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를 모르는 그가 내 상사라니!의 모든 챕터: 챕터 191 - 챕터 200

388 챕터

제191화

허설아는 아빠가 아이 삶에 들어오는 걸 막지 않을 것이다.어려서부터 아빠는 늘 허설아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애지중지 보살피고 아껴주었다.그래서 허설아도 과거를 떠올리면 아빠가 생각났다.허설아를 걱정 없고 성격도 제멋대로인 아이로 키운 것도 아빠였다.연희도 이런 사랑이 필요하다는 걸 허설아가 간과한 것이다.지금까지 권지헌은 연희와 함께할 때 늘 잘해주었다.책임감 있고 다정하고 세심하고 완벽했다.연희도 권지헌을 아주 좋아한다는 걸 허설아는 알고 있었다.그렇다면 허설아는 두 사람이 만나는 걸 막지는 않을 것이다.권지헌이 입만 벙긋거리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권지헌은 허설아의 눈에서 일말의 변화도 없이 평온한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이런 게 아닌데... 권지헌한테 화를 내고 욕하고 때려야 하는 거 아닌가?그랬으면 권지헌도 뭐든 해명하고 어떻게 달래야 할지 알고 있었다.하지만 이런 허설아는 너무 조용했다.조용해서 권지헌도 말 한마디 할 수 없었다.금방 묘지에 도착했다.연동근의 비석에는 활짝 웃는 사진이 붙어 있었는데 허설아와 많이 닮아있었다. 옆에는 작은 비석이 또 있었고 강아지 연환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역시 웃는 모습이었다.연동근 사진 속 웃음을 보면 바로 한 가족인 걸 알 수 있었다.비석에는 '연동근의 딸 연환의 묘'라고 적혀 있었다.권지헌이 비석을 보는 걸 보던 허설아는 연환한테 사온 개껌을 놓으면서 입을 열었다."연환이는 저보다 다섯 살 어려요. 아빠가 변경 지역에서 사람들이 버린 강아지를 주운 거예요.""그때 연환이는 연환이 엄마 뱃속에 있었는데 우리 아빠 차 안에서 태어났어요.""국경을 넘을 때 연환이 엄마가 주변에 독사가 있는 걸 발견하고 아빠 앞을 막아서 아빠를 구하고 자기는 목숨을 잃었죠."그때부터 연환이는 허설아네 집 소중한 식구가 되었다."연환이는 아빠랑 누구보다 가까웠어요. 아빠가 떠나자 식음을 전폐하고 일주일 만에 따라갔죠."말하는 허설아 얼굴에 웃음기가 조금 어려있었다.다만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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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2화

비석을 보며 허설아가 나지막이 말했다."미안해요, 오랜만에 왔네요."사진 속 연동근은 허설아를 보며 여전히 인자하게 웃었다. 다정한 눈빛에 별빛이 반짝였다.마치 영원히 이렇게 허설아를 바라볼 것 같았다.연희가 태어난 후 허설아는 이곳에 거의 오지 않았다.연동근이 세상을 떠난 후 허설아는 울다가 기절할 정도였고 몇 번이나 과호흡이 온 적 있었다. 의사가 허설아한테 이러다간 임신 중단해야 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허설아는 그제야 권지헌이 작은 술도 하나 샀다는 걸 발견했다."아저씨가 무슨 술을 좋아하시는지 모르겠네요, 이거 괜찮을까요?"연동근은 사업가로서 술자리 접대가 적지 않았다.하지만 병에 걸린 후 허설아는 술 마시는 걸 절대 허락하지 않았다.그래서 꽃과 먹을 것 외에도 권지헌이 술을 한 병 샀다는 게 허설아는 좀 의외였다.권지헌이 허리를 굽혀 반쯤 무릎을 꿇고 손으로 비석 앞 잡초를 뽑았다.전혀 체면 깎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비석 위의 먼지도 주머니에서 꺼낸 휴지로 깨끗이 닦았다.연동근의 얼굴에는 티끌 하나 없었다.허설아가 권지헌의 팔을 잡아당겼다."이럴 필요 없어요. 같이 오자고 한 건 혼자 오기 무서워서예요."허설아는 이곳에 오는 게 무서웠다.머릿속에 또 온통 아빠 생전 모습으로 가득 찰 것 같았다.권지헌은 빠르게 비석 앞의 잡초를 전부 깨끗이 정리하고 일어서서 무심하게 손의 먼지를 툭툭 털었다.허설아는 권지헌 손바닥이 잡초에 긁혀 난 작고 옅은 상처들을 발견했다. 먼지와 흙까지 섞여 있어 보기만 해도 미간이 찌푸려졌다.분명 많이 아플 텐데.권지헌은 눈썹 하나 찌푸리지 않았다.권지헌은 허설아 옆에 서서 비석을 향해 허리를 숙이려 했다.허설아가 막으며 말했다. "그러지 마요. 우리 아빠는 아주 편한 분이에요, 이러면 아빠가 놀라실 거예요."허설아의 손이 마침 권지헌의 손목에 올려져 있었고 힘 있는 뛰는 맥박이 느껴졌는데 왠지 맥이 좀 어지러운 것 같았다."아저씨가 지금 네 표정을 보면 더 놀라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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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3화

