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에서: Chapter 121 - Chapter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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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1화

지금 이 순간 강지연은 몸부림칠 힘 한 톨도 남아 있지 않았다.온하준의 품에 안긴 채 그를 올려다보니 검은 눈동자 안에서 먹구름 같은 기색이 소용돌이쳤다.“지금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겁니까?”강지연이 아무 말이 없자 온하준은 간호사를 향해 물었다.“재활 치료 중이세요.”온하준은 미간을 찡그리며 되물었다.“재활이요? 이게 무슨 재활이에요? 사람을 이렇게 만드는 게 재활입니까?”“온하준!”강지연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너한테 간섭해 달라고 한 적 없어!”“내가 아니면 누가 널 간섭해?”온하준은 고개를 숙여 강지연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꾸짖더니 그대로 그녀를 안은 채 밖으로 걸어 나갔다.“온하준!”“저기... 강지연 씨 재활 치료는...”강지연과 간호사가 동시에 불렀지만 온하준은 걸음을 늦추지도 않고 거칠게 말을 잘랐다.“안 합니다!”“온하준, 네가 무슨 권리로 내 일을 마음대로 정해?”강지연은 분노로 속이 뒤집혔다. 그녀가 정말 그를 필요로 했던 모든 순간에는 단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었으면서 왜 하필 이럴 때만 나타나서 간섭하는 건지 짜증이 치밀었다.온하준은 강지연을 안은 채 재활실을 벗어났다.그리고 한의원의 간호사, 환자, 대기 중인 보호자들의 시선이 동시에 두 사람에게로 쏠렸다.“온하준!”강지연은 이 순간만큼은 자신의 무력함이 원망스러웠고 온하준에게 이렇게 휘둘리는 자신이 싫었다.하지만 조금이라도 힘을 주면 온몸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어릴 적 춤을 배울 때도 늘 온몸이 멍투성이가 되도록 넘어진 적은 많지만 이렇게까지 아픈 적은 없었다.온하준의 품에서 벗어나기는커녕 버둥거리는 것조차 불가능했다.마침 진료실에서 나오던 배우진이 이 광경을 보고 다가와 부드럽게 물었다.“무슨 일이에요? 재활이 잘 안됐습니까?”온하준이라는 사람은 늘 담담하고 차분한 성격을 지닌 사람이었고 사람을 대할 때도 언제나 온화하고 예의를 잃지 않는 타입이었다.다만 요즘 들어 그 이미지가 조금씩 무너지고 종종 감정 기복을 숨기지 못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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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2화

온하준의 말에 문득 어젯밤 그가 인스타에 올렸던 글귀가 떠올랐던 강지연은 피식 웃음이 터졌다.“내 남편? 평생의 노력이 전부 다른 여자를 위한 남자가 내 남편이라고? 온하준, 너무 웃기지 않아?”정말 한심하고 너무 웃겨서 마음이 아픈 느낌도 들지 않았다.온하준이 룸미러를 그녀 쪽으로 틀어 돌리며 말했다.“네 꼴 좀 봐. 네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네 눈으로 똑바로 보라고.”강지연은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았다.조금 전까지 죽을힘을 다해 재활했던 탓에 머리카락은 거의 전부 젖어 있었고 얼굴엔 땀이 줄줄 흘렀으며 옷은 아예 땀에 흠뻑 잠겨 있었다.초라하고 불쌍해 보이긴 했다.지금도 입술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고 두 손 역시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그런데도 강지연은 자신의 지금 모습이 조금도 부끄럽지 않았다.이것은 자신이 버티고 있다는 증거였고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증명이었으니까.“내 꼴이 왜?”그녀는 뺨 위로 피어오른 붉은 기운을 손끝으로 가볍게 짚었다.뜨겁고 건강한, 살아 있는 생기의 색이었다. 강지연은 지금의 자신이 꽤 마음에 들었다.“강지연, 이렇게까지 할 필요 없잖아.”온하준이 한숨을 내쉬었다.