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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도깨비의 아이: Chapter 21 - Chapter 30

66 Chapters

21화

드라마 마무리씬을 찍던 스튜디오엔“컷!”이라는 감독의 외침과 함께 긴장이 풀리는 웃음소리가 흘렀다. 스태프들이 분주히 움직이고,지희는 조용히 의자에 앉아 물을 마셨다. 그때였다. 모자를 눌러쓰고, 스태프 사이에서 시선 하나로 지희를 꿰뚫는 자. 그 남자가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독고춘은 미세한 숨소리마저 죽이고 천천히 움직였다. “꼬춘씨...?” 지희는 독고춘의 시선이 계속 한군데에 집중하고 있다는걸 깨닫고 입술을 깨물었다. 혹시나 위험 하진 않을까 하는 마음에 가지 말라고 그의 팔을 꽉 붙잡았으나, 그는 지희를 쳐다보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빠르게 그림자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 세트 뒤편, 주차장으로 이어지는 좁은 복도. 그곳은 묘한 냉기가 감돌았다. 그곳에서 남자의 투박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툭, 툭, 툭 — 독고춘은 그 리듬을 따라 천천히,마치 짐승처럼 낮은 자세로 추적했다. 복도 끝, 그 남자가 문을 열고 나가려는 순간 독고춘이 속삭였다. “...멈춰.” 그 남자가 돌아보았다. 어둠 속에서 드러난 그의 얼굴은 인간의 것이었지만, 눈빛만큼은 아니었다. 새까맣게 번진 동공, 입가에 미세하게 일그러진 웃음. 남자의 목덜미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 연기가 벽을 타고 기어올라 천장으로 퍼져나갔다. 공기 자체가 눌리는 듯한 중압감이 내려앉았다. “...또 보는군.” 독고춘의 목소리가 낮게 갈라졌다. 그 남자의 입에서는 낮고 기괴한 목소리가 섞여 나왔다. “그 여자는... 내 것이다. 그 여자의... 안에 있는 것까지… 전부…” 검은 연기가 그 말에 맞춰 더욱 진하게 부풀었다. “...이제 그만 사라져라.” "크하하하, 웃기는 소리!" 그 남자가 절규하듯 웃었다. 그리고 갑자기 문을 벌컥 열고 주차장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독고춘은 굳어진 얼굴로 그 남자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얼마간의 추격끝에 막다른 곳까지 쫓긴 그 남자는 품에서 흉기를 꺼내들었다. 한쪽 얼굴은 겁에 질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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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일주일 후, 늦은 밤 호텔 스위트룸. 뉴스 화면 속 앵커의 목소리가 잔잔히 흘렀다. “배우 강지희 씨를 향한 스토커 사건의 피의자가 오늘 오후 구속되었습니다. 지난 16일, 경찰에 붙잡힌 김씨는 자신은 그런적이 없다며 발뺌했는데요. 법원에서는 검찰측이 제시한 증거로…” 지희는 소파에 깊이 기대 앉아 TV를 껐다. 긴장이 풀린 듯 하지만 여전히 그날의 악몽같은 기억은 선명했다. 탁자 위엔 지아가 깎아놓은 사과 조각이 놓여 있었다. “내일부터 다시 촬영이구나...” 지희가 크게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그러게요, 언니. 그 동안 경찰서에 왔다갔다 하느라 제대로 쉬지도 못했는데...하~암.” 지아는 크게 하품하며 태블릿 PC를 덮었다. 휘몰아쳤던 며칠간의 사건을 끝으로 그녀들은 평온을 되찾은듯 보였다. --- 다음날, 드라마 촬영장. “컷! 오케이, 이번 씬 좋았어요! 30분 휴식!” 감독의 외침이 울리자 현장은 잠시 숨이 틔였다. 조명들이 꺼지고, 스태프들은 장비를 옮기느라 분주했다. 지희는 대기실로 돌아가 소파에 앉아 물을 마시며 깊게 숨을 내쉬었다. 옆에서 따라오던 지아가 다가와 말했다. “언니, 오늘 씬 완전 예쁘게 잘 나왔어요!” “그래? 뭐, 당연한거 아니야?” 지희는 웃으며 답했지만, 얼굴에는 피로가 묻어 있었다. 그때, 조용히 문이 열리고 독고춘이 들어왔다. 평소처럼 무뚝뚝한 얼굴로. “여긴 왜 왔어요? 