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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별이 되어 빛나리: Chapter 421 - Chapter 430

642 Chapters

제421화

이는 칼로 심장을 도려내는 것보다 천 배, 만 배 더 고통스러웠다.그 시각, 묘원 입구.검은색 롤스로이스 한 대가 부드럽게 멈춰 섰다.비서가 재빨리 차 문을 열자 안에서 이강우가 꽃다발을 들고 긴 다리를 내뻗으며 내려왔다.“밖에서 기다려.”그는 나직이 명령하고는 홀로 묘원을 향해 걸어갔다.오래전부터 죽은 형을 뵈러 오고 싶었지만, 도저히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몰랐다.그러다 오늘 형에게 참회하고 잘못을 빌러 왔다.형이 부탁하고 간 사람을 제대로 챙겨줄 것 같지 못해서 부디 양해를 구하고 싶었다.하지만 형의 묘비에 다다르기도 전에 멀리서 보이는 절망적인 그림자에 시선을 완전히 빼앗겼다.한 여자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길 잃은 새끼 짐승처럼 비명을 지르며 묘비를 필사적으로 닦아내고 있었다.가녀린 등이 격렬하게 떨렸고 당장이라도 거대한 슬픔에 갈기갈기 찢겨나갈 것만 같았다.가까이 다가가 보니 눈물과 기름때로 얼룩진 얼굴이, 좌절에 휩싸인 그 얼굴이 글쎄 송하나였다. 순간 이강우는 심장이 확 옥죄여오고 날카로운 통증이 밀려왔다. 그는 성큼성큼 다가가 송하나를 차가운 바닥에서 일으켜 세웠다. 억눌린 감정 때문에 목소리는 이상하리만큼 가라앉았다.“그만해! 이런다고 닦아지지 않아.”다만 송하나는 이미 통제력을 잃은 상태라 그가 누군지도 알아보지 못했다. 그저 본능적으로 힘껏 발버둥 치며 쉬어버린 목소리로 외쳤다.“놔! 이거 놓으란 말이야.”그녀는 다시 묘비 쪽으로 몸을 던졌고 손가락에 너무 힘을 준 나머지 피부가 벗겨지면서 핏방울이 새어 나와 붉은 페인트와 뒤섞였다.이강우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자해에 가까운 이 여자의 행동을 더는 지켜볼 수 없었다.뒤에서 그녀를 확 끌어안아 품에 가두고 한쪽 팔로 계속 발버둥 치는 여자의 몸을 단단히 고정했다. 다른 한 손으로는 재빨리 비서에게 전화를 걸어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명령했다.“당장 이리로 올라와!”“놔! 이거 놓으라고!”송하나는 그의 품에서 전력을 다해 몸을 비틀고 주먹질을 했지만 결국 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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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2화

경찰과 관리자들이 떠난 후, 비서가 전문적인 청소 도구를 들고 금세 돌아왔다.이강우의 도움으로 묘비는 점차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고마워요.”송하나가 낮은 목소리로 감사를 표했다.여전히 잠긴 목소리지만 전보다 훨씬 차분해졌다.의도적으로 거리를 두려는 그녀의 태도에 이강우는 마음이 씁쓸했다.그는 묘비 사진 속 온화하게 웃고 있는 부부를 바라보며 마음이 복잡해졌다.‘이분들이 바로 내 장인, 장모님이구나.’예전에 송하나는 그에게 몇 번이고 부모님을 뵈러 가자고 청했지만, 매번 단호하게 거절당했다.결혼한 지 몇 년이 지났어도 이강우는 그녀의 부모님 묘소가 어디 있는지 한 번도 묻지 않았고 찾아볼 생각조차 없었다.오늘에야 처음 이 묘비 앞에 섰는데 뜻밖에도 그녀 부모님의 묘소가 하준 형이 잠들어 있는 곳과 불과 몇 걸음 떨어진 거리였다.이강우는 지난 세월 동안 어떻게 그 사실을 외면했던 걸까?말로 이루 설명할 수 없는 측은함이 밀려왔다.송하나의 가녀린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별안간 자신이 과거 그녀에게 너무나 냉정했음을 깨달았다.한편 송하나는 그의 감정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땅에 떨어진 꽃다발을 보았는데 어느새 밟혀서 엉망이 되었다.송하나의 눈가에 순간 서운함이 스쳤다.이강우도 그녀의 시선을 따라 땅에 떨어진 흰 국화와 해바라기를 보았는데 그 꽃들이 왠지 낯설지가 않았다.‘전에 형의 묘비 앞에서도 똑같은 해바라기를 본 것 같은데...’이강우가 앞에 버젓이 있으니 부모님께 하고 싶었던 말들이 문득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송하나는 심호흡을 하고 묘비를 향해 깊이 허리를 숙여 절을 했다. 얇은 등줄기는 꿋꿋한 직선을 이루었다.“아빠, 엄마, 심려 끼쳐서 죄송해요.”그녀의 목소리는 바람에 흩날리듯 작게 울렸다.“다음에 꼭 다시 올게요. 누가 그랬든 엄마 아빠를 괴롭힌 사람은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할 겁니다.”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송하나의 시선이 이하준의 묘역 방향을 재빠르게 훑었다.그녀는 곧장 시선을 거두고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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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3화

