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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도깨비의 아이: Chapter 51 - Chapter 60

66 Chapters

51화

화려한 조명이 쏟아지는 스튜디오 안.그곳에서는 카메라 셔터 소리가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새하얀 조명 아래 드러난 권민지의 매끈한 어깨선과 풍만한 몸매가 아찔하게 드러났다.​“네, 좋아요! 두 사람, 조금만 더 밀착할게요!”카메라 감독의 외침에 권민지는 아찔한 란제리 차림으로 독고춘의 목에 양팔을 부드럽게 휘감았다.그녀의 대담한 행동에 스튜디오 안 공기가 묘하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독고춘은 천천히 한 손으로 권민지의 얇은 허리를 감싸 안았다.평소의 그 무뚝뚝하던 독고춘의 얼굴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나른하고 황홀한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완전히 권민지에게 홀린 듯 입꼬리를 헤벌레 풀어버리는 순간,“...하. 미치겠네 진짜."침대 위에 누워 있던 지희가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눈을 번쩍 떴다.어두컴컴한 방 안.천장을 노려보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던 지희는 짜증스럽게 이불을 걷어찼다.불과 몇 초 사이, 머릿속에서 제멋대로 재생된 최악의 장면.그 상상만으로도 속이 뒤집히는 기분이 들었다.그 곰탱이 같은 남자가 다른 여자, 그것도 속옷만 입은 여자 앞에서 그런 헤벌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걸 두 눈으로 봐야 한다고?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지희는 침대 머리맡에 던져둔 휴대전화를 낚아챘다.그리고 망설임 없이 검색창에 이름 하나를 입력했다.권민지.곧바로 그녀에 대한 기사들이 화면 가득 떠올랐다.기사를 읽어 내려가던 지희의 표정이 점점 싸늘하게 굳어갔다.“치명적 매력 좋아하네. 남심 올킬? 하!”​지희는 코웃음을 치며 스크롤을 거칠게 내렸다.그런데 그 순간, 연관 기사로 떠오른 헤드라인 하나가 지희의 손가락을 멈추게 했다.​​기사 썸네일 속 박도윤은 오만한 미소를 지은 채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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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화

이틀 뒤, S브랜드의 메인 광고 촬영이 진행되는 대형 스튜디오는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천장 위를 가득 메운 조명 장비와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스태프들,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는 무전 소리까지. 분주한 현장 한가운데, 지희는 팔짱을 낀 채 조용히 스튜디오 내부를 둘러보고 있었다. 검은색 오프숄더 니트와 슬랙스 차림의 그녀는 오늘도 눈에 띌 만큼 아름다웠지만, 어딘가 평소보다 기분 좋아 보이는 얼굴이었다. 정확히는 은근히 들떠 있었다. 그 모습을 눈치챈 지아가 슬쩍 다가와 작게 속삭였다. “언니, 이거 먹힐까요?” “글쎄, 두고 보면 알겠지.” 지희는 능청스럽게 눈을 깜빡였지만, 입꼬리는 이미 미세하게 올라가 있었다. 그 순간, 멀리서 남효섭이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깔끔하게 넘긴 검은 머리와 부드러운 눈매, 단정한 분위기의 그는 주연 배우급의 훈훈한 인상이었다. 날카롭고 강렬한 분위기보다는 편안하고 젠틀한 매력이 더 어울리는 남자. “지희야.” 부드럽고 단정한 인상의 효섭은 예전부터 여러 작품에서 지희와 호흡을 맞춰온, 몇 안 되는 동갑내기 친구였다.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효섭의 인사에 지희가 밝은 표정으로 그를 맞아 주었다. “오, 효섭쓰. 나야 늘 바쁘지 뭐. 넌 어때?” 효섭은 작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나도 늘 똑같아. 근데 오늘 뭔가 기분 좋아 보이는데?” “그래 보여?” “연애 한다더니 얼굴이 확 달라졌네. 더 예뻐졌어.” 그 말에 지희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대충 둘러댔다. “당연한 말을 해줘서 고맙다. 너도 빨리 연애해.” "하하, 그러게. 혹시 저 분이 소문의 남자친구야?" "맞아, 나중에 인사시켜 줄게." 지희와 효섭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멀리서 스태프의 우렁찬 외침이 스튜디오 안에 울려 퍼졌다. “독고춘 씨, 권민지 씨! 먼저 촬영하실게요! 준비 다 되셨으면 세트장으로 이동 부탁드립니다!” 그 소리를 들은 지희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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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화

