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e Kapitel von 버린 건 나였지만, 무너진 건 너였다: Kapitel 291 – Kapitel 300

331 Kapitel

제291화

허아연이 포장 상자를 정리하는 동안 권승준도 잊지 않고 옆에서 거들었다.잠시 뒤 지일우가 밥 먹으라고 부르자 허아연은 또 바로 뛰어가 음식을 날랐다. 두 사람 모두 눈치가 빠르고 일머리가 있는 젊은이였다. 권승준이 두 사람에게 주스를 따라주었다. 지일우는 평범한 유리컵이었고 허아연은 핑크색과 노란색이 섞인 머그잔이었다.두 컵을 번갈아 보던 지일우는 저도 모르게 허아연을 힐끗 쳐다보다가 이내 시선을 거둬들였다.음식이 다 준비되자 지일우와 허아연이 나란히 앉고 권승준은 맞은편에 앉았다. 권승준이 허아연에게 반찬을 집어주며 말했다."허 선생님, 편하게 들어요."지일우한테도 웃으며 말했다."지일우 씨도 편하게 들어요. 남자분이니까 반찬은 따로 안 집어줄게요." 지일우가 다급하게 답했다. "비서실장님, 저는 원래 사양 안 합니다. 알아서 잘 먹겠습니다."지일우가 웃으며 한마디 덧붙였다."비서실장님께서 집에서 직접 요리하실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권승준이 웃으며 말했다."가끔 해요.""지일우 씨는 올해 몇 살이에요?"지일우가 권승준의 말에 서둘러 답했다."서른 다 됐습니다."권승준은 짧게 대꾸하고 넘겼다. 비슷한 또래였다.아무리 나이가 비슷해도 권승준의 기세는 숨이 막힐 정도로 강했다.깍듯하게 말을 건네는데도 여전히 압도적인 기세였다. 그때 지일우가 또 한마디 보탰다."얼마 전에 여자 친구와 혼인신고를 했고 다음 달에 결혼식 올릴 예정입니다." 지일우의 말에 권승준이 웃음을 터뜨렸다.'제법 영리한 친구네.'……점심 식사를 마치고 두 사람이 돌아가는 길이었다.지일우가 두 손으로 핸들을 잡은 채 허아연을 돌아보며 사뭇 진지하게 말했다."아연 씨, 권 비서실장님이 아연 씨한테 마음 있어요."조수석에 앉은 허아연은 휴대폰을 가방에 넣다가 지일우를 바라보며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일우 선배,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지일우가 정색하며 다시 말했다."권 비서실장님이 아연 씨 좋아한다고요."허아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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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2화

왠지…… 조금 언짢아 보이기도 했다.한참을 생각에 잠겨 있던 허민수가 착잡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네가 현우랑 정말 이혼하면 나중에 다시 가정을 꾸릴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꾸린다면 그게 언제가 되겠느냐? 너 혼자 한 우물만 파고들까 봐 그게 걱정이야."마당에서 허민수 옆에 앉아 있던 허아연이 달래듯 말했다."그런 일 없어요, 할아버지. 약속할게요, 서른 전에는 꼭 결혼할게요.""서른?"허민수가 되물었다."아직 6, 7년이나 남았는데 내가 그걸 볼 수 있으려나?"허아연이 허민수의 손을 꼭 잡으며 따스하게 웃었다."당연하죠. 할아버지 아직 얼마나 정정하신데요."허민수가 한숨을 내쉬었다."그래야 할 텐데."……본가에서 주말을 보낸 뒤, 허아연은 다시 바빠졌다.가정용 로봇 발표회가 코앞이었다. 유건희가 발표회 장소를 과학관으로 잡아서 허아연 팀은 출시 전 제품 테스트에 더해 과학관 행사장 세팅까지 준비해야 했다.현장 검수도 체크해야 했다.일주일 후.토요일 오전, 드디어 스타라이트의 가정용 로봇 첫 발표회가 열렸고 회사 직원들 모두 휴일을 반납하고 나와서 일손을 도왔다.미디어 기자들은 물론 국내외 테크 기업들도 대거 참석했다.오지은도 오성 그룹을 대표해 참석했다. 주현우와 권승준은 VIP 초대 손님이었다. 권승준 외에도 시의 고위 인사들이 여럿 참석했다.예닐곱 명의 고위 인사들과 주현우를 비롯한 프로젝트 투자자들은 맨 앞줄에 배정됐고 오지은의 자리는 셋째 줄이었다.오지은은 무대에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주현우와 권승준만 번갈아 볼 뿐이었다.무대 아래 곳곳에는 스타라이트 테크의 제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오늘 발표하는 가정용 로봇을 비롯해 올인원 청소 로봇, 무선 전력 시스템, 대형 몰입형 방탈출 게임, 가상 4D 공간 체험 등 다양한 부스가 준비되어 있었다.순간 사람들은 가상의 행성 한가운데 들어와 있는 듯했다.사회자의 개회 소개에 이어 유건희가 짧은 인사말을 마친 뒤, 허아연이 단정한 정장 차림으로 우아하게 무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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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3화