“하나 천천히 따라가, 놓치지 말고!”검은색 롤스로이스는 어느덧 ‘침묵의 수호자’가 되어 먼발치에서부터 가장 느린 속도로 그녀를 따라갔다.그녀를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거리를 유지했다.늦가을, 차갑고 서늘한 바람이 그녀의 얇은 옷자락 속으로 스며들었다.송하나는 아주 빨리 걸었다. 이렇게 하면 육체적인 피로로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감정들을 둔감하게 만들 수 있을까?부모님의 죽음, 묘비의 모독, 과거의 상처들까지...모든 것들이 양쪽 어깨를 짓눌러서 숨이 턱턱 막히고 허리를 펼 수가 없었다.약 1킬로미터쯤 걸었을까.오르막길 구간에서 그녀의 발걸음이 갑자기 불안정하게 휘청거렸다.연 며칠 지쳐버린 마음 상태, 방금 겪은 엄청난 충격, 그리고 지금 또 성급한 걸음으로 체력을 고갈하고 있으니 마침내 몸의 한계에 다다랐다.차 안의 이강우는 그녀가 몸을 마구 휘청거리는 모습을 본 순간 가슴이 확 조여왔다.충격에 휩싸인 그의 눈빛 속에서 송하나는 몸이 축 늘어지며 바닥에 쓰러졌다. 마치 불어오는 바람에 갑자기 꺾여서 떨어진 나뭇잎처럼...“하나야!”이강우는 거의 몸으로 차 문을 들이받듯이 뛰쳐나갔다.그녀가 땅에 쓰러지기 직전, 남자는 팔에 힘을 바짝 주며 축 늘어진 그녀의 몸을 낚아채서 품에 안았다.그녀의 몸에 손이 닿은 순간, 이건 비정상적으로 뜨거웠다.송하나가 고열에 시달리다니!“하나야!”이강우는 다시 그녀의 뺨을 가볍게 두드렸는데 열이 펄펄 끓고 있었다.두 눈은 질끈 감고 창백한 얼굴에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유독 두 뺨만이 열에 시달려 홍조를 띠었다.이강우는 그 순간 모든 이성과 감정이 가장 원초적인 공포와 비통함으로 대체되었다.“당장 병원으로 출발해!”그는 송하나를 번쩍 안아 들고 극도로 조심스러우면서도 신속한 동작으로 차 안에 들어갔다.기사에게 명령하는 말투에서 은근한 긴장감이 묻어났다.이강우는 그녀를 품에 꼭 끌어안고 고열로 인해 미세하게 떨리는 그녀의 몸에 자신의 체온을 전달하려 했다.품에 안긴 송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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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4화

