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e Kapitel von 버린 건 나였지만, 무너진 건 너였다: Kapitel 281 – Kapitel 290

331 Kapitel

제281화

두 눈이 마주치는 순간 허아연은 주현우의 눈빛에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허아연의 분석이 맞았다. 그 일은 오지은이 한 짓이었다.그래도 허아연은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주현우가 그때 자신을 이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다행이라는 생각도 전혀 들지 않았다.달빛이 두 사람을 비추고 환한 맞은편 가로등 불빛 아래에는 나방 몇 마리가 날개를 파닥이며 날아다녔다.허아연은 오른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싸고 있던 주현우의 손을 잡고 떼어냈다.그리고 맑은 눈으로 주현우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주현우 씨, 오지은을 향한 당신의 감정은 오예은 씨에 대한 고마움 때문만은 아니에요."허아연은 말을 하다 말고 입을 닫았다.무거운 표정으로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주현우 씨, 너무 자세하게 얘기하면 안 되는 일들도 있어요. 깊이 얘기할수록 상처만 되니까요."주현우가 오지은을 감싸고 오씨 집안을 돕는 건 이미 오래전에 은혜를 갚는 수준을 넘어 있었다.오지은과 오랜 세월 함께하며 정이 들었을 수도 있고 다른 감정이 있을지도 몰랐다.다만 허아연은 이제 깊이 생각하는 것도, 주현우의 속을 헤아리는 것도 다 귀찮을 뿐이었다.허아연이 말을 마치고 입을 닫았을 때 마당 안쪽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허 영감, 자네 오늘 영 안 되는구먼. 밤새 한 판도 못 이겼잖아. 바둑 실력 좀 갈고닦아야겠어, 내일 또 올 테니까.""그래, 내일 와서 더 두자고."마당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허아연은 서두르는 기색 없이 주현우를 슬쩍 밀어내고 돌아서서 대문을 열며 웃는 얼굴로 인사했다."할아버지, 조 할아버지.""아연이 산책 다녀왔구나, 현우도 와 있었네. 식구들끼리 오붓하게들 보내, 난 이만 가볼게."조영호는 인사를 나누고 먼저 자리를 떴다.허아연은 조영호를 배웅한 뒤 허민수를 부축해 집 안으로 들어갔다.허민수는 그새 방금 주현우와 바둑을 두느라 머리를 너무 많이 써서 조영호한테 진 거라며 변명을 늘어놓고 있었다. 허아연도 맞다며 맞장구를 쳐줬다.주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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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2화

허민수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허아연이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원래 가진 건 소중히 여기지 않고 갖지 못한 건 늘 애가 타는 법이에요."허아연의 분석에 허민수가 입을 열었다. "넌 가끔 생각이 너무 많아."허민수의 핀잔에도 허아연은 잡은 손을 놓지 않은 채 웃기만 했다.그때 허민수가 감회에 젖어 말했다."요즘 자꾸 네 할머니 꿈을 꿔. 네 아빠, 엄마 꿈도 꾸고, 다들 살아 있을 때 모습이 자꾸 보여." 허아연의 할머니도 네다섯 살 때 일찍 세상을 떠났다.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라곤 단편적인 기억이 전부일 뿐 많지 않았다. 허민수의 말에 허아연이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할아버지, 그래도 내가 있잖아요. 요 며칠 바쁜 일만 끝나면 짐 챙겨서 여기 와서 같이 지낼게요.""언제까지나 나랑 같이 지내는 건 아니지, 너는 네 삶을 살아야 해. 나는 네가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곁을 지켜주는 짝이 있었으면 좋겠어."허아연이 웃으며 허민수를 달랬다."이렇게 오랫동안 나 혼자서도 잘 지냈잖아요? 게다가 지금 이렇게 건강하니까 걱정 너무 하지 마세요."허민수가 한숨을 쉬었다."넌 아직 젊어서 몰라."허아연은 한동안 더 허민수를 달래며 이야기를 나누고 방으로 돌아가 쉬게 했다.허민수가 쉬는 걸 확인하고 위층으로 올라가 씻을 준비를 하던 허아연은 어깨에 옅게 남아 있는 주현우가 깨문 자국을 발견했다.이빨 자국을 살짝 만져보니 아직 조금 아팠다. 옅게 남은 자국을 보던 허아연은 생각이 명확해졌다. 이혼 얘기를 꺼내지 않고 예전처럼 꾹 참고 버텼다면 지금도 속으로만 끙끙 앓고 있었을 것이다.주현우는 여전히 집에 들어오지 않았을 테고, 여전히 사흘이 멀다 하고 실검에 오르내리고, 스캔들 뒷수습은 여전히 허아연 몫이었겠지. 남자는 영원히 적당히 멈추는 법을 몰랐다. 잠시 후.허아연이 씻고 나와 책상 앞에 앉으니 주민경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전화를 받자마자 주민경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아연아, 너 권승준 비서실장이랑 사귀어?"허아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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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3화

