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기억을 잃은 척할 때는 언제고: Chapter 51 - Chapter 60

497 Chapters

제51화

“...”강하율은 당혹스러웠다.그녀와 선을 그으려고 발악하던 배윤제가, 그녀 대신 이름을 써줄 때 자신의 글씨체를 숨기던 배윤제가 다시 이름을 써주겠다고 했다.그러나 배윤제가 펜을 꺼내 들자마자 앞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윤제 씨.”정다인이 가까이 오기도 전에 배윤제는 반응을 보였다.그는 강하율을 밀어낸 뒤 자리를 옮겨 강하율과 거리를 벌렸다.그 탓에 마치 강하율이 배윤제한테 들러붙은 것처럼 보였다.강하율은 피식 웃더니 구겨진 옷자락을 툭툭 털어낸 뒤 떠났다....다른 한편, 원화 스님은 천천히 배윤호를 바라봤다.“안녕하세요, 대표님. 오랜만입니다. 오늘은 마음이 편하지 않으신가 보군요.”“아닙니다.”배윤호는 차를 마신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죄송하지만 잠깐 자리 좀 비우겠습니다.”원화 스님은 말없이 웃기만 했다....강하율은 가장 가까운 화장실로 달려가 공용 세면대 앞에서 손을 벅벅 씻었다.강하율은 예전에 배윤제에게서 나는 은은한 향기를 좋아했었다.그것은 그녀의 청춘을 함께한 향이었기에 그녀를 안심시켜 줄 수 있었다.그러나 이제 배윤제의 몸에는 정다인의 향수 냄새가 잔뜩 배어 있었고 강하율은 그 향을 맡으면 속이 울렁거리고 구역질이 났다.그래서 강하율은 손톱 밑까지 뽀득뽀득 씻었다.수도꼭지를 잠그고 고개를 드는 순간, 강하율은 거울을 통해 자신의 뒤에 선 남자를 보았다.그 남자는 바로 배윤호였다.배윤호는 천천히 그녀에게로 다가왔다. 190cm인 그는 서 있기만 해도 압박감을 주었다.조명 아래, 그의 긴 속눈썹이 팔랑거리며 움직였고 그의 알 수 없는 눈빛에서 묘하게 날 선 기운이 느껴졌다.강하율은 당황해 다시 수도꼭지를 틀었다.왜 바로 도망치지 않았는지 후회하던 찰나, 배윤호가 그녀의 옆에 서서 손을 씻기 시작했다.쏴.물소리가 두 사람 사이를 가득 채웠다.강하율은 입술을 깨물다가 웃으면서 먼저 침묵을 깼다.“안녕하세요, 대표님. 여기서 보네요. 식사는 잘하셨어요?”배윤호는 잘 먹었다고 했고 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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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화

강하율이 깊이 생각할 새도 없이 클라이언트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그녀는 어쩔 수 없이 빠르게 자리를 떴다.한편, 황급히 레스토랑으로 돌아간 배윤제의 친구는 자리에 앉자마자 얘기를 꺼냈다.“내가 아까 뭘 봤는지 알아?”배윤제는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술을 마셨다. 별로 신경 쓰이지 않는 듯한 모습이었다.정다인이 그에게 음식을 집어주면서 궁금한 듯 물었다.“뭘 봤는데요?”박도윤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설마 또 마음에 드는 여자를 본 거야?”“여자가 맞긴 해. 하지만... 배윤호 대표님과 같이 있던 여자였어.”박도윤은 웃었다.“잘못 본 거 아니야? 배윤호 대표님은 업무에 필요한 게 아니라면 여자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다 무시하는 사람이라고.”“진짜 배윤호 대표님이었어.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더라면 나도 믿지 않았을 거야. 그 여자를 대하는 태도를 보니까... 확실히 둘 사이에 뭔가 있는 것 같았어.”남자가 그렇게 말하자 박도윤은 흥미가 생겨서 물었다.“그래서 그게 누군데?”“제대로 못 봤는데 몸매는 엄청 좋았어.”그 말에 음식을 먹고 있던 정다인은 멈칫했다.몸매가 엄청 좋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정다인은 강하율을 떠올렸다.비록 그녀는 강하율과 자신을 비교하고 싶지 않았으나 강하율이 여자들조차 탐낼 몸매의 소유자라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구미호가 따로 없었다.정다인은 본능적으로 배윤제의 반응을 살폈으나 배윤제는 그 주제에 관심이 없는지 휴대폰만 바라보고 있었다.그러다 정다인은 문득 레스토랑에 들어갔을 때 강하율의 손을 잡고 있던 배윤제를 떠올렸다.요즘 배윤제는 예전만큼 그녀에게 잘해주지 않았다.정다인은 젓가락을 꽉 쥐면서 널뛰는 감정을 억눌렀다.그녀는 절대 강하율이 배윤제의 곁으로 돌아오게 놔두지 않을 것이다.정다인은 잠깐 고민하다가 입꼬리를 올리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혹시 강하율 씨는 아니겠죠? 고백 영상이 엄청 화제가 됐었는데도 배 대표님은 강하율 씨를 혼내지도, 불이익을 주지도 않았잖아요. 심지어 호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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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화