스튜디오 한쪽에서 감독과 스태프들이 머리를 맞댄 채 심각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의논하고 있었다. “아니, 저런 문신 있는 사람을 모델로 섭외한 게 누구야? 생각이 있는 거야?” 감독이 짜증스럽게 묻자, 한 스태프가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그게...박도윤씨 입니다.” “뭐? 하, 환장하겠네. 금융사 쪽 사람이 뭘 안다고 모델 섭외까지 간섭해서 이 사달을 만들어?” "그러게나 말입니다. 어쩔까요 감독님?" 스태프의 물음에 잠깐 고민하던 감독은 효섭에게 슬쩍 눈길을 주었다. "일단 S본사 마케팅 팀에 전화해 볼 테니까 기다려 봐." 웅성거리는 목소리들 사이, 독고춘은 조용히 바닥에 떨어져 있던 가운을 다시 집어 들었다. 아무래도 자꾸만 쏟아지는 시선이 지나치게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그 순간, “우와.” 옆에서 작은 감탄이 들려왔다. 독고춘이 고개를 돌리자 민지가 반짝이는 눈으로 그의 몸을 여기저기 훑고 있었다. “진짜 엄청 멋있어요!” “...아, 음...” “이런 문신은 처음 봐요. 완전 영화 속 조직 보스 같아요.” 민지는 신기하다는 듯 웃으며 독고춘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반면 독고춘은 점점 더 무안해진 얼굴로 시선을 피했다. “저... 혹시 괜찮으시면 '춘' 오빠라고 불러도 될까요?” 그 말에 독고춘의 얼굴엔 당황과 기쁨이 함께 묻어났다. 얼마만에 불려보는 제대로된 이름인가. 기쁜 마음에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려던 찰나, “민지야, 춥지 않아?” 서늘하게 끼어드는 목소리와 함께 지희가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고 들어왔다. 생글생글 눈은 웃고 있었지만, 그 분위기는 싸늘했다. “지희 언니! 아직 춥진 않아요. 그보다 춘 오빠 문신 너무 멋있는거 아니에요?” “춘... 오빠? 언제 그렇게 친해졌니?” 지희는 자연스럽게 독고춘의 눈을 노려보며 이마에 핏대를 세웠다. "아, 제가 멋대로 오빠라고 불렀네요. 죄송해요." "아니야. 뭐, 죄송할 것 까지야." 민지가 사과하며 허리를 숙이자 가운 속 풍만한 가슴골이 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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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화

속옷 화보 촬영이 끝나고, 반대편 세트장에서는 지희와 독고춘의 패딩 화보 준비가 이어지고 있었다.그곳은 아까의 어색함이 거짓말인 것처럼 활기로 가득 차 있었다.조명이 다시 세팅되고,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그 한가운데서 지희는 연신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있었다."하, 크흠. 크흠!"억지로 헛기침으로 눌러봤지만 소용이 없었다.이미 입꼬리가 귀에 걸려 있었다."언니, 이제 진정 좀 해요. 얼굴에 다 써있어요."지아가 핀잔을 놓았지만 지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나 아무렇지 않거든? 푸흡...크흠!""어, 그러세요? 지금 입꼬리가 귀에 걸린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말입니다!"지희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고개를 돌렸다.하지만 어깨가 들썩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그 모습을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던 독고춘은,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지희가 저렇게 좋아하니, 아까 세트장에서 가운을 벗으며 느꼈던 복잡한 심정이 어느새 다 사라져 있었다.몸에 문신을 새기는 게 맞는 건지, 아무리 특수분장이라 해도 이건 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하지만 지금 저 웃음을 보고 있자니,'...잘 한 거겠지.'독고춘은 올라오는 입꼬리를 억지로 막으며 무덤덤한 표정을 유지했다."자자! 모두 준비됐으면 갑시다! 지희씨, 독고춘씨 세트장으로 이동해 주세요!"감독의 우렁찬 목소리가 스튜디오를 울렸다.지희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웃음을 삼키고 독고춘과 함께 세트장으로 향했다.조명이 켜지자, 두 사람의 실루엣이 화면 안으로 들어왔다."좋아요! 역시 잘 어울리네!"모니터를 들여다보던 감독이 곧바로 탄성을 내질렀다.겨울 아우터 컨셉에 맞게 따뜻한 색감의 세트와 소품들, 그리고 그 중심에 선 두 사람의 분위기는 어떤 설명도 필요하지 않았다.밝고 화사한 지희 옆에 묵직하고 깊은 분위기의 독고춘이 나란히 있으니, 화면 자체가 살아 숨쉬는 것 같았다."역시 둘이 같이 있어야 그림이 산다니까! 느와르 화보 때랑 완전히 다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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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화