주민경이 답했다. "너랑 오빠 일이나 먼저 깔끔하게 정리해. 내 연애 신경 쓸 생각 말고."두 사람은 한참 더 수다를 떨다가 그제야 전화를 끊었다.……그 뒤로 이틀 동안, 주현우 쪽 변호사가 몇 차례 연락해서 몇 가지 사항을 확인하고 서류 두 부에도 추가 서명을 받았다. 이혼은 주현우 쪽에서도 착착 진행하고 있었지만 재산이 워낙 많아 절차가 복잡할 뿐이었다.한편 허아연 본인만 모르고 있을 뿐 권승준과의 스캔들은 며칠 새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었다. 다들 어찌나 그럴듯하게 살을 붙이는지 정말 허아연이 권승준을 꼬시기라도 한 것처럼 되어 있었다.권승준도 소문은 어렴풋이 전해 들었지만 신경쓰지 않았다.어차피 확실한 증거도 없었고 설령 누가 증거를 들이민다 해도 상관없었다.허아연과 권승준의 스캔들이 한창 뜨겁게 달아오르던 무렵, 주현우와 권승준은 식사 자리에서 마주쳤다. 허아연은 자리에 없었다.오늘 저녁 모임은 스타라이트 테크와도 관계없고 허아연과는 더더욱 관계없는 자리였다.권승준이 화장실에 막 들어섰을 때 주현우도 방금 들어왔는지 안에 있었다. 조금 전 식사 자리에서는 두 사람 매너있게 이야기를 나누고 깍듯하게 서로 술을 권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막다른 골목에서 마주치니 은근히 팽팽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주현우는 옆에 선 권승준을 대수롭지 않다는 듯 슬쩍 내려다보며 피식 웃었다. "비서실장님, 연기가 아주 수준급이던데요. 우리 와이프 앞에서 어찌나 감쪽같던지요."주현우와 허아연의 관계를 뻔히 알면서도 권승준은 허아연이 유부녀인 줄 정말 몰랐다는 듯 시치미를 뚝 떼고 있었다.주현우의 단도직입적인 말에 권승준도 슬쩍 곁눈질하며 부드럽게 웃었다."현우 너도 사람들 앞에서 허아연 씨 인정한 적은 없잖아."볼일을 마친 주현우는 돌아서서 대수롭지 않게 받아치는 권승준을 바라보며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래서 내 여자 가로채려고요?" 권승준이 웃으며 느긋하게 답했다."응. 그럴 생각이야, 그럴 자신도 있고."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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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4화

