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전 남친 숙적과 혼인신고, 뭐 어때?: Bab 281 - Bab 290

298 Bab

제281화

강이주는 차고 한쪽에 세워 둔, 먼지가 내려앉은 초록색 전동 스쿠터를 끌어냈다.구기빈은 강이주 옆에 서서 그 작은 전동 스쿠터를 내려다보았다. 큰 키의 구기빈이 그 앞에 서 있으니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 듯했다.‘이게... 맞는 건가?’강이주는 구기빈이 가만히 서 있기만 하자 뒷좌석을 톡톡 두드렸다.“왜, 싫어? 이건 희라가 경품으로 탄 걸 나한테 일부러 준 거야. 희라도 핑크색 스쿠터가 하나 있어. 당신이 전동 스쿠터를 싫어한다고 알면, 희라가 울지도 몰라.”이 말에 구기빈의 귓가에는 방금 병원에서 듣던 구희라의 훌쩍이는 목소리가 되살아나는 듯하면서 머리가 지끈거렸다.여동생의 눈물은 정말 골치가 아팠다.구기빈은 결국 전동 스쿠터 뒷좌석에 앉았다.스쿠터가 워낙 작다 보니, 길게 뻗은 다리를 둘 곳을 찾지 못해서 발판 위에 불편하게 올려야 했다.구기빈은 한 손으로 강이주의 옷자락을 살짝 쥐었다.그 모습을 본 강이주는 손을 뻗어 구기빈의 팔을 잡고서 자신의 허리에 두르게 했다.“그냥 내 허리 잡아. 나 전동 스쿠터 처음 몰아 봐. 당신이 그렇게 옷만 잡고 있다가 왼팔을 부딪치기라도 하면 어떡해?”솔직히 말해, 강이주는 자신이 전동 스쿠터를 얼마나 잘 몰 수 있을지 전혀 믿음이 가지 않았다.강이주의 말을 들은 구기빈은 망설이지 않고 강이주의 허리를 감쌌다. 그러고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가볍게 말했다.“됐어. 가자.”더 늦어지면 구기빈의 다리가 버티기 힘들 것 같았다.강이주는 한 손으로 브레이크를 잡고, 다른 손으로 가속 레버를 돌렸다. 전동 스쿠터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강이주는 문득 어색함이 밀려왔다.‘이건... 전동 스쿠터 속도가 이렇게 느린 건가?’‘상상보다 훨씬 느리네.’가속 레버를 끝까지 돌렸지만, 전동 스쿠터는 여전히 천천히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강이주는 속으로 어색한 한숨을 삼켰다.‘그래, 내가 너무 과하게 걱정했네.’‘겨우 이런 속도인데, 기빈 씨의 왼팔이 부딪치면 어떡하냐고 걱정하다니.’사실 이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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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2화

강이주가 류남정에게 말했다.“저녁에는 저희 집으로 오세요. 우리 엄마가 직접 식사 준비를 하신대요. 오늘 새집으로 이사하신 거 축하드리려고요.”요즘 류남정이 강이주 집에 머무는 데다, 류남정이 직접 요리를 하는 편도 아니라서 장숙연은 본가에서 일하던 가사도우미를 이쪽으로 불렀다.식사 시간이 가까워지면 와서 음식을 준비하고, 일이 끝나면 다시 본가로 돌아가는 식이었다.류남정은 그동안 강이주에게 이미 많은 신세를 졌다고 생각하고 있었다.그런데 이제 집들이 식사까지 챙겨 주겠다는 말을 듣자, 류남정은 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제가 모셔야 하는 자리인데요.”강이주는 류남정의 말을 듣자, 류남정이 또 괜한 사양을 하려 한다는 걸 알았다.강이주는 그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나오시면 저를 친구로 생각 안 하시는 거예요. 집에서는 이미 다 준비해 뒀어요.” “게다가 앞으로 제 패션쇼 때문에 제가 남정 씨에게 부탁드릴 일이 더 많잖아요. 저한테도 한 번쯤 챙길 기회를 주세요.”강이주가 이렇게까지 말하자, 류남정도 더 거절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느꼈다.결국 류남정은 고개를 끄덕였다.강이주는 류남정의 집 정리를 조금 도와준 뒤에야 구기빈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다.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구기빈의 핸드폰으로 배진호의 전화가 걸려 왔다.마동희가 응급 수술을 마치고 나왔다는 소식이었다.하지만 충격이 워낙 컸던 탓에 마동희는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의식을 되찾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했다.강이주는 구기빈의 말을 듣자마자 곧바로 알아차렸다.마동희는 식물인간 상태에 가까운 셈이었다.중요한 인물이 이런 식으로 빠져나가 버리자, 결정적인 단서도 함께 끊겼다.강이주는 지금 심씨 집안이 배후에 있다는 걸 알고 있어도, 그것을 입증할 방법이 없었다.강이주가 나지막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가해 운전자는 찾았어?”사실 가해 운전자를 찾아도 큰 의미는 없었다. 운전자에게 살의가 있었다는 걸 증명할 수 있을지 몰라도, 심순남이 시켰다는 사실까지 밝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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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3화

