بيت / 로맨스 / 도깨비의 아이 / Chapter 41 -الفصل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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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화

혜련은 제 귀를 의심하며 책상 위에 놓인 종이를 신경질적으로 툭툭 건드렸다. "김 비서, 지금 나 놀리는 거야?" "절대 아닙니다, 사모님. 다시 제대로 조사하겠습니다." "그만 됐으니까 나가 봐요!" 혜련이 소리를 지르자 평소 침착하던 김 비서의 어깨가 눈에 띄게 움츠러들었다. 그는 억울한 듯 입술을 달싹이다가 이내 포기한 듯 고개를 숙였다. 딸의 기자회견만으로도 충분히 골치가 아픈데, 말도 안 되는 보고까지 들으니 속이 뒤집힐 지경이었다. 김 비서가 쭈뼛거리며 물러나려던 찰나, 무거운 정적을 깨고 혜련의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 뜬 이름을 확인한 혜련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김 비서에게 눈짓으로 나가라고 이른 그녀는, 그가 문을 닫기도 전에 낚아채듯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윤 대표님, 바쁘신 시간에 실례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방금 지희 씨 기자회견 영상 봤습니다.- 휴대폰 너머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정중하고 다정했다. 혜련은 짧게 숨을 고른 뒤 일부러 한 톤 낮춘 목소리로 답했다. "실례는요. 안 그래도 지희 때문에 머리가 터질 지경이에요. 애가 왜 그렇게 제멋대로 사는지 몰라." -지희 씨가 워낙 개성이 강해서 대표님이 많이 곤란하신 모양입니다.- 도윤은 부드럽게 웃었다. 하지만 전화기를 든 그의 시선은 제 손목에 머물러 있었다. 나흘이 지나도록 독고춘이 남긴 손자국은 아직 지워지지 않았다. "정말 면목이 없네요. 지난번 가져오신 반지 얘기도 그렇고, 제가 지희를 더 잘 타일렀어야 했는데." -대표님 탓이 아니라는 거 잘 압니다. 다만 저희 부모님 쪽에서도 말이 나올 것 같아서, 제가 잘 말씀드려 놓겠습니다.- "그렇게 말해 주니 정말 든든하네요. 두 분께 죄송하다고 꼭 좀 전해 줘요." -너무 심려치 마세요. 조만간 다시 뵙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혜련은 휴대폰을 내려놓으며 비로소 어깨의 긴장을 풀었다. 화를 내도 이상하지 않을 자리에서 저렇게까지 정중한 남자였다. 그 정중함이 고마우면서도, 어딘가 한 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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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화

기자회견이 끝나고 며칠이 지났지만, 대중의 관심은 좀처럼 식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톱스타 강지희의 남자친구라는 존재는 단순한 연애 상대를 넘어 하나의 화제, 나아가 하나의 논쟁거리로 번져 가고 있었다. 포털과 커뮤니티에는 관련 글이 끊이지 않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새로운 해석과 추측이 덧붙여졌다. 특히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묘한 구도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강지희의 상대로 박도윤과 독고춘 중 누가 더 어울리는가를 두고 벌어지는, 일종의 편 가르기였다. 이른바 박도윤파는 H금융 부사장이자 완벽한 외모를 갖춘 그의 배경과 조건을 내세우며, 강지희와의 조합이 훨씬 현실적이고 안정적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독고춘파는 기자회견에서 포착된 그의 분위기와 존재감을 근거로, 오히려 강지희와 더 강렬한 그림을 만들어 낸다고 맞섰다. 마치 남의 인생을 대신 결정이라도 하듯 열을 올리는 분위기 속에서, 강지희라는 이름은 점점 더 자극적으로 소비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논란의 한가운데에 선 지희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우아한 실크 잠옷 차림으로 침대 위에 늘어져 있었다. 