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기억을 잃은 척할 때는 언제고: Chapter 31 - Chapter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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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화

탁.배윤제는 어두운 얼굴로 서류를 힘주어 덮었고 그 모습을 보게 된 박도윤은 빠르게 화제를 돌렸다.“그러고 보면 이상하단 말이야. 호텔은 줄곧 어르신과 네가 관리했고 배윤호 대표가 온 적은 거의 없잖아. 그런데 왜 갑자기 사람들을 데리고 이곳으로 온 거지?”누군가 웃으며 말했다.“혹시 강하율의 고백 영상 때문인가?”누가 봐도 장난이었는데 배윤제는 본능적으로 반박했다.“그럴 리가. 형이 강하율을 마음에 들어 할 리가 없잖아. 게다가 강하율이 사랑하는 건 나라고.”강하율이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정도로 배윤제를 사랑한다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는 일이었다.그럼에도 최근 들어 달라진 강하율의 태도를 떠올린 배윤제는 자기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다음 순간 벨이 울렸고, 장천우가 문을 열어 음식들이 놓인 카트를 끌고 온 직원과 함께 안으로 들어왔다.“유 부총괄님께서 준비한 식사입니다.”“그래.”배윤제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박도윤 등 사람들에게 함께 먹자고 손짓을 했다.그들이 자리에 앉은 뒤 직원이 음식들을 하나둘 테이블 위에 놓기 시작했다.음식을 맛본 사람들은 맛있다며 입이 마르도록 칭찬했으나 정작 배윤제는 몇 입 먹고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뭔가 부족한 기분이 들었다.장천우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제가 쉐프에게 음식을 몇 가지 더 준비하라고 하겠습니다.”“그래.”...강하율은 바로 사무실로 돌아가는 대신 쉐프의 사무실로 향했다.그녀는 저녁 식사에서의 메뉴를 다시 한번 확인해 볼 생각이었다. 이번에는 외국인들이 많아서 가리는 음식들이 많았기 때문이다.그런데 배윤제의 비서 장천우도 그곳에 있었다.장천우는 강하율을 보고 살짝 놀라더니 이내 경멸 어린 눈빛을 해 보였다.강하율이 배윤제와 연인 사이였을 때, 장천우는 늘 강하율을 아니꼬워했었다.이제 강하율은 더 이상 장천우와 엮이고 싶지 않았기에 장천우를 지나쳐 곧장 쉐프의 앞으로 걸어갔다.그녀가 메뉴를 물어보려고 하는데 장천우가 갑자기 손을 들어 강하율을 가리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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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화

장천우의 말에 강하율은 조금 화가 나기도, 기가 막히기도 했다.윌른 호텔은 강하율과 배윤제 부모님의 자식과도 같은 존재였다.강하율과 배윤제가 성장한 것처럼 윌른 호텔도 그동안 그들과 함께 성장해 왔다. 그와 동시에 윌른 호텔은 그들의 성장을 지켜봐 온 곳이기도 했기에 그 의미가 남달랐다.‘하지만 이제는...’장천우는 배윤제의 비서였기에 장천우의 태도가 곧 배윤제의 태도이기도 했다.‘그러니까 배윤제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거지?’어릴 적 그녀를 거둬준 것도, 그녀가 윌른 호텔에서 일하고 있는 것도, 심지어 한때 그녀를 향한 감정까지도 배윤제에게는 은혜를 베푼 것일 뿐이었다.강하율은 자조하듯 피식 웃었다. 예전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일들조차 이제는 더 이상 중요치 않았다.그런 생각이 드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강하율은 차분한 얼굴로 겉옷을 벗고 소매를 걷어 올렸다.“알겠어요. 대표님이 요구하셨다고 하니 직원으로서 최선을 다해야죠.”강하율은 주방으로 가서 요리를 몇 가지 했다.습관 때문인지 그녀는 배윤제가 좋아하는 음식들만 준비했고 일부러 음식을 망치거나 하지도 않았다.장천우의 말처럼 그녀가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건 배씨 가문 덕분이었기에 그녀에게는 반항할 자격이 없었다.