정다인은 미소 띤 얼굴로 배윤제의 팔에 팔짱을 끼면서 은근히 강하율을 비꼬았다.누가 밥을 샀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강하율이 배윤제와 같이 밥을 먹었다는 사실이었다.배윤제는 체면 때문에라도 강하율에 대한 평가를 늘어놓을 수 없었으나 정다인의 말을 부인하지는 않았다. 그의 경멸 어린 눈빛이 모든 걸 말해 주고 있었다.정다인은 강하율과 신분이 달랐고 인맥을 쌓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강하율이 기댈 곳은 배윤제 하나면 충분했다.강하율을 떠올린 배윤제는 옆에 앉은 여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배윤호를 살펴봤다.배윤호는 늘 그렇듯 차가웠다.자신이 괜한 생각을 했다는 걸 깨달은 배윤제는 스스로가 우습게 느껴졌다.강하율을 향한 두 사람의 평가를 들은 헬렌 로어는 대꾸하지 않고 웃기만 했다.곧이어 그녀는 정다인을 무시하고 원화 스님과 대화를 이어갔다.정다인은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 수도, 그들의 대화를 이해할 수도 없어서 속상한 표정으로 배윤제를 바라보았다.배윤제가 정다인을 데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형, 헬렌 씨. 저는 다른 업무가 있어 먼저 실례하겠습니다.”“그래.”배윤호가 짧게 답했다.두 사람이 떠난 뒤 헬렌 로어는 찻잔을 들며 싱긋 웃었다.“배윤호 씨, 하고 싶은 말은 없으신가요?”“네. 사실이 아닌 말에 대해선 굳이 말을 얹을 필요가 없으니까요.”배윤호는 손가락으로 컵의 가장자리를 문질렀다.헬렌 로어는 정다인의 잔꾀를 간파했지만 굳이 그걸 까발리고 싶지는 않았다.하지만...“배윤제 씨는 일부러 이곳으로 온 것 같네요.”“...”헬렌 로어는 배윤호가 침묵하자 흥미가 생겼다.“질투하는 건가요?”“...”배윤호가 미간을 찌푸렸다.맞은편에 있던 원화 스님은 그 모습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식사가 끝나고 떠나기 전, 배윤호의 옆에 있던 외국인 여자가 조심스럽게 말했다.“배 대표님, 저한테는 어떻게 보답하실 건가요?”조금 전 배윤호는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내 잠깐 자리를 비워 달라고 부탁했다.여자는 배윤호가 꽤 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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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화

