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전 했던 말은 내 실수였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우리 사이는 이 지경에 이를 정도로 최악은 아니지 않았느냐.”“내일이 할머니 생신이니 그전까지 잘 생각해 보거라.”“연수야, 나는 너와 여생을 함께 보내자는 약속을 지키고 싶다.”말을 마친 사옥현은 고개를 숙인 채로 서 있는 그녀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한참이 지났지만 그녀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금 전의 몸싸움 덕분에 머리에 하고 있던 비녀가 빠지며 바닥에 떨어졌고 머리카락 몇 가닥이 어깨를 타고 내려와 얼굴에 드리워져 있었다.아련한 옆모습은 여전히 정갈하고 고왔지만, 겉옷에는 아까 그가 힘껏 움켜쥔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그는 손을 뻗어 주름을 펴주려 했지만,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서더니 겁에 질린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사옥현의 두 눈에 슬픔이 고였다.그는 한참이나 허공에 손을 뻗고 있다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연수야, 미안하다….”계연수는 그를 보지도, 그의 말에 응답을 주지도 않고 땅바닥만 쳐다보고 있었다.한참이 지난 후, 그녀가 말했다.“나으리, 이만 나가주시겠습니까. 저는 정말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사옥현은 묵묵히 손을 내렸다. 무언가가 가슴을 꽉 짓누르고 있는 것처럼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그는 상심한 얼굴로 계연수를 바라보며 말했다.“연수야, 설령 내가 잘못한 게 있더라도 내게 뉘우칠 기회를 한번 줄 수는 있지 않느냐. 어찌 이렇게 매정하게 내게서 뒤돌아서려 하느냐.”“화리는 장난이 아니다. 잘 생각해 보거라.”말을 마친 사옥현은 도망치듯 밖으로 나갔다.그가 떠난 후, 계연수는 걱정 가득한 얼굴로 달려 들어오는 용춘을 보고 작게 말했다.“용춘아, 혼자 좀 있고 싶으니 이만 나가주렴.”걸음을 멈춘 용춘은 상심한 얼굴로 입술을 깨물고는 조용히 밖으로 나가 문을 닫았다.그녀는 어떻게든 사옥현을 막아보려 했지만 그의 시종에게 꽉 잡혀 안으로 들어올 수도 없었다. 영혼이 나간 듯한 계연수를 보니 용춘도 가슴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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