밤 9시가 넘은 시각, 촬영을 마치고 돌아온 지희의 집 안. 거실 바닥에는 어느새 커다란 캐리어 두 개가 활짝 펼쳐져 있었다. “언니, 근데 진짜 어디 갈 거예요? 일본? 동남아시아?” 소파에 엎드려 휴대폰을 뒤적이던 지아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지희는 냉장고에서 탄산수를 꺼내 마시며 느긋하게 대답했다. “해외는 안 돼.” “왜요?” “곰탱이한테 여권이 있을 리가 없잖아.” 너무 당연하다는 듯 나온 말에 지아가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가 곧 풉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언니. 형부도 당.연.히. 가는 건가요? 난 전혀 몰랐네! 알 수가 없었네!” “시끄러.” 지희는 민망한 듯 쿠션을 집어 던졌지만, 이미 올라간 입꼬리는 숨겨지지 않았다. “그럼 제주도로 갈까요?” “음... 거긴 사람이 너무 많을 것 같고.” “영종도는 어때요? 거리도 가깝고 거기에 KG호텔 있잖아요, 언니.” 지희는 잠시 고민하다가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그래, 거기로 가자. 오랜만에 호캉스나 좀 즐겨볼까?" "지금 당장 예약하겠습니다!" "우리 고모가 사장인데 뭘 예약을 해.” 지희는 곧바로 휴대폰을 들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지희야. 이 시간에 웬일이야?- KG호텔 사장이자 지희의 고모인 강선혜였다. 지희는 일부러 콧소리를 섞어가며 말했다. “고모, 잘 지내시죠~? 다름이 아니라 내일부터 3박4일 휴가 갈 건데~” -그래? 휴가를 어디로 가길래?- "영종도요~ 혹시 그쪽 호텔에 남는 방 있나 해서 전화드렸어요~" -아유, 천하의 강지희가 온다는데 없던 방도 만들어 줘야지. 내가 내일 오전에 연락해서 VIP룸 비워둘테니까 걱정말고 푹 쉬다 와. 온 김에 호텔 홍보 좀 해주고. 알았지?- "네~ 고모. 감사해요~" 지희는 전화를 끊고 위풍당당하게 지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들었지?" “와... 언니, 지금 좀 재수 없어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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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화

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차 안. 유리창 너머로 겨울 햇살이 부드럽게 쏟아졌고, 멀리 흐르는 풍경도 어딘가 느긋했다. 하지만 차 안 분위기는 조금 달랐다. 뒷좌석에 기대앉아 태블릿 PC로 기사를 훑고 있던 지희가 태블릿을 툭툭 건드리며 담담하게 중얼거렸다. "올 게 왔네." 화면엔 자극적인 기사들과 독고춘 몸의 문신 사진이 메인을 장식하고 있었다. 지희는 스크롤을 천천히 내리며 읽다가, 태블릿을 가볍게 무릎 위에 내려놨다. 운전대를 잡고 있던 지아는 연신 백미러를 힐끗거리다가 다급하게 물었다. “뭔데요 언니? 패딩 화보 기사 맞아요?” “아니, 꼬춘씨 문신에 대한 기사야. 패딩 화보는 아직 안 떴나 봐.” “형부 문신이요? 그게 왜 기사로 떴을까요?” 지희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다리를 꼬았다. “문신이 그 정도인데, 당연히 소문이 났겠지.” “그럼 이제 어떡해요? 가만히 놔두면 형부가 국민 조폭이 될 것 같은데.” “예상했던 일이야. 걱정 안 해도 돼.” 그 순간, 창밖만 조용히 바라보던 독고춘이 낮게 입을 열었다. “...음, 다 지웠는데.” 정작 조직폭력배 취급을 받고 있는 본인은 생각보다 별 관심 없어 보였다. 지희는 짧게 숨을 내쉬더니 휴대폰 전원을 켰다. 그리고 연락처를 넘기다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몇 번의 신호음 끝에 한 여성이 전화를 받았다. "언니, 안녕하세요." -어? 지희야, 웬일이야? 설마 기사 때문에?- 지희는 느긋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맞아요, 언니. 그 기사 때문에 언니한테 단독 인터뷰 요청 하려고요.” 순간 전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 -...단독? 정말?- “그럼요. 대신 조건이 있어요.” 지희는 창밖을 흘끗 바라보며 태연하게 말했다. “지금 영종도에 있는 KG호텔로 오셔야 하는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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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화