그녀는 한동안 말없이 태블릿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손가락으로 몇 번 화면을 넘기긴 했지만, 정작 읽고 있는 건 기사가 아니라 그 아래 끝도 없이 이어지는 댓글들이었다. "참 나, 다들 할 일도 없나 봐. 남의 남자를 두고 왜 싸우고 있어?" 천천히 댓글을 내려 보던 지희의 눈썹이 갑자기 심하게 꿈틀거렸다. [베스트 댓글] 남자가 아깝다 ㅋㅋㅋ (좋아요 565,348) ㄴ[답글] 나도 그렇게 느꼈음;; ㄴ[답글] 강지희 인생 최대 업적: 매니저 꼬심. "하! 남자가 아까워? 내 인생 최대 업적?" 어이가 없어서 짧은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그 얼굴에는 어딘가 미묘하게 긁힌 기색이 묻어 있었다. 박도윤과 엮일 때는 신데렐라라고 비웃더니, 이번에는 남자가 아깝단다. 어느 쪽으로 가도 강지희는 늘 남자보다 한 칸 아래에 놓이는 모양이었다. 지희는 심호흡을 한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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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화

스튜디오에 들어서자마자 분위기가 평소와 미묘하게 달라졌다. 오픈 세트장 안은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이는 스태프들과 장비 세팅 소리로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누군가 입구 쪽으로 시선을 돌린 순간, 공기가 한 번 크게 흔들렸다. 도도하게 안으로 들어오는 강지희 때문이었다. 오늘 촬영 콘셉트에 맞춰 길게 늘어뜨린 웨이브 머리, 짙지만 과하지 않게 눌러 담은 메이크업, 그리고 몸의 선을 매끄럽게 살려 주는 밝은 톤의 드레스까지. 화려하다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완벽하게 꾸민 그녀가 조명 아래로 걸어 들어오자 여기저기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와… 지희 씨, 오늘 미모 미쳤는데?" "지희 언니! 여신 같아요!" 웅성거림 속에서도 지희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속으로는 은근한 만족감이 차오르고 있었다. '그래, 이게 정상이지.' 어젯밤 댓글에서 '남자가 아깝다', '인생 최대 업적' 같은 헛소리를 떠들어 대던 사람들이 이상한 거였다. 지희는 괜히 턱끝을 살짝 치켜올리며 촬영장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얼마 후 촬영이 시작되었다. 조명이 켜지고 카메라가 움직이자 그녀의 눈빛이 순식간에 달라졌다. 감독이 요구한 감정을 정확하게 끌어올리면서도, 계산된 각도와 호흡으로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화면에 새겨 넣는 모습. 왜 강지희가 대한민국 최고의 톱스타로 불리는지 단번에 납득하게 만드는 연기였다. "컷! 와, 지희 씨 너무 완벽한데?" 모니터를 들여다보던 감독의 입에서 짧은 감탄이 흘러나왔다. 주변 스태프들 역시 넋을 놓은 얼굴로 화면 속 지희를 바라보았다. 촬영은 쉬지 않고 이어졌고, 오늘따라 지희의 컨디션은 유독 압도적이었다. 웃는 장면에서는 보는 사람까지 홀릴 만큼 화사했고, 차갑게 시선을 내리깔 때는 숨이 막힐 정도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뒤쪽 대기석에서 지켜보던 지아는 연신 감탄을 터뜨렸다. "와… 언니, 오늘 진짜 레전드다." 하지만 그 옆의 독고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카메라도, 사람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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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화

