بيت / 로맨스 / 아내 대행 / Chapter 11 -الفصل 20

جميع فصول : الفصل -الفصل 20

89 فصول

11. 사라진 여자, 움직이는 그림자

한밤중, 시아는 조용히 침대를 빠져나왔다.도윤의 숨결은 일정했고, 그는 아무것도 모른 채, 그녀가 깨어났다는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한 채 잠들어 있었다.그녀는 손목시계를 찬 후, 침대 맡에 두고 간 오래된 핸드폰을 들었다.그 안에는 누구에게도 발신한 적 없는 번호가 저장되어 있었다.그 번호는 과거의 문이었다.그녀가 마지막으로 그 세계를 등지고 나왔던 날죽지 않은 유일한 사람의 이름. 그리고 지금, 다시 그녀를 추적하는 자.“베인.”그녀는 차가운 눈빛으로 문 앞에 선 자신의 그림자를 내려다봤다.그림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바람 때문이 아니었다.그녀의 심장이,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그녀는 과거의 접선 장소 중 하나였던 낡은 폐창고로 향했다.도심 외곽, 이제는 지도에서조차 사라진 이름 없는 지역.과거엔 정리가 이뤄지는 곳이었다.시아는 검은 야상 점퍼 안에 칼 하나를 숨긴 채, 빛 없는 창고 안으로 들어섰다.오래된 철문이 삐걱였다.그 소리만으로도 피가 식는 듯한 기억들이 되살아났다.그리고, 그곳에는 누군가 이미 도착해 있었다.어둠 속. 사람 하나, 벽에 등을 기댄 채 팔짱을 낀 채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그 눈빛은 낯익었다.냉정하고, 탐욕스럽고, 조롱을 품은.베인.“여전하네. 네 눈빛. 사람 하나 죽이고 돌아온 여자처럼 냉정하군.”“네가 아직 살아 있는 게 놀랍다. 죽은 줄 알았어. 아니, 죽었어야 했어.”베인은 웃었다.하지만 그 웃음은 얼굴보다 더 어두웠다.“너한텐 세상이 바뀐 것 같지? 키스 하나로 남자 하나 꼬시고, 따뜻한 밥 먹고, 웃고, 그런 삶이 어울린다고 착각하나 보지?”“…그래. 착각이야.”백시아는 허리에 손을 댔다. 칼자루를 느꼈다.그 차가운 감촉이 이질감 없는 익숙함으로 다가왔다.“왜 따라왔지. 설마 날 다시 데려갈 생각은 아니겠지.”“그럴 수도 있지. 아니면 죽일 수도 있고. 둘 중 하나는 해야 할 거 아냐.너는 너무 많이 봤고, 너무 많이 알아.”“난, 아무것도 기억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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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지켜지지 못한 것들

시아는 자신의 셔츠를 찢어 도윤의 어깨에 감싸듯 눌렀다.뜨겁게 뿜어져 나오는 피,조금만 늦었어도 생명이 끊어졌을 시간.도윤의 얼굴은 창백했고, 입술은 자꾸만 피가 고이려 했다.하지만 그는 웃었다.“괜찮아요… 시아 씨가 옆에 있으니까…”시아는 무너질 듯한 눈으로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그의 말이, 그의 웃음이 지금은 너무도 잔인하게 다정했다.“조금만 참아요. 나, 지금 바로 데려갈게. 당신 절대… 절대 죽게 안 해.”그녀는 칼을 창고 바닥에 내려놓고, 피투성이가 된 그를 안고 일어섰다.그녀의 발밑에는 베인의 부하들이 쓰러져 있었고, 그녀의 등에선 아직도 전투의 냄새가 흘렀다.창고 밖, 자동차 키를 돌려 시동을 걸었다.병원 도착.응급실에서 의사들이 쏟아져 나왔고, 도윤은 즉시 수술실로 옮겨졌다.시아는 그 앞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손끝에는 여전히 피가 묻어 있었고,그녀의 눈엔 감정이 붙잡히지 않은 채 떠돌았다.'내가 그의 곁에 안 나타났으면… 도윤이 이런 일을 겪지 않았을까.'칼을 내려놓았던 그 순간. 그가 다치고 말았다.‘역시 난… 결국 누군가의 삶을 지킬 수 없는 사람이야.’그녀는 의자에 주저앉았다.숨이 차오르고, 가슴이 조여왔다.그때 뒤편에서 익숙한 발걸음이 들려왔다.“당신, 백시아 씨 맞죠?”낯선 목소리. 낮지만 단호한 어조. 백시아는 고개를 들었다.경찰 신분증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그리고 그 뒤에 서 있던 남자조진혁. 도윤과 함께 있었던 사진,시아가 과거에 마주쳤던 남자,그리고 다섯 번째 피해자의 흔적을 추적하던 경찰.그가 그녀 앞에 있었다.“오늘 새벽, 도심 외곽 창고에서 총성이 울렸고, 피가 흩뿌려졌습니다.차량 블랙박스에 기록된 영상 속에 당신이 찍혔어요.”백시아는 조용히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숨길 수 없는 눈빛. 덮을 수 없는 진실.그녀는 입을 열었다.“저 남자… 아무것도 몰라요. 그냥 저 때문에 다친 거예요.”“그래서… 당신은 뭘 알고 있죠?”“나는… .”그 순간, 수술실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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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빛이 스미는 하루