차에서 쉬고 있으라니까.” 지희가 살짝 놀라며 물었다. “...지루해서.” 그는 짧게 대답하고는, 대기실 구석으로 걸어가 의자 하나를 꺼냈다. 그의 손엔 낡은 그림책 한 권이 들려 있었다. 표지가 닳고 가장자리가 헤져 있었다. “오빠, 그게 뭐에요?” 지아가 눈을 깜빡였다. “...동화책.” “동화책? 그걸로 뭐하려고요?” “...사랑이, 읽어 주려고.” 지희가 순간 숨을 멈췄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책을 펴더니 낮은 목소리로 읽기 시작했다. "...도깨비는 외로웠어요. 그래서 매일 달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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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KG엔터테인먼트 본사, 유리 커튼월로 둘러싸인 최상층. 비가 갓 그친 도시의 하늘이 반사되어, 창문은 은빛으로 번들거렸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지희는 조용히 선글라스를 벗으며 안으로 들어섰다. 고급스러운 향수 냄새, 차가운 대리석 바닥 위에 하이힐 소리가 작게 울렸다. 사장실 안쪽, 윤혜련이 정장 차림으로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은 여전히 고급스럽고 단정했지만,어딘가 긴장감이 감돌았다. “엄마!” 지희가 혜련에게 달려들며 반갑게 안겨들었다. 혜련은 지희의 등을 몇번 두드려 주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희야…정말 오랜만이네.” 잠시의 정적. 그리고 곧 지희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 눈엔 반가움보다도 놀람과, 짙은 피로가 섞여 있었다. “미국에 있던 동안 뉴스로 네 이름을 수도 없이 들었어.” 혜련은 손끝으로 태블릿을 가볍게 두드렸다. 화면엔 스크롤이 멈춘 기사들이 빽빽했다. 「배우 강지희, 촬영 중 실신 후 병원 이송」「톱스타 강지희, 병원에서 발작증세 일으켜」「스토커 피해… 경찰, 정신이상자로 결론」「KG그룹의 딸, 연예 활동 중 잇단 악재」 그녀는 화면을 가리키며 다그쳤다. “이게 뭐니?” 그 말에 지희는 크게 숨을 들이켰다. “그냥… 촬영 중에 좀 무리해서. 별일 아니야, 엄마.” “별일 아니라니?” 혜련의 목소리가 단단하게 갈라졌다. “쓰러지고, 병원에 입원까지 했는데? 스토커 사건까지 터졌잖아. 이게 별일이 아니야?” 지희는 고개를 숙였다. 혜련은 작게 한숨을 쉬고 다시 말을 이었다. "네 아빠는 뭐라 안하디?" "아빠가 언제 나한테 신경쓴적 있어? 연락 한번 안왔어. 물론 나도 안했고." “그래, 그렇겠지. 그건 그렇고 배우 활동이 많이 힘든거야?” 혜련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목소리는 겉으론 차분했지만,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미국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계속 생각했어. 내 딸이 왜 갑자기 그렇게 무너졌을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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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그날 저녁,서울의 불빛들이 유리창을 비치고 있었다. 그 불빛들은 혜련의 얼굴을 차갑게 물들였다. 탁자 위엔 아직도 남은 커피 향이 옅게 퍼져 있었다. 똑똑— 그녀는 태블릿을 덮으며 짧게 말했다. “들어와요.” 조심스러운 노크 소리 후,비서가 서류철을 품에 안고 들어왔다. “사모님, 요청하신 건 정리되었습니다.” “그래요, 앉아요.” 혜련은 커피잔을 밀어두고,그녀 앞에 놓인 서류를 천천히 펼쳤다. 맨 위에는 이름. ‘독고춘’ 고요한 공간 속에서 페이지가 넘겨질 때마다,서류에서 흘러나오는 공기조차 묘하게 불안했다. “출생지는?” “인천 미추홀구 주안동으로 되어 있습니다.” “부모는?” “모두 사망했습니다. 사인은 교통사고로 추정됩니다. 오래전 일이라 당시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학교는?” “초등학교 중퇴 후, 이력이 없습니다.” “없다고요?” 