묘지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계단을 내려가 차로 돌아왔다.허설아는 창밖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을 바라보았다.나뭇잎이 펄럭이며 휘날렸다.허설아는 손을 뻗어 나뭇잎 한 장을 잡았다.머릿속에는 연중근이 한 말이 떠올랐다.허설아가 이런 이름을 가질 수 있었던 건 연동근이 허설아가 자유롭고 구속받지 않길 바랐기 때문이었다.반대쪽 차 문이 닫히더니 허설아의 몸이 갑자기 뒤로 기울며 누군가 뒤에서 껴안았다. 손에 있던 나뭇잎도 떨어졌다.권지헌의 입술이 허설아의 목에 닿은 채 꼼짝하지 않았다.뒤에서 팔로 허설아를 꽉 껴안아 핏줄이 튀어나올 정도였다. 마치 어떠한 감정을 극도로 억누르는 것 같았다."그날 너랑 헤어지겠다고 했던 건 할아버지 전화를 받아서였어.""할아버지가 나한테 권씨 가문으로 돌아오라고 했어. 그래서 먼저 너랑 헤어지고 나서 고백하려고 한 거야."허설아가 담담하게 말했다."나랑 3년 넘게 거의 4년을 함께하는 동안 당신 정체를 고백할 기회는 수도 없이 많았지만 안 했잖아요."허설아는 권지헌이 무슨 신분인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알거지든 고귀하고 자존심 강한 권씨 집안 장남이든 상관없었다. 하지만 권지헌은 신경 쓰고 있었다. "권지헌 씨, 전엔 당신 정말 좋아했어요. 내가 좋다고 쫓아다닌 거니 나 안 좋아한 것도 당연해요. 해외 나간 건 아빠 모시고 치료받으러 간 거예요. 다만 그때 우연히 임신한 걸 알았을 뿐이에요."권지헌은 지금까지 연희가 자기 아이인지 직접적으로 묻지 않았다.허설아는 다른 방식으로 권지헌한테 답을 알려주었다.지금 허설아의 말을 들은 권지헌은 심장을 칼로 에이는 것 같았다.너무 아팠다."얼마 전에 회사에서 육아 수당 지급한다고 했던 거 사실 내가…… 연희 출생일을 알고 싶어서였어.""연희는 조산이었어요. 예정일은 1월인데 12월에 태어났죠. 내가 연희한테 생일이 5월이라고 말하라고 시킨 거예요."권지헌이 눈을 감았다."왜 나한테 연락 안 했어?""졸업식 때 한 번 갔었어요. 다만 당신이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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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4화