독고춘의 대답에도 혜련은 여전히 여유로운 얼굴로 찻잔을 내려놓았다. "고춘 씨, 이건 단순한 제안이 아니야. 지희 커리어에 정점이 될 기회고, 우리 회사로서도 놓칠 수 없는 계약이에요. 고춘 씨가 협조해 준다면 그에 대한 보상은 확실히 보장하죠." 달콤한 제안에도 독고춘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옆에서 입을 꾹 다문 채 창밖만 노려보는 지희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그녀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럼, 생각해 보겠습니다." 유보적인 대답에 혜련의 눈썹이 까딱였지만, 그녀는 더 몰아붙이지 않았다. "그래요. 천천히 생각해 보고 이쪽으로 연락 줘요." 혜련은 명함 한 장을 독고춘에게 건넸다. 그렇게 그 자리는 아무 소득 없이 끝이 났다. ─── 카페 앞으로 차를 몰고 온 지아가 두 사람을 태운 뒤부터, 차 안은 숨이 막힐 정도로 조용했다. 지아는 룸미러를 힐끔거리다가도 괜히 눈만 끔뻑이며 다시 정면을 바라보았다. 뒷좌석의 지희는 창밖만 바라본 채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차창 밖으로 스쳐 가는 서울의 야경이 그녀의 얼굴 위로 희미하게 번졌다가 사라졌다. 조수석의 독고춘 역시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려다 멈추기를 되풀이했지만, 지희는 끝내 그를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다. 무거운 침묵이 차 안을 계속 짓눌렀다. 차가 지하 주차장에 들어서자마자 지희는 문이 열리기 무섭게 차에서 내렸다. 빠르게 현관 쪽으로 걸어가는 뒷모습은 누가 봐도 싸늘했다. 뒤따라 내린 독고춘이 성큼성큼 다가가 지희의 팔목을 낚아챘다. 이대로 그냥 보내면 무언가가 부서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뭐 해요? 이거 놔요!" 지희가 거칠게 팔을 휘둘렀지만 독고춘의 손아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혹시, 내가 기분 상하게 했나?" "그런 거 아니니까, 그만 가라고요!" 두 사람의 눈치를 번갈아 살피던 지아가 슬그머니 뒷걸음질 쳤다. "어… 저는 배가 아파서 먼저 들어가 봐야 할 듯…" 지아가 황급히 자리를 피하자 지하 주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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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화

독고춘이 누아르 화보 촬영을 승낙한 뒤부터 분위기는 묘하게 달라졌다. 정확히 말하면, 주차장에서의 그 소동 이후 지희는 촬영 당일까지 독고춘을 필사적으로 피해 다녔다. 드라마 촬영장으로 가는 차 안에서는 잠든 척을 했고, 촬영장에서든 집에서든 마주치기만 하면 잽싸게 도망쳤다. 그날의 눈물과 포옹, 그리고 처참하게 번진 화장이 자꾸만 떠올라 그녀를 괴롭혔으니까. 반면 독고춘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아침을 차리고, 스케줄을 확인하고, 조용히 곁을 지켰다. 그 태도가 오히려 사람을 더 미치게 만들었다. "짜증 나게 왜 혼자만 멀쩡한 건데…" 결국 지희는 독고춘을 볼 때마다 괜히 혼자 열이 오른 채 꼬박 일주일을 버텨야 했다. 그사이 모든 일은 놀라울 만큼 빠르게 진행되었다. 누아르 본사와 KG엔터테인먼트는 오래전부터 합을 맞춰 온 것처럼 계약서를 밀어붙였고, 촬영 콘셉트와 의상, 세트 디자인까지 단 며칠 만에 모두 확정 지어 버렸다. 그리고 정확히 일주일 뒤. 일산 외곽의 스튜디오에서 누아르 신규 향수 캠페인 촬영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신비로운 배경 위로 낮게 깔린 조명, 짙은 향수 냄새와 묵직한 음악. 그 한가운데에 강지희와 독고춘이 서 있었다. "와… 미쳤다." 촬영 준비를 하던 스태프 하나가 넋 나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독고춘은 검은 셔츠의 단추를 모두 풀어헤친 채 조명 아래 서 있었다. 드러난 목선 아래로 단단한 근육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아무 꾸밈 없는 무심한 표정이 오히려 위험할 만큼 거친 남자의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드라마 파티 장면에 엑스트라로 한 번 서 본 게 전부인 남자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맞은편의 지희는 어깨와 다리를 과감하게 드러낸 블랙 드레스 차림이었다. 평소와 달리, 미세하게 긴장한 기색을 애써 감추고 있었다. 문제는 촬영이 시작된 뒤에 제대로 터졌다. "좋아요. 이번엔 조금 더 붙어 볼게요." 카메라 감독이 모니터를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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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화