발표회가 끝나고. 프로젝트팀 팀원들은 각자 흩어져 참관하러 온 손님들을 맡아 전시된 기술 제품들을 안내하며 기술 해설을 담당했다.허아연은 지시에 따라 은퇴한 고위직 인사들의 해설을 맡았다.중간중간 운영팀 동료가 찾아와 제품 예약 판매 현황을 보고했는데 주문이 폭발적으로 몰려서 생산 일정이 벌써 내년까지 잡혔다고 했다.스타라이트의 다른 기술 제품들도 덩달아 불티나게 판매되었다. 그중 가장 폭발적인 인기를 자랑한 건 초소형 휴대 로봇으로 허아연이 후기에 독자적으로 설계한 부속 제품이었다.그때 은퇴한 고위직 인사 한 명이 공중에 떠 있는 1인용 비행체를 가리키며 신기한 듯 허아연에게 물었다."허 선생, 저건 무슨 이동 수단인가? 어떻게 공중에 떠 있지? 정말 일상 생활 중에 타고 다닐 수 있는 건가?"허아연이 밝게 웃으며 답했다."선생님, 저건 소형 비행체인데 스타라이트 무선 전력 기술의 전시 제품으로 자기장을 통해 전기 에너지를 무선으로 전송받아 움직여요.""현재는 무선 전력 사용 과정에서 손실이 커서 아직 널리 쓰이지 못하고 있어요. 이 분야의 기술이 한 단계 더 발전해서 수신기가 실제 환경의 전력을 자동으로 수신하고 도시 전체에 자기장이 깔리게 되면 이런 소형 비행체도 일상생활에 완전히 투입될 수 있을 거예요." "그뿐 아니라 다른 전자 기기들도 신형 수신기만 달면 앞으로는 충전 없이 무한정 사용할 수 있어요. 자연환경의 전력이나 대형 설비에서 낭비되는 전력을 스스로 수신할 테니까요."허아연의 해설을 들은 고위직 인사가 놀라며 말했다."그게 바로 영구기관 아닌가?"허아연이 웃으며 설명했다."영구기관까지는 아니고요, 자원을 순환해서 활용하는 개념에 가깝습니다. 머지않아 이 기술도 새로운 발전이 있을 거라고 믿어요."그 말에 고위직 인사 몇몇이 부쩍 흥미를 보이며 허아연을 붙잡고 영구기관이 정말 발명될 수 있을지 토론을 벌였다.허아연이 웃으며 말했다."미래 기술은 가늠할 수 없어요, 무엇이든 가능하거든요."멀지 않은 곳에서 주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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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4화