혜련이 눈썹을 찌푸렸다. “학교는 그렇다 치고…그럼, 그 이후의 기록은?” “없습니다. 마치 그 이후로… 세상에서 사라졌다가 어느 날 갑자기 다시 나타난 사람처럼요.” "그게 무슨 말이야? 기록이 없다니?" 비서는 조심스럽게 말을 덧붙였다. “20년 넘게 주민등록 정정도 없고, 세금 기록도 없습니다. 신용카드나 계좌 내역도 확인되지 않습니다.” 혜련은 잠시 말이 없었다. 펜 끝이 종이 위를 툭— 하고 두드렸다. “…사람이, 20년 동안 기록 없이 산다는 게 가능해?” “그게… 문제입니다.” 비서의 목소리가 더욱 낮아졌다. “9살 이후의 기록이 아예 없습니다. 어디서 살았는지도 나오지 않습니다.” 혜련의 손끝이 미묘하게 떨렸다. 사무실이 갑자기 더 어두워진 듯했다. 천장의 조명이 그대로인데도,공기가 묘하게 눅눅해지고 무거워졌다. 혜련은 잠시 숨을 삼켰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김비서는 품안에서 조심스럽게 한 장의 사진을 꺼냈다. “최근 촬영장에서 찍힌 모습입니다.” 사진 속 독고춘은 지희의 옆에 서 있었다. 햇빛이 얼굴에 비치지 않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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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늦은 오후,촬영이 끝나고 세 사람이 타고 있는 차량이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창밖의 하늘은 조금씩 어두워지는 중이었다. 지희는 뒷좌석에 기대 피곤한 듯 눈을 감고 있었다. 그때, 조용히 지희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엄마?” -지희야, 아직 촬영중이야?- 혜련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어딘가 단단했다. “아니, 이제 끝나고 가는 중이야.” -그래? 얘는 끝나고 연락하라니까.- “왜? 무슨일 있어?" -일은 무슨. 그냥 오랜만에 저녁이나 같이 먹자고.- 혜련이 잠시 말을 고르더니, 낮은 톤으로 덧붙였다. -지아랑 고춘씨도 같이 집으로 와. 옆에 있지?- 지희는 살짝 눈을 뜨고 조심스레 되물었다. “집으로? 엄마, 그럼 그냥 외식하면 안돼?” -네 아빠 없으니까 걱정 말고 집으로 와.- "알았어. 일단 물어보고..." -꼭 데려와. 그럼 끊는다.- 뚜우뚜우— 전화가 끊기고 지희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운전을 하던 지아가 백미러로 지희를 보며 물었다. "왜요, 언니? 사모님이 집으로 호출하셨어요?" “지아야.” “네?” “오늘...우리 셋이 본가... 가야 할 것 같아.” 지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갑자기요?” “응. 엄마가 셋이 같이 오래. 저녁 먹자고.” “우와...사모님이 저녁식사에 초대 해주신건가요? 근데...오빠도요?” 지희는 조심스레 독고춘을 바라봤다. 무표정하게 창밖을 보던 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지희와 눈을 맞췄다. “...가야 하나?” “아니, 뭐. 가기 싫으면 안가도 돼요. 강요하는건 아니니까." "...그럼 안갈...""아! 사랑이가 꼬춘씨 안가면 가기 싫다는데요? 이거 어쩌지? 엄마한테 다시 못간다고 전화 해야하나..." 지희는 아랫배를 쓰다듬으며 곤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말에 독고춘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할수 없군.” 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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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화