권지헌이 뭔가 말하려 했다.하지만 입을 열면 말이 나오지 않았다.허설아의 눈물이 똑하고 권지헌의 팔에 떨어졌다.허설아가 눈물을 닦았다.둘 사이에는 항상 많은 문제가 놓여 있었다. 어쩌면 그 내기부터 시작해서 둘은 억지로 맺어진 인연인지도 몰랐다. 결국엔 서로를 괴롭히기만 한 것이다. "권지헌 씨, 나를 안 좋아한다고 몇 번이나 말했는지 기억해요?"권지헌은 숨이 멎는 것 같았다. 허설아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62번이요. 그리고 또 여러번 강시우가 녹음해서 나한테 준 것도 있어요.""임신했을 때 입덧이 심했어요. 게다가 부모님이 다 아프셨고 국내를 왔다 갔다 하면서 할머니도 뵙고 장례 준비하고 큰아버지랑 싸워야 했어요. 그때 하마터면 아이를 잃을 뻔한 적도 있어요. 당신이 너무 보고 싶고 당신 품에서 한바탕 울고 싶을 때마다 그 녹음들을 들었어요.""한 번 들으면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권지헌 씨, 내가 이렇게 빨리 독립할 수 있었던 것도 당신 덕분이에요."녹음을 들을 때마다 허설아한테는 능지처참당하는 기분이었다.심지어 스스로 자기학대를 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하지만 칼로 한 번씩 도려내니 그런 감정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었다.허설아는 쓰러질 수 없었다.허설아의 어깨에 아버지가 기댈 수 있게 해야 했다. 아빠가 떠나실 때까지 허설아 걱정하게 만들 순 없었다.허설아가 한마디 할 때마다 권지헌의 가슴에 비수가 되어 하나씩 꽂혔다.허설아 몸에 꽂혔던 칼들이 전부 부메랑이 되어 더 세게 권지헌 심장에 꽂혔다.너무 아프고 괴로운 나머지 권지헌은 몇 번이나 목이 메었다."미안해, 몰랐어…… 내가, 내가 잘못했어."권지헌의 목소리가 갈라져서 볼품 없었다. 조수처럼 쓴맛이 밀려왔다.천 마디 만 마디 말이 전부 물거품이 되었다.그때 권지헌은 자기 마음을 인정하고 않고 허설아에게 말할 용기가 없어 회피했었다.권지헌은 한 사람을 사랑하는 걸 입 밖으로 말하는 게 부끄럽다고 생각했다.권지헌은 오만하면서도 자격지심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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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5화

전서준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네? 근데 내가 오빠 하고 싶은데."전서준은 아직 오빠를 해본 적이 없었다.유혜원이 앞으로 나와 전서준의 목덜미를 잡고 안아 들었다."네가 오빠는 무슨, 오빠답지도 않은데."다시 허설아를 보며 물었다."마침 이렇게 만났는데 같이 저녁 먹을래요? 근처에 태국 음식점 새로 열었는데 맛이 꽤 괜찮아요."허설아가 막 거절하려는데 유혜원이 또 말했다."내가 투자한 곳인데 가게 매출 올려준다고 생각해요. 지헌아, 밥값 내기 싫은 거 아니지?"권지헌이 고개를 저었다."당연하지."권지헌의 시선이 허설아 품의 연희한테 향했다. 권지헌을 보자 연희는 자연스럽게 손을 뻗으며 안아달라고 했다.아이들은 아주 단순해서 좋아하는 사람한테 안기고 싶어 했다.권지헌이 기대와 애원 섞인 눈빛으로 허설아를 보았다.허설아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권지헌이 조심스레 연희를 품에 안았다.연희는 권지헌의 얼굴을 보며 작은 손으로 받쳐 들고 작게 말했다."지헌 아저씨, 왜 울려고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권지헌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왠지 눈물도 고여 있는 것 같았다.가까이 보니 코도 좀 빨갰는데 연희는 이게 곧 울기 전 모습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어른도 울고 싶을 때가 있는 걸까?권지헌은 연희를 높이 들어 올려 자기 눈을 보지 못하게 했다.깨끗하고 티끌 하나 없이 맑은 눈을 보자 권지헌의 가슴이 욱신욱신 아파왔다."아저씨 괜찮아."권지헌 어깨에 앉은 연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아저씨, 우리 엄마랑 싸웠어요?"어린아이들은 항상 감정에 예민했다.제일 먼저 어른한테서 느껴지는 다른 기류를 알아챘다."아니야."싸운 건 아니었다. 예전에도 허설아는 권지헌과 다투지 않았는데 지금도 똑같을 줄은 몰랐다. 이리저리 살펴보던 유혜원은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다.하지만 두 사람 모두 다 성인이니 잠시 고민하다가는 말을 하지 않았다.그냥 못 본 척했다.식당에 도착해서 유혜원은 음식을 좀 시키고 허설아한테 메뉴판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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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6화