은주는 웃음기 섞인 얼굴로 분위기를 환기시키며 노트북 화면을 아래로 내렸다.그리고 이내 연예부 기자 특유의 날카로운 눈빛을 빛내며 본론을 꺼내 들었다.​“자, 귀여운 연애 담은 이쯤 하고, 이제 진짜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 지희야, 오늘 아침에 터진 기사들 때문에 연예계가 발칵 뒤집힌 건 너도 알지?”​은주가 탁자 위의 녹음기를 지희 쪽으로 바짝 밀어붙였다.​“독고춘씨 전신 문신 때문에 스태프들이 놀랐고, 결국 남효섭씨로 모델 교체됐다는 사실까지 보도됐어. 심지어 지금은 ‘조폭 보스설’까지 붙었는데, 정확한 사실이 뭐야?”​순간 카페 안의 공기가 미세하게 가라앉았다.프런트에서 체크인을 마치고 슬쩍 다가오던 지아도 긴장한 듯 발걸음을 멈췄다.​하지만 지희는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 들고 있던 커피잔을 우아하게 내려놓으며 입꼬리를 매끄럽게 올렸다.​“전부 악의적인 오보이자 짜깁기 기사예요. 사실대로 말씀드리면... 제 아주 사적인 질투 때문에 벌어진 해프닝이거든요.”​“질투? 톱스타 강지희가 질투를 했다고?”​은주의 눈이 특종을 포착한 맹수처럼 번쩍였다.지희는 옆에 앉은 독고춘을 슬쩍 바라보며 대담하게 말을 이어갔다.​“생각해 보세요, 언니. 내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 모델이랑, 그것도 속옷 차림으로 밀착 화보를 찍는다는데 가만있을 여자가 어디 있겠어요? 그래서 제가 촬영 전에 꼬춘씨 몸에 일부러 무시무시한 문신을 그려달라고 아는 언니한테 부탁했어요. 물론 진짜 문신이 아닌 특수 분장이죠.”​“뭐? 특수분장이라고?”​“네. 감독님이 부담스러워서 모델 교체를 고민하게 만들려는 제 유치한 작전이었죠. 정작 이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고 제 장단에 맞춰준 것뿐인데, 촬영장 내부에 누군가가 악의적으로 이야기를 부풀려 흘린 모양이더라고요.”​예상치 못한 지희의 해명에 은주는 턱이 빠질 듯한 표정으로 감탄사를 터트렸다.​남친의 속옷 촬영을 막으려는 톱스타의 눈물겨운 질투극이었다니!이건 연예계 역사상 전무후무한 역대급 로맨스 특종이었다.​지희는 기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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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화

은은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레스토랑 창가 자리. 평일 오전이라 그런지 점심시간임에도 테이블 절반 이상이 비어 있었고, 창가 쪽으로는 통유리 너머 겨울 바다가 검푸르게 물들어 있었다. ​지희와 독고춘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지아가 자리를 비워준 덕에 완벽한 둘만의 시간이 되었지만, 공기는 어색함으로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두 사람 사이엔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지희는 괜히 물잔 표면에 맺힌 물기를 손끝으로 문지르다가 슬쩍 시선을 들었다. 맞은편에 앉은 독고춘은 창밖을 바라본 채 여전히 무심한 얼굴이었다. 이렇게 둘만 남은 지금까지도 좀처럼 흔들리는 기색이 없었다. 그동안 수많은 남자들을 봐왔지만, 이렇게 속내를 알 수 없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자신을 보면 괜히 긴장하거나, 잘 보이려 애쓰거나, 은근히 눈치를 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독고춘은 달랐다. 무심한 건지, 둔한 건지. 아니면 원래 이런 사람인 건지. 도무지 속을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일까. 이상하게도, 자꾸만 이 남자가 더 궁금해졌다. 지희는 괜히 물잔을 만지작거리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꼬춘씨. 나 궁금한거 있는데 물어봐도 돼요?” 창밖을 바라보던 독고춘이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잠시 그녀를 바라보던 독고춘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희는 괜히 시선을 한번 아래로 내렸다가, 예전부터 마음 한켠에 남아 있던 질문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그 산 속에서는... 몇 살 때부터 살았어요?” 독고춘은 잠시 기억을 더듬는 듯 시선을 낮췄다. “...아홉 살 때쯤.” 그 짧은 대답에 지희의 눈이 커졌다. “아홉 살이요?” 그 나이면 아직 부모 손 잡고 학교 다니고, 친구랑 놀이터를 뛰어다닐 나이였다. “거기서 초등학교 다녔어요?” “...그만뒀지.” “네에?” 지희 눈이 다시 동그래졌다. “그럼 중학교, 고등학교도...?” 독고춘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조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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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화