늦은 저녁, 혜련은 손님들이 돌아가도록 현관까지 배웅했다. 가정부가 문을 열자,서늘한 가을 바람이 실내의 따스한 공기를 한순간에 흩어놓았다. "오늘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모님.” 지아가 환하게 인사했다. 그 옆에서 지희는 혜련에게 안기며 말했다. “엄마, 음식 너무 맛있었어. 고마워.” “그래, 이제 집에 자주 와서 저녁 먹고 가.” 혜련은 지희를 안아주고,시선은 현관에서 구두를 신던 독고춘에게 두었다. 그는 언제나처럼 단정한 자세로 말없이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그 순간, 지희의 눈길이 그를 향했다.그 눈빛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독고춘이 고개를 들었을 때, 두 사람의 시선이 정확히 맞닿았다. 찰나의 정적. 그 짧은 순간을 혜련은 놓치지 않았다. 그녀의 손끝이 미세하게 굳었다. 지희의 얼굴에 드리운 미묘한 빛,그리고 독고춘의 눈동자에 번진 부드러운 흔들림. “조심히 가.” 혜련은 평정을 유지한 채 말했지만,목소리엔 어딘가 묘한 굴곡이 스며 있었다. 문이 닫히고 세 사람의 차가 멀어질 때까지 혜련은 그대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거실의 불빛이 길게 늘어져 대리석 바닥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녀는 천천히 한숨을 내쉬었다. “지희가 남자에게 저런 눈을 하던 적이 있었던가?” 그녀의 입꼬리가 천천히 굳어갔다. --- 늦은 밤,한남동 대저택을 떠나는 차 안에는 엔진 소리만 들릴 뿐, 말소리도, 웃음소리도 없었다. 운전석의 지아가 룸미러를 통해 눈치를 보며 말했다. “오랜만에 사모님 뵈니까 엄청 긴장했어요.” 지희가 한숨을 쉬며 웃었다. “괜히 초대한 게 아닌 것 같아. 분명 뭔가 있어.” 조수석에서 창밖을 보던 독고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창문 너머로 멀어져 가는 저택의 불빛을 바라볼 뿐이었다. 저녁의 풍경이 머릿속에서 다시 흘러갔다. 지희의 어머니, 윤혜련. 말 한마디, 손가락 하나 움직일 때마다 상대의 반응을 미세하게 살피는 사람. 그녀의 시선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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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화

그날 밤,윤혜련의 집무실. 김비서가 혜련에게 USB를 건넸다. “사모님, 요청하신 촬영장 기록입니다.” 혜련은 조용히 노트북을 켰다. 화면 속에서, 지희가 웃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화면 속 딸의 표정에서 멈췄다. 그건 연기의 미소가 아니었다. 자연스럽고, 진심인 듯한 예쁜 웃음. “...저 애가 저런 얼굴로 웃을 수 있구나.” 혜련은 짧게 숨을 내쉬고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곧게 들었다. 그 옆에, 무뚝뚝한 얼굴의 독고춘. 하지만 그 눈빛만큼은 이상하리만치 따뜻하게 보였다. 너무나 명확히 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고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좋아요. 당분간… 계속 부탁해요." "네, 사모님." --- 다음날 햇살이 기울어가는 오후, “거기 조명 조금 더 아래로 내리세요—! 네, 좋습니다! 배우들, 준비해주세요!” 감독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촬영장 근처에 앉아 대본을 바라보던 지희는 그 말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트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발밑 케이블선에 힐이 걸리며 살짝 중심이 흔들렸다. “아앗—!” 그 순간, 독고춘의 팔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지희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그 힘에 이끌리듯 그녀의 몸이 그의 품 안으로 턱ㅡ하고 안겨들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당황하던 지희는 곧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심장은 제멋대로 뛰고, 귀 끝까지 열이 올랐다. “...