‘말을 더듬다니!’강하율은 반박하고 싶었으나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배윤제가 밥을 사준 걸 얘기했다.안혜슬은 그 얘기를 듣더니 화가 나서 쓰레기통을 차버릴 뻔했다.“배윤제 진짜 너무한 거 아니야? 어떻게 너한테 그럴 수가 있어? 정다인이 너한테 누명을 씌우려고 했는데 그냥 돈으로 무마하려고 해?”“내가 돈을 달라고 한 거야. 나는 정다인을 자르라고 했는데 그건 싫대. 그래서 아무거나 얘기한 거야.”강하율이 말했다.“아니, 너... 너는 피해자잖아. 뭘 요구해도 지나치지 않지. 그런데 네가 요구한 액수에 천만 원을 더 얹어주다니. 그건 돈으로 네 인격을 모욕한 거잖아!”안혜슬이 분노했다.“그냥 받았어.”강하율이 또 말했다.“어... 받는 게 좋지. 너만 손해 볼 수는 없으니까 말이야. 그런데 말 좀 한 번에 다 해주면 안 돼? 자꾸 끊어서 말하니까 답답해.”안혜슬이 입을 비죽였다.강하율은 웃으며 말했다.“이따가 너한테 200만 원 보낼게.”안혜슬이 당황했다.“나한테 왜 돈을 줘?”“너 검정고시 준비하려면 인강도 들어야 하고, 학원도 다녀야 하고, 문제집도 사야 할 거 아니야. 그런데 너는 월급을 다 가족들한테 줘버리잖아. 여기서 평생 객실 청소만 할 생각은 아니지?”그곳은 번화한 세원시와 꽤 가까웠다.수십 년 전, 강하율의 엄마는 그곳에 호텔을 세웠을 때 근처 마을 여자들이 대체로 일찍 학업을 포기하고, 달리 돈을 벌 방법이 없어 남자와 결혼한다는 걸 발견했다.강하율의 엄마는 어린 나이에 임신한 여자들을 보면 마음이 쓰였고, 심지어 그중에는 가정폭력을 당하는 이들도 있었다.그래서 강하율의 엄마는 호텔에서 직업 교육을 진행했고 근처 마을 사람들, 특히 여자들을 위해 일자리를 남겨두었다.그래서 지금까지도 적지 않은 마을 주민들이 여전히 호텔에서 일하고 있었다.안혜슬도 그들 중 한 명이었다.“하율아...”안혜슬은 그녀를 안아 주고 싶었지만 자기 몸에서 냄새가 나는 것 같아 그럴 수 없었다.“됐어. 오글거리니까 그만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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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화

그래서 마지막 순간까지 극심한 통증을 참으며 애써 강하율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그 뒤로 강씨 가문은 파산했고 강하율의 아빠는 감옥에 갔으며 강하율은 배씨 가문 사모님을 따라 배씨 가문으로 들어갔다.윌른 호텔은 강하율에게 부모님을 그리워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되었다.띵.오븐 타이머 소리에 강하율은 정신을 차렸다.그녀는 장갑을 끼고 오븐에서 직접 만든 디저트를 꺼냈다.디저트를 접시에 담으려는 순간, 사람 몇 명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식음료팀의 직원 네 명이 정다인을 둘러싸고 웃으며 떠들고 있었다.정다인이 웃으며 말했다.“저는 부총괄일 뿐이니 다들 이렇게까지 예의 차릴 필요는 없어요. 그리고 여기까지 같이 와줘서 정말 고마워요.”정다인은 그들과 똑같은 호텔 유니폼을 입고 가운데 서 있었으나 옷에 달린 수천만 원짜리 브로치가 그녀의 특별함을 드러내고 있었다.정다인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자신은 부총괄일 뿐이라며 겸손을 떨었지만, 그녀의 눈빛에서 우월감이 보였다. 그리고 그녀는 마치 이 호텔의 주인처럼 행동했다.네 명의 직원이 아부를 했다.“정말 겸손하시네요. 앞으로 호텔에 많이 익숙해져야 할 테니 저희가 도와드릴게요.”“네, 네.”그러다 그들은 강하율을 발견했다.정다인이 일부러 놀란 척하며 말했다.“강하율 씨, 왜 여기 있는 거예요?”강하율을 바라보는 정다인의 눈에는 놀라움이 없었다.강하율은 정다인의 의도를 짐작할 수 없어 미간을 찌푸렸다.정다인은 그녀에게 고민할 틈도 주지 않고 앞으로 나서며 오븐 팬 위의 디저트를 가리켰다.“강하율 씨, 호텔 물건을 이렇게 사적으로 사용해도 되는 거예요? 부총괄인 저도 이곳을 빌려 쓰려면 식음료팀에 신청을 해야 하는데 말이에요.”그 말에 정다인의 이미지는 한층 더 고결해졌고 강하율은 아주 파렴치한 사람이 되었다.배씨 가문에서 호텔을 운영하게 된 이후로 호텔에서는 서양식 디저트를 주력으로 밀었다.호텔에서 고용한 파티시에는 많은 상을 받은 사람이었지만 서양식 디저트만 좋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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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화

