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덮지 마.”“하지만 비행기 안이 너무 춥잖아. 나 추워.”이하나는 원피스를 입어서 팔이 죄다 드러나 있는 상태였다.온하준은 외투를 가지고 있었고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로 외투를 벗어 어깨에 걸쳐줬다.“내 옷 덮어.”강지연은 굳이 보지 않아도 이하나가 자신에게 슬쩍 던진 승리의 눈빛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녀는 책만 보며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그러나 이하나는 여기서 멈출 생각이 없었다.“지연 씨, 나 하준이 옷 좀 입어도 괜찮죠?”잔뜩 겁먹고 억울한 표정을 짓는 이하나를 보자 강지연은 웃음이 나왔다.대체 누구에게 보여주는 연기인 걸까? 그녀에게? 아니면 옆에 있는 온하준에게?강지연은 고개를 들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네, 당연히 괜찮아요.”사람도 보내줬는데 옷 한벌 쯤이야 뭐.“고마워요, 지연 씨. 정말 다정하시네요. ”이하나는 감동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별말씀을요.”강지연은 다시 책을 펼쳤다.그때 온하준이 그녀를 불렀다.“하나야.”온하준이 이하나에게 어떤 눈빛을 보냈는지, 이하나는 서운한 목소리로 말했다.“하준아, 나 지연 씨랑 잘 지내고 싶어서 그래. 그래야 네가 집에 가도 지연 씨가 잘해줄 거 아니야.”소설이었다면 이런 대사는 오직 멍청한 남주만 홀딱 넘어가는 전형적인 클리셰일 터.그리고 지금 온하준이 딱 그 클리셰 속 주인공처럼 보였다.생각할 것도 없었다. 지금쯤 온하준과 그의 충직한 두 졸개 머릿속엔 분명 이런 멘트가 떠다니고 있겠지.‘역시 하나야. 세심하고 착하고 배려심도 깊고...’강지연은 그저 조용히 비행기를 타고 싶었다. 서로 얼굴 안 보고 말도 섞지 않고.하지만 이하나는 정말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또다시 말을 걸어왔다.“지연 씨, 뭐 보고 있어요?”머리를 쏙 들이밀며 묻는 그 말에 강지연은 조용히 책을 덮었다.“그냥, 심심해서요.”“헐, 영어 원서네요? 지연 씨, 이거 진짜 읽을 줄 알아요? 와, 대박...”말은 칭찬처럼 들렸지만 눈빛엔 조롱이 그대로 묻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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