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허설아는 연희를 데리고 병원으로 향했다.보온통에는 허민정에게 줄 음식이 들어 있었다. 병실 문을 열었을 때 허민정은 막 간병인이 준비한 저녁 도시락 뚜껑을 열려던 참이었다.허설아와 연희가 들어오는 것을 본 허민정은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도 투덜대듯 말했다."내가 밥 못 먹는 것도 아닌데 뭐 하러 또 와. 시간이 그렇게 남아돌아?"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손은 어느새 재빨리 병원 도시락을 덮고 허설아가 건네는 보온통을 소중히 받아들었다.허설아가 도시락 뚜껑을 열자 청경채 볶음, 하얗게 삶아낸 새우, 그리고 다진 고기를 볶은 요리에 흰 쌀밥 하나가 들어있었다.산해진미는 아니어도 나름 정갈한 식사였다.허설아가 도시락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어차피 샀으니까 이건 제가 먹을게요. 엄마는 제가 정성껏 챙겨온 음식 드세요."허민정이 젓가락을 쥔 채 미간을 찌푸렸다."너 집에서 저녁 안 먹고 왔어?""먹었죠, 먹었는데도 또 배가 고파서 그래요. 도시락이 먹음직스럽게 생겨서 조금만 먹어볼게요."허설아는 일회용 젓가락으로 콩을 집어 입에 쏙 넣어버렸다.허민정은 그런 딸을 어쩔 수 없다는 듯 애정 가득하게 바라보았다. "너도 참, 이젠 엄마가 다 된 사람이 아직도 어렸을 때랑 하나도 안 변했어."옛날 생각이 떠올랐다.어린 시절 허민정이 병원에 입원했던 때가 있었다. 허설아는 엄마의 병원 도시락을 자기가 먹겠다고 생떼를 부렸다. 평소엔 먹어본 적 없던 음식이라 도시락이 유난히 맛있어 보였던 것이다.허민정이 밥을 떠먹으며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그때 너 말이야, 어차피 엄마는 아파서 입맛도 없을 테니 자기가 먹는 게 낫다고 했잖아. 차라리 네가 맛있게 먹는 걸 보면 엄마도 따라서 먹고 싶어질 거라면서."어린 시절의 허설아는 언제나 기발한 논리로 가득했다.허민정이 허설아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너희 할머니가 남기신 그 집을 팔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고풍스러운 양옥집은 이미 여러 해 동안 주인 없이 텅 비어 있었다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