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혼 후 전설이 된 여자: Chapter 91 - Chapter 100

100 Chapters

제91화

배다울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아무 문제 없는 것 같은데요? 대표님.”운전을 하던 황근우가 뒷좌석을 흘깃거리며 말했다.“도련님이 대표님에게 이렇게 뭘 요구한 적 거의 없잖아요. 한번 고려해 보세요. 속담에 그런 말도 있잖아요.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어려서 알아듣지 못한 배다울은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배기훈은 혀끝으로 볼 안쪽을 톡 건드리며 말했다.“아이 앞에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네 머리부터 한번 찍어 볼까? 넘어지는지 안 넘어지는지 두고 보자고.”말문이 막힌 황근우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아빠가 이 주제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을 느낀 배다울은 조용히 주머니에서 초콜릿을 꺼내 포장지를 벗겼다.먹어도 되냐고 막 물어보려는 찰나 배기훈이 그것을 낚아챘다.“너한테 당분 섭취 줄이라고 했잖아. 초콜릿 어디서 났어?”배다울은 솔직하게 대답했다.“시원 이모가 주신 거예요... 시원 이모도 당분을 줄이라고 하면서 한 조각만 줬어요.”노을빛처럼 반짝이던 복숭아 모양의 눈동자가 살짝 가늘어진 배기훈은 고개를 숙여 초콜릿을 입에 넣고는 그것을 통째로 삼켰다.“시원 이모가 준 거면 받을 수 있지만 다음부터는 다른 사람이 준 건 함부로 받지 마. 알겠지?”배다울은 고분고분 대답했다.“알겠어요. 아빠.”...학교에서 돌아온 강시원은 허리와 등이 너무 쑤시고 아파서 대충 샤워만 하고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그러다가 저녁 7시쯤 휴대폰 벨 소리에 깨어났다.“수연아... 무슨 일이야?”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강시원은 아픈 복부를 문질렀다.“십원, 너 찌질혁이랑 이혼했어? 아침에 이혼 증명서 받으러 갔다며?”분노 가득 찬 성수연의 목소리에 강시원은 지친 듯 머리를 짚었다.“아침에 갑자기 일이 생겨서 못 갔어...”“정말 찌질하기 짝이 없네! 그런 쓰레기 같은 남자랑 뭐 하러 더 붙어 있어? 빨리 이혼해 버려!”성수연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오늘 심지경이 나더러 병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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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화

살짝 놀란 강시원은 배기훈의 목소리에 귀가 정화된 것 같았다. 귓가에 아주 미세한 전류가 스르르 흐르는 듯한 감각이 들었다.예전에는 서정혁의 목소리가 이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 목소리라고 생각했다. 성우에 버금갈 정도로 약간의 거친 느낌과 함께 자연스러운 울림이 있었다.하지만 이 남자의 목소리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마치 겨울 눈이 처음 녹을 때 맑고 차가운 얼음 조각이 깊은 심연으로 떨어지며 산골짜기 사이로 은은하게 흩어지는 그런 공허하고 아름다운 울림 같았다.“강시원 씨, 듣고 계신가요?”따뜻하면서도 차분한 배기훈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강시원은 급히 침대에서 일어나며 말했다.“네, 들려요. 안녕하세요. 배기훈 씨.”“오늘, 제 아들과 함께 학부모 참여 수업 활동에서 1등을 했다는 말 들었어요. 아이가 너무 기뻐해요. 저도 그렇게 웃는 모습 오랜만이고요.”“저는 별로 한 게 없어요. 다울이가 똑똑한 거죠.”강시원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그런데... 제 전화번호는 어떻게 아셨나요?”남자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다울이 담임 선생님에게서요.”“아...”“강시원 씨, 아들한테서 들었어요. 가장 아끼는 장난감이 망가졌는데 강시원 씨가 가져가서 고치고 있다고요.”“네.”배기훈은 진지하게 말했다.“그 레이싱카 장난감은 제 아들에게만 중요한 게 아니라 저에게도 아주 중요한 물건입니다. 그건 다울이 엄마가 다울이에게 준 선물이거든요.”강시원은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그 장난감이 좀 낡긴 했지만 평소 관리를 잘 해왔다는 것도 단번에 알 수 있었다.아마 다울이는 엄마를 매우 사랑했을 것이고 배기훈 역시 그의 아내를 매우 사랑했을 것이다.이 세상에 행복한 세 식구, 서로를 깊이 사랑하는 부부는 아직도 많다. 그저 그녀만 이 세상의 벌을 받았는지 그들 가족에서 오히려 제삼자가 된 느낌이었다.“그 장난감 부품들 지금은 구할 수 없어요. 워낙 구조가 정밀해서 조금만 실수해도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어요.”배기훈의 목소리로는 아무런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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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화