구기빈은 강이주가 자신의 말을 받아들이자 가볍게 웃었다.“심씨 집안 쪽은... 당신이 필요하다고 하면 내가 조금 흔들어 놓을 수 있어.”적어도 심순남이 강이주에게만 시선을 두고 계속 손을 쓰지 못하게 만들 수는 있었다.강이주가 입꼬리를 올렸다.“당신이 심씨 집안에 만든 골칫거리가 적기나 해? 나 들었어. 요즘 매일 술집을 전전하던 심원후가 밤마다 골목으로 끌려가서 자루를 뒤집어쓴 채 얻어맞는다며.”“심원희 일도 당신이 한 거지?”심원후와 심원희 남매에게 벌어진 일을 알게 된 뒤, 강이주는 가장 먼저 구기빈을 떠올렸다.그런 방식으로 심씨 집안 남매를 괴롭힐 사람은 구기빈뿐이었다.구기빈은 조금 멋쩍은 듯이 웃었다.“그 둘이 눈치 없이 굴었잖아.”구기빈이 한 일이 맞았다.그게 어쨌단 말인가?구기빈은 그저 강이주 대신 화를 풀어주고 싶었을 뿐이다.그게 잘못이냐고 묻는다면, 구기빈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했다.강이주는 구기빈의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보자,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맞아. 눈치가 없긴 했지.”어쨌든 지금 심원후와 심원희가 편히 지내지 못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강이주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강이주도 원래 심원희를 계속 불편하게 만들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다.그런데 구기빈이 한 번에 정리해 준 셈이니 나쁠 게 없었다.웃으면서 강이주를 바라보던 구기빈은, 강이주의 뒤를 따라 집 쪽으로 걸었다.“나 혼자 저쪽에 있으면 심심해. 나도 가서 아버님 좀 모실게.”말을 하며 구기빈은 다친 왼손을 살짝 들어 보였다.그 행동에 뭔가 말하려던 강이주는 결국 입을 다물었다.구기빈은 먼저 자기 집에 들러서 종이백 하나를 들고 나왔다.두 사람이 집에 들어섰을 때, 장숙연은 주방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강서규는 휠체어에 앉아 무릎 위에 책을 펼쳐두고 있었다.“아버님, 바둑 한 판 두시죠.”구기빈은 손에 든 종이백을 가볍게 흔들며 강서규 앞으로 다가갔다.강서규는 요즘 틈만 나면 집으로 찾아와 눈앞에서 제 존재감을 드러내는 구기빈이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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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4화