적어도 지금은 그랬다.장천우는 음식들을 바라보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하율에게 자신과 함께 배윤제를 보러 갈 기회를 주려고 했는데 몸을 돌리자 강하율이 보이지 않았다.“멍청하긴.”...스위트룸.장천우는 칭찬받고 싶은 마음에 서둘러 배윤제의 앞에 음식을 놓았다.“도련님, 식사하세요.”배윤제는 원래 입맛이 없었으나 맛을 한 번 본 뒤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강하율, 그렇게 아닌 척하더니 결국에는 이러잖아.’그는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음식을 먹다가 방문 쪽을 힐끗 보았다.“안으로 들어오라고 해.”장천우는 당황했다.“네? 누구를 찾으시는 건가요?”“누구겠어? 음식을 한 사람이지. 이제야 마음을 고쳐먹었나 보지?”배윤제는 코웃음을 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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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화

“죄송하지만 그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강하율은 배윤제의 요구를 거절했다.배윤제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나른한 자세를 했다. 그의 얼굴에서 강하율의 속내를 꿰뚫어 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엿보였다.배윤제는 강하율이 순순히 고개를 숙인다면 더 이상 그녀를 난처하게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강하율이 무심한 표정으로 말했다.“저녁에 VIP 고객께서 카라디움에서 식사할 예정인데 그곳을 집중적으로 케어해야 해서요. 인력이 필요하시다면 다른 직원을 찾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질투하지도, 슬퍼하지도 않았다.마치 배윤제를 상대하는 것이 단순히 업무인 것처럼 말이다.미간을 찌푸린 배윤제는 하마터면 버럭 화를 낼 뻔했다. 그는 강하율이 대체 왜 고집을 부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배윤제는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이자 상사이니 고분고분 굴어도 상관없지 않은가?배윤제는 심호흡을 한 뒤 차갑게 말했다.“아니, 이 일은 반드시 네가 맡아야 해. 오늘 오전에 로비에서 그런 일이 있었던 것도 너 때문이잖아. 네가 맡지 않는다면 다인이가 앞으로 어떻게 호텔에서 권위를 세우겠어?”‘아, 그런 거였어?’강하율은 시선을 내려뜨려 바닥을 바라보았다.비록 괴롭지는 않았지만 심경이 복잡했다.관계를 끊은 후의 후유증처럼 이따금 마음이 쿡쿡 쑤셨다.배윤제는 강하율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엷은 미소를 지었다. 마치 강하율이 연기하고 있다는 걸 안다는 듯이 말이다.“강하율, 만약...”싫다면 본인한테 애원하면 된다고 말할 생각이었다.“알겠습니다.”강하율은 배윤제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그의 말허리를 자르면서 말했다.“더 분부하실 일은 없습니까? 오늘 예약되지 않은 곳이 두 군데 남아있거든요. 만약 실외도 괜찮으시다면 정원과 수영장이 있는 하르딘도 있는데 어디를 더 선호하시나요?”프로페셔널한 강하율은 낯선 사람을 대하듯 배윤제를 대했는데 태도가 매우 정중해서 흠을 잡을 수가 없었다.배윤제는 강하율의 태도에 굉장히 언짢아져서 날 선 목소리로 말했다.“강하율.”“네, 말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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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화