“언니, 급한 일이야? 오빠 샤워 끝나면 전화하라고 할게.”강시원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차갑고 잔잔했다.지난 5년 동안 임지민이 노골적으로 은근히 도발하는 것에 너무 익숙했다.처음에는 미쳐버릴 듯이, 광기 어린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지만 지금은 무표정으로 아무런 감정 없이 들을 수 있었다.어젯밤 좁은 병원 침대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밤새도록 울렸을지도 모른다.평소엔 잠자리에도 까다로운 서정혁이 마음에 드는 여자를 위해서라면 어떻게든 참고 맞춰주나 보다.강시원은 낮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급해. 지금 들어가서 폰 넘겨줘.”“뭐... 뭐라고?”당황한 임지민의 모습에 강시원은 여유롭게 웃으며 말했다.“부끄러울 거 없잖아? 볼 거 안 볼 거 다 본 사이 아니야? 내가 허락했으니 들어가. 들어간 김에 같이 욕조에 몸도 담그고. 생각만 해도 자극적이겠네.”얼굴이 붉어진 임지민은 입술을 깨물었다.“나와 오빠는 그냥 서로 통하는 게 많은 거야. 언니가 말한 것처럼 그렇게 저질스럽지 않아.”강시원은 웃음을 터뜨렸다.“서로 통하는 게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크기는 분명 너랑 잘 맞을 것 같은데.”임지민은 화가 나서 말을 잇지 못했다.“급하다고 빨리 전해줘.”그 말을 끝으로 강시원은 전화를 끊었다. 더 이상 이야기를 이어가면 자신이 토할 것만 같았다.잠시 후 박해순을 돌보는 김영숙에게서 전화가 왔다.“사모님, 본가 어르신들이 오늘 저녁에 댁에 와서 식사하시라고 합니다. 어르신 혼자 계시기 외로우셔서 하룻밤 묵으시라고 하십니다.”씁쓸한 표정을 지은 강시원은 입술을 깨물었다.할머니가 그들만 불러 본가에 오라고 했다. 서도훈을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녀와 서정혁에게 둘만의 시간을 만들어 주려는 것이다.더 이상 그럴 필요는 없었지만 강시원은 박해순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 저녁에 일단 본가에 가서 박해순과 함께 식사를 한 뒤 바로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알겠습니다. 정혁 씨 쪽은 아주머니가 연락해 주세요.”...시간이 흘러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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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화