류남정 쪽 디자인 작품은 굳이 흠잡을 곳이 없었다.강이주는 류남정이 디자인 콘셉트를 설명하는 것만 듣고도 깊이 빠져들었다.류남정이 모든 디자인 제품을 소개한 뒤, 강이주도 자신이 준비한 작품을 꺼내 류남정에게 보여 주었다.“남정 씨, 이 세 가지 좀 봐 주시겠어요? 더 손봐야 할 부분이 있을까요?”세 장의 디자인 시안에는 각각 ‘안개비’, ‘초여름의 꽃’, ‘황혼의 장미’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이름은 강이주가 작품을 보며 임시로 붙인 것이었다.강이주는 류남정에게 작품에서 보완할 부분이 있는지 봐 달라고 부탁하고 싶었다.류남정은 강이주가 건넨 스케치 시안을 받아 들고, 위에 몇 가지 의견을 가볍게 적어 주었다.그리고 웃으며 말했다.“다 좋아요. 이름도 디자인 콘셉트와 잘 맞고요. 이주 씨 팀도 전혀 부족하지 않아요. 충분히 가능성 있어요.”세 작품만 보고도, 강이주가 키워 낸 팀이 얼마나 실력이 탄탄한지 알 수 있었다.류남정이 이끄는 팀과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류남정이 그렇게 말해 주자, 강이주는 단번에 자신감이 생겼다.이제 디자인 작품이 확정됐으니, 서둘러 샘플 제작에 들어가야 했다. 실제 제품으로 완성해 런웨이에서 완벽하게 보여 주는 일이 남아 있었다.강이주 쪽도 이제 속도를 더 끌어올려야 했다.일 이야기를 마친 뒤, 강이주는 류남정과 한동안 사적인 이야기를 더 나누었다. 그러고 나서야 류남정은 자리에서 일어났다.구기빈은 저녁을 먹은 뒤 먼저 돌아간 상태였다.강이주가 아래층으로 내려오자, 강서규는 창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강서규 앞에는 오늘 구기빈이 가져온 바둑돌 세트가 놓여 있었다.그 모습을 보니 강서규가 꽤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았다.띵동-핸드폰 알림음이 울렸다.강이주가 핸드폰을 꺼냈다. 구기빈이 보낸 사진 한 장이 도착해 있었다.사진 속 구기빈은 상의를 반쯤 벗은 채였다. 붕대로 감은 왼팔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나... 손이 안 닿아. 미안한데 와서 약 좀 발라 줄 수 있어?]사진 속 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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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5화

이때 구기빈은 손에 의료용 면봉을 들고, 오른손을 등 쪽으로 애써 뻗고 있었다.강이주는 그제야 이 남자의 등에 넓게 쓸린 상처가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그 위치는 구기빈 혼자서는 손이 닿지 않는 곳이었다.“내가 할게.”강이주는 빠르게 구기빈의 뒤로 다가갔다.이어 구기빈의 손에서 면봉을 받아 들었다.가까이서 보니 넓게 쓸린 상처가 생각보다 심했다. 강이주는 잠시 할말을 잃었다. 부상이 이렇게까지 심할 줄은 몰랐다.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은 강이주는, 구기빈의 다친 등을 보고 있자니 가슴 한쪽이 답답했다.구기빈이 먼저 몸을 돌렸다.“부탁할게.”그 말을 듣고 강이주는 테이블 위 약병을 집어 들었다. 막 약을 바르려던 때, 문득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바로 조심스럽게 물었다.“저기... 등 좀 닦고 약을 바를래? 약 바르면 씻기 어렵잖아.”강이주 기억이 맞다면, 구기빈은 꽤 심한 결벽증이 있다고 알려진 사람이었다.구기빈이 가볍게 웃었다.“나도 그러고 싶은데, 지금 물 닿으면 안 된다며?”“내가 젖은 수건으로 닦아줄까?”강이주는 저도 모르게 그렇게 제안했다. 말을 내뱉자마자 볼이 확 달아올랐다.‘하늘이시여,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한 거야?’하지만 이미 뱉은 말이었다. 이제 와서 주워 담을 수도 없었다.강이주는 어색하게 시선을 돌렸다.구기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그것도 괜찮겠다. 그럼 부탁할게. 수건은 위층 안방 욕실에 있어. 방이 어딘지는 당신도 알지?”그 말에 강이주의 볼이 다시 뜨겁게 달아올랐다.강이주는 예전에 술에 취했던 일을 떠올리고 말았다.“그럼 먼저 올라갔다 올게.”강이주는 서둘러 위층으로 올라갔다.문을 열고 들어간 강이주는 욕실에서 따뜻한 물을 대야에 받아 아래층으로 내려왔다.그 사이 구기빈은 셔츠를 완전히 벗어서 옆에 내려놓고, 상반신을 드러낸 채 소파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강이주는 선명하게 잡힌 근육을 보자 잠시 멍해졌다. 목젖이 자신도 모르게 움직였다.‘이 사람... 몸은 진짜 말이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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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6화