강하율은 룸에서 나온 뒤 점심조차 먹지 못하고 바로 하르딘으로 향했다.하르딘에는 수영장이 하나 있었는데 일반 수영장보다 자연 친화적이고 예스러운 느낌이 강한 편이었다.수영장 근처에는 꽃도 많았고 석가산도 있었다.그리고 옆에는 원목으로 된 긴 통로가 있었는데 실크가 더해져 굉장히 낭만적이었다.강하율은 수많은 커플들이 그곳에서 결혼식을 치르는 모습을 보아왔었고, 배윤제와 그곳에서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도 해봤었다.웨딩드레스는 어떤 스타일을 고를지, 어떻게 그 장소를 꾸며야 할지도 고민해 봤었다.그러나 익숙한 환경임에도 이제는 더 이상 결혼식과 관련한 그 어떤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배윤제만 달라진 게 아니라 그녀도 달라진 듯했다.정신을 차리고 수영장 근처로 다가간 강하율은 바닥에 떨어진 낙엽을 보고 하는 수 없이 프런트 데스크에 연락했다.“하르딘에 힘 좋은 사람들 좀 보내줘요.”프런트 데스크 직원은 우물쭈물하며 대답했다.“강 팀장님, 대표님께서 강 팀장님의 성의를 보고 싶다면서 강 팀장님이 모든 걸 직접 하셔야 한다고 전하셨어요.”강하율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바람이 불자 서늘함이 느껴졌다.배윤제는 자기중심적이고 또 한다면 하는 사람이었기에 강하율도 굳이 다른 사람을 난처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알겠어요.”전화를 끊은 뒤 강하율은 움직이기 시작했다.배윤제가 아니라 다른 고객이 이런 요구를 했어도 강하율은 어쩔 수 없이 고객의 요구대로 해야 했다. 그러니 별반 차이가 없는 일이었다.‘다만...’다만 강하율은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기분을 느꼈다.그래서 아무 생각도 안 하려고 일에만 몰두했다.오후 세 시가 넘어서야 강하율은 겨우 하르딘을 다 꾸몄다.그녀는 심지어 평소처럼 사진을 몇 장 찍은 뒤 SNS에 게시물을 올렸다.[저희 윌른 호텔에 새로운 동료가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그 동료를 위해 하르딘에서 환영회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예약이 필요하시다면 댓글 또는 디엠 남겨주세요.]강하율은 굉장히 프로페셔널했다.이내 단골들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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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화

양승아는 배윤호라면 본인이 원하지 않는 이상 절대 다른 사람에게 이용당하지 않는다는 걸 잠깐 잊었다.꿈속에서 강하율은 몸이 눕혀지고, 퉁퉁 부어서 뻐근하던 두 다리가 곧게 펴지는 걸 느꼈다.온몸의 혈액이 순환되는 기분에 강하율은 편하게 숨을 내쉬었다.그녀는 잠결에 눈을 살짝 뜬 상태로 남자를 바라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오빠.”“응.”배윤호는 자기도 모르게 대답했다.“악몽이네.”강하율은 몸을 뒤집은 뒤 계속해 잠을 잤다.“...”배윤호의 눈빛이 어두워졌다.양승아는 웃고 싶어도 웃을 수 없어서 억지로 참아야 했다.강하율은 한참 뒤에야 잠에서 깼다.자신이 누워서 자고 있었던 걸 깨달은 그녀는 황급히 벌떡 일어났다.다행히 본 사람은 없는 듯했다.시간이 거의 다 된 걸 확인한 강하율은 옷매무새를 정리한 뒤 고객들을 맞이하러 밖으로 나갔다.그런데 밖으로 나오자마자 메인 홀 쪽 창가에 늘씬한 몸매의 배윤호가 서 있는 게 보였다.배윤호는 담배를 든 채 창틀에 손을 올려놓고 있었다. 밤바람이 불자 그의 주변으로 연기가 흩어지며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배윤호는 강하율을 발견하는 순간 바로 담배를 끄고 천천히 그녀에게로 다가갔다.강하윤에게로 향한 그의 시선은 밤을 연상케 했고, 약간의 위험함이 느껴졌다.마치 뭔가가 곧 울타리 밖으로 뛰쳐나올 것만 같았다.강하율은 순간 숨을 들이켜며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다.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마침 클라이언트가 도착했다.배윤호는 클라이언트에게 인사를 건넸고 강하율은 빠르게 가장자리에 섰다.인사를 마친 뒤 귀티가 흐르는 헬렌 로어가 배윤호의 정장을 바라보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배윤호 씨는 디테일에도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쓰시는 분이라고 알고 있는데... 이제 곧 좋은 소식이 들려오려나 봐요.”그 말을 들은 강하율은 자기도 모르게 배윤호를 바라봤다.그리고 그제야 배윤호의 옷이 살짝 구겨진 게 보였다. 마치 누군가에게 잡힌 적이 있는 듯한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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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화