도윤은 퇴원복 위로 가볍게 재킷을 걸쳤다.어깨에는 아직도 붕대가 감겨 있었고, 움직일 때마다 미세한 통증이 따라왔지만그는 오히려 지금 이 감각이 현실이라는 걸 증명해주는 것 같아 안심했다.병실 문 앞엔 백시아가 서 있었다.흰 티셔츠에 청바지, 그리고 검은 재킷.무심한 차림이었지만, 그녀는 언제나처럼 눈에 띄었다.“퇴원하니까… 좀 사람 같네.”“내가요? 이거 다 당신 덕분인 거 알죠?”그녀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오늘 하루만큼은… 아무도 우리 뒤 안 따라오게 하고 싶어요.”“그게 가능할까요?”“그렇게 해볼게요.”그녀의 말에 도윤은 미소 지었다.그리고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등을 잡았다.이번엔 도망도, 위장도 아닌 정말로 함께 걷는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그들은 병원을 나와 오래된 전철을 탔다.지하철 노선표를 따라 내려가다 도심을 벗어난 작은 역에서 내렸다.사람도 드물고, 낯선 상점들이 밀집한 곳.도윤은 이 도시를 잘 알고 있었지만, 이런 구석진 동네는 처음이었다.“여기, 옛날에 내가 자주 숨었던 곳이에요.아무도 찾지 않는 장소. 이 낡은 동네가 그땐 유일한 안식처였어요.”도윤은 그녀의 옆모습을 바라봤다.햇살이 그녀의 머리카락에 닿아 반짝이고 있었고,그림자는 그녀보다 먼저 도로 위로 걸어 나가고 있었다.그들은 허름한 호프집에 앉아 맥주 두 잔을 주문했다.바삭한 후라이드 치킨과 함께 도윤은 웃으며 말했다.“우리 처음 만났을 때 당신이 그랬죠. 치맥 한잔 할까....”“그땐 살려고 그랬어요.”“지금은요?”시아는 맥주잔을 들어 올리며 도윤의 눈을 바라봤다.“…지금은 살기 위해 그러고 싶네요.”잔이 부딪히며 짧은 소리가 났다.세상에서 가장 작은 약속 같은 소리.그들은 거리로 나왔다.푸드트럭이 줄지어 선 좁은 골목,잡동사니 가게들이 뒤엉킨 오래된 거리.사람들 속에서 백시아는 조용히 웃었다.“내가 이런 데서 웃게 될 줄은 몰랐어요.”“나는 계속 상상했어요.”“뭘요?”“당신이, 내 옆에서 이렇게 웃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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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피와 잔향