허아연이 보낸 메시지에 주현우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무표정하게 메시지를 잠시 들여다보던 주현우는 대화창을 닫고 탁하고 가볍게 휴대폰을 테이블에 도로 던졌다.그런데...... 휴대폰을 내려놓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허아연이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그날 밤, 주현우가 며칠 안에 절차 밟으러 간다고 했으니 정확한 일정을 확인하려는 것이었다.화면에 뜬 발신자 정보를 확인한 주현우는 미간을 팍 찌푸렸다. 표정도 잔뜩 굳어있었다. 그래도 휴대폰을 들고 일어나 룸 밖으로 나갔다.룸 오른쪽으로 나가면 있는 작은 테라스로 향한 주현우는 한 손에 휴대폰을 들고 다른 손은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전화를 받았다."귀하신 허아연 씨가 무슨 용건으로 전화하셨을까?"결혼 전 두 사람 사이가 나름 괜찮았을 때, 주현우는 가끔 허아연을 이렇게 부르곤 했었다. 대부분은 허아연을 화나게 해놓고 미처 달래지 못했을 때였다.전화기 너머로 허아연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내일 이혼 절차 밟으러 갈 수 있는지 물어보려고요."주현우는 머리가 지끈거렸다.오른손을 주머니에서 빼서 이마부터 짚고는 한참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그래, 이혼하자. 내일 바로 절차 밟으러 가자.""그럼 내일 아침 9시에 구청에서……"허아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주현우는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다.난간 앞으로 걸어가 두 팔을 걸치고 선 주현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한참이 지나도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젠장, 달래기 더럽게 힘든 여자네.'밖에 한참 서 있다가 룸으로 돌아온 주현우는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미소 띤 얼굴이었다. 식사 자리에서 누군가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주 대표님이 이렇게 밤낮없이 일하시니 경주 그룹이 압도적으로 앞서갈 수밖에 없죠."주현우가 웃으며 말했다."그렇게 치열하게 일하는 건 아니고요, 와이프 전화였어요. 빨리 들어오라고 재촉하네요."주현우의 말에 다들 더 신이 나서 한마디씩 거들었다."역시 젊은 사람들은 뜨겁다니까요, 하루만 못 봐도 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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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5화

최근 며칠 동안 허아연과 권승준에 관한 스캔들이 꽤 떠들썩하게 돌고 있었다.다들 허아연이 이미 이혼한 싱글인 줄 알고 말도 안 되게 이야기를 부풀렸다.권승준이라니? 허아연 따위가 넘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지금 오지은도 나름 좋은 마음에 하는 귀띔이었다. 허아연은 싱글도 아니었고 요직에 몸담고 있는 권승준이 이런 스캔들에 엮여서 좋을 게 없었다.미리 얘기해주면 깊이 빠지기 전에 일찌감치 발을 뺄 수 있을 테니까.오지은의 속셈을 한눈에 꿰뚫어 본 권승준이 웃으며 말했다."허아연 씨가 일도 그렇게 뛰어나게 하면서 삶도 알차게 사는지는 몰랐네요. 남편분이 엄청 자랑스러워하고 사랑하겠어요."허아연을 칭찬하는 권승준의 말에 오지은이 순간 멈칫했다.동요하거나 약간의 감정 변화라도 보일 줄 알았는데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고 태연하게 넘겼다.잠시 멈칫하던 오지은은 이내 침착함을 되찾고 웃는 얼굴로 맞장구를 쳤다."맞아요, 그럴 거예요."마음에도 없는 맞장구였다.동시에 권승준의 말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지금껏 이혼 절차를 밟지 않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주현우였다. 오지은이 말문이 막혀 있던 그때, 마침 권승준의 차가 도착했다. 권승준이 인사를 건넸다."오지은 씨, 먼저 가볼게요. 일 봐요."오지은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비서실장님, 살펴 가세요."오지은은 권승준의 차가 멀어지는 걸 바라보며 권승준이 허아연을 마음에 들어 할 리 없다며 역시 근거 없는 헛소문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방금 같은 반응을 보일 수 없었다.허아연이 나중에 이혼하더라도 두 사람은 가능성이 없었다.권승준 같은 신분의 남자가 이혼한 여자를 원할 리 없었다.점점 멀어지는 제네시스에 타고 있던 권승준은 오지은과 주현우를 떠올리며 점점 재미있어진다는 생각에 피식 웃었다. ……같은 시각, 허아연도 막 퇴근한 뒤였다.십여 분 뒤, 차를 몰고 아파트 단지로 돌아와 차에서 내리는데 건물 아래 세워진 낯익은 검은색 마이바흐가 눈에 들어왔다.흰 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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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6화