"오지은도 예쁘지. 그 누구랑 비교해도 예쁜 건 맞는데 허아연이랑 비교가 안 되지." "이혼하더니 완전 잭팟 터진 것 같네. 야, 내가 대시해보면 승산 있을 것 같아?""하하하, 해보든가. 들리는 소문에 주현우가 재산 절반을 넘겨줬다던데 너랑 나는 명함도 못 내밀 수준이잖아." 떼줬다더라. 그것만으로도 너나 나나 그냥 압살이야.""젠장, 보면 볼수록 예쁘네. 완전 속세를 벗어난 선녀 같아. 보고 있으면 정화되는 느낌이라니까." 멀리서 허아연을 바라보며 잡담을 나누던 남자들은 어느새 허아연을 완전히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경주 그룹을 떠나고 주현우와 헤어진 게 오히려 배포 있는 일로 느껴졌다.예전에는 다들 허아연을 인내의 여왕이라고 비웃었다. 하지만 주현우와 사는 여자치고 거북이처럼 목을 움츠리지 않을 여자는 없다는 걸 다들 알고 있었다. 솔직히 이들도 평소 주현우와 협업할 때는 주현우가 하자는 대로 굽실거리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주현우 앞에서는 모두가 허아연이었다.심지어 지금의 허아연보다도 못했다.적어도 허아연은 손을 놓을 배짱이라도 있었지만 이들은 아직도 주현우한테 협업해달라고 비는 신세였다.주변에서 들리는 대화에 권승준이 고개를 돌려 남자들을 무심하게 바라봤다.한편, 여자들은 더더욱 인정사정없이 허아연을 씹어댔다. "주현우와 이혼하더니 더 돈 많은 남편감을 낚으러 온 거야, 뭐야?""흥, 이혼녀를 누가 쳐다보기나 한대?"……점심 무렵, 회사 행정팀은 고위직 인사들에게 점심 식사 자리를 마련했다. 그때, 오지은이 환한 얼굴로 허아연 앞에 다가오더니 웃으며 축하 인사를 건넸다."아연아, 축하해. 오늘 발표회 정말 성공적이었어, 벌써 실검에도 올랐어."허아연은 오지은을 차분하게 바라보며 웃는 얼굴로 답했다."고마워요."오지은이 또 열정적으로 물었다."아연아, 밥 먹으러 가? 우리랑 같이 가자. 현우도 이따 같이 갈 거야."그때 동료가 허아연에게 서류를 건넸다."허 선생님, 요구하신 자료예요."서류를 받아 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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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5화

"난 그냥 네가 하루빨리 솔로 탈출하게 소개 좀 하려던 것뿐이야. 어떻게 그런 식으로 생각해?"사실 오지은은 허아연이 주현우와 이혼하지 않을까 봐 두려운 한편, 나중에 정말 권승준 같은 너무 좋은 남자와 결혼하게 될까 봐 두렵기도 했다. 서둘러 아무나 소개시켜 주려는 것이었다.오지은의 억울한 표정에도 허아연은 차갑게 말했다."속으로 무슨 생각하는지는 본인이 제일 잘 알겠죠. 할 일이 남았으니까 방해하지 마요."허아연이 말을 마친 순간, 주현우가 다가왔다.오지은은 바로 주현우의 팔을 껴안으며 서럽다는 듯 불렀다. "현우야."주현우는 무심하게 오지은의 손을 떼어내고 허아연을 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같이 밥 먹으러 가자."허아연은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손에 든 자료를 넘기며 담담하게 말했다."할 일이 남았어요. 먼저들 가요."허아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지일우가 부리나케 달려왔다."주 대표님, 호텔 쪽에서 음식이 나오기 시작한다는데 다들 대표님만 기다리고 있습니다."지일우의 말에 주현우는 허아연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먼저 자리를 떴다.이제 과학관에 남은 사람들은 거의 다 스타라이트 직원들이었다.허아연은 사람들과 함께 점심 먹으러 가지 않고 휴게 공간에서 일을 계속했다.키보드를 두드리며 한창 일하고 있는데 권승준의 비서가 불쑥 찾아왔다.비서는 포장해 온 음식을 허아연에게 건네며 말했다."허 선생님, 비서실장님께서 갖다드리라고 하신 점심입니다."비서가 건네는 음식을 본 허아연이 얼른 일어나 두 손으로 받으며 말했다."감사합니다.""허 선생님, 천천히 드세요.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허아연은 도시락을 든 채 부드럽게 답했다."네, 고마워요."허아연은 비서가 떠나는 뒷모습을 지켜본 뒤에야 도시락을 들고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오후 한 시가 넘어 사람들이 돌아올 무렵 주현우가 찾아왔다.주현우는 호텔에서 따로 포장해 온 음식을 허아연 업무 책상 위에 내려놓으며 덤덤하게 말했다."밥 먹어. 다 따로 시킨 거야."주현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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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6화