서울의 밤은 언제나 소란스럽지만, 그 속에 숨은 어둠은 더욱 조용하고, 더러웠다.낡은 창고 건물 지하. 불빛이 거의 닿지 않는 그곳에서,검은 셔츠를 입은 남자가 노트북 앞에 앉아 있었다.베인의 잔당 중 하나 과거 시아의 과거와 동선을 집요하게 추적해온 자, 박형기였다.그는 노트북 화면을 조용히 돌렸다.거기엔 과거 시아의 흔적이 담긴 클립 영상들이 재생되고 있었다.첫 번째 살인. 계부의 복부를 찌르고, 칼을 잡은 채 숨죽여 있던 십대 소녀.두 번째, 세 번째… 점점 침착해지는 손놀림.더 이상 무너지지 않는 감정.그리고, 피해자 곁에 남겨진 ‘붉은 조화’.“이제… 당신의 진짜 얼굴을 세상에 보여줄 시간이지.”그는 마우스를 눌렀다.‘업로드 중…’이라는 문구가 화면에 떴다.하지만…“누르지 마.”낮고 단단한 남성의 목소리.그 순간, 형기는 고개를 들었다.그 앞에 선 사람 조진혁이었다.형기는 조소를 머금은 눈으로 물었다.“이게 뭐라고. 경찰 나으리까지 오셨대.”“그 영상, 공개되는 순간 당신은 감옥이 아니라 관 속으로 들어가게 될 거야.”진혁은 총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형기는 그 총을 힐끔 보고, 키보드를 눌렀다.업로드가 멈췄다.“당신, 왜 그 여자 감싸요? 연쇄 살인범이에요. 그 짓거리 내가 다 봤어요.”“난 그녀를 감싸는 게 아니라, 무너진 정의를 다시 세우는 중이야.”“웃기지 마요. 이 나라에서 정의는 클릭 수랑 조회수에 달려 있다고.”그 말에 진혁은 잠시 침묵한 뒤, 총을 집어 형기의 무릎을 정조준했다.“다음은 말이 아니라, 뼈가 부러질 테니까.”결국 형기는 두 손을 들고 뒤로 물러섰다.같은 시간. 도윤은 시아가 마지막으로 머문 모텔을 찾았다.기록에 남겨진 흔적, 주인 아주머니의 모호한 기억,그리고, 그녀가 버린 작은 상자 하나.도윤은 상자 안을 들여다봤다.낡은 사진 한 장. 어린 소녀와 남자의 흐릿한 이미지. 그리고, 그 뒤에 접힌 메모지.[나는 태어나서 한 번도 누구에게 사랑받은 기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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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괴물의 정의

총성은 짧았고, 잔향은 길었다.철제 기둥에 부딪혀 반사된 파열음이 창고 전체를 휘감았고, 순간, 남자들이 일제히 자세를 낮췄다.피가 튀었다.태성의 어깨가 뒤로 젖혀지며 비틀거렸다.“...X발…”그는 총을 맞은 부위를 움켜쥔 채 뒤로 물러섰고,시아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몸을 굴려 도윤에게 다가갔다.“괜찮아요? 도윤 씨, 들리죠?”도윤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눈은 그녀를 바라보며 떨리고 있었다.“왜, 왜 또 혼자서… 이러고 있어요…”“혼자가 아니에요. 당신이 내 이름을 기억해주니까. 지금은 난 혼자가 아니에요.”그녀는 도윤의 손목을 묶은 줄을 풀며 주변의 움직임을 경계했다.태성은 이미 자세를 고쳐 잡고 있었고, 그의 뒤로 남은 조직 잔당들이 배치되기 시작했다.“넌 여전히 빠르네, 시아. 여전히 정확하고, 여전히... 정이 많지.”시아는 조용히 숨을 고르며 말했다.“정이 많았으면 널 지금까지 놔두지 않았겠지.”“그래, 그게 네 죄야. 다 끝내려던 그날, 너는 날 안 죽였어. 그러니까 오늘 네가 끝장나야 하는 거야.”백시아는 천천히 총구를 태성에게 돌렸다.“그날… 나도 끝내려 했어. 그런데 그 남자가 날 끌어냈어. 도윤 씨가.”“그가 아니라면, 난 이미 네 옆에 뒹굴고 있었을 거야. 살아 있는 게 아니라 썩어 있었겠지.”태성은 비웃었다.“그래서 뭐, 사랑이 널 구원했냐? 그런 건 개소리지. 넌 여전히 살인을 했고, 넌 여전히 괴물이야.”시아는 눈을 내리깔았다.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그래. 난 괴물이야.”그녀는 고개를 들었다.눈빛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하지만 너희는 괴물조차 되지 못했어. 그냥, 기생충이야. 약한 사람을 갉아먹고, 무너진 삶에 숟가락 얹는 더러운 잔재.”그 말과 함께, 시아는 일격을 가했다.총성과 함께 또 한 명이 쓰러졌고, 창고 안은 아수라장이 됐다.도윤은 아직 제 몸을 가누지 못한 채, 구석으로 기어갔다.그의 눈엔 그녀의 모습이 선명하게 담겨 있었다.탄창이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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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꿈에서 깬 자리