한밤중의 건영시는 불빛으로 찬란했다.지하 주차장에는 자주 차가 지나갔고 차량 불빛들이 스치는 순간마다 극도로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가득한 권지헌 얼굴이 보였다.권지헌의 손으로 얼굴을 받친 채 몸이 미세하게 떨렸다.오후에 묘지에서 허설아는 줄곧 아주 냉정했다.하지만 냉정하고 무표정하고 감정 기복이 없는 게 오히려 히스테리를 부리는 것보다 더 괴로웠다.그때의 목소리들이 지금 끊임없이 권지헌 귓가를 맴돌았다.어쩌면 술에 취해서 감정이 격해졌거나 밤이 깊어서 마음속 감정들이 전부 폭발한 것일 수도 있었다.전에도 이미 강시우한테서 듣기도 했고 오늘도 허설아 입에서 과거 자기가 한 잘못을 알게 되었다. 지금에야 자신이 틀렸을 뿐만 아니라 그것도 정말 터무니없이 틀렸다는 걸 깨달았다.휴대폰 벨이 울렸다.권지헌이 얼굴을 세게 문지르고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상대는 영어 문서를 보내왔다.문서는 허설아라는 한국 국적 여성이 그 병원에서 출산한 기록이었다.아이 아빠 란에는 어떤 정보도 기입되지 않았다.출생일은 재작년 12월 크리스마스이브 밤이었다.여자아이였다.문서 안에는 보관용 사진도 한 장 있었다.사진 속 허설아는 옷을 입지 않고 알몸 상태로 병원 이불만 덮은 채 작고 작은 아기를 안고 있었다.아이와 얼굴을 맞대고 있는 허설아는 힘든 기색이 역력했다. 그리고 말할 수 없는 행복과 만족감이 느껴졌다.이 모습을 보니 생명이 하나 탄생하는 게 대단하다고 느껴지는 동시에 비참해지는 기분에 권지헌은 눈물을 감았다.권지헌은 상상할 수 없었다.허설아는 예전에 아주 여린 사람이었다. 그림 그릴 때 도화지를 자르다가 손가락을 베이기만 해도 한참을 투덜대며 권지헌한테 응석을 부렸다.허설아는 독립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심지어 영어 자격증 시험 신청도 권지헌이 해주고 미리 시험장에 가보고 듣기평가용 헤드폰도 충전해주어야 했다.그런데 그런 사람이 타국에서 혼자 아픈 아버지 사망 처리를 하고 혼자 고통을 참으며 아이를 낳았다니.사진이 따뜻하게 느껴질 수록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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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7화

이렇게 비싼 옷은 돈 벌기가 얼마나 힘든지 모르는 허설아 같은 아가씨나 사는 거라고 아주 거슬리는 말을 했었다. 허설아네 집 돈이 깨끗한지 의심하는 사람도 있었다.권지헌의 집안을 아는 정일우만 이어폰을 빼고 눈살을 찌푸리며 한마디 쏘아붙였다."그렇게 그럴싸하게 말하는 거 보니 너희도 미녀가 돈 써주길 바라는데 실패해서 열 받은 거 아니야? 여기서 헛소문 퍼뜨리지 말고 공부나 하러 가."다른 무리는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하지만 그 후로 그 옷을 입으려고만 하면 주변 사람들의 이상한 눈빛을 느껴졌다.놀리려 하거나 적나라한 질투의 눈빛이었다.권지헌은 그 옷을 입지 않고 아예 집으로 가져갔다.옷장을 열어 한참을 뒤진 끝에 구석에 걸려 있는 트렌치코트를 한 벌 찾았다.명품 옷은 핏이 좋아서 몇 년이 지나도 여전히 반듯한 채로 택도 뜯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가격표 부분은 허설아가 칼로 잘라낸 듯했다. 대신 선을 몇 번 그어 일러스트로 귀여운 허설아 캐릭터를 그려놓았다.권지헌은 트렌치코트를 옷걸이에서 내려 품에 안고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꿈속에는 귓가를 스치는 바람과 그 시절 허설아의 맑고 경쾌한 웃음소리도 들렸다. "이 옷 입으면 정말 잘 어울릴 거야!""왜 나한테 이렇게 많이 사줘?""너 좋아하니까, 좋아하니까 사주는 거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너잖아!"꿈속은 사탕처럼 달콤했다. 너무 단 나머지 느끼할 정도였다. 심장에서 귀청이 터질 듯한 아프고 시큰거리는 진동이 전해졌다. -권율 그룹은 한동안 연달아 바빴다.미술팀 표절 사건을 처리하고 급히 새로 미술팀 인력을 뽑았지만 결과물이 여전히 만족스럽지 못했다.회의실에서 여러 팀이 이 일로 논쟁을 멈추지 않았다.조민규가 입을 열었다."현재 우리 계획은 서풍 선생님을 초청해서 몇 장 작업을 부탁하는 건데 서풍 선생님이 연락이 잘 안 돼서 예비 계획이 필요합니다."김아림이 손에 든 펜을 돌렸다. "몇 장을 서풍 선생님한테 부탁해서 급한 불 끄는 건 괜찮지만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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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8화