‘아니야, 이럴 리가 없어. 분명 내가 잘못 들은 거야!’송태리는 주먹을 바싹 쥐었고 손톱이 손바닥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 고통으로라도 지금 이 황당무계한 악몽에서 자신을 깨우고 싶었다.넋이 나간 목각 인형처럼 살짝 열린 방문 앞으로 한 걸음씩 딱딱하게 걸어갔다.그 틈새로 펼쳐진 광경은 아마 송태리가 평생 잊지 못할 ‘명장면’이 될 것이다.아빠라는 인간이 글쎄 엄마의 침대에서 낯선 젊은 여자와 미친 듯이 뒹굴고 있었다.방 안에는 술 냄새와 저렴한 향수 냄새가 뒤섞여 너무 역겨운 나머지 질식해버릴 것만 같았다.쾅!송태리의 세상이 무너져내렸다. 완전히 무너져서 산산조각이 나버렸다.엄마는 감옥에서 고통받고 있는데 아빠라는 인간은 슬픈 내색은커녕 그새를 못 참고 술집녀를 집에 데려와 안방 침대를 뒹굴고 있다니.충격과 역겨움, 배신, 분노...수많은 감정들이 그녀의 가슴속에서 용암처럼 폭발하여 오장육부를 모조리 불태웠다.“으아악!”처절하다 못해 변조된 듯한 절규가 주체할 수 없이 목구멍을 찢으며 터져 나왔고 그 소리는 결국 방 안의 음탕한 소음을 단번에 끊어버렸다.침대 위의 두 남녀는 갑작스러운 소리에 움찔하며 황급히 이불을 끌어당겨 몸을 가렸다.송종현은 문 앞에 서 있는 송태리를 보더니 당황한 것도 잠시, 이내 분노로 얼굴이 붉어졌다.“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당장 꺼져!”그는 찔린 마음을 감추려는 듯 괜히 억세게 소리쳤다.송태리는 그런 아빠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분노와 절망감이 극에 달하니 목소리가 정처 없이 떨렸다.“아빠가 그러고도 인간이야? 감옥에 있는 엄마는 생각도 안 해? 여기 엄마 침대고 이 집도 엄마 거야! 대체 무슨 생각으로... 어떻게 감히 이딴 더러운 년을 집에 들여?”모욕을 당한 낯선 여자는 안색이 일그러지고 불만스럽다는 듯이 투덜댔다.“누구 보고 더러운 년이래...”“닥쳐 이년아! 당장 우리 집에서 꺼져!”송태리는 문 앞에 놓여 있던 장식용 꽃병을 집어 들고 맹렬하게 내던졌다.도자기 꽃병이 문틀에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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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5화

“쟤가 오빠 안 본다 해도 내가 있잖아. 나 오빠한테 아들 낳아줄 거야. 나중에 우리 아들이 커서 오빠한테 효도할걸?”“뭐? 아들?”그 말을 들은 송종현은 두 눈이 번쩍 뜨였다.뼛속부터 남아선호사상을 지녔던지라 대를 이을 아들을 갖는 것을 평생의 숙원으로 여겼다.하지만 김지영은 송태리를 낳은 후 몸이 안 좋아져 그의 소원을 이뤄주지 못했다.“진짜 내 아들을 낳아줄 거야?”“당연하지.”레나가 간드러지게 웃으며 그의 반응을 살폈다.“왜? 오빠는 싫어?”“그럴 리가! 너무 좋지. 사랑해, 애기야!”송종현은 흥분하여 그녀를 꽉 껴안았고 탁한 숨결이 그녀의 목덜미에 쏟아졌다.“자기야, 우리 지금 낳자!”“잠깐만.”레나가 손가락으로 냄새나는 그의 입을 막으며 조건을 내걸기 시작했다.“미리 말해두는데 오빠 무조건 우리 두 모자에게 명분을 줘야 해.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사생아라고 삿대질 당하는 꼴은 절대 못 보니까 반드시 호적에 올려.”“걱정 마.”‘아들’이라는 단어에 정신이 혼미해진 송종현은 지금 이 순간 무엇이든 다 들어줄 기세였다.“다 늙어빠진 마누라랑 당장 이혼하고 널 성대하게 맞이할 거야. 아들만 낳아준다면 호적이 아니라 내 목숨이라도 줄 수 있어!”“이제 좀 마음에 드네.”레나는 흡족한 듯 웃으며 더 적극적으로 다가갔다.안방에 또다시 역겨울 정도의 야릇한 기운이 감돌았다.그 시각, 송태리는 눈물범벅이 되어서 비틀거리며 송씨 가문 별장을 뛰쳐나왔다.늦가을의 찬 바람이 칼날처럼 옷깃 속으로 파고들어 저도 모르게 몸이 떨렸다.그녀는 차에 올라타 두 손으로 핸들을 꽉 잡고 목적지 없이 차를 몰았다.엄마는 감방에 있고 아빠는 바람이 났다.이 큰 도시에 그녀가 있을 만 한 곳이 단 한 군데도 없었다.절망 속에서 송태리는 문득 이강우가 전에 선물했던 별장이 떠올랐다.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차를 돌려 별장으로 몰고 갔다.30분 후, 차는 별장 문 앞에 멈췄다.하지만 지문으로 차가운 스마트 잠금장치를 눌렀지만 돌아온 것은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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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6화

