ログイン"그렇다면, 우선 장위봉의 뒷배가 누구인지부터 알아봐야 하지 않겠습니까?"강유영은 확신이 서지 않는 듯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그렇지 않으면 적은 어둠 속에 숨어 있고 그들은 잘 보이는 곳에 노출된 셈이었다. 예전에 조원철이 가르쳐 주었듯, 이런 상황은 아군에게 가장 불리했다.무엇보다 적이 누구인지 가장 먼저 알아야만 했다."이미 사람을 보내두었다."조원철의 시선이 그녀의 얼굴에 머물렀다. 그의 눈가에 옅은 대견함이 스쳤다."광산 일은 어찌 처리하는 것이 좋겠느냐?""우선 채굴을 주도한 우두머리를 잡아들이고, 캐낸 동을 빼돌리지 못하게 잘 거두어들여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고 나서 광산을 굳게 지켜 증거를 보존해야겠지요. 그리고.... 하기정이 죗값이 두려워 도망치지 못하도록 사람을 붙여 감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강유영은 자신의 생각이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아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덧붙였다."아주 빈틈없이 생각했구나."조원철이 말했다."네 말대로 이미 지시를 내려두었다."그 말을 들은 강유영의 두 눈이 순간 반짝였다. 빈틈없이 생각했다는 말은 그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이나 다름없었다.자신이 그의 생각과 일치했을 뿐만 아니라, 그가 더 일깨워줄 필요조차 없었다니! 마음속 깊이 작은 환희가 피어올랐다. 이제 그의 가르침을 제법 잘 흡수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광산이 무너졌을 때, 안에서 채굴하던 자들은 어찌 되었습니까? 혹여 많은 이가 다친 것은 아닙니까?"그녀가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사실 진작부터 묻고 싶었지만 여태 기회가 없어 참고 있었다.허영주의 집안 사내들 셋이 모두 그 광산에 있다는 말이 떠올랐다. 산속 마을들의 젊고 건장한 사내들은 거의 다 그 광산에 끌려간 상태였다.광산이 무너졌으니 얼마나 많은 집안의 기둥이 무너졌을지 모를 일이었다. 허영주는 회임 중인 몸이니, 부디 그녀의 지아비만이라도 무사하기를 바랄 뿐이었다.그러지 않으면 허영주의 처지가 너무도 가여웠다. 태어날 아이 역시 아비 없는 자식
"너는 그자가 왜 그러는 것 같으냐?"조원철이 다시 물었다."누군가 자신을 조사할까 두려워서가 아닐까요?"강유영은 조심스레 추측했다.하지만 장위봉처럼 사는 것도 참 피곤한 일이었다. 뇌물로 아무리 많은 재물을 모은들 꽁꽁 숨겨두고 몰래 써야만 한다면 무슨 소용이겠는가."그렇다면 그가 내게 먼저 찾아와 하기정의 일을 고발한 것은 왜 그런 것 같으냐?"조원철이 계속해서 물었다.강유영은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그자는 호주 부사가 아닙니까? 하기정이 실각하고 나면 자신이 호주 지부 자리에 오를 수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요?"장위봉이 선량한 인물이 아니라면 분명 잇속 없이 움직일 리 없었다. 아무런 이유 없이 하기정을 물고 늘어질 리 만무했다. 관직을 뺏기 위함이라면 아주 충분한 동기가 되었다. 그게 아니라면 장위봉에게 또 무슨 목적이 있겠는가."이 나라의 지부는 본래 폐하께서 친히 임명하시는 자리다. 하기정이 붙잡혀 간다고 해서 그 자리가 온전히 장위봉에게 돌아간다는 보장은 없지. 허나 장위봉이 이토록 무리수를 두는 것을 보면, 필히 믿는 구석이 있는 게야."조원철은 그녀를 이끌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담담히 말했다.그 말을 들은 강유영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번뜩 깨달았다."설마, 경성에 그의 뒷배가 있다는 말씀이십니까?"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자신이 지부 자리에 오를 것을 이리도 확신한단 말인가. 