호텔 입구에서 유건희는 권유성을 권승준에게 부탁하고 허아연은 주현우에게 부탁했다. "주 대표님, 그럼 아연 씨 좀 부탁할게요."이때까지도 허아연과 주현우가 이미 이혼 신청을 제출했다는 걸 몰랐던 유건희는 여전히 부부인 줄로만 알았다. 주현우는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는 허아연을 품에 안으며 말했다."아연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유 대표님.""네. 혹시 아연 씨가 내일 컨디션이 안 좋으면 출근 안 해도 된다고 전해주세요. 일은 다음 주에 해도 되니까요.""네, 전달할게요." 주현우의 말이 끝나자마자 오원빈이 차를 몰고 와 뒷좌석 문을 열며 불렀다."대표님."주현우는 인사불성으로 취한 허아연을 안아 차에 태웠다.사실 허아연은 첫 잔을 마실 때 이미 주민경에게 데리러 오라고 메시지를 보냈었다.최대한 빨리 가겠다고 답한 주민경이었지만 만찬이 끝날 때까지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유건희는 주현우에게 허아연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호텔을 떠난 차가 부드럽게 달렸다.허아연이 머리를 흔들며 조는 걸 본 주현우는 자기 어깨에 머리를 기대게 하고 고개를 숙여 머리카락에 입을 맞췄다.이어 허아연을 바라보며 나직이 물었다."아파트 비밀번호가 몇 번이야?"주현우 어깨에 머리를 기댄 허아연이 중얼중얼 말을 했지만 알아들을 수 없었다. 주현우가 고개를 들어 오원빈에게 지시했다."아레아 베이로 가.""네, 대표님."하지만 오원빈은 속으로 도어록에 분명히 허아연의 지문이 등록돼 있을 테니 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대표님이 시키는 대로 하면 그만이고 멋대로 나서서 의견을 제시하거나 훈수를 두는 건 선 넘는 행동이었다. 창밖에 펼쳐진 번화한 길거리의 오색찬란한 야경은 고요한 차 안과 선명한 대비를 이뤘다.술을 마신 탓에 허아연의 숨소리가 조금 거칠어졌고 이따금 작게 코 고는 소리도 났다.평소에는 항상 숨소리도 아주 가벼웠는데 오늘은 술 때문이었다.거칠어진 숨소리에 주현우는 씩 웃으며 다시 허아연의 머리카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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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7화

룸미러로 주현우를 바라보던 오원빈이 물었다."대표님, 왜 허 대표님과 제대로 얘기를 안 해보세요?"주현우가 고개를 들며 담담하게 말했다."아연이 사정이 좀 특별하잖아, 전에 내가 너무 모질게 굴기도 했고."주현우의 말에 오원빈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주현우는 지금 후회하고 있었다.하지만 이미 늦은 후회였다.그리고…… 허아연이 마음속에 숨겨둔 그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 30분 뒤, 차가 아레아 베이에 도착했고 주현우는 잠든 허아연을 안고 2층 침실로 올라갔다.아래층에서 물을 뜨고 올라오니 허아연이 어느새 침대에서 일어나 소파에 반듯하게 앉아 있었다.허아연이 깨어난 걸 본 주현우는 머리가 지끈거리고 겁부터 났다.아레아 베이로 돌아온 것 때문에 또 싸울까 봐 겁이 났다. 요즘 너무 자주 싸운 탓에 사실 주현우도 지쳐 있었다. 걸음을 늦추며 물컵을 들고 다가가는데 허아연이 고개를 들더니 듣기 좋은 목소리로 물었다."주현우 씨, 우리 지금 어디 있어요?"그 물음에 주현우는 순간 마음이 놓였다.필름이 끊긴 것이다. 과거와 현재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었다. 허아연 앞으로 다가간 주현우는 천천히 앞에 쪼그려 앉아 손에 물컵을 쥐여주고 손을 감싸 쥐며 말했다."여기 아레아 베이야. 걱정하지 마, 내일 돌아가자." 허아연이 고개를 숙여 주현우를 바라보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민경이는요?""민경이는 서진이랑 카드 놀이 중이야."말을 마친 주현우는 오른손을 들어 허아연의 얼굴을 가볍게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물었다."왜 그래? 기분이 안 좋아보이네?"허아연은 시선을 떨군 채, 한참 말이 없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방금 꿈에서 엄마를 봤어요. 어릴 때 꿈이었어요."방금 그 꿈 때문에 잠에서 깬 것이다.어릴 때부터 삶에 큰일이 생길 때마다 허아연은 엄마 꿈을 꿨다.허아연의 담담한 목소리에 주현우는 얼굴을 쓰다듬던 손에 살짝 힘을 주며 말했다. "아연아, 너한테는 우리가 있잖아. 나랑 민경이도 있고 아빠, 엄마도 있고 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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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8화