주현우가 몸을 돌려 허아연이 사인한 합의서를 받아 들고 무표정하게 말했다."좋아. 타, 줄 서러 가자."주현우가 굳이 이 시간에 줄을 서러 가겠다고 버티니 허아연도 결국 차에 올라탈 수밖에 없었다. 잠시 뒤 차가 출발했다.주현우는 두 손으로 핸들을 잡고 허아연은 앞만 바라봤다. 두 사람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왠지 차 안 공기도 갑갑한 기분이 든 주현우는 잔뜩 못마땅한 얼굴이었다.허아연은 그래도 나름 괜찮은지 담담하고 태연한 표정이었다. 에어컨 바람이 좀 차게 느껴진 허아연이 송풍구 방향을 돌리자 주현우는 바로 에어컨 온도를 조금 높였다.주현우의 행동에 허아연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아연아. 이쪽으로 뛰어, 내가 받아줄게.""아연아. 너한테는 우리가 있잖아, 앞으로 내가 네 가족이 될게.""허아연, 너 꽤 예쁘네."옛 기억이 갑자기 밀려들었다. 교진시의 야경은 예전 그대로였지만 허아연과 주현우는 이미 예전의 두 사람이 아니었다.차는 계속 앞으로 달렸다.주현우는 거짓말을 하지 않고 진짜 구청에 도착했다.차는 구청 앞 야외 주차장에 멈춰 섰다.조용한 건물 입구 위에 '구청'이라고 적힌 커다란 현판이 걸려 있었다.전에 두 사람이 혼인신고를 한 곳이기도 했다.밤 열 시가 넘은 시각, 텅 빈 주차장에는 두 사람이 탄 차밖에 없었다. 차를 세운 주현우는 시동을 끄지 않은 채 기어만 P로 바꿨다.고개를 돌려 조수석의 허아연을 바라보던 주현우는 성질이 다 죽은 얼굴로 말했다."허아연, 너 내 조상님 해라." 주현우의 말에도 허아연은 잠자코 고개를 숙이더니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 아무 일 없다는 듯 뉴스를 보기 시작했다.이제 날이 밝기를 기다려서 직원들이 출근하면 서류를 접수할 수 있었다. 허아연이 대꾸하지 않자 주현우가 부드럽게 물었다."저녁은 먹었어?"허아연이 휴대폰을 보며 조용히 말했다."배 안 고파요."예의를 차리며 거리를 두는 허아연의 태도에 주현우도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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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7화

주현우는 많은 말을 했고 많은 해명을 했다.하지만 감정에 관해서는 허아연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주현우는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는 허아연을 또 달랬다."이쯤 했으면 됐어. 더 시끄럽게 굴면 정말 남들 웃음거리가 돼."그릇을 든 허아연이 고개를 들고 차분하게 말했다."주현우 씨, 나 떼쓰는 거 아니에요."주현우는 그런 허아연을 말없이 바라봤다.두 눈이 마주쳤지만 허아연은 전혀 피하려는 기색이 없었다. 잠시 바라보던 주현우가 차갑게 말했다."알았어, 이혼해. 문 열면 바로 해."허아연은 그 말을 들으며 다시 고개를 숙이고 야식을 먹었다.말없이 먹다 보니 3년 전 혼인신고 하던 날이 떠올랐다. 그날 주현우는 혼인신고 서류를 받자마자 허아연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차를 몰고 가버렸다.그날 허아연은 혼자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었다. 야식을 다 먹은 허아연이 차에서 내려 남은 음식을 버리러 갈 때 밖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바람도 거셌고 천둥까지 쳤다.서둘러 차에 올라 문을 닫은 허아연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창밖에서 시선을 거두는 순간, 주현우가 갑자기 허아연의 목덜미를 감싸 쥐고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게 했다.허아연이 본능적으로 주현우의 손목을 잡아 목에서 떼어내려 했다. 하지만 주현우는 몸을 기울여 허아연의 입술을 덮쳤다."주현우 씨……"밖에서는 빗소리와 천둥소리 요란하게 들렸고 거센 비바람이 휘몰아치고 있었다.허아연이 온 힘을 다 해 거부하자 주현우도 금세 흥이 식어버렸다.주현우는 더 이상 입을 맞추지 않았다.하지만 목덜미를 감싼 손은 거두지 않은 채 그대로 잡고 이마를 맞대고 깊은 침묵에 잠겼다.허아연도 더 말을 하지 않았다.한참이 지난 뒤…….허아연을 놓아준 주현우는 힘없이 시트에 기대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빗물이 차창을 뿌옇게 적셨다. 허아연은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얼마나 지났을까, 정신을 차린 주현우가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 허아연은 잠들어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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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8화

