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켄 황궁, 겨울의 문턱.하늘은 잿빛이었고, 거대한 흑요석 성벽 위로 날 선 싸락눈이 휘몰아치고 있었다.철혈의 제국이라 불리는 이곳의 공기는 잔혹하고 무거웠다. 하지만 오늘 아침, 그 무거운 공기를 뒤흔드는 소문이 회랑을 타고 빠르게 번졌다.“폐하께서 무언가를 주워 오셨다는군.”“주워 왔다니? 전리품인가?”“아니, 피투성이가 된 여인이라네. 숨이 턱에 닿을 듯 말을 몰아 오셨어.”병사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여색에는 일절 관심 없이 오직 정복에만 미쳐 있던 냉혈한 황제가, 원정길에서 여자를 품에 안고 돌아왔다니. 개국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그때였다.황궁의 정문이 열리고, 차가운 북풍과 함께 거대한 마기(魔氣)를 뿜어내는 그림자가 들이닥쳤다.[저벅, 저벅.]피와 눈이 엉겨 붙은 군화 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카시안이었다.검은 제복 위로 눈이 내려앉았지만, 그는 털어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의 품에는 핏빛으로 물든 하얀 드레스 자락에 꽁꽁 감싸인, 믿을 수 없이 가냘픈 체구의 여인이 안겨 있었다. “폐, 폐하! 당장 의사를 부를까요?”시종장이 기겁하며 달려 나왔지만, 카시안의 붉은 눈동자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에 힉, 하고 숨을 집어삼켰다.“황실 주치의를 내 방으로 보내. 그 외의 새끼들은 내 반경 백 보 안으로 접근하지 마라.”사나운 짐승이 제 암컷을 지키듯 위협적인 기세였다.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그 모습을 훔쳐보았다. 카시안의 단단한 팔 사이로, 상처 입은 여인의 창백하고 마른 손이 툭 떨어져 흔들렸다.황제는 그 여인을 안고, 궁의 가장 은밀한 곳으로 향했다.지하의 포로 수용소도, 타국 왕족을 대우하는 화려한 귀빈실도 아니었다.황제의 침실과 내실로 연결된, 역대 황제들이 자신의 가장 탐욕스러운 욕정을 푸는 '정부(情婦)의 밀실'이었다.[쾅.]문이 거칠게 닫혔다.드라켄의 지독한 눈보라 속으로, 아르센의 겁없는 새가 완벽하게 갇히는 순간이었다...방 안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
Last Updated : 2026-05-10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