클래식 스타일에 재단이 완벽한 코트였다.분명 무릎이 넘어가는 긴 기장인데도 권지헌이 입으니 무릎 위로 올라갔다.권지헌의 차가운 얼굴에도 우아하고 지적인 느낌이 더해져 사람이 훨씬 부드러워 보였다.캐시미어 니트 밖에는 석고 인형이 달린 니트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무슨 모양인지는 알 수 없었다.하지만 권지헌의 분위기가 너무 독특해서 무슨 무늬가 아니어도 마치 명품 브랜드 악세서리 같았다.마치 그 석고 인형이 원래부터 이 트렌치코트와 세트인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안초희가 작게 말했다."역시 대표님은 대표님이야. 저 코트 나도 전에 남편한테 사줬는데 우리 남편이 입으니까 호빗 같더라."롱 코트는 원래 몸매 요구가 높았다. 안초희 남편도 나름 준수한 외모에 피부가 하얗고 대학 교수처럼 지적으로 생겼다.하지만 권지헌의 모델 같은 신체 비율과 비교하면 조금 부족한 건 사실이었다. 허설아가 턱을 괴고 작게 말했다."새 옷 같아 보이네. 아마 신상인지는 신경 안 쓰는 것 같아.""그러게. 대표님 같은 바쁜 분이 어떻게 출시 시기까지 확인하시겠어."김아림이 고개를 저었다."그건 잘못 본 것 같은데. 대표님 저 니트 목걸이 좀 봐.""난 왜 어떤 미대생이 석고 덩어리에서 아무렇게나 떼어낸 것처럼 보이지? 혹시 대표님 여자친구가 사준 거 아닐까? 대표님이 저런 걸 하고 다니시겠어?"허설아의 손가락이 움츠러들었다.아무도 모른다는 걸 알면서도 긴장되었다.김아림 말이 맞았다.그 니트 목걸이는 허설아가 대학 때 순간적으로 느낌이 와서 아무렇게나 만든 거였다.원래 석고로 인형을 빚으려 했지만 허설아는 그림은 그려도 조각은 정말 못했다.조각칼을 들고 한참 다듬다가 결국 석고 인형 얼굴을 한 번에 확 파버렸다. 그때 허설아는 목걸이가 마음에 안 들어서 옆에 내팽개쳐뒀고 나중에는 어떻게 됐는지도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냥 버린 줄 알았는데 권지헌이 챙겨뒀다니.게다가 코트까지도.허설아는 권지헌이 코트를 진작 버렸을 거라고 생각했었다.허설아는 무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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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9화