"오케이! 좋아요!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감독의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스튜디오 안에 박수가 터져 나왔다. 길고 길었던 누아르 향수 캠페인 촬영이 드디어 끝난 순간이었다. 강렬한 조명들이 하나둘 꺼지고, 긴장으로 가득했던 스튜디오의 공기도 서서히 풀어지기 시작했다. "미쳤다, 진짜… 오늘 결과물 역대급인데?" 스태프들은 모니터 속 마지막 컷을 보며 감탄을 쏟아 냈다. 화면 안에는 서로를 아슬아슬하게 마주한 강지희와 독고춘이 담겨 있었다. 숨이 닿을 듯 가까운 거리, 금방이라도 서로를 집어삼킬 듯한 시선, 그리고 당장이라도 입을 맞출 것 같은 야릇한 분위기. 누가 봐도 완벽한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정작 촬영을 끝낸 당사자들은 묘하게 어색했다. "…크흠, 수고요." 지희가 먼저 시선을 피한 채 짧게 말했다. "…음." 독고춘의 대답 역시 짧았다. 단지 그것뿐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공기는 촬영 전과 분명히 달라져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다는 게 고스란히 느껴지는, 이상한 분위기였다. 그 미묘한 기류를 가장 먼저 눈치챈 건 역시 지아였다. 지아는 뒷정리를 하는 척하면서도 슬쩍 두 사람의 눈치를 살폈다. 평소 같으면 지희가 먼저 틱틱거리고 독고춘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받아쳤을 텐데, 지금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눈이 마주치면 동시에 피하고, 괜히 동선이 겹치면 어색하게 멈칫거렸다. 지아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어우… 간질거려 죽겠네, 진짜.' ─── 그로부터 나흘 뒤. 누아르가 공개한 신규 향수 캠페인은 예상을 훌쩍 넘는 뜨거운 반응을 끌어내고 있었다. 화보가 공개되자마자 SNS와 커뮤니티에는 강지희와 독고춘의 사진이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갔고, 특히 메인 컷 한 장이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검은 배경 아래 서로를 아슬아슬하게 마주한 두 사람. 금방이라도 입술이 닿을 듯한 거리와 묘하게 위험한 분위기가 사람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댓글] 분위기 뭐냐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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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화

지희의 걸음이 카페 출입문 앞에서 멈춰 섰다. 등 뒤에서 들려온 박도윤의 마지막 말이 목덜미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카페 안에는 여전히 잔잔한 재즈 음악이 흘렀고, 다른 손님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지희의 세계만 조용히 얼어붙고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거 협박인가요?" 도윤은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부드럽게 웃었다. "설마요. 전 궁금한 걸 말했을 뿐입니다." "……" "대한민국 최고의 여배우가 전 국민을 상대로 공개 연애 쇼를 벌였는데, 그 상대가 정체불명의 일반인." 그의 시선이 지희를 기분 나쁘게 훑었다. "게다가 윤 대표님 허락도 없이 독단적으로 움직인 거라면… 꽤 흥미로운 이야기가 되지 않겠습니까?" 지희의 손끝이 점점 차갑게 식어 갔다. 엄마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결코 가만히 있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다. 화를 내는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독고춘을 자신의 곁에서 완전히 떼어 내려 할 테고, 결국 눈앞의 이 남자와 억지로 엮으려 들겠지. 그 생각에 분노가 차오르는 순간, 머릿속 깊은 곳에서 갓난아기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파… 무서워… 싫어… 울부짖듯 터지는 목소리와 함께 새까만 감정이 머릿속으로 밀려들었다. 