서 걸으며 눈 앞에 펼쳐진 상품 진열대를 둘러보았다.한편 차정원은 장바구니를 밀면서 그녀의 뒤를 바짝 따랐다.“변호사님.”그녀가 문득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며 물었다.“뭐 특별히 드시고 싶은 거 있으세요?”차정원이 입꼬리를 올리고 다정하게 대답했다.“난 뭉치처럼 안 까다로워. 가리는 거 없으니 네가 하는 건 뭐든 다 좋아.”그 대답에 송하나의 귓불이 살짝 달아올랐다.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진지하게 식재료를 고르기 시작했다.차정원은 조용히 그녀 곁을 지키다가 필요할 땐 재빨리 봉투를 건네주거나 높은 곳에 있는 물건을 잡으려 할 때면 소리 없이 손을 뻗어 내려주었다.재료를 고르느라 집중하는 그녀의 옆모습을 보고 있자니 남자의 눈가에 저도 모르게 부드러운 미소가 번졌다.이토록 평범한 일상의 온기가 차정원에겐 전례 없는 따스함과 충만함을 안겨주었다.송하나가 표고버섯 한 팩을 집어 들고 그의 의견을 물으려 고개를 돌리려는 찰나, 차정원은 멀지 않은 곳에서 아주 미세한 찰칵 소리를 예리하게 포착했다.그는 재빨리 몸을 돌려 뒤쪽 진열대를 훑었으나 상품을 고르는 몇몇 평범한 손님들 외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왜 그러세요?”그의 경계하는 기색을 눈치챈 송하나가 물었다.“아니야, 아무것도.”그는 시선을 거두고 다시 평소처럼 담담한 표정으로 돌아왔다.“아는 사람 본 것 같은데 내가 잘못 봤나 봐.”“그래요? 변호사님 표고버섯 드실래요?”“좋지.”송하나는 표고버섯을 조심스럽게 카트에 담고는 정육 코너로 향했다.이후 식재료를 고르는 내내 차정원의 눈가에 은근한 경계심이 서려 있었다.변호사라는 직업적 본능 때문에 그는 어떠한 잠재적 위협과 감시 속에서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했다.같은 시각, 심하 그룹 대표이사실.화상 회의를 마친 심성빈이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평소처럼 무심히 물었다.“걔 오늘 뭐 했어?”그는 송하나를 귀찮게 할까 봐 일부러 자주 나타나지 않았다.이런 식으로나마 멀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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