하기정을 끌어내리기 위해 이토록 애를 쓰는 것을 보면, 분명 경성에서 그를 위해 힘을 써줄 이가 있거나 이미 그 자리를 약조받은 것이 틀림없었다.조원철은 묵묵부답이었다."오라버니께서는 진작부터 꿰뚫어 보신 겝니까?"강유영은 그의 뒤를 쫓으며 물었다.어느새 그녀에게는 습관이 하나 생겼다. 그가 무언가를 할 때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알고 싶어졌다. 그래야 그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처음 그를 보았을 때부터 어딘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조원철은 뒷짐을 진 채 걸음을 늦추며 앞으로 나아갔다.강유영은 그
"이분은 경성에서 오신 조 소저란다."장지운은 경성이라는 두 글자에 유독 힘을 주어 말했다. 장지호에게 주의를 주려는 듯했다.그제야 눈치를 챈 장지호가 강유영에게 예를 갖추었다."조 소저,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강유영은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이건 조 소저께서 네게 사주신 거란다."장지운은 손에 든 다과 상자를 건넸다.장지호가 다과 상자를 열었다.강유영은 곁에서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유심히 지켜보았다."유금...."상자 안의 다과를 확인한 장지호가 저도 모르게 불쑥 입을 열었다."지호야, 이건 유금첩설이라는 다과인데 무척이나 맛있단다. 방금 조 소저께서 내게도 사주셨어. 너도 어서 먹어보렴."장지운은 황급히 말을 자르며 동생의 팔꿈치를 슬쩍 쳤다.장지호는 아차 싶었는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고는 숟가락으로 다과를 푹 떠서 입에 넣고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정말 맛있습니다. 조 소저, 감사합니다.""천만에."강유영은 미소로 화답하며 속으로 상황을 짐작했다.장지운은 안심이 되지 않는 듯 강유영의 얼굴을 힐끗 살폈다.그녀의 기색이 방금 전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지호야, 넌 그만 들어가 보거라. 글공부가 먼저지."장지운은 눈짓으로 장지호를 재촉했다.동생은 나이가 어려 자칫 실언을 할 수 있었다.더 지체하다가는 의심을 살지도 모른다.장지호는 순순히 알겠다며 서원 안으로 발걸음을 돌렸다.강유영은 미소를 머금고 장지호의 뒷모습을 배웅한 뒤 장지운에게 말했다."우리도 그만 돌아가죠."이번 외출의 목적은 이미 달성한 듯했다.비록 장지운이 중간에 말을 끊긴 했지만, 장지호가 유금첩설의 유금 두 글자를 말하는 것을 똑똑히 들었다.단번에 알아보고 이름을 말한다는 것은 평소에도 그것을 자주 즐겨 먹었다는 뜻이다.유금첩설은 결코 값싼 다과가 아니었다.이로 미루어 볼 때 장위봉에게는 분명 구린 구석이 있었다. +최소한 겉으로 드러난 것처럼 청렴하고 검소한 관료는 아니었다.
"조 소저, 이거 정말 맛있습니다. 평생 이리 맛있는 다과는 처음 먹어봅니다."장지운이 감탄하듯 말했다."입에 맞는다니 다행이네요."강유영은 눈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진열대를 돌아보며 덧붙였다."모자라면 다른 것도 더 주문하지요."강유영은 장지운의 허점을 또 하나 잡아낸 것 같았다.다과를 여러 입 베어 먹고 나서야 뒤늦게 맛있다는 감탄을 내뱉은 것이다.평생 처음 먹어보는 진미라면 응당 첫입을 먹자마자 놀라워해야 정상이 아닐까?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이것만으로는 확신하기 어려웠다.만약 장지운이 정말로 맛있는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어서, 넋을 놓고 연거푸 집어 먹다가 뒤늦게 감탄한 것이라면?생각이 꼬리를 물자 머리가 조금 복잡해졌다.그렇다고 자신의 직감을 의심하지는 않았다. 장지운에게 수상한 구석이 있다는 확신에는 변함이 없었다.다만, 어떻게 해야 저 경계심 많은 속내를 떠볼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너무 비싸지 않습니까. 어찌 계속 신세를 지겠습니까."장지운이 황급히 손사래를 치며 만류했다.