송태리는 울화가 벌컥 치밀었다.예전에 병원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녀에게 아부를 떨었는데 이강우와 헤어졌다는 소문이 돌자 이런 하찮은 것들까지 감히 이따위 말투로 입을 나불거렸다.“알았어요. 오늘 바로 출근할게요.”그녀는 분노를 겨우 짓누르고 시큰둥한 얼굴로 전화를 끊었다.몇 번 심호흡하며 마음을 진정시킨 뒤, 백미러를 보며 공들여 화장을 고쳤다. 눈물의 흔적과 초라한 몰골을 전부 커버하고 나서야 차를 몰아 병원으로 향했다.병원 병실 안.소독약 냄새가 공기 중에 가득 찼다.송하나는 조용히 병상에 누워서 링거를 맞고 있었다. 투명한 액체가 혈관으로 한 방울씩 주입되었다.의사는 검진을 마치고 이강우 곁으로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보고했다.“이 대표님, 송하나 씨는 장기간의 극심한 긴장과 과도한 슬픔이 겹친 데다 감기까지 걸려서 급성 고열이 난 상태입니다. 반드시 절대적인 안정을 취해야 하고 더는 정서적인 자극을 받으면 안 됩니다. 그땐 정말 후유증까지 남길 수 있거든요.”“알았어요.”이강우는 손을 저으며 의료진을 내보냈다.병실 문이 조용히 닫히고 안에는 어느덧 둘만 남았다.그는 침대 옆 의자에 앉아 복잡한 눈빛으로 침대에 누운 송하나를 응시했다.아픈 와중에도 아름다운 외모를 자랑했지만, 안색이 창백하고 툭 치면 쓰러질 것처럼 연약해 보였다.얼마나 지났을까. 송하나의 눈가에서 천천히 눈물이 흘러내렸다.“아빠... 엄마...”그녀는 무의식중에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고 맑고 영롱한 눈물방울이 꼭 감은 눈가에서 하염없이 흘러내려 베개 위에 자그마한 짙은 자국을 남겼다.자신을 보호하려는 듯 몸을 작게 웅크려 있었는데 이는 극도로 불안해하는 자세였다.이강우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는 거의 본능적으로 몸을 기울여 따뜻한 손으로 그녀의 차가운 손가락을 감쌌다.“괜찮아. 무서워할 거 없어. 내가 여기 있잖아.”그는 낮은 목소리로 안심시키며 다른 손으론 송하나의 얼굴에 묻은 눈물을 부드럽게 닦아주었다.“어머님, 아버님도 분명 네가 잘 살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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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7화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대서 밖으로 튀어나올 지경이었다.이강우는 침을 꿀꺽 삼키며 그녀의 손을 놓칠세라 꽉 움켜쥐었다. 마치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을 손에 넣은 사람처럼.목소리는 흥분으로 인해 약간 갈라져 있었다.“괜찮아. 무서워하지 마. 나 어디도 안 가.”그는 몸을 숙여 그녀의 귓가에 대고 또렷하고 무거운 목소리로 맹세했다.“평생 네 옆에 있을게.”그 다짐을 듣고 나서야 송하나는 비로소 안심한 듯 깊은숨을 내쉬었다.짙은 속눈썹이 다시 천천히 내려앉았고 약효와 피로를 이기지 못해 또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이강우는 몸을 숙인 자세 그대로 그녀의 잠든 얼굴을 바라보았다.가슴 속에서 파도가 일었고 잃었던 것을 되찾은 기쁨이 온 마음을 가득 채워 구름 위에 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해 질 녘.창밖으로 스러지는 노을빛이 병실 바닥 위에 길고 희미한 그림자를 드리웠다.이강우는 소파에 앉아 이메일을 처리하고 있었다.그녀의 곁을 지키기 위해 오늘 하루 잡혀있던 업무는 모두 취소했고 가장 긴급한 일만 노트북으로 처리 중이었다.“음...”작은 신음이 병실의 정적을 깨뜨렸다.송하나가 비스듬히 눈을 뜨고 몸을 일으키려 애썼다.하지만 오랫동안 이어진 혼수상태와 허약함 때문에 간신히 몸을 일으키자마자 눈앞이 핑 돌아서 결국 힘없이 다시 베개에 머리를 기댔다.이강우는 인기척 소리에 즉시 노트북을 덮고 성큼성큼 그녀에게 다가갔다.“깼어?”그녀를 부축하려 자연스럽게 손을 뻗었지만, 남자의 목소리를 들은 송하나는 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찌푸렸다.특히 그의 얼굴을 똑똑히 확인하더니 본능적으로 손을 쳐냈다.“건드리지 마세요.”그녀는 묵묵히 침대 가장자리를 잡고 혼자 힘으로 일어섰다.천천히 몸을 세워 머리를 침대 머리에 기대니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다름 아닌 병실이었다.아득했던 의식이 돌아오면서 쓰러지기 직전의 장면들을 차츰 기억해냈다. 그리고 이강우 덕분에 병원에 오게 된 걸 깨달았다.“이 대표님, 병원에 데려다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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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8화