밖에서 밤새 기다린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가니 앞에는 두 쌍이 줄을 서 있었다.두 사람 순서가 되자 담당 직원이 물었다."두 분 합의 하에 이혼하시는 거 맞죠?"허아연이 맞다고 대답하며 합의서와 신분증을 내밀었다.주현우는 신분증을 툭 던지듯 올려놓았다.서류는 다 갖춰져 있었고 따로 정리할 것도 없었기에 빠르게 접수를 마친 직원이 말했다. "숙려 기간이 끝나고 30일 이내에 두 분이 함께 오셔서 최종 등록을 마치시면 됩니다."직원의 말이 끝나자 주현우는 차갑게 신분증을 집어 들고 돌아서서 출구 쪽으로 걸어갔다.허아연은 직원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한 뒤 신분증을 챙겨 따라 나갔다.햇볕이 쨍쨍 내리쬐고 있었다.주현우가 문 앞에 멈춰 서자 허아연이 말했다."일 보러 가요. 난 택시 타고 회사로 갈게요."주현우가 돌아서서 허아연을 내려다보며 담담하게 말했다."허아연, 이렇게 오래 알고 지낸 사이에 이런 식으로 깍듯하게 구는 거 너무 야박한 거야."야박하다고?허아연은 고개를 들고 주현우를 한참 바라봤지만 끝내 따지지 않았다.그저 오랫동안 말없이 바라보기만 했다.허아연의 맑고 그윽한 눈빛에 주현우가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차 가져올게."허아연은 차갑게 알겠다며 대꾸하고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잠시 뒤, 주현우가 차를 가져오자 허아연은 조수석에 올라탔다.차가 천천히 출발했고 차 안 분위기는 유난히 무거웠다.정면을 바라보다 이따금 곁눈질로 확인한 주현우는 안색이 영 좋지 않았다. 왼손으로 핸들을 잡은 주현우는 옆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집어 들다가 허아연이 있다는 걸 의식하고는 탁 소리가 나게 도로 던졌다. 그때 허아연이 잊을세라 귀띔했다."숙려 기간이 30일이니까 그 기간이 지나면……"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주현우가 덤덤하게 말을 끊었다."허아연, 오늘 이렇게 여기까지 온 이상 30일 뒤에도 네 발목 잡는 일 없어." 짜증이 느껴지는 말투에 허아연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살며시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차가 교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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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9화