강이주는 다급하게 손을 뻗어 구기빈의 입을 막았다.이대로 더 말하게 두면, 강이주는 정말 도망치듯 뛰쳐나갈 것만 같았다.“그만 말해!”강이주가 사납게 눈을 치켜뜨면서 눈앞의 남자에게 경고했다.여기서 한마디만 더 하면 정말 가만두지 않을 생각이었다.구기빈은 입이 막힌 와중에도 뭐라고 계속 웅얼거렸다.강이주는 손을 뻗어 구기빈의 허리를 가볍게 꼬집었다.구기빈의 표정이 살짝 변하더니, 결국 두 손을 들고 항복했다.강이주는 방금 꼬집은 행동에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았다.하지만 한두 번만 더 그랬다면, 구기빈 자신도 버티기 어려웠을지 몰랐다.구기빈이 순순히 물러나는 모습을 보고서야 강이주는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강이주는 눈을 크게 뜨고 구기빈을 한참 노려보았다. 그러다 결국 수건을 꼭 짜서 구기빈의 가슴 쪽을 닦기 시작했다.강이주는 아무렇게나 빠르게 닦았다. 최대한 빨리 끝내는 것만이 목표였다.구기빈도 더 이상 강이주를 곤란하게 만들지 않았다. 다만 강이주의 손이 아랫배 근처를 스칠 때, 몸이 살짝 굳어졌다.구기빈이 재빨리 멈춰 세웠다.“됐어.”이대로 더 닦았다가는 정말 곤란한 일이 생길 것 같았다.강이주는 뭔가 눈치챈 듯 고개를 들어 구기빈을 향해 살짝 웃었다.“됐어?”구기빈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말하려던 바로 그때, 강이주는 수건을 쥔 손에 힘을 주면서 세게 문질렀다.갑자기 손으로 배를 누르자, 구기빈은 하마터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뻔했다.구기빈은 끝내 이를 악물고 참으면서, 오른손으로 강이주의 손목을 붙잡고 먼저 항복했다.“진짜 잘못했어. 반성할게. 깊이 반성할 테니까, 제발 살살 해 줘.”그제야 강이주는 만족스럽게 손을 거두었다. 대야와 수건을 들고 다시 위층으로 올라갔다.강이주가 계단을 올라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던 구기빈은 고개를 숙여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내가 만든 일이지. 누구 탓을 하겠어?’구기빈은 몇 번 깊게 숨을 들이쉬며 천천히 감정을 가라앉혔다....강이주가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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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7화

강이주는 소파 위에 놓인 흰 셔츠를 가리켰다.구기빈은 흰 셔츠를 집어 들더니 그대로 쓰레기통에 던졌다.“버리면 돼.”강이주는 구기빈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근데 당신 드레스룸 보니까 흰 셔츠가 대부분이던데. 그렇게 흰색을 좋아해?”강이주는 그때 줄지어 걸린 흰 셔츠들을 보고 꽤 놀랐었다.사실 구기빈은 검은 셔츠를 입으면 특유의 위압감이 더 짙어졌다. 보는 사람을 절로 긴장하게 만드는 분위기가 있었다.지금도 검은 셔츠를 입은 구기빈은 말수가 적고 엄격한 사람처럼 보였다.구기빈이 의미심장하게 강이주를 바라보았다.“당신이 좋아한다고 했잖아.”“내가?”강이주는 자기 자신을 가리키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내가 언제 당신한테 흰 셔츠가 좋다고...”말을 끝내기도 전에 강이주는 자기도 모르게 입을 다물었다.그러고 보니... 정말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시작은 구희라와 함께 있던 날이었다. 두 사람은 허도민의 옷차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고, 어쩌다 보니 대화가 구기빈 쪽으로 흘렀다.당시 구기빈은 대체로 어두운 색 옷을 즐겨 입었다. 강이주는 별생각 없이 너무 나이 들어 보인다고 평했다. 냉랭한 인상에는 흰 셔츠가 잘 어울릴 거라고도 했다. 흰색이 주는 부드러움이 구기빈의 차가운 분위기를 조금 누그러뜨릴 것 같다고 말했다.원래도 구기빈은 사람들 사이에서 ‘냉혈 저승사자’처럼 불렸다. 늘 서리라도 내려앉은 듯 굳은 표정에 웃음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라, 어두운색 옷까지 걸치면 한층 더 차갑고 무정해 보였다.강이주는 이마를 짚었다.“난 그때 그냥 지나가듯 말한 건데. 내가 당신이... 이렇게 말 잘 듣는 사람인 줄 어떻게 알았겠어?”그 이유 때문이었다고 생각하니, 드레스룸에 줄줄이 걸려 있던 흰 셔츠들이 떠올리고는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몰랐다.구기빈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내가 여보 말 듣는 게 뭐가 잘못이야?”말이 떨어지자마자, 구기빈과 강이주가 동시에 굳어졌다.‘망했다! 내가 대체 왜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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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8화