송하나는 그 틈을 타 그릇을 받아 들고는 말없이 죽을 절반이나 비웠다.그러고는 그릇을 탁 내려놓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이강우를 등진 채 누워서 침묵하는 모습이야말로 더 이상 머물지 말라는 최후통첩이나 다름없었다.일부러 거리를 두는 그녀의 태도에 이강우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뾰족하게 가시를 세운 지금의 그녀보다 어렴풋이 잠든 사이 그의 손을 잡고서 ‘보고 싶어’라고 읊조리던 그녀가 훨씬 더 사랑스러웠다.그때의 그녀는 적어도 자신의 감정에 솔직했으니까. 지금처럼 말과 행동이 다르진 않았으니까.같은 시각, 간호사실.몇몇 간호사들이 모여 낮은 목소리로 수군거리고 있었다.“다들 봤어요? VIP 병실 이 대표님이 글쎄 종일 옆을 지키고 있더라니까요. 방금 체온 재러 갔다가 대표님이 직접 그 여자한테 죽을 떠먹여 주는데 눈에서 꿀 떨어지는 거 있죠. 이 대표님 정말 제 여자한텐 너무 헌신적이지 않나요?”“네? 이 대표님 여친 송태리 선생님 아니었어요?”“에이, 진작 끝난 사이잖아요. 근데 웃긴 게 뭔지 알아요? 이 대표님 이번 여친도 성이 송 씨래요.”“끝났구나. 어쩐지 송 선생님 입원했을 때 이 대표님 한 번도 안 오시더라니...”“저 두 분 중에 누가 더 나을 것 같아요?”“말이라고! 당연히 지금 여친분이 훨씬 낫죠. 외모랑 분위기가 아예 급이 다르다니까요. 멀리서 한 번 봤는데도 기절할 뻔했어요. 이 대표님 저렇게 목매는 것도 당연한 거예요.”마침 그 옆을 지나가던 송태리는 간호사들의 대화를 고스란히 엿들었다.진료 차트를 쥔 손에 힘을 꽉 줬더니 손마디가 하얗게 질렸다.간호사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독 묻은 송곳처럼 그녀의 심장을 여지없이 찔렀다.자신이 송하나의 머리카락 한 올 가치도 안 된다는 사실에 멘탈이 와르르 무너졌다.‘송하나 그 천한 년이 뭐가 잘나서 사사건건 나를 짓밟는 거야? 강우 씨는 왜 주변 사람들까지 인정할 정도로 그년한테 다정한 거냐고!’송태리는 사악한 눈길로 VIP 병실 방향을 뚫어지게 노려보았다.그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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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9화