“너 지금 화나서 이런다는 거 알아. 이하나가 돌아왔고 그 애가 너보다 예쁘고 너보다 건강하고 너보다 능력 있으니까 마음이 불편한 거지. 그래서 이를 악물고 그 애를 이겨 보겠다고 이러는 거잖아.”강지연은 순간 잘못 들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온하준, 진짜 머리에 구멍이라도 난 거야?’“강지연,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 없어. 네가 이렇게 힘들어하는 거 보고 있으면 나도 마음이 아파.”온하준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강지연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넌 누구랑도 비교할 필요 없어. 어떤 모습이든 넌 언제나 내 아내야. 그건 안 변해. 그러니까 이렇게까지 초조해할 이유도 없는 거야. 넌 지금 완전히 딴사람이 됐어. 네 인생에는 이제 이하나밖에 안 남은 것 같아. 뭐든지...”“내가 초조해한다고? 그리고 뭐? 내가 이하나만 보고 산다고?”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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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3화

강지연은 이렇게까지 온갖 일을 다 겪고 나면 이제 더는 아프지 않을 거로 생각했었다.하지만 그녀는 이 사랑이 남긴 상처를 너무 터무니없이 생각하고 있었다.알고 보니 그는 모든 걸 알고 있었고 모든 걸 기억하고 있었다.강지연이 온하준을 사랑한 건 사실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녀 혼자 가슴속에 꼭꼭 숨겨둔 비밀스러운 마음이었을 뿐, 그를 갖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온하준에게 문제를 봐 달라고 했던 건 돈을 주면서 과외를 부탁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그래야 온하준의 자존심을 다치게 하지 않으면서도 집에서 돈 한 푼 주지 않는 팍팍한 그의 형편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추석에 그에게 송편을 건넸던 것도 그저 특별한 날에 혼자 있는 그에게 아주 작은 온기라도 건네고 싶었기 때문이었다.나중에 그를 구했을 때도 비록 그 일로 다리를 다쳐 절뚝이게 되었어도 그 대가로 어떤 보상을 바란 적이 없었고 더욱이 그 일을 빌미로 결혼을 요구할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무엇보다 이제 이 결혼에서 강지연은 이미 물러설 준비를 끝낸 상태였다.자신을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 단단한 껍질을 둘러 세우고 마음속으로 끝없이 다짐했다.‘인제 그만 아파하자. 더는 다치지 말자.’하지만 정말로 상상도 못 했다.그에게 쏟았던 모든 호의와 따뜻함이 언젠가 그의 손에서 화살이 되어 다시 자신에게 되돌아올 줄은.그 화살이 겨우 감싸놓은 껍질을 꿰뚫고 들어와 다시 한번 온몸을 만신창이가 되도록 난자할 줄은.‘됐어. 그만하자.’온몸에 힘이 빠져나간 듯 무기력해진 강지연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설명 따위 더 이상 소용없었다.‘언젠가 내가 정말 너의 세계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리는 날이 오면 알게 되겠지. 온하준의 아내라는 명분을 내가 소중히 여겼는지 아닌지.’강지연이 아무 말도 없자 온하준은 되려 그녀의 어깨를 감싸안았다.그녀는 숨을 죽은 채 영영 잊지 못할 그해 추석을 떠올렸다.그와 함께 계수나무 아래에 나란히 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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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4화

