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혁은 이미 몇 차례나 큰댁을 해치려 했다.지난번 마차 사고 역시 자신은 쏙 빠지고 부인 송씨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 씌웠다.유정남이 이 일로 차남댁과 완전히 갈라서게 만들기에는 아직 조금 부족했다.하지만 이번 서풍각에서의 만남이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었기에, 유지영은 미소를 지었다.“이미 지나간 일인걸요. 둘째 숙모께서도 잠시 판단이 흐려지셨던 것뿐이라 믿어요. 아버지, 가실 데가 있으시다니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딸의 속 깊은 배려에 유정남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떠나기 전, 유지영은 문득 배준형 역시 자신처럼 회귀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그렇다면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을 텐데, 그가 미리 대비를 해둔다면 이 판을 어떻게 깨부숴야 할까?“아버지!”유지영은 급히 유정남을 불러세웠다.유정남은 걸음을 멈추고 의아한 눈빛으로 그녀를 돌아보았다.“요 근래 자꾸 악몽을 꾸게 되네요. 금운대로 가서 불공을 드릴까 하는데 호위를 몇 명 빌려주실 수 있을까요?”유지영은 애써 겁에 질린 얼굴로 물었다. 다행히 무리한 요청도 아니었기에 유정남은 흔쾌히 응했다.그러고는 뒤에 있던 호위 둘에게 유지영을 따르라는 명을 내렸다.“감사합니다, 아버지.”유정남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떠났다.남겨진 두 호위를 힐끗 바라본 유지영은 나직하게 명했다.“지금 바로 금운대로 갈 것이니, 마차를 준비하거라.”“예.”유지영은 이번에 운청과 운민, 그리고 홍주와 동금 등을 대동했다.마차에 오르기 전, 그녀는 동금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몇 가지 지시를 내렸다.동금은 순간 당황한 기색을 보였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유지영이 두둑한 은표 몇 장을 건네자, 동금은 이를 품에 잘 챙겨 넣고는 조용히 어딘가로 사라졌다.경성의 이름난 주루인 서풍각은 문인과 관료들이 자주 드나드는 격조 높은 곳이었다.천하의 온갖 진미를 다룰 줄 안다 자부하는 곳이기도 했다.오늘은 정왕이 대접하는 자리인 만큼, 서풍각 2층의 상등 특실에는 화려한 술상이 차려져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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