다음 날, 강이주는 출근하기 전에 구기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회사까지 데려다 줄지 묻는 내용이었다.구기빈은 금방 좋다고 답했다.강이주가 아침을 먹고 나왔을 때, 구기빈은 이미 문 앞에 와 있었다.구기빈의 품에는 꽃 한 다발이 안겨 있었다.강이주를 보자, 구기빈은 손에 든 꽃을 내밀었다.“좋은 아침!”강이주는 꽃을 받아 들며 의아한 눈으로 구기빈을 바라보았다.‘이른 아침부터 이 꽃은 어디서 난 거지?’강이주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이 구기빈이 설명했다.“할아버지랑 할머니가 새벽부터 집에서 일하는 고용인 시켜서 꽃을 보내셨어.”사실 이 꽃은 배진호가 구씨 집안 본가까지 가서 직접 받아온 것이다.구기빈은 그 꽃을 자기 손으로 다듬고 포장했다. 왼손을 다친 탓에 자세히 보면 포장이 조금 어설픈 티가 났다.원래 구기빈은 오늘 배진호에게 자신을 데리러 오라고 할 생각이었다.그런데 강이주의 메시지를 보자마자, 구기빈은 배진호에게 집에서 나오지 말라고 했다. 자신이 떠난 뒤에 따로 회사로 출근하라고 지시했다.배진호는 그저 말없이 하늘만 올려다보았다. 자신의 친구가 누군가를 좋아하기로 마음먹은 뒤로... 어딘가 조금 덜 똑똑해진 것 같았다.배진호 자신도 친구의 연애 작전 중 한 조각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꽃을 뒷좌석에 조심스럽게 놓은 강이주가 구기빈을 보며 웃었다.“당신이 할아버지랑 할머니를 아침부터 이렇게 움직이게 해도 되는 거야? 참 염치도 없다.”구기빈은 안전벨트를 매며 못마땅하다는 듯 반박했다.“틀렸어. 어르신들은 원래 잠이 별로 없으셔. 당신이 우리 할아버지를 몰라서 그래.”“할아버지는 새벽 4시면 일어나서 농장 일을 시작하셔. 닭, 오리, 새들까지 줄줄이 챙기고. 할머니도 늦어도 5시에는 일어나셔서 텃밭을 돌보셔.”두 노인이 그 넓은 땅을 사들인 것도 그런 이유였다.본가에는 거의 구씨 집안의 두 어른만 지냈다. 구기빈의 부모는 동물들이 시끄럽다고 싫어하면서 일찌감치 다른 고급 주택 단지로 옮겨 갔다.구희라와 구기빈은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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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9화