그때 주민경은 눈이 뒤집어질 정도로 눈을 흘겼었다. 오지은이 주현우한테 대체 무슨 약을 먹였기에 좋은 일은 죄다 오씨 집안부터 챙기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오씨 집안은 벌써 사방팔방에 주현우가 사위라고 떠들고 다녔고 오중근은 심지어 경주 그룹에서까지 주현우를 사위라고 불러댔다.이제 주민경은 주현우가 전혀 안쓰럽지 않았다. 억울할 게 전혀 없는 이혼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속으로는 진작에 갈라서고 싶었는지도 몰랐다.질질 끈 것도 다 주석진과 유서희, 주건영과 박민정 앞에서 보여 주기 식 연기였을 것이다. 주민경의 말에 허아연이 웃으며 말했다."그러면 제일 좋지. 그땐 내가 거하게 한턱 쏠게."……한편 오중근이 저녁 식사에 초대했지만 주현우는 거절했다.이후 오지은도 연락했지만 주현우는 여전히 거절했다.그때 주현우는 전서진, 심유환 딱 셋이서 저녁을 먹는 중이었다. 프라이빗 룸 안. 어젯밤 두 사람이 구청 앞에서 밤을 새웠고 허아연은 차에서 곤히 자고 주현우는 옆에서 밤새 바라보기만 했다는 얘기를 들은 전서진이 배를 잡고 웃으며 고소하다는 듯 말했다."돌고 도는 게 인생이라더니, 부메랑 제대로 맞았네."주현우가 전서진을 휙 흘겨보고는 차갑게 말했다."입 좀 닥쳐. 가만히 있는다고 아무도 뭐라 할 사람 없으니까."주현우의 말에 전서진이 받아쳤다."솔직히 현우 너 이혼한 거 전혀 억울할 게 없어. 그리고 아연이가 매정하다느니 그런 말 좀 하지 마. 지난 3년 동안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부터 돌아봐야지. 아연이 정도면 완전 천사지."주현우는 식탁에서 담배를 들어 한 대 물고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해명은 했어."전서진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3년 내내 냉대해 놓고 해명 몇 마디로 끝내려고 했어? 그리고 아연이가 너한테 마음 없다고 맨날 그러는데 너 자신한테 물어봐, 너는 아연이한테 마음 있었어? 아연이 좋아해?""오지은이랑 가까이 지낸 게 정말 오예은한테 고마운 것 때문만이야? 쌍둥이잖아. 다 같은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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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0화

서재에서 나와 현관문을 연 권승준은 문 앞에 있는 허아연을 보며 이내 환한 얼굴로 다정하게 인사를 건넸다."허 선생님.""권 비서실장님.""권 비서실장님."허아연 뒤에서 다른 목소리가 더 들리자 권승준이 시선을 돌렸다. 지일우도 와 있었다.지일우도 같이 올 줄 몰랐던 권승준은 살짝 멈칫했다.하지만 바로 평온한 표정을 되찾고 웃으며 지일우에게 인사했다."지일우 씨도 왔네요.""비서실장님께 폐 끼치러 왔습니다."허아연이 옆에서 설명했다."로봇이 좀 무거워서 일우 선배도 불렀어요. 같이 시스템을 조율하면 효율이 더 높기도 하고요."지난번 로봇을 가져갈 때는 권승준의 기사가 도와줬었다.이번에는 혼자서 옮길 수도 없는데 권승준같이 높은 사람한테 직접 내려와 도와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어제 미리 지일우와 약속한 것이다. 권승준이 알겠다고 웃으며 말했다."일단 들어와요."웃는 얼굴로 말했지만 속으로는 딴생각을 하고 있었다. '효율이 높은 게 무슨 소용이람?' 두 사람이 로봇을 집 안으로 옮기는 사이 권승준은 실내화를 꺼냈다.허아연은 여성 전용 실내화가 있는 정도가 아니라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별로 다 갖춰져 있었다.허아연이 지난번에 신었던 실내화를 지일우에게 주고 싶지는 않았지만 집에 여분의 실내화도 없는 데다 마침 남성용 실내화이기도 했다. 권승준은 하는 수 없이 그 실내화를 지일우에게 건넸다.두 사람이 집 안으로 들어서자 허아연이 깍듯하게 말했다."비서실장님, 그럼 실례하겠습니다."말을 마친 두 사람은 거실에서 바로 박스를 뜯기 시작했다.권승준이 사는 아파트는 신호 방해가 있었기에 두 사람은 특별 승인을 받은 시스템으로 따로 업그레이드했다. 스타라이트 테크니까 가능한 일이지, 다른 회사였다면 어림도 없는 대우였다.스타라이트는 군부대와 협력까지 하는 회사였으니까.거실에 서서 진지한 얼굴로 지일우와 시스템이며 신호 문제를 논의하는 허아연을 지켜보던 권승준은 어이가 없으면서도 웃음이 났다.너무 순진한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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