강지연은 문득 궁금한 게 떠올랐다.아까 재활실에서 그는 정말로 그녀가 너무 힘들고 아파 보여서 더는 못 하게 막은 건지 아니면 그저 그녀를 끌고 나와 이하나를 봐달라는 이야기를 꺼내고 싶어서였는지.하지만 강지연은 그 질문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지금 이 순간까지도 아팠냐는 말 한마디 없는 그에게 답은 이미 너무 뻔했다.그리고 그 답은 파출소에 도착하고 나서 완전히 확인되었다.온하준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곧장 파출소 안으로 걸어 들어갔고 뒤늦게 내리는 강지연이 걸을 힘이 있는지, 다리가 아직 아픈지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강지연이 차 문을 닫고 내리는 순간 전화가 울려 왔다.그녀가 차 옆에 서서 전화받는 동안 온하준은 어느새 꽤 멀리까지 걸어가다가 불현듯 강지연이 떠올랐는지 뒤를 돌아보았다.그러나 그뿐이었다. 온하준은 기다릴 생각은 전혀 없는 듯 그냥 그대로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애초에 강지연은 온하준의 저울이 자신 쪽으로 기울어질 거라 기대한 적이 없었다.그녀는 통화를 마치고 혼자 천천히 파출소 안으로 걸어갔다.예상치 못했던 건 이하나도 와 있다는 사실이었다.온하준은 경찰과 한창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이하나는 의자에 앉아 울고 있었으며 양옆에는 그녀의 호위무사라도 되는 양 김도윤과 김도진이 앉아 있었다.두 사람은 마치 원수라도 마주한 것처럼 싸늘한 눈빛으로 강지연을 노려보았다.온하준이 경찰과의 이야기를 마치고 이하나 쪽으로 다가가자 김도윤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이하나 옆자리를 비켜주었고 온하준은 당연하다는 듯 그 자리에 앉았다.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네 사람의 행동에 강지연은 인생에서 볼 수 있는 모든 특이한 인간 유형을 한 번에 만난 기분이 들었다.하지만 정말 기막힌 일은 그다음에 벌어졌다.프런트 직원과 노유진이 회사에서 했던 말과 파출소에서 내놓는 말이 처음부터 끝까지 딴판으로 뒤집혀 있었다.프런트 직원은 자신이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온하준의 아내를 알아보지 못했다고 주장했다.회사에는 늘 온하준을 찾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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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5화

강지연은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서럽게 울고 있는 이하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손가락 사이로 눈물이 흘러내리자 온하준과 김도윤, 김도진의 시선이 동시에 이하나의 얼굴에 꽂혔다.세 사람의 눈빛은 누구라 할 것도 없이 동시에 긴장감이 스쳤다.특히 김도윤은 금세 흥분해서 소리를 높였다.“울긴 왜 울어! 우리가 네 옆에 있는데 누가 감히 너를 건드려!”김도진도 바로 장단을 맞췄다.“그러니까. 하준이한테 물어봐. 회사에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은 너밖에 없어.”“하준아...”이하나는 눈물에 젖은 눈으로 온하준을 올려다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난... 내가 억울한 건 괜찮아. 하지만 나 때문에 회사에 안 좋은 소문이라도 나서 회사에 피해가 갈까 봐 그게 더 무서워. 그러면 그게다 나 때문인 거잖아. 하준아, 나 그냥 그만둘게.”“헛소리하지 마!”김도윤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는 벌겋게 충혈된 눈동자로 강지연을 한 번 흘겨보더니 이를 악물고 말을 이었다.“누가 너를 그만두게 만들려고 설치면 그건 곧 나를 건드는 거고 하준이를 건드는 거야! 누가 감히 그러는지 두고 볼 거야!”“그래, 맞아!”김도진은 예전부터 김도윤과 한 몸처럼 붙어 다니며 온갖 추임새를 넣던 버릇 그대로 곧장 온하준을 향해 거들었다.“하준아, 회사는 네 뜻대로 움직이는 거잖아. 어디 가서 뭐 하나 제대로 해본 적도 없는 쓸모없는 인간이 끼어들 수 있는 곳이 아니지.”그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말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누구를 겨냥한 건지 알 수 있었다.그들 머릿속에서 강지연은 언제나 다리를 저는 무능한 사람일 뿐이었다.강지연은 온하준에게 단 한 톨의 기대도 품지 않은 채 묵묵히 그 말들을 듣고 있었다.어차피 그는 결코 자기편에 서지 않을 사람이라는 걸 강지연은 너무 잘 알고 있었다.지금 이 순간에도 온하준은 이하나 옆에 앉아 있었다.이하나는 눈에 눈물을 잔뜩 고인 채로 그를 올려다보며 고개를 저었다.“하준아, 난 네가 곤란해지는 게 제일 싫어. 난 절대로 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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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화