스위트룸 안.소파에 앉아 있던 박도윤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자 휴대폰을 하던 사람들이 고개를 들며 물었다.“뭐가 그렇게 즐거워?”“강하율이 올린 게시물을 봤거든.”박도윤이 말했다.“걔 우리 다 차단한 거 아니었어? 어떻게 본 거야?”그때 마침 배윤제가 서재에서 나왔다.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박도윤을 힐끗 바라봤다.박도윤은 흠칫하며 빠르게 설명했다.“예전에 게임 때문에 부계를 하나 만들었었거든. 아까 게임하다가 갑자기 생각나서 부계에 로그인해서 확인해 봤는데 글쎄 게시물을 올렸더라고.”예전에 그들은 한동안 게임에 푹 빠져 있었다.그리고 프로 게임팀에 투자한 적도 있었는데 해당 팀이 몇 번 상을 받은 뒤로는 거기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배윤제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손을 뻗어 박도윤의 휴대폰을 낚아챘다.강하율의 계정을 클릭하니 그녀가 열심히 꾸민 하르딘의 사진이 보였다.심지어 강하율은 사진을 올리면서 호텔 홍보까지 했다.강하율이 자기 주제를 파악하고 철 든 모습을 보여주었으니 배윤제는 당연히 기뻐해야 했다.그러나 배윤제는 왠지 모르게 이상함을 느꼈다.강하율은 너무도 냉정해서 실연의 슬픔에 빠진 여자 같지 않았다.하지만 강하율이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이든, 정말로 화가 난 것이든 결국에는 다시 그의 곁으로 돌아올 것이다.강하율에게는 집도 없었고, 그녀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이제 그밖에 없으니 말이다.그렇게 생각하자 배윤제는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마침 정다인이 다가와 다정하게 배윤제의 팔에 팔짱을 꼈다.“윤제 씨, 환영회 해줘서 고마워요. 앞으로 꼭 열심히 일할게요. 그런데 강하율 씨가 저랑 잘 지내려고 할지 모르겠네요.”“걱정하지 마. 그럴 테니까.”“네.”정다인의 미소에 알 수 없는 감정이 담겨 있었다....달빛 아래, 강하율은 길을 걸으면서 초콜릿 맛 우유를 마셨다.순간 온몸이 따뜻해지는 것만 같았다.강하율이 잠깐의 휴식을 즐기고 있을 때 차가운 표정의 배윤제가 갑자기 나타났다.“따라와. 사과해야지.”배윤제는 강하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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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화

“...”강하율은 시간을 계산해 봤다.연락이 되지 않았을 때 강하율은 카라디움 쪽에서 쪽잠을 잤었기에 그걸 증명해 줄 사람은 없었다.강하율이 대답하지 않자 배윤제는 인내심이 닳았다.“강하율, 나는 너한테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 지금 잘못을 인정한다면 예전에 있었던 일까지 그냥 넘어가 줄게.”‘그냥 넘어가 주겠다고? 그러니까 지금도, 예전에도 다 내가 잘못했다는 거지?’강하율은 기가 막혀서 헛웃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배윤제는 그녀에게 귀찮게 굴지 말라면서 계속 그녀를 붙잡고 정다인에게 고개를 숙이라고 강요했다.강하율은 마치 옛날 옛적의 첩처럼 중간에 껴서 고생했다.남자한테는 순종해야 하고 안주인 앞에서는 스스로를 낮춰야 한다니, 우습지 않은가?강하율은 입꼬리를 올리더니 싸늘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며 말했다.“신고하죠.”“뭐라고?”배윤제는 강하율을 빤히 바라보았다.그의 표정은 한없이 차가웠다.그는 강하율이 왜 자꾸 자신과 맞서려 드는지 알 수 없었다.그를 화나게 해서 기억을 되찾게 만들려는 걸까?‘아니면...’강하율이 다시 한번 말했다.“신고하자고요. 제가 설명해도 소용없으니 경찰을 믿는 수밖에 없겠네요. 그렇게 정다인 씨를 아끼시는데 대표님도 당연히 진범이 잡히길 바라시겠죠.”그 말에 배윤제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언짢은 얼굴로 강하율을 바라보았다.