괜찮나?” “어...네. 괜찮...은거 같아요.” 독고춘은 그제야 그녀의 허리를 살며시 놓아주었다. 그 순간, 뒤쪽에서 “오, 마이 갓쉬!” 하는 비명이 들렸다. 경악하는 그 비명의 주인공은 지아였다. 그녀는 두손으로 입을 막고,커다래진 동공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방금 완전 로미오와 줄리엣의 한장면 같았어요! 아, 이런 장면은 사진으로 남겨야 하는데! 칙쇼!” 지희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시, 시끄러워! 로미오와 줄리엣은 무슨...” “언니! 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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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화

늦은 오전, KG엔터테인먼트 사장실.통유리 너머로 보이는 서울의 도심은 오늘도 바쁘게 일렁이고 있었지만, 실내는 서늘할 정도로 고요했다. 혜련은 데스크 위에 놓인 서류 한 장을 손끝으로 톡, 톡 건드렸다. 9살 이후의 기록이 통째로 증발해버린 남자, 독고춘의 이력서였다. ​그때, 조심스러운 노크 소리와 함께 지아가 들어왔다. ​“사, 사모님. 부르셨어요?” 평소의 씩씩함은 어디 갔는지, 지아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혜련은 고개를 들어 지아를 향해 부드럽지만 뼈가 있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지아야, 앉으렴. 우리 지아가 고생이 많지? 지희 뒤처리하랴, 새로 온 매니저 교육하랴.” “아, 아니에요! 다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요.” 지아는 땀이 밴 손바닥을 바지에 문지르며 소파에 조심스레 걸터앉았다. 혜련은 비서가 내온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예고도 없이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그 ‘유명하신 분’이 누구니?” ​“...네?” “독고춘씨가 전에 모셨다는 그 유명한 분 말이야. 우리 김비서가 아무리 뒤져도 그 남자 지난 20년 기록이 안 나오더구나. 세금 기록도, 통장 내역도 없이 유령처럼 산 사람이 어떻게 유명한 사람의 매니저를 할 수 있었을까?” 혜련의 시선이 지아의 눈동자를 꿰뚫듯 파고들었다. 지아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핏기가 가셨다. “어...그, 그게... 진짜 유명하신 분은 맞는데, 연예계 쪽이 아니라서...” ​“지아야.” 혜련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난 내 딸 곁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이 있는 걸 용납 못 해. 그게 지희를 위한 거라면 더더욱. 네가 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면, 난 고춘씨를 당장 지희 옆에서 치울 수밖에 없어. 스토커를 잡았든 어쨌든 상관없이.” ​치울 수밖에 없다는 말에 지아의 동공이 거세게 흔들렸다. 지희가 겨우 안정을 찾았는데, 독고춘이 사라지면 사랑이는 어떡하고, 지희는 또 어떻게 무너질지 눈앞이 캄캄해졌다. ​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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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화