증오. 공포. 그리고 죽이고 싶을 만큼 끓어오르는 원한. 목소리가 커질수록 지희의 숨도 거칠어졌다. "…읏!" 지희는 한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쥔 채 휘청거렸다. 도윤은 그런 그녀를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아까부터 안색이 안 좋아 보이는데." "…입 닥쳐! 죽여… 버리기 전에…" "하하하. 이거 정말 무섭군요." 그는 웃고 있었지만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먹잇감이 발버둥 치는 모습을 느긋하게 감상하는 포식자 같았다. 지희는 이를 악물고 비틀거리며 카페를 빠져나왔다. 주차장 한쪽에 세워 둔 검은 밴 안에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지아가, 멀리서 휘청이며 다가오는 지희를 발견하고는 다급히 문을 열고 뛰쳐나왔다. "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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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화

지희는 독고춘의 허리를 꽉 붙든 채 좀처럼 떨어지지 못했다. 거칠게 떨리던 숨도 그의 품 안에서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독고춘 역시 말없이 그녀의 등을 천천히 토닥여 주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지희의 몸 안에서 일렁이는 사랑이의 기운이 평소와 달랐다. 방 안에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 옆에서 가만히 두 사람을 바라보던 지아가 슬쩍 입술을 삐죽였다. "나도 오늘 언니 잘못될까 봐 엄청 무서웠는데! 형부만 안아 주고 진짜 너무한 거 아니에요?" 지아는 냅다 두 사람에게 달라붙었다. "저도 껴 줘요!" 순식간에 세 사람의 몸이 한데 엉켜 버렸다. 두 사람 사이에 낑긴 지아가 중얼거렸다. "…하아, 이제 좀 살 것 같네." 장난스러운 말투였지만, 떨리는 목소리 끝에는 아직 가시지 않은 불안이 희미하게 묻어 있었다. 방 안의 무거운 공기는 지아의 난입으로 조금씩 결이 바뀌기 시작했다. 독고춘의 가슴팍과 지희의 등,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지아의 체온까지 뒤섞이며 묘한 온기가 방 안에 퍼져 나갔다. 잠시 후, 지아는 슬쩍 두 사람 사이에서 빠져나오더니 눈치를 보며 뒷걸음질 쳤다. 그러고는 방문 밖으로 나가며 지희에게 작게 속삭였다. "후… 이제 언니 괜찮아진 것 같으니까 불청객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지아는 한쪽 눈을 찡긋 감아 보였다. "저 신경 쓰지 마시고 진도 좀 팍팍 빼요, 언니." "…뭐? 아… 야, 이지아!" 당황한 지희가 급하게 몸을 떼어 내려던 순간이었다. "…어, 어라?" 몸이 붕 뜨며 시야가 흔들렸다. 독고춘이 진지한 얼굴로 그녀를 그대로 안아 들었다. "꼬, 꼬춘 씨?" 지희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독고춘은 대답 없이 침대 쪽으로 걸어가, 아주 조심스럽게 그녀를 침대 위에 눕혔다. 그제야 지희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바로 눈앞에서, 고개를 숙인 독고춘의 얼굴이 천천히 가까워지고 있었다. 짙은 눈동자. 낮게 내려앉은 숨결. "이, 이게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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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화