“하율아, 두려워하지 마. 너한테는 나와 이 호텔이 있잖아. 이 호텔은 언제나 네 집이야.”그것은 배윤제가 강하율에게 했던 말이다.역시 그것은 모두 거짓말이었다.강하율은 웃고 싶었지만 자꾸 눈물이 차올랐다.이 호텔에는 그녀와 부모님의 추억뿐만 아니라 그녀와 배윤제의 추억도 깃들어 있었다.지금 이 상황은 마치 드라마 속 가정을 위해 평생 헌신한 여자에게 질린 남자가 화를 내며 자기 집에서 꺼지라고 하는 것과 다름없었다.이때 식음료팀 직원들은 강하율을 대하는 배윤제의 태도를 보고는 너도나도 강하율을 힐난하기 시작했다.“강하율 씨, 부총괄님이 그냥 넘어가겠다고 했는데 왜 그런 짓을 한 겁니까?”“맞아요. 왜 일을 키우려는 겁니까?”“강하율, 직원이면 직원답게 행동해. 얼른 부총괄님께 사과해. 그러면 제과제빵실을 멋대로 사용한 일은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겠어.”그건 서영근이 한 말이었다.강하율은 어렸을 때 자신이 아저씨라고 불렀던 서영근을 바라봤다. 그의 눈빛은 마치 낯선 사람을 바라보듯 차가웠다.배윤제의 말이 맞았다. 그뿐만 아니라 이곳의 모든 것이 이미 달라졌다.강하율은 더 이상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평온한 표정으로 식음료팀 직원들을 바라봤다.“다들 바쁘셔서 잠깐 잊은 듯하시네요. 저는 예약 주문을 넣을 때 분명히 비고란에 이 사항을 적어 두었어요. 애초에 승낙하지 않을 생각이었다면 왜 당시 저한테 아무 말씀도 하지 않고 제가 실수를 저지를 때까지 기다리신 거죠?”며칠 전 강하율은 비즈니스 센터에 전화까지 걸어서 꼭 비고란에 해당 사항을 적어야 한다고 신신당부했었다.그러니 그들이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강하율이 물러서지 않을 줄 예상하지 못했는지 그들은 서로 시선을 주고받으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런데 이때 정다인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윤제 씨, 주문서를 한 번 확인해 보는 건 어떨까요?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바로 알아볼 수 있잖아요.”배윤제는 그들과 조금 떨어져 있던 장천우를 바라보았다.장천우는 고개를 끄덕인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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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화

강하율은 배윤제가 무엇 때문에 하필 그녀가 디저트를 다 만들어 놓은 뒤 나타났는지를 눈치챘다.배윤제는 강하율이 만든 디저트를 먹어본 적이 있었는데 입맛이 까다로운 그조차도 디저트를 먹고 감탄을 금치 못했었다.디저트를 만들 때는 모양에 굉장히 많이 신경을 써야 했고 속 재료도 만들기가 쉽지 않았기에 정다인처럼 손에 물 한 방울 묻혀본 적 없는 사람은 절대 만들 수 없었다.그래서 배윤제는 정다인을 위해 강하율에게 누명을 씌우고 디저트를 만든 공로를 전부 정다인에게 돌릴 생각이었다.‘하, 참 지극정성이네. 그럼 어디 한번 내 공로를 빼앗아 보든가.’강하율은 더없이 평온한 얼굴로 시선을 들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네, 그럼 저는 먼저 가볼게요.”정다인은 우쭐한 표정으로 말했다.“사무실로 돌아가서 반성하도록 해요.”정다인이 말을 끝맺자마자 강하율은 일부러 발을 헛디디며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디저트를 전부 바닥에 떨어뜨렸다.정다인은 안색이 확 달라지더니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강하율 씨, 지금 뭐 하는 거예요?”강하율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어쩔 수 없었다는 듯이 말했다.“디저트를 만드느라 너무 오래 서 있었더니 다리가 저려서요.”정다인은 바로 명령조로 말했다.“그럼 얼른 다시 만들어요!”강하율은 데어서 붉어진 손바닥을 보여주며 말했다.“아까 대표님께서 부총괄님을 구해주느라 급하게 저를 밀치는 바람에 뜨거운 오븐 팬에 손이 데어 다시 만들기는 어려울 것 같네요. 부총괄님처럼 똑똑한 분이라면 분명 다른 방법을 생각해 내시겠죠.”“강하율 씨...”정다인은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얼굴을 사정없이 일그러뜨리더니 이내 속상한 표정으로 배윤제를 바라보았다.“윤제 씨, 이제 어떡해요?”식음료팀 서영근이 앞으로 나서며 아부했다.“레스토랑으로 가서 다른 디저트들이 남아있는지 확인해 보시는 건 어떻습니까?”“가자.”배윤제는 정다인의 손을 잡고 떠나려 했다.강하율의 곁을 지나칠 때 그는 잠시 멈춰 서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강하율,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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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화