“...지금 웃음이 나와요?”지희는 허리에 손을 얹은 채 기가 찬다는 듯 독고춘을 노려보았다.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의자에 다시 앉으며 포크를 집어 들었다.“...음식 식겠어.”“하! 어린 여자애들이 달라붙으니까 아주 좋아 죽겠지?”지희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맞은편에 털썩 앉았다.독고춘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 짧게 답했다.“...아닌데.”덤덤하게 대답했지만 입가에 남아 있는 희미한 웃음기까지 숨기진 못했다.“흥, 됐거든요?”지희가 표정을 살짝 구기며,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푸흣.”그 순간, 짧은 웃음이 또 새어 나왔다.천천히 고개를 든 그녀가 황당하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엄머? 뭐가 그렇게 웃긴데? 어? 말 좀 해봐요!”“...아니, 그게 아니라...”“뭔데요!”독고춘은 잠시 말을 고르는 듯 그녀를 바라봤다.그러다 아주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예전에 키우던 다람쥐가 생각나서.”"...다람쥐? 내가 다람쥐 같다는 거에요?"독고춘은 잠시 생각하더니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엄청 귀여웠거든.”독고춘의 마지막 말에 지희는 말문이 턱 막혔다.아니, 이 남자가 지금 뭐라는 거야?다람쥐 같다고 해놓고 갑자기 귀여웠다는건 설마...그녀는 급히 시선을 떨군 채 괜히 포크를 만지작거렸다.그리고 달아오른 얼굴을 숨기려는 듯 괜히 목소리부터 높였다."이,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얼른 밥이나 먹어요!"“...음.”독고춘은 별다른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아까부터 올라가 있는 입꼬리는 좀처럼 내려가지 않았다.그렇게 한동안 두 사람은 말 없이 식사에 집중했다.처음엔 어색함으로 팽팽하던 분위기도 어느새 조금 느슨해져 있었다.적어도 지희만큼은 한결 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물론, 맞은편 남자는 여전히 속을 알 수 없었지만.간질간질한 텐션 속에서 식사가 모두 끝나갈 때쯤이었다.브르르르.테이블 위에 올려둔 지희의 휴대폰이 진동했다.지희는 귀찮다는 얼굴로 휴대폰 화면을 보고는 급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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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화

결국 도망치는 건 진작에 글렀다. 뒷문으로 몰려든 팬들에게 꼼짝없이 붙잡힌 탓이었다. 지희는 톱배우다운 프로 정신으로 당황한 기색 하나 없이 팬들에게 일일이 사인과 사진을 남겨준 뒤에야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팬들을 모두 상대하고 레스토랑을 빠져나온 시각은 어느새 늦은 오후였다.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 안. 지희는 벽에 기대다시피 선 채 깊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아...” 그러고는 천천히 고개를 뒤로 젖혔다. “휴가 첫날부터 이게 뭐야, 진짜. 쉬러 온 건지 일하러 온 건지.” 괜히 투덜거리며 머리카락을 쓸어넘긴 그녀가 작게 입술을 삐죽였다. 그러다 문득 엘리베이터 벽면에 붙은 호텔 안내 문구를 본 순간, 눈빛이 반짝였다. [15F WINTER SPA — 프라이빗 온천 & 아로마 스파] “꼬춘씨! 15층! 15층 눌러줘요!” 갑작스러운 지희의 외침에 독고춘의 손가락이 15층 버튼을 꾹 눌렀다. 12층.13층.14층. 그 짧은 사이에 지희 얼굴엔 다시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 툴툴거리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독고춘은 그런 그녀를 잠시 바라보다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스파?” 지희는 기다렸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덧붙였다. “이 호텔 스파, 엄청 유명하거든요. 바다 보면서 온천도 하고 마사지도 받고.” 띵. 그 순간, 엘리베이터 문이 천천히 열렸다. 은은한 조명 아래로 우드 향과 아로마 향이 희미하게 섞여 코끝을 간질였다. 지희는 괜히 만족스러운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자연스럽게 프런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문득 뒤를 돌아보곤 손짓했다. “뭐해요, 꼬춘씨? 빨리 이쪽으로 와요.” 독고춘은 느긋하게 그녀를 따라오다 낮게 물었다. “...나도 하는 건가?” 그 물음에 지희가 잠깐 뜸을 들였다. “...왜요? 하기 싫어요?” "...이런 곳은 처음이라." 지희는 그 말에 피식 웃고는 접수 데스크 직원에게 시선을 돌렸다. “안녕하세요. 지금 두 명 가능할까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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