한편...강시원이 서정혁에게 전화를 걸고 있을 때 서정혁은 병원에서 서류를 검토하며 임지민과 저녁을 먹고 있었다.“오빠, 휴대폰이 계속 울리는데 중요한 전화 아니야?”임지민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안 받아도 돼? 정말 중요한 거 아니야?”고개를 숙인 서정혁은 화면에 떠 있는 ‘강시원’이라는 이름을 싸늘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괜찮아, 별거 아니야.”그러고는 휴대폰을 뒤집어 놓았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마음도 편할 테니까.어제, 서정혁은 서도훈의 학교 행사를 핑계로 이혼 수속하러 가정 법원에 가지 않았다.오늘 죽일 듯이 전화를 걸어댄다는 건 뻔하지 않은가? 이혼하자고 재촉하는 거겠지.서정혁은 절대 이혼은 하지 않겠다고 본인 태도를 분명하게 밝혔다. 하지만 강시원이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조르는 건 유재윤과 빨리 합법적으로 만나고 싶어서 아닌가?이게 바로 강시원이 선택한 비극적인 결혼이라는 걸 똑똑히 알게 하고 싶었다.‘간통이든 이혼이든 나는 돼도 너는 안 돼!’절대 강시원이 먼저 언급하게 할 수는 없었다.뭐든 그가 먼저해야 했다. 그들의 결혼에서 서정혁은 자신에게 주도권이 있다고 확신했다.‘강시원, 감히 함부로 나를 휘두르려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병원에 도착하자 박해순은 곧바로 응급실로 실려 갔다.입고 있던 옷이 흠뻑 젖은 강시원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검은 머리카락은 창백한 뺨에 달라붙어 있었고 온몸은 열이나 뜨거우면서도 추워서 덜덜 떨었다. 그야말로 서 있기조차 힘들 지경이었다.하지만 강시원은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두 손을 모아 입술에 대고 얼어붙을 듯한 손을 호호 불며 할머니가 위험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김영숙은 눈이 퉁퉁 부은 채 달려왔다.“사모님! 저 큰 사모님에게도 전화를 드렸어요. 큰도련님도 연락이 됐고 아가씨와 사위도 병원으로 오고 계세요. 벌써 병원 건물 근처에 도착했대요!”이 말을 들은 강시원은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곧 도착한다고 하니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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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화

임성호는 뻔뻔하게도 박연주와 사생아 딸 임지민을 데리고 조문을 왔다.엄마가 갓 떠나자마자 이 뻔뻔한 위선자는 바로 새로운 여자를 데리고 들어와 엄마의 환생 길마저 더럽히려 하고 있었다.강시원이 의지할 곳 없는 아이라는 걸 핑계로 끊임없이 괴롭혔고 강부안도 죽은 사람은 말을 못 한다는 점을 이용해 뭐든 뒤집어씌웠다.상복을 입고 자리에 선 강시원은 그들을 본 순간 눈에 핏발이 섰고 입술은 피가 날 정도로 깨물었다.그들 세 식구가 웃으며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던 강시원은 피범벅이 된 입술을 떨며 눈물을 머금고 낮은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그 생사를 갈라놓는 민요의 선율로...“지옥을 떠나 저승 관문을 나서니 길이 험난하네. 신이 저승에서 희망하노니, 그대가 더는 고통 받지 않기를. 이 세상을 다 둘러본 뒤 빠르게 환생하기를. 우선 왕의 궁전을 뵈러 가세, 고개를 들어 보니 저 멀리 나아교가 보이네.”딩동. 딩동.정신이 혼미한 가운데 끊임없이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깨어난 강시원은 털 담요를 두른 채 떨리는 몸으로 비틀거리며 현관으로 걸어갔다.“시원아? 시원아, 집에 있어? 나 재윤 선배야!”강시원은 반쯤 감긴 빨갛게 부은 눈으로 천천히 문을 열었다. 창백한 얼굴에 겨우 미소를 짓는 모습은 마치 부서지기 쉬운 유리구슬 같았다.“선배, 여긴... 어쩐 일이야...”“너랑 같이 밥 먹으려고 왔어. 그런데 열 통 넘게 전화했는데 안 받더라. 너무 걱정돼서 집에 온 거야. 왜 전화 안 받았어?”숨을 헐떡이는 유재윤은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아무것도 아니야. 나는...”그 순간 눈앞이 캄캄해진 강시원은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려 유재윤의 단단한 가슴팍으로 휘청거리며 쓰러졌다.“시원아! 괜찮아?”두 팔을 벌려 강시원의 떨리는 허리를 꽉 끌어안은 강시원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온몸이 너무 뜨거웠다.“너 열나는 거 아니야?”유재윤이 강시원의 몸을 계속 흔들었지만 강시원은 그의 품에 안긴 채 쓰러져 기절해 버렸다. 긴 속눈썹에 눈물방울이 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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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6화

