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금융 부사장실. 따사로운 햇볕이 짙게 깔린 사무실에서 도윤은 셔츠 소매를 신경질적으로 걷어붙였다. 창가에 선 그는 제 팔목에 남은 기괴한 피멍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밤사이 검붉게 번진 손자국이었다. 독고춘이 남긴 상처는 여전히 욱신거렸지만, 그는 그 통증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그 생소한 감각이 무미건조한 일상에 기분 좋은 자극을 주고 있었다. 도윤에게 세상은 거대한 장난감 상자였다. 돈과 권력으로 사람을 사고, 그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하나씩 빼앗으며 밑바닥으로 추락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그것이 그가 유일하게 살아 있음을 느끼는 '취미'였다. "…강지희." 그는 입 안에서 지희의 이름을 천천히 굴려 보았다. 대한민국 최고의 여배우. 고결하고 오만한 그 여자가 공포에 질려 눈물을 흘리고, 끝내 자신에게 무릎 꿇으며 망가지는 순간. 그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그는 오랫동안 KG그룹과의 친분을 유지했고, 매너 좋은 신랑감 연기를 기꺼이 수행해 왔다. 그때 집무실 문이 열리고 여비서가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부사장님, 요청하신 서류입니다. 그리고 오후 2시에 투자팀 회의가 있습니다." 도윤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입가에는 언제나처럼 눈부시게 다정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는 서류를 든 채 서 있는 비서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여비서가 멈칫하며 고개를 숙이자, 도윤은 아주 부드럽고 매너 있게 그녀의 어깨 근처로 손을 뻗었다. "아, 잠시만요. 정 비서님." "네? 아, 네… 부사장님." 도윤은 비서의 어깨에 내려앉은 작은 먼지를 떼어 내듯 손끝으로 톡톡 털어 주었다. 그러고는 소중한 보석이라도 다루듯 조심스러운 손길로, 삐져나온 머리카락 한 가닥을 귀 뒤로 정성스럽게 넘겨 주었다. "오늘 옷차림이 참 단정하고 보기 좋네요. 늘 세심하게 신경 써 줘서 고맙습니다." "아… 아닙니다. 과찬이십니다, 부사장님." 여비서의 볼이 발그레하게 달아올랐다. 다정한 목소리와 은은한 향수 냄새에 홀린 듯, 그녀는 멍하니 도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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