맑고 온화한 강유영의 얼굴을 마주한 장지운은 내심 안도하고 있었다.'아버지는 조심성이 너무 지나치시다니까.'온실 속 화초처럼 곱게만 자란 귀녀라면, 순간의 호기심으로 오라버니를 따라 세상 구경이나 나선 것일 터였다. 겉보기에도 이리 순진무구한데 경계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강유영은 길고 풍성한 속눈썹을 내리깐 채, 여유로운 태도로 조금씩 다과를 맛보며 평온한 얼굴을 유지했다.하지만 겉보기와 달리 머릿속은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으려 쉼 없이 굴러가고 있었다. 생각을 너무 많이 해서 머리가 다 지끈거릴 지경이었다."남동생은 올해 몇 살인가요?"마침내 강유영은 허점을 찌를 묘수를 하나 떠올렸다."열두 살입니다."장지운이 의아한 얼굴로 되물었다."제게 남동생이 있는 건 어찌 아셨습니까?""오라버니께 들었어요."강유영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가볍게 대꾸했다."성안에 있는 서당에서 글공부를 한다지요?""예."장
여름 아침의 맑은 햇살이 청석판이 깔린 길 위로 떨어져 따스한 빛을 반사했다. 아직은 그리 무덥지 않은 날씨였다.강유영은 서두르지 않고 여유롭게 거리를 걸으며 주변 풍경을 눈에 담았다.호주성은 제법 규모가 컸고 오가는 사람도 많았다.노점 상인들의 호객 소리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온갖 먹거리들로 거리는 무척이나 활기가 돌았다.산속에서 그토록 고생하다가 이런 평범한 일상을 마주하니 그녀는 저도 모르게 시선을 빼앗겼다.예전 같았으면 시끄럽고 번잡하다며 눈살을 찌푸렸을 소음마저, 지금은 사람 사는 냄새가 묻어나 정겹게 느껴졌다.곁을 걷던 장지운은 강유영의 눈치를 살피다가 한참 뒤에야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조 소저, 아침부터 드시겠습니까?""그러죠."강유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어디가 맛있는지 아나요?""전 몇 군데 가보지 못했습니다만, 저기 있는 고기 전병 노점이 맛이 좋았습니다."장지운은 손을 들어 한 노점을 가리켰다.강유영은 힐끗 쳐다보고는 고개를 저었다."다과점은 없나요? 아니면 번듯한 객잔이라도."장지운이 이런 고급스러운 장소를 다녀본 적이 있는지 떠보려는 심산이었다."다과점도 있습니다."장지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이 성안에서 가장 이름난 다과점이어야 해요."강유영이 재빨리 덧붙였다.마침 배도 고팠으니 이름난 다과점에 가서 허기도 달래고 장지운도 떠볼 생각이었다.장지운은 잠시 멈칫하더니 답했다."저쪽 거리에 있는 장씨네 다과점이 호주성에서 제일간다고 남들에게 듣기는 했습니다.""그럼 거기로 가죠."강유영은 호기심 어린 얼굴로 물었다."그 집에서 제일 유명한 다과가 무엇인지 아나요?"그녀는 다과점에서 파는 음식에 대해 얼마나 아는지 슬쩍 장지운을 떠보았다."저는 잘 모릅니다."장지운은 연신 고개를 내저었다.그 모습에서 별다른 낌새를 찾지 못한 강유영은 가벼운 일상 이야기를 나누며 장씨 다과점을 향해 걸었다.장지운이 대답하는 태도는 아비인 장위봉과 마찬가지로 매사에 지극히 조심스
"그럼 이쪽으로 돌아누워 보거라. 할 이야기가 있다."조원철의 어조는 사뭇 진중했다.진짜 무슨 일이 있나 싶었던 강유영은 몸을 돌려 그를 마주 보고 누웠지만, 시선만은 마주치지 않았다.그녀는 이불에 얼굴을 반쯤 묻은 채 그의 무릎이 있는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말씀하십시오.""너는 장위봉이 청렴한 관료라고 생각하느냐?"조원철은 이불을 살짝 걷어내 그녀의 얼굴을 드러내게 하더니, 뺨에 흐른 눈물 자국을 부드럽게 닦아주었다.그 말에 강유영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이런 질문을 하는 저의가 무엇일까?혹시 장위봉에게 무슨 문제라도 있다는 뜻일까?미간을 살짝 찌푸린 그녀는 장위봉을 처음 만난 순간부터 일어난 모든 일을 머릿속으로 빠르게 되짚어 보았다.한참을 생각하던 그녀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그녀가 보기에는 장위봉에게 별다른 수상한 점이 없었다. 