‘유 대표님?’유재윤의 모습에 깜짝 놀라 숨이 멎을 뻔한 고나은은 조심스럽게 기둥 뒤로 몸을 숨기며 당당하게 서 있는 유재윤의 뒷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유 대표님이 산부인과 앞에서 왜 그렇게 초조하게 서 계신 걸까? 병원에 왜 온 거지? 남자 기능 쪽에 문제가 있으면 산부인과는 아닌데? 설마...!’무언가를 눈치챈 고나은은 가슴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자기가 아픈 것도 잊은 채 그 자리에 서서 자기가 마음에 두고 있는 남자를 대체 어느 여자가 건드렸는지를 지켜보기로 했다.그렇게 한 시간 가까이 다리가 저릴 정도로 오래 기다린 고나은은 마침내 창백하고 지친 얼굴의 강시원이 안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다.‘젠장! 역시 남편이 있는 여자가 총각까지 탐내는 거였어! 저질’강시원이 허약한 몸으로 휘청이자 유재윤은 즉시 양복 재킷을 벗어 그녀의 어깨에 걸쳐 주더니 긴 팔로 부드럽게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아주 세심하고 조심스럽게 자기 여자를 보호해 주는 듯한 모습이었다.평소에는 법률 사무소에서 무표정하고 엄격한 엘리트 리더의 모습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당장이라도 불이 붙을 것 같은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던 고나은은 강한 질투심에 얼굴까지 일그러졌고 너무 화가 나 이를 갈 정도였다.“유부녀 주제 바람을 피워? 사람 찾아 정신 좀 차리게 해야겠네!”그러고는 기둥 뒤에서 몸을 내밀어 사진 여러 장을 찍은 뒤 동영상도 찍어서 모두 임지민에게 보냈다.한편.박해순이 입원한 병원 지하 주차장에 차를 주차한 임지민은 카톡으로 온 사진을 한 장씩 넘기며 음흉한 얼굴로 멜로디를 흥얼거렸다.맑고 순수한 얼굴에 사악한 미소가 떠오르니 마치 어둠 속에서 차가운 혀를 날름거리는 뱀처럼 보였다.링거를 맞은 지 사흘째, 강시원의 몸은 그제야 조금 회복되었다. 유재윤이 곁에 있어 주겠다고 했지만 단호히 거절하고 혼자 택시를 타고 병원에 와서 주사를 맞았다.링거 바늘을 막 꽂은 후 털 스웨터를 잘 여민 뒤 잠시 잠을 자려고 했다.바로 그때 차가운 가죽 구두 소리가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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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화

강시원은 마음속에 의문이 일었지만 눈빛은 여전히 차갑고 담담했다.“처남댁, 서정 그룹에서 일한다고 들었는데 뭐가 그렇게 바쁜가요?”서유정의 어깨에 팔을 올린 송현태는 언제나처럼 미소를 띠고 있었다.“정혁이가 서정 그룹 대표이사인데 뭐든 정혁이 한 마디면 되는 거 아닌가요? 왜 그렇게 아내를 고생시킨대요.”“그건 당신이 뭘 몰라서 그래. 강시원, 이미 서정 그룹 그만뒀어.”서유정은 몸을 돌려 남편의 손을 뿌리치는 행동으로 송현태가 강시원을 ‘처남댁’이라고 부르는 것에 불만을 표현했다.“업계의 수많은 엘리트들과 명문대 출신들은 서정 그룹에 들어가려고 안달인데, 강시원은 본인 스스로 황금 밥그릇을 버렸어. 너무 고상해서 그렇지 뭐, 아니면 우리 서씨 가문이 주는 특혜를 무시하는 건가.”눈썹을 치켜올린 송현태는 슬쩍 대화에서 빠졌다.서씨 가문은 확실히 여자가 많고 남자가 적었다. 여자들이 많은 곳은 늘 시비가 끊이지 않는 법, 서정혁도 참 골치가 아플 것 같았다.“뭐라고? 시원아, 너 정말 서정 그룹을 그만뒀어?”박해순은 깜짝 놀랐다.“전에는 일 잘하고 있었잖아, 왜 갑자기...”김설연이 경멸 가득한 목소리로 비웃었다.“너무 외로워서 더 좋은 걸 손에 넣었겠죠. 그래서 우리 서씨 가문을 무시하는 거고.”“더 좋은 걸 손에 넣었다는 게 무슨 말이야?”바로 그때 서정혁이 거실로 들어섰다. 입체적인 잘생긴 얼굴은 얼음장같이 차가워 사람들에게 항상 거리감을 주었다.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사람처럼 말이다.그런데 뒤에서 졸졸 따라오는 임지민은 마치 서정혁에게 기생하는 것처럼 보였다. 두 사람은 항상 붙어 다녔다.부부처럼 친밀한 두 사람의 모습에 강시원은 흠칫했지만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조금 전 거실에 다른 사람들이 다 있었지만 유독 서정혁만 없었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이제 보니 자기가 아끼는 여자를 데리러 간 거였네.’“강시원?”서정혁의 잘생긴 얼굴이 잠시 흠칫 놀라는 듯하더니 초조하고 짜증 난 감정이 눈빛에 드러났다.강시원도 입꼬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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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8화