일기장?허아연이 주현우를 바라보며 물었다. "일기장이라니요?"주현우가 엄지손가락으로 허아연의 뺨을 문지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네 방 책장 두 번째 층에 있는 흰색 일기장에 쓴 좋아한다는 사람이 누구야?"주현우가 일기장의 색깔이며 위치까지 정확하게 얘기하자 잠시 멈칫하던 허아연은 곧바로 눈길을 피했다.그리고 오른손을 들어 주현우의 손목을 잡으며 말을 돌렸다."나 민경이한테 가볼게요."허아연은 얼굴을 쓰다듬던 주현우의 손을 떼어내고 소파에서 일어났다.주현우가 자신의 일기장을 몰래 봤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허아연이 일어나려 하자 주현우가 손목을 잡아 가볍게 힘을 주며 다시 끌어당겼다.허아연은 휘청거리며 주현우의 품에 안긴 채 고개를 들어 바라봤다.눈이 마주치자 주현우는 허아연의 목덜미를 감싸 쥔 채 눈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나한테 얘기할 수 없어?"허아연은 주현우의 눈길을 피했다.굳은 표정으로 한참 생각에 잠겨있던 허아연은 몇 번이나 입을 열려다가 그만두기를 반복했다. 차마 꺼내기 어려운 말이었다.허아연을 내려다보던 주현우의 머릿속에 결혼은 겉모습일 뿐, 사랑은 마음속에 담아둔다던 말이 떠올랐다. 주현우는 오른손으로 목덜미를 지그시 문지르며 허아연의 대답을 기다렸다.목덜미를 잡고 있는 힘을 느낀 허아연이 눈길을 피한 채 말했다."민경이한테 갈게요."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다.입이 떨어지지 않았다.허아연이 끝끝내 말을 돌리자 주현우는 얼굴을 살짝 들어 올리고 허리를 숙여 다시 입을 맞췄다.귀가 빨개진 허아연은 얼굴을 돌리며 피했다.주현우의 입술이 허아연의 목덜미로 향했다.주현우는 더 이상 일기장에 대해 캐묻지 않고 목덜미와 귓불에 입을 맞추었다.간질거리는 입맞춤에 허아연은 주현우를 슬쩍 밀어내며 부드럽게 말했다."주현우 씨, 이러지 마요. 민경이랑 올 수도 있잖아요."혀끝이 귓불을 스치자 숨을 죽이고 있던 허아연은 저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흘렸다.탐욕스럽게 장난을 이어가던 주현우가 귓불을 살짝 깨물며 나지막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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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9화