장지운이나 만씨 역시 겉보기에는 평범해 보였다."네가 그 딸과 부딪칠 일이 많을 테니, 앞으로 주의 깊게 잘 살펴보거라."조원철은 길게 설명하지 않고 짧게 당부만 남겼다.장지운의 이야기가 나오자, 강유영은 문득 생각나 손가락으로 머리맡을 가리켰다."이것 좀 보십시오."그녀는 정교하게 세공된 동거울을 가리켰다.조원철이 동거울을 집어 들었다."뭐 대단히 값비싼 물건은 아니라 해도, 그들이 보여준 가난한 살림살이에 비하면 이런 거울을 가지고 있다는 게 조금 이상합니다."강유영이 목소리를 낮추어 속삭였다."누군가에게 선물 받았을 수도 있지. 여인네 방에 자잘한 장신구 하나쯤 있는 것은 예삿일이니."조원철은 동거울을 다시 제자리에 내려놓았다."이 집에 자식이라고는 장지운 하나뿐입니까?"강유영이 호기심 어린 어투로 물었다."장위봉의 말로는 아들이 하나 더 있다고 하더구나. 성안의 서당에서 글공부를 하는데 보름에 한 번씩 집에 온다는군."말을 마친 조원철은 헝클어진 그녀의 머리칼을 다정하게 쓸어 넘겨주었다."우선 자거라. 일어난 뒤에 다시 이야기하자꾸나."강유영은 그의 손
초여름의 이른 아침.경성 진국공부의 사당 주변은 아침부터 자옥한 안개로 휩싸였다.조용한 사당 안에서는 승려가 경을 읊는 소리가 이따금씩 흘러나오고, 정원 내 청동로에서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사당을 지키는 시녀와 하인들은 분주히 움직이며 하루를 준비하고 있었다.강유영은 치맛자락을 들고서 처마 길을 따라 뒤뜰을 나오고 있었다. 온몸에 퍼진 근육통 때문에 걸음걸이가 다소 어색했다.좌측 쪽문이 갑자기 열리더니 커다란 손이 뻗어 나와 가늘고 여린 그녀의 허리를 가로챘다. 상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녀를 끌고 뒤뜰에
강유영은 그가 왜 여기에 있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뒤돌아서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너무 긴장한 탓에 다리가 바닥에 꽁꽁 얼어붙은 듯, 움직여지지 않았다.“들어오거라.”조원철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명령했다.강유영은 누가 보기라도 할까 두려워, 재빨리 고개를 숙이고 내실로 들어갔다.“언제 오셨나요?”잠깐 오씨 어멈의 저녁을 챙기러 나갔다 온 사이에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지금쯤이면 밖에서 왕 소저와 저녁 식사를 해야 하지 않나?’조원철이 다가오더니 문을 닫았다.강유영은 뒤로 두 걸음 물러서서 그와 거리를 벌리고 고개를
“기특하기도 하지. 어서 이리 와서 앉으렴.”한씨는 웃으며 강유영을 향해 손짓하더니 자신의 옆자리를 가볍게 두드렸다.밖에서 강유영에게 잘해주는 것은 인자한 진국공 부인의 명성을 위해서였다.강유영은 약상자를 장 의원에게 건네고는 고분고분 그쪽으로 다가갔다.장 의원은 그녀와 시선을 교환하고는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유영의 처지를 잘 알기에, 그녀의 거짓말을 까발리지 않았다. 장 의원은 손을 뻗어 한씨의 손목에 대고 진맥을 시작했다.한씨의 옆에 앉은 강유영은 불안하게 병풍 뒤쪽을 힐끔거렸다.조원철은 탁자 앞에 마주
“유영아? 얘네가 다 어디로 갔지?”한씨가 병풍 쪽으로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어머니, 오지 마세요. 제가 부주의로 우유차를 옷에 쏟아서 닦고 있었습니다.”다급한 마음에 강유영은 아무 핑계나 둘러댔다. 손바닥은 이미 땀으로 흥건했다.한씨는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네 오라비는?”강유영은 고개를 돌리고 애원에 찬 눈길로 조원철을 바라보았다. 당황하고 조급한 나머지 맑은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고였다.조원철은 그날 밤 그만하자고 애원하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그는 긴 팔을 뻗어 그녀의 허리를 잡아당겨 단단히 품에 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