허리를 숙여 사진 한 장을 집어 든 강시원은 순간 눈빛이 흔들렸다.사진 속에는 며칠 전 유재윤과 함께 병원에 갔던 장면이 담겨 있었다.몰래 찍은 사람이 불순한 의도로 찍은 건지, 두 사람이 은밀하게 스킨십을 나누는 듯한 마치 불륜을 저지르는 것처럼 보이게 찍었다.순간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민 강시원은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그대로 얼어붙은 온몸은 마치 그 얼음이 뼛속까지 차갑게 파고드는 것 같았다.김설연이 사람을 시켜 자신을 미행하고 사생활을 뻔뻔하게 염탐한 것에 너무 화가 났다.또한 가장 소중히 여기는 유재윤 선배를 추잡한 가족 윤리의 논란 속으로 끌어들여 그녀를 협박하는 도구로 이용하고 비방하며 공격하는 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눈시울이 붉어진 강시원이 사진을 움켜쥐려는 순간 뒤에 서 있던 서정혁이 건장한 팔을 그녀의 어깨 너머로 뻗어 순식간에 그녀의 손에서 사진을 낚아챘다.그 순간 강시원은 손바닥이 살짝 아픈 것을 느꼈다.날카로운 사진 모서리가 칼날처럼 강시원의 하얀 피부를 베어 붉은 핏방울이 상처에서 흘러나왔다.“정혁아! 너 눈 크게 똑똑히 봐. 네가 순수하고 순진하다고 생각했던 이 여자가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김설연은 화가 나서 탁자를 세게 내리쳤다.“너 몰래 다른 남자와 사람들 앞에서 포옹까지 하고 있어. 정말 저질스럽고 부끄러움도 모르는 여자야! 네 체면을 바닥에 내던져 짓밟고 있다고!”서유정은 팔짱을 끼고 비꼬듯 말했다.“흥, 이제야 강시원이 왜 나에게 아양을 떨고 오빠에게 순종하는지 알겠어. 밖에서 남자랑 편하게 몰래 만나기 위해 오빠를 잘 구워삶은 거잖아.”침묵하는 박해순을 흘끔 쳐다본 임지민은 실룩거리는 입꼬리를 겨우 억눌렀다.떨리는 손으로 사진 한 장을 쥔 채 뚫어지게 바라보는 박해순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늙은이가 드디어 강시원을 의심하는 것을 본 임지민은 속으로 만세를 부를 지경이었다. 항상 아껴주고 믿어주던 아이가 몰래 다른 남자와 놀아나며 유일한 손자를 배신한 것, 생각만 해도 실망스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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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9화