온하준은 실망 가득한 눈빛으로 강지연을 바라보며 말했다.“정말 상상도 못 했다. 네가 이렇게 속이 좁은 사람일 줄은! 강지연, 난 질투하는 너를 이해할 수는 있어. 최소한 그건 사랑에서 나온 거니까. 하지만 독해진 너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어. 질투심 때문에 거짓말까지 해서 사람을 모함하다니! 이런 네가 너무 무섭다!”온하준은 마침내 입을 열었고 그 말은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결론처럼 박혔다.결국 이 사건의 진짜 피해자는 순진무구하고 천사 같은 이하나였고 강지연에게 억울하게 누명을 쓴 피해자가 되어있었다.그리고 강지연은 질투에 눈이 멀어 천사를 몰아내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독한 여자가 되었다.강지연은 허탈하리만큼 힘이 빠졌다.‘도대체 뭘 어떻게 말해야 단 한 번도 이하나를 질투한 적이 없다는 걸 알릴 수 있을까?’“강지연 씨!”경찰이 그녀를 불렀다.김도윤 일행이 여기서 한참을 떠들어댔지만 강지연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물론 이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말이 없었다.말도 통하지 않고 도리도 따지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고함을 치면서 싸울 필요가 없었다.“가요!”강지연은 네 사람을 완전히 무시한 채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경찰 쪽으로 걸어갔다.그녀가 절뚝이며 다가가는 걸 본 여경 한 명이 얼른 다가와 팔을 받쳐 주었다.“고맙습니다.”강지연은 속으로 문득 낯선 사람들의 작은 친절에 마음이 뭉클해진다는 사실이 서글펐다.경찰이 강지연을 부른 이유는 프런트 직원과 노유진, 전기 기사가 진술한 내용이 강지연의 진술과 여러모로 크게 달랐기 때문이었다.경찰이 다시 이것저것 묻자 그녀는 처음과 똑같은 입장을 한 치도 흐트러뜨리지 않고 반복했다.그때, 안쪽 조사실에서 프런트 직원과 노유진, 전기 기사가 차례로 나왔다.전기 기사는 강지연을 알아보지 못했기에 아무 반응 없이 지나쳤지만 프런트 직원과 노유진의 얼굴빛은 순간 하얗게 질렸다.강지연은 그들을 한 번 훑어보고는 단호하게 경찰에게 말했다.“저 사람들 거짓말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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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7화

김도윤이 그녀를 얼마나 싫어하고 사람이 얼마나 독한지 강지연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그동안 이들과 함께 얽혀 끌려다니면서 예상을 뛰어넘는 일을 수없이 견뎌왔기에 이제는 더 이상 놀라울 것도 없을 거로 생각했지만 그 생각은 또다시 빗나갔다.설마, 정말 설마 했는데 김도윤의 입에서는 결국 5년 전 강지연이 온하준을 구한 것도 결혼 사기를 치기 위한 미끼였을 거라는 말이 나왔다.사람은 분노가 극에 달하면 오히려 감정이 사라진 듯 고요해질 때가 있다.강지연은 담담한 눈빛으로 온하준을 바라보았다.이 남자가 자기편에 서 주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그녀는 이미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뼈에 새기듯 확인해 왔다.그런데 지금 이 순간만큼은 꼭 확인하고 싶었다.만약 온하준마저 김도윤과 같은 생각이라면 이건 강지연이 눈이 멀어 사람을 잘못 봤다는 말로 정리하고 끝낼 일이 아니었다.정말 그렇다면 온하준은 강지연에게 개만도 못한 인간이었다.“온하준, 이리 와.”