그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강하율, 다시 한번 기회를 줄게.”“됐습니다. 빨리 문제를 해결하죠.”강하율은 짜증 난다는 표정으로 거절했다.배윤제는 강하율을 뚫어질 듯이 쳐다보며 그녀의 얼굴에서 빈틈을 찾아내려고 했다.강하율은 그를 사랑하니 절대 그를 정말로 화나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그런데 강하율은 그의 예상과 달리 그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휴대폰만 들여다보았다.그녀는 112를 누르면서 경고하는 눈빛으로 정다인을 바라봤다.“정다인 씨, 저쪽에 바위같이 생긴 거 보이시죠?”정다인은 흠칫하며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저게 뭔데요?”“CC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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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화

다가온 사람은 바로 배윤호의 비서 양승아였다.양승아를 본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자세를 바로 하면서 본능적으로 그의 뒤쪽을 바라봤고, 배윤호가 오지 않았음을 확인한 뒤에야 겨우 안도했다.양승아는 배윤제에게 다가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배윤제 씨, 방해가 되었다면 죄송합니다. 대표님께서 추후 일정에 영향을 줄까 봐 걱정된다며 제게 강하율 씨의 물건을 얼른 돌려주라고 하셔서요.”말을 마친 뒤 양승아는 강하율의 목을 조르고 있는 배윤제의 손을 힐끗 바라봤다.배윤제는 배윤호를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배윤호의 나이가 더 많았고 배씨 가문에서는 둘이 화목하게 지내기를 바랐다.이때 박도윤이 앞으로 나서서 배윤제를 말렸다.“배윤호 대표님께서 볼일이 있으시다니 그쯤 해.”박도윤은 그렇게 말하면서 강하율을 힐끔댔다. 흰 목 위에 붉은 흔적이 남은 걸 보니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배윤제는 손을 닦으면서 싱긋 웃었다.“그래.”강하율은 겨우 숨을 쉬며 손을 뻗어 양승아가 건넨 서류를 받았다.“감사합니다.”구해줘서 고맙다는 의미가 담긴 인사였다.“별말씀을요. 오늘 오후에 이곳 일을 다 마친 뒤 카라디움까지 와서 직접 준비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양승아의 말 덕분에 강하율이 연락이 되지 않았던 시간에 어디에 있었는지가 증명되었다.강하율은 감격한 표정으로 양승아를 바라봤다.“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었을 뿐입니다.”“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양승아는 배윤제에게 인사를 건넨 뒤 떠났다.사람들의 표정이 이상해졌다.양승아가 강하율의 결백을 증명해 준 지금, 대체 누가 정다인을 해치려고 했던 걸까?강하율은 서류를 꽉 쥔 채 말을 이어갔다.“이곳은 매일 점검하러 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점검표에 따라서 CCTV를 확인해 본다면...”“그만해!”배윤제가 호통을 치면서 쌀쌀맞게 말했다.“오늘 일은 없었던 일로 할 거야.”‘하.’강하율은 느긋하게 말했다.“그러면 정다인 씨께서는 제게 사과하셔야겠네요. 아까 대표님께서 그러셨잖아요. 잘못했으면 사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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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화