늦은 밤, 도윤은 여전히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모니터에는 마감되지 않은 문서 파일이 떠 있었고,커서 깜빡이는 화면 위에는 단 한 줄의 제목만이 적혀 있었다.'아내 대행'그는 천천히 손을 뻗어, 키보드를 눌렀다.그녀와의 첫 만남. 그 순간의 입김과 체온.그리고 그녀가 자신에게 남긴 말.“로또 맞았다 생각하고, 잊읍시다.”이제 와 그 말이 얼마나 잔혹한 농담이었는지,얼마나 슬픈 유서였는지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는 잊지 않으려 했다.그녀가 자신의 곁을 지나갔던 그 모든 계절을,그녀가 괴물이 아닌 사람이었다는 증거를 남기기 위해.하얀 벽. 검은 창살. 철제 침대와 단정한 책들.교도소는 늘 같은 풍경이었고, 시간은 매일 같은 방식으로 흘렀다.그러나 시아는 그곳에서 이전과는 다른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그녀는 이제 매일 새벽, 교도소 내 병동의 청소를 도맡아 하고 있었고,한두 명씩 환자들의 상태를 살피는 간단한 간호 보조 업무도 함께 하고 있었다.누구보다 정확하고, 침착하고, 무표정한 그녀를 동료들은 처음엔 경계했지만시간이 흐르자, 서서히 그녀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그녀는 말이 없었고, 항상 침묵을 택했지만,그 침묵 안에는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세심한 시선이 있었다.어느 날 새벽. 병동에 급하게 실려 온 여죄수가 있었다.피를 너무 많이 흘렸고, 임신 중이었다.의료진은 외부의 전문의를 긴급 요청했지만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간호사는 갈팡질팡하며 말했다.“아이… 심장 소리가… 점점… 멎어가요…”모두가 멍하니 선 그때, 시아가 앞으로 나섰다.그녀는 조용히 말했다.“배를 열어야 해요. 피를 멈추게 하지 않으면… 산모도 아이도 못 살아요.”“하지만 수술 자격이 없잖아요…!”“저는 사람을 죽인 손으로 오늘, 한 사람을 살릴 겁니다.”누구도 그녀를 막지 못했다.그녀의 눈빛이 너무 맑았기에.밤이 지나고, 아이는 울었다.산모는 간신히 정신을 되찾았고,의무실엔 침묵과 함께 한숨이 터졌다.시아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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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사라지지 않는 흔적

서울지방경찰청, 강력 2팀 회의실.형광등 불빛이 차갑게 빛나는 가운데,조진혁은 오래된 사건 파일을 책상 위에 펼쳐두고 있었다.조화 살인 사건. 공식적으로는 5건.모두 다른 시기, 다른 장소, 다른 방식의 살인이었지만공통점은 딱 하나. 시신 옆에 놓인 붉은 조화 한 송이.그는 탁자 위에 흩어진 사진들을 조용히 바라보았다.시신의 눈동자가 여전히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있는 듯 굳어 있던 3건,피해자가 모두 가정폭력, 성범죄, 조직폭력 관련 전과자였던 4건,그리고 마지막 다섯 번째“그 사건 이후, 조화는 사라졌죠. 그리고 1년 만에… 다시 시작된 겁니다.”진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칠판에 빨간 펜으로 이름을 적었다.백시아.그 이름은 아직 수사 기록에 명확히 기재되지 않았다.하지만 그의 직감은 이 사건들 너머에 분명히 그녀가 있다고 말했다.한편, 도윤은 장미가 꽂혀 있던 골목 근처 원룸에서 낮밤이 바뀐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밤이면 길을 돌고, 낮에는 카페 구석에 앉아 노트북을 켠 채 정신없이 무언가를 썼다.그가 작성하는 건, 이른바 ‘백시아 추적 일지’였다.조화가 처음 등장한 사건 연도: 2020년 3월, 부산 금련동2건째 살인 피해자는 전과 4범의 조직원세 번째 피해자는 실종 전, 백시아와 같은 사설 체육관에 다닌 기록그리고 가장 최근 사건. 그는 벽에 걸어둔 화이트보드에 마지막 장미 사진을 붙여놓고 그 옆에 크게 적었다.“왜 다시 시작했을까.”도윤은 혼잣말을 중얼이며그녀가 자신의 손으로 ‘과거’를 다시 꺼내든 이유를 되짚고 있었다.“혹시… 일부러 나에게 보이기 위해 남긴 건 아닐까. 그 조화.”그녀가 도윤을 다시 시험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아니면, 자신이 놓은 길 위에서 ‘다시 와달라’고 말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는 기대도윤은 그 기대와 공포 사이에서 밤마다 뜨겁고 잔인한 혼잣말을 반복했다.진혁은 내부 수사망을 좁히며 한 가지 이상한 공통점을 발견했다.다섯 번의 피해자 중 세 명은 모두 같은 공장에서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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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죽이는 이유, 살아남는 이유