'나를 뭘로 본 거야?' 주현우가 아무리 양심이 없어도 허아연이 취한 틈을 타 잠자리를 가질 만큼 짐승은 아니었다.그건 앞으로 다시는 안 보겠다는 선전포고나 다름없었다. 주현우가 전화를 끊고 휴대폰을 수납장에 도로 내려놓자 허아연이 품에서 빠져나와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민경이 전화였죠? 가볼게요."허아연이 말을 마치자마자 주현우가 다시 끌어당기며 물었다."왜 자꾸 뒤로 피해? 이제는 너 안지도 못해?"고개를 든 허아연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허아연이 말없이 바라보자 주현우는 다시 꼭 껴안고 어깨에 턱을 올리고 말했다."민경이 일이 좀 있대. 우리 내일 민경이 보러 가자." 허아연과 주민경은 늘 붙어 다니는 사이였다. 무슨 일이든 함께했고 화장실까지 같이 갈 정도였는데 어릴 때는 변기 하나에서 같이 볼일을 본 적도 있었다.오예은과 오지은보다 오히려 더 쌍둥이 같았다.말을 마친 주현우가 허아연의 뺨에 살짝 입을 맞췄다.주현우의 말에 허아연도 더는 밀어내지 않았다. 다만 오늘 주현우가 어딘가 이상하다는 생각은 떨칠 수 없었다.그렇게 한동안 허아연을 안고 있던 주현우가 가볍게 한숨을 쉬며 나직이 말했다."아연아, 나 요즘 많이 힘들어."주현우는 좀처럼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허아연은 왼손으로 주현우의 허리를 가볍게 감싸고 오른손으로 등을 토닥이며 위로했다.허아연의 위로에 주현우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잠시 뒤, 주현우는 허아연의 뺨에 입을 맞추더니 상의하듯 말했다."아연아, 우리 이혼하지 말자. 응?"허아연은 말이 없었다. 고개를 돌려 바라본 주현우의 눈에는 쓸쓸함이 어려 있었다. 허아연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입으로는 그러자고 달래면서도 허아연은 오늘 주현우가 술을 많이 마셔서 취했다고 생각했다. 순순히 답하는 허아연을 보던 주현우는 더 환하게 웃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역시 취하면 더 귀엽네. 앞으로 술을 많이 먹여야겠어."주현우의 농담에 허아연은 등을 다독이며 타일렀다."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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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0화

침대에서 일어난 허아연은 바닥에 두 발을 내딛고 깍듯하게 말했다."아, 고마워요."조용히 허아연을 바라보던 주현우가 입을 열었다. "유건희 대표가 오늘은 너 집에서 쉬라고 했어. 일은 월요일에 해도 된대."허아연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알겠어요.""먼저 씻어. 유미 이모가 아침 차려놨어.""네."허아연은 짧게 대꾸하고 전에 아레아 베이에서 입던 옷을 챙겨 욕실로 들어갔다.거울 앞에 선 허아연은 목과 쇄골에 남은 자국을 바라보며 표정이 무거워졌다.평소에는 술을 입에 대지도 않지만 어제 같은 자리에서는 동료들과 상사 체면을 봐서라도 사회생활을 해야 했다. 아무 일도 없어서 다행이었다. 아니면 평생을 후회했을 것이다.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목을 가렸던 손을 내린 허아연은 흐릿한 어젯밤 기억이 드문드문 떠올랐다. 주현우가 어젯밤 일기장 얘기를 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은 것 같기도 했다.그 기억이 떠오른 허아연은 심장이 목구멍으로 튀어나올 듯 빠르게 뛰었다. 자신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허아연은 다른 말을 하지 않았을 거라 믿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감정을 쉽게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었다.하물며 물어본 사람이 주현우인데.잠시 후.샤워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은 뒤 허아연은 아래층으로 내려가 아침을 먹었다. 유미 이모는 잔뜩 신이 나서 허아연이 좋아하는 음식을 한가득 차려놓았다.허아연도 적잖이 먹었다.앞으로 다시 올 일이 없을 텐데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아침을 먹고 돌아갈 때는 주현우가 데려다주었다.돌아가는 길 내내 두 사람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허아연의 아파트 건물 아래 차가 멈춰 섰고 주현우도 차에서 내려서 배웅해 주었다. 그러나 딱 건물 아래까지였다. 허아연은 올라오라고 하지 않았고 주현우도 올라가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아파트 안으로 들어간 허아연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주현우는 차를 타고 떠났다.……그 뒤로 며칠간, 두 사람은 다시 각자의 일상을 보냈고 서로 연락 한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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