회의실은 로비 옆에 있었는데 안에 대기업의 기준에 맞춰서 설비들이 갖춰져 있었다.강하율은 매우 전문적으로 회의실을 소개했다.박도윤은 안을 쭉 둘러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이보다 더 좋은 회의실은 없어?”“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배윤호 대표님께서 회의실을 쓰고 계셔서 지금 볼 수가 없어요.”강하율이 설명했다.“강하율, 이거 고객 차별 아니야? 혹시 소문이라도 난다면 앞으로 어떻게 호텔 세일즈팀에서 일할 거야?”박도윤이 웃으며 말했다.강하율은 박도윤이 일부러 트집을 잡는다는 걸 알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고객에게 호텔을 소개하는 건 그녀의 업무였으니 말이다.“오후 다섯 시 이후라면 둘러볼 수 있을 겁니다.”“그럼 서로 한 발씩 양보하자. 우리 친구잖아. 회의실 주변만 한 번 살펴볼게.”박도윤이 말했다.강하율은 시간을 확인했다. 마침 배윤호 쪽의 휴식 시간이었다.강하율은 박도윤과 계속 실랑이하고 싶지 않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꼭대기 층에 있습니다.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꼭대기 층에 도착하자마자 강하율은 배윤제가 정다인을 데리고 회의실 안으로 들어가서 디저트를 전달하는 걸 보았다.배윤제가 그런 일을 하는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그는 정다인을 위해 지극정성을 다했다.정다인의 미소 띤 얼굴을 보니 배윤호도 직원이 바뀐 것에 만족한 듯했다.마치 모든 사람이 정다인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배윤제도, 배씨 가문 사람들도, 친구들도, 동료들도, 심지어 늘 무표정하던 배윤호까지.강하율은 왠지 모르게 기분이 가라앉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은 정다인과 비교도 안 될 것 같았다.그러나 강하율은 프로였기에 마음을 다잡고 계속해 박도윤에게 회의실을 설명해 주었다.그리고 뜻밖에도 박도윤은 더 이상 트집을 잡지 않고 그저 멈춰 서서 사진만 찍었다....다른 한편, 회의실.배윤호는 문이 열리며 발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들었다.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배윤제와 정다인이었다.배윤제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사람을 시켜 디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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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화