도윤은 립스틱으로 새겨진 문장을 지우지 못한 채, 그 벽 앞에 서 있었다.‘내가 죽으면, 당신이 울까요?’그 문장은 단순한 독백이 아니었다.그건 분명히, 자신에게 전하는 말이었다.그녀는 그를 다시 바라보고 있었다.죽음의 문턱 너머에서도“그래요. 울 겁니다. 펑펑, 아무렇지 않은 척도 못 하고, 속이 다 찢어질 만큼.”도윤은 처음으로 확신했다.그녀가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믿는 것보다,그녀를 끌어오는 편이 훨씬 더 나을 거라는 걸.“당신이 나를 떠나도, 나는… 계속 당신을 찾을 겁니다.”그는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그리고 1년 전 백시아가 남긴 명함처럼, 작은 종이에 짧은 문장을 적었다.“내가 널 지킬게. 당신이 괴물이든, 아니든.”그 종이를 벽에 붙이고, 그 옆에 작은 장미 조화를 꽂았다.이번엔 도윤의 메시지였다.그 시각, 어두운 모텔방.시아는 거울 앞에 앉아 있었다.창문은 두꺼운 커튼으로 가려져 있었고,형광등은 깜빡이며 천천히 그녀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테이블 위엔 노트북 한 대, 그 위엔 구글 지도가 켜져 있었다.붉은 핀으로 표시된 지점.'강서구 화곡동 OOO 클럽'그곳은 과거 그녀가 몸담았던 조직이 비공식적 회합을 했던 장소.그리고, 그녀가 죽이지 못한 단 한 명계부를 소개해주고, 그녀를 처음 어둠으로 이끌었던 남자.‘최건우’가 머무는 곳이었다.그녀는 립스틱을 꺼내 거울에 짧게 글씨를 썼다.“이번이 마지막.”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며, 시아는 오랜만에 웃었다.그 웃음은 기묘하게도 아름다웠고, 절망적일 만큼 슬펐다.한편, 서울지방경찰청.진혁은 컴퓨터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감시카메라. 지하철역, 거리 CCTV, 가게 출입 기록.그리고 “여기다.”그는 화면을 확대했다.며칠 전 새벽, 골목을 지나간 후드 모자 차림의 여성.카메라 해상도는 흐릿했지만,걷는 자세, 얼굴선을 덮은 모자, 움직임의 리듬. 모두가 그를 확신케 했다.“백시아.”진혁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그녀는 돌아왔다. 그리고 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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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심장을 겨눈 것은 누구였을까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시아의 눈앞엔 세 사람이 겹쳐져 있었다.오래전 그녀를 파괴한 ‘최건우’,그녀의 괴물성을 붙잡고 사랑한 ‘이도윤’,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녀를 겨누고 있는 형사 ‘조진혁’.한 손에 칼, 한 손에 시계.그녀의 손끝이 작게 떨렸다.칼날 위로 뚝,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왜… 오셨어요.”“당신이 나를 막을 자격은 없잖아요.”도윤은 한 걸음 다가섰다.눈빛엔 겁도, 두려움도 없었다.그저 그녀를 향한 간절함이 고여 있을 뿐이었다.“당신이 지금 여기서 이 사람을 죽인다고 해도…난 당신을 버리지 않을 겁니다.”“왜냐면 그 누구보다도, 당신이 얼마나 망가졌는지 내가 봤으니까.”시아의 입술이 떨렸다.손에 쥔 칼이 바닥을 긁으며 조금씩 아래로 기울어졌다.“그 사람은 나를 팔았어요.\ 내 인생 전체를.”“그런 인간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벌이에요. …그래도 괜찮아요?”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도… 당신이 괴물이 되지 않았으면 해요.”“당신의 피는… 복수가 아니라, 사랑 때문에 멈춰야 해요.”시아의 칼이 천천히 내려가고 있었다.하지만 그 순간.최건우는 소리 없이 품 안에서 뭔가를 꺼냈다.반짝이는 쇠. 작은 리볼버.진혁의 눈이 번쩍 뜨였다.“총이다!! 엎드려!!”방 안은 순식간에 소란에 휩싸였다.도윤은 본능적으로 백시아 쪽으로 몸을 날렸고,최건우의 총구가 흔들렸다.탕.단 한 발.귀를 찢는 총성이 터지고, 모두가 순간 정지한 것처럼 굳었다.백시아는 도윤의 품 안에서 몸을 웅크린 채 있었다.그녀의 어깨를 감싼 그의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도윤이 고개를 들었다.자신의 가슴에, 붉은 피가 번져가고 있었다.“…도윤 씨?”그는 천천히, 아주 느린 속도로 그녀를 바라봤다.“…맞았나 봐요.”시아의 눈이 커졌다.그는 웃고 있었지만, 그 웃음은 이미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이렇게라도… 당신을 막을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그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시아는 소리쳤다.그 순간 그녀는 아무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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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심판의 자리에서