강지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 자리에 선 채 온하준을 불렀다. 눈빛은 기묘할 만큼 고요했다.이하나 옆에 앉아 있던 온하준은 고개를 들어 강지연을 올려다보았다.“하준아, 가지 마!”김도윤은 마치 이하나의 대변인이라도 된 듯 서둘러 막아섰다.순간, 온하준의 시선과 강지연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닿았고 짧은 정적 끝에 그는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강지연 앞으로 걸어왔다.강지연은 목숨까지 걸고 다리 하나를 대가로 내던지며 구했던 남자를 곧바로 마주 보며 담담하게 물었다.“너도 그렇게 생각해?”온하준은 대답하지 않았다.“너도...”강지연은 온하준의 눈을 똑바로 꿰뚫어 보듯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너도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내가 일부러 네 회사 회의실에 불을 질렀다고? 내가 5년 전에 널 차 밑에서 끌어낸 것도 네 목숨을 미끼로 결혼하려고 내 다리까지 내던진 거라고?”온하준의 눈동자가 순간 흠칫하더니 곧바로 시선을 피했다.“말해 봐, 온하준. 날 똑바로 보고 말해.”강지연은 고개를 들었다. 이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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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8화

강지연은 뺨 위에 마르지 않은 눈물을 그대로 둔 채 눈앞의 사람들을 전부 공기처럼 지워버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그러나 또렷하게 말했다.“저 사람들이 거짓말하고 있다는 증거를 제가 갖고 있어요.”등 뒤에서 떠들어대던 소란스러운 소리가 그 한마디에 싹 가라앉았다.강지연은 휴대전화를 꺼내 녹음 파일 하나를 재생했다.“하준아, 경찰에 신고하지 않으면 안 돼?”“이하나, 설마 정말 너야?”“미안해, 하준아. 난 그냥 강지연한테 장난 좀 치고 싶었을 뿐이야. 하준아, 내 말 좀 들어봐. 나 진짜 강지연을 죽이려던 건 아니야. 나는 그냥 도윤이와 도진이 대신 화풀이하고 싶었어. 회사에서 조금 망신만 주려고 그랬던 거야. 그래서 노유진한테 망고 주스 가져가라고 한 것뿐이야...”그 대화는 회의실에서 불이 난 뒤 강지연이 구조되어 병원에 입원해 있던 날 병실에 찾아온 이하나와 온하준이 나눴던 대화였다.“이하나가 직접 말했어요. 노유진을 시켜서 망고 주스를 가져오게 한 사람은 자기라고.”강지연이 또렷하게 덧붙였다.“설마, 그걸 녹음한 거야?”이하나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하얗게 질렸다.김도윤과 온하준은 분노가 뒤섞인 목소리로 외쳤다.“이 녹음, 왜 경찰한테 제출하지 않은 건데?”말 그대로 강지연은 그때 이 녹음을 제출하지 않았다.분노와 혼란이 뒤엉킨 와중에 이걸 완전히 잊고 있었다.그래서 온하준이 데려온 변호인단도 이 패는 전혀 모른 채 아무 대처도 못 했던 거였다.이하나는 다급해진 마음에 허겁지겁 변명을 쏟아냈다.“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는 건데? 내가 너한테 망고 주스를 줬다는 건 알겠어. 근데, 그게 어때서? 불 난 거랑은 상관없잖아?”“맞아!”김도윤과 김도진이 곧장 맞장구를 쳤다.“이하나는 그냥 네가 알레르기 때문에 망신이나 당하게 하려던 거지 불은 또 딴 문제잖아. 불이 어떻게 났는지는 너 말고 누가 알아?”이 상황에서도 그 들은 온갖 더러운 물을 강지연 쪽으로만 끼얹고 있었다.강지연은 아무 말 없이 휴대전화 사진첩을 열었다. 거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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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9화