구기빈은 전날 밤에는 강이주를 꼬시는 데 정신이 팔려서 결과를 묻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강이주는 고개를 끄덕였다.“확정됐어. 오늘 패턴 작업 들어가고, 별다른 문제가 없으면 모델들 와서 치수 재고 바로 샘플 제작 들어가면 돼.”이론상으로는 큰 변수만 없으면 시간 안에 충분히 맞출 수 있었다.구기빈은 강이주의 말을 듣고 당부했다.“심씨 집안 쪽 조심해.”이번 패션쇼는 강이주가 강중그룹을 맡은 뒤 맞는 아주 중요한 기회였다.성공하기만 한다면, 강이주는 이번 쇼를 발판 삼아 강중그룹의 이름을 다시 알릴 수 있었다.심순남이 그 점을 모를 리 없었다.심순남 쪽에서는 반드시 강이주의 일에 훼방을 놓으려고 할 것이다.구기빈의 말을 들은 강이주의 손에 살짝 힘이 들어갔다. 운전대를 쥔 손을 단단하게 꽉 쥐었다.강이주도 사실 심명그룹의 최근 움직임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지정애 쪽은 백초아가 아직 합의해 주지 않고 있었다.심원희는 지금 완전히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신세가 됐다.심원희 명의의 ‘L.V.E’라는 브랜드는 평판이 완전히 무너졌고, 최근에는 회사가 파산 신청을 준비 중이라는 말까지 돌았다.반대로 심원후 쪽은 비교적 조용했다.원래 심원후는 장한민과 손잡고 가상자산 환전 사업을 벌이려고 했다. 막 실행에 옮기려던 때, 장한민이 갑자기 마음을 바꿨다.그 일로 심원후와 장한민은 크게 틀어졌고, 말다툼을 넘어 몸싸움까지 벌였다고 했다.장한민도 어디선가 수상한 낌새를 포착한 모양이었다.요즘 장한민은 회사 전체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 있었다. 어디서 가져왔는지도 모를 저급한 사업과 사람들을 회사 안으로 끌어들이는 중이었다.듣기로는 심원후가 며칠 전부터 자기 지분을 헐값에 팔아 치우려 한다고 했다.하지만 공동 창업자가 장한민인 탓에, 선뜻 사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심순남은... 전에 강서규를 찾아왔다가 강이주에게 막힌 뒤로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구기빈의 조언은 분명히 옳았다.강이주는 심씨 집안 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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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0화

‘쉼표찻집’에 도착한 강이주는, 약속한 별실에서 30분 넘게 기다렸다.하지만 상대는 오지 않았고 핸드폰도 꺼져 있었다.강이주는 몇 번 더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여전히 전원은 꺼진 상태였다.곧바로 알아차렸다.상대는 오지 않을 것이다.강이주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때, 별실 문이 열렸다.강이주가 고개를 들었다. 들어온 사람을 확인하자, 입가에 걸려 있던 미소가 사라지고 차가운 기색이 내려앉았다.심순남이 천천히 다가와서 강이주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얘기 좀 하지.”심순남을 보는 순간, 강이주는 상황을 이해했다.만나기로 한 사람은 아마 심순남이 빼돌렸을 것이다.강이주는 침착하게 심순남 앞에 앉았다. 입가에는 비웃음을 얹고서.“회장님은 정보가 참 빠르시네요. 제가 사람을 찾자마자 바로 손을 쓰셨군요.”심순남이 아니라고 부정해도, 강이주는 믿지 않을 생각이었다.강이주의 말을 들은 심순남이 대꾸했다.“네가 내 아들과 딸을 건드렸으니, 나도 반격한 것뿐이야. 이주야, 네가 먼저 싸움을 걸었잖아. 내가 반격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나?”심순남은 예전에 강이주가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었다.그 말을 들은 강이주는 웃었다.“저도 안 된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다만 심순남의 반응이 이토록 빠를 줄은 몰랐다.강이주는 차갑게 심순남을 바라보았다.“회장님, 모델들을 전부 막는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까요? 전문 모델을 못 구하면 비전문 모델도 얼마든지 있습니다.”“그마저 안 되면 제가 직접 런웨이에 서도 되고요. 이런 데 돈과 사람을 낭비하실 시간에, 차라리 집에 가셔서 마음이나 다스리시죠.” “나이 드신 분이 화가 너무 많으면 안 좋습니다.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도 조심하셔야죠.”강이주는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을 하고서 심순남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무표정한 얼굴로 강이주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심순남이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사실 우리가 이렇게까지 갈 필요는 없어. 너희 집안도, 우리 집안도 크게 부딪쳐서 좋을 건 없지. 피해를 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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