강시원이 대답하지 않자 박해순은 너무 초조해했다.“시원아... 말해봐!”“어? 이 남자... 명환 법률 사무소의 대표, 유재윤 아니야?”경시 최고 검찰청의 검찰장인 송현태는 법조계 사람들을 잘 알고 있었다. 사진을 보자마자 비웃듯 말했다.“유 변호사, 말재주도 뛰어나고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으로 유명해. 내 밑에 있는 검사들도 유 변호사 말발에 진 적이 얼마나 많은데. 한 번은 살인범을 무죄로 변호해서 사형이 결국 무기징역으로 바뀌었다니까!”서유정은 일부러 놀란 척했다.“와, 이제 보니 이 남자, 정말 나쁜 인간이네.”송현태는 강시원을 걱정하는 척하며 진지하게 말했다.“처남댁, 어쩌다 이런 돈에 눈이 먼 사람과 엮이게 되었나요? 이 녀석, 워낙 속셈이 많기로 유명한데. 분명 자기 이익을 위해서 처남댁에게 접근한 거예요.”“사모님, 할머니, 뭔가 오해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임지민은 부드럽게 말을 꺼냈다.“언니와 저는 함께 자랐어요. 언니는 절대 이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니에요. 그리고 사진 위치가 잘못되었을 수도 있잖아요? 이 사진만으로 언니와 유 변호사가 불륜 관계라고 할 수는 없어요.”김설연은 순간 화가 났다.굳이 강시원을 도와주지 않아도 되는데 도와주며 변명까지 하니, 오히려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어. 지민아, 너는 정말로 너무 순진해.”박해순의 팔을 잡아당긴 서유정은 애교를 부리며 말했다.“할머니, 지민이가 얼마나 착한지 보세요. 이런 상황에서도 강시원이라는 불륜녀 편을 들고 있어요. 강시원은 지민의 발끝도 못 따라와요! 그때 새언니 선택할 때 왜 지민이가 아니라 강시원을 선택한 거예요?”가만히 있던 박해순은 그녀의 품에서 자연스럽게 팔을 빼냈다.“정혁아! 네가 말해봐!”김설연은 눈이 붉게 충혈되었다.“강시원.”차가운 눈빛으로 강시원을 바라본 서정혁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강압적인 어조로 말했다.“어쨌든 우리 서씨 가문에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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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화

서유정 부부는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놀랐다.평소에 단호하고 결단력 있으며 눈에 티끌도 용납하지 않는 서정혁이 바람을 피운 아내에게 중대한 처벌을 내리기는커녕 오히려 기회를 한 번 더 주겠다고 하다니...이건 정말로 뉴스에나 나올 법한 일이 아닌가?혹시 5년간 함께 자면서 정말로 마음이 생긴 걸까?임지민은 가슴이 아파 저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김설연은 눈앞이 캄캄해질 지경이었다.“흥... 용서해 준다고?”차가운 눈빛으로 서정혁의 어두운 눈동자를 바라본 강시원은 그와의 첫 만남이 떠올랐다. 눈이 마주친 그때 그 순간이 영원처럼 느껴졌지만 지금은 그때의 자신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웠는지 알았다.서정혁 본인은 결혼 생활 중에 바람을 피우고 애인을 데리고 활개를 쳤다. 강시원이 산후 고통 속에서 죽을 고비를 넘길 때 임지민과 함께 해외로 가서 그녀의 몸 건강을 위해 정성을 다하며 남편보다 더 남편 같은 모습을 보였다.그때마다 강시원이 마음속으로 한 번 또 한 번 용서를 했는데 정작 서정혁 본인이 거만하게 말하며 강시원을 용서할 수 있다고 말하니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인가?더 이상 웃음을 참을 수 없었던 강시원은 눈시울이 붉어졌다.강시원의 비웃음을 느낀 서정혁도 미간을 찌푸렸다.“오빠, 봤어? 이 저질스러운 여자가 오빠를 전혀 존중하지 않잖아!”분노하며 자리에서 일어선 서유정은 목청이 찢어질 정도로 소리쳤다.“이 여자는 결혼 생활 중에 바람을 피우고 애인을 데리고 다니며 오빠 얼굴에 먹칠을 했어. 게다가 우리 서씨 가문의 명성을 떨어뜨렸지. 그래 놓고 사과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웃는다고? 부끄러움이란 걸 모르는 건가!”“서유정! 그 입 닥쳐!”화가 머리끝까지 난 박해순은 얼굴이 시뻘게졌다.“시원이는 서정 그룹 대표이사의 아내이자 네 새언니야. 그런데 저질스러운 여자라니! 예의를 밥 말아 먹은 거야? 재벌 집 딸이라는 애가 왜 그렇게 교양이 없는 거야?”“할머니, 저...!”순간 말문이 막힌 서유정은 다시 한마디 반박하려 했지만 송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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