배윤제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죄송합니다. 다인이는 입사한 지 얼마 안 돼서 아직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 많습니다. 제가 사람을 시켜 다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헬렌 로어는 손을 들어 올리며 차갑게 말했다.“됐어요. 저는 몸이 좋지 않아서 먼저 돌아가 쉬어야겠어요.”배윤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제가 바래다드리겠습니다.”두 사람은 그렇게 떠났고 회의실에는 배윤제와 정다인만 남았다.“다인아, 강하율보다 더 많이 준비했다고 했잖아. 어떻게 이렇게 중요한 사항을 놓칠 수가 있어?”정다인은 몸을 움찔 떨었다.그녀는 사실 서류를 제대로 읽은 적조차 없었다.정다인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분명 강하율 씨 짓이에요. 강하율 씨가 나를 괴롭힌 게 한두 번도 아니잖아요. 나한테 망신을 주려고 일부러 그런 게 틀림없어요.”배윤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정다인은 배윤제가 자기 말을 믿지 않을까 봐 불안해져 그를 끌어안았다.“윤제 씨, 저를 꼭 지켜주겠다고 약속했었잖아요.”“알았어. 별로 큰일도 아니니까 괜찮아. 나는 강하율이 입을 다물게 할 테니까 너도 괜히 강하율을 건드리지 마.”배윤제의 말을 듣는 순간 정다인은 몸이 굳었다.한때 그녀를 위해 기억을 잃은 척 연기하며 강하율을 차버린 남자가 지금은 은근히 강하율의 편을 들고 있었다.역시 강하율은 처리해 버려야 했다....박도윤은 사진을 다 찍고 나서 강하율과 함께 로비로 돌아갔다.그는 누군가와 전화를 한 뒤 회의실과 함께 수영장이 딸린 별장 한 채를 예약한 후 떠났다.지난번 일로 박도윤이 자신에게서 완전히 관심을 껐을 거라고 생각한 강하율은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사무실로 돌아가려다가 배윤제와 마주쳤다.그는 살기를 내뿜으며 다짜고짜 강하율의 팔을 잡고 지하에 있는 바로 걸어갔다.이때 바 안에는 바텐더 말고 아무도 없었다.잔잔한 음악과 어두운 조명이 어우러져 편안한 분위기가 조성되었지만 강하율은 그저 손목이 아플 뿐이었다.“이거 놓으세요. 또 뭘 지시하시려는 거죠?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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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화

그의 낮은 목소리에 강하율은 머리털이 쭈뼛 솟았으나 어쩔 수 없이 그에게로 걸어갔다.“대, 대표님.”강하율이 더듬댔다.그녀는 문득 안혜슬이 그녀가 배윤호의 얘기를 꺼낼 때마다 더듬댄다고 했던 걸 떠올렸다.그 말은 사실인 듯했다.배윤호는 강하율에게 술을 한 잔 따라주었다.“안 마실 거야?”강하율은 당황했다. 그녀는 배윤호의 의도를 알 수 없었으나 일단은 손을 뻗어 술잔을 받았다.술잔에 손이 닿자 차가운 느낌이 가장 먼저 느껴졌고 곧이어 남자의 따뜻한 손가락이 느껴졌다.이때 배윤호가 고개를 살짝 들었다.어둑한 조명 아래, 그의 얼굴은 굉장히 준수했고 눈빛은 매우 그윽해서 강하율의 마음을 전부 꿰뚫어 볼 듯했다.강하율은 그의 시선에 괜히 마음이 흐트러져 마치 감전된 사람처럼 손을 움찔 떨면서 술잔을 놓으려고 했는데 배윤호가 늘씬한 손가락으로 그녀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왜 무서워 해? 내가 널 잡아먹기라도 할까 봐 무서워?”“아, 아니에요.”강하율은 입술을 깨물었다. 다행히도 조명이 어두워서 배윤호는 그녀의 당황한 모습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그리고 잔 속의 얼음 덕분인지 따끔거리던 손바닥의 통증이 덜해졌다.강하율이 다시 술잔을 받아 들려고 손을 움직였지만 배윤호는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마시라고 준 거 아니었어?’배윤호는 시선을 들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나한테 할 말은 없어?”아마도 오후 회의와 관련된 일 때문일 것이다.“죄송합니다, 대표님. 오후 회의 때 디저트를 준비했었는데 갑자기 돌발 상황이 생겼고, 부총괄님이 마침 시간이 되신다고 해서 저 대신 갔습니다.”강하율은 직장에서 몰래 고자질하는 것은 금기라는 걸 알았다.그러나 그냥 넘어가고 싶은 마음도 없었기에 은근히 티를 냈다.마침 시간이 되었다는 말만으로도 정다인의 동기가 불순했다는 걸 알릴 수 있었다.“그래.”“제가 다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네?”강하율은 상황을 설명할 준비를 마쳤는데 배윤호는 바로 그녀의 말을 믿었다.강하율은 이 상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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