박도윤은 말을 이어가지 않았지만 그의 눈빛이 모든 걸 설명했다.강하율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헛웃음을 치면서 말했다.“주제를 알아야 한다고요? 조언해 주셔서 정말 감사하네요. 제가 그렇게 꼴 보기 싫으시면 저랑 대화할 필요도 없으시겠네요. 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박도윤은 강하율이 떠나는 게 싫은지 미간을 찌푸렸다.그는 강하율의 손목을 잡으며 그녀를 붙잡았다.“내가 언제 꼴 보기 싫다고 했어? 그동안 너는 윤제 말만 들어서 나한테는 기회가 없었어. 하지만 이제는 아니지...”박도윤은 그렇게 말하며 강하율을 위아래로 훑어봤다.강하율은 표정이 싸늘해지며 저항했다.“이거 놔. 내가 사람을 부를까 봐 겁나지도 않아?”박도윤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사람을 부른다고? 누구를 부르려고? 배윤제? 걔는 지금 정다인한테 완전히 정신이 팔렸어. 너 같은 건 안중에도 없다고.”박도윤은 강하율의 목을 향해 손을 뻗었다.그는 예전부터 강하율의 목이 아주 예쁘다고 생각했었다. 불건전한 생각이 드는 아름다움이었다.게다가 흔하디흔한 교복을 입어도 그녀의 아름다움은 가려지지 않았다.그러나 당시 배윤제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하지만 이제 강하율은 배윤제에게 버림받았으니 실컷 즐길 수 있었다.“아직도 아파? 한 번 봐봐.”그의 목소리와 눈빛을 강하율이 읽어내지 못할 리가 없었다.강하율은 구역질이 났다. 과거의 우정은 이미 변질되었다.박도윤의 손이 닿기 전, 강하율이 그의 손을 재빠르게 피했다.“박도윤, 자중해.”그러나 박도윤은 강하율을 놓아주지 않고 오히려 그녀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강하율, 왜 아직도 배윤제를 포기하지 못하는 거야? 나랑 만나. 나도 꽤 괜찮은 남자야. 내가 집을 얻어줄 테니까 여기서 아까 같은 일 당하지 말고 사람들을 최대한 피해 다녀. 그럼 내가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게 해줄게.”강하율은 코웃음을 치면서 가차 없이 말했다.“박도윤, 너 진짜 쓰레기구나. 사람들을 피해 다니라고? 배윤제가 알까 봐 겁나서 그러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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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화

강하율은 피할 수 없다는 걸 알았지만 그럼에도 손이 아플 정도로 힘주어 주먹을 쥐었다.그녀는 배윤제가 왜 그러는지 그 의도를 알고 있었다.그는 정다인의 편을 들어주며 사람들에게 일종의 경고를 하고 있었다.그리고 그 방식은 강하율의 존엄을 짓밟는 것이었다.어쩌면 배윤제에게 강하율의 존엄은 언급할 가치조차 없는 것일지도 몰랐다.강하율은 테이블 앞으로 걸어가서 말했다.“이 술을 다 마시면 먼저 돌아가서 쉬어도 되겠습니까? 제가 몸이 좀 안 좋아서요.”“한 방울도 남김없이 다 마신다면.”배윤제는 속으로 혀를 찼다.그는 자꾸 자신에게 반항하며 고집을 부리는 강하율을 이번 기회에 완전히 굴복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배윤제는 강하율의 주량을 알고 있었다. 저렇게 독한 술이라면 반 잔만 마셔도 강하율은 그에게 애원하게 될 것이다.그리고 강하율이 그에게 애원한다면 몇 마디 나무라는 것으로 정다인의 체면을 살려줄 것이다.굳이 더 얘기를 이어갈 필요는 없었기에 강하율은 곧바로 잔을 들고 술을 마셨다.술을 반 잔 이상 마시자 배윤제의 안색이 점점 어두워졌다.그리고 강하율은 끝내 술을 한 방울도 남김없이 다 마신 뒤 잔을 뒤집어서 내려놓았다.“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다들 즐거운 시간 되세요.”강하율은 배윤제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단호히 떠났다.배윤제는 보기 드물게 당황하며 본능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강하율을 잡으려고 했다.사람들은 배윤제와 강하율이 보통 사이가 아니라는 직감이 들었다.정다인은 흠칫 놀랐다.그녀는 사람들이 배윤제와 강하율의 관계를 아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서둘러 배윤제의 팔을 잡으면서 일부러 말했다.“강하율 씨 가보겠다고 하더니 왜 화장실 쪽으로 가는 거죠?”배윤제는 그 말을 듣고 강하율이 떠나간 방향을 바라보았다. 조명 아래 화장실 표지판이 반짝이고 있었다.배윤제는 그제야 코웃음을 치면서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또 연기하네. 신경 쓰지 말고 다들 마셔.”배윤제는 강하율이 계속 화장실에 숨어있을 수는 없을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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