"허설아 씨, 내 사무실로 와."안초희가 미처 화이팅하라는 표정을 지을 새도 없이 권지헌이 안초희와 김아림의 이름까지 불렀다.세 사람이 나란히 권지헌 사무실에 들어섰다."각 팀들 지난 분기 보고서가 전부 하락세를 보이고 있어요. 최근 원인을 정리해서 각자 상급자한테 보고해요. 허설아 씨는 남고 김아림 씨와 안초희 씨는 문 닫고 나가요."권지헌의 한마디에 안초희와 김아림은 토끼보다 빠르게 달아났다.권지헌한테 붙잡혀서 또 무슨 말을 들을까 봐 두려웠다.허설아한테 눈짓할 겨를조차 없었다.역시 자본가는 아무리 잘생겨도 자본가였다다!권지헌은 문 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손가락으로 책상을 툭툭 두드렸다."앉아."부드러운 소파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렸지만 권지헌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책상 서랍에 사탕 있어. 차는 내가 방금 우린 거야, 설탕 넣었어."홍차의 그윽한 향이 은은하게 퍼져 회의실 안 머리를 어지럽게 만드는 향수보다 훨씬 나았다.허설아는 찻잔에 손대지 않았다."대표님, 무슨 일일까요? 지난 분기 보고서는 나도 할 줄 알아요.""말하는 걸 깜빡했네. 너희 상사가 지사로 발령나서 앞으로 보고는 나한테 직접 해."허설아가 입술을 말아물고 예쁘장한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이어 찻잔을 들어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천천히 말했다."제 상사가……""승진이야, 걱정 안 해도 돼. 남편이 최근에 해주시로 발령 났는데 마침 부부가 함께할 수 있게 된 거야."허설아의 직속 상사는 늘 허설아를 아껴주었다.시원시원한 불같은 커리어우먼이었다.전에 접대 자리에서 갑측 회사에서 허설아한테 술을 권했을 때도 상사가 막아주었다. 왠지 갑작스러운 승진이라니 뭔가 석연치 않았지만 어쨌든 승진에 연봉 인상에 부부 상봉이니 나쁠 건 없어 보였다.허설아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사무실의 커다란 석영시계 초침이 규칙적으로 움직이며 똑딱똑딱 소리를 냈다.권지헌이 펜을 들어 사인하고 몸을 일으켜 서류를 가져와 허설아 앞에 놓았다."전에 너희 팀 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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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0화

퇴근 후, 허설아는 연희를 데리고 병원으로 향했다.보온통에는 허민정에게 줄 음식이 들어 있었다. 병실 문을 열었을 때 허민정은 막 간병인이 준비한 저녁 도시락 뚜껑을 열려던 참이었다.허설아와 연희가 들어오는 것을 본 허민정은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도 투덜대듯 말했다."내가 밥 못 먹는 것도 아닌데 뭐 하러 또 와. 시간이 그렇게 남아돌아?"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손은 어느새 재빨리 병원 도시락을 덮고 허설아가 건네는 보온통을 소중히 받아들었다.허설아가 도시락 뚜껑을 열자 청경채 볶음, 하얗게 삶아낸 새우, 그리고 다진 고기를 볶은 요리에 흰 쌀밥 하나가 들어있었다.산해진미는 아니어도 나름 정갈한 식사였다.허설아가 도시락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어차피 샀으니까 이건 제가 먹을게요. 엄마는 제가 정성껏 챙겨온 음식 드세요."허민정이 젓가락을 쥔 채 미간을 찌푸렸다."너 집에서 저녁 안 먹고 왔어?""먹었죠, 먹었는데도 또 배가 고파서 그래요. 도시락이 먹음직스럽게 생겨서 조금만 먹어볼게요."허설아는 일회용 젓가락으로 콩을 집어 입에 쏙 넣어버렸다.허민정은 그런 딸을 어쩔 수 없다는 듯 애정 가득하게 바라보았다. "너도 참, 이젠 엄마가 다 된 사람이 아직도 어렸을 때랑 하나도 안 변했어."옛날 생각이 떠올랐다.어린 시절 허민정이 병원에 입원했던 때가 있었다. 허설아는 엄마의 병원 도시락을 자기가 먹겠다고 생떼를 부렸다. 평소엔 먹어본 적 없던 음식이라 도시락이 유난히 맛있어 보였던 것이다.허민정이 밥을 떠먹으며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그때 너 말이야, 어차피 엄마는 아파서 입맛도 없을 테니 자기가 먹는 게 낫다고 했잖아. 차라리 네가 맛있게 먹는 걸 보면 엄마도 따라서 먹고 싶어질 거라면서."어린 시절의 허설아는 언제나 기발한 논리로 가득했다.허민정이 허설아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너희 할머니가 남기신 그 집을 팔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고풍스러운 양옥집은 이미 여러 해 동안 주인 없이 텅 비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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