이강우는 눈치껏 더는 그녀를 방해하지 않고 소파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서 밀린 업무를 처리했다.약효가 작용한 덕분에 송하나는 금세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새벽녘.간호사들이 교대하는 틈을 타 송태리가 약제실로 휙 들어갔다.그녀는 고무장갑을 끼고 능숙하게 수액 주머니를 바꿔치기하고는 입가에 차갑고 음침한 미소가 걸렸다.“하나야, 네가 날 힘들게 했으니 죽는 것보다 더한 고통이 뭔지 톡톡히 보여줄게. 몸에 온통 발진이 돋고 호흡곤란이 와서 얼굴이 돼지처럼 부어올라도 강우 씨가 널 예뻐해 줄까? 크큭!”새벽 다섯 시. 송하나가 잠에서 깼다.창밖은 희뿌옇게 동이 트고 있었고 병실은 매우 조용했다.이강우는 소파에 밤새 앉아 있다가 이마를 짚은 채 잠들어버렸다.그녀는 가볍게 몸을 일으켰다.열은 내렸고 몸도 한결 가벼워졌으니 이 남자가 떠날 생각이 없다면 자신이 먼저 나가버리면 그만이다.송하나는 휴대폰과 겉옷을 챙겨 소리 없이 병원을 빠져나갔다.얼마 지나지 않아 이강우가 잠에서 깼다.눈을 뜨자마자 텅 빈 침대를 보더니 심장이 움찔거렸다.이제 막 그녀를 찾아 나서려 했는데 간호사가 수액을 놓으려고 병실 문을 열었다.문을 연 간호사는 이강우와 정면으로 마주쳤다.“대표님...”“하나 못 봤어요?”이강우가 차갑게 물었다.간호사는 그때야 침상에 송하나가 없는 것을 알아차리고 이강우의 날카로운 시선에 덜컥 겁을 먹었다.그녀는 벌벌 떨면서 겨우 말했다.“못... 못 봤는데요. 화장실 간 거 아닐까요?”어제도 고집스럽게 병실 화장실을 놔두고 밖의 화장실에 다녀왔으니 오늘도 그 가능성을 열어두었다.결국, 이강우는 다시 소파에 앉아 침착하게 기다리며 비서에게 전화해 아침을 준비하라고 했다.간호사들은 송하나가 없으니 먼저 다른 병실로 갔다.하지만 20분이 지나도 그녀는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이강우는 슬슬 초조해져서 간호사더러 화장실을 한번 확인해 보라고 했다.하지만 그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그는 침상으로 다가가 침대 협탁 위의 휴대폰이 사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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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0화

의사는 남아있는 수액 주머니를 조심스럽게 들어 냄새를 맡더니 순간 안색이 돌변했다.“이 약 이상해요! 당장 봉인해서 검사 의뢰해요.”마침 지나가던 이강우가 걸음을 멈추고 그들의 대화를 엿듣더니 눈빛이 서늘해지고 온몸에 섬뜩한 기운을 내뿜었다.그러니까 이 약은 원래 송하나 거라...누굴까? 누가 감히 그의 눈앞에서 송하나를 해치려 든 걸까?송하나가 몰래 도망가지 않았더라면 지금 병상에 누워 고통스럽게 경련하며 사경을 헤매고 있을 사람은 바로 그녀였을 것이다!뒤늦은 공포와 끓어오르는 분노가 뒤섞여 그를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이때 비서가 정성껏 준비한 아침 식사를 들고 황급히 달려왔다.“대표님, 아침 식사 준비됐습니다. 바로 올려드릴까요?”“아니. 이제 필요 없어.”이강우는 한없이 싸늘한 목소리로 대답했다.“믿을 만한 사람 시켜서 약에 대체 무슨 짓을 했는지 철저히 조사해.”단순한 의료 사고인지 아니면 누군가 고의로 송하나의 목숨을 노린 것인지 기필코 알아내야만 했다.분부를 마친 이강우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병원을 나섰다.비서는 즉시 알겠다고 대답한 뒤, 간호사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고서야 송하나가 몰래 병원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어쩐지 대표님의 안색이 안 좋더라니, 송하나 씨 안전이 걱정된 거였네.’이강우가 몇 번이고 전화를 걸어봤지만, 예외 없이 거절당했다.그는 차를 몰아 송하나의 별장으로 곧장 향했다.잠시 후, 그녀가 검은색 토트백을 들고 집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았다.방금 샤워를 마친 듯 집게 핀으로 대충 머리를 묶고 매끈한 목덜미를 드러내고 있었다.옷도 어느새 아이보리 니트와 검은색 바지로 갈아입어 여전히 마른 몸매에 깔끔한 분위기를 자아냈다.립스틱을 발라서인지 병원에 있을 때보다 혈색이 훨씬 좋아 보였다.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는 건지 걸음을 재촉하느라 멀리 주차된 익숙한 검은색 승용차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이강우도 그런 그녀를 방해하지 않고 조용히 차를 몰아 뒤를 따랐다.택시는 사업자등록센터 입구에 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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