서울중앙지방법원, 제5형사법정.무겁고 낮은 천장 아래, 회색빛의 긴 벤치가 줄지어 놓여 있었다.백시아는 그 법정 가운데에 앉아 있었다.정확히는, 피고인석. 손목엔 여전히 수갑이 채워져 있었고,그녀의 양옆엔 구속을 담당한 교도관이 앉아 있었다.그리고, 법정 뒷편. 가장 구석진 방청석. 그곳엔 도윤이 앉아 있었다.흰 셔츠에, 아직도 흉터 자국이 남은 왼쪽 가슴을 감싼 채.그는 숨소리조차 죽이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재판장은 조용히 서류를 넘기며 말했다.“피고인은 연쇄살인 혐의, 살인미수 혐의, 불법체류자 고용,공공장소에서의 무단 침입 등 다수의 중범죄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그러나 피고인의 진술에 따라 사안의 성격은 판단을 달리할 수 있습니다.”“피고인, 본인의 입으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백시아는 마이크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법정 안의 모든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다.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의 목소리로 ‘백시아’라는 이름을 꺼냈다.“제 이름은 백시아입니다. 저는 다섯 명의 남자를 죽였습니다.”잠시 정적.그녀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그들은 모두, 제 인생을 망가뜨린 사람들이었습니다.”“열일곱 살 때부터 계부의 손에 넘어갔고, 팔렸고, 팔린 자리에서… 다시 쓰레기처럼 버려졌습니다.”“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살인에도 사정이 있어선 안 된다’고.”“저도 그 말,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변명하지 않겠습니다.”진혁이 증인석에 섰다.그는 형사로서, 수사 과정과 진술을 밝히며 말했다.“피고인은 끝까지 도망가지 않았습니다.마지막 피해자였던 최건우는 피고인의 손에 죽지 않았고, 도리어 피고인을 살해하려 했습니다.”“그리고… 피고인이 공격당했을 때 이도윤 씨는 그녀를 지키기 위해 총을 맞았습니다.”진혁은 목이 메었지만, 계속 말을 이었다.“저는 형사로서… 그녀를 처음엔 단순한 연쇄살인범이라 생각했습니다.”“하지만 이젠… 시아는 죗값을 받으려는 사람이라는 걸 압니다.스스로 죄를 인정하고, 자신이 어떤 괴물이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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