다음 날 오전, KG엔터테인먼트 대표실. 넓은 통유리창 사이로 부드러운 햇살이 쏟아지고, 사무실 안에는 은은한 향수 냄새가 퍼져 있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는, 아주 드물게 기분 좋아 보이는 혜련이 앉아 있었다. "후후, 역시 사람 일은 끝까지 봐야 안다니까." 혜련은 태블릿을 내려놓으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화면에는 누아르 향수 캠페인 관련 기사들과 판매량 그래프가 빼곡하게 떠 있었다. 어느 것 하나 반응이 폭발적이지 않은 게 없었다. 기사들을 훑어보던 혜련이 천천히 시선을 들었다. 맞은편 소파에는 독고춘과 지희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정확히는, 지희 혼자 싸늘한 얼굴이었고 독고춘은 여전히 무표정에 가까웠다. "고춘 씨." 혜련이 부드럽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번 일 정말 수고했어요." 독고춘은 잠시 눈을 깜빡였다. 혜련이 이렇게까지 부드러운 눈빛으로 말을 건네는 건 처음이었다. "덕분에 회사도, 브랜드도, 지희 이미지도 전부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어요." "…그렇군요." 덤덤한 대답이었지만, 혜련은 오히려 그 무심한 태도가 마음에 든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옆에 앉아 있던 지희가 끝내 참지 못하고 차갑게 끼어들었다. "엄마,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어제 엄마 대신 그 자리에 박도윤이 나왔다니까!" 순간 사무실 안의 공기가 미묘하게 가라앉았다. 하지만 혜련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마침 급한 일정이 생겨서 대신 보냈어." "엄마." 지희의 목소리가 싸늘하게 내려앉았다. "난 분명 엄마가 할 얘기가 있다고 해서 나간 거라고!" 잔뜩 날이 선 외침에도 혜련은 건성으로 손사래를 칠 뿐이었다. "그만해, 이 기지배야. 이미 지난 일로 소리를 지르고 난리야." 무심한 대답에 지희의 가슴 한구석이 찌릿하게 아려 왔다. 어제 카페에서 느꼈던 그 지독한 공포와 비릿한 살의를, 엄마조차 가볍게 치부해 버리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남몰래 안도했다. 엄마의 태도를 보아하니, 도윤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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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화

회의실 안에는 마케팅 직원들의 열띤 설명이 이어졌지만, 지희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는 오로지 옆자리 독고춘의 커다란 손바닥에서 전해지는 단단한 온기에만 매달린 채,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고 있었다. 도윤의 시선은 시종일관 지희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먹잇감을 구석에 몰아넣은 여유로운 포식자의 눈빛이었다. 그러다 도윤의 시선이 천천히 옆자리의 독고춘에게로 향했다. 두 사람의 눈빛이 허공에서 소리 없이 맞부딪혔다. 먼저 입을 연 쪽은 도윤이었다. 그는 부드럽게 웃으며 손을 들어 올렸다. "아, 죄송한데 잠시만 스톱." 도윤은 말을 이어 가던 직원을 가볍게 제지한 뒤, 의자에 천천히 몸을 기댔다. "독고춘 씨, 오해하지 마십시오. 이번 프로젝트에 H금융이 공동 투자로 참여하게 돼서 잠시 참관 나온 겁니다." 듣기에는 자연스러운 설명이었지만, 그 시선에는 독고춘을 은근히 내려다보는 기색이 어려 있었다. 그러나 그 오만한 태도에도 독고춘의 눈빛은 조금도 누그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도윤의 화려한 겉모습 너머, 그 안쪽의 뒤틀린 무언가를 낱낱이 꿰뚫어 보려는 듯한 시선이었다. 도윤은 그 서늘한 침묵을 마주한 채 입꼬리를 더 깊게 비틀었다. "이번 프로젝트는 제가 직접 관리하고 있습니다. 아, 그리고… 설명은 이쯤 하면 된 것 같은데."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마케팅 팀장이 서둘러 계약서가 담긴 파일철을 내밀었다. 지희는 독고춘의 손을 꼭 쥔 채, 반대쪽 손으로 펜을 잡았다. 서류 위에 서명하는 짧은 순간조차 박도윤의 시선이 손등 위를 기분 나쁘게 훑고 지나가는 것만 같아 소름이 돋았다. '빨리, 제발 빨리 여기서 나가게 해 줘.' 지희는 거의 휘갈기듯 서명을 마쳤다. 독고춘은 직원의 설명을 끝까지 들었다. 마음에 걸리는 대목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서명을 마치고도 멈추지 않는 지희의 떨리는 손끝을 보자, 그녀를 이 자리에 한순간도 더 붙잡아 둘 수 없었다. 독고춘 역시 조용히 서명을 마쳤다. 파일철이 닫히는 소리가 마치 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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