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감옥의 무거운 철문이 열리며 횃불의 붉은빛이 길게 드리워졌다.어둠을 뚫고 들어온 자는 엘런이었다.그는 카시안에게 첩자로 몰려 끌려갔을 때의 그 굴욕적인 몰골을 애써 화려한 옷차림으로 감추고 있었으나, 핏발 선 눈동자에는 벼랑 끝에 몰린 광인의 광기가 번들거리고 있었다.“이런, 이런. 고결하신 황제 부부의 몰골이 말이 아니시군요.”엘런은 혀를 차며 로제의 감방 앞으로 다가왔다. 형인 벨모어에게 철저히 버림받아 서연합으로 압송될 처지였지만, 그는 이 아르센의 황후만큼은 제 전리품으로 끌고 갈 작정이었다.“목소리 큰 걸 보니 처형은 좀 미뤄도 되겠군.”엘런은 레온의 악을 쓰는 소리를 무시한 채, 오직 로제에게만 시선을 고정했다. 얇은 드레스 너머를 핥아내리는 듯한, 노골적이고 끈적한 눈빛이었다.“형님은 아르센을 서연합의 속국으로 짓밟고, 황제는 폐위시켜 목을 칠 생각입니다. 하지만….”엘런이 쇠창살 사이로 손을 뻗어, 피하지 않는 로제의 턱을 집요하게 틀어쥐었다.“당신이 내게 온다면, 황제의 목숨만은 살려주지.”레온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무슨 개소리냐! 내 아내에게서 그 더러운 손 떼!”“조용히 해, 폐하. 네 목숨줄을 쥐고 있는 건 나니까.”엘런은 턱을 쥔 손에 힘을 주며 로제의 귓가에 질척하게 속삭였다.“서연합으로 가서 내 전용 창부가 되십시오. 밤마다 내 밑에서 헐떡이며 나를 즐겁게 해준다면, 저 무능한 전남편은 변방의 짐승으로라도 살게 해줄 테니.”로제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전생에 카시안이 했던 제안과 똑같은 구도.하지만 상대는 압도적인 제왕이 아니라, 벼랑 끝에서 발정 난 미친개에 불과했다.‘거절하면 레온은 죽는다. 그가 죽으면 카시안의 심연에 맞서 시간을 벌어줄 유일한 방패이자, 내 복수를 완성할 사냥개가 사라진다. 두 남자가 서로를 갉아먹는 교착 상태가 무너지는 순간, 내 제국을 세우려던 계획도 끝이다.’로제는 분노와 공포로 일그러진 레온을 곁눈질했다. 아직은, 그가 쓸모가 남아 있었다.“좋습니다.
Huling Na-update : 2026-05-04 Magbasa p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