김도윤은 분노에 못 이겨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강지연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고함쳤다.“너 설마 회사 CCTV를 빼돌린 거야? 아니면 몰래 회사에 CCTV를 설치한 거야? 그건 불법이야!”강지연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내가 본 영상은 회사의 권익을 침해하지도, 기밀을 유출하지도 않았어. 내가 불법을 저질렀다고 생각한다면 고소해도 좋아. 그리고 내가 CCTV를 설치했다고 해도 그건 회사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거야. 회사의 주주인 내가 회의실에서 누군가의 방화로 죽을 뻔했어. 인명 피해뿐 아니라 회사 자산에도 막대한 손실을 입혔잖아. 이런 상황에서 사각지대에 CCTV를 추가한 게 그렇게 부당한 일은 아니잖아? 온 대표도 반대는 하지 않겠지?”강지연의 시선이 온하준에게 닿았다. 그 순간, 머릿속에는 조금 전 나눴던 그 대화가 다시 메아리쳤다.“그럼, 너도 5년 전에 내가 널 구한 이유가 너랑 결혼하려고 일부러 그런 거로 생각해?”“응.”마치 거대한 바위가 가슴을 사정없이 내리친 듯 남아 있던 통증이 아직도 가시지 않고 파문처럼 되돌아왔다.강지연은 가슴을 꾹 눌러 통증을 억누르며 다시 미소를 지었다.“아니면 무슨 숨길 일이라도 있어서 일부러 감싸는 거야?”결혼 당시 온하준은 강지연에게 회사 지분 10%를 증여했기에 그녀도 주주였지만 한 번도 회사 일에 참여한 적이 없었다.강지연이 원치 않아서가 아니라 온하준과 김도윤, 김도진이 함께 세운 그 회사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었고 그녀는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온하준의 얼굴에는 아직도 강지연에게 맞은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손톱이 스친 자리에는 피가 배어 나와 말끔한 그의 얼굴 위에서 오히려 더 또렷하게 눈에 띄었다.‘온하준, 넌 뭐가 그렇게 마음 아파서 눈가가 붉어진 거야? 마음이 아파서야, 아니면 그렇게 자신만만해하던 재력과 권력을 폭로 당한 수치심 때문이야?’강지연은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온 대표, 왜 아무 말이 없어? 혹시 머릿속에서 계산 중이야? 내가 불법으로 C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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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0화

“하준아! 네가 키운 독사한테 한마디 해!”김도윤이 분에 겨워 고함을 질렀다.온하준은 얼굴에 남은 손톱자국을 손끝으로 스치듯 만지며 미간을 찌푸리고 앞으로 걸어 나왔다.“쓸데없는 말로 화제 돌리지 마. 강지연, 뭘 어떻게 하고 싶은 건데.”“그래, 강지연.”이하나도 또다시 다가섰다.“도준이 말대로 네가 찍은 그 영상은 법원에서 증거로 채택 안 돼. 괜히 일을 키워 봐야 회사에도 안 좋고. 차라리 뭘 어떻게 하고 싶은지 말해봐.”강지연이 미소를 지었다.“증거로 쓰이든 말든 그건 너희들이 정할 일이 아니고 솔직히 그게 그렇게 중요하지도 않아. 중요한 건 영상 속 내용이 전부 사실이라는 거야. 사실은 사람 판단에 영향을 주거든. 만 번 양보해서 법원이 이걸 증거로 안 여긴다고 쳐도 네티즌들도 안 믿을까? 그냥 인터넷에 올려서 너희들이 한 짓을 다 까발리고 모두가 다 알게 할 거야. 온 대표와 회사 창립자들이 내연녀를 위해서 어떻게 아내를 불태워 죽이려고 판을 짰는지. 그때 가서 직접 봐. 이게 증거가 되는지 안 되는지.”“미쳤구나, 너!”김도윤의 눈에서 불꽃이 튀어나오는 것 같았다.“그렇게 해서 하준이 명예 다 망치고 회사 이미지는 땅바닥으로 떨어뜨리고 하나는 사람들한테 욕 바가지로 먹게 만들어서 네가 얻는 게 뭔데?”“나?”강지연이 입꼬리를 올리며 느긋하게 말했다.“나는 속이 시원해지겠지. 난 그냥 비열한 인간이 모두한테 손가락질당하게 만들고 싶은 것뿐이야.”강지연은 손가락 하나를 치켜세우고 말을 이었다.“누가 비열한 인간이라고는 말 안 했어. 괜히 찔려서 펄쩍 뛰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야. 아니면 너희 전부가 다 그런 인간들이든가.”맞은편에 서 있던 이하나, 김도윤, 김도진은 당장이라도 욕을 퍼붓고 싶었지만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그저 한숨이 목구멍에 걸려 내려가지 못한 듯 얼굴만 새빨갛게 상기됐다.“제기랄!”김도윤은 결국 소매를 걷어 올리며 욕설을 내뱉었다. 당장이라도 사람을 칠 기세였다.강지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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