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어줘요.”강시우가 담담하게 말했다.“풀라고요?”기호범은 적잖이 놀란 기색이었다. 이건 강시우의 방식이 아니었다. 그는 당연히 그 여자를 반쯤은 망가뜨려 놓을 거로 생각했다.“네, 풀어줘요.”강시우는 느긋한 말투로 덧붙였다.“가끔은 개가 개를 무는 장면도 꽤 볼만하거든요.”기호범은 짧게 응답했고 통화는 그대로 끝났다.전화를 끊기 직전 저 여자를 풀어주면 또 무슨 일을 벌이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스쳤지만 그 생각은 금세 사라졌다.강시우가 있는 이상 노인이나 강지연에게 실질적인 위해가 가해질 일은 없었다. 그 밖의 소동이 아무리 커져도 그들과는 무관했다.강시우는 병실로 돌아와 다시 외할머니와 강지연 곁을 지켰다.한편, 빛이라곤 전혀 스며들지 않는 어느 지하실.이하나는 구석에 웅크린 채 온몸을 떨고 있었다.누가 자신을 붙잡았는지, 여기가 어디인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도 알 수 없었다.붙잡히는 순간 휴대전화는 빼앗겼고 그녀는 곧장 이 캄캄한 공간으로 던져졌다.밤인지 낮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고 아무것도 먹지 못해 배도 고팠다. 하지만 공포는 그보다 훨씬 컸다.특히 오늘 그녀를 데려온 사람들 가운데 앞에 섰던 그 남자가 너무도 섬뜩해 떠올리기만 해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기억을 샅샅이 뒤져도 그가 누구인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순간, 지하로 떨어지던 그때의 공포가 다시 밀려왔다.그녀는 정말 물건처럼 던져졌고 계단 위에서 그대로 내팽개쳐진 채 몇 번이나 구르다 멈췄다. 온몸은 해체된 것처럼 아팠고 어디가 부러졌는지도 알 수 없었다.잠시 뒤, 희미한 불빛 하나가 켜지며 누군가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났다.한 사람이 아니었다. 선두에 선 남자는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이런 어둠 속에서 선글라스라니 얼굴을 가리려는 걸까 싶었지만 사실 의미는 없었다. 애초에 얼굴이 보이지 않았으니까.그들은 모두 마스크를 쓴 채 검은 셔츠를 입은 그 남자를 중심으로 내려왔다.“당신들 뭐야? 너희들 다 경찰에 신고할 거야!”이하나는 처음엔 몇 번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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