오후 촬영이 잠시 중단된 세트장,창가로 스며드는 햇살은 따스했지만 지희의 마음은 그보다 훨씬 더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대본을 손에 쥐고 있었지만, 활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시선은 자꾸만 대기실 문가에 묵묵히 서 있는 독고춘에게 향했다. 그는 늘 그렇듯 무뚝뚝한 표정으로 스태프들의 동선을 살피고 있었다. 평소라면 ‘참 답답하게도 서 있네’라고 생각했을 텐데, 이제는 그 투박한 실루엣마저 묘하게 듬직해 보였다. 지희는 며칠 전 사고 때 자신을 낚아채듯 안아 올렸던 그의 단단한 팔의 감촉을 떠올렸다. 귓가를 울리던 그의 낮고 단단한 목소리가 환청처럼 맴돌자, 지희는 얼굴이 화끈거려 급히 대본으로 얼굴을 가렸다. ​‘...강지희, 너 정말 미쳤어? 왜 이러는 거야? 설마 저 곰탱이 같은 남자한테 반한건 아니지?' ​하지만 마음은 머리처럼 통제되지 않았다. 독고춘을 힐끗힐끗 바라보는 자신의 심장은 제멋대로 요동쳤다.지희는 괜히 목이 타는 듯해 물병을 집어 들었다. 하지만 물병은 어느새 텅 비어 있었다. “아이 참...꼬춘씨.” 조심스럽게 부르는 목소리에 독고춘이 고개를 돌렸다. 그 깊고 정직한 눈동자와 마주치는 순간, 지희는 숨을 들이켰다. ​“...왜 그러지?” ​“아, 그게… 물 좀.” 독고춘은 말없이 새 생수병 가져와 퉁명스럽게 건넸다. 뚜껑을 따서 건네주는 그의 손가락이 지희의 손등에 아주 살짝 스쳤다. 찰나의 접촉이었지만 지희는 마치 전기에 감전된 듯 깜짝 놀라며 물병을 낚아채듯 받았다. “어머, 지희 씨! 얼굴이 왜 이렇게 빨개요? 어디 아픈 거 아니야?”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놀라 다가오자 지희는 더 당황하며 손부채질을 했다. “아, 아니요? 오늘 조명이 유난히 뜨겁네? 조명탓, 조명탓.” 지희는 찬물을 들이켜며 유난히 큰소리로 얼버무렸다. 하지만 아랫배의 사랑이는 이런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기분 좋게 푸른 빛을 내며 살짝 꿈틀거렸다. 그 달콤한 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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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화

촬영이 끝나고 돌아가는 차 안, 실내는 평소보다 훨씬 더 무거운 정적에 잠겨 있었다. 핸들을 잡은 지아는 백미러로 뒷좌석의 지희를 살피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러고보니 아까 그 박...뭐시기인가 하는 그 남자... 촬영장 위치는 어떻게 알고 대기실까지 들어왔지? 언니 스케줄, 외부 비공개인데.” "글쎄... 그것보다 난 아직도 소름끼쳐." 지희는 창밖을 보며 제 아랫배를 가만히 쓰다듬고 있었다.아까 박도윤의 목소리가 들렸을 때 느꼈던 그 지독한 오한이 아직도 가시지 않은 듯했다. 잠시후, 독고춘을 향해 지희가 조심스레 물었다. ​“꼬춘 씨. 아까… 그 남자가 위험하다고 했죠? 단순히 느낌 때문이에요? 아니면 뭔가 보여요?” ​독고춘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지희를 돌아 보았다. 그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다. 그가 입술을 달싹이며 무언가 말하려던 찰나, 지희의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화면에 뜬 이름은 ‘엄마’였다. 지희는 약간 퉁명스럽게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지희야, 촬영 끝났니?-​혜련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훨씬 부드러웠다. "응, 끝났어. 무슨 일이야, 엄마?" ​-촬영장에서 박도윤 부사장 봤지? ​“봤어. 안그래도 그 얘기중이었는데 엄마가 그걸 어떻게 알아?” ​-내가 촬영장 위치 알려줬어. 아까 회사에 찾아 왔길래 네 얼굴 보고 가라고 했지.- 혜련의 말에 지희는 확 짜증을 부렸다. "아, 엄마! 왜 쓸데없이 일을 만들어!" -시끄러, 이 기지배야. 암튼, 보니까 어때? 멀끔하니 괜찮지? 지금 촬영중인 드라마 끝나면 정식으로 자리 만들거니까 그런줄 알고 있어. 그럼 끊는다.- "아니, 잠깐만! 엄마! 엄마?" ​뚜우, 뚜우— 무정한 기계음만 남긴 채 전화가 끊겼다.지희는 핸드폰을 쥔 손을 부들부들 떨더니 가방 속으로 휙 집어던졌다. ​“지아야, 들었지? 윤여사님께서 직접 위치 알려준